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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믿지않는 저희 직원이 그 영화를 보고와서 잠깐 얘기를 나누고 우리 지적장애인들 영화감상시간에 보여준 적이 있었지요. 워낙 영화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고 애니매이션이라 저는 일에 집중했죠. 그 노래가 인기가 있다고 모두들 한 마디씩.. 근데 마귀의 전략이 숨어 있는 끔찍한 영화네요.. 요즘 인기있고 화재가 되는 것은 거의 하나님과는 반대이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세상이 하나님과 극명하게 대조가 됨을 알 수가 있더군요. 그런데 믿음이 있는 우리들도 정신을 차리고 분별해야 할 때가 많은것 같아요. 모든 학부모들과 어른들도 유념하여할 내용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02-26 15:56:53 | 김상희
기쁜일이 있을 때는 누구나가 기뻐할 수 있지만 어려움과 고통속에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지만 오히려 고통 중에 더욱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사악한 자는 넘어져서 해악에 빠지리라 (잠언24장 16절) 자매님 글을 읽다보니 위 성경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시련과 고통이 올때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승리와 감사의 삶을 살게해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좋은 간증 올려주셔서 저의 생활이나 마음가짐을 돌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02-26 15:53:38 | 이정희
올려주신 글을 읽으며 너무도 쉽게 타성에 젖어 버리는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당장 심장이 멎어 버릴 수 있다는 극심한 공포에 떨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이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회복되고 건강하니 벌써 그 간절했던 시간이 한 장의 사진처럼 제 내면에서 의미 없는 침묵이 되어 가는 듯합니다. 수고롭게 땅속을 파고 얻은 칡뿌리를 입속에서 깨물고 또 깨물어 계속해서 그 즙을 섭취하듯 고통과 함께 주신 진귀한 교훈을 잊지 않고 두고두고 묵상하는 제가 되길 진심으로 갈망합니다.
2014-02-26 11:15:53 | 김대용
감사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이 많아지고 더불어 행복해 집니다. 아파트에서 사는 분들이 많으니 공감하시겠지만 윗집의 시끄러움이 참으로 신경을 쓰게 하지요. 씨름선수들 마냥 쿵탕거리며 여기저기 안가리고 밤 늦은 시간에도 잠을 못자게 하기 일쑤... 올라가서 얘기도 해봤고 수박도 뻥튀기도 감자도 갖다 주고 부탁해 봤지만 참 장정같은 두아들의 에너지 발산에 슬리퍼도 사다주기도 했지만 도무지 제어가 안돼니 정말 화가 나더군요. 가끔 보도되는 뉴스에나오는 불상사도 생각나고... 그때 생각하다가 실천한 일이 였어요. 쿵쿵 거릴 때마다... 처음엔 어려웠지요~ 용암같이 불끈 불끈~ 이걸 그냥 확~ 그런데 한번 두번 마음을 주님께로 모으고 기도하게 되니 너무 감사한거에요. 감사하다보니 수시로 생각나는 성도 기도도 하고~ 내가 수시로 기도하게 하시려고 이런일을 허락하신거구나! 감사가 되는 거애요^^ 그 후로도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웃게 되더라구요~ 컴퓨터에 절전모드 처럼 로 바꾸어 보세요^^
2014-02-26 10:36:00 | 이수영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축복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자아를 보며, 개인주의 속에 빠지면, 빠질 수록 우울해 지는 것이 사람의 타락한 죄성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주셔서, 자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고 그 분의 섭리 가운데 고난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을 얻거나,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히 나아가게 되는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게 됩니다. 상진 형제님의 후배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 과거의 모든 슬픔과 아픔이 영적 축복을 누리기 위한 간증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합니다.
2014-02-26 10:23:37 | 최재원
살아가면서 끔직한 경험을 할 뻔 했던 경우도 있고, 끔직한 경험을 당한 경우도 있고, 그저 평안한 삶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위험에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 뿐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의지할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앞에 올바르게 서있기를 원합니다. 후배가 스스로 억울함을 자처하신 그리스도를 발견했으면 하네요, 여러가지 생각하게 해주는 글 감사합니다.
