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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모습이 곳곳에 나타나기를.....^^ 가끔 자모실도 돌봐주세요. 어린동생들이 왕언니들의 교제를 기다리고 있어요.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저는 나이 먹는것이 좋습니다. 다만 나이보다 철없는 행동을 할까 두렵지요. 우리교회 왕언니들 모습, 제가 나이들면 꼭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013-05-27 12:02:20 | 이청원
성도들이 자꾸 더해지니 모르는 얼굴들이 많아지지요? 먼저 30.40대 자매님들 찬양하는 모습 참 보기 좋았어요. 우리도 한번 뭉쳐 보자고 오늘 12층 주일학교 유년부 교실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1시 30분에 모여 찬양하기로 했지요. 사실 찬양을 해도 좋고 안해도 좋아요. 서로 모여 교제 나누고 싶은 것이 우선이에요. 새로 더해진 분을 소개도 하고 서로에 대해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한 모임이지요. 오늘은 첫날이라 깜박 잊기도 하고 연락이 미처 안 되어 모르는 분도 있었고 시간을 지키지 않아 소개도 번개치듯 하고 찬양도 1번 부르고 헤어졌지요. 2시에 주일학교가 시작되므로 10분전에는 교실을 떠나야만 하니 식사가 끝나는 대로 올라와서 서로 사정도 나누고 교제하면 각자가 기도로 도울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아요. 1시30분에는 찬양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모여주시면 좋겠어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에 적극 참여해 주세요. 혼자 조용히 예배드리고 돌아가던 분들도 함께 찬양하러 모이니 너무 좋았어요. 다음 주는 운동회가 있으니 그 다음 주부터는 식사 마치는 대로 모여주세요^^ 물론 식사당번 인 경우는 빠질 수 있어요. 다음에 참석하면 되거든요. 특송하는 날은 오전에 조금 일찍 와서 맞추면 되니까요. 두 달 (6월과 7월) 동안 우리  뭉쳐 봐요^^ 하나로!
2013-05-26 23:31:11 | 이수영
정말 요즘 어려운 가정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성장하는데 여러가지 문제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지요. 가정 회복 운동- 참 적절한 표현 같아요. 회복은 회개에서 부터 시작된다고 보는데요....
2013-05-26 23:28:15 | 이수영
# 고향의 말뚝 뽑기   지난여름 고향에 다녀온 고 씨가 밝은 얼굴로 나타났습니다. 여름이 되면 한 달 정도 휴업을 할 수밖에 없는 나의 업종이기에 휴가를 다녀 온 것입니다. 어딜 갔었느냐 하니 고향엘 다녀왔다며 환히 웃습니다. 고 씨의 고향은 중국 장춘이라는 곳입니다.   고 씨는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조선족 동포입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얼마 동안은 고향에 편지 연락도 안하고 열심히 돈만 벌더니 지금은 형편이 조금 나아졌는지 앞으로는 자주 왕래해야겠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싶어 오랜만에 조국을 방문하고 온 느낌이 어떠냐고 하였더니, "조국이라니요? 내가 언제 조국에 다녀왔나요?“ 라며 정색을 합니다. 그냥 내 고향 땅을 잠간 다녀왔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조선족이기에 자기의 조국은 대한민국이라는 것입니다.   허~어 우리나라의 위상이 참의로 많이 높아졌나봅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은 사뭇 다릅니다. 중국에 있는 조선족은 중국 국민이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민족의 형성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지나간 5월은 참으로 바쁜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근로자의 날이라 하여 첫날을 보내더니 5일은 어린이의 날이라고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더니 8일은 어버이의 날이라 카네이션바구니를 들고 아이들이 찾아왔습니다. 며칠 지난 11일에는 입양자의 날이었고 15일에는 스승의 날이었으며 20일은 성년의 날이었고 그 다음날, 21일이 부부의 날이었습니다. 이렇듯 5월 한 달은 참으로 바쁜 가정의 달 5월이었습니다.   5월을 가정의 달로 삼고 있지 않는 나라 사람들일지라도 노란 개나리꽃이 연한 녹색의 새 봄이 몸단장을 끝마친 5월에는 가정을 생각하고 고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한 달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한 달 동안, 가정과 고향을 생각하며 그리움의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구촌 1일 생활권 시대에도 잃어버린 고향과 갈 수없는 고향집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남북한 실향민 말고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5월의 화려한 햇살 아래서 되레 마음이 무거워 지고 있었습니다.   흔히들 미국을 가리켜 이민자의 나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의 뜻이 실은 거대한 실향민집단의 나라라는 뜻일 것입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없는 즉, 고향의 말뚝이 가슴에 박힌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하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은 왜 고향의 가슴에 말뚝을 박을까?