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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질때부터 한겨울이 지나 다시 따뜻한 봄이 올때까지.. 아궁이의 불은 은근하게 피어 올라야만 하죠. 세상은 우리를 오싹하게 만드는 한겨울의 차가움이 가득하지만, 교회안에 들어오면, 또 주님이 함께 하시는 제 마음이.. 자매님의 글처럼 안방 구들장입니다. 영원히 따뜻한 봄날, 주님을 만나는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2014-04-14 04:36:49 | 태은상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이사야53:5)   빌라도는 우리 주님을 로마 병정들에게 넘겨주어 채찍으로 치게 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이 휘두르던 채찍은 가장 끔찍한 고문 도구 중 하나로, 황소의 힘줄로 만들어졌는데, 그 힘줄 사이사이마다 날카로운 뼈들이 얽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채찍으로 한번 내리칠 때마다 살이 찢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면서 피로 범벅이 됐습니다.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주님께서 사정없이 채찍질 당하시고, 그 온 몸이 피에 젖어 붉게 물들었을 때 말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모질게 채찍에 맞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처럼 확실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채찍을 맞으시는 주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조금도 불평하거나 분노하지 않으시고, 오직 우리을 위해서 묵묵히 그 모진 채찍질을 견디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러신 것입니다.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셨습니다.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갖은 모욕을 당하며 오래 참고 서 계신 주님을 보라! 죄인들이 전능하신 주의 손을 묶고 자기들이 만드신 창조주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그분의 성전들은 가시덤불로 뒤덮이고 곳곳마다 피가 흘러내린다. 그분의 등은 온통 채찍 자국으로 얼룩져 있지만 그보다 더 날카로운 채찍이 그분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놓는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아 피 흘리시는 그 모습을 항상 우리 마음판에 새기고 삽시다. 우리 죄 때문에 그처럼 값진 대가를 지불하셔야 했던 주님의 피 흘리는 모습을 늘 잊지 맙시다.   스펄전.
2014-04-12 21:45:11 | 박진태
요즘 열왕기 성경을 읽으며 솔로몬을 비롯한 왕들의 행적을 읽고있는 제 마음에 100퍼센트 공감가는 말씀이네요. 비단 왕들 뿐만 아니라 제게도 크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기도를 제 마음에 깊이 새겨야 되겠습니다.
2014-04-11 22:00:34 | 이정희
우리교회 오기전 부터 홈페이지 들여다 보는건 모든 분들이 같이 경험하는건가봐요. 저도 혼자 말씀들으며 정말 많이 들어와 보면서 여기교회는 참 따뜻하다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요즘도 바빠서 댓글을 달지 못하지만 틈만 나면 들어와 훑어봅니다. 경민자매님 말씀처럼 늘온기를 유지하는 아궁이 역할 할수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4-04-11 21:09:55 | 김혜순
"내가 비천하게 되는 것도 알고 풍부하게 되는 것도 알아 어디에서나 모든 일에서 배부른 것과 배고픈 것, 풍부한 것과 궁핍당하는 것을 다 배웠노라."(빌4:12)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비천하게 되는 것"은 알면서 "풍부하게 되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성도들은 과분한 성공에 도취된 나머지, 기독교 신앙을 욕되게 하다가 결국은 바닥으로 곤두박질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실패보다 성공이 오히려 위험합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자기가 풍부에 처할 줄 아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많이 가졌을때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넘치도록 풍족한 가운데서도 제대로 처신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배부르든 배고프든 모든 일에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다 배웠다"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배부름에 처하는 법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실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배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 잘못하는 바람에 고기가 아직 그들 입에 있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다가도 막상 먹을 것이 많아지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많은 선물을 받게 되면, 그 부요함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도 시간이 흐르다보면, 점점 그 마음이 둔해지기 쉽습니다. 배가 불러 하나님을 차츰 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의 것으로 만족하는 삶에 익숙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배고픔에 처할 줄 아는 것보다 배부름에 처할 줄 아는 것이 휠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배부르면 교만해져 하나님을 잊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따라서 기도드릴때 "배부름에 처할 줄 아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주신 그 선물들로 인해 저의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하시고, 배부를 때에 더욱 두려워 할 줄 알게 하소서"   스펄전. 
2014-04-11 20:18:34 | 박진태
자매님의 교회사랑 마음 안에 있는 제 기쁨입니다. 과연 현대인의 마음 밭에도 저런 애틋한 향수가 있을까...! 차디찬 세멘트 동굴 도시에서 태어나 고향이라 부르기엔 너무 어중간한  공간과 속도를 배회하는 젊은 도시민은 이미 외로운 실향민일 뿐이고, 현대 교회 역시 세상과 타협하면서 저질성에 물든지 오래다보니  맛을 잃은 소금들 역시 많은 부분 영적인 이방인 게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스라엘 민족의 출 애굽처럼 빛을 쫓아 모인 우리들의 행렬과 여정을 어찌 감축하지 않으리오. 이처럼 교회 홈피에서 세대와 시공을 초월하여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지체들의 열기가 끝없는 세상까지 펼쳐지길 간절히 원합니다.
