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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글솜씨가 아니시네요. 짐승....우리 집에 두마리나 있는데 사람과 짐승이 어우러져 사는 것이 평화스러운 거 같아요 . 이글을 읽으며 배반하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2014-01-04 21:53:37 | 오혜미
새해를 맞이하여 진솔한 인생여정을 말씀해 주셨네요. 교회안에 가식과 허황된 자랑이 난무 하지 않고 진정한 대화와 인간적인 사귐이 있는 것은 우리 사랑교회의 소박함을 더해준다고 봅니다. 그 누군가 우리교회 문턱이 높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아름다운 가족을 이룬 형제님가정을 보면 어렵던 시절이 있었는가 싶도록 참 따뜻하고 정감있어보입니다.
2014-01-04 20:41:36 | 오혜미
그 동안 늑대는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고 괴롭히는 악랄한 동물로 생각했었는데 형제님의 글로 늑대는 멋지고 용감하고 정직한 동물이라 생각되네요~^^ 늑대의 행태와 습성을 사실적인 접근을 통해 바라본대로 우리도 정직하고 겸손하게 순리적으로 탐욕을 부리지 않고 예수님의 속죄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해봅니다. 흥미진진한 늑대이야기 후속편을 기대하겠습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형제님~^^
2014-01-04 20:28:33 | 이우상
최근 킹제임스에 대해서 가까운 몇몇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원만 받으면 나머지는 킹제임스가 됐건, 개역개정이 되었건 상관없다고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성장하건말건 구원만 받으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자매님의 글을 읽으면서 구원받은 자들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도 죄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해봅니다.
2014-01-04 20:09:03 | 김상진
제목이 눈에 확 띄기도 할 뿐 아니라, 직장 생활 13년차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은 경력이지만, 조양교 형제님 글에 상당한 공감을 했습니다. 제 경우는 다행히 상사나 동료 등의 사람 때문에 이직을 한 적은 없지만, 저도 벌써 네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음을 셈해보게 되었습니다. 심약한 탓인지 (주 하나님께서는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주시므로) 큰 어려움 없이 직장 생활을 해 왔고, 이직에 관련한 스트레스도 거의 없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겉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내면으로 어려움과 갈등과 고민이 많이 생겨나고, 세상 흐름에 끌려갈 때마다 참담하고 비참한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 하나님의 자녀로 보여야 하는데, 그렇기는 커녕 스스로 부끄러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주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성화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조양교형제님과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뵐 때마다 진중함과 우직함이 느껴졌는데 다양한 경험까지 있으신지,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주일에 뵙겠습니다 샬롬.
2014-01-04 20:05:30 | 김지훈
  어느 날 인간관계에서 회의감을 느끼면서, 문득 ‘인간이나 동물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인간에게서 지능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과연, 동물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측면에서 동물이 인간보다 더 나은 점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나름 비교해보니, 첫째, 동물은 그들의 본능을 꾸밈없이 자신들의 삶속에 투영시키면서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최소한 인간보다 ‘정직’합니다. 둘째, 인간은 지능을 탐욕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동물은 자신이 가진 탁월한 능력을 생존을 위한 유일한 도구로 여길 뿐 자랑삼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인간보다 ‘겸손’합니다. 셋째, 인간의 본성은 교만하고 이기적이어서 화려하게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지만, 동물은 자연의 법칙을 거슬리지 않고 소박하게 자신들의 삶에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인간보다 ‘순리적인 존재’입니다. 넷째, 인간은 탐욕에 눈이 멀어 합리적이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우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동물은 생존을 위한 기초욕구 이외에는 욕심이 없어 인간보다 균형감이 있다는 측면에서 ‘중용(中庸)의 미학’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더 많은 동물들에 대해 관심으로 가지고  다큐나 자료들을 즐겨 보는 가운데, 인간과 가장 흡사하게 사회구조를 이루며 살아가는 동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물은 다름 아닌 ‘늑대’라는 맹수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늑대라는 동물은 친숙한 동물이 아닙니다. 매우 사납고, 잔인하며, 음흉한 맹수로 각인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때로 음흉하고 기회주의적인 사람을 가르켜 늑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오해는 동화나 영화, 음악 속에서도 그대로 묘사되어져 있으며, 심지어는 성경에서도 사납거나 약탈하는 사람을 늑대(이리)로 비유하기도 합니다(합1:8, 렘5:6, 마7:15. 요10:12, 욥 30:29).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늑대의 습성에서 기인된 비유일 뿐이지 늑대 자체가 부정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비유는 늑대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칭찬인 셈입니다.   