제목에서 풍기는 형제님 이미지가 굉장히 강하게 전달이 됩니다. 이런 기(?)도 예전엔 성령의 불을 받은 사도라고 ....ㅎㅎ. 이렇게 웃으며 얘기하는 날이 빨리 온것도 복이고 분별력을 갖게 해주신것도 정말 복이네요. 이제 경험하셨으니 또 한발짝 전진하자구요.^^
2012-11-21 23:15:16 | 이청원
많은 사람이 자기가 알고 행하는 것에 아무런 의심이나 재고를 하지 않는데 이렇게 혼란을 겪는 분은 차라리 겸손해 보이지요.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아니다 싶은 광경이나 말을 들으면 내가 믿고 있는 성경의 진리를 어떻게 전해야 할 까 마음이 급해지고 속상하고 답답해지지요.
가끔씩 대형교회나 일반교회를 살펴보는 것도 믿음을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2012-11-21 22:22:34 | 오혜미
만나는 사람마다 대부분 방언(?)을 하고 직통계시라면서
어제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서 뭐라 뭐라 하시는데 하염없이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다른날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모 집사를 만나서 이러한 것을 말하면서 회개하라고 전하라는 지시를 받고 모 집사님을 단 둘이 만나 하나님이 지시하는대로 했다.
어느날은 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는데 담임하는 목사님의 영적 상태가 이렇다고 하면서 보여주시더라. 등등
이런 분들에게 물어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다고 하셨는데 하나님 음성이 어떠하던가요?
천둥 소리였습니까? 속삭이듯 하셨습니까?
대부분 마음속에 들려오는 음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물어봅니다.
혹시, 당신속에서 나오는 당신의 음성은 아니였는지요?
은사주의나 신비주의에 빠져 계시는 분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 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펼쳐 말씀을 전하면 머리가 혼란스럽고 두통은 아니지만 쪼개지듯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점점 만남을 갖고 성경을 공부하다보면 어느덧 평안해지며 혼란스럽고 무질서했던 말씀들이 질서를 찾아가며 신앙생활에 안정을 가져다 준다는 고백을 듣습니다.
그렇다고 은사주의나 신비주의에 빠져 계시는 분들이 성경을 잘 안읽으시냐면 매일 성경을 보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펼쳐 공부하고 난 후에는 과거의 모든것들을 정리하고 회개하는 것일까요?
당신의 오른쪽에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펼쳐 놓고 왼쪽에는 개역성경을 펼쳐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머리가 혼란스럽고 쪼개지듯이 아파 올것입니다. 다 같은 성경이지만 왜? 이런 증상이 오는 것일까요?
당신이 추구하고 믿고 있는 은사주의, 신비주의나 번영신학에 근거를 둔 복 신앙이 충돌하는 것을 경험하실 겁니다.
어느 쪽 성경과 충돌할까요?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저는 선택했습니다.
머리가 혼란스럽고 쪼개지는 경험을 하고 난 다음에...
2012-11-21 15:07:49 | 장익성
자매님은 몸의 지체로 보면 눈의 역활을 하시는 것 같네요,
관찰력도 뛰어나고, 그냥 지나쳐 버린 것들을 세심하게 알려 주어서 새롭습니다.
2012-11-13 09:29:59 | 조양교
교회마다 주보가 있어 그 날의 동향을 알 수 있는데 우리는 이야기식 주보가 있어 너무 좋아요.
교회가 아직 4년밖에 않되었지민 한 10년이 되었을 즈음에 10년 전 교회앨범을 보면 추억과 감회가 새롭겠지요. 많은 변화가 있을테고요..4년이란 세월이 유수같이 흘렀는데 앞으로 이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거의 10년이 될텐데 그러고 보면 그리 오랜 세월이 아닐것 같아요. 요즘은 시간이 50 킬로로 막 달리니....그때가 되기까지 다투지 말고 건강한 모임이 되었음 좋겠는데....
2012-11-12 22:25:39 | 오혜미
사진을 보는듯 앨범을 펼쳐놓은것 같은....속속들이 기억이 나네요. 감사해요 자매님.^^
2012-11-12 18:32:43 | 이청원
교회가는 동안에도 비가 계속 강하게 약하게 세기가 다르게 내립니다.
형제님들 운동교제 할 수 있을까?
다음 주로 미뤄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전남 광주에 사시는 한 재석 형제님 가정과 이 희원자매와 중국 청도의 선교사님이 방문해 주셨어요.
박 장균 형제는 군에 입소한다는 소식이 있었고 남성 중창을 즐거운 마음으로 듣습니다.