2014-02-26 09:28:29 | 조양교
자매님! 오랜만에 글 올리셨네요. 잘 읽었어요. 몇번 얘길 했는데 안듣길래 막내를 회초리로 몇대 때려주고 부랴부랴 출근하는 중입니다. 감정이 실리지는 않았는데 마음은 좋질 않네요. 저도 어제 그 아이에게 사과 할 일이 있어서 사과를 했더니 엄마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답니다. 아휴.. 아이를 통해 배우고 사네요.
2014-02-26 08:48:18 | 유금희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의 창조주시며 아버지인 하나님을 인식하고 의지하고 찾는 그 마음은 구원받은 자의 표식일 뿐 아니라 영적인 성숙도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자매님의 믿음의 열매가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만큼 마음을 낮추고 주님을 높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아침에 이글을 읽으니 하루가 더욱 힘이 나고 성도의 나눔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 우리에게 교회가 있어 참으로 감사하게 여겨집니다.
2014-02-26 08:46:48 | 오혜미
우리의 믿음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절실한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더 저의 믿음의 진보가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저도 요즘 믿음은 교리위에 세워지는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 모든 일에 생각을 좀 더 깃들여 봅니다. 우리 교회가 여러 방면으로 믿음을 돈독히 할 수 있도롣 힘써 주셔서 참으로 든든합니다.
2014-02-26 08:38:35 | 오혜미
저는 아이들이 다 커서 잘 모르는 내용인데 냉철한 분별력으로 우리 교회아이들이 은근히 스며들어오는 세상의 가치관을 분별할 수 있도록 힘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세상은 놀이터가 아니라 영적 전쟁터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2014-02-26 08:21:03 | 오혜미
어떡하죠...?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장면이 아름답고 서로를 배려해 주고 목숨까지 버리는 자매간의 진실한 사랑이 아름다와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 글을 읽으니 이 글이 옳은 것같고...제가 분별력이 없는 건가요...? 어떡하죠. 제가 너무 심각한가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우리 아이들-대선이 지현이-도 빨리 중 고등부 예배에 참석하여 이런 귀한 말씀들을 들었으면 합니다. 선생님들, 중 고등부에 자녀들 보내는 부모님들, 믿지 않는 자녀들위해 기도해주시기를 강력하게 부탁드립니다...^^
2014-02-26 06:39:32 | 박순호
  잠을 자고 있는데 한 시간 전에 심한 치통으로 잠을 깼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누워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모든 일을 할 수 있으신 주님, 제 치통 좀 멎게 해 주세요...’ 그리곤 잠시 뒤에 치통이 가라앉았습니다. 1년 전 쯤에 점심 먹고 체했는데 그렇게 심하게 체해보긴 처음이었습니다. 명치와 위 부분이 얼마나 아픈 지... 배를 움켜쥐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하나님 찾았습니다. 결국 열번 넘게 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해내고서야 아픔이 가라앉았습니다. 다리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가서 치료 받을 때도 심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심한 고통이 올 때마다 하나님 찾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가시 면류관을 쓰실 때의 그 아픔과 손과 발에 못이 박힐 때의 통증이 아주 약간 0.000....1% 라도 전해 지는 듯하여 몸이 심하게 떨립니다. 아...! 나약한 저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할 거 같습니다. 그 누군가 저에게 ‘예수님을 부인하면 살려 주고, 그렇지 않으면 고통을 주겠다’ 하면 '나는...나는... 그럴 경우에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에 저는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 부디 저에게는 제 아이들에게는 그런 상황이 안 오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시잖아요. 제가 얼마나 나약한지...’ 제가 생각하기에도 얄미운 기도입니다. 작년에, 아들이 내 품안의 자식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때도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느낄 때도 예수님 생각이 납니다. 뭇 사람들과 믿었던 사람들에게서의 심한 배신과 모멸감을 안고 사시면서도 꿋꿋하게 온유한 모습을 보이시며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셨던 예수님... 예수님을 안다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위로인지 모릅니다.   김상진 형제님의 앞의 글을 읽고 한 동안 가슴이 멍해졌습니다. 그 후배님 같은 경우를 제가 당했다면... 저는 살아갈 자신이 없을 거 같습니다. 며칠 전에 지인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교회 안에서 세상 속에서 많은 배신을 당했다. 그때 알았다. 