늑대를 11년간 직접 추적하며 연구한 생물학자 ‘팔리 모왓’은 자신의 저서「울지않는 늑대」라는 책의 서문을 통하여 늑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 했습니다.  「오히려 늑대는 먹이가 되는 생물종(種)의 장기적인 안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인류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며, 가축에게 입히는 손해는 아주 적은 정도이며, 대개의 경우 인간의 거주지나 농업 시설 가까이에는 살려고 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문제의 ‘진실’이다. 우리는 특대의 유죄를 선고할 때 사실이 아니라 우리의 의도적인 잘못된 인식에 근거를 두면서, 포악하며 무자비한 킬러라는 신화화된 이미지는 사실상 우리가 던진 우리 스스로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우리 자신의 죄 때문에 희생 늑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팔리 모앗의 글이 사실일까? 하며 실제로 늑대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니, 늑대는 실제로 ‘잔인한 킬러’ 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인 동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안전한 동물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 여러 문헌들과 자료들을 통해서 알게 된 늑대의 특징을 살펴보니, 늑대는 한 배우자와 평생을 함께 하는 몇 안 되는 동물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암컷과 새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죽을 때까지 싸우는 유일한 포유류입니다. 거기다 언제나 자신의 새끼에게 먹이를 양보하며, 독립하고 나면 자신들의 영역에 접근하는 새끼를 적으로 간주하는 다른 맹수들과는 달리, 새끼들은 종종 부모늑대에게 찾아와 인사를 합니다. 게다가 늑대는 매우 조직적으로 사냥을 하고, 용맹하며, 절대로 비굴하게 물러서는 법이 없습니다. 또한 동물 중에서 가장 탁월한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효율적인 소통능력으로 조직을 보존하며, 자신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즉시해가면서 앞날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동물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늑대’라는 맹수는 매우 매력적이고 호기심을 갖게 할 만큼 충분한 동물입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말이지요.   최근 이와 같은 늑대에 대한 오해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늑대와 관련된 서적들이 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와는 달리 조금 엉뚱한 것 같지만, 인간의 본성과 배치되는 늑대의 습성을 가지고 신앙과 접목을 시켜 보면 나름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전술한 바와 같이 동물이 인간보다 분명이 나은 면도 있다는 전제 하에서 늑대는 인간과 가장 유사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무런 죄가 없는 늑대는 인간이 만든 오해와 편견이라는 올가미로 인해서 무참히 학살을 당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는 아직도 잔인한 킬러로 묘사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진실의 왜곡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통해 우리 기독교 역사에 위로와 교훈을 리뷰해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셋째, 늑대의 습성들 가운데서 인간이 감히 흉내 내지 못할 그들만의 특유의 행태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매우 규칙적이고 철저해서 우리 신앙과 비교해보면 그들에게서 얻어 낼만한 몇몇의 반성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판단되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늑대(동물)를 통해서 신앙에 접목시켜보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동물을 재물로 삼은 것은 동물이 인간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죄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이 그랬듯이..,) 하나님께서는 어떤 동물보다 인간을 가장 사랑하시지만 인간은 동물처럼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인 이른바, ‘죄 덩어리’라는 부분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동물보다 낫다고 단언하는 교만과 만용을 결코 즐비해서는 안 됩니다. 그 동안 인간을 대신해서 죽은 동물에게서 우리가 배워야할 신앙적인 교훈은 어쩌면 이것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독교는 속죄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고 도덕과 윤리라는 잣대를 절대 선(善)인 것처럼 들먹이며 자신들의 의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만 병이라는 죄의 열매임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동물과 비교만 해봐도 인간은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는 단지 그 대상이 늑대라는 맹수가 가장 적절하다고 발견했을 뿐입니다.   비록 하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생물학자도 아닌 반쪽짜리 지식의 사람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늑대라는 동물의 특성만을 가지고 감히 신앙에 접근해보겠다는 것이 다소 억지적이고, 모순적인 한계가 드러날 수도 있지만 나름의 생각의 깊이를 정리하고 나누어 보고자 이렇게 용기를 내어 <신앙에 대한 늑대와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몇 차례에 걸쳐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글을 올려보고자 합니다. 물론, 사실에 기초해서 말입니다. 다소 글이 부족하더라도 늑대라는 동물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해본다는 사실에 흥미로 여겨주시고 기대 없이 읽어봐 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왜, 늑대인가?’에 대한 글을 줄이고자 합니다.