이번 주에는 뉴욕에서 편지가 왔는데 태풍 샌디의 피해가 커서 주유하기위해 1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고,
일부 성서침례교회가 12월부터 kjv 성경으로 바꾼다는 즐거운 소식도 있습니다.
바른 성경을 보는 교회가 많이 늘어나기를 기도합니다.
한 재석 형제님의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에 대한, 구원 받고 난 이후의 성도의 성장에 대해 간결하고 힘 있는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국산 쇠고기로 만든 일품요리를 맛있게 먹은 후 최 현욱 형제님의 간증과 로마서 강해와
주일학교 교육이 동시에 이어졌습니다.
11층에서도 새신자 교육시간이 즐겁게 진행되었습니다.
날씨가 개어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어른들의 축구시합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행되었네요.
학생들이 모두 운동을 잘 하는 모습이 너무 늠름합니다.
최다 골도 학생 팀에서 나왔다지요.
아기들 가정과 주교사 가정들, 교제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모여 떡꼬치와 제육볶음으로
운동 후 교제로 꽃을 피웁니다.
오사모님과 여러 자매님들의 수고로 유아실과 아기 방이 점점 아름답게 꾸며져 갑니다.
가정같이 느껴지게 커튼도 늘 도맡아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옷걸이도 분위기 있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많이 애용해 주세요.
아이들이 신기한지 벌써 옷걸이에 겉옷을 걸어 놓고 활발하게 돌아다닙니다.
겨울 채비로 복도에 난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지 않도록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의 주의가 필요하지요.
이제 김장철이 다가와 자매님들이 분주하겠네요.
형제님들도 시간이 되시면 많이들 도와주세요.^^
모두 건강하게 다음 주에 뵙기를^^
2012-11-12 16:50:33 | 이수영
평신도라는 말은 영어로 layman. 헬라어 laikos->laos:백성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이 말이 구체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세기경 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용된 것이 발단이 되었고, 1950년경 카톨릭 신학자 핸드릭 그래머, 반 룰러, 이반 콩가르가 <평신도 신학>을 주창해 개념을 고착화 시켰다는 점입니다. 즉,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한 것은 성직자 직분을 구약의 제사장 직분으로 격상 시켜 고해성사를 통해 죄사함의 권세를 행하는데 타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성도를 평신도라는 말로 분리시킨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에서는 평신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안에 목회자와 성도를 구분 시키는 현상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교회안에서 사용되면 안되는 말입니다.
그럼 교회에서는 무엇이라는 칭호를 사용해야 할까요? <참고: 킹제임스 스터디 바이블 성경 사전>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곧 그가 내 형제요 내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니라.(막3:35 )
*성도(saint)라는 말은 성인, 거룩한 사람을 뜻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늘이나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혹은 친구를 뜻합니다.(신33:2)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성도, 성인이라고 부릅니다.
* 형제님
* 자매님
* 어르신
* 직분이 주어진 성도들에게는 직분을 붙여 000목사님, 000집사님
이 작은 말의 실천 하나가 바른 복음을 배우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바른 자세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써 보았습니다.
2012-11-09 16:52:27 | 장익성
속초에도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교회가 빨리 생겼으면 합니다.
형제님을 통해 씨가 뿌려지고 열매가 결실되어질 것을 기대해 봅니다.
많은 귀감이 됩니다.
2012-11-09 09:01:21 | 조양교
사랑니를 뺀 것을 빼고는 아직 이빨만큼은 건실한 편인데 최근에 어금니 통증이
심해져서 아침 저녁으로 약을 챙겨 먹고 있습니다. 이빨쪽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네요
2012-11-09 08:58:20 | 조양교
와~~~~ 정말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감격적인 글이네요.
오늘 형제님의 글을 읽어보았냐는 남편의 말에 아직 읽지 못했다 대답하고는 조용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정말로 저도 생각지 않았던 육신의 질병원인 과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병으로는 고생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새삼 알게 되었네요.
이번 글은 정말 무명의 작은 교회에서만 읽기에는 너무 아까운 내용의 글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슬퍼하시고 고통을 체휼하셨다는 기록은 있는데 웃으셨다는 기록은 없다하니 이것도 우리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별로 오래 산 것 같지도 않은데 60을 향해 가고 있고 노후에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 할 것인가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요즘입니다.
2012-11-08 22:56:05 | 오혜미
귀한글 감사합니다. 정말 공감이 되는 글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샬롬!
2012-11-08 14:25:32 | 송재근
너무나 감동이 되는 글 감사합니다.
육신의 고통 역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고 넘어가야 할 짐이요,
주님의 고통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는 요인인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더 그런 마음이 많이 드네요.
