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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의 섬김으로 7080모임에 더욱 다채롭고 풍성한 나눔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은 저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형제님의 짧은 글을 읽으며 더욱 목자 되시는 주님께 집중하기로 마음 깊이 다짐해 봅니다.
2014-05-02 22:38:23 | 김대용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후에 성도들이 어떻게 의롭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 주셔서 감사하고 요즘 세월호 사건과 맞물려서 더욱 더 구원받은 후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서 의미깊게 읽었습니다.
2014-05-02 13:03:17 | 이정희
샬롬! 7080 모임중에 KJB를 영어로 매일 조금씩 읽는 밴드가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밴드 리더입니다. 그래서 매일 말씀을 반 강제적으로 묵상해서 올리는데요.^^;; 성도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 올립니다. ----------------------- 2014년 5월2일 KJB 리딩클럽 말씀묵상John 10:1-21 I am the door of the sheep. I am the good shepherd. Amen! 어느 목사님의일화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라는 설교 제목으로 인쇄업자에게 주보인쇄를 맡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인쇄되어 나온 주보에는 목사님이 원래 의도했던 제목이 아닌 걸로 잘못 인쇄되어서 목사님이 인쇄업자와 통화를 했습니다. 목사: 설교 제목이 잘못 나왔네요. 인쇄업자: 아 그래요. 죄송합니다. 설교 제목을 뭐라고 수정해야 하나요? 목사: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라고 해주세요. 인쇄업자:"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그러면 충분합니까? 목사: 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그러면 충분합니다. 인쇄업자: 네 잘알겠습니다. 수정해서 다시 보내드리지요. 목사님은 이렇게 통화를 마치고나서, 방금 한 말을 곰곰히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그러면 충분하다." 아 그렇지!! 주님께서 나의 목자시면 인생에 모든게 충분한 거지..허허허^^ 그러고는 다시 인쇄업자에게 전화했습니다. 목사: 인쇄업자양반, 설교제목을 다시 바꿔주시오. 인쇄업자: 예? 뭐라구요. 방금 바꿨는데... 목사: "주님은 나의목자시니 그러면 충분합니다." 라고 바꿔주시오. 허허허~~^^ 여러분의 인생도 이 목사님의고백에 동의합니까?   정말 주님 한분만으로 충분합니까?     P.S. 영어 킹제임스 성경읽기 모임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저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2014-05-02 12:35:56 | 오광일
스펄전 목사님의 짧지만 강력한 메세지가 매번 글을 읽을 때마다 제 마음을 때로는 부드럽게 때론 담대하게 때론 부끄럽게도 하시네요. 목사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014-05-02 11:39:25 | 이정희
"주 우리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과 위대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매.."(신5:24)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일 속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이외의 목적은 하나님께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처럼 이렇게 타락한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요? 인간은 항상 자신의 영광을 구하며 눈치를 살피고, 자신의 능력을 애써 과대평가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려면, 먼저 그 길을 가로막고 있는 우리의 자아가 옆으로 비켜서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종종 어려움 가운데 빠지게 하십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거기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분명히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살면서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주의 영광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비워지고 낮아질 기회가 별로 없었던 관계로, 그 속에 하나님의 계시가 채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별, 빈곤, 유혹, 다툼 등이 휘몰아치는 거대한 대양의 파도 한가운데서 여호와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거기서 또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험한 파도 속으로 인도하셨다면, 이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자하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고난에 빠지면, 바로 그 어려움을 통해서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귀한 경험을 얻게 됩니다. 계속 형통하기만 한다면, 그런 체험은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과 싸우는 가운데,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기이한 손길속에서 우리는 그분의 영광의 광채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고난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찬양합시다.   스펄전.
2014-05-01 21:44:49 | 박진태
의(義)와 의(儀)에 대한 바른 정의를 해주셔서..너무 동감하며 읽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의(義)를 통해 의(儀)를 나타냄에 남은 삶을 통해 집중을 해야만 주님이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주님의 통치가 세상에 임하여 믿음의 자녀들이 모두 의(義)의 옷을 입고 오직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2014-05-01 00:08:22 | 태은상
"너희 믿음의 단련"(베드로전서1:7)   단련을 받지 않은 믿음도 참 믿음은 되겠지만 틀림없는 작은 믿음일 것입니다. 믿음은 단련을 받지 않는 한 난쟁이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주위의 모든 것이 대적해 올 때 가장 잘 자랍니다.   그래서 사나운 비바람은 믿음을 훈련시키는 훈련 교관이요, 뇌성 번개는 믿음을 비춰주는 조명입니다. 바닷물이 잔잔할 때 돛을 한번 펴 보십시오. 배가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항구를 향해 나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잔잔한 바다 위에서는 배도 잠을 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찬 바람이 윙윙 불며 거센 파도가 일어날 때 한번 돛을 펴 보십시오. 그러면 배가 심히 요동하고, 갑판에는 파도가 넘실대며, 돛이 바람에 잔뜩 부풀어 올라 돛대는 삐걱거릴지 모르지만, 배는 바라던 항구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빙하 가까이서 자라는 꽃을 보십시오. 그렇게 곱고 예쁜 푸른색 꽃도 없을 것입니다. 남극이나 북극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십시오. 그보다 더 환하게 반짝이는 별도 없을 것입니다. 모래만 있는 사막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셔 보십시오. 물맛이 그렇게 달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역경 속에서 살아남아 승리한 믿음만큼 소중하고 귀한 믿음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단련을 참고 견딜 때, 비로소 진짜 신앙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강제로 물속을 통과하는 체험을 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엄몰하는 파도 가운데서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 지 전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단련을 많이 참고 견딜수록 강하고 굳세며 확실해집니다. 따라서 믿음이 소중하듯, 믿음의 단련 역시 소중한 것입니다.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이 말을 듣고 낙심하지 않기 바랍니다만, 여러분은 앞으로 단련을 많이 겪게 될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이 어느 정도 되는지 단련을 통해 반드시 시험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믿음의 단련을 통해 많은 것을 얻지 못한다 해도, 여러분이 갖고 있는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로 인해 어느 정도의 거룩한 자신감이나마 얻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이 규칙에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을 점점 더 많이 받아 마침내 산을 옮기고, 불가능한 일들을 정복하는 믿음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스펄전의 묵상.
