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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형제/자매님들 저는 지난 20일 동안 우리나라 반대편에 있는 캐나다 땅을 밟고 왔습니다.   거기에는 오빠 가족들과 여동생 그리고 큰딸이 살고 있기에 철원에 사는 여동생과 동행했습니다. 아마도 남편을 두고 혼자 가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민 생활 38년이 된 여동생이 하도 보고 싶어 하므로 어렵게 시간을 내어 한국에 사는 여동생과 함께 갔습니다. 그동안 몇 번 오가며 보고 최근에는 삼 년 전에 만나고 왔지만, 또 그리움이 쌓여서 이번에 만나고 왔습니다.   이번 여정 중에 보았던 캐나다 날씨가 어찌나 좋던지 그 감동을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캐나다의 하늘    청명하게 맑은 하늘에 눈부신 흰 구름이 갖가지 아름다운 모양으로 흘러가고 있네.    공기는 상쾌하고 나무는 검푸른 색으로 땅 위에 줄지어 서 있구나.  비가 쏟아지다가 한 두어 시간 만에 뚝 그치고 언제 비가 왔느냐는 양으로 해맑은 햇빛이  촉촉한 대지를 말리네.     비가 와도 홍수 날 일이 없어 걱정이 없는 땅 그러니 땅 위에 나는 곡식과 맛있는 열매의   수확이 풍성하구나 !     너 캐나다 땅은 축복받은 땅이구나!     그곳에 나의 형제·자매 조카들 그리고 사랑하는 딸 손자   애타게 그리워하는 동생 윤황용 그 이름이 마음에 밝혀있네.     꿈에도 못 잊을 너 캐나다 땅이여 너는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구나!     그곳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캐나다 땅에서 여러 인종이 함께 섞여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문득 과연 저 사람들은 무엇을 향하여 어디로 달려  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글을 하나 써 보았습니다.                                              세월의 끝                 세월은 쉬지 않고 흐르고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날이지만                그 날들이 쌓여서 인생의 무게가 더해 가는구나!                그 무게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졌을까?                          지나온 걸음걸음이 말해 주는구나!                너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어둠의 자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똑바로 알고 살아라 .                그렇지 않으면 너도 모르는 그 날 덫과 같이 너의 인생의              끝 막이 내려질 것이다.                그때는 후회해도 때는 늦으리............                                                                    토론토 딸 집에서 새벽에 2014. 7. 7             
2014-07-18 05:41:39 | 윤정용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성화라는 말을 쓰거나 들어본적이 없어서 사랑침례교회에 와서 성화라는 단어를 들었을때 처음엔 조금 낯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원받은 주님의 자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성화를 이루어 가는 삶을 사는 것임을 마음으로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연 내가 성화된 삶을 살고 있나 하고 저를 돌아보면 주님앞에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글을 읽으니 그것은 곧 제가 말씀을 잘 안읽고 안듣고 안묵상하고 안연구했다는 것이었네요. 세상에서 무엇을 배우려해도 기본에 충실해야됨을 가르치듯이 성화를 이루어가는 삶도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해야됨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07-17 13:34:39 | 이정희
저의 성화되는 진도가 더딘 이유가 이거였군요! 저 혼자만 말씀으로 무장해도, 돌아오는 아이들과의 방학은 성공할 듯 싶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말씀을 가까이하는 정도를 넘어 무장해야만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구나...깨닫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4-07-17 13:10:44 | 목영주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요17:17)   거듭남은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의 생명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성화는 그렇게 새로 태어난 사람이 주님의 장성한 분량으로 점점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 성화는 거듭날 때부터 시작되어 평생 계속 됩니다.   성화는 다음의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 집니다. 첫째, 옛사람을 매순간 단호하게 십자가에 처형하는 것, 둘째, 주님의 말씀에 매순간 순종함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늘 샘솟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둘 다 우리의 힘으로는 안되고,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성화를 이루는 장본인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께서는 반드시 진리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성화에 필요한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인내자로, 우리가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신 다음에, 그것을 아주 정확하게 분명하게 적용하심으로써, 우리가 받은 이 말씀들이 우리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진리가 우리를 성화시킵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진리를 듣거나 읽고, 붙잡고 묵상하면서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성화는 진도가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늘 가까이 해야 우리의 성화에도 진보가 나타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진리의 말씀을 꼭 붙잡으십시오.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듣고,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늘 가까이 하십시오. 언제나 말씀에 푹 잠겨 사십시오.   당신의 성화는 당신이 진리의 말씀을 얼마나 가까이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스펄전의 묵상. 