그것이 또한 성경의 가르침이고요.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2-11-08 12:05:41 | 관리자
형제님의 열정이 느껴지니 부끄러워집니다.
형제님 자주 소식 전해 주세요.
감사드립니다.
2012-11-08 11:20:06 | 이수영
남편도 요로결석으로 너무 고통당할 때
주님의 고통을 생각케 되더라는 말을 하더니만
형제님께서도 고통 중에 주님을 깊이 생각하셨네요.
생각하게 하는 글 감사드립니다.
또 기대할게요.
2012-11-08 11:17:59 | 이수영
예전에 치통으로 무척 고생한 날들이 있었습니다.
잇몸은 부어있고 이빨은 흔들렸으며 머리는 욱신거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동네 치과의원에서는 입안을 들여다보자마자 크게 놀라며
자기는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든지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3개월 정도 서울대 치과병원을 다니면서 잇몸수술을 한일이 있습니다.
좌우상하 네 번에 걸쳐 째고 긁어내고 봉합하기를 거듭하였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또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치 가 떨린다는 말과 함께
그래도 참으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교차하여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개월을 앓고 나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너무나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끙끙 앓는 동안 마음에 쌓였던 온갖 삶의 찌꺼기들을 모두 씻어 냈기 때문일까요?
침상에 누워 끙끙거리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병이란 무엇일까?
매일 같이 반복되는 도심 속의 일과들 가운데 묻혀 사는 동안
마음에 내려와 쌓인 돌가루와도 같은 무거운 온갖 감정의 부스러기들이 연한 마음의 살에 박혀
병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온갖 속상했던 일들, 채우지 못한 욕심들,
사랑과 미움의 사이를 오고가는 여러 가지 갈등들,
그 모든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상처를 입고 안으로만 멍이 들어 온 가슴들,
그것들이 끝내 어디서도 위로를 받지 못 하였을 때,
그리하여 그것들을 씻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아 두게 되었을 때,
드디어 그것들이 굳어져서 끝내는 아픔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몸이 아파 앓는다는 것은
어쩌면 몸과 마음에 쌓인 온갖 생활의 찌꺼기들을
아픔이라는 것으로 강제로 씻어내는 청소작업과 같은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픔이라고 하면 세상에 태어났던 사람들 중
가장 큰 아픔을 겪으신 분이 계심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그분의 이름을 부릅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나셨던 분이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셨기에 우리처럼 울기도 하시고
때로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여러 가지 번민들도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한 덩어리 빵을 얻지 못하여 주리기도 하셨으며
목이 말라 사마리아의 낯 선 여인에게 물 한 모금을 청해 마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아픔은 이와 같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겪는
그러한 일상적인 아픔과는 차원이 다른 아픔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아픔은 십자가를 지시는 아픔이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아픔 중에서도 대못이 손과 발에 박히는 아픔이라든지,
창에 옆구리를 찔리는 아픔이라든지,
그리고 머리에 얹은 가시관이 이마를 찔러 피를 짜내는 고통 같은 그런 아픔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진정한 아픔은 세상 만민의 죄를 그 한 몸에 지는
바로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지시는 아픔이었던 것입니다.
그 같은 아픔은 예수님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의 세대에서도 영원히 다시없을
한번 밖에 없는 천상천하에 오직 그분만이 당하였고 그분만이 그 고통을 아는
그분 혼자만의 아픔이었습니다.
저는 앓고 있는 동안 병석에서 읽던 성경을 다시 뒤적이며
그 고난의 예수님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책 속에서 지금도 거기 갈릴리 바닷가 어느 동네를 거니시면서
사람들과 말씀을 나누시기도 하시고 피곤하여 쉬시기도 하시며
혹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기도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렇게 큰소리로 외치시며 운명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입니까?
그 어디에서도 나와 같은 병을 앓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태복음에도, 마가복음에도, 누가복음에도,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이 혹 감기라도 걸려 며칠 앓고 일어나셨다는 기록은 없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났던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고통이라고 한다면
가장 큰 고통을 당하시고 그 외에 온갖 인생들의 일상적인 아픔까지 다 겪으신 그분이
오직 한 가지!
나와 같은 병을 앓으시며 그런 고통을 겪었다는 기록이 성경에는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나는 병석에서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아하! 정말로 그랬었던가?"
