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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암송반의 신실한 행보 위에 주님의 은혜가 넘치시길 원합니다. 멤버 형성 초기에는 형제님들의 참여가 저조한 편이였습니다만, 근래 많은 분들이 함께하시어서 한층 성장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도구로서의 정진하심을 축하드립니다.
2014-08-18 07:25:20 | 최상기
우리의 영적 일용할 양식을 위해 연구하시며 고민하하시는 목사님을 위해 첫번째로 기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도 주부는 가족의 건강한 식탁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위해 애를 쓰는데 우리 성도님들을 위해 밀씀으로 바로 인도하고자 애쓰시는 목사님을 위해 당연히 기도 해야되겠지요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08-18 06:49:01 | 윤정용
우리 교회에는 많은 부서가 있는데 그중에 암송반이 시작된지는 한 일년반이 된겄같습니다.   거의 교회에서 활동하는 부서는 봉사와 섬기는 일인데 암송은 자신을 위한 내적인 나 자신을위한 말씀으로 체우고 싶어서 노력하며 하나님의 선하신뜻을 알고자 모인 그룹이지요.   그동안 꾸준히 한17. 8 명씩 늘 모여서 아침열시쯤 모여서 암송을 하고 서로 나누고 했는데 요줌들어 모이는 교실이 좁아서 더 넓은 장소로 옯겼습니다. 거의 자매님들만 모이고 리더인 임원섭 형제님의 아들 두명이 었는데 지금은 10명 가까이 형제님들이 찹석한담니다   양적으로만 부흥이아니라 질적으로 성숙되었다는 것을 느낌니다. 리더 되는 임형제님을 도와서 아니 더 열심히 돕는 형제님이 있어서 밴드에서  체팅으로 서로 말씀을 나누며 은혜가 풍성하답니다. 머리로만 달달 외우는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는것.  내 주위에있는 이웃을 사랑하는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라는 것을 뼈속깊이 느끼게 됩니다.   8월 두째주에는 월예회로 처음으로 세분이 말씀을동해 일어났던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승리한것을 형제님 두분과 자매님한분하고 세분이 간증을 하였습니다. 주일 아침 9시 30분에 시작되었는데 저는 늦게 참석해서 밴드에 올린 동영상으로 들었습니다.   형제님이 하신 간증인데 회사에서 어려운일을 만나 힘들게 4일 밤을못자면서 그일이 잘 해결되어서 이제 상관 이 나를 더 신임해 주시겠지 했는데 반대로 여러사람 앞에서 망신을주고 괴롭히는데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답니다.   왜 나를 괴롭히는지 이해가 안되고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사실 그대로 고했답니다. 하나님 제가 견딜수가 없습니다. 사실대로 상관한태 이야기 하고 다른 부서로 옮겨달라고 할가요 했는데 겸손히 낮아지면 때가 되면 높여주신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그말씀을 묵상하며 기도 했드니 마음이 평안해지고 상쾌한 아침같은 기분이 아주 좋아졌답니다.   얼굴이 어두워져서 다녔는데 누구를 만나도 떳떳하고 얼굴이 평안해진것을 느꼈답니다. 그날도 서류를 들고 부장한태가서 결제를 맡을려고 했는데 똑바로 보지도 않고 사람을 멸시하는 태도로 대했 답니다. 꼬치꼬치 따지면서 이것도 고치고 저것도 고치고 말씀을 하는것을 예 알겠습니다 다시 고치겠습니다 하고 계인적으로 한말씀만 드리겠습니다 했드니 하라고 하드람니다. 제가 오늘날까지 제업무를 체선을다해서 열심히 한것을 내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않게 일했습니다. 그러나 잘못한것이 있으면 용서해 주세요 체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했드니   바로 그거야 일에 능력이 아니라 태도였어 . 무슨일이나 시키면 예 가 아니고 그건 저렇고 이건 이래야 되고 니가 내 상관이야 하드람니다. 그때 깨달은것이 아무리 좋은 의견이라도 내 생각을 설명하는것보다. 예 .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는것이 밑에 사람의 태도인것을 깨닫고 고첬답니다.   그 이후 직장생활이 보람이 있었고 섬기는 자세로 열심히 일해서 진급도 되어서 하나님께 삶으로 영광을 올려 드렸답니다. 아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래야 빚과 소금의 사명을 할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짧은 간증이였지만 은혜가대어 세번을 들었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지칠때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할때 선하게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믿음으로 승리하게 됨을 체험으로 느끼게되지요.   앞으로 한달에 한번씩 월예회때 간증을 두사람씩 하기로 했는데 말씀의 체험과 인도를 받아 삶으로 승리한 좋은 간증이 나오리라 확신합니다.   지난 어제 17일 주일에는 27명이 모여서 말씀을 어떤방법으로 암송을 해야 되는지 들었습니다. 식당 당번 자매님들과 빠지는 분들을 합치면 30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 암송반에서 열심히 배우고 나누고 은혜받고 있답니다.   바라기는 더 많은 분들이 함께 참예해서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힘있는 성도 말씀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더 많아 졌으면합니다. 꼭 암송반이 아니어도 말씀으로 무장하고 삶으로 하루 하루성령님의 인도를 받으시는 성도 님들도 많이있으실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사랑교회 성도님들은 말씀으로 승리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는 분들이 되십시다
2014-08-18 06:32:02 | 윤정용
아멘되는 묵상입니다. 이미 우리 성도들은 목사님의 영육의 강건함을 위해 , 가정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교회 인도하는 여러 형제들을 위해서도 각 부서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지요. 자원하여 일하는 여러성도들이 있어 우리교회가 매주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가고 있지요.
2014-08-16 23:50:26 | 이수영