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지구촌 어디에도 공산주의나 민주주의의 말뚝을 꽂은 일이 없습니다. 땅만 열심히 수고하고 땀 흘리며 살면 되는 완전한 자유의 기초를 놓아 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이야기 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 지도만 펴 놓고 보아도 사정은 매우 답답할 뿐입니다.   머리는 백두산에 치받혀 더 올라 누울 데가 없습니다. 다리는 부산 앞바다에 빠트릴 뻔~하다가 간신히 한라산 봉우리에 복숭아 뼈를 걸치고서야 겨우 옆으로 누울 수 있는 좁은 땅에서 그나마 허리가 동강나 남쪽 사람들은 남쪽 반 조각 땅에서 북쪽 사람들은 북쪽 반 조각 땅에서 마치 자궁 속에 웅크린 태아와도 같은 형국으로 살아오기를 반세기하고도 강산이 한 번은 변했을 기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도 모자라다는 듯 우리는 아직도 선거 때 마다 호남 땅 영남 땅 편 갈라 말뚝을 박아 놓고 싸움질들을 해 대고 있으니 세상에 둘도 없는 미련한 민족이요 이것이 우리들 현재의 자화상이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고향땅에만 말뚝을 박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세기 1백 년 동안 인류가 미친 듯이 달려들어 말뚝을 박은 짓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온 인류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가정”의 심장에 말뚝을 박아 온 일입니다.   가정은 우리가 흔히 고향이라고 말하는 것의 실체요 본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태어난 집이 있고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이 계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친척들이 있는 곳! 바로 그러한 가정이 있을 때 그 가정을 중심으로 이웃이 있고 동네사람들이 있고 어렸을 적 친구들이 있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고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없는 고향이란 상상 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인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이 인류의 고향의 본체인 가정의 가슴팍에 말뚝을 박아왔습니다. 물론 사탄의 계략에 의해서이지만 말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아내란 곧 가정이라 말을 합니다. 아내가 있으면 가정이 있고 아내가 없으면 가정이란 없습니다. 이브가 아직 창조되기 전 아담이 독신으로 있을 때는 아직 가정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브 곧 아내가 창조된 후에야 비로소 가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란 곧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0여 년 동안 온 지구촌이 갑자기 여성들을 가정에서 끌어내 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온 인류가 더 이상 고향(가정)의 가슴에 말뚝을 박지 말고 반대로 그 동안 무수히 박아 왔던 각종 말뚝들을 뽑아 버리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남녀는 이제라도 정신들을 똑바로 차려야겠습니다. 아무리 고상한 사상과 대의명분이라도 반목과 질시로 서로의 가슴에 말뚝을 박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남녀는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며 손을 잡는 인격적인 결합을 통해서만 견고히 박힌 각종 말뚝들을 뽑아 버릴 수 있습니다. 특별히 가정의 심장에 박힌 말뚝은 이제라도 남편과 아내가 화해하고 각기 제 자리로 돌아가야만 뽑아 버릴 수 있습니다. 아내들은 아내의 자리로 돌아가고 남편들은 남편들의 자리로 돌아가는 가칭 “가정회복운동”이라는 것이 일어났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것이 허망한 꿈도 소설도 아닌 우리의 현실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온 지구촌의 깨어졌던 가정들은 남편과 아내들이 돌아와 다시 얼싸안고 잃었던 사랑을 회복하게 된다면 사탄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게 되겠지요?   인류의 고향에 박힌 말뚝 뽑기!   또 다른 하나의 소망은 내일 아침에라도 남북한 7천만이 38선에 모여 흉물스럽게 박혀 있는 분단의 쇠말뚝부터 썩은 무 뽑아 버리듯 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2013년 5월 26일(일) 유 용수
2013-05-26 23:12:19 | 유용수
율법적회개다. 라는 식의 신학적 용어를 모르는 너무도 순진한 기독교인들이 그런 말에 속고 있음을 많이 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이 속고 있음을 알지도 못할 뿐더라 자신들 처럼 회개 하지 않는 사람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상당히 고상한(?) 인품을 보여주기도 해서..참으로 어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건전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성도가 되는 길이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것 같습니다.^^
2013-05-26 22:32:57 | 오광일
