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6개월이 된거군요. 덩달아 따라오게 해주시니 감사할밖에요.^^
2014-10-22 00:27:43 | 이청원
제가 일주일에 몇번씩 올리는 글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어 제가 올리는 글에 대한 과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저는 스펄전목사님의 365일묵상집과 오스왈드챔버스목사님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오스왈드챔버스목사님은 스펄전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십대에 회심한 스펄전목사님 다음가는 설교자이시고 우리 교리에 적합한 분입니다.)과 토저의 여러 경건서적들을 발췌하여 제가 신앙적으로 겪은 부분과 교리에 부합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기본 묵상집을 읽고 마음에 감동받은 글을 선택하여 문맥상 교리에 맞지 않거나 일반교회에서 다루는 편협한 묵상내용은 배제하고 우리 믿음에 맞는 내용을 중심으로 글을 작성합니다. 그런 다음 개역성경은 빼고 킹제임스흠정역 말씀을 앞뒤 문맥에 맞추어 올리면서 교정작업을 마치게 됩니다.
제가 묵상글을 올리며 같은 믿음안에 계신 형제자매님분들과 공감을 가지고자 시작하게 되었고, 어느덧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계속 이 묵상 글을 올려도 괜찮은지, 괜히 교만해지지는 않은지 걱정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글을 올리지만 언제까지 올릴지는 저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다만,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순종하는 마음으로 같이 공감하는 글을 올리고 싶은 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감사드립니다.
2014-10-22 00:05:41 | 박진태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지 마라.
잊어버릴 줄을 알라. 그것은 기술이라기보다 행복이다.
기쁨을 주는 일은 소유하지 말라. (비그친밤 잠자리에 들며)
2014-10-21 23:58:10 | 이청원
'서 '라는 글자 하나의 차이가 확연하지요?
글자 하나의 의미가 이렇게 다른데 성경은 말할 나위가 없지요.
우리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신실하십니다.
2014-10-21 21:17:37 | 이수영
-모든 일을 감사하라고 하지않고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음속에 담아가지고 갑니다~
바른길로 가게끔 위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비오는 오후 저녁식사를 마치며)
2014-10-21 19:55:22 | 목영주
와!! 오늘 형제님의 글내용이 마음에 절실히 와 닿습니다.
위기를 겪고 극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말이 평범한 진리이지만 막상 위기시에는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겠지요.
우리 모두 위기를 기회로 여기며 모든 일에 절망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순응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은 저도 어느 정도는 쬐금 경험을 했기때문인 거 같습니다.
사랑성도여...모두 넘어지더라도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십시다.... (비오는 오후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2014-10-21 18:26:09 | 오혜미
어렸을 때 짓궂은 장난을 한 적이 있다. 화단이나 길가를 살펴보면 개미들이 줄을 지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주변에는 어김없이 소복한 봉우리가 있는 개미집이 있다. 발로 뭉개보기도 하고, 물을 한바가지 퍼부은 적도 있다. 개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다. 우왕좌왕 개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갈 길을 갔다. 몇일이 지나 궁금한 생각에 내가 저질렀던(?) 그 자리를 가보았다. 말짱하게 복구되었다. 성경기록을 보면 개미에게 지혜를 배우라고 한다. (잠6:6-8절) 하나님께서 개미에게 지혜를 심어 놓으셨다. 부지런함과 인도자 없이도 겨울을 위한 양식을 준비한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 나간다.
