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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절기상으로 아침저녁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입니다. 그래서 인지 여름 내 열어두고 자던 창문을 굳게 닫고 자야 할 만큼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이제는 정말 가을로 들어선 듯 합니다.    어제 오늘은 친정아버지의 생신을 축하 해 드리려고 아이 둘을 데리고 바쁜 남편을 대신해 KTX에 몸을 싣고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개구장이 두 아들녀석도 저도 모처럼의 기차여행이 신이 나기는 마찬가지 인가 봅니다. 차창 밖의 시골 들녁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과 마음이 저절로 정화 되는 듯, 상쾌하기 이를데 없고 이것 저것 가차 안에서의 군것질도 꿀맛입니다. 기차에서 내릴 쯤 되고 보니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느리게 가는 무궁화호를 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기차역으로 손주들 마중을 나오신 친정아버지의 환한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제가 나고 자란 시골은 대둔산 자락에 자리잡은 논산평야입니다. 대둔산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이 인내천을 따라 탑정저수지에 머물러 일년 내내 농사에 풍성한 수량을 제공하는 비옥한 땅입니다. 얼마 전 <한국기행>이라는 프로에도 제 고향이 소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그 곳이 늘 제 마음의 모토입니다.  멀리 대둔산을 품고 유유히 흐르는 인내천의 풍경은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 빛이 그리워......' 정지용의 시 <향수>를 연상케 하는 그곳이 바로 제 고향인 것 같습니다.     유난히 물이 맑고 깨끗하기로 소문난 인내천의 푸른 물빛을 보고 있노라면 쪽빛깔이 연상됩니다. 파랗게도 보이고 초록빛깔 아니 옥빛으로도 보이는 푸른 빛깔, 그 속에는 오염되지 않은 수많은 생명체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여름방학에 아이들과 그 곳에서 신나게 고기도 잡고 뗏목도 타고, 물놀이하던 기억도 다시 떠오릅니다. 지난 여름의 추억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문득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단어가 생각나 사전을 찾아보니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더군요. 저도 쪽이라는 염료를 사용해 본 적이 있어 알지만 정말 풀에서 뽑아낸 염료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파랗습니다. 그냥 파란 물감과는 또다른 묘한 매력을 지닌 빛깔입니다.    사람도 이와같이 자기 자식이나 제자가 나보다 더 뛰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 똑같으리라 여겨집니다. 저도 아이 둘을 키우고 있지만 늘 저의 부족함 보다는 좋은 모습만을 닮기를 바라며 나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욕심이 있습니다. 또 비록 저는 목회자는 아니지만 만약 제가 목회자라면 우리 성도들이 그러기를 바랄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 해 보니 예전에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기억을 거슬러 봐도 그렇고 제 아이를 키워봐도 그렇고 될 녀석은 정말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습니다. 우선 학습이나 공과공부에 임하는 태도부터가 다릅니다.    정말 무언가 뛰어난 녀석들은 우선 눈빛부터가 다릅니다. 대부분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녀석들은 제 경험상 수업에 관심이 없거나 이미 전의를 상실한 녀석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반대로 수업태도가 좋고 학업성적이 우수한 녀석들은 눈빛이 반짝반짝 하겠지요. 저역시 만약 제가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수업을 들을 때에는 선생님의 말씀을 눈과 귀로 부지런히 따라가게 되고 손도  자연 열심히 메모를 하게 됩니다. 목사님의 설교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그 날 설교말씀이 은혜가 되고 관심이 집중이 될 때에는 말씀하신 내용 중 어느 책에서 인용하셨다거나 어디를 가 보셨다거나 하는 하나하나 까지 기억하거나 메모 해 두었다가 꼭 사서 보거나 가 보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심화과정은 관련된 다른 정보를 스스로 찾아보고 나름 정리 해 보는 것이겠지요.   