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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같은 또래의 아이들를 키우는 입장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에 감정이 이입되어 참 많이 울었습니다. 죽음앞에 섰을때 구원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로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이 결정지어질 것을 생각하니 더욱 안타깝고 두렵고 떨렸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다음에 다음에 하며 미루고있는 나태한 제 모습을 돌아보며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는 말씀이 뼈에 사무치는 요즘입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누군가가 간절히 살고 싶었으나 소유하지 못했던 내일이다" 희생자들이 그렇게 살고싶어했을 오늘 하루를 정말 갚지고 보람되게 보내야 겠다는 마음입니다.
2014-04-25 15:24:52 | 이정희
하나님께서 계시해 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떠하심과 그분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순간 바른 회개가 이루어지고 구원과 성화의 과정을 경험합니다. 이 땅에 사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소중한 기간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04-23 09:56:32 | 조양교
일상 가운데 어느것 하나 기적이 아닌게 없는데,,너무 당연시 하게 살아가는게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것들은 더욱 많이 느낍니다. 요즘 주하가 변비로 고생해서 결국 어린 아이임에도 관장을 했네요 ㅎㅎ 과일, 요플레 같은거 아무리 잘 먹여도 아이는 기계가 아닌가 봅니다. 이처럼 사람의 신진대사 조차도 주님께서 주관해 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가 분명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고 우리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는것 또한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묵상의 글 감사합니다.^^
2014-04-22 00:37:56 | 오광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인간이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것의 백만분의 일이라도 마음으로 부터 인식하는 순간 ...인간의 의가 누더기 같은 의라는 말씀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출발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형제님 좋은 글 감사해요^^
2014-04-22 00:24:55 | 오광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에 집중하는 형제님의 삶의 태도가 글 여기저기에도 그대로 드러났음을 봅니다. 항상 말씀을 사모하고 공부하는 형제님의 모습에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귀한 묵상을 함께 나눠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2014-04-21 23:46:20 | 김대용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지나간 기적은 후에 예수님을 뵈옵는 날 모두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삶의 모든 조각들 중에 의미 없는 것이 없음을 잘 설명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의 자세를 고쳐잡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2014-04-21 23:31:57 | 김대용
(잠 9:10)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거룩한 것들을 아는 것이 명철이니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지혜와 지식에 관해서 묻는다면, 이제는 주를 두려워하는 지혜와 하나님의 거룩함을 아는 지식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의 거룩함이 기준이 아닌, '나'의 도덕적 기준으로 죄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범죄(sins)를 용서해 주신 십자가의 은혜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진리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무한한 거룩함이 이해되는 순간,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거룩함을 순종으로 이루시고, 또한 우리의 모든 죄와 죄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고 부활하신 사건을 믿는 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두려운 백보좌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뿐 아니라,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엄청난 신분의 변화까지 일어나게 된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도덕적 기준으로 발생한 죄의 문제를 포함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이 기준으로 그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죄의 문제까지 해결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공로에 영광을 드립니다.   (행 20:21, 킹흠정) 『유대인들과 또한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두려움 가운데 떨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하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우리를 거룩하다 선언하시고 거룩케 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4-04-21 08:36:02 | 최재원
일반적인 은혜와 일반적인 죄의 결과 (마5:45) -- 그분께서는 자신의 해를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내려 주시느니라.   예수님은 처음부터 말하여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며(요8:25, 히1:1), 모든 것을 만드셨고, 지금도 모든 것을 떠받치고 계신다고 성경은 말한다.(히1: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되고 있는 세계에 살기 때문에, 가장 적당한 정도의 태양 빛을 받고, 온도와 산소와 물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숨을 쉬며 쾌적한 환경 가운데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 혜택은 의로운 사람들만 보는 것이 아니고 , 불의한 사람도 즉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받고 있다. 이것을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라고 한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는 현재 상태로 존재할 수조차 없다.   (창3:17)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롬 8:22) 또 온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일반적인 은혜가 있다면 일반적인 죄의결과(불행)도 있다. 육체를 입은 모든 사람은 타락 후에 사람의 환경에 내려진 그 죄의 결과아래 살고 있다고 성경은 보여준다. 일반적인 은혜에 있어 악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듯이, 일반적인 죄의 결과에 있어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감기 바이러스나 추위가 찾아오면 불신자든 믿는자든 다 마찬가지로 그대로 노출된다. 