2014-04-11 16:43:11 | 최상기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성경말씀이 있어 적어봅니다. 신명기 32장11절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으며 자기 새끼들 위에 너풀거리고 자기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받으며 자기 날개 위에 그것들을 업는 것 같이 주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둥지에서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먹으며 평온히 살고 싶은 새끼 독수리들에게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혹독히 훈련시키는 어미 독수리처럼 예수님도 우리를 시련으로 단련시켜서 믿음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거겠지요.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철지난 유행가 가사도 휘리릭 스쳐지나가네요^^
2014-04-11 13:49:01 | 이정희
자매님의 댓글은 로그인을 안 할 수가 없게 만드는 비법이 있나봐요^^ 연탄불,,, 정말 또 떠오르네요 어릴적 추억이..ㅋㅋ 아마도 아궁이든 연탄불이들 어릴적 보았던 어느 집의 아랫목은 늘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던 것 같아요. ^^
2014-04-11 12:14:55 | 김경민
저는 연탄보일러 세대입니다. 하루에 세번 연탄을 갈아야 했는데 그중 한번은 꼭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시간대라 밤잠을 설치시며 연탄을 갈던 엄마 모습이 떠오르네요. 힘들어도 제시간에 연탄을 갈아야지 불을 꺼트렸다가는 번개탄에 불을 붙여 다시 살리는것이 여간 힘든게 아니었거든요... 또 어릴적 시골 이모집은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때서 난방을 했는데 그러면 안방 구들장 장판이 뜨거운 열기에 시커멓게 그을려있던 기억도 나구요. 그 불씨를 화로에 담아 안방에 가져다 놓고 개다리 소반에 차린것도 별로없는 김치와 청국장과 화로에 즉석으로 구운 김에 간장만 넣고도 맛있게 먹었던 소박한 밥상도 생각나고요^^ 자매님이 정감있는 글을 올려주셔서 옛추억도 떠올려보고 어릴적 사랑으로 가족을 챙기던 부모님 마음을 생각해 보며 그런 사랑이 넘치는 우리 사랑침례교회가 되기를 저도 소망해 봅니다.
2014-04-11 12:04:43 | 이정희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니 시시때때로 교회 홈피를 드나드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이 교회의 교인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그랬으니까요.    오늘 아침에 홈피 여기저기를 구석구석 돌아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앞 문방구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이유나,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이유처럼 우리 교회 홈피가 이렇게 활성화가 잘 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곳에 살아 있는 사랑의 온기가 느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다른 어느 곳을 가 봐도 우리 교회 홈피만큼 온기가 느껴지는 곳은 사실 보기 드문 일입니다.    저는 비록 아궁이 세대는 아니지만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자주 지냈던 경험이 있어서 아궁이에 불 때던 추억이 새록새록 있답니다. 볏짚이나 장작을 부엌 안팎에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아침저녁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면 그 앞에 앉아서 경험한 다양한 추억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하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아궁이 앞을 떠나지 않고 늘 불을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불이 꺼지면 온기도 사라집니다. 우리의 믿음도, 교회의 존폐도 결국은 모두 우리 마음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았을 때 지속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우리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처럼 보입니다. 결국은 주님이 함께 하실 때 가능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문득 마음에 교회 홈피를 보면서 '그래도 아직은 우리 교회가 살아 있구나...... 주님이 함께 하시는구나'하고 안도의 마음을 느끼게 되어 이 글을 기쁜 마음으로, 감사의 마음으로 써 내려갑니다. 또 한편으로는 '나부터 더 잘해야겠구나. 더 신실해야 겠구나'하는 마음의 부담도 생기게 됩니다.   사랑의 온기... 이 불씨가 주님 오시는 날까지 지속되기를, 그래서 이 땅의 차갑게 식어버린 믿음이, 그리고 상처받은 많은 영혼이 다시 온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항상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 역할을 잘 감당하는 우리 사랑침례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2014-04-11 09:37:00 | 김경민
"내가 [하나님]께 아뢰며, 나를 정죄하지 마소서, 하리라. 어찌하여 주께서 나와 다투시는지 내게 보여 주소서"(욥10:2)   혹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주님께 항변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어쩌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그런 상황속으로 놓이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받는 은혜 가운데는 시험을 당하지 않으면 생전 경험할 수 없는 은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고 좋을 때보다는 역경을 당할 때 믿음이 훨씬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요?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이듯, 어려울 때의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고 연단시키시려고 우리에게 종종 시련을 보내십니다.   그런 시련을 이겨내면 우리는 많이 성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다 나은 성도로 만드시기 위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위로와 특권을 앗아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군사들을 훈련시키실 때 편안한 막사 속에 놔두지시 않습니다. 오히려 거기서 쫓아내어 개울을 건너고, 강을 헤엄치며, 산을 오르고, 등에 무거운 슬픔의 베낭을 지게 한 채 아주 먼 거리를 행군하게 하십니다.   당신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 그 고난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진짜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려고 그런 환난을 허락하신 것 아닐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과 더불어 쟁론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시련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 더욱 달콤하고, 시련 때문에 기도 생활이 더욱 새로워지며, 시련 때문에 이 부족한 제가 주님 발 앞에 더 납작 엎드리게 되었나이다. 주여, 저를 더욱 낮추시어 늘 이 낮은 곳에 머무르게 하소서."   스펄전. 
