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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낙담과 상처를 약으로 쓰기보다는 그저 흉터가 되어 상처로 묻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려는 경향이 있는것 같아요. 상처를 약으로 쓸 때 성숙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게 된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 온유함이라 했던가요~ 좋은 글 감사해요^^
2013-11-23 13:16:45 | 김상희
와~! 참으로 진귀한 글이네요. 구구절절이 액기스 같은 말이여서 감탄이 절로 나와요. '그리스도인의 온전하고 거룩한 인격은 성경의 말씀을...' - 이 단락을 외워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글을 한자 한자 노트에 적어 두고 거울처럼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경민 잠매님 귀한 글 올려주셔서 고마워요.
2013-11-23 12:40:52 | 이춘옥
다음은 워렌 위어스비&데이빗 위어스비가 쓴 <건강한 사역자입니까?>의 본문 내용 중 인격에 관한 좋은 정의가 있어 함께 나누고자 올린 글입니다. 저 역시 한없이 부족하고 가벼운 인격의 소유자 이기에 마음에 깊이 세겨 좀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려 합니다.    인격은 삶의  원자재이다. 우리는 그것으로 성실하게 집을 짓거나 그것을 하찮게 여겨 결국 쓰레기 더미를 쌓거나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인격이란 나무와 같으며, 명성이란 나무의 그림자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링컨은 "그림자는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는 바이며, 나무는 실제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명성은 사람들이 우리가 그런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격은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이 우리가 그런 줄로 알고 있는 것이다. 복음 전도자 무디(D. L. Moody)는 인격이란 "사람이 어둠 속에 처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가의 귀재인 모건은(J. P. Morgan)은 인격을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우리에게 보여 줄 수 것"이라고 정의했다.    인격은 예수님이 팔복의 가르침에서 묘사하신 것이자 자신의 삶과 복음 전도 사역에서 친히 보여주신 것이다. 인격은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성령의 열매'로 칭한 아름다운 자질들과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에서 언급된 직무를 맡기에 적합한 자들로 이루어진다. 인격을 갖춘 사람들은 정직하다.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된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정직은 내적으로 완전함을 뜻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우롱하거나 스스로를 속이려 하지 않는다.    인격은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아니오"라고 말하고 정직과 순결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간 것이다. 인격은 모세가 유대인들의 대변자로서 온갖 위험과 문제들을 감당해내기 위해 애굽의 왕자로서의 특권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도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백성들을 40년 동안 희생적으로 섬긴 것이다. 또한 인격은 예레미야가 일생동안 자기 백성을 위해 성실하게 하나님께 간청한 것이자, 바로 눈 앞에서 나라가 망한 것을 지켜본 것이다. 인격은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행 23:1). 그리고 그가 이러한 말을 한 까닭에 다른 사람에게 뺨을 얻어맞은 것이다. 인격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웜스 회의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나는 여기 서 있습니다.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아멘." 인격은 휴 라티머(Hugh Lattimer)가 리콜라스 리들리(Nicholas Ridley)와 함께 화형을 당하기 전에 그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리들리 경, 안심하고 남자답게 행동하십시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영국에서 촛불처럼 빛을 발할 것입니다. 나는 그 누구도 이 불을 끄지 못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인격은 짐 엘리엇(Jim Elliot)이 자신의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인격을 갖춘 사람은 자신이 간직할 수 없는 것을 남에게 주거나, 남에게 내줄 수 없는 것을 탐내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인격은 공적 사역에 있어서의 놀라운 일들을 통해서뿐 아니라 일상의 은밀한 일들에서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예를들면 이런 경우다. 거짓말을 하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때에 진실을 얘기하는 것, 누군가가 맡아야 할 책임을 대신 지는 것, 당신이 아무렇게나 대해도 개의치 않을 사람들을 돕기 위해 불필요한 희생을 감수하는 것, 인격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며 행동하든 개의치 않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그분만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하면서 말이다.     인격을 연마하는 것은 온갖 삶의 경험을 체득하는 힘든 과정이다. 에머슨(Emerson)은 자신의 에세이 <자기 신뢰(Self-Reliance)>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인격의 효능은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다. 