사람은 고통없이 행복하기를 원한다. 현실은 평상심을 흔들어 놓는 크고 작은 고통을 받고 산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은 큰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수도 있고, 교통사고일 수도 있고, 부도나 파산의 경험일 수도 있고, 시험에 낙방하거나 퇴직의 경험일 수도 있다. 욥과 같은 경우 순식간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잃고, 전 재산이 송두리 채 날아가 버리고,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처참한 신세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은 인생의 큰 위기에 해당한다. 나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이런 일을 닥쳐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을 했을 때 그 충격이 평균적으로 3개월 정도 간다고 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가면 마음을 추스르게 되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느냐? 하면서 다시금 일어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낙담과 좌절로 인해 삶을 포기하는 사례도 생겨난다. 개미는 인도자가 없어도 위기를 극복한다. 사람에게는 인도자가 필요하다. 위기의 순간 일수록 그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헤쳐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사람이 필요하고,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위기를 겪었고 극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유능한 인도자가 된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유능한 인도자가 될 자질을 갖고 있다. 영원한 멸망의 형벌에서 구출받은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큰 위기를 벗어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경미한 위기는 쉽게 극복할 내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위기를 겪은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다고 본다. 위기의 상황에서 주저앉는 사람은 아무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한다. 위기를 극복한 사람은 본인에게도 유익이 되고 또한 동일한 위기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 현재의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다. 미래의 발판이 되고 큰 유익을 제공해 준다.
개미를 보자. 개미는 참 부지런하다. 어려움도 잘 극복해 나간다.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열심히 일한다. 집이 무너지면 즉각 보수에 들어간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 개미들은 그 어느 때 보다 활발히 움직인다. 겨울의 양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당장의 겨울도 아니고, 이 땅의 풍요로운 삶뿐이 아니다. 영원한 삶의 기초가 되는 것이 이 땅의 삶이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살전5:18절에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모든 일을 감사하라고 하지 않고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에게 닥친 모든 일을 감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일에서 감사할 수 있다. 비록 우리 앞에 안좋은 일들을 당할지라도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이다. 어려운 일을 당할지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신실함과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다. 영원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때 감사할 수 있다. 온실 속에서 고통이 없는 주관적인 삶뿐이었던 사람은 무미건조한 영원이 기다릴 것이다. 개미와 같이 살았던 사람은 풍요로운 영원을 만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며 긴 릴레이를 펼치는 개미를 보자. (비오는 날 오후 시간에)
2014-10-21 16:16:41 | 조양교
세상 법에도 확정 판결이 내려진 어떠한 사건이나 법률에 대하여 두번이상 심리/재판을 하지않는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적용되거늘 하물며 공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고 내리신 판결이야 말해 무엇할까요!
그저 하나님앞에 감사 감사 감사할 뿐입니다.
2014-10-21 13:58:57 | 이정희
"내가 말하거니와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롭게 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게 하심이라.(롬3:26)"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지은 죄로 인해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의 빚을 마지막 한 푼까지 다 지불하시고, 하나님의 영수증까지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다는 이 사실이 전에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제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에게 안도감을 줍니다. 놀라운 일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죄인인 나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심으로 나에 대한 형벌의 집행은 완전히 종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죄 값을 청산하고 이미 의롭게 된 나에게 또 다시 형벌을 부과하시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당당하게 "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무슨 일로 고소하리요?" 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도 친히 우리가 의롭다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가 내 힘으로 뭘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값을 완전히 청산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의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느낌이나 우리의 지식을 믿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일, 즉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 값이 완전히 청산되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과 완전히 화해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완전히 구원받았음을 믿습니다.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사53:5)
"스펄전의 묵상중"
2014-10-20 23:29:31 | 박진태
장경희자매님, 감사해요~
제일 먼저 참여하셨네요^^
덧글이 서로에게 힘이 되지요^^
2014-10-19 23:30:49 | 이수영
좋은 말씀 나누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회개'에 대해 깊이 상고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2014-10-19 20:49:53 | 장경희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고후7:10)"
죄를 통해 자복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없이는 죄인들 안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지 않습니다. 만일 누군가에게 회개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에서는 절대로 그런 영적인 열매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회개는 단순히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 이상의 것입니다. 회개란 본질적으로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내 뜻대로 살던 데서 돌이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겠다고 돌아서는 결단입니다. 그런 점에서 회개는 완전한 '권리 포기'요, 완전한 항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회개는 대속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교만하고 고집세고 욕심 많은 '나'를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끝장내기로 결단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을 청산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에는 항상 이런 회개가 함께 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사역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노라.(행20:21)"고 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삶이란, 늘 하나님 뜻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자신의 행실을 뉘우침과 동시에, 죄 뒤에 숨어서 꿈틀거리고 있는 '자아'를 계속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날마다 죽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자기도 기뻐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은 자신도 미워하게 됩니다.