2014-01-04 19:33:30 | 김상진
직업을 여러번 바꿨지만 충실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오셨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삶에 대한 열심이 있기에 안주하며 머무르려 하지 않죠. 중간에 '지금 20년 가까이~~다른 모습이었겠죠' 라는 부분이 깊은 공감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좀 더 좋은 삶을 위해 여지껏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고 수년 간 익혀온 익숙함을 떠나죠, 그리곤 이것이다 싶으면 아닌 것 같고 떠나온 그 곳이 더 좋았는데...라고 후회하는 삶을 반복하게 되죠. 그러다가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어딜가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이 곳이 가장 내가 꿈꾸던 곳에 가까운 곳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견딜 수 있게 되죠. 그렇게 비바람을 견디다 보면 기쁜 웃음을 보게 되고요. 그런데...여러 곳을 거치는 중에 진짜 참 좋은 곳을 발견했는데 내가 혹여 젊은 혈기로 한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나와 버렸다면...그리고 여러 상황으로 다시 돌아 갈 수 없다면...얼마나 후회스러울까요. 사회에서는 그렇다하지만, 주님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또 얼마나 눈물 흘려야 할까요. 작은 아들을 항상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또 얼마나 간절할까요...
2014-01-04 12:19:13 | 박순호
趙 형제님의 지나온 이야기들이, 지난 한해를 보내면서 저의 삶속에서도 뒤돌아 볼때에, 많은 것들을 생각게 하는군요. 항상 인간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서 만족을 가져보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겠지요, 2014년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며 천국시민으로서 묵묵히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최상기, 김형욱 형제님의 대글에 백프로 동감하면서, 조형제님 좋은 글 감사하고, 금년에도 형제님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2014-01-04 09:07:35 | 오영수
아멘.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결정이 비록 잘못된 결정이었더라도 그 잘못된 결정마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와 은혜에 저도 조형제님과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쓰신 글을 찬찬히 읽으면서 제목을 "교회 옮기기"로 바꿔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완벽한 직장이 없듯이 완벽한 교회도 없을것입니다. 더욱이 자기 마음에 쏘오옥 드는 교회는 당연히 이 세상엔 없을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 세상에서 (당연히 완벽한 교회는 아니지만) 저와 저희가족을 사랑침례교회에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2014-01-02 18:30:42 | 김형욱
85년 처자식이 있는 가운데 군대를 제대했습니다. 1년이 채 지나기전에 직장을 옮겨 다녔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였습니다. 때론 상사가 마음에 들지않고, 때로는 일하는 업무가 마음에 들지않고, 때로는 회사가 발전성이 없어서... 한번, 두번 옮겨 다니다 보니 생활도 안정이 되지않고 직장 옮기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버렸습니다. 월급쟁이로 3군데 정도 옮겨다닌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손위 동서가 전자부품 공장을 창업하려는데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흔쾌히 받아들이고 일을 시작했는데 불과 1년만에 교통사고로 고인이 되버렸습니다. 마음잡고 한곳에 집중하려 했는데 환경이 도와주질 않는 겁니다. 법인체다 보니 돌아가신 분 명의로 또 1년간 공장을 돌립니다. 역부족이죠, 대기업의 협력업체로 등록이 되어 있다보니 다행히 인수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나마 공장 사정을 알고 있는 터이므로 함께 일하자는 제의로 약 1년간  일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아버님이 운영하시던 우유 대리점 힘이 들어 못하겠다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 남의 밑에 일하느니 자영업을 한번 해보자는 의지가 생겨났습니다. 인수한 회사 사장의 권유를 일거에 날려 버리고 우유 대리점을 시작했고,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일이라 처음으로 하는 사업이므로 열심히 했습니다. 한 1년여 지나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슈퍼마켓의 횡포가 눈에 거슬린 겁니다. 갑의 횡포죠, 우유대리점을 넘기고 슈퍼를 인수하기로 결정합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가락시장에 가서 야채와 과일을 사오고 밤 11시가 되어야 일이 끝납니다. 하루종일 잠바를 입고 꼴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던 어느날 전에 같이 근무했던 후배가 찾아옵니다. 자동차 대리점을 해보라는 겁니다. 슈퍼는 재고관리도 힘들고 꼴도 아니고 이제 제대로된 사업장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1년여 운영했던 슈퍼를 처남에게 넘겨 버리고 자동차 대리점을 개설합니다. 야심차게 출발했던 대리점이 1년만에 침체국면에 들어서게 됩니다. 만회책으로 정비코너를 병행해서 운영하기로 결정합니다. 