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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기다리시리니 이것은 그분께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분께서 높여지시리니 이것은 그분께서 너희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라. 주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니 그분을 기다리는 모든자들은 복이 있도다"(이사야30:18)   하나님께서는 종종 기도의 응답을 늦추십니다. 성경 속에도 이런 사례가 여러번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곱은 날이 거의 밝아올 때까지 천사로 부터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축복을 받기 위해 밤새 씨름해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주님께 세번이나 간청했지만, 그 가시가 제거될 거라는 응답 대신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족하다는 약속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 응답도 받지 못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왜 그 문을 활짝 여시면서 우리에게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씀하시지 않는 것일까요?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계속 기다리게 하시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인생들에게 당신의 능력과 주권을 보여 주심으로써, 여호와께서는 주시기도 하고 거두시기도 할 권한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이 지체되는 보다 큰 이유는 바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소원이 좀 더 간절해지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계속 기다리게 하시는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응답을 지체하면 할수록 여러분이 더욱더 그것을 갈망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계속 기다리게 하면, 자신이 구하는 것의 필요성을 좀 더 분명하게 볼 것이요, 따라서 좀 더 간절히 구하게 될 것이요, 그토록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는 그 은혜를 더욱더 소중히 여기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니면, 기도 응답의 기쁨이 오기전에 여러분 안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어서 그것이 제거되기를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복음전파에 대해 잘못된 태도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단순히 전적으로 주 예수님만 의지하는 대신 여러분 자신을 조금이라도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늦어지는 지도 모릅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의 부요함을 좀 더 충분히 보여주시려고 한동안 여러분을 기다리게 하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여러분의 모든 기도는 다 천국파일에 보관되어져 있습니다. 설사 즉각적인 응답이 오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그 기도들을 잊지 않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잠시 잠깐후면,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기도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망에 뻐져 입을 다물고 있지 말고, 계속해서 열심히 간구하십시오.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분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요. 오직 나는 그분 앞에서 내 자신의 길들을 유지하리라"(욥13:15)   스펄전의 365일 묵상중.
2014-04-01 23:48:04 | 박진태
정말 다윗이 그런 말을 했었네요.. 끊임없이 형통하게 되기를 바라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네요. 주님이 현재 저를 있게하신 그 위치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겠습니다. 힘을 주시는 글 감사합니다.
2014-04-01 15:41:27 | 이정희
까마귀가 당신의 머리위를 날아다니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지겠지만, 그 까마귀가 당신의 머리에 둥지를 트는것은 분명히 당신의 책임이다. 아주 좋은 글이네요. 샬롬 패스터
2014-04-01 10:39:11 | 관리자
의롭게 살아라.   구원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성도답게 살 것을 가르치신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는 고결하게, 주변사람들에 대해서는 의롭게, 그리고 하나님아버지께 대해서는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선하게 살지 않으면서 자신이 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그런 기독교 신자가 너무 많다. 잘못된 길, 더러운 길, 불의한 길을 걸으면서도 성령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다. 그런데 내가 '거룩하지 못한' 길을 걷는다면, 어떻게 그 분께서 그 길에 함께 하실 수 있겠는가?   당신의 생각은 당신의 태도와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생각을 당신의 일부로 간주하신다. 평안의 생각, 연민의 생각, 긍휼의 생각, 친절의 생각, 사랑의 생각, 하나님을 생각하는 생각, 하나님의 아들을 생각하는 생각... 이런 생각들은 순수하고 선하고 고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성령님과 친해져서 가까이 지내기 원한다면, 당신의 생각을 잘 지켜야 한다. 당신 영혼의 거룩한 성소에서 온갖 탐욕의 들짐승들이 으르렁대거나, 음란한 생각의 날짐승들이 둥지를 틀어 자리 잡도록 방치하지 마라. 그것들을 허락하는 순간, 당신의 영혼의 성소는 바로 황폐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당신의 생각을 굳게 지켜라. 까마귀가 당신의 머리위를 날아다니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지겠지만, 그 까마귀가 당신의 머리에 둥지를 트는것은 분명히 당신의 책임이다.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잠4:23)   "이것이 성령님이다" A.W 토저.
2014-03-31 23:47:53 | 박진태
내가 잘못 알지는 않았는가?   "우리가 유대로 들어가자, 하시매 그 분의 제자들이 그 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최근에 유대인들이 돌로 선생님을 치려 하였는데 또 거기로 가시나이까? "(요11:7,8)   본문에서 제자들은 하필이면 어려움을 겪었던 유대로 다시 가자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그리로 가시려 하시냐고 되묻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말씀이 틀릴리가 없습니다. 때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오히려 그 분께 해가 될 것 같아 보이더라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불순종이야말로 예수님께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주님의 명령이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내 생각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혹시 그 일이 주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시는 것을 막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충성하고 있습니다. 과연 제대로 주님의 뜻에 충성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께 충성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오로지 그 분의 말씀만을 믿고 걸음을 내딛는 것을 의미합니다.(마14:29) 나의 생각에 대한 충성은 먼저 내 생각을 앞세워 모든 것을 따져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지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신뢰입니다.   당신은 예수님 안에서 믿음의 걸음을 내딛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습니까? 그냥 기쁨으로 단순하게 순종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때 너무 따지지 마십시오.   당신은 주님께 충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에 대한 당신 자신의 생각에 충성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주님의 말씀에 충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생각을 주님의 말씀에 덧붙이고 있습니까?   "그 분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2:5)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2014-03-29 19:09:28 | 박진태
형제님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도 알려주시면 더 좋지요~ 누구도 자기 뒤통수는 보지 못하기에 거울이 필요하지요. 거울이 보여주는것이 제모습이지만 여러가지로 왜곡으로하는것이 사람인 것같아요. 부모가 자식을, 조부모가 손자를, 남편이 아내를,자부심이, 자만심이..... 정직하게 보여주는 대로 보는 것도 지혜인것 같아요.