"형제들아,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살전5:25)"   당신을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본문은 목회자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해 영혼을 살릴 수도 있고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을 대언하는 목회자들은 마귀가 특별히 노리는 저격 대상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목회자들을 넘어뜨리려고 항상 애쓰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사실 목회자들은 여러분은 당하지 않는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고 또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견디다가 무너질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받기도 하며, 그로 인해 많이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목회자들은 매일 매순간 십자가에 못 박혀서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항상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도록... 그렇게 주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자신의 뜻에 따라 자신의 힘으로 일하지 않고, 주님의 뜻에 따라 주님 주시는 그 힘만으로 일하도록... 그래서 늘 십자가의 사랑, 능력, 지혜로 충만하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기도로 돕지 않는다면 목회자들은 아주 초라하고 나약한 존재들이지만, 여러분이 그분을 위해 합심하여 간구한다면, 매우 강하고 빛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   스펄전의 묵상중. 
2014-08-16 13:03:51 | 박진태
"예수님께서 눈을 드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11:41)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런 아들의 기도를 기쁘게 들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 주십니다.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6:19)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몸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거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당신 안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계십니까? 그분의 거룩함과 사랑이 지금 당신의 삶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매일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아들의 기도가 당신 안에서 끊임없이 하나님 아버지께 드려지고 있습니까?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고집스럽게 제 맘대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우리의 육을 완전히 복종시켜서, 그분께서 매 순간 우리의 육신을 통해 자유롭게 일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신 안에 매순간 나타날 수 있도록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있습니까?   모든 기도중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가장 귀한 기도입니다.   
2014-08-09 16:43:22 | 박진태
바른 성경을 통해 바른 지식을 습득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지식의 유용함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 지식이 우리 가운데 역동적으로 움직여서 삶의 곳곳에 주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들로 가득차 넘쳐 나기를 기원합니다.
2014-08-08 11:20:47 | 조양교
예전에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다보면 하나님을 알게 되는데 그것을 믿음이라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실제 삶 속에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참 좋은 글들 자주 올려주셔서 감사하고 또 그리스도 안에에서 이런 계속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샬롬
2014-08-06 16:05:00 | 임원섭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다니엘 11:32]”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식의 근본일 뿐 아니라, 성도들의 힘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잘 아는 백성은 강합니다.   1. 지식은 믿음을 낳음 :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롬 10:17).” 믿음이 없는 사람도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겨납니다. 말씀을 통해 얻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믿음을 낳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는데,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면 그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증가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2. 지식은 사랑을 낳음 : 지식은 믿음뿐 아니라 사랑도 낳습니다. 누구든 상대방에 대해 뭘 알아야 그 사람을 사랑하든지 말든지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에 대해 뭔가 알아야 그분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 우리를 위한 그분의 희생과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만큼 더 그분을 사랑하게 됩니다.   3. 지식은 소망을 줌 : 지식은 또 소망을 줍니다. 지식은 소망의 대상이신 주님께서 분명히 존재하실 뿐 아니라,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지 알게 함으로 참된 소망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4. 지식은 인내를 격려함 : 지식은 또 우리에게 인내해야 할 이유를 알게 해 줍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로부터 얻는 유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고난도 묵묵히 참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받는 은혜는 모두 다 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의해 온전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면서 항상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스펄전의 묵상중.