하나님께서는 몇 가지 목적을 가지고 마지막 때에 예비 된 (육체를 포함한) 완전한 구원에 이르기까지(벧전1:5) 그분의 자녀인 우리를 이 땅에 남겨두셨다. 우리는 병균이든, 추위든, 사고든 일반적인 죄의 결과아래 있는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다.     무슨 대형 사고가 터지면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들을 접한다. 더욱이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이 포함되어 있는 소식을 접하면 그 의문은 더 거세다.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육체를 입고,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동안에는 일반적인 은혜와 일반적인 죄의 결과 아래 살아야 한다. 땅에 분명히 죄가 있는데 땅에 아무 일도 없다면 그것이야 말로 이상한 일이며, 공의가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앞에서와 같이 일반적 죄의 결과를 기록한 성경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락이후 처음부터 선포되었던 그 일반적인 죄의 결과 아래서 의인이든 악인이든 병에 걸리며 육체가 늙어가고, 결국 죽는 일도 경험하게 된다.(히9:27) 사고도 마찬가지다. 슬프고 참담하지만 이런 일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죄와 불행에 대해서 기록한 성경기록대로인 것이다. (눅13:4,5) 또 너희는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깔려 죽은 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들보다 더 큰 죄인이었다고 생각하느냐?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그러나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그와 같이 멸망하리라, 하시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실은 마지막까지 일반적 죄의 결과대로 되어야 하는 사람들임에도, 예외적으로, 중간에 거기서 건져짐을 당한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의 삶은 짧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본질적으로는 몇 십년 더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회개 없이 이 일반적인 저주아래 그대로 죽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눅12:5) 오직 너희가 두려워할 분을 내가 미리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곧 죽인 뒤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능이 있으신 그분을 두려워하라. 참으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을 두려워하라.     한편, 구원받은 믿는 사람들도 일상적인 일에 있어서는 똑같이 조심하고 주의하면서, 말 그대로 주님의 '특별한 돌보심’ 안에 거하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 이 '특별한 돌보심'은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다.    기적은 일상 속에서 수없이 많이 지나갔다.  그것이 드라마틱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는 오늘도 일반적인 은혜와 일반적인 죄의 결과 아래 머물러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온 우주의 일반적인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마라타나!
2014-04-21 06:29:57 | 임원섭
안녕하세요?   성도들의 삶에 유익을 줄 책을 소개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안다고 하는 이들 중에 삶의 변화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분이 많습니다. 이번에 깁 박사님이 지은 책을 소개합니다.   <그분의 기쁨을 위하여>(사무엘 깁 저, 김영균 역)   무료로 게재를 허락해 주신 김영균 목사님과 진리침례교회가 운영하는 도서출판 킹제임스에 감사를 드립니다.   샬롬
2014-04-19 14:04:59 | 관리자
온 국민이 삶과 죽음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때를 살피며 말씀을 선포하지 못했다면, 이러한 때에 예수님만이 생명의 길이며,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의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긴급히 선포하고 소개하는 일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04-18 08:28:22 | 장용철
우리의 청소년들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확신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을 이번 사고를 통해 다시 한 번 절감합니다. 두렵게 해서라도 구원의 메세지를 들려주는 것은 무모한 시도가 아니라 의무이고 부모와 교회의 책임이겠지요. 먼 나라가 아닌 우리 이웃에 이런 참변이 생겨 우리 각자에게도 죽음의 경종을 다시 한 번 울려주었다고 봅니다. 우리 교회 청소년들을 위한 관심과 기도에 힘써야겠습니다. 좋은 글을 올려주어 함께 묵상하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2014-04-18 07:37:19 | 오혜미
미세먼지로 잔뜩 찌푸린 하늘처럼 온 나라가 암울함에 젖어있던 어제와 오늘 자연스레 사람에게 이 지상에서의 삶의 날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잠잠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야 지상에서의 삶의 소중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들이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날 기회는 오직 콧구멍에 생명의 숨이 붙어있는 동안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불신자에게 째깍 이는 시계 초침소리는 천금 같은 기회가 소멸해가는 급박한 경고의 사이렌 소리입니다. 해는 서쪽으로 졌다가 동쪽에서 다시 떠오르고 꽃은 봄이 되면 다시 피어나지만, 인생이 한 번 죽음의 문을 통과하면 그 누구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사망이라는 암초를 만나 서서히 가라앉는 인생이라는 배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유일하신 구주로 영접하고 한시라도 빨리 영원히 가라앉지 않는 구원이라는 구조선으로 갈아타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아 주는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구조하였노라, 하시나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구원받은 신자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믿음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제발 빨리 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예수님을 뵙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을 고백하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그 마음을 이해 못 할 것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주님을 뵈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사람 중의 한 명이였습니다. 21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 22 그러나 내가 육체 안에 산다면 이것이 내 수고의 열매이니라.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택할지 알지 못하노니 23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둘 사이에 끼어 있느니라. 