싸게 나온 노래방이 있다고 해서 노래방도 인수하는 등 갑자기 분주해지고 뿡 뜨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제대후 불과 10년 사이 10개 가까운 업종을 걷어 치우고 새로운 일을 벌려 나간 겁니다. 일을 벌리는 것은 돈과 의지만 있으면 되지만 정리하는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과 돈이 소비가 됩니다. 이것 저것 분주했지만 사실 빛 좋은 개살구인거죠, 사업하는 사람이 가장 바쁠 때는 부도직전의 시간입니다. 정신차리고 이것 저것 주판알을 퉁겨보니 총체적인 부실 국면입니다. 당시 나의 상황과 IMF 직전의 상황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과욕이 화를 부른 겁니다. 한가지만 제대로 할 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포기해야 했습니다. 사업장, 재건축에 들어간 아파트, 하나 하나 정리해 나가도 끝이 보이질 않네요, 미정리 상태에서 지금 다니는 회사로 피신하다시피 들어갑니다. 지금 20년 가까이 근무를 하면서 입사 초기에는 몇번이고 그만 둘 위기에 처합니다. 그럴때 마다 그동안 갈아 엎었던 기억들을 다시금 생각하고 또다시 뼈아픈 일을 겪지 말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견디어 냈습니다. 성급히 결단했다면 아마도 지금은 다른 모습이었겠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광야길 동안 여러가지 환경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저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저의 잘못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환경을 통해서도 시험하시고, 나쁜 환경을 통해서도 시험을 하시고 나의 내적 탐욕을 가지고도 시험을 하십니다. 또한 인간관계라는 사람 막대기를 통해서도 시험을 하십니다. 힘든 상사를 주심으로, 난폭한 동료를 주심으로, 힘든 거래처를 주심으로 시험을 하십니다. 이런 여러 경우에 있어서 알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포기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번의 직장, 사업을 옮기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옮기는 것 자체가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사업에 대한 매력은 뭔가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환상입니다. 지금 보다는 낫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결과 영업환경과 어려움은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는 결론입니다. 오죽하면 옮기겠느냐 하지만 옮기는 것이 결코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공한 사람은 다른 곳에서 성공합니다. 아니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여기에서 실패한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실패합니다. 아니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함께 한 사람은 다른 곳에서 함께 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여기에서 힘든 환경을 극복한 사람은 다른 곳에서 힘든 환경을 극복할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여기에서 인간 막대기에 견뎌낸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견뎌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길은 좁은 길이지만 일반적인 인생사에 있어서는, 사람으로서 받을 수 있는 공통의 시험에 있어서는 낮은 확률에 몸을 내맡길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가 경험한, 모두가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높은 확률의 길을 추천합니다. 이 내용은 저의 경험을 근거로 한것이고 일반화라 수 없는 부분도 있음을 밝힙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의로 단련되기를 원하시고, 징계로 단련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네 눈에 지혜롭게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직장을 옮겨 다녔던 지난 세월이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내 명철과 내 지혜에 더 의지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저의 행로를 인도해 주셨슴에 감사를 드립니다.      
2014-01-02 17:47:44 | 조양교
에궁^^ 형제님 그건 책을 쓴 저자의 체험이에요~ 설교와 설교자에서 목사님 말씀 하셨듯 읽고나서 공감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다시 구성한거지요~아시겠지만 주제가 성경이지요. 먼저도 책이름과 저자 촐판사 소개했는데.... 이번으로 종결합니다. 제가 감동 받았기에 같이 나누고자 했던것이지요.
2013-12-30 19:38:41 | 이수영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한 권위를 인정하게 될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좀 더 절실하고 매우 진지하며 실제적이고 세상의 모든 불합리한 가치관과 사고를 좀 더 온전히 배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잘 읽어나지 않는 이유가 자매님의 글에서처럼 결국 말씀의 완전한 권위를 생생하게 믿고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불발된 폭탄을 장식품 정도로 알고 폭탄 돌리기는 하는 자매님의 모습을 상상하니 저 자신이 섬뜩해집니다. 그 일촉즉발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주일마다 인자한 미소의 자매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매번 깊은 깨우침을 선사하는 귀한 글에 감사합니다.