이전에 지닌 모든 미덕은 인격 가운데서 녹아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크리스천에게 있어, 온전하고 거룩한 인격은 성경의 말씀을 우리의 내적 자아의 일부분으로 삼으며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형성된다. 그리고 경건하게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하기를 힘쓰고, 기쁘게 희생하며 기꺼이 다른 사람을 섬길 때 형성된다. 인격은 우리가 고난당하는 중에 강화된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때 강화된다. 이에 관해 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가는 길을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인격은 연단과 헌신, 용기와 의지, 바울이 경험하고 고린도후서 6장 3-10절과 11장 23절-12장 10절에 기록한 수많은 일들로 인해 형성된다.    <중략>    그러나 인격은 좀처럼 홀로 형성되지 않는다. 우리가 건전하고 균형잡힌 인격을 지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삶에 안겨주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중에 입을 수 있는 낙담과 상처를 경험해야 한다. 우리가 그러한 체험을 달가워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교회 일이든 집안 일이든 간에 우리가 위임받아 맡은 책임은 우리의 인격형성에 도움이 된다. 즉 우리가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좇고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인격을 연마하게 되는 것이다.                                                     . . .      당신은 생각의 씨앗을 뿌리고 행동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당신은 행동의 씨앗을 뿌리고 인격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당신은 인격의 씨앗을 뿌리고 운명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2013-11-23 01:31:35 | 김경민
안녕하세요?   이번에 미국에서 시력 회복을 위해 수술을 받으신 자매님께 제가 아이들을 위해 다음 책들을 아마존에서 사서 보게 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qt&write_id=445   아이패드나 갤럭시 노트 등에서 컬러로 보면 참 좋을 것입니다.   천주교, 이슬람, 창조와 진화, 구원, 복음, 킹제임스 성경, 뉴에이지 등의 다양한 자료들이 총 23권의 만화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가 간단하므로 (중학교 3학년 수준) 누구라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지난 6,000의 인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을 향한 마귀의 모든 도전이 이 책들 안에 가득 들어 있습니다. 영어 공부를 위해서 어른들도 보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재미있습니다.   25년 전 미국에서 처음 접했던 것들인데 전 세계적으로 성경 신자들의 사랑을 받는 만화들입니다.   어제 저희 아이들 네 명에게도 사서 아이패드에 넣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http://www.amazon.com/s/ref=ntt_athr_dp_sr_1?_encoding=UTF8&field-author=Jack%20Chick&search-alias=digital-text&sort=relevancerank     그 자매님이 보내 주신 글을 보시면 미국도 얼마나 사는 게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것아 소개합니다.   ----------  목사님! 좋은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참조하겠습니다.   아빠의 생일 선물을 읽어 보았습니다. 사랑스러운 에스더 양의 카드도...올리신 사진들도...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한마디로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가족이 무엇인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잠시나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아이들에게 사무엘기, 열왕기, 역대기를 읽으라고 하려고 합니다.그런데 아이들은 요즘 학교 숙제로 매우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한국 못지않게 아이들로 하여금 학업스트레스를 못 견디게 하고 있습니다.과목마다 많은 분량의 과제물들이 있으니 한국처럼 학원에 가지 않더라도 방과 후 숙제로 인해 거의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이고 심지어는 새벽 3시에 취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며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뭔가 잘못되어 가는 느낌을 받습니다.불필요한 것임에도 아이들의 시간을 소비하게 하고 마치 거대한 프로그램 속으로 아이들을 가두어 넣고 다른 생각을 못 하게 옭아매는 듯합니다. 늘 살피고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 킹제임스 성경이 애들 곁에 있어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최 자매 올림
2013-11-22 08:20:07 | 관리자
에공..잘못된 정보 하나가 있었네요.ㅜㅜ 56번 질문에 모세율법이 만들어진 시기는 bc3500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약3500년 이란 뜻입니다. 벌써부터 치열한 선의의 경쟁에 열기가 느껴지네요^^
2013-11-21 22:24:05 | 오광일
욥기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 성도가 울면 하나님도 우신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교회가 더욱 깊고 충만한 은혜가 넘치게 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봅니다. 할렐루야~!