따라서 진심으로 회개하고도 여전히 죄의 구렁텅이에서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본성을 갖게 되고, 그때부터는 그동안 무심코 짓던 죄를 정말로 싫어하게 됩니다. 그래서 잠깐 죄의 유혹에 넘어갔다가도 몹시 후회하면서 이내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죄를 미워하면서도 죄 가운데 산다는 것은, 마치 쥐를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 쥐와 한 방에서 사는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회개는 일회적인 동시에 지속적인 것이어서, 칭의를 위한 회개는 한번으로 족하지만, 성화를 위한 회개(이 경우 '회개, 'repent' 대신에 자백, confes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사도바울의 서신에서는 거듭난 성도들에게도 '회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는 평생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모름지기 회심의 순간부터 시작해서 죽는 그날까지 늘 회개의 영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야 합니다. 다른 슬픔들은 시간이 가면 없어지지만, 죄에 대한 애통은 시간이 흘러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 갈수록 더 깊고 절실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깊이 동행했던 거룩한 성도일수록 늘 더 깊은 회개의 영 안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가 부흥할 때는 항상 회개의 영이 충만했습니다. 회개를 통해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우리의 자아를 철저히 부인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되면서, 성령님과 우리를 통해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가 항상 거룩하고 뜨거운 회개의 영에 사로잡혀 늘 주님께 순종함으로 주님과 온전히 연합하여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스펄전의 묵상중"
2014-10-18 23:29:40 | 박진태
아니 이 새벽에 글을 썼군요. 낮에 피곤해서 어쩌지요. 하여간 고마워요.
청원 자매 하면 사진이 생각나는 것은 웬일이까요. 사진으로 늘 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어르신들의 나들이 사진을 아름답게 찍어서 홈피에 올리고 각자 사진도 빼서 나누어
드렸더군요. 요번 식사 당번이 사실 기다려 졌어요.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주일 아침 일찍 갈게요. 우리는 묵만 썰면 되는데 청원자매는 여러 가지로 분주하게
일 하는 것을 보면 팀장의 무게가 참 중요한 것을 느껴요. 그래도 생글생글 웃으며
수고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2014-10-15 06:54:25 | 윤정용
아, 윤사모님. . .이런일이 있으셨군요.
어르신나들이에 함께하지못해 좀 의아하단 생각뿐이었지
어두운모습을 뵙고도 이것저것 여쭙지못했네요. 죄송한맘 뿐이에요.
힘내시고 . . . .우리 이번 주일에 힘내서 밥(?) 해요.^^
사랑해요 윤사모님♡
2014-10-15 02:45:15 | 이청원
"내가 주의 훈계들을 묵상하고 주의 길들에 관심을 기울이며(시119:1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 안에 있는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소화를 잘 해야 비로소 피가 되고 살이 되듯이, 우리 영혼도 그저 말씀을 듣고 배우기만 해서는 그 말씀을 내 것이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설교, 성경읽기, 암송, 성경 공부 등에서 접하는 모든 말씀들이 진정한 내 것이 되게 하려면, 묵상을 통해서 그 말씀들을 완전히 소화 흡수해야 합니다.
교회의 각종 모임에 빠짐없이 열심히 참석하고 있는데도 신앙이 별로 자라는 것 같지 않다면, 그것은 기도를 게을리 하는 탓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설교나 성경공부를 열심히 쫓아다니는 사람들은 많은데, 거기서 받은 말씀을 늘 깊이 묵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복 받은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주님께서는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사람(시1:2)이 정말로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편지를 대충 한 번 훑어보고 내팽겨쳐 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냥 좋아서 읽고 또 읽으며, 사랑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온종일 다시 은미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편지 한 구절 한 구절을 늘 깊이 묵상하며 즐거워합니다.
"오 내가 주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시119:97)"
말씀을 늘 묵상하는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스펄전의 묵상중.
