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님]께 아뢰며, 나를 정죄하지 마소서, 하리라. 어찌하여 주께서 나와 다투시는지 내게 보여 주소서"(욥10:2)
혹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주님께 항변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어쩌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그런 상황속으로 놓이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받는 은혜 가운데는 시험을 당하지 않으면 생전 경험할 수 없는 은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고 좋을 때보다는 역경을 당할 때 믿음이 훨씬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요?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이듯, 어려울 때의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고 연단시키시려고 우리에게 종종 시련을 보내십니다.
그런 시련을 이겨내면 우리는 많이 성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다 나은 성도로 만드시기 위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위로와 특권을 앗아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군사들을 훈련시키실 때 편안한 막사 속에 놔두지시 않습니다. 오히려 거기서 쫓아내어 개울을 건너고, 강을 헤엄치며, 산을 오르고, 등에 무거운 슬픔의 베낭을 지게 한 채 아주 먼 거리를 행군하게 하십니다.
당신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 그 고난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진짜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려고 그런 환난을 허락하신 것 아닐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과 더불어 쟁론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시련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 더욱 달콤하고, 시련 때문에 기도 생활이 더욱 새로워지며, 시련 때문에 이 부족한 제가 주님 발 앞에 더 납작 엎드리게 되었나이다. 주여, 저를 더욱 낮추시어 늘 이 낮은 곳에 머무르게 하소서."
스펄전.
2014-04-10 23:50:40 | 박진태
경건서적을 읽으며-1부터 11 지금까지 제 마음을, 올려주시는 글대로 잘 따라왔습니다. 상황과 맞물려 믿음이 많이 성장된 듯 합니다. 감사인사 드립니다 (폴더인사 꾸벅꾸벅)
2014-04-10 13:09:50 | 목영주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인 말씀. 이 말씀을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성경으로 우리곁에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바른말씀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2014-04-10 12:14:20 | 이정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행2:17)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마4:4)
만일 이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정복하는 무기를 갖는 셈이 됩니다. 두 날이 선 이 예리한 검으로 물리칠 수 없는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시련, 유혹...등 인생의 문제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록된바" 라고 외치면서 이 말씀의 검들을 붙잡고 휘두른다면 모두 다 가볍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록된바"라고 외치면서, 그 말씀을 꼭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을 늘 가까이 하며 탐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여러분이 처한 경우에 딱 들어맞는 약속의 말씀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을 몰라서 그 말씀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위로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감옥에 갇힌 죄수라고 합시다. 열쇠꾸러미 가운데 감방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오직 하나뿐이고, 그 열쇠를 가지면 여러분은 바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열쇠를 찿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길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그냥 죄수로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지만 말고, 가능하면 많이 암기해서 그것들을 마음속에 잘 저장해 두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이 필요한 상황에 처했을때, 어쩌면 그렇게 신기하게도 그 말씀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록된바" 하는 외침과 함께 그 말씀의 검을 붙잡고 휘두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암송된 말씀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시시때때로 보호하고, 위로하며, 가야 할 길로 인도합니다.
말씀은 모든 지혜와 능력의 원천이요, 모든 위로의 샘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이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로 풍성히 거하게 하십시오.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말씀 안에 늘 푹~ 잠겨서 사십시오.
스펄전.
2014-04-09 21:47:09 | 박진태
개인적으로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같은 성경 말씀이지만, 제가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던 하나님의 영광을 잘 표현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150년 전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깊고 심오할까? 교리 중심적인 설교 말씀이 결코 지루하거나 딱딱한 것이 아니구나 오히려, 감정과 의지까지 변화에 이르게 한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 홈피에서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읽을 수 있게 되어 너무 반갑네요. 그리고, 오늘 글을 통해서, 천국의 소망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봅니다 ^^
2014-04-09 17:47:07 | 최재원
글을 쭉 읽어내려가면서 가슴이 뭉클뭉클 해지네요.
저는 결혼을 행복해지려는 목적을 가지고 했던건 아닌가 뒤돌아 보게 됩니다.