그것이 훨씬 더 좋으나 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 안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해 더 필요하니라.(빌1:21~24) 오늘을 사는 우리가 상상하기도 어려운 고난과 박해를 견디며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았던 바울은 빌립보서 1장의 고백처럼 속히 삶을 마감하고 육체를 떠나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염원조차도 지상에서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위해 기꺼이 뒤로 미룰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천상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삶이 흠모가 되어도 천상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위대한 일들을 오직 지상에서만 수행할 수 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에서 그치지 않고 교회의 일원으로 각자를 불러 주신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 구원받고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다가 조용히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결코 신약교회 성도와 어울리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저 확고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금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많은 분들이 이 구절에서 해외 선교를 연상합니다. 물론 해외 선교의 중요함과 필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한국 땅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어느 밀림 못지않은 복음의 오지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 첨탑 아래에 있다고 해서 저절로 구원받는 것이 아닐진대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이 습관을 좇아 막연한 상태에서 종교 생활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노아의 때와 비슷한 양상을 띠는 지금은 내 옆의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만이라도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 더욱 간절해지는 시기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우리가 외면하면 누구도 구원으로 인도해 줄 수 없는 가여운 혼들입니다. 사람을 구원받는 길로 인도하는 일은 하늘의 천사나 지상의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믿음의 선진들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위대한 책무는 창조물 중에 오직 지금 생명의 호흡을 하는 지상의 성도들만이 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의 고유한 사역입니다. 지금 헤아릴 수 없는 천사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천상에서 우리를 주목하고 간절한 소리로 귀청이 찢어지게 열렬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도 이런 의미에서 이 땅에서의 삶 1분 1초는 천금보다 값진 시간들입니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 속에 들어있는 기회 안에서만 복음을 전해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섬기며 하늘에 예비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거룩한 사역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우리 모두 다음의 의미심장한 격언을 가슴 깊이 담길 원합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누군가가 간절히 살고 싶었으나 소유하지 못했던 내일이다."  ‘단장(斷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창자가 끊어진다는 말로 몹시 슬픈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옛날 중국 진나라의 환온이라는 사람이 군사들과 함께 배를 타고 양쯔강을 건너던 중 병사 하나가 새끼 원숭이를 잡아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멀리 보니 어미 원숭이가 환온이 탄 배를 따라 백여 리를 뒤쫓아 오며 슬피 울었답니다. 그러다 마침내 배가 강어귀가 좁아지는 곳에 이를 즈음에 어미 원숭이는 몸을 날려 배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하지만 어미 원숭이는 지쳐서 그만 바로 죽고 말았습니다. 후에 군사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자식을 잃어버린 아픔 때문에 몸속의 장기인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더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 바로 ‘단장’입니다. 지금 말 그대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부모의 아픔이 메아리쳐 온 나라를 뒤덮고 있습니다. 이런 단장의 아픔을 지켜보며 죽음으로 서로가 나누어지는 순간 누구도 죽음 저편의 사랑하는 사람을 불러올 수 없음을 절로 절감합니다. 제발 지금의 이 뼈가 저리고 쓰라린 심정의 작은 조각이라도 우리의 마음속에 담아 예수님의 마음과 열정으로 세상을 섬기며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참사의 소식에 나의 일인 것 마냥 억울함과 침울함이 밀려와도 구원받은 성도로서 온 힘을 다해 콧구멍에 뜨거운 호흡이 들어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지금 마땅히 내가 해야 할 구체적인 일이 무엇인가를 깊이 또 깊이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문득 통일찬송가 258장의 그 절절한 가사가 생각납니다. 1절: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 누가 저 형제를 구원하랴         우리의 가까운 형제이니 이 생명줄 누가 던지려나 2절: 너 빨리 생명줄 던지어라 형제여 너 어찌 지체하나        보아라 저 형제 빠져간다 이 구조선 타고서 속히 가라 3절: 너 어서 생명줄 던지어라 저 형제 지쳐서 허덕인다        시험과 근심의 거센 풍파 저 형제를 휩쓸어 몰아간다 4절: 위험한 풍파가 쉬 지나고 건너편 언덕에 이르리니        형제여 너 어찌 지체하나 곧 생명줄 던져서 구원하라 후렴: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물속에 빠져간다         생명줄 던져 생명줄 던져 지금 곧 건지어라 11 네가 만일 죽음으로 끌려가는 자들과 죽임 당할 자들을 구출하려 하지 아니하고 12 말하기를, 보라,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그것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시겠느냐? 또 네 혼을 지키시는 이가 그것을 알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분께서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각 사람에게 보응하지 아니하시겠느냐?(잠24:11~12)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딤후4:2)
2014-04-17 23:23:04 | 김대용
우리의 안목이 현세에만 있기 십상인데 자주 영원한 나라에 대한 말을 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해야함을 이번 세월호 참변의 사고를 접하면서 절실히 느낍니다.. 우리의 일상대화로 죽음 그 너머를 이야기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인 거 같아요. 형제님의 묵상을 통해 침착한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2014-04-17 18:20:55 | 오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