하나님만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더라...” 그 후배님도 예수님알고 우리 주님 안에서 참 위로와 평안을 찾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요새 저는 아주 좋은 습관이 생겼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오늘도 감사한 일 열 가지 이상을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습관입니다. 사실 그 결심을 하기 바로 전에 인생이 짜증스러웠습니다. 불만만 생기고.. 그런데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랑 교회와서 제가 변한 것 중의 하나가 무슨 일이 생길 때는 말씀의지하고 기도하려고 노력하는겁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라..” 라는 말씀이 생각나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꼭꼭 눈 뜨자마자 열 가지 이상씩 감사할 일을 말로 내뱉자’라고 말입니다. 새벽녘에 치통을 느끼게 해주셔서 하나님 찾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2014-02-26 06:15:09 | 박순호
복음 성가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매일 스치는 사람들 내게 무얼 원하나 공허한 그 눈빛을 무엇으로 채우나 모두 자기 고통과 두려움 가득 감춰진 울음소리...주님 들으시네 그들은 모두 주(님)가 필요해 깨지고 상한 마음 주님 여시네 그들은 모두 주(님)가 필요해 모두 알게 되리 사랑의 주님" 주위를 돌아보며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좋은 글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2014-02-25 23:04:12 | 오광일
글을 읽는 내내 저의 무력함, 무가치함에 절로 가슴을 치게 됩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지, 세상의 본질은 무엇인지, 예수님의 복음이 자격 없는 인간에게 주어진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새삼 깊이 생각해 봅니다. 세상은 결국 인간의 야만성과 흉포함을 감싸고 있는 얇디얇은 기름종이며 그 기름종이 안에서 벌어지는 희미한 본체를 꿰뚫어 볼 때 우리가 얼마나 허망하고 악한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제대로 깨닫게 되겠지요. 구원받고 배교하는 교회들에서 분리되고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전하는 사역을 하는 우리에게 지금 진정으로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격려나 포근한 사랑이나 여유로움이나 지적 만족이나 장차 임할 영광스러움에 대한 간절한 소망보다도 먼저 성도를 투철한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처절한 회개임을 다시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타성을 깨트리는 가슴 아프고도 매우 예리한 글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4-02-25 22:35:37 | 김대용
참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지난 며칠의 제가 처한 상황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생판 모르는 그 후배님 안아드리고 싶네요. 김상진 형제님, 제게 너무도 시기적절하게 귀하게 다가온 글이었습니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2014-02-25 21:40:55 | 이청원
김 형제님의 글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적 측면에서 볼 때 예수님의 답답함이 어떠했을지 조금 이해가 됩니다. 늘 주님의 마음으로 긍휼을 베풀며 살아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4-02-25 18:24:15 | 관리자
가끔 맘에 드는 팝송이 있을때는 수차례 들으며 따라부르기를 좋아했었던 아이가, 이번에 절실히 깨달은 바를 이야기 할때 무척 기뻤습니다. 이제부터 찬송을 듣겠다고 다짐하는 아이를 격려해주었습니다. 분별있는 삶을 위해 전달해주신 메세지에 감사드립니다~
2014-02-25 17:45:48 | 태은상
오광일 형제님.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사실 이 영화는 뉴에이즈 성향과 요즘 어른들이 자신의 자녀들의 자존감을 중시하는 풍토가 생겨나면서 자존감으로 가장하여 반항심을 획책질 하려는 성향 또한 강합니다. 1. 뉴에이지. 먼저, 주인공 엘사를 '루시퍼'로 보면 됩니다. 엘사는 왕국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사고로 죽게되자 왕위에 오르지만 쫒겨납니다. 그리고 자신의 왕국을 순식간에 만듭니다. 게다가 하나님을 흉내내는 짓을 합니다. 스노우맨과 덩치큰 스노우맨(?)을 만들고 생명을 불어 넣게 되지요.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데, 자신이 생명을 창조한 본질인양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왕국에 다시 돌아와 왕이 되고 평화를 되찾는 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루시퍼가 하늘에서 쫒겨나 공중의 권세를 잡으며 이 세상의 왕노릇을 하고 있지만, 후에 멸망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이 결국 하나님을 이겨 왕이 된다는 신세계를 건설한다는 메세지를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주입시켜주고 있습니다. 2. 