사랑은 받으려는 것보다 줄 생각만 해야한다는 말도 제게는 가능한걸까?? 생각해보게 되구요.
요즘 부부설교와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며 많이 찔리고 있답니다.
휴~제 모습이 왜이리 초라한지....ㅜ.ㅜ 숙제만 계속 쌓이는 듯한 기분이네요.ㅎㅎ
숙제를 잘 풀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2014-04-09 16:17:57 | 주경선
아! 맞다 잠시 잠깐 후면 이런 곳에서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게되지....
주님을 깜박깜박 잊고 사는 어리석은 제 마음에 힘이 불끈불끈 솟아납니다.
2014-04-09 11:01:43 | 이정희
"슬피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다시는 그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라"(이사야 65:19)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계21:4)
영화롭게 된 자들은 더 이상 울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슬프게 하던 외적인 원인들이 다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는 우정이 깨진다든가 기대가 무너지는 일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곳에는 가난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핍박이나 비방도 전혀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번민이나 죽음이나 사별에 대한 생각들로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울지 않습니다. 어떤 "불신앙적인 악한 마음"도 그들을 격동시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흠 없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으며 그 분의 형상을 완전히 닮아 있습니다.
죄 짓기를 그친 사람들이 애통하기를 멈춘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울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영원토록 안전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죄는 천국밖으로 쫓겨났고 그들은 천국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절대로 안전한 성 안에서 살면서, 절대 지지 않을 태양빛을 받으며, 절대 마르지 않을 생명수를 마시고, 절대 시들지 않을 나무 열매을 따 먹습니다.
셀 수 없는 세월이 흐르겠지만, 영원은 절대 다함이 없습니다. 영원이 지속되는 한, 그 영원과 함께 그들의 불멸과 축복도 지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며,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이상 울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습니다. 눈과 귀, 가슴과 손, 판단, 상상, 소망, 소원, 뜻, 모든 능력이 다 완전히 충족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것들이 무엇인지, 현재의 우리로서는 아주 희미하게 알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성령의 계시에 따라 천국의 성도들은 굉장히 행복하다는 사실만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들 안에는 그리스도의 기쁨, 즉 무한히 충만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동일한 기쁜 안식이 우리에게도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그다지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닙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살4:18)
스펄전.
2014-04-08 23:08:15 | 박진태
주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에 마음을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느낍니다. 저하늘 위에 우리가 영구히 쉴 곳이 있고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하루에 두세번씩은 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생각해야 겠습니다. 샬롬
2014-04-08 20:22:53 | 임원섭
사전에 찾아보니 안식은 편히 쉼 이라고 되어있네요.
몸은 쉬면서 마음으로 이런 저런 염려나 걱정을 한다면 쉬는게 아니겠지요
오직 몸과 마음이 편히 쉬는 안식은 주님 안에만 있다는 말에 정말 아멘이 됩니다.
2014-04-08 15:39:38 | 이정희
사랑을 받을 생각을 하지말고 줄 생각만 하면 자연히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우리는 영원히 한쪽 날개를 얻을 수 있다...
저를 거스르는 딸이 미워서 아침에 퉁명스럽게 대했는데 자식에게도 일방적인 사랑을 못주는 제 모습을 글에 비추어 보니 너무 부끄럽네요.
이 글을 교훈삼아 아이들과 남편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형제님 정말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04-08 15:17:09 | 이정희
유 형제님, 감사합니다.
감명 깊은 글을 읽으며 제 젊은 날의 부부상이 아쉽도록 반추됩니다.
남은 세월만이라도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 받은 지체로서 영이 장식된 부부이고 싶습니다.
2014-04-08 14:44:28 | 최상기
좋은 글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와 제 아내를 포함해서 우리 교회의 모든 부부들이
성경에 따라 좋은 부부들이 되고 사랑의 가정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4-04-08 11:04:00 | 관리자
너무 좋은 글이네요....
진실한 사랑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날개를 지닌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해 할 때 자연스레 우리 자신이 원하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원리가 너무도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부부의 관계와 잘 연결 되는 것 같네요.
