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함 속에 진정한 가치와 힘이 있다는 교훈과 함께
아버님의 일생을 시적 감성으로 풀어내신 잔잔한 글은
그 어떤 뛰어난 석공이 새긴 묘비보다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기념비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족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 하심과 평강이 함께하길 바라오며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유일하신 구원자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임을 생생히 증언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4-02-07 10:32:46 | 김대용
다들 명절준비에 분주할 때라
항상 깊이 사고하는 분이시니 더욱
연락을 못하셨겠구나 !싶습니다.
글 읽으며 엄마생각도 겹쳐졌지요.
지금은 주님과 함께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도 곧 주님과 함께 있기를 고대하니까요.
그래서 장럐식에서 찬양으로 위로하는 것 이지요.
생각을 주께 고정시킨자를 완전한 평강으로 지키신다고
하셨으니 주께서 완전한 평강을 주신 글 감사합니다.
2014-02-07 08:30:17 | 이수영
조용하고 부드러운 글 속에..
아버님에 대한 형제님의 사랑과 이별의 아픔이 느껴지네요.
형제님의 슬픔을 같이 나누며,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2014-02-07 00:38:21 | 강평원
마음에 깊이 와닿는 글이네요.
나이들고 병들고 죽음을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더욱 확실히 붙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원한 나라로 입성하신 아버님을 그리며 훌륭한 글을 남겨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정말 너무 커다란 아픔을 느낄 때 소리없는 하나님의 위로로 충만해지는 은혜를 누려야겠습니다.
2014-02-07 00:20:52 | 오혜미
아름다운 글 뒤에 아픈 마음이 들어있네요
얼마나 허전하실까요. 주님의 크신 위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2014-02-07 00:00:48 | 김혜순
잔잔한 시같은 글인 줄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어르신께서 하나님께로 가셨군요
너무나 큰 슬픔일 땐 사람의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할 때가 있는데
형제님과 가족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2014-02-06 22:36:15 | 임성희
형제님과 자매님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지난주일 아침시간에 승강기에서 내리면서 얼핏 자매님을 보았습니다. 어떤 인사 한마디 못드리고 내가 잘못 본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오후 예배시간을 끝내고 11층 교제 시간에 아버님의 소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시한번 위로의 말을 전하고, 훌륭하신 아버님을 두신것에 저 또한 주님께 감사드리고 우리들은 천국에서 다시 만나는 확실한 소망이 있기에 또 한번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병수 형제
2014-02-06 22:35:44 | 여병수
수개월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아버님 병환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기도로써 위로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올립니다.
왜 부고를 전하지 않았냐는 질타를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하는 사정또한 있음에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올립니다.
죄송합니다.
2014-02-06 21:52:20 | 유용수
# 게시판위에 앉은 까치 한 마리
사람들은 조금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합니다.
그것이 엄살일 지라도 아프다는 말로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너무 아프면 이런 엄살도 나오질 않습니다.
사람들은 조금 힘들면 어느 누구에게 호소하고 싶어집니다.
이 호소가 발전하여 큰 소리로 울부짖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힘들면 아무에게도 호소할 마음이 생기질 않습니다.
사람들은 조금 좋으면 소리를 막 지르고 싶어 합니다.
어깨를 들썩들썩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어지기도 하지요.
그러나 너무 좋으면 기가 막혀 말도 제대로 잘 안 나옵니다.
좋은 것!
깊이 있는 것!
가치 있는 것!
그것은, 요란함 속에 있지 않고 바로 그 아래 조용하고 고요함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조용한 힘일 것입니다.
햇볕은 아무 소리 없이 그 열을 하루 종일 내리쏟기만 하고 있습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열기는 대단합니다.
그 속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죽이는 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조용히 자기의 열기만을 쏟아 내기만 합니다.
이것이 조용한 힘입니다.
이슬은 우리들 모두가 잠든 밤에 아무런 소리 없이 맺혀 집니다.
영롱한 그의 모습은 청아하기만 합니다.
깨끗합니다.
이슬 맺힌 잎사귀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 생명력이 풋풋합니다.
내가 더 크다고 자랑하지 않고 내가 더 작다고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자기의 방울들을 만들어 갑니다.
만들다 땅에 떨어져 자기의 생명을 다 하고 갑니다.
이렇듯 이슬은 모든 식물에 새로운 생기를 가져다줍니다.
이것이 조용한 힘입니다.
우렁찬 천둥소리는 요란합니다.