조금은 우스운 이야기 이지만 청년시절에 한창 기도에 심취한 적이 있었는데 새벽기도회에 거의 날마다 참석해서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기도하거나 금요철야예배에 끝까지 남아 기도하다보면 어느 때에는 목사님 보다도 더 늦게 남아 예배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질 때의 묘한 쾌감을 느끼던 적이 있었습니다. 기도는 노동이고 기도 시간은 믿음과 비례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시절, 비록 방법은 잘 못되었지만 어찌되었거나 그런 열심과 열정이 가끔은 그립기도 합니다.   훌륭한 학생은 선생님이 제시하는 과제나 질문에 흥미를 가지고 즉각적이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사고의 폭과 교양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스승의 한계를 초월 할 수도 있겠지요.    요즘 고3 입시지도에 몸도 맘도 바빠진 남편에게 제가 "아니 이렇게 고생하고 바쁘게 일하는데 수당이라도 더 받고 일하는 거에요?"라고 물어보자 그런 말을 하더군요. "아니, 이건 스승으로서의 자부심이지. 제자가 잘 되는게 보람이자 상급이지." 그 말을 듣고 제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오늘도 두서없이 여러 말을 하긴 했지만 말씀을 믿고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자세가 늘 배움에 성실히 임하는 제자들로서 매 순간 열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삶의 연속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2013-09-08 01:08:59 | 김경민
전공했던 연극은 그만둔 지 한참 되었고 제 음성이나 모든 것은 그저 평범 이하쯤 될 뿐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열정이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믿는 대로 단순하게 행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말만 하는 부질없는 말쟁이가 아닌가?'라고 반성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여러모로 한참 선배님이신데 앞으로 교회생활에서도 좋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3-08-27 20:56:16 | 김대용
연극을 하신다던 목소리 크고 좋으신 김대용형제님께서 가슴을 적시는 길고 진솔한 덧글을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온 마음과 혼과 영을 다해서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는 깊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예수님 믿으세요? 교회 어디 출석하고 계세요? 오늘도 기회만 닿으면 말했습니다. 내일도 그럴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를 분명히 미쳤다고,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줄 저 자신 모를까요?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리가 없지요. 하지만, 저는 용기를 내서 입을 열어서 묻고 전합니다. 어쩌면 작은 손망치로는 잘 깨질 것 같지 않은 두꺼운 돌 무덤을 두드리는 것 처럼 두드리고 또 두드립니다. 방금전에도 사촌동생이 다녀갔습니다. 담대하게 강하게 전했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두번째 만남이라서 2탄을 역시나 용감하게 전했습니다. 이제 다시 만날 날이 어쩌면 없을 수도 있기에 잘 전하고 싶었습니다. 또, 예전 교회에 함께 출석했던 지인과 딸에게도 저는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패이스북 친구에게 오늘은 쪽지를 보냈습니다. 축도받는 시간에 예배당 나와서 눈총받으며 고생하지 말고 빨리 오라고 했습니다. 원래는 매달 만나기로 해서 자주 만났던 감자바우 8인방 친구들 모임이 요즘에는 1년에 2~3번만 만납니다. 늘 친구들이 기대하는 저의 복음 선포의 시간이 있습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과 세계사와 철학의 지식으로 무엇은 인정, 무엇은 너의 생각이고....자자자... 상대방의 종교에 대한 존중을 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듣기 싫은 소리를 잔뜩 듣다가 일어서서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 모습을 보면 눈물이 핑 돌기도 합니다. 마음 속으로 부디 죽기전에 꼭 예수님을 믿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별을 합니다. 저에게는 이렇게 미친 사람이고 싶고, 이상한 사람이고 싶은 이유가 나름 있습니다. 언젠가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모든 사람들도 부활하는 둘째 부활의 때에 저들이 저를 알아볼지도 모릅니다. 그때 왜 자신들에게 안 전해줬냐고 울면서 탄식하며 저에게 원망을 쏟아내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얼마나 난감할까요? 