반항 엘사가 자신이 새로 등극한 여왕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버리라는 메세지를 심어 주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OST 에서 잘 찾아 볼 수 있는데, 자신의 망투를 버리고 자신 외에는 소중한 가치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아까워 하지 마라는 표정으로 Let it go를 반복해댑니다. Let it go라는 문장은 문맥상 해석하기 나름인데," 다 잊어!" 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 싶습니다. 영혼의 자유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반항을 획책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대목에서 Let it go 라는 문장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히 이 영화의 후폭풍은 아이들로부터 반항심이라는 열매가 나타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2014-02-25 16:42:12 | 김상진
어제 일이 있어서 한 후배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 후배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업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20대의 젊은 친구입니다. 대화 도중에 이 친구의 어조나 어감, 표현 등을 통해서 마음속에 뿌리 깊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으나,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이 후배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오픈했는데, 들어보니 참으로 기막힌 사연이었습니다. 대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4년에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서울의 어느 학원에 들어가서 재수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곳은 한 달에 하루만 외박을 주는 스파르타식 학원이었는데, 외박을 주는 날 이 시간을 어떻게 쓸까? 라고 고민하다가 스트레스를 풀고자 친구들을 불러서 술집에서 밤이 새도록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술에 취해서 눈을 떠보니 다 가고 없고 친구의 여자 친구만 남아 있더랍니다. 새벽 5시쯤에 친구의 여자 친구는 귀가를 했고, 자신은 잠시 후에 술을 깨고 술집에서 나와 귀가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경찰이 영장을 들고 학원을 찾아왔는데, 체포영장의 제목은 ‘살인’이었답니다. 알고 보니 친구의 여자 친구가 그날 술을 먹고 귀가하다가 집 문 앞에서 수차례 칼에 찔리는 좌상을 입어 살해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인자로 몰려는 경찰의 심문에 억울해서 미치는 줄 알았으나 경찰은 알리바이가 부족한 이 후배를 불구속기소로 결정하고 며칠간의 조사 끝에 드디어 경찰서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불행은 그 날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죽은 여자 친구의 죽음을 두고 친구가 ‘너 왜 죽였냐?’며 따지고 들자,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믿어주지 않은 그 친구를 향해 짜증을 내면서 말을 내뱉었는데, 그날로 그 친구는 자책감과 배신감 때문인지 그만 자살을 하였고, 몇 달 뒤 후배의 어머니도 자신의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주변 사람들의 압박에 못 이겨 그만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 심한 나머지 도피처로 군대를 선택해서 입대를 했으나, 군에 간지 10개월 뒤에 헌병대에서 자신을 불러내더니 1년 전에 자신을 조사하던 형사들의 손에 또 다시 넘겨져 조사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사를 받게 된 배경은, 다행히도 그 여자를 죽인 진범이 자수를 했기 때문인데, 경찰은 사실 여부와 정황을 분명하게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자수한 그 살인자는 다름 아닌 2006년 서남부 연쇄살인범이었던 정남규라는 ‘싸이코패스’ 였습니다(14명 살인). 당시 정남규는 경찰에게 잡힌 뒤였고 취조 도중에 유영철이 죽였다는 살인사건을 자신이 죽였다고 주장하면서 밝혀진 해프닝이었습니다. 그 살인의 희생자가 바로 이 친구가 누명을 썼던 친구의 여자 친구 살인사건 이었던 것입니다. 그 덕분에 누명은 벗게 되었지만, 2년여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당연 어머니와 친구의 자살 그리고 친구들과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다들 살인자로 몰아갔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은 그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이 후배의 말을 듣고 원인 모를 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믿음도 없는 사람이 그런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 라는 긍휼함과 불쌍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도 힘든 일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이 친구만큼 힘든 일을 겪는다면 과연 우리는 계속해서 삶을 이어나갈 용기가 있을까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은 무엇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요? 