2014-03-29 09:02:38 | 이수영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내가 결코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시편 30:6)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해마다 좋은 날씨 덕분에 풍년이 되고, 벌이는 사업마다 대박을 터뜨려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온 가족이 항상 건강하고 화목한 가운데 아무 걱정없이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합시다.   누구든지 이렇게 항상 즐겁게 살 수 있게 된다면, 그가 설사 지금까지 살았던 성도들 중 가장 훌륭한 성도라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건방져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 훌륭한 다윗조차 형통한 삶이 계속되자,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아니하리라"고 어리석게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다윗보다 조금도 더 낫지 않습니다. 아니 그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존재들 아닙니까?   혹시 지금 잘 나가고 있습니까? 조심하십시요.   가는 길이 웬지 계속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합니까? 그렇다면 그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요. 하늘에 한 점 구름도 없이 맑은 날씨만 계속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형통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늘 행운이 따른다면 우리는 그 성공과 행복에 도취되어 목에 힘을 주면서 엄청 잘난 척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세상적으로 계속 형통하기만 하는것은 오히려 아주 무서운 시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통들에 대해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연단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둔해지면서 차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때문에 주시는 속 깊은 선물입니다.   "스펄전의 365일 묵상 중"
2014-03-28 23:21:20 | 박진태
경건서적중 읽은 내용중에 오랬동안 은혜받은 글을 올립니다.   주께서 심판하신다.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후 5:10)   바울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드라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정결한 빛 가운데 살아가는 법을 안다면, 최후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이루어주신 놀라운 일들을 기쁨으로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면서 항상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생각해야 합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 서서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에 대해 주님과 계산해야 되는 그 순간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거룩한 사람일지라도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실족할 수 있습니다.   죄의 대가는 죄의 완고성입니다. 죄가 우리 속에 끈질기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필코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애를 쓰고 기도해도 계속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게 됩니다. 죄의 대가는 우리가 그 죄에 점점 더 익숙해지며 그 죄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안 될뿐더러, 차츰 그것을 죄로 여기지도 않게 됩니다.   이런 죄와 싸워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이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 단순히 죽는데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안에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 2:20)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때  그들보다 훨씬 더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빛 가운데 사는 것은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앞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주님처럼 매순간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가장 치명적인 바리새주의는 위선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자기기만입니다. 자신은 죽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
2014-03-28 22:49:13 | 박진태
앞으로 종교영화는 계속 이런 변개와 왜곡으로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 같습니다. 영화 son of God의 속임수 이 영화는 The Bible이라는 미니시리즈 중에서 신약 예수님의 사역 부분을 편집하여 영화화 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마켓에서 이 DVD를 쉽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영화 예고편에서 예수 역할을 맡은 자가 '세상을 바꾸자'라는 말을 한 것이 수상해서 이 DVD를 사서 처음 구약부분부터 보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성경 속 예수님은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고 하셨지 단 한 번도 ‘세상을 바꾸자!“ 라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미니시리즈에서 구약을 통해서 보여 지는 하나님은 영화 ‘노아’에서 묘사한 이기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신처럼 보입니다. 신이 정해 놓은 시험에 통과하기 위하여 인간은 고통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는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이런 혹독한 시련을 주는 신에게 마지못해 억지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에게 세 천사가 등장할 때는 처음 등장부분이 죽음의 사신들이 서 있는 것처럼 어둡고 음산하게 묘사됩니다. 롯을 구하러 간 천사들은 명령을 받고 수행하는 잘 훈련된 무사들처럼 칼로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입니다. 거의 무협지 수준입니다. 가장 눈에 거슬렸던 것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입니다. 일단 구약에 나온 성경 인물들은 전부 지저분하고 우중충하며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들로 꾸며 놓았는데 특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늙고 자비심이 없는 여자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이에 반해 이스마엘의 어머니 하갈은 젊고 아름답고 지성적인 여자로 등장하여 매우 대조적입니다.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질투의 눈으로 쳐다보는 얼굴이 얼마나 추하게 나오는지 모릅니다. 결국 사라의 질투 때문에 쫓겨나는 이스마엘과 하갈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매우 마음 아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을 보는 사람들은 원래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장자이므로 모든 것이 상속되어야 하는데 사라의 질투심 때문에 상황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속을 위한 약속의 씨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켰던 모세는 약간 정신이 나간 광인처럼 몰골도 지저분하고 이상한 표정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영화 ‘십계’에서 보여주던 모세의 모습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신비스런 능력을 부여받은 미친사람이 갑자기 등장하여 헛소리를 해서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는 모습처럼 보이게 합니다. 