2014-08-05 18:52:43 | 박진태
"고난중의 감사가 신앙의 진수입니다," 충분히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낮추시고 낮추시고 낮추셔서 이제 더 낮추실것도 없다 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멀었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맨 밑바닥까지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려도 제 마음은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속에 있는것을 봅니다. 오, 주여 ~ 내가 나를 누르니 뼈마디가 부서지는 고통중에 있나이다. 나를 도와주소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형제님.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과 같지 아니하며 내 길들은 너희 길들과 같지 아니하니라. {주}가 말하노라.(사55:8)
2014-07-28 09:04:42 | 이명석
"주 우리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과 위대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매..."(신5:24)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일속에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거기에 대해 우리가 합당한 반응을 보이기를, 즉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타락했기 때문에, 이렇게 타락한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려면 먼저 그 길을 가로막고 있는 우리의 자아가 옆으로 비켜서야 합니다. 앤드류 머레이도 "믿음이란, 성령님께서 마음껏 역사하시도록 그분께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종종 큰 어려움 가운데 빠지게 하시는데, 그것은 그 가운데서 그들이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고 통회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역사하실때 겸손히 비켜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생애가 평탄한 사람은 주님의 영광을 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맨 밑바닥까지 낮아져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자아를 내려놓을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빈곤, 질명, 불화, 파산이라는 고난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런 험한 길로 인도하셨다면, 이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고난 덕분에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자하심을 체험하게 됐으니까요.   여러분은 환난을 통과했기 때문에,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경험 - 철저히 타락한 자아의 발견, 통회, 그에 따른 권리 포기, 그리고 이어지는 하나님의 영광...등 -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형통하기만 했다면, 여러분은 아마 여전히 천박한 신앙 가운데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속에서 여러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기이한 손길에 의해, 여러분은 그분의 눈부신 영광의 광채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난으로 인해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고난중의 감사가 신앙의 진수입니다.   스펄전의 묵상.
2014-07-28 00:16:01 | 박진태
재창조론을 인정하기 어려운 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제님께서 더 언급하지 않으신 replenish에 대해 제 생각을 올려 봅니다. 재창조론에서는 ‘채우다’ 또는 ‘다시 채우다’ 두 가지 의미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 ‘replenish’를 구태여 ‘다시 채우다’로 번역하여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고 이르신 것이 아니라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라고 이르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라고 말씀하셨다면, 아담과 이브는 그 말씀에 어떻게 대답(반응)했을까요? (1) 예. (2) 아니오. (3) (묵묵부답) 저는 위의 세 가지 중에 그 어느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다음과 같이 반문했을 것 같습니다. ‘네? 다시 채우라고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왜냐하면, 아담과 이브는 이제 막 창조되었고, 창조된 이래 땅을 채운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땅을 채우기는커녕, 아직 첫 아이도 낳지 않은 상태이죠.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는 말씀은 아담과 이브가 적어도 한 번은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운 적이 있어야 그들에게 하실 수 있는 표현이라고 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희들이 번성하게 하여 땅을 다시 채우리라’고 하셨다면, 또는 ‘너희들이 번성하면 땅이 다시 채워지리라’고 하셨다면 이치에 맞는 표현이지만, 창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담과 이브에게 ‘땅을 다시 채우라’고 하셨다면 그들이 무슨 영문인가 의아해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어찌 되었든 그렇게 말씀하시려면 그 시기는 그들이 막 창조된 때가 아니라, 오랜 세월이 흘러 그들과 그들의 자손이 대를 이어 출산하며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나서 땅을 채운 후에 아담과 이브만 남기고 다 죽어 없어졌을 때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고 하신 것이 맞는다면, 이런 질문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다시 다산하고 다시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Be re-fruitful, and re-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고 하셨어야 옳지 않은가? - 창 1:22에서는 왜 ‘다산하고 번성하여 바다의 물들을 채우고(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라고 하셨나? 거기에도 ‘다산하고 번성하여 바다의 물들을 다시 채우고(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fill the waters in the seas)’라고 하시든지 ‘다시 다산하고 다시 번성하여 바다의 물들을 다시 채우고(Be re-fruitful, and re-multiply, and refill the waters in the seas)’라고 하셨어야 하지 않나? 이러한 것들을 감안할 때, 저는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가 말의 이치에 맞고 문맥에 어울리는 자연스런 번역이라고 생각됩니다.