2013-11-21 16:35:38 | 최호준
좋은 묵상의 글 한편을 읽었습니다. 바쁘거나 게으른 삶속에서도 사랑홈피에 들어오면 내실을 기할 수 있도록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든지 특히 교회의 주멤버에게 필요한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2013-11-21 16:30:29 | 오혜미
아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겸손은 복음 안에 나의 전인이 잠겨있는 상태로 나의 의와 모든 공로와 존재 가치와 간절한 소망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되고 확인받기로 작정하고 소망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참으로 명철한 성경 주석같은 말이네요. 형제님의 깊은 묵상에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2013-11-21 15:29:04 | 이춘옥
나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니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불리기에 합당치 못하되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9~10).   예수님의 승천 이후 첫 번째 오순절 날에 시작된 예수님의 교회를 이끌었던 사도들 중 바울의 중한 존재감을 의심하는 크리스천은 아마 없을 겁니다. 죽음까지 무릅쓴 세 차례의 선교 여행과 로마서에서 히브리서에 이르기까지 14편의 서신서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으로 기록했고 그 안에 기독교의 원리와 본질을 설명하고 사실상 신약교회의 교리를 확고하게 세운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그는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일들을 탁월하게 수행했으며 영광스럽게 쓰임 받았다는 평가가 절대로 어색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10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을 고린도교회 형제들에게 알려주며 마치 태어날 때를 놓쳐 늦게 출산한 아기처럼 다른 이들보다 뒤처지고 한없이 부족한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찬란한 빛이 비쳤음을 담담하게 증언합니다. 그러면서 참혹했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성장하며 철저한 바리새파의 제자였던 그의 잘못된 신념은 한때 자신을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복음 사역을 훼방하는 사탄의 창끝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기적이라고 말하기도 부족한 대반전을 통해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일의 선두에 서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이런 겸손한 고백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과연 바울이 본을 보인 성도의 참된 겸손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먼저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자기 자신을 잘 살피고 파악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을 다시 깊이 들여다보도록 하지요. 한편으로 그는 다른 사도들과 복음 사역의 일꾼들보다 더욱 많이 수고했다고 자평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헌신이 얼마나 고되고 험난한 것이었고 평범한 사람들이 행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는가를 주저 없이 얘기하는 솔직함도 보여준 사도였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냐? (내가 어리석은 자처럼 말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더욱 넘치도록 하고 매도 지나치게 맞고 감옥에도 더 자주 갇히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내가 유대인들로부터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하여 한 밤과 한 낮을 깊음 속에 있었으며 자주 여행하면서 물들의 위험과 강도들의 위험과 내 동포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고 또 지치고 아프고 여러 번 밤을 새우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비록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거짓 사도들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를 보내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라고는 하나 이렇듯 바울은 자신이 했던 수고와 복음 사역에서의 공로를 정확히 알고 세세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사도들 가운데서 자신이 차지하는 비중과 위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가장 으뜸가는 사도들보다 내가 조금도 뒤지지 않는 줄로 생각하노라(고후11:5).   바울의 이 말은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며 거짓 사도들을 경계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라 하더라도 언뜻 보면 “나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니라(고전15:9).”라는 고백과 배치되는 듯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연약함을 지닌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본디 자신의 수고와 공로와 헌신을 외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내세우고 자신의 역할이 공동체 속에서 잊히지 않고 기억되길 바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런 본성을 무시하고 무조건 겸손하자고 하는 것은 자칫 공허한 외침과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기 쉽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 앞과 성도들 앞에서 겸손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을 무조건 절제하기 전에 먼저 그 본성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어떤 측면에서 이런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도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미덕인 겸손이 온전한 열매로 튼실하게 열리는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좇아가자는 주장이 절대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인간 내면의 구조와 본질을 정확히 아시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자기 내면의 연약함을 깊이 통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시는도다(시103:14). 저는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때로 역행하고 초월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하는 신자들도 먼저 자신의 내면의 구조와 본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나서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며 특별히 겸손한 자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겉으로는 겸손해 보이나 실제로는 결정적 상황에서 자신을 내세우고 존재와 공로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크리스천들을 쉽게 목격합니다. 