번쩍이는 번개 불은 두려움을 몰고 옵니다.
이것에 맞으면 건물이 파괴고 사람이 맞으면 검은 숯이 되어 까맣게 타 죽습니다.
대단한 전기 에너지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대단함 뒤에는 부드러운 구름의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생겨납니다.
구름과 구름의 충돌이 천둥이요, 구름과 구름의 마찰이 번개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 근원이 조용한 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대자연에 있어서까지도 힘은 조용함 속에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가장 큰 힘은 소리 없이 작용함에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요란한 힘의 근원도 부드러움의 조용한 움직임에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고요한 새벽에 드리는 조용한 기도는 놀라운 힘의 근원임을 느낍니다.
하루가 새롭고 아침이 상쾌합니다.
조용함 가운데 사랑이 이글이글 내려 쏟습니다.
조용함 가운데 사랑이 스며들듯 젖어 듭니다.
조용함 가운데 사랑의 근원이 부드럽게 다가옵니다.
우리에게로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여 지지 않습니다.
만져지지도 않고, 소리 내지도 않습니다.
요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조용함 속에 있습니다.
그 사랑은 소리 없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조용한 움직임 속에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성장을 이끌어 갑니다.
이러한 사랑은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사랑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설날을 맞아 분주히 움직이던 지난 화요일!
삶에 지치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까치 한 마리가 영원히 쉴 곳을 찾아
머나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숨 가쁜 날개 짓으로 조그만 게시판에 위에 앉으려 날개를 펄럭입니다.
그리곤 숨을 몰아쉬시며 길을 묻습니다.
하~얀 국화 한 송이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살랑살랑 흔듭니다.
이름 모를 다른 꽃잎들도 모르겠다며 흔들흔들 몸짓으로 답을 합니다.
애고 힘들다!
조금 쉬었다 가자!
까치 한 마리가 게시판 위에 앉았습니다.
“유 생수 집사 이 땅위에 89년을 사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시다.”
너무 지쳐 있었고, 너무 외로우셨습니다.
젊은 날, 홀로 만주벌판을 돌고 돌아 20세의 젊은 청년으로 남한 땅에 정착하시고
멎진 삶을 살아내셨습니다.
서울의 밝은 동네에서 여성의 멋을 창조하는 의상실을 운영하시며
큰 영화를 누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우리 자식들에게 예수님을 알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하고 기쁜 일인지요.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넘치셨던 분이셨습니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찬송소리를 들으시면서 조용한 가운데, 고요함 가운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면서,,,,,,,
유 용수
2014년 2월 6일(목)
2014-02-06 21:41:39 | 유용수
까치가 재미있는 동물이네요.
동화를 보면 "은혜를 갚는 동물"로 많이 등장하고,
민요를 봐도 "까치야, 까치야, 너는 헌 이 가지고, 나는 새 이 다오~~"부르기도 하고
헌 이..
새 이..
은 혜..
까치는 구원의 은혜로,
구원자에게 자기 생명까지도 버리는 "보은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아담이 이름지어준 까치! 처음 이름 지을때 불렀을 원음이 궁금하네요. ㅎ~
또 한가지 궁금한 것은..요한계시록 2 : 1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추어 둔 만나를 주어 먹게 하고
또 흰 돌을 그에게 줄 터인데 그 돌에는 새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그 돌을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느니라.
첫번째 아담은 모든 가축과 공중의 날짐승과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었고,
두번째 아담인 예수님은 구원받은 교회에 주실 흰돌에 기록되어 있는 새 이름입니다.
2014-01-31 11:39:19 | 강평원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얼마나 입에 착착 감기는 가사와 멜로디인지요
매년 설 명절이면 빼놓지 않고 듣게 되는 곡인데요
아담이 한국인의 정서에 꼭 맞게 까치라고 예쁜 이름 지은준것에 감사한 하루입니다.
내일은 민족 고유의 명절 설 입니다.
모두들 가족과 정을 나누는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주일날 뵈요.
2014-01-30 22:28:50 | 이정희
진화론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맘대로 살고자 하는 악한 생각에서 탄생한 학문입니다.
성경의 변개와 같이 마귀의 거짓 놀음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지요.
2014-01-30 18:09:30 | 허광무
안녕하세요~강평원 형제입니다.
참 시간 빠르죠?
얼마전에 2014년도가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한달이 지나고 내일이 설날입니다.