또 정호승 시인이 이런 아름다운 동화도 썼다는 사실을 오늘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2014-04-08 01:54:18 | 김경민
"나의 피난처 되시는 {주} 곧 지극히 높으신 이를 네가 네 처소로 삼았으므로"(시91:9)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끊임없는 변화에 적응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구름기둥이 머무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든 장막을 쳤습니다. 그러나 이튿날이면 아침 해도 뜨기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가는 대로 어디든지 따라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잠시 쉴 시간도 없이 "출발 준비! 이곳은 너희가 쉴 곳이 아니다. 너희들은 아직도 계속해서 가나안을 향해 가야 한다!" 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한 곳에서 오랬동안 머문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샘물이나 야자수 나무를 만나도 거기서 오래 지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안에 변함없는 집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여, 주는 모든 세대에서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시90:1)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관한 한 절대로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늘 부자였다가 내일은 가난해질 수도 있으며, 오늘 아팠다가 내일은 건강해질 수도 있고, 오늘 행복했다가 내일은 낙심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관한 한, 어떤 변화도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제 나를 사랑하셨다면 그분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는 내가 언제든지 안식할 수 있습니다.
기대하던 것들이 다 무너져 내리고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도,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시고, 나는 내가 하나님 안에서 갖고 있는 것 중에서는 아무것도 잃지 않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의지할 수 있는 견고한 처소"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비록 나그네지만, 그래도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편안히 안식합니다. 우리 몸은 이 땅에서 이리저리 떠돌고 있어도, 우리의 영은 언제라도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은밀하고 조용한 처소에서 늘 편하게 쉴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안식은 주님 안에만 있습니다.
스펄전.
2014-04-07 23:30:05 | 박진태
# 비익조(比翼鳥)의 사랑이야기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글은 중국 당나라의 왕 현종과 절세의 미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양귀비와의 사이에 주고받았던 연애편지 속에 나오는 글입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비익조”라는 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새입니다.
“비익조”는 중국의 전설 속에 나오는 새로서
암수 두 마리가 한 몸이 되어 날아다닌다는 전설속의 새입니다.
사이가 좋은 부부나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늘 함께 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연리지”라는 말도 중국전설에 나오는 나무로서
뿌리는 둘이지만 줄기가 하나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된다는 뜻으로
부부의 깊은 애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었던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정 호승의 "항아리"라는 책 속에 비익조(比翼鳥)라는 소제목의 글 내용입니다.
=>
비익조는 태어나면서부터 왼쪽 날개가 하나뿐인 채로 태어납니다.
새에게서 날개가 한쪽뿐이라는 말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온전한 상태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비익조는 불행한 존재로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비익조는 그 자신도 처음에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답답한 알에서 부화해서 눈부신 세상을 보았고
신선한 공기를 맛보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자기 자신이 어떤 생태라는 것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점점 자라면서도 엄마가 열심히 물어다주는 먹이를 부지런히 받아먹는 재미에 빠져
자기 자신의 날개가 한 짝 뿐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차차 시간이 지나고 몸집이 커져 갔습니다.
이제는 날기를 배워야 할 시기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제 서야 비익조는 자기 자신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날기 위하여
온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수없이 둥지 밖으로 뛰어내려도 보았습니다.
날지 못하는 새는 새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던 것입니다.
그 정도의 고통쯤은 어디까지나 날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열심히 정말 열심히 둥지 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럴 즈음 비익조는 하나의 깨달음을 터득하게 됩니다.
날개가 한 짝 뿐이기 때문에 하늘을 훨훨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날 수가 없자 자가 몸을 자세히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뜻밖에도 자신의 몸은 날개가 한 짝 밖에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쪽 날개만으로는 균형을 잡을 수 없어
아무리 노력해도 날 수가 없다는 현상을 깨우쳤던 것이지요.
그래서 놀란 목소리로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왜 나는 날개가 하나뿐이죠?“
그러자 엄마는 조용히 이렇게 답을 해 줍니다.
“놀라지 마라. 너만 그런 게 아니란다.
자, 봐라! 이 엄마도 날개가 하나뿐이지?"