2014-07-16 23:22:18 | 박진태
오랜만에 글을 올리셨네요, 형제님의 글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 같습니다. 같은 사물과 샅은 현상을 보아도 느끼는 감정이 사뭇 다르구요 인생의 깊은 장맛과 같은 글 감사합니다.
2014-07-16 08:55:29 | 조양교
“사랑이란 낯의 햇빛처럼, 밤의 달빛처럼 그렇게 스며들 듯 영원히 함께 같이 사는 것이다.” 형제님.. 마지막에 남기신 구절의 사랑을 소망하며.. 그런 사랑을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콩콩 뛰네요. 주님, 영원히 함께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07-14 22:38:16 | 태은상
샬~롬 형제님의 글을 읽고 어떤 분인지 궁금해 홈피 사진을 부지런히 살펴 보았습니다~ 얼굴을 뵈니 아, 이분이구나 하며 스치듯 인사만 하고 지나갈때가 많았음을 기억 합니다~ 오늘 아침 남편과 조그만 일로 다퉜는데 이글속의 새들 부부처럼 싸우지 않고 그냥 조잘대고 사랑하며 살순 없는건지 잠시 생각해 봅니다.. 해가 졌으니 마음의 분을 풀고 남편과 화해로 다시 사랑을 시작해야 겠습니다.. 자연을 닮아가게 하는 좋은글 감사히 잘 읽고 나갑니다~^^~
2014-07-14 21:21:12 | 이명숙
짧지만 강하게 와 닿는 실제적인 말씀이군요. 생활속에서 계속 확인해 가는 것은 염려는 주님께 대한 인격적인 신뢰와 반비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믿는다는 말보다 신뢰한다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박형제님과 간단한 예기는 자주 나눴지만 좀 더 진지한 교제를 나눌 기회가 없었군요. 조만간 기대하겠습니다.
2014-07-14 15:32:19 | 임원섭
형제님이 사시는 옥상 정원이 무척 궁금하네요. 나름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꽃과 작은 나무가 우거진 아담하고 멋진 정원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려봅니다. 글을 읽어 내려가며 제 얼굴엔 치아는 드러나지 않고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는 흐믓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참새 부부의 모닝콜로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실 형제님이 아주 많이 부럽기도 합니다. 낮의 햇빛처럼, 밤의 달빛처럼 그렇게 스며들 듯 영원히 함께 같이 사는 그런 주님의 사랑을 일상속에서 느끼고 또 그 사랑을 소박하고 아름답게 표현하며 사시는 형제님으로 인해 그 사랑이 제게도 시나브로 ~시나브로 전달되어 옵니다.^0^
2014-07-14 01:49:53 | 이정희
  # 늦은 나이에 깨달은 사랑!   내가 살고 있는 집 옥상에는 이런저런 꽃들과 함께 작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는 이 숲에 반하여 자주 옥상으로 올라가 그것들과 함께 숨바꼭질을 하며 즐깁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거진(?) 숲답게 날마다 새들의 잔치들을 봅니다.   또 내방의 창문틀 틈 사이에는 어느 참새부부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 참새부부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면 하루를 열지 못할 만큼 그 참새부부의 울음소리들을 즐기기도 합니다. 요즘엔 그 참새부부의 떠드는 소리에 아침잠을 깨는 것이 크나큰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아침, 참새들의 조잘대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눈 비비고 일어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즐거운 짜증을 부렸습니다.   “하, 고놈들 참! 되게 시끄럽게 떠드네.......”   그리고는 침상에 앉아 그 참새부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저들 부부는 살아생전에 연애소설 한 권도 안 읽고 슬픈 영화 한 편도 안 보는 것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사랑은 잘 해서 새끼들도 잘 낳고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사랑을 잘 해서 오순도순 화목하게 지내어. 아침마다 시끄럽게 내 단잠을 깨게 하는지 그것이 매우 궁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어째서 사랑하는 일마저도 이렇게 복잡하고 미묘하며 까다롭기까지 한 것일까? 도대체 여자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따끈한 커피까지 한 잔 타놓고 홀짝이며 계속 생각해 보았습니다.   새들처럼 저렇게 단순하면서도 날마다가 잔칫날인 그런 사랑을 할 수는 없을까? 도대체 저놈들은 어느 누구에게서 사랑을 배운 것일까?   한국 남자들은 사랑을 잘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을 할 줄 모르느냐하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영화배우들조차도 입맞춤하는 장면이 나오면 무슨 벌레 씹은 표정이 되곤 할 정도로 사랑을 잘할 줄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미국 남자들은 아무 데서나 침 한 방울 안 튀기고도 뒷머리가 간질간질할 정도로 “아이 러브 유”소리를 너무나도 잘 합니다. 그러나 한국 남자들은 평생에 한 두어 번쯤이나 “사랑해”소리를 했을까요? “꼭 말로 해야만 아느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앞세우고 그 한 마디마저도 마지못해 “그래~, 사랑해~~. 별걸 다가지구~~~” 이렇게 말 해 놓고는 돌아앉고 맙니다.   그러면서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잘 한다는 미국남자들도 어째서 이혼율에 있어서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판이라 하니 이건 또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난감합니다.   