그래서 그들이 그때에 제가 그렇게 귀찮게 괴롭게 지독하게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사람인 줄을 기억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다른 소리 못하게요. 제 패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를 보면 사람들이 모두 미친 놈이라고 단박에 알아봅니다. 저는 예수님으로 미친 행복한 사람입니다. 링크를 걸어둔 설교 말씀처럼 부담감을 함께 감당하게 하시려고 사랑침례교회에 모이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형제님과 멋진 동역을 함께 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2013-08-27 18:29:11 | 최호준
“교회가 변하려면 슬픔의 골짜기를 지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구절이 어떤 문맥에서 나오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어서 목사가 결국 최후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결과로 생기는 슬픔이라면 이런 슬픔이 우리 교회에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우리의 연약함과 이기심 등으로 온 교회가 애통하고 자복하면서 겪어야 할 슬픔이라면 지금이라도 저부터 먼저 이 골짜기를 지나가고 싶습니다. 모세가 젊었을 때에는 자기 힘으로 백성을 인도하려 하였으나 그의 백성이 그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40년 광야에서의 세월이 지난 뒤 그가 슬픔의 골짜기를 지난 뒤에는 그 동일한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슬픔의 골짜기라면, 주님이 인도하신다면 어서 통과하고 싶습니다. 좋은 교회, 양보다 질이 좋은 모임을 이루고 싶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3-08-27 17:28:24 | 관리자
지난번 형제님의 간증을 들을 때 깊은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진솔한 고백이 제 마음을 촉촉이 적시었는데 오늘 만난 글로 인해 역시나 제 마음이 촉촉해집니다. 세상에는 '나만 잘 믿으면 되지 직장에서 유난떨 필요까지야 있나?'라며 원만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바라기는 치과 직원들이 거부감을 감수하고라도 지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유난스러운 원장님을 만난 것이 그 어떤 행운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기회임을 속히 깨닫게 되길 기대합니다.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축사에 담긴 허망한 본질을 간파하는 글을 접하며 어린 시절 읽었던 세계명작동화가 떠오릅니다. 항상 마지막에는 '그리하여 왕자와 공주는 오래오래, 아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마무리가 됩니다. 영원이라는 시간을 자신의 힘으로 가질 수 없음에도 그것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 여기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꼭 잔혹동화라는 기괴한 각색을 거치지 않아도 우리는 이 동화의 실제적 결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왕자와 공주는 결혼하고 왕과 왕비가 되어 세월이 흘러 왕은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그 후 다시 만날 수 없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사무치는 고독의 눈물을 삼키던 왕비도 몇 년 뒤 사망이 자신의 권능으로 호령할 때 제국이 부여한 모든 권력과 존귀함을 뒤로하고 덧없이 사망의 서늘한 품에 안기었다.' 구원받은 성도가 개별적으로 불신자를 만나 복음을 전하는 것을 흔히 가벼운 장도리로 돌(사람의 마음)을 깨는 행위라면 불신자를 집회로 인도하여 설교자가 대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중 속에서 직접 듣게 하는 것은 최소한 육중한 해머로 돌(사람의 마음)을 내려쳐 부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후자는 또한 동시에 다수의 혼에 강한 권능으로 임할 수 있다는 것에서 다른 경우와 구별됩니다. 어떤 사람은 예외적으로 후자보다 전자를 통해 더 큰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 후자에서 더욱 강력한 말씀의 권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전자를 통해 단단한 마음에 미세한 균열이 여러 차례 생긴 후에 후자를 통해 일거에 회심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도자는 이런 원리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사랑침례교회에서 설교 말씀을 녹음한 CD 보급에 힘쓰며 그를 통해 값진 열매를 거두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절대 개별적인 성도들의 전도가 무익하다는 것이 결코 아님을 헤아려 주십시오. 