새해 계획하신 일들은 잘 되는지
새해 소망했던 일들은 어렵지 않게 잘 풀리는지 궁금합니다.
저로보면..
새해 계획들은 조금씩 헝클어지고,
새해 바램들도 꼭 좋은 일만 있지는 않네요.
가끔 마음이 어지러워질 때면,
좋은 말씀 한 구절을 가지고 묵상을 하며 산책을 하곤 합니다.
얼마전 산길을 걷고 있었는데..
앞에서 먹이를 찾던 까치 두마리가 "푸드덕!"소리와 함께 날아갔습니다.
그 날아 오르는 모습을 보았는데..
창세기에 "종류대로"란 말씀이 퍼뜩 생각이 났습니다.
흑과백 두 색깔로 이루어진 날개를 펼치며 날아가는 까치의 모습은
그야말로 날개 깃털 하나까지 비슷했으니까요.
집에 돌아와..
까치에 대하여 이리저리 찾다보니 유사품들이 몇가지 있네요.
(까치 기러기) (까치 돌고래)
위 사진을 보며..
비슷비슷한 종류들을 보며 진화의 흔적이라 말하진 않겠죠?
얼마전 진화론의 관점에서 mbc스페셜 '1억년 뿔 공룡의 비밀'에서
뿔 공룡 진화 비결이란 내용을 보면 우리 입장에선 참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이 다큐를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창조를 불신할까요?
까치 단체사진입니다.
단체로 맞춰입은 유니폼(?)을 보니 역시 같은 종류라는 느낌이 들죠?
만약 불신자들이 진화론을 주장한다면..
단순한 흑과백 두 색깔로 이루어진 까치들을 보면서도
비슷한 모양이나 변화되는 색깔을 가진 중간과정의 새들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답해줘야 할 거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오류의 주장을 명확히 하고자,
만물을 창조하시며 식물, 동물 각각의 "종류대로(kind)"란 단어를
창세기 1장에 말씀으로 여러번 강조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연 만물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을 무엇이라 부르든지 그것이 그것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창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날짐승과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내일은 민족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오늘은 아담이 이름을 지어준 까치의 설날이고요.ㅎ~
설날을 맞아 혹시 쓸쓸한 마음으로 보내시는 형제자매님들이 없는지..
그리스도 예수님안에서 소망과 기쁨으로 위로하시고,
사랑과 진리와 은혜와 평안이 넘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2014-01-30 17:24:55 | 강평원
'눈은 몸의 등불'이라는 말씀은 참으로 깊이 되새길수록 오묘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차분하고 깊이 있게 말씀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나눠 주시고 몸소 만년 청춘의
열정을 보여 주시니 후배들이 바르게 따라갈 길을 열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 우리 모든 성도가 하나 되어 기쁘게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가길
간절히 소망하며 항상 좋은 글로 일조해주시는 형제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4-01-24 15:46:03 | 김대용
저는 개인적으로 지나간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구원은 디지털 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 하시니 저도 감성적인 부분은 아날로그적 사고로 살아도 구원에 있어서 만큼은 확실하고 명쾌하게 디지털적으로 생각하고 전하겠습니다.
형제님의 귀한 글 항상 감사하게 읽고있습니다.
2014-01-24 15:05:26 | 이정희
사람은 신체의 감각기관중 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마음의 눈을 띄워주셔서 성경말씀을 믿고 세상에서 결코 누릴수 없는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사는것을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다는 마음이 듭니다.
가장 값진 것을 볼수 있는 눈을 주신 주님께 마음의 눈을 고정시키고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겨야 겠다는 마음이 들어집니다.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 글 항상 감사합니다.
2014-01-24 14:52:25 | 이정희
우리의 생각, 경험, 주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우리의 눈을 단일하게 맞추어 나가는 과정이 믿음의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응시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걸음마를 떼어 나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2014-01-24 09:40:01 | 조양교
눈의 중요성에 대하여......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냥이라는 말이 있고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百聞以不如一見) 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더 확실한 대언에 말씀에 의지하여 단일한 눈, 단일한 마음으로 단일한 성경을 늘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골 3:22, 킹흠정) 『종들아, 육체에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모든 일에서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
2014-01-24 09:36:01 | 허광무
잘 지내시죠?
홈페이지에 글로 함께 하시니 멀리 계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네요,
편안한 여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샬롬
2014-01-24 09:20:15 | 조양교
형제님의 글과 덧글을 통해서 말씀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좋은 내용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14-01-24 09:04:43 | 김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