2013-12-30 16:52:26 | 김대용
  정말로 성경이 전능자의 숨결이 들어간 그분의 말씀이라면 당신은 경외하는 마음, 주의 깊은 마음, 겸손한 마음,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살아 있는 말씀을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서 당신 안에 넣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이사 왔을 때 지하실에서 폭탄을 하나 발견하고는 서로에게 던져가면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것을 전주인의 수집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우리는 그 폭탄을 살펴보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 그것은 폭발하지 않은 폭탄임이 드러났습니다. 그 후 우리 집은 비상경계에 들어갔고 폭탄 처리반이 도착해 특별도구들을 가져와서 조심스레 제거했습니다. 그 폭탄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경찰로부터 처음 들었을 때 우리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최초에 주신 성경의 모든 말씀에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갔습니다. 이 때문에 성경은 지극히 역동적이며 강력합니다. 완전한 권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신앙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그러한 태도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전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며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는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먼저 그러한 절대적인 사랑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간 그분의 말씀이 그들의 영혼과 마음에 심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상호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또한 그분은 구주가 되시고 성령님으로 내안에서 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심을 계시하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마음에 자극을 받을 것이며 믿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기꺼이 성경에서 읽은 바를 순종하려 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이고 새로운 성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의 권위는 지극히 중요합니다. 사실상 주님을 따르는 이들의 성장에 있어서 이 문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것은 신앙심이 깊어 보이는 것과 실제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삶에, 모든 인종, 모든 세대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은 성취되어 왔고, 성취되고 있고, 성취될 것입니다. 당신은 진정 주 예수님을 따르는 자인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무성의 할 수 없고 무성의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숨결이 불어 넣어져 있기에 지극히 중요하며, 참으로 보배로우며, 말할 수 없이 역동적인 책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생애와 가정과 미래를 세워줄 것입니다.   겸손하고 유순하고 순종적인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애를 훈련하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면 베드로처럼 (마26:58) 당신은 주님을 멀찍이 따라가는 자입니다. 그 결과는 패배와 넘어짐입니다.
2013-12-29 19:18:01 | 이수영
항상 이렇게 매우 좋은 글을 잘 정돈해서 올려 주시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글을 읽으며 우리의 사랑하는 사랑침례교회는 어떤 독특하고 은혜로운 색채를 띠고 있으며 또,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며 변화해 갈지 기대를 하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소수의 무리가 주님의 일을 펼치는 바른 지역교회가 얼마나 소중하며 그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지금이 얼마나 '위대한 시대'인지 절감하지 못하는 부실한 믿음에 제 자신이 한심할 때가 많습니다. 부족한 자를 일깨워 주시는 귀한 글에 항상 감사합니다.
2013-12-24 20:02:12 | 김대용
최 상기형제님이 확실하게 정리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형제님이 지지해 주시니 큰 힘이 되고 감사드립니다. 원제는 so Why do I need the Bible? 로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 " 이라는 제목으로 전도출판사 책입니다. 전 읽고 나름대로 간추려서 올리는 가운데 우리와 안 맞는 것은 고쳐서 올리는 것이니 원래 책을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2013-12-24 12:32:03 | 이수영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의 정신이 우리 교회에 가득한가?" 회개는 전인적인 급격한 변화이자 마음과 행동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며 회개의 합당한 열매로 이끄는 강렬한 비탄을 포함하는 것이다. -히 10:24 서로를 살펴보아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며 -유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랑하라는 성경의 명령은 우리 편에서의 순종과 실제적인 행동을 요구한다. 불순종은 사랑을 더욱 갉아먹는다." 현존하는 교회과제를 냉엄하게 제기하시고 총론적인 결론을 도출해주신 깊은 관심과 애정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에 적극 동의합니다. 목사님께서 새해 교회 운영원리상 유기체와 조직체의 보완적 단계로 전환되는 과도시점에 이르렀음을 제시 하시고 합력을 당부하셨습니다. 따라서 자매님의 메시지는 -사랑침례교회라는 작지않는 배가 선장과 선원이라는 두 바퀴의 기능이 조화되어 거센 대양의 풍파를 극복하고 주님을 향한 항해를 잘 하려면 우리 각 지체들 스스로 참 회개와 참 사랑이 실제 생활화된 참 섬김 교제의 필요성을 강조하신 것으로 이해코자합니다- 좋은 글로써 꾸준히 경성하여주시면 고맙겠습니다...샬롬
2013-12-24 12:16:49 | 최상기
늘 바쁘게 움직이시는 자매님을 볼때 활력이 넘치는것을 느낌니다.그힘은 어디서 올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사랑으로 섬김의 기쁨을 아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같이 기쁨으로 식당에서 섬기는 자매님들은 아마 찾기 힘들것같아요 주일마다 따뜻한 점심식사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12-24 10:30:22 | 윤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