엄마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천천히 몸을 움직여 당신의 하나뿐인 날개를 보여주었습니다.
정말로 엄마의 날개가 하나뿐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는 왼쪽 날개가 하나뿐인데 엄마는 오른쪽 날개가 하나뿐이었습니다.
비익조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껏 하늘을 나는 엄마가
날개가 하나뿐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엄마는 다시 말을 이어갑니다.
"엄마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사는 새들은 모두 날개가 하나뿐이란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궁금해진 비익조는 다시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날개가 하나뿐인데 어떻게 날 수가 있지요?
나는 지금 날개가 하나뿐이기 때문에 균형을 잡을 수가 없어 날 수가 없잖아요?"
비익조는 엄마가 한쪽 날개로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그건, 엄마가 어른이기 때문이란다.
너도 어른이 되면 날개가 하나라도 얼마든지 날 수 있어,
그러니까 날기 위해서는 먼저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거야~"
비익조는 기다림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엄마가 말하는 기다림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어 다시 물었습니다.
"기다림? 엄마, 그 기다림이라는 게 뭐죠?"
엄마는 다시 답을 합니다.
"그건, 우리를 날 수 있게 하는 귀한 것이란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날기를 배우기 전에 먼저 기다림을 배워야 한단다.
우리는 기다림 끝에 날 수 있어~"
엄마의 말씀에 안심은 되었지만 어른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는 싫었습니다.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어른이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비익조는 둥지 안에서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시간은 많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다는 말입니다.
어느 날 아침! 햇살이 비익조에게 말을 건네 왔습니다.
"너도 이제 다 컸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자기가 이제 어른이 된 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당장 둥지 밖으로 나와 날기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오리처럼 뒤뚱거리다가 날개가 없는 오른쪽으로 픽 쓰러지기만 할뿐이었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가 재차 시도해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는 원망이 가득 찬 눈초리로 엄마를 쳐다보며 다시 묻습니다.
"엄마, 어른이 되어도 날 수가 없잖아요?"
그러자 엄마는 방긋 웃으면서 말을 합니다.
"사랑을 한번 해보렴. 사랑을 해야 날 수가 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비익조는 바위에 머리를 부딪친 것같이 정신이 띵~해져 왔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이 세상에 태어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엄마, 사랑을 어떻게 하죠?"
"네가 직접 한번 경험해보렴."
"사랑을 하지 않으면 날 수 없나요?"
"그렇단다.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으면 날 수 없단다.
엄마가 한쪽 날개만으로 날 수 있는 건 바로 사랑을 하기 때문이란다."
날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비익조는 그때야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엄마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 것은
바로 그 사랑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들뜬 마음으로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나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한테 물어보아도 어디까지나 자기 힘으로 사랑을 찾아야 한다고만 할 뿐
더 이상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풀잎아, 사랑이 뭐니?"
그는 길을 가다가 풀잎에게 물어봅니다.
풀잎도 아무 말 없이 그저 웃음만 지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보니 길가에 자기와 똑같이 생긴 새 한 마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그 새와 그만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순간,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그래서 비익조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아! 사랑은 눈이 마주치는 것이로구나.” 이렇게 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것도 알게 됩니다.
풀잎처럼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을 무슨 풀잎의 이름인 줄 알았던 자기 자신이 우스워 그만 픽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자기와 눈이 마주쳤던 새도 그렇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웃음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날기 위하여 서로 사랑을 찾아 나섰다는 사실을 곧 알아차렸습니다.
그도 사랑을 하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날기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말과는 달리 그들은 날 수가 없었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기를 기다려 서로 몸을 밀착시키고 함께 날개를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날기는커녕 그대로 언덕 아래로 곤두박질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엄마한테 대들 듯이 말을 합니다.
"엄마, 사랑을 해도 날 수가 없잖아요!
왜 그런 거짓말을 하세요?"
엄마는 다시 빙긋이 웃으면서 말을 합니다.