주변사람들로 부터 받은 배신감은 또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을까요? 이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복음을 실질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 친구에게 차마 복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큰 고통을 겪은 후배 앞에서 왠지 모르게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만한 용기가 없었습니다. 이 친구를 위로해줄만한 어떠한 말도 생각이 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착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행복감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것이라면, 이 후배의 경험과 비교해봤을 때 우리는 엄청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주님께 감사함을 고백하며 살아가기 보다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날마다 온갖 불평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살아가고 있었을까? 라며 제 자신의 내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약한 내 모습 때문에 어쩌면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 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들로 가득 찼는데, 그 중에서 억울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모습이 유일한 후배의 위로거리라고 여겨졌는지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얼마나 억울하셨을까?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 고통과 억울함을 나 때문인지 잘 알고 있는데, 왜 나는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어쩌면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실질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즉, 그 분의 고통이 사실적인 내 고통이 아니었고, 그 분의 억울함이 실질적인 내 억울함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런 추상적인 복음을 나는 가지고 있지는 않았나? 또,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정도 되니까 당연히 그 아픔을 감당해 낼 수 있었을 거야!” 라는 가증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있지는 않았나? 그래서 자연스럽게 십자가 사건이 내 삶과 분리 된 채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주님의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뻔뻔하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을까? 라는.., 등의 생각들로 말입니다. 후배와의 만남이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실질적으로 내 삶속에 적용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게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후배는 저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저는 세상의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무섭지가 않습니다. 저는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실감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후배의 말처럼 악한 모습을 봤기 때문에 더 이상 누구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면 그것은 곧 분노의 힘이 분명할 터인데,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안 우리는 그와 같은 동일한 힘을 지닌 소망을 소유해야 당연한 이치가 아닐런지요? 그 소망이 우리 내면의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디언 선교에 생애를 바친, 브레이너드 목사님이 고백했던 글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1742년 11월 27일. 하나님께 내 영혼을 의탁하며 어느 정도 위로를 얻었다. 오전 9시 경 뉴욕을 출발하였는데, 여전히 말할 수 없는 나의 무가치함을 느끼며 괴로움에 싸여 있었다. 정말이지 이젠 나의 모든 형제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 중 나만큼 추한 이들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겉으로 그들이 어떻게 처신하든, 하나님 앞에서 나만큼 죄악을 심각하게 의식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오오, 나의 허약함, 나의 메마름, 나의 속됨, 과거의 울분, 그리고 복음에 합당한 기질이 없는 그런 모습이라니! 이것들이 나의 영혼을 짓누른다. 뉴욕에서 삼십 마일을 말을 달려 화이트 플레인즈(White Plains)에 도착하였는데, 도중에 계속해서 내 마음을 하나님께로 올려 긍휼하심과 순결하게 하시는 은혜를 구하였다. 그리고 심령이 상당히 낙담한 채로 저녁 시간을 보냈다.」  
2014-02-25 16:21:17 | 김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