2014-04-10 23:50:40 | 박진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인 말씀. 이 말씀을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성경으로 우리곁에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바른말씀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2014-04-10 12:14:20 | 이정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행2:17)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마4:4)   만일 이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정복하는 무기를 갖는 셈이 됩니다. 두 날이 선 이 예리한 검으로 물리칠 수 없는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시련, 유혹...등 인생의 문제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록된바" 라고 외치면서 이 말씀의 검들을 붙잡고 휘두른다면 모두 다 가볍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록된바"라고 외치면서, 그 말씀을 꼭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을 늘 가까이 하며 탐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여러분이 처한 경우에 딱 들어맞는 약속의 말씀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을 몰라서 그 말씀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위로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감옥에 갇힌 죄수라고 합시다. 열쇠꾸러미 가운데 감방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오직 하나뿐이고, 그 열쇠를 가지면 여러분은 바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열쇠를 찿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길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그냥 죄수로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지만 말고, 가능하면 많이 암기해서 그것들을 마음속에 잘 저장해 두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이 필요한 상황에 처했을때, 어쩌면 그렇게 신기하게도 그 말씀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록된바" 하는 외침과 함께 그 말씀의 검을 붙잡고 휘두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암송된 말씀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시시때때로 보호하고, 위로하며, 가야 할 길로 인도합니다.   말씀은 모든 지혜와 능력의 원천이요, 모든 위로의 샘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이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로 풍성히 거하게 하십시오.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말씀 안에 늘 푹~ 잠겨서 사십시오.   스펄전. 
2014-04-09 21:47:09 | 박진태
개인적으로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같은 성경 말씀이지만, 제가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던 하나님의 영광을 잘 표현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150년 전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깊고 심오할까? 교리 중심적인 설교 말씀이 결코 지루하거나 딱딱한 것이 아니구나 오히려, 감정과 의지까지 변화에 이르게 한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 홈피에서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읽을 수 있게 되어 너무 반갑네요. 그리고, 오늘 글을 통해서, 천국의 소망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봅니다 ^^
2014-04-09 17:47:07 | 최재원
글을 쭉 읽어내려가면서 가슴이 뭉클뭉클 해지네요. 저는 결혼을 행복해지려는 목적을 가지고 했던건 아닌가 뒤돌아 보게 됩니다. 사랑은 받으려는 것보다 줄 생각만 해야한다는 말도 제게는 가능한걸까?? 생각해보게 되구요. 요즘 부부설교와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며 많이 찔리고 있답니다. 휴~제 모습이 왜이리 초라한지....ㅜ.ㅜ 숙제만 계속 쌓이는 듯한 기분이네요.ㅎㅎ 숙제를 잘 풀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2014-04-09 16:17:57 | 주경선
"슬피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다시는 그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라"(이사야 65:19)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계21:4)   영화롭게 된 자들은 더 이상 울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슬프게 하던 외적인 원인들이 다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는 우정이 깨진다든가 기대가 무너지는 일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곳에는 가난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핍박이나 비방도 전혀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번민이나 죽음이나 사별에 대한 생각들로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울지 않습니다. 어떤 "불신앙적인 악한 마음"도 그들을 격동시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흠 없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으며 그 분의 형상을 완전히 닮아 있습니다.   죄 짓기를 그친 사람들이 애통하기를 멈춘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울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영원토록 안전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죄는 천국밖으로 쫓겨났고 그들은 천국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절대로 안전한 성 안에서 살면서, 절대 지지 않을 태양빛을 받으며, 절대 마르지 않을 생명수를 마시고, 절대 시들지 않을 나무 열매을 따 먹습니다.   셀 수 없는 세월이 흐르겠지만, 영원은 절대 다함이 없습니다. 영원이 지속되는 한, 그 영원과 함께 그들의 불멸과 축복도 지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며,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이상 울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습니다. 눈과 귀, 가슴과 손, 판단, 상상, 소망, 소원, 뜻, 모든 능력이 다 완전히 충족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것들이 무엇인지, 현재의 우리로서는 아주 희미하게 알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성령의 계시에 따라 천국의 성도들은 굉장히 행복하다는 사실만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들 안에는 그리스도의 기쁨, 즉 무한히 충만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동일한 기쁜 안식이 우리에게도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그다지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닙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살4:18)   스펄전.
2014-04-08 23:08:15 | 박진태
주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에 마음을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느낍니다. 저하늘 위에 우리가 영구히 쉴 곳이 있고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하루에 두세번씩은 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생각해야 겠습니다. 샬롬
2014-04-08 20:22:53 | 임원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