경민 자매님^^ 시기적절하게 좋은 글을 올려주셨네요. 박진 자매님의 자신을 돌아보는 성숙한 모습도 너무 예뻐요. 저도 습관이 저를 지배하는 것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교회의 식구가 많지 않을 때는 새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성도님들의 옷차림이라든가 교회의 정돈된 분위기를 얼른 알아차리곤 했었는데.. 먼저 바른 것을 알게 된 우리 각자 더욱 신경 쓰고 모범을 보이며 정죄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의 마음으로 조언해주고 이끌어주면 좋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3-05-25 11:43:42 | 김상희
명분이 그럴듯한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교회란 이름으로 회개란 이름으로 혼을 죽이는 일은 어쩌면 이 시대의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바른 것을 알고 분별하여 깨어서 속지 않아야 삼키려고 울부짖는 사자의 밥이 되지 않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3-05-25 11:26:26 | 김상희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아버지를 우리가 직접 뵐 수 없고 존재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용한 사탄의 전략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예의 범절이 없느 책이란 말이 딱 어울리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3-05-25 11:11:24 | 김상희
세상의 패션을 따라가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이 리드해야하는데 우리의 생각을 다시 바로잡아 정결하고 단정한 모습의 자매들이 될 수 있도록 서로 조언을 주는 사랑교회가 되기를 ... 시기적절한 단상이었습니다.
2013-05-22 18:46:04 | 오혜미
오늘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서 기다리는 중에 "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회개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시간상 건강상 습관상 책을 읽지 못하는 분들에게 제가 읽은 내용의 일부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가끔 저희 교회 홈피와 유튜브를 통한 말씀에 감명 받아 교회를 찾아온 분들 중에는 특히 설교에서 선포하는 죄와 회개 부분에 공감하고 찾아온 분들이 있었습니다.처음에 와서는 너무나 감동되고 감화되어 이전 교회에서 하던 봉사를 스스로 해야겠다고 예배당 청소를 자청하는 모습에 저희는 몸 둘 바를 몰랐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강조하는 부분은 회개였습니다.회개가 있는 믿음.정말로 너무나 안이하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에 젖기 쉬운 생활 속에서 그러한 생각은 나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왠지 그분들은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 말씀과 회개의 외침 때문인지 얼마 후 떠났습니다.그리고 가끔 믿음이 무언지 고민하는 분들과 전화 통화를 하다 보면 회개에 대해 혼란 때문에 믿음의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습니다.이에 대해 딱히 설명할 재주가 없었는데 오늘은 이 책을 읽으며 회개에 대한 부분이 있어 발췌해서 적습니다. 4장 율법적 회개인가, 복음적 회개인가? 중에서 믿는 자들을 다 싸잡아서 개독이라 부르는 시대를 살며 “왜 이렇게 되었나, 무엇이 잘못 되었나, 정말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인가?” 라며 반성의 부담을 느끼는 우리들에게 강력한 회개의 메신저로 다가온 자들은 신사도 운동의 선구자들이었다. 신사도 운동 교회들의 강한 회개의 외침은 이런 상황과 잘 맞아 마치 천상으로 호출되어 진노의 하나님을 대변하고 곧 세상에 보내어진 선지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교회만 다니면 구원받습니까?예수를 영접한다고 기도만 하면 다 구원받습니까?죄를 짓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까?회개하지 않고 어떻게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습니까?회개하세요. 회개하지 않으면 믿는 자도 지옥에 갑니다. 신사도 운동은 복음을 왜곡하면서 회개에 대한 강박 관념만 가지게 한다.사람들은 그들의 설교를 듣고 금세 회개 병에 동화된다.회개해야 해! 회개해야 해! 회개해야 해! 라며 쉽게 노래하는 사람들이 되면서 그런 이상한 회개의 열기를 전파하는 선지자들로 변해 버린다.그럴수록 십자가의 진리와는 점점 더 멀어지는 확실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신사도 운동가들이 전하는 회개는 복음적이지 않고 율법적이다.율법적으로 회개한다는 것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보내실 형벌을 예상하고서 그 형벌로 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회개하게 만드는 원인은 하나님의 진노이고 신자가 회개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진노 아래 떨어지지 않고 현재의 행복과 번영을 유지하려는 것이다(중략). 회개의 개념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겸비해져야 한다고 하니 사실 여간 혼란스럽지가 않다.그러나 그런 회개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회개가 아니다 그런 말을 듣고 아무리 회개를 많이 해도 마음에 평안이 오지 않고 영혼이 행복하지 않다(중략). 