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맘대로 살고자 하는 악한 생각에서 탄생한 학문입니다.
성경의 변개와 같이 마귀의 거짓 놀음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지요.
2014-01-30 18:09:30 | 허광무
안녕하세요~강평원 형제입니다.
참 시간 빠르죠?
얼마전에 2014년도가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한달이 지나고 내일이 설날입니다.
새해 계획하신 일들은 잘 되는지
새해 소망했던 일들은 어렵지 않게 잘 풀리는지 궁금합니다.
저로보면..
새해 계획들은 조금씩 헝클어지고,
새해 바램들도 꼭 좋은 일만 있지는 않네요.
가끔 마음이 어지러워질 때면,
좋은 말씀 한 구절을 가지고 묵상을 하며 산책을 하곤 합니다.
얼마전 산길을 걷고 있었는데..
앞에서 먹이를 찾던 까치 두마리가 "푸드덕!"소리와 함께 날아갔습니다.
그 날아 오르는 모습을 보았는데..
창세기에 "종류대로"란 말씀이 퍼뜩 생각이 났습니다.
흑과백 두 색깔로 이루어진 날개를 펼치며 날아가는 까치의 모습은
그야말로 날개 깃털 하나까지 비슷했으니까요.
집에 돌아와..
까치에 대하여 이리저리 찾다보니 유사품들이 몇가지 있네요.
(까치 기러기) (까치 돌고래)
위 사진을 보며..
비슷비슷한 종류들을 보며 진화의 흔적이라 말하진 않겠죠?
얼마전 진화론의 관점에서 mbc스페셜 '1억년 뿔 공룡의 비밀'에서
뿔 공룡 진화 비결이란 내용을 보면 우리 입장에선 참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이 다큐를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창조를 불신할까요?
까치 단체사진입니다.
단체로 맞춰입은 유니폼(?)을 보니 역시 같은 종류라는 느낌이 들죠?
만약 불신자들이 진화론을 주장한다면..
단순한 흑과백 두 색깔로 이루어진 까치들을 보면서도
비슷한 모양이나 변화되는 색깔을 가진 중간과정의 새들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답해줘야 할 거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오류의 주장을 명확히 하고자,
만물을 창조하시며 식물, 동물 각각의 "종류대로(kind)"란 단어를
창세기 1장에 말씀으로 여러번 강조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연 만물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을 무엇이라 부르든지 그것이 그것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창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날짐승과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내일은 민족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오늘은 아담이 이름을 지어준 까치의 설날이고요.ㅎ~
설날을 맞아 혹시 쓸쓸한 마음으로 보내시는 형제자매님들이 없는지..
그리스도 예수님안에서 소망과 기쁨으로 위로하시고,
사랑과 진리와 은혜와 평안이 넘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4-01-30 17:24:55 | 강평원
'눈은 몸의 등불'이라는 말씀은 참으로 깊이 되새길수록 오묘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차분하고 깊이 있게 말씀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나눠 주시고 몸소 만년 청춘의
열정을 보여 주시니 후배들이 바르게 따라갈 길을 열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 우리 모든 성도가 하나 되어 기쁘게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가길
간절히 소망하며 항상 좋은 글로 일조해주시는 형제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4-01-24 15:46:03 | 김대용
저는 개인적으로 지나간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구원은 디지털 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 하시니 저도 감성적인 부분은 아날로그적 사고로 살아도 구원에 있어서 만큼은 확실하고 명쾌하게 디지털적으로 생각하고 전하겠습니다.
형제님의 귀한 글 항상 감사하게 읽고있습니다.
2014-01-24 15:05:26 | 이정희
사람은 신체의 감각기관중 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마음의 눈을 띄워주셔서 성경말씀을 믿고 세상에서 결코 누릴수 없는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사는것을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다는 마음이 듭니다.
가장 값진 것을 볼수 있는 눈을 주신 주님께 마음의 눈을 고정시키고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겨야 겠다는 마음이 들어집니다.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 글 항상 감사합니다.
2014-01-24 14:52:25 | 이정희
우리의 생각, 경험, 주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우리의 눈을 단일하게 맞추어 나가는 과정이 믿음의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응시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걸음마를 떼어 나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2014-01-24 09:40:01 | 조양교
눈의 중요성에 대하여......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냥이라는 말이 있고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百聞以不如一見) 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더 확실한 대언에 말씀에 의지하여 단일한 눈, 단일한 마음으로 단일한 성경을 늘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골 3:22, 킹흠정) 『종들아, 육체에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모든 일에서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
2014-01-24 09:36:01 | 허광무
잘 지내시죠?
홈페이지에 글로 함께 하시니 멀리 계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네요,
편안한 여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샬롬
2014-01-24 09:20:15 | 조양교
형제님의 글과 덧글을 통해서 말씀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좋은 내용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14-01-24 09:04:43 | 김상진
본이 되는 글로서 교훈을 줍니다.
더 든든한 복음 교제를 시도하는 데 힘을 받고 싶습니다.