이것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살피지 못하고 더불어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자신이 확인되는 과정은 생략된 채로 겸손의 미덕만을 소유하고자 하는 태도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인간의 연약한 본성과 욕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인(全人)을 던져 복음에 잠기며 복음 안에서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기를만을 간절히 바랬던 바울의 저 위대한 소망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빌3:8~9).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철저하게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이 위대한 진리를 뼛속 깊이 각인시키고 한시도 잊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의와 존재감을 세우고 싶은 이 타락한 본성을 거슬러 겸손의 자리를 항상 지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바울처럼 전인(全人)이 복음에 잠기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또한, 오직 나의 공로는 없고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에게서 난 의만을 소유한 채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발견되기로 철저하게 작정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많은 헌신과 수고를 거듭한 믿음의 사람이 그 어떤 공치사나 답례를 받지 않고도 묵묵히 겸손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렇게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먼저 복음 안에서만 자신이 발견되도록 끊임없이 추구해야만 합니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압도하는 거룩하고 고상한 만족,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음의 거룩한 충만함이 자신을 사로잡을 때 저절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된 겸손을 추구하는 신자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복음 안에서 이루어졌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 모든 일이 가능했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고 이 진리를 잊지 않기로 굳게 결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헌신된 하나님의 일꾼은 세상과 사람들의 그 어떤 인정함과 박수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을 기쁨과 감격으로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찬란한 역사를 이루고 기업을 일구며 더욱이 영적 세계에 놀라운 공적을 세웠다고 해도 바울의 위대한 고백처럼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내가 되었고 이 모든 것이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15:9~10)”라고 고백할 수밖에는 없는 존재들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본질은 먼지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시103:14) 구원받은 충성스러운 일꾼이요, 거룩한 영적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둔 장수라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해야 하는 아버지의 품 안에 안긴 아이일 뿐입니다. 광야에서 네가 보았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듯이 주 네 하나님께서 너희가 걸은 모든 길에서 너를 안으사 너희가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나(신1:31)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한 신실한 일꾼도 때로 믿음의 공동체나 사역의 동역자로부터 인정받고 자신의 공로를 공적으로 평가받고 싶어 합니다. 또한, 주님의 교회 안에서도 서로의 위치와 역할을 확인받고 싶은 욕구가 존재하는 것은 솔직히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때로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했다고 느낄 때 성도의 내면에는 이런 욕구들이 더욱 솟구쳐 올라옴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이것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런 현상의 해결책은 외부로부터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내면의 왜곡을 치유하는 첫걸음은 나 자신을 가식 없이 솔직히 내어 놓고 복음의 밝은 빛과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잠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적으로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라도 내면의 충만함이 없이 무조건 자신의 희생과 공적을 망각하거나 덮어 놓기만을 요구당하면 심한 영적 상실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겸손은 우리의 모든 자랑을 무조건 망각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세상이 말하는 피상적이며 단편적인 미덕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겸손은 복음 안에 나의 전인이 잠겨있는 상태로 나의 의와 모든 공로와 존재 가치와 간절한 소망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되고 확인받기로 작정하고 소망하는 자에게 주어지는(빌3:9)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높고 높으며 영원에 거주하고 이름이 거룩함인 이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겸손한 영을 지닌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것은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들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57:15). 오 사람아, 그분께서 무엇이 선한 것인지 네게 보이셨나니 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의롭게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6:8) 우리가 자신을 약함과 인간의 욕구마저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그것까지 내어 보이며 통회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연약하고 상한 마음을 받아주시고 위로하시며 소생시켜 그리스도인의 참된 겸손을 간직할 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동안의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첫눈이 내리고 겨울이 우리 앞에 살포시 다가왔습니다. 겨울나무가 살며시 잎사귀를 내려놓아 낙엽이 되듯이 내면의 굴절되고 왜곡된 욕구와 나 자신의 의지로만 영적 전쟁을 치르려는 그것마저 내려놓길 원합니다. 주님의 품에 안긴 아이처럼 채워지지 않은 욕구와 상한 감정과 잡다한 상처까지 품고 있는 부족한 사람도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그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에 우리 모두가 사로잡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글은 누군가를 교훈하기 위한 목적의 글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을 하며 제 자신의 결점을 돌아보고 통찰하는 가운데 쌓인 묵상을 나누는 차원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3-11-21 13:23:58 | 김대용
그렇지 않은 분은 드문드문 있지만 같은 마음가지고 계신분이 훠~ㄹ씬 많은것에 감사드립니다. 마음들이 더 단단하게 뭉치고 다져졌으리라 생각하고 환하게 웃으며 목회하실 수 있는날이 더 많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013-11-21 10:53:25 | 김혜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