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의 글을 읽다보니 저를 국민학교에 입학시켜놓고 그 이후로 작년까지 계속 일해오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 썩어질 몸둥이 집에서 쉬면 뭐하나. 집안 일은 해도해도 티도 안나고." 늘 하시던 말씀입니다.
동사무소에 가셔서 할일이 있나 알아보시고 힘들다 생각 안하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신 어머니께
그리고 같은 세대를 살아오시며 저희들을 건사하신 부모님세대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은 무릎이 많이 아프시다고 쉬고 계십니다. 무릎 사용연한이 다 되신 모양입니다.
저도 손자 손녀들 제 무릎에 앉혀놓고 성경책이며 동화책 읽어주는 것이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저도 창작동화도 생각해 봐야겠네요.ㅎㅎㅎ
그 때가 빨리 오길 기다립니다.^^
2015-02-22 05:48:49 | 최문선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 하거든 먹지도 말라"
예전에는 이말씀이 우리아버지 살아생전 명언으로 알고 살았더랬습니다.
그다음 울아부지 말씀이 "일찍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라며
부지런함을 강조하셨더랬지요.
부처를 믿었던 울아부지도, 주님을 믿지않는 사람들도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감사'하며 사는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2015-02-21 22:23:50 | 이청원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길에 하는 생각 중에 하나는
"아! 언제쯤 푹 쉴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는데
글을 읽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일을 하는 것이 정말 감사할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글을 읽고 가만히 생각하니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참 많이 있습니다.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하심에 감사하고,
다닐 수 있는 직장을 허락하심에 감사하고,
직장에 다닐 수 있도록 가정의 여러 조건들을 충족시켜 주심에 감사합니다.
감사함을 가르쳐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2015-02-21 20:23:38 | 심경아
글 잘 읽었어요. 저도 어느날 아이가 엄마는 장 봐오는건
많은거 같은데 왜 나오는건 없냐고 해서 같이 웃었어요.
퇴근 길에 뭔가 맛있는 걸 해줄까 싶어 사오긴 하는데 그냥 냉장고에 고이(?)넣어두고
잊어버려요. 가슴에 손을 얹고 다짐해요. 안사오든지, 열심히 해먹든지...
지금 같아선 나이 먹어가는것도 좋아보여요.
그래도 열심히 현재를 살겠습니다!
2015-02-21 18:41:07 | 유금희
뜨거운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무언가 할일이 있다는건 정말 감사한 일이죠
늘 건강히 기쁘게 생활하시기를 소망합니다.
2015-02-21 11:46:39 | 김혜순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너무 피곤하여 쉴때는 얼마나 쉼이 편하고 몸의 안식을 누리는 즐거움을 맛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할일이 없어 심심하다 못해 지루하고 삶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얼마나 그삶이 매마르고 건조하다 못해 힘이들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 22 :2-14 성경에 포도원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아침부터 일하는 사람과 3시 6시 11시에 일하러
들어간 마음 상태를 알수 있습니다.6-7에 보면 또 11시 쯤에 나가서 놀고 서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어찌하여
온종일 여기서 놀고 서있느냐 ? 하매 그들이 이르되 아무도 우리를 고용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이다.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포도원에 들어가라 . 무엇이든 정당한 것을 너희가 받으리라 하니라.
일하고 싶어도 할일이 없어 놀고 있는 자들이 마지막 11시에 들어가서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했을가 ?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2011년 5월 11일에 이곳 인천에 이사와서 보니 아는 사람도 없고. 조용해서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시간적 여유가
넉넉하여 좋았는데 그 생활이 계속되다보니 너무 심심했습니다.
젊어서는 자식들 키우랴 살림해야지 목회자의 남편과함께 교회일에 신경써야지 ! 바쁘게 살어 가느라 세월이 흘러
가는 것도 미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식들이 결혼해서 각자 사느라 바쁘고 , 두 딸들이 다 외국에 나가 살다보니 갈 때도 없고 시간이
남아 돌았어요, 내 성격은 열심히 일할때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 그런 열정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었는
데 몆달을 낮선곳에 와서 지나다보니 나도 내게 맡는 일을 찾아 보아야지 ,
하고 동사무서에 {주민 자치쌘타} 가서 제가 일을좀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했더니 경로당 정심 해주는 일이 있다고
해서 가까운 곳에 다음날 부터 아침 10시부터 오후 2시 까지 4시간 동안 일을 하게되었습니다. 70세가 넘은 연세에서
100세가 가까운 어르신들이 매일 15명에서 20명 되는 인원이 나오셔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매일 집에서 놀다가 내가 할일이 있으니 부지런해 지고 얼마나 즐거운지 맛있는 반찬과 밥을 지어서 해드리니 잘들
잡수셨어요. 그리고 말 동무도 해 드리고 ! 이 일은 내 적성에 맞아 ! 하면서 즐겁게 다녔습니다.
보수는 적었지만 할일이 있다는 것 많으로도 기뻤습니다.