2014-07-21 22:04:48 | 최상만
불볕더위가 이어지는 여름 날씨도 굴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성경을 연구한 귀한 열매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날씨보다 더 뜨거운 형제님의 열정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신자에서 더 나아가 성경을 성경대로 믿으며 그 깨닫고 믿은 한 구절의 말씀이라도 그대로 삶에 적용하며 실천하려 몸부림을 치는 참된 성경 신자가 우리 모두의 모습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4-07-21 17:37:27 | 김대용
임형제님, 글 잘 읽었습니다^^ 지체들을 더욱세우려하시는 마음이 많이 와 닿습니다. 저도 창세기 1장 말씀들을 저번주에 깊이 묵상했었습니다. 결론은 말씀밖으로 나가면 안된다는것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우리는 기록된 말씀과 성령님의 조명아래 하나님의 깊은것까지 깨달아 알순있습니다 하지만, 분량밖의것은, 계시된 말씀에 자고하지않도록 사탄의가시를 가지고 살았던 바울사도처럼 그렇게 순종하고 있습니다 욥기38장에 아버지께서 땅의 기초들을 놓을때에 우리가 어디있었느냐고 물으시면서 창세기 1장 이전의 것들도 보여주십니다. 더욱 깊은곳까지 그물을 내리는것이 좋지만 , 이세상 모든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오신 그분에 의해 지어졌고,존재하므로(요1:1~5.고전8:6) 모든 초점을 겸손하게 우리 주님께 맞추고 뒤에 있는것은 생각치않고 오직 부활의 푯대,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갈뿐입니다, 물론 재창조론이라는 사탄의 계략에 휘둘릴일도 없을테고요^^ 이상은 모자란 제 소견이구요, ^^ 지체들의 공부를 위해 올려주신 글 감사합니다. 형제님^^
2014-07-21 14:33:41 | 이명석
 ◉ 재창조론(간극이론)에 관하여     성경신자들 가운데도 간극이론 또는 재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에 간극이론은 진화론자들에 맞서서 성경의 신빙성을 옹호하고 당시의 많은 신자들에게 보호장치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 이론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생각되어 함께 나눕니다.   아래 글은 저의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  < 재창조론의 주요 주장 내용 >   재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창세기1장 1절과 2절 사이에 아담 이전의 다른 인류가 존재하였고, 그 세상이 노아홍수와는 다른 종류의 물 심판으로 멸망했다고 보고있다. 이 기간에 천사들의 창조와 사탄의 타락이 있었고, 매우 길고 긴 어쩌면 수십억 년의 기간이 존재했다고 보고 있는데, 그 주장의 근거 중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창1:1에서 창조된 땅이 창1:2에서 형태가 없어지고 비어지게 되었다는 점. (결국 창세기 1:3 빛의 창조 시점부터 첫째 날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둘째, 창1:28(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replenish).)에서 replenish의 의미를 ‘다시채우라’로 해석해야 한다. 즉 아담 이전에 살던 사람들이 다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 아담부터 시작하여 지구를 채우라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셋째, 벧후3:5~7에는‘그때 있던 세상의 멸망’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점.   넷째, 사14:20(네 백성), 21(그들) 등 사탄으로 인하여 망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      이 외에도 몇 가지 설명들이 있지만 위 내용들에서 파생되거나 이것들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이것들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 재창조론에 대한 반론 > 1. 창1:2에 대하여 ①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는 것의 성경적 의미   먼저 재창조론에서는 형태가 없어지고, 비어졌다고 보고 있으나, 성경은 (그냥 단순하게)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고만 기록되어 있으며, 정확하게 동일한 표현이 예레미야 4:23에 나온다. 예레미야 4장도 재창조 이전의 세상에 대하여 기술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예레미야 4장 3절과 16절은 이 내용이 예루살렘 거주민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9절에서 예레미야의 애가 끓는 이유도 ‘이전세상’의 멸망 때문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멸망 때문이다. 29절에서 이 멸망 때에 사람들이 수풀로 피해 달아나고 바위들로 기어오르는 장면을 보아도 이것은 재창조론에서 말하는 물의 넘침으로 인한 멸망 장면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형태가 없고 비어있었다’를 다음과 같이 볼 수 밖에 없다. (렘4:23) 형태가 없다. (☞ 땅의 생김새(모양)가 일정하지 않다.) (렘4:27~29) 비어 있다 (☞ 생명체를 기준으로 그 황폐한 상태) (창1:2) 땅은 물로 덮여 있어서, 그 생김새(모양)를 일정하게 갖추고 있지 않으며, 아직 살아있는 어떤 것도 없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님. ② 하루의 구성에 대한 성경기록     첫째 날이 재창조론 주장과 같이 창세기 1:3(빛의 창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면, 첫째 날은 성경기록과 같은‘그 저녁과 아침’이 되지 못하고 ‘그 아침과 저녁’이 되어버린다.  