예수님은 나와 같은 병이 든 일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처럼 끙끙거리며 누워있었던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곤 뒤따라오는 것이 있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수님이 병을 앓으신 일이 없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나와 똑 같은 사람이기는 하셨지만 나와 같은 죄인은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아니신 분이 육신의 일로 마음에 병이 되고
그것이 마음의 살을 아프게 하는 병을 앓게 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놀라운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예수님은 33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그렇게 다른 사람의 무지와 죄악 때문에 아무도 겪지 못할 아픔을 겪었지만
그 아픔은 육신의 병으로 겪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그 영혼의 사랑으로 아파하며. 영혼의 사랑으로 고뇌하고,
영혼의 사랑으로 신음하시며 탄식하시다가
마침내는 그 모든 무지와 죄악의 짐들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육신의 생명마저 바쳐 죽어 주기까지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짧은 생애동안
미움 때문에 살이 아팠던 일이 없으셨습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육신의 뼈가 아픈 일도 없으셨습니다.
무슨 일이 그분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에 마음의 살을 찌른 일도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몸 된 교회도 육신의 일로 병이 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말씀이 병이 드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말씀에 심각한 중병이 든 성경으로 중무장하여 대도시마다 우뚝 솟아있는
저 어마어마한 현대교회들은 어느 누구의 교회인 것입니까?
실로 예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낯이 익은데
현대교회는 더욱 낯 선 모습들뿐이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아픈 것만큼 성숙한다고 하던데~~
하루속히 올바른 말씀으로 돌아와
주님의 참된 신부의 역할로 성숙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입니다.
2012년 11월 8일(목)
유 용수
2012-11-08 09:15:11 | 유용수
매주 새로운 분들이 오시는데도 예배실이 아직 여유가 있으니 다행이지요.
그런데 빠진 성도들이 누가 있는지는 티가 나질 않으니 이상현상인 것 같습니다.
자칫 종교의식처럼 주일성수로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했다 생각하지 않기 위하여 서로 고민하며 교회를 세워나가는 지체들이 있어
다양한 교제를 이루어 나가니 참 감사합니다.
2012-11-06 18:55:31 | 오혜미
형제님들의 축구,족구팀 인원이 30명 신청을 하셨다네요. 당일 되면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시겠죠. 저녁도 준비되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좋은 교제시간이 됐으면 좋겠네요.^^
2012-11-06 08:48:04 | 이청원
보고 감사합니다.
다음 주 오후는 형제님들 시간이에요.
좋은 교제가 이뤄지길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2-11-05 10:10:48 | 관리자
아침 일찍 교회 가는 길,
길거리 낙엽들이 차들과 경주하듯 함께 따라서 날아다니고,
한강나루 수영장의 물들이 다 빠져 여름의 영광이 사라진 채
깊은 가을 속에 있어 시간이 빠르게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50km/m?
식사당번들이 일찍 와서 준비하면서 함께 웃는 웃음소리가 명랑합니다.
명절 준비하는 한 가족 같은 따뜻한 분위기^^
이번 주에는 스페인에서 온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요.
싱가폴에서도 편지를 주셨다고.
이렇게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편지를 주시면 정 목사님께도 힘이 되고,
저희도 모두 함께 기쁜 마음이 됩니다.
기도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춘천의 김 태수 형제님과 두 아들이 훌쩍 커버린 모습으로 일 년 만에 오셨고,
뉴욕의 한 실 박사님과 둘째 아들이 , 목 영주 자매님과 두 딸이,
김 형윤 형제님의 지인 부부와 소개되지 않은 여러분들께서 방문해 주셨어요.
초등6학년 아이와 아버지-부자들의 찬양이 너무 보기 좋았어요.
오전 예배 때는 예례미야 10장 <거짓 신들과 참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보시면서
창조주보다 창조물을 섬기는 것이 곧 우상숭배임을 강조 하셨지요.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보다 귀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 있는가? 물어보셨지요.
모두가 말없이 조용한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언제나 맛있게 만든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조 연종 형제님의 간결한 간증시간이 있었고
로마서 강해 -칭의의 4요소: 은혜, 피, 믿음, 행위.-가 있었습니다.
들을수록 더욱 더 하나님께 감사가 됩니다.
유아방 아기들이 요즘 모두 낯가림을 시작해서 아기 엄마들이 힘이 듭니다.
들어가서 안아보는 즐거움이 아가들을 울리게 되네요 ㅠㅠ
찬양 연습을 하는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데 빗방울들이 후둑후둑 떨어지고
귀가하는 두 시간 내내 차 앞 유리창을 툭따르륵후두둑 계속 두드립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고
다음 주엔 형제님들 족구와 축구로 운동교제 시간이 있으니
운동복과 운동화를 준비해 오시겠지요?
벌써 다음 주가 기다려집니다.^^
2012-11-04 22:19:23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