율법적인 회개에 세뇌당하면 계속 이러한 진노와 회개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영원한 구원으로 인한 성도의 행복과 기쁨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확실한 은혜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 성도에게 주신 자유 등 기독교 신앙의 중심 기둥들이 부러지고 만다. 그래서 사탄은 시의 적절하게 회개 사상을 퍼트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해야 할 회개는 복음적 회개이다. [구원 받은 이후] 복음적 회개의 원인은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이 아니고 이미 경험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이다.심판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하는 회개가 아니고 십자가를 통하여 그분께서 보내신 성령의 감동을 입어 변화된 마음으로 인한 자발적인 회개다.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 그 말씀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됨으로 회개하게 된다.그러므로 회개가 많아지고 깊을수록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회개하는 영혼은 더욱 행복해지고 자유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두려움이 없어진다,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성도의 복음적 회개다. 여기서 재미있는 예화 하나를 들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각 크고 작은 다양한 죄를 짓고 사는 죄인들이다. 그래서 누가 강하게 회개해야 한다고 외치면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이 찔려서 고개를 숙인다.아무 사람에게나 무작정 “당신의 죄가 드러났습니다!” 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은 두려워하게 되어 있다 오래전에 영국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유명 정치인 10여 명에게 아무런 보충 설명을 달지 않고 “다 들통 났습니다!” 라는 문장의 전보를 보냈다 그러자 전보를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대로 사라져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다양한 종류의 죄를 항상 짓고 산다.성도들에게도 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죽은 사람들에게만 죄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성도는 마음이 순수하고 여리다. 그래서 믿는 자들이 더 신사도 운동의 회개에 쉽게 속아서 휩쓸리는 것이다. 회개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없어진 자리에 뜻 없는 열심과 기도 회개 봉사 충성 순종 찬양 기적 입신 방언 등이 들어선다. 이상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중에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117558  
2013-05-22 18:37:02 | 오혜미
경민 자매님의 신앙일기겠지요? 전에도 습관과 그리스도인의 인격에 대한 정목사님이 올리신 글을 읽었어요. 생각과 현실이 모순되어 말하기가 다소 껄끄러워 자칫하면 소외될수 있는 주제를 솔직한 마음 그대로 올려 보는 이마다 공감하니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라 보아요. 교회를 세우는 진주같은 글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2013-05-21 18:00:15 | 이춘옥
많이 생각하게하는 글^^ 저도 짧은 치마 입던 습관에 부끄럽군요. 저부터 반성하게 됩니다. 언어도 마찬가지로 친하게 지내다 보면 쉽게 튀어나오는 언어들^^ 조심 또 조심해야겠습니다. 미술 수업때도, 태권도에서도, 유년부에서도 항상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저는 더 더욱 신경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경민 자매의 차분한 글귀가 더워지는 계절 앞에 머리를 시원하게 정리하게 해줘서 땡큐^^입니다.
2013-05-21 15:25:41 | 박진
 예전에 목사님께서 목사칼럼란에 쓰신 글 중에 '인품이란 일종의 습관이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평소에 사소한 말과 행동이 우리의 습관을 만들고 이것이 모여 그사람의 인품이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인품이 훌륭한 사람을 보면 존경을 표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고귀한 인품을 지니기가 그만큼 어렵고 힘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품은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물 이므로 하루 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삶이 바른 모양으로 변화를 받지 않으면 즉 성화의 삶을 이루어 가지 않는 다면 과연 그가 참 그리스도인인가 하는 문제는 많은 논쟁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가끔씩 저도 제 자신을 돌이켜 보며 좋지 않은 습관들을 고치려고 애를 씁니다. 또 자녀를 양육하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형제 자매님들 또한 저와 같은 노력을 많이 하시겠지요.   하지만 때로는 나 자신의 허물 보다 상대의 허물이 더 크게 눈에 띄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느냐?' 고 우리를 향하여 위선자라고 말씀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다가 인터넷에서 좋은 글귀가 있어 인용해봅니다.     