이는 언제나 절실하게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권능이 어떤 것이고 공적 예배나 집회를 통해 선포되는 대언의 말씀이 개별적인 복음 선포나 성경공부와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성도들이 잘 이해할 때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잃어버린 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을 지혜롭게 행할 수 있습니다. 수년에서 수십 년 복음을 전해도 꿈적도 안던 사람이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느 날 한 번 혹은 몇 번의 집회 참석을 통해 회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강단에서 설교자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사람의 혼이 고독하게 홀로 영적 광야에서 말씀과 대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 못할지라도 설교가 녹음된 CD를 자신의 골방에서 듣는 행위는 이와 유사와 영적 과정을 거치기에 사람을 변화시키는 권능이 발휘되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생을 걸고 말씀과 씨름하는 바른 설교자가 있어야 하고 그를 돕는 성도들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먼저 성령님께서 함께 해 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전부터 품고 있던 제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침례교회의 모든 일이 덕스럽게 안정화되고 귀한 도움의 손길들이 규모 있게 배치되어 지금보다 목사님의 부담이 많이 줄어든 어느 시점에 성도들이 가슴에 사무치게 품고 있던 구원받지 못한 가족, 친지, 친구들을 소래예배당으로 이끌어 몇 날 며칠이고 집중적으로 바른 구원에 대한 말씀 선포를 듣게 하고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어 바위 덩이 같던 그 마음들이 깨어지고 회심하는 감격스러운 일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평소에 품고 있는 저의 작은 바람일 뿐입니다. 전에는 떠오르는 생각을 싹둑 잘라 댓글을 간소화하려 애썼던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적어도 당분간 마음에 들어오는 감동대로 댓글을 더하려 합니다. 왜 이 사람은 이리 장문의 댓글만 올리나 느껴지시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라오며 다만 제 댓글이 본문을 올리신 성도님이나 다른 성도님들께 작은 유익이라도 끼칠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귀한 글을 접하게 해 주신 최호준 형제님께 감사합니다. . . . 목사님 가정의 평안은 당연히 모든 성도의 관심사이고 바람입니다. 저 또한 아직 정식 회원은 아니지만, 한쪽 구석에서 항상 목사님과 가족분들의 평안과 영과 혼과 몸의 강건함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3-08-27 13:10:08 | 김대용
감사합니다! 사람은 큰 바위 때문에 넘어지지 않는답니다. 아주 작은 돌뿌리에 걸려서 넘어진답니다. 잃어버린 탕자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그냥 살아서 돌아와 주기만 바라는데 자꾸 저도 뭔가 아버지께 드릴 것을 무엇이라도 준비해서 가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집에 가서 종으로 살겠다 가장 낮은 자로 살더라도 내가 아버지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늘 겸손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2013-08-27 11:38:21 | 최호준
형제님을 글을 통해서 많이 느끼고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어 참 감사합니다 글도 잘쓰시는 것도 부럽구요~ 모니터링을 해주시는 아내분까지 계시니 첨상첨화네요 오늘 일어나자마자 형제님의 글을 읽고 생각이 많아 졌습니다. ㅎㅎ 오늘도 제안에 계속되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면서 형제님도 힘내세요...
2013-08-27 11:31:21 | 주경선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나 교회게시판에 올려지는 모든 제 글을 모니터링 해주는 아내가 늘 글 좀 올리지 말라고 그렇게 말리는데도 제가 또 글을 올렸습니다. ㅋㅋ 글을 쓰고 나면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이 무척 큽니다. 제가 감히 성경말씀을 한줄 옮겨 적는 것이 너무 주제 넘는 것 같아서 힘듭니다. 그런데, 자꾸 글을 쓰게 됩니다. 문법도 문맥도 엉망이지만 이렇게 함께 한 영 안에서 글로 교제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합니다.