2014-05-01 00:04:04 | 박진태
이 글을 제 아이에게 읽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창조의 영역을 뛰어 넘어보려고 애쓰는 많은 과학자들을 볼때마다, 인간의 겁없는 도전이... 정말 교만하게 느껴집니다. 생활속에서 느끼는 참된 교훈에 감사합니다.
2014-04-30 23:48:02 | 태은상
너무나 안타까운 참사로 인해 곳곳에 애도하는 이들이 넘치고 심지어 유가족 한 명 살고 있지 않을 저희 동네도 대로변 여기저기에 어떤 단체에서 참사 희생자를 애도한다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습니다. 형언하기 어려운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것은 매우 합당한 일이지만 과연 세상 사람들이 그 이상 이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와 교훈을 알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참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올린 글 곳곳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란 문구가 실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지켜줄 수 있는 건가요? 아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인간은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세상이 생산하는 악과 그것으로 인한 악한 열매와 심판으로부터 지켜줄 수 없는 무력하고 무능한 존재인 것을요....... 어느 날 예고 없이 우리 앞에 놓인 참사를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진지하고 바르게 풀어 주신 글에 참 감사합니다.
2014-04-30 22:09:46 | 김대용
의(義)와 의(儀)의 사전적 뜻을 살펴보았습니다. 의(義) - 옳을 의 1. 옳다. 2. 의 의(儀) - 거동 의 1. 거동. 행동하는 짓이나 태도. 2. 법. 법도(法度). 준칙(準則). (1) 본보기. 모범(模範). 귀감(龜鑑). (2) 예식(禮式). 예(禮)의 전례(典例).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것이 의(義)이고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의(義)에 亻(사람인 변)을 더하면 의(儀)가 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보기에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보기에 옳은 것이 하나님께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잠14:12절) 의(儀)를 통해 의(義)로 가는 것은 종교이고, 의(義)를 통해 의(儀)가 나타나는 것은 복음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의(義)가 대단히 중요하고, 구원받고 난 이후 육신의 몸을 입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향한 삶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의(儀)가 또한 중요합니다. 물론 이 의(儀)는 시대와 장소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는 있으나 의(義)를 검증함으로써 이해/분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하나님을 나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밖으로 드러난 의(儀)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일들이 생겨나서 마음이 몹시 우울합니다. 의(儀)를 통해 의(義)로 이르려고 하는 것은 율법주의요, 외식주의요, 종교주의임을 분명히 경멸합니다. 그러하지만 의(義)에 이르른 사람들이 세상에 기준에도 못 미치는 의(儀)를 행사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고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점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각성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자신도 내 마음의 상태와 사람들과의 관계, 경제적 관점, 세속문화에 대한 감각 등이 일반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차이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얄팍한 성경지식 하나만을 가지고 우물 안에서 우월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성해 봅니다. 세월호의 사건이 구원파라고 하는 종교집단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혼의 구원을 전파하는 복음의 핵심이 훼손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고 상황이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뿐이고 항상 하나님의 기준에는 미흡함을 알고 다른 사람의 티끌보다는 나의 들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월호 사건을 본보기로 우리 삶의 여러 부분들을 돌아보고 점검해 보는 유익한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안주하는 가운데 부패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세상 사람들로 부터 지탄받는 존재가 돼 버린 것 같습니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8276688&cp=du 
2014-04-30 10:17:43 | 조양교
참으로 동감해요~ 주님께 매일 순간마다 기도하며 은혜속에 살지요. 자동차를 운전하는것은 살인무기를 작동하는것과 같아서 그날 무사히 돌아오면 감사하다는 택시운전자의 말 속에서도 우린 감사의 대상이 하나님임을 알지요. 어떻게 하나님을 안 믿고 살수있는지......
2014-04-30 09:15:59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