삼손에서도 삼손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결국 사람들을 죽이고 난 후에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었냐는 반문을 함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죽이길 원하시고 좋아하는 잔인한 분으로 묘사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의 모습도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로 등장하고 모든 성경 속 인물들이 비성경적으로 묘사됩니다. 드라마 전체를 통해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답게 나오는 여자는 하갈하고 젊은 나이의 동정녀 마리아입니다. ( 중년의 마리아 역을 맡은 사람은 이 미니시리즈 제작자 부인입니다.) 이 DVD를 보면서 이들이 이것을 제작한 목적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이슬람 종교에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게 된다면 이스라엘이라는 유대민족들에게 더욱 반발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슬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이스라엘보다 더 우월한 존재라는 믿음을 갖을 수 있습니다. 또한 카톨릭 쪽에서는 역시 예수 보다 어머니 마리아가 더 강하고 위대하다는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예수의 모습이 마치 고난 속에서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나약한 아들처럼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은 시작부터 이기적이고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 예수는 마리아가 특별히 신의 사랑을 받은 존재라서 마리아 때문에 태어난 선지자와 같은 인물일 것이라고 유도하고 싶은 것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끝까지 참으시고 사랑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죄악에 대해서는 용납하실 수 없는 거룩하신 전능자 하나님은 이 영화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수가 당하는 육체적 고통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조하여서 영화 속에 뿌려 놓은 악한 의도들을 숨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 속에 늘 따라다니는 여자가 있다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얼마나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수 년 전 베스트 셀러였던 다빈치 코드나 다른 반기독교 서적에서 말해 오던 대로 예수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심지어 그녀를 통해 예수가 낳은 자식이 있다는 거짓 생각을 은밀하게 믿게 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예수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 했다라고 보거나 아니면 그 신의 아들의 후손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믿음을 유도시켜서 나중에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유리하게 하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올바른 성경적 분별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될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그냥 한 번 보는 건데 어떠냐고 생각하겠지만 앞으로 미래에 세계를 위기에서 구할 어떤 인물이 등장하여 ‘세상을 바꿉시다!’ 라고 외친다면 이 영화를 본 믿음이 적은 자들은 영화 속 예수의 모습과 미래의 그 어떤 인물을 동일시 할 수 있을 위험이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잘못된 영화들로 인하여 사람들에게는 기독교에서 섬기는 하나님은 무자비하고 세상에 심판 내리기를 좋아하는 신처럼 비춰질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기독교가 세상에서 욕을 먹는 모습이 많이 비춰지고 있는 시대에 이런 영화로 인해 잘못된 인식이 생긴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할 어떤 인물이 미래에 등장하여 기적적인 능력을 행하면서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은 우리가 신뢰할만한 신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새로운 신을 설정하여 그 신을 따르고 믿자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들이 믿고 따라야 할 신은 ‘예수 믿어야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기적인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나쁜 신이 아니라, 모두를 사랑하여 어떤 종교든 받아들일 수 있는 신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누구든지 예수 없이도 선하게 살면 다 구원해주는 신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통합에 반대하는 기독교는 잘못된 것이고 그들은 비난 받는 것 마땅하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son of God'영화를 보실 분들은 이 영화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제작된 것인지를 분명히 살펴봐야 합니다. 결코 성경 속 예수님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보셔서 주변에 영화를 본 자들에게 분별하여 바로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를.... 출처 : 회복교회 / 향목 http://m.cafe.daum.net/aspire7/9z5w/9522?q=%EC%98%81%ED%99%94%20son%20of%20&
2014-03-25 10:21:13 | 허광무
영화를 참 꼼꼼히 보셨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못한 분들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조목조목 분석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개봉 첫 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보다 빠른 흥행속도를 보이고 있다고 하는 영화 ‘노아’의 성경 변개 즉 실제 있었던 역사에 대한 변개는 참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와 관련된 보도 영상이 있어 주소 링크를 올립니다. *'성경 영화' 줄이어 개봉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4/2014032490337.html#none; 영상 맨 마지막 기자의 코멘트가 참 의미심장합니다. “영화 전문가들은 노아처럼 성서 속에 친숙한 소재만 빌린 채 내용을 재창조(?)하는 경향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런 현상들로 인해 성경의 권위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더욱 해체되고 변질되어 불신자들이 구원받을 가능성을 더욱 떨어트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사탄 마귀는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염원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전도용 영화로 활용될 수 있을까 하는 순진한 기대를 무참히 짓밟은 영화 ‘노아’같은 이런 악한 문화현상은 앞으로 더욱 자주 강하게 일어날 것이 뻔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더욱 예리한 분별력이 갈수록 절실해 지리라 봅니다. 훌륭한 분석의 글을 올려주신 형제님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2014-03-24 23:43:44 | 김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