2013-08-27 10:59:33 | 최호준
저위의 제 댓글은 좀 쌩뚱하네요. 여러가지 시름에 매달려 정신을 딴대 팔다가 문득 건강을 주시고 복음과 진리를 알게 하신 하나님울 향한 초심을 잊어버렸던 제 자신을 다시금 제자리로 오기에 충분한 글을 읽고 감사하다는 말을 했어야했는데 제가 정신이 없었네요. 앞으로 ...앞으로...천성문만 바라보면서...
2013-08-27 09:35:45 | 오혜미
전하다가 종종 속으로 너는 돼지야~!라고 외치게 됩니다. 가까운 지인이라서 복음을 전해보려는 간절함이 이제 이정도 했으면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해외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면 더 훨씬 많은 열매를 맺었을텐데.라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 아들이 믿지 않는다면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건가라는 질문을 하게 될까요? 아마도 죽는 날 숨이 넘어가면서 유언으로라도 복음을 전하지 않을까요?
2013-08-27 09:27:09 | 최호준
하하 똑 같습니다. 예전 교회에서 한사람이 찾아와서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소문에 이단에 빠졌다고. 헐~~. 패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에 아는 목사님들과 지인들이 전혀 라이크나 댓글을 안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이단들이나 보는 성경이고, 요한계시록도 위험한 책이라서 절대 보시면 안됩니다. 저희 목사님도 위험해서 안보신다는데. 제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큰 강 건너편에 있고 저는 이곳으로 건너온 것 같습니다. 링크를 온통 도배하듯 올리고 보내주어도 보지 않습니다. 저희 교회를 수백키로를 달려서 오시는 분들은 귀에 이어폰을 샤워하면서도 꽂고서 사모하며 듣는 말씀을 열어보지도 않습니다. 편견과 아집과 고정관념의 옥에 스스로 갖혀버린 사람들.ㅠㅠ
2013-08-27 09:00:44 | 최호준
하나님말씀이 이렇게 살라니깐 사는건데 주변에서 더 거룩,희생적(?)이면 내가 한번 믿어보겠다 식의 눈총을 줄때면 '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할까요?' 그런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가족이면...그리고 그런 식구들을 구원시키기 위해 다 내려놓은 성도분들의 마음은 참 힘듭니다. 그래도 언젠가 구원받고 데리고 갈 수 있는, 아니 가고 싶은 교회가 있어서 하나님께 아무소리 못합니다. 영혼은 하나님께 맡겼고, 이 육신은 아이들 돌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망가지지 않은..지금 이순간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3-08-27 08:54:05 | 목영주
복음을 전하고 상대가 관심을 갖고 질문하고 드디어 복음을 받아 들일 때처럼 신나고 기쁠 때가 없습니다. 버스를 몇번을 갈아타고서도 가쁜히 기쁨으로 시간을,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러나 나날이 낙인?찍혀 기피대상이 되고 이단으로 의심받고....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건만 소극적이 되어버립니다.
2013-08-27 06:29:59 | 이수영
에고고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도 기억을 못하는 사람의 고민과 아픔이 얼마나 클까요. 당연한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여기는 기억에 대한 것도 엄청나게 감사할 제목이네요. 얼마전 소화불량으로 이 큰 덩치가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괴로워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 태어난 것을 후회했습니다. 살아 있기에 고통이 느껴져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숨을 쉴때마다 고통이 밀려 왔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감사했던 그 순간이 까맣게 잊혀졌었네요. 아~~~ 감사의 제목들을 적어두어야 할 것 같아요. ^^
2013-08-27 01:15:16 | 최호준
지난 토요일에는 어머니께 응급처치가 필요해서 온 종일 병원의 응급실과 투석실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환자와 가족들을 보며 그래도 나는 아직 여유가 있고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그리고 나의 고민은 저분들에겐 사치스런 이야기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응급실에 온 어떤 중년의 남성분은 어제의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고 ... 내가 무슨 직업을 가졌었는지 생각이 않난다는 말을 들으며 즐겁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제의 일을 기억한다는 것 자체를 감사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요. 그러고 나서 물로 씻은 듯 감사와 찬양으로 기쁨충만해야 하는데 벌써 병원에서의 교휸을 잊었네요. 절절히 복음과 전도에 대한 순전함과 생동감을 느끼게 한 글에 감동받았습니다...