1절과 2절이 첫째 날 창조에 포함되어야 어둠이 먼저 위치하고 빛이 창조됨으로써 '그 아침과 그 저녁'이 성립하는 것이다.    2. replenish에 대하여   20세기 초반 들어서면서 re를 '다시'나 '강조' 접두어로 보는 일부 사전도 있으나, 그 이전에는 re가 '다시'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고, 특히 가장 권위있는 사전 중 하나인 Oxford English 사전은 replenish의 're'가  '다시'의 의미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   3. 벧후 3:5~7에 대하여   벧후3:6에는‘그 때 있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며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7절에는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13절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어서, 이 대목만 보면 3종류의 세상으로 세팅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맥 전체를 보면 벧후 3장에서 다루는 '그 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해 진다. ① 이 내용을 기록한 이유와 베드로 사도가 말하고 있는 ‘그 때’의 의미 (벧후3:3,4) 먼저 이것을 알라. 곧 마지막 날들에 비웃는 자들이 와서 자기들의 정욕을 따라 걸으며 이르되, 그분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모든 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부터 있었던 것 같이 그대로 계속되느니라, 하리니    벧후3장에서 베드로 사도는‘조상들이 잠든 이래로’모든 것이 그대로라는 의견에 대한 반박을 하고 있다. 즉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아담 이후) 있었던 세상의 격변의 예를 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베드로 또는 마지막 때에 비웃는 자들이 말하는 조상들은 누구일까? 아담 이전의 인류가 있었더라도 그들은 현생인류의 조상들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의 넘침으로 인한 세상의 멸망은 아담 이후에 즉 노아 때 일어난 홍수를 말한다. 벧후 3장에서의 '비웃는 자들'이 부정하고 싶은 것은 자기 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이전 세상의 격변'이 아니다. 자기들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영원히 격변 없이 그대로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며, 베드로 사도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의 '격변'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② ‘땅이 물 가운데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의 의미 - 이 장면을 재 진술하는 다른 구절들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자. 이 내용과 동일하게 땅이 물에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시편 104:6~9에서 기록하고 있다.  전 우주적 물이 아니라 지구를 감싸고 있는 바다를 의미한다.‘땅이 물에서 나왔다는 것’은 바다와 땅의 분리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시24:2) ③ ‘(벧후3:6) 물의 넘침(overflowed)으로 그때 있던 세상의 멸망(perished)’의 의미 - 여기서 멸망은 물의 넘침으로 인한 것이다. 미래에 있을 10~12절과 같은 원소들이 녹고 해체되는 소멸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는 것은 창세기 7:23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면 위에 있던 모든 생명체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하늘의 날짐승에게만 해당된다. 따라서 창1장처럼  별들이나 바다생물들이나 식물들을 재창조할 이유가 없다. ④ 참고로 동일한 베드로사도가 기록한 벧전3:20에는 ‘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들은 여덟 혼이라고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4. 이사야 14:20의‘네 땅, 네 백성’에 대하여 - 사탄으로 인하여 망한 사람들 : 사14:20(네 백성), 21(그들) ⇒ 시21:10   이사야 14:20의 ‘네 백성’은 재창조 이전의 사람들이 아니라 타락한 현생인류다. 그들(네 백성)에 대한 언급이 21~25까지 뒷부분에서도 계속되는데, 특히 25절에서는 앗시리아 사람의 징벌 때에 그들 가운데 일부가 구출된다는 점을 언급한 것을 보면 이들은 재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완전히 멸망했다는 그 이전 인류가 아니다.    5. 