2014-01-24 02:46:33 | 최상기
조양교 형제님 안녕하세요
글로써 만나니 또한 반갑습니다.
영어로 찾아보니 단일 = single 이네요.
이 뜻은..
1. 단 하나의, 하나뿐인(one only), 유일한(sole),
2. 혼자만의, 1인용의 등등이 있습니다.
이 말씀과 관련하여 누가복음 11장,
33 누구든지 등잔불을 켜서 은밀한 곳이나 통 밑에 두지 아니하고 등잔대 위에 두나니
이것은 들어가는 자들이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 몸의 등불은 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단일하면
네 온 몸도 빛으로 가득하되 네 눈이 악하면 네 몸도 어둠으로 가득하니라.
35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둡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위 말씀의 구절이 문맥상 더 이해하기 좋은거 같습니다.
성경전체에서 single을 검색해 보면..
마 6:22, 눅 11:34, 행 2:46, 엡 6:5, 골 3:22 총 5번 사용되었네요.
앞의 두 구절은 single eye 로..
뒤의 세 구절은 singleness of heart 로 사용되어 있습니다.
마음 = 눈 = 빛 :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순종하는
단일한 눈과 마음이 외부의 빛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지 저는 생각이 되어집니다.
사실 이제까지 이 말씀을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형제님이 쓰신 좋은 글을 보며
저 또한 사람들의 빛을 쫓지나 않는지,
하나님께 눈으로나 마음으로나
단일하게 하고 있는지 반성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4-01-24 00:39:15 | 강평원
또다시 우리 50대 청년의 사유와 저작활동에 깊이 찬사를 보냅니다.
말씀을 자세히 읽어야 하며 말씀의 완전성을 마음에 새기도록 일깨우는 사명이 우리 교회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읽게 해 주시니 다시한번 정확한 말씀의 달콤함을 느낍니다.
자꾸 읽어놔야 안목의 정욕을 조절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1-23 18:31:43 | 오혜미
"{주}께서 듣는 귀와 보는 눈 그 둘을 다 만드셨느니라." (잠20:12)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을 최첨단 동영상 카메라로 만드셨습니다. 눈의 정교함을 연구한 논문만 해도 그 분량이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보는 눈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는 눈은 하나님의 목적하신대로 사용할 때 그 진가가 발휘됩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공통의 특징중 하나는 눈이 두개라는 것인데요, 두개의 눈은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고 촛점을 맞출 수 있게 해줍니다. 이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눈은 0.1미리 이하의 작은 크기나 비물질적인 것들은 보지 못하도록 적당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는 보이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고 부정확하므로 보는 것을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됩니다. 어쨋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눈을 통해 수많은 정보들이 쉴새없이 뇌에 전달됩니다. 이토록 신비한 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6:22,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22 몸의 등불은 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단일하면 네 온 몸이 빛으로 가득하되 23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이 어둠으로 가득하리라.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되면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느냐!" (흠정역)
몸의 등불은 눈입니다. 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몸이 빛으로 가득하게 할 수 도 있고, 또 어둠으로 가득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결론은 눈을 악하게 하지말고 단일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단일과 악"을 대비하고 있는데요, 왜 "선과 악"으로 대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개역성경은 "눈이 성하면(좋으면), 눈이 나쁘면"으로 대비를 했습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개역) 이 글을 문자대로 이해하면 시력이 좋으면 온 몸이 밝고, 시력이 나쁘거나 안경을 쓰면 온 몸이 어둡다는 뜻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영해를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죠,
그러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일단 문맥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위 20절에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재물에 대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고, 그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구제, 기도, 금식을 할 때 사람앞에 보이려 하지 말고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께 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24절 이후부터 두 주인에 대한 언급이 있고, 육체와 땅의 일을 구하기에 앞서 33절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의 말씀을 하시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면 22,23절을 보겠습니다. 시력이 좋고 나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악은 선의 반대로서의 악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부터 벗어난 것이 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누리는 육체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을 알려주고 계신 것이고요, 우리의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마땅히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어야 하며, 하늘의 복을 쌓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부와 명예에 눈을 두는 것은 악한 것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늘의 복에 눈을 단일하게 두는 것이 우리 온몸을 빛으로 가득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개역성경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어려운 내용이지만 흠정역 성경으로 통해 그 의미가 분명히 와닿고,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눈을 이 땅의 삶을 살면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알려주시는 구절입니다.
2014-01-23 15:41:50 | 조양교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비유가 아주 적절하고 통찰력이 있으십니다.^^
디지털하게 살아야 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14-01-21 18:04:51 | 김상진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성경기록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모호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해주신 것들을 분명하게 붙들어야 겠습니다.
복음과 구원은 가장 선명하게 알려주신 내용입니다.
디지탈 시대에 꼭들어맞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2014-01-21 18:00:05 | 조양교
우리 50대 청년들의 활발한 사유활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지속적으로 주님을 높이고 말씀을 드러내는 일에 시간과 정열을 바치는 모습이 참으로 본이 됩니다.