2013-08-27 00:38:03 | 오혜미
진리안에 있는 바른 교회가 있을까 간절히 기도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사랑침례교회를 발견하고 그러면 그렇치 했던 것도 생각납니다. 말씀을 들으며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거의 날을 밝혀가며 말씀 들었던 때도 생각납니다. 풍요속에 무뎌지지 않으려고 또 기도합니다. 주님 만날때까지 초심을 잃지 않도록 늘 기도하겠습니다.
2013-08-26 23:57:38 | 김혜순
http://youtu.be/PVbtp234QjE   사랑침례교회의 부담  2009년 08월 30일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그러면 무엇이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치레로 하든지 진실로 하든지 모든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선포되시나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 참으로 기뻐하리라. (빌립보서 1:18)   종종 어린 아이들이 치과에 옵니다. 충치가 너무 깊어져서 염증으로 얼굴이 퉁퉁 부어서 옵니다. 밤새 온 식구를 한잠도 못자게 괴롭힌 아이는 무서운 치과를 겨우 엄마 손에 이끌려 옵니다. 첫째 아이는 돈이 안됩니다. 둘째 아이는 행동조절이 안되어서 달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예약하신 분들도 화를 내시게 됩니다. 셋째 아이는 울며 소리쳐서 병원이 시끄러워지고 소란스러워집니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요?   엄마는 치료 잘 받으면 무엇을 사주고 무엇을 해준다는 갖가지 보상을 내세웁니다. 심지어 아빠가 전화로 100만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아이도 봤습니다.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치료를 받도록 얼르고 달랩니다. 아무리 긴 시간을 보채며 울어도 열심으로 치료를 받게 하려고 애를 쓰십니다. 반면, 저나 직원들은 한참을 실갱이하면 지쳐갑니다. 입을 조개처럼 꼭 다물고서 사람을 몇 번을 오라고 했다가 가라고 했다를 반복하면 슬슬 화가 납니다. 스트레스가 점점 올라가서 치료 안받을꺼면 빨리 집에 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간신히 실랑이 끝에 치료가 끝나고 나면 “고생하셨어요!”라는 간단한 인사 말고는 별로 떡고물도 없습니다. 아마도 치료를 잘(?) 받은 아이들은 맛난 간식도 먹고, 어쩌면 약속받은 백만원의 현금보상도 받겠지요. 그래서 종종 낙심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아버지하나님의 마음이 어린 아이 환자를 스트레스 받으며 바라보는 제 마음과는 너무도 달라서 저 어린아이의 부모님 마음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매일 아침 직장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엔 성경교리문답 80번을 함께 나눴습니다. 두세달에 한번 정도는 진지하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지 질문을 해봅니다. 그날이 오늘이었습니다. 진지하게 복음을 받아 들였는지 질문을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사실 관심이 없고, 그렇다고 진화론을 믿는 것도 아니다.라는 직원도 있습니다. 원숭이가 사람과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진화론은 믿을 수 있을 것 같답니다. 죽음 뒤의 일은 죽고 나서 생각해 보겠답니다. 지금은 돈 벌면서 먹고 사는 일로 너무 바뻐서 그런 것 생각할 여유가 없답니다. 지난 몇달간 함께 성경공부하며 보냈던 시간이 수포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내일 또 아침에 시간이 되면 성경책을 펴놓고서 기다릴 직원들. 마지 못해서 그렇게 성경책을 펴놓고서 기다려주는 직원들과의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받아 들이겠지하며 또 한번 더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 이 정도 했는데도 안 받아들이면 이제 그만 전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성남에서 치과를 하시는 지인이 토요일에 심근경색이 왔습니다.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심장전문의가 도착할때까지 4시간여를 환자위에 걸치고 앉아서 심장을 힘차게 눌러주면서 땀을 뻘뻘 흘려준 인턴이 없었다면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살아도 뇌사일꺼라고 모든 동료의사들의 믿음을 깨트리고 멀쩡하게 살아났습니다. 지금은 열심히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얼마전 생신을 맞으셔서 외식하시며 식당에서 밝게 웃으시며 찍은 사진이 카스에 올라왔고 댓글이 달렸습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저는 이 댓글을 보면서 내심 화가 났습니다. 