"그건 네가 왼쪽 날개를 지닌 새를 만났기 때문이야~
넌 왼쪽 날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서로 힘을 합쳐 날기 위해서는
오른쪽 날개를 지닌 새를 만나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왼쪽 날개를 지닌 새는 오른쪽 날개를 지닌 새를 만나야 하고,
오른쪽 날개를 지닌 새는 왼쪽 날개를 지닌 새를 만나야 한단다.
그게 우리들 만남의 불문율이라는 거란다."
“아이 참, 진작 그런 말씀을 해주시지”
비익조는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하고 싶었으나 속으로 꾹 참고 돌아섰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조용히 그를 불러 세웁니다.
"아들아, 중요한 것은 사랑에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랑은 그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란다.
사랑을 하다보면 자연히 원했던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야“
그는 엄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사랑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의 첫사랑은 분명 날아야 한다는 데에 목적을 둔 사랑이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사랑은 곧 파괴되고 만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라렸지만
산다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힘든 일이라고 여겨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아들아, 엄마가 또 하나 빠뜨린 게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을 하더라도 진실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 다가왔는지 엄마가 다시 비익조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여전히 엷은 미소를 잃지 않는 채 말해 주십니다.
"진실로 사랑하지 못하면 우리는 날 수가 없다.
우리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바로 나머지 하나의 날개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들아, 사랑을 잃지 않도록 해라.
사랑을 잃으면 우리는 다시는 날 수 없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먼저 사랑해라.
사랑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마라.
줄 생각만 해라.
그러면 자연히 사랑을 받게 되고, 우리는 영원히 나머지 한쪽 날개를 얻게 된다."
비익조는 엄마의 말씀을 명심, 또 명심했습니다.
그리고 말씀 그대로 노력하고 실천했습니다.
지금 그는 한쪽 날개만으로도 마음껏 하늘을 자유로이 날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7일(월)
유 용수
note
어른들이 읽는 동화 “항아리”는 10여 년 전에 읽었던 책입니다.
요즈음 교회에서 시리즈로 들려주시는 말씀들을 들으며
“사랑” “가정” “부부관계” 등등, 우리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단어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이 글이 떠올라 여기에 올립니다.
비익조가 내 자신이었다면 나는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면서 말입니다.
2014-04-07 21:41:50 | 유용수
정말 제가 표현 못했던 부분을 너무 상세히 잘 ~ 표현해주셔서 감사해요^^
말씀을 모르는 분들이 너무 재미있다하셔서... 많이 걱정했고 기도했습니다.
할렐루야!!
2014-04-07 08:18:31 | 김경남
아브라함의 믿음생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중략)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갔으며"(히11:8)
구약에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무엇인가로부터의 구별됨으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의 삶에 있어서 구별은 고향땅과 가족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구별됨은 지리적,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 도덕적인 것으로,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목표가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구별되고 분리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삶을 산다는 것은 어디로 가는지를 잘 모르면서도 당신을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믿음'의 삶이지, 이해와 논리의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불러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실제로 깊이 사귀며 잘 '아는' 삶입니다. 이렇게 인격적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해서 깊이 아는것이 곧 우리 믿음의 뿌리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장 큰 착각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우리를 세속적인 성공으로 이끄신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믿음 생활의 최종 단계는 인격의 성숙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만 그것은 잠시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온갖 문제들과 씨름해야 합니다. 믿음의 삶은 날개 치며 하늘로 높이 솟구쳐서 구름 위를 노니는 삶이 아니라, 땅에 발을 붙이고 꾸준히 걸어가는 삶으로, 숱한 시험을 통과하면서 땀 흘려 노력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내면적인 거룩함을 훨씬 넘어서는 그 무엇입니다.
아브라함의 시련을 통과하는 믿음의 모형입니다. 뜨거운 불을 통과해야 순도 높은 금이 나오듯이, 시련을 통과해야 진짜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2014-04-05 15:10:33 | 박진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야 겠습니다.
2014-04-04 13:14:07 | 이정희
음악 하면 그저 노래와 연주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음악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에 대해 올바로 잘 배워서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찬양도 불러야 겠습니다.
2014-04-04 11:56:01 | 이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