2014-10-14 23:26:00 | 박진태
답글을 써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특별히 오 사모님 감사해요. 여러 가지로
바쁘실 텐데 말입니다. 부모가 아닌 형제의 이별은 또 다른 슬픔이네요. 춘천에 살고 계시다가
춘천 강원 대학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안 썼네요.
올봄에도 한국에 사는 세 자매가 춘천에서 모여 함께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으며 모텔에서
밤늦도록 이야기꽂을 피우면서 함께한 추억이 마지막 모임이었네요.
조양교 형제님 감사합니다. 형제님을 보면 든든한 마음이 듭니다.
교회일에 꿋꿋하게 목사님을 대신해서 침례도 주시고 말입니다.
김경민 자매님 고마워요. 부족한 저를 닮기를 원하시니
그저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정진철 형제님 반가워요. 이 공간에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니요, 그 누나를 위해 평소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꾸준히 관심을 같으시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기다리시면 언젠가는 꼭 돌아오실 겁니다. 답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광무 형제님의 천국에서 만나보자 찬송 너무 감사합니다. 그 언젠가는 천국에서 만나볼
소망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이춘옥 자매님 감사해요. 만나서 얼굴을 보면 알겠지만 이름만으로는 잘 모르겠네요.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족이 있으셔서 많이 마음 졸이고 계시는군요.
낙심하지 마시고 사랑으로 늘 관심을 같으시고 섬기세요. 그리고 기도하면서 기다리시면
언젠가는 그 마음에 문이 열릴 것이라 믿습니다. 나도 겪어보지만, 답글을 쓴다는 것은 보통
성의가 아닌데 이렇게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답글로 위로와 격려로 사랑에 글을 써 주신 것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이래서 성도의 교제가 귀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2014-10-14 22:00:08 | 윤정용
윤사모님의 글들을 보며 항상 존경스러운 마음이였습니다.
떠나보낸 언니분에 대한 애잔함이 다분히 느껴지는 글을 읽노라니
시름없이 내리는 가을의 보슬비처럼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들며
인생의 한계에 대한 한탄이 한숨과 함께 저도몰래 뿜겨져 나오네요...
너무도 다행으로 믿음을 보이시고 가셔서 위로로 삼으시길 바래요.
저에게도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할 식구들이 계시기에
병상에 눕기까지 미루어 둔 믿음의 고백을 절박함으로 기다리는
안타까운 상상에 빠지군 한답니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온유함과 인내로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겠죠.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에 소망을 두고 오늘도 기도합니다.
2014-10-14 16:17:18 | 이춘옥
천국에서 만나보자 라는 찬송이 떠오르네요.
우리 믿는 성도는 죽어도 죽은것이 아니지요.
1.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 날 아침 거기서
순례자여 예비하라 늦어지지 않도록
만나보자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 그 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2. 너의 등불 밝혀 있나 기다린다 신랑이
천국 문에 이를 때에 그가 반겨 맞으리
만나보자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 그 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3. 기다리던 성도들과 그 문에서 만날 때
참 즐거운 우리 모임 그 얼마나 기쁘랴
만나보자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 그 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2014-10-14 15:43:50 | 허광무
제게는 어려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대학진학 후 신앙을 거부한 친누이가 있습니다.
누이는 자아를 찾는데 심취했었고, 기타 다른 사상과 종교 등에 기웃하였었죠..
그 모습이 속상하고 안타까워 하나님께 하소연하듯'
'죽을만큼만 살려주세요! 목숨 부지하게 되면 하나님을 다시 찾지 않을까요!'라고
부르짖기도 하였습니다.
여전히 누이는 다시 돌이키지 않고 있는 상태이구요..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만을 간구합니다.
사모님의 큰언니에 대한 절절한 애닲음과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2014-10-14 15:12:31 | 정진철
화창한 가을 아침에 욥의 묵직한 믿음의 고백을 들으며 진정한 믿음에 대해 묵상해 보게됩니다.
2014-10-14 10:43:24 | 이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