세상의 각종 인종들이 사랑하는 모습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랑하는 법에는 정도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모두가 다 잠깐 좋아하다가 결국엔 길게 울고 짜기는 다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랑에는 과연 정도가 없는 것일까?”   세상의 대중가요는 사랑이란 슬픈 것이라고 밤 낯없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대중가요는 마치 사랑이란 슬퍼하기 위해서 있는 것처럼 깨어져서 슬프고, 갈라져서 슬프고, 버림받아 슬프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이어서 슬프고, 내 마음을 몰라주어서 슬프고 온통 슬픈 사연들뿐입니다. 만약에 누군가 "사랑이란 즐거운 것이다."이렇게 노래했다면 대중가요의 배신자라도 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대중가요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뿐인가요? 시와 소설 등 문학작품에서는 사랑이란 어쨌든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어야만 합니다. 만날 듯 이루어질 듯 남의 애간장을 있는 대로 다 태우다가 "아, 이제 조금만 더~" 하게 되면 "오,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여~" 하고는 살짝 옆으로 비껴 지나갑니다. 이렇게 이야기는 한참 삼천포로 빠져 버리고 맙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만 그렇게 끝장나고 마는가?" 이렇게 종지부를 찍으려할 때, 이 무슨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 꿀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두 사람 중 하나가 그만 불치의 병으로 눈 깜작할 사이에 세상을 떠나고 소설책의 이야기는 어느 듯 마지막 뒷장만 남깁니다. 어디다 대고 하소연 할 데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노래는 슬픈 노래일수록 더 잘 불려지고 소설책도 기구한 운명의 이야기일수록 그 기구한 운명처럼 더 잘 팔리니 인간이란 정말로 알다가도 모를 존재들입니다. 참으로 사랑이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예전에 교회에서 즐겨 불렀던 복음송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낯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습니다. 해의 햇빛이란 무엇이고 달의 달빛이란 무엇일까? 햇빛 과 달빛은 뜨겁기와 밝기는 서로가 사뭇 다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똑같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둘 다 우리에게 스며든다는 것입니다.   낯의 햇볕이 따뜻한 까닭은 햇빛이 우리 몸속에 스며들기 때문이고 밤의 달빛이 은은한 까닭도 달빛이 우리 눈에 그 은은함이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햇빛과 달빛은 이렇게 만물 가운데 스며들어 만물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섭니다. 만물 속에 스며들어 만물의 생명력이 되어 주는 햇빛과 달빛! 풀 한 포기 나무 한 잎에 스며들어 삶의 힘이 되어 주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스며들어 반짝이는 즐거움이 되어 주며, 꽃 한 송이 속에 스며들어 빵긋 웃는 웃음으로 위로해주는 햇빛과 달빛! 낯엔 그런 햇빛처럼 밤엔 그런 달빛처럼 그런 사랑으로 우리가슴속에 스며들어 영원토록 그렇게 같이 살수는 없는 것이었을까?   슬픈 영화가 왜 슬픈가? 시나 소설책의 주인공들은 왜 그들의 운명이 기구한가?   그토록 사랑하던 두 사람이 끝내 같이 살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기 때문에 슬프고 기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슬픈 영화의 주인공들보다도 그런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들보다는 차라리 내 집 옥상의 새들이 얼마나 더 행복한가! 차라리 내 창문 위에 둥지를 튼 참새부부가 얼마나 더 행복한가!   새들은 생전 슬픈 영화 한편도 안보고 슬픈 유행가도 안 부릅니다. 그러나 평생 울고 짜고 하는 일없이 아침마다 내 단잠을 깨울 정도로 사이좋게 조잘대며 늙도록 같이 살아갑니다. 새들이 헤어지는 것을 나는 본 일이 없습니다. 포수들의 산탄 총알에 의해 기구한 운명이 되기 전에는 말입니다.   제아무리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사랑이라 할지라도 같이 살지 못하면 슬퍼집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같이 사는 것이라고 마침표를 찍고 싶습니다. 사랑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이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같이 살면 됩니다. 같이 사는 것 빼 놓고 사랑이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모든 노력을 다 바쳐서 어떻게든 같이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들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도 온 세상 사람들과 함께 영원토록 같이 살기 위함이 그 모든 목적이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헤어지는 것을 무엇보다도 제일 미워하셨나봅니다. 헤어지는 것은 같이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같이 살지 않으면 영원히 사랑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한 문장을 남겨 놓고 싶습니다.   “사랑이란 낯의 햇빛처럼, 밤의 달빛처럼 그렇게 스며들 듯 영원히 함께 같이 사는 것이다.”   할렐루야!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2014년 7월 12일(토) 유 용수.  