구원에 대한 정확한 설명에 또 힘이 납니다.
아멘!
2014-01-21 12:52:06 | 오혜미
제목이 정말 참신합니다.^^
"하나님은 애매모호한 것을 싫어하시고 확실한 것을 좋아하신다."는 이 부분이
제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복음을 모호한 것으로 변개하는 악함에 맞서
변개되지 않은 진리를 전하는 우리 모두가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신실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2014-01-21 12:01:29 | 김대용
구원은 디지털이다.애매모호한 아날로그적인 것이 아니다.다시 태어나는 것, 구원은 확실한 실체이지 애매모호함이 아니다.(요 3:3, 킹흠정)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태어나지 않은 것은 0 이고, 태어난 것은 1이다.사람이 만든 컴퓨터는 확실한 정보 전달을 위해서 0과 1만을 사용하여 명령과 데이터를 형성한다.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체의 유전자 DNA도 A:아데닌, T:티민, C:시토신, G:구아닌 이라는 4가지의 염기를 사용한 디지털 정보체계 이다.이것들은 다시 A-T와 D-C와 만 결합되게 되어 있어 확실한 디지털 정보 체계로 명령과 데이터를 형성한다.컴퓨터와 생명체의 정보 전달 체계가 애매모호한 아날로그 체계라면 아마도 혼돈 그 자체 일 것이다.제대로 된 통계가 생성될 수 없고, 생명체의 재 생성도 불가능 할 것이다.다음의 성경 구절을 보면,(요 3:3 흠정역)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요 3:4 ) 니고데모가 그분께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그가 자기 어머니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하매(요 3:5)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이다.우리는 육적으로 어머니의 양수인 물속에서 첫 번째로 태어났고 영은 죽은 상태로 태어났다.우리의 죽어있는 영은 성령에게서 두 번째로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우리를 혼란하게 하였던 다음(벧전 2:2, 개정)의 성경 구절로 인하여 다시 태어남의 의미가 혼미해져 어디까지 자라나야 구원에 이르는 것 인지 알 수 없게 하는 아날로그적인 성경 구절을 바른 성경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벧전 2:2, 개정)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시인하고 다시 태어난 것은 영의 상태가 0에서 1로 바뀌는 단 1회의 사건으로 영이 다시 태어난 획기적인 사건이다.구원은 애매모호한 아날로그적인 사건이 아니고 죽었던 영이 산영이 된 사건이다.다음(벧전 2:2, 킹흠정)의 성경말씀 처럼 새로 태어난 아기 이다.그리고 말씀의 젖으로(성경말씀으로) 성장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축복된 신생아 이다.(벧전 2:2, 킹흠정)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구주의 보혈로, 영적으로, 새롭게 탄생한 하나님 나라의 신생아!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른 복 받은 신생아 이다.(고후 7:10, 킹흠정)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영이 다시 태어나야 함을 설명하셨다.(요 3:3, 킹흠정)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요 3:4, ) 니고데모가 그분께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그가 자기 어머니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 하매(요 3:5, )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6, )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요 3:7, )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우리 구원 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인해 영이 다시 태어난 것이다.영원히 죽을 인생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하나님은 애매모호한 것을 싫어하시고 확실한 것을 좋아하신다.오직 너희의 예는 예라 하고 너희의 아니요는 아니요라 하라.애매모호한 혼돈 속에서 살지 말고 확실한 말씀을 붙들어야 구원받은 자의 영이 행복하다.(약 5:12, 킹흠정) 그러나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먼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어떤 맹세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예는 예라 하고 너희의 아니요는 아니요라 하라. 이것은 너희가 정죄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라.
2014-01-21 11:39:41 | 허광무
맞습니다. 모두 어른들의 책임이지요.
아이들에게는 이제 '몬스터'도 좋은 것처럼 미화 시키는 세상이되었고, 게다가 전교 1등이면 재수 없다며 학대를 하는 지경이라고 하니, 이제 공부로만 전교 1등을 해서는 안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재수없다는 소릴 안들으려면 어쩔 수 없이 나쁜 짓도 전교 1등을 해야되는 분위기라고 하니, 참 안타깝습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교회와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2014-01-21 10:08:31 | 김상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참 좋은 글을 올려주셨네요^^
“엄마, 저 전교 1등이에요. 저도 스트레스는 풀어야죠.”라는 말을 하는 몬스터로 아이가 자란 것은
그런 환경을 만들고 허용한 우리 모든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참으로 폭탄주&음란 문화에 취해 있는 우리 사회의 일부 전문직 어른들과 절묘하게 overlap 됩니다.
이 지상의 어느 교회에서든 아무리 자녀의 교육이 지고한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신앙의 가치를 가볍게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깊은 타락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될 겁니다.
내 것을 포기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 항상 사탄 마귀는 그 지점에서 위선의 불씨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합니다.
부디 진리를 위해서는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는 위대한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견고하게 간직되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4-01-20 14:24:01 | 김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