생각이 있는건가? 정말 이제 살면 몇 년이나 사실 수 있다고 “오래오래 사세요!“ 이런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건지. 정말 생각이 있는건지 화가 났습니다. 이제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어요. 이제 돌아가시기 전에 늙으신 부모님께 몇 번이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지력이 총명하셔도 듣고 깨닫지 못하시던 부모님이 이제 귀와 눈이 어두워지시고, 지력이 쇄하여 지실텐데.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는데.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으시며 명심보감의 글귀로 방어하시는 아버지.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늘 마음에 몇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애를 씁니다. 아내에게 허락도 안받고 조카를 불러다가 6개월동안 집에 불러들여서 기숙과외를 핑계로 복음을 전해보려고 했지만 실패를 했습니다.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갔습니다. 아픔으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사랑하는 남편에게, 아들에게, 아내에게, 부모님께, 친구에게, 동료에게 복음을 전해보려는 간절함으로 병원의 응급실을 찾은 심정으로 제발 내 남편, 내 아내, 내 아들, 내 부모님, 내 친구, 내 동료에게 구원의 복음을 제발 좀 전해 주세요.하는 간절함으로 이끌고 오신 분도 계시고, 스스로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하고 찾아 오신분들도 계시겠지요. 응급실 당직의사들과 스텝들이 누가 왔는지 관심도 없고, 왜 자꾸 오늘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는거야? 정말 힘들어 죽겠구만. 아 피곤해. 여기요~! 제발이요~! 누구 없어요~?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연기가 자욱한 대구지하철 참사때 한사람이라도 더 구해보려고 연기속으로 뛰어 들어갔던 소방관이 자신이 그 연기속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한치앞도 안보이는 연기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심정을 느껴보려하지만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도데체 무슨 생각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구해보겠다고 자욱한 연기 속으로 뛰어 들어갔을까요? 이제 그만 하게. 연기가 너무 자욱하고 산소통에 산소도 얼마 남지 않았네. 할만큼 하지 않았는가? 그만 하게. 자네가 위험해 질 수 있네. 이런 만류를 들으면서도 연기속으로 왜 걸어 들어가야 했을까요? 왜?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지난 겨울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서 4월21일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을 들었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렇게 보배로운 교회를 찾게 하시려고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을 연단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보배로운 교회에 최근 작은 소용돌이가 생긴 것을 느낍니다. 목사님께서 “여기서 풀리지 않은 일들은 반드시 하늘에서 풀리리라는 소망을 굳게 가지고서...”라고 하신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빌립보서 1장 27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에 대한 일들 곧 내가 가서 너희를 보든지 떠나 있든지 너희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복음에 속한 믿음을 위하여 한마음으로 함께 싸우며   추운 겨울날 프랜카드를 노상에서 나란히 들고 서서 그렇게 복음을 바른 성경과 바른 교회와 바른 복음을 전해 보시겠다고 마음을 함께 하셨던 분들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 겨울 그렇게 뜨거웠던 열정과 사랑이 더욱 하나님의 위로와 만지심으로 새롭게 더욱 더 뜨거워지셔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물밀듯 교회를 찾아와도 힘들어 하지 마시고, 그 사랑 끝까지 인내로 지키셔서 하나님 앞에서 풍성한 의의 열매를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자랑하시길 소망합니다.   누가복음 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어버렸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니라.
2013-08-26 23:37:11 | 최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