기타 재창조론이 설명 할 수 없는 것들 ① 전 우주적, 원초적 빛 자체가 창세기 1:3에서 비로소 창조되었다. 따라서 창1:2 이전에 ‘이전 세상’이 있었다면 그것은 암흑 공간과 암흑 지구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원초적 빛도, 해도, 달도, 별들도 없었으며, 이것은 어떤 생물(동․식물)도 생존할 수 없는 상태다. 이 지적에 대하여 재창조론자들은 이 때는 계시록 21:23에 나오는 빛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빛이 되실 수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극도의 사악함 때문에 한 명도 남김없이 멸망당한 존재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빛 가운데 거했었다고 인정해야 하는데, 계21:27에 보면 더럽게 하는 것, 가증한 것, 거짓된 것은 이 빛(하나님 자신)가운데 들어올 수 없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을 굳이 물의 넘침으로 멸망시킬 필요가 없다. 바로 죽게 되기 때문이다.(출19:21) 상식적으로도 이런 극도로 사악한 사람들과 계21:23의 하나님의 본성을 입게 되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처럼 천사와 같이 변화된 - 요일3:2,3) 영원에 들어간 하나님의 아들들(최종 구원된 사람들)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이 지금 인류(구원의 기회를 부여받음)보다 더 극심하게 멸망당해야 하는 사악한 존재들과 뒤섞여 빛으로 기능하는 세계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② 성경은 한 번 땅의 기초가 놓인 후 땅의 기초 자체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104:5) ③ 창조와 안식을 기술한 구절과 맞지 않는다. ○ 창1:1 처음에 하나님께서‘하늘과 땅’(the heaven and the earth)을 창조하셨다. ○ 출20:11 엿새 동안에 주가‘하늘과 땅’(heaven and earth)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느니라. ** 출20:11에서 정관사 the가 heaven에도 earth가 빠져 있지만 벧후 3:7에서는 ‘지금의 하늘과 땅(the heavens and the earth)’을 지칭할 때 다시 정관사를 사용 하고 있기 때문에 정관사 유․무는 1611년 당시 혼용되었다고 봐야한다.   ④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재 진술하는 많은 구절들에서 재창조는 한 번도 언급 되지 않았다. (시136편, 욥38장, 시24장, 사14장, 시104장) ⑤ 성경 전체의 계시 맥락에서도 재창조(지구의 reset)는 전혀 엉뚱한 내용이다. 구속사역을 거쳐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가족공동체(엡3:15, 계21:22)를 완성하는 것이 성경 속 하나님 계획의 개요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완전히 실패하여 갈아 업고 다시 reset하는 불완전한 분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분의 완전하신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한 단 하나의 완전한 과정이 있을 뿐이다. 인류의 타락까지 포함하여….    ******************************************************************************************* 이 문제는 우리 신앙의 결정적인 논점이 되지는 못합니다. 즉 이것과 다른 내용을 믿는 형제들과도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는 모든 초자연적이고 우리 이해를 뛰어넘는 성경기록들에 대한 우리 신앙의 출발점이 되므로 기록된 대로 단순하게 믿는 명확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내용이 저와는 다른 방향에서 재창조 교리를 바라보는 형제들에게도 진리 조명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14-07-21 11:42:13 | 임원섭
글을 읽으며 절로 세상 왕국에 거주하며 하나님의 왕국을 열망하는 성도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문득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살아 있는 옛 본성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현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조차 몸부림을 치며 갈등하고 고뇌했던 현실을 망각하는 그 순간이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위기의 순간이겠지요. 깊은 묵상의 글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4-07-19 13:05:31 | 김대용
형제님 좋은 묵상의 글 감사합니다. 마음 속 깊이 새기며... 하나님의 왕국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그 길을 선택 하도록 이미 제 마음을 열어주시고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2014-07-19 11:26:36 | 윤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