2014-07-12 22:54:15 | 유용수
우리가 하는 이 세상의 염려는 항상 사소한 것들이라는 말씀이 정말 마음에 와닿습니다. 곰곰히 제가 고민하고 염려하는 것을 생각해보니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먼 장래의 먹고 입고 사는 의식주에 관한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네요. 심히 부끄럽습니다.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이 자기 것들을 염려할 것이요(마6.34)
2014-07-07 14:54:48 | 이정희
"너희 생명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까, 너희 몸을 위해 너희가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25)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상식적인 차원에서 볼 때 당연히 염려하는 것을 가리켜 불신앙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일에서 주님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될 때까지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는 어디에 있느냐? 이번 휴가 계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느냐? 네가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혼란에 빠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부분 주님 아닌 다른 것을 맨 앞에 놓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 말라" 미리 염려하느라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지 마십시오. 염려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돌보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세세한 일들로 늘 염려를 달고 삽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심어 주시는 말씀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무엇이라고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마귀입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의 염려입니다.   우리가 하는 이 세상의 염려는 항상 사소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보거나 손에 쥐지 못하면 믿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것이 불신앙의 시작입니다.   이 불신앙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2014-07-05 23:02:11 | 박진태
형제님의 글을 읽고 나니, 한 마디로 "주님만 바로보는 삶"이라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어떻게? 보다는 왜? 라는 외 글자가 마치 돌처럼 저에게 날라오는듯 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애정결핍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삶. 하늘의 보상만 바라보는 삶. 그런 삶이 아직까지는 추상적이라고 느껴져서 제 자신이 괴롭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실제적으로 제 삶에 다가오고, 느껴질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07-04 10:41:55 | 김상진
많은 공감을 합니다. '나는 알아~' 또는 '너보다 많이 알아~' 라는 식의 위선의 모습이 제 안에도 가득한 것 같습니다. 이런 공식이 제 마음에서 완전히 사라지길 간절히 원하는 바입니다. 겸손한 복음전도자가 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4-07-04 10:34:34 | 김상진
참 요목조목 잘 말씀해주셔서 그날의 교제가 생생합니다. 인생선배님들의 조언으로 월요일은 다 찾아들으며 폭우를 만난듯하였으나 들으면 들을수록, 보면볼수록 왜이리 말씀이 달콤한지요.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2014-07-04 00:03:48 | 이청원
형제님의 글을 통해 이 시대의 여러 모습에 대해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같은 성도이지만 소명을 받고 양떼(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고 바르게 이끄는 목회자(목자) 혹은 설교자의 직무는 직업이 아니라는 언젠가 들었던 어떤 목사님의 말씀에 저도 100%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천만 가지 직업보다 열등해서가 아니겠지요. "이렇게 슬프고도 악한 시대에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직무 중에 가장 위대한 직무"라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명쾌한 말처럼 그 어떤 직업이나 직무가 소유할 수 없고 비교 조자 불가한 육중한 가치를 지니기에 직업 혹은 돈벌이 수단이라 감히 칭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목회의 직무가 이렇게 타락하고 그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진 현실을 보며 목회자와 성도들 모두는 양방향에서 입체적으로 사안을 보며 성경을 기준으로 공정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자칫 현시대의 타락을 피하고자 다른 극단으로 치우치게 되면 구더기가 생길까 무서워 장을 못 담그거나 목욕물만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귀한 글에 감사합니다.
2014-07-03 21:16:30 | 김대용
왜 바른것을 알면서 바르지 않은것들을 버리지 못할까? 바른것을 알았으면서 왜 떠나는것일까? 정말 공감하는 왜?입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 해온 분 일수록 자연스레 몸에 습관화 되어 있는 것이 많지요. 바르지 못한 것을 알면 버리기가 필수인데 그게 안되면 어려움에 처하는 것 같아요. 알고 - 결단하고 - 실행하기 까지 자기부인의 길이지요. 우리 모두가.
2014-07-03 20:23:28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