1.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생활이 바뀐다. 2. 습관은 버릇을 만들고, 버릇은 성격을 만들고, 성격은 인생을 만든다. 3.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4. 습관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일이든지 하게 만든다. -도스토예프스키- 5. 처음에는 사람이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습관이 사람을 만듭니다. 6. 재미를 붙여야 새벽에 눈이 떠진다. 습관이 되면 삶에 힘이 붙는다. 7. 기도하기 전에 반드시 기도가 절실한 것인가 자신에게 물어봐라. 그렇지 않으면 기도하지 마라. 습관적인 기도는 참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탈무드- 8.  습관 -짧은동화 긴생각 中-   어떤 이가 작은 습관을 하나 만들었다. 그는 그것을 늘 끌고 다녔다. 그 습관이 자라서 큰 습관이 되었다. 지금 그는 그 큰 습관에 끌려 다닌다. 9. 행복은 습관이다. 그것을 몸에 지니라. -G. 허버트- 10. 기록하고 잊어라. 잊을 수 있는 기쁨을 만끽하면서 항상 머리를 창의적으로 쓰는 사람이 성공한다. 그 비결은 바로 메모 습관에 있다. -사카토 케지- 11.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습관의 열매가 열리고, 습관의 씨앗을 뿌리면 성격의 열매가 열리고, 성격의 씨앗을 뿌리면 운명의 열매가 열린다. -나폴레옹- 12. 살아 있다는 습관이 붙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싫어한다. 죽음은 모든 고민을 제거시켜 주는데도. -T. 브라운-   13. 노력을 중단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그것은 습관을 잃는다. 습관은 버리기는 쉽지만, 다시 들이기는 어렵다. -빅토르 마리 위고 -   14. 사십세가 지나면, 인간은 자신의 습관과 결혼해 버린다.   15. 습관은 나무 껍질에 새겨놓은 문자 같아서 그 나무가 자라남에 따라 확대된다.       -새뮤얼 스마일스 -   16. 습관은 제 2 의 천성으로 제 1 의 천성을 파괴한다. -파스칼-   17. 습관이 인간 생활의 위대한 안내자이다. -데이비드 흄-   18.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19. 제 버릇 개 줄까?   20. 조개껍질은 녹슬지 않는다.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미 아셨겠지요. 모두 습관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은 자신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이라 설교하시는 것을 잠깐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먼 이야기 같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맞는 말씀 같더군요.   누군가에게 지적하기에 앞서 나 자신의 모습을 먼저 살피고, 누군가에게 조언하기에 앞서 행동으로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요즘 제가 교회에 예배를 드리며 조금 불편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여러차례 목사님께서도 말씀하셨고 또 제임스낙스 목사님의 '그리스도인의 옷차림'이라는 소책자를 통해서도 홍보하였는데 최근 일부 자매님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치마길이가 너무 짧아 눈길이 자꾸 갈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원피스든 치마든 단정한 모양도 좋지만 보여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치마 길이가 짧으면 자매인 저도 자연 시선이 다리를 쳐다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뉴에이지 세미나에 저희 조카들까지 온 가족이 총 출동을 했는데 형님네 아이들, 딸 셋 모두 짧은 핫팬츠를 입고 왔습니다. 그 아이들도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아이들이고 나름 모범생이며 전도도 열심히 한다라고 부모나 주변에서 인정받는 아이들입니다. 바지가 그게 뭐냐고 나무래기 보다는 세미나를 통해 우리 교회 성도들의 바른 옷차림과, 요즘 K-POP 가수들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좀 듣고 깨닫기를 바랬기 때문에 억지로 라도 세미나를 듣게 했습니다. 끝나고 이야기도 했지만 과연 얼마나 깨달았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랑의 마음으로 이 아이들이 주님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저희 아이는 이 교회에 나온 이후로 가급적 예배 복장은 단정한 와이셔츠에 타이를 착용하게 하는데 처음엔 반발도 있었지만 이젠 당연히 여기며 조금씩 변화되고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습관입니다. 바른 습관이 바른 인품을 형성한다는 말에 공감한다는 이야기이며 옷차림이 또한 그 중 한 부분이라는 이야기 였습니다. 하긴 요즘은 하도 짧은 치마들이 유행인지라 긴 치마를 찾기가 더 어렵습니다.     이제 날이 더워지고 곧 노출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짧은 옷이 조금 더위를 식혀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교회 안에 불편한 시선과 마음을 일으켜선 안되겠지요. 옷차림과 아울러 평소 내 자신의 잘못된 언어습관과 행동은 무엇이었나도 함께 돌이켜 보며 주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룬 형제 자매에게 서로가 본이 되는 아름다운 사랑의 교회를 이루어가길 소망 해 봅니다.    
2013-05-21 13:46:47 | 김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