한해를 지나 12년도 여름이었습니다. 남편이 걸음 걷는데 다리가 불편함을 느껴 진찰을 받으니 발뒤꿈치 바로 위가
아킬레스 건이 끈어져서 수술을 받게되어 11일동안 입원을 하셔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병원에 가서 간병을
했습니다. 문제는 퇴원을 하고 한달동안을 힐체어를 밀고 물리 치료를 받게되어 일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 두달 지나니까 많이 나아서 집에 계시게 돠어 조용히 살게 되었습니다 .
아직나는 일 할수 있는데하고 노동청에 찾아갔습니다. 거기에는 일하고 싶은 분들이 많이 와서 찾고 있었습니다.
또한 구직을 찾는곳도 다양하게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할수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이튼날 또가서 찾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유치원 청소하는 일이 나왔씁니다. 오후2시 부터 4시반까지
2시간 30분동안 시간도 나에게 맞았습니다. 하루종일 일할수 있는 체력은 안되니까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
저는 일할때는 그일에 몰두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것을 느낌니다, 그리고 일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정리하고 구석 구석 깨끗이 닦고 밖에 주변도 깨끗이 치우고 열심히 하다보니 전보다
유치원이 더 깨끗해 졌다고 선생님들이 좋아했습니다.
나는 그곳에 일하러 다니면서 눈동자가 초롱 초롱 반짝 반짝 빛나는 예쁜 어린이 들을 보노라면 저 아이들 한태
동화를 들려주면 얼마나 좋을가? 하나님 아버지 저도 어린이 들에게 동화로 인성 교육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될수 없을가요? 된다면 신나게 이야기를 해 줄수 있을탠데 ! 하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들으시고 이루워 주셨습니다, 2013년도 1월달에 복지관에서 동화구연 하는 어른들을 뽑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라에서 실버 일자리 창출로 여러가지 일할 사람을 모집 한다고 해서 무슨 일이라도
해야지 하고 찾아 갔드니 여러가지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어떤일을 할까, 하는 중에 유치원 동화구연 하는것과 한문 가르치는 일이 있는데
다 뽑아서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팀장을 찾아가서 저도 동화구연을 하고 싶은데 할수 있습니까 ?
물었습니다. 경험이 있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예 저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처녀 때부터 오래했구요
유치부 교사도 하고 손자들 한테 동화를 많이 해 주어서 자신있습니다.
대게는 젊어서 유치원 교사나 원장을 했든 분들이라 경험이 있어서 실버 동화 교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자리가 있어서 서류를 해다내고 교육을 받고2013년도 3월부터 14년도 까지 2년동안을 일을 했습니다.
한 교실에서 20분 동안 4교실을 똑같은 수업을 하고 나면 말을 많이해서 입은 좀 아프지만 보람있고 즐겁답니다.
초롱 초롱한 눈동자들이 집중해서 듣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어느새 동심으로 돌아가 이솝 이야기나 동화속으로
빠져들어 내 나이는 까맞게 잊고 아이들과 같이 호흡에 맞추어 손유희도 하면은 시간이 금방 20분이 지나갑니다.
더 감사 한것은 남편도 한문을 어린이 들의 눈 높이에 맞추어 연구해서 열심히 가르쳐주고 있거든요,
한 사람만 일하면 한 사람은 따분하게 집에 있어야 하는데 함께 일할수 있어 정말 감사 하담니다.
금년에도 그리멀지 않은 곳에 남편과 함께 한건물인 유치원 어린이 집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금년에는 일주일에 하루는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주간에 3일을 나가게 되어 더 바쁘게 살게 되어 기쁨니다.
유치원 청소 하면서 마음속으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소원을 아룄는데 그대로 들어 주셔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를 들려 줄수 있어 기쁘담니다, 때로는 창작 동화를 지어서 들려 줄때도 있습니다. 내게 좋은 달란트를 주시고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그저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마음은 안늙는다고 하는데 그런거 같아요, 제가 70세가 넘었는데도 마음은 어린이 들과 같은 동심을 느끼면서
살아 간답니다.
살후 3 : 10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 하거든 먹지도 말라 [하반절]
11 너희 가운데 질서 없이 걸으며 전혀 일하지 아니하고 참견 하기만 좋아하는 자들이
더러있다 하는도다
2015-02-21 07:24:01 | 윤정용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5:18)"
"모든 일로 인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하고.(에베소서5:20)"
우리 삶에 어떤 상황이 닥치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사하길 원하십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읽기는 쉬워도 순종하기는 어려운 말씀입니다.
우선 분명한 사실부터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루지 못할 일을 명하시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기때문에 그분이 우리 삶에 무슨 일을 허용하시든 두렵지 않게 됩니다. 그분은 자녀에게 고난과 슬픔을 허락하시기는 하지만 삶의 시련으로 자녀가 해를 입게 두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온갖 시련을 겪게 하셨지만, 결국 시련은 욥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 진리를 일상생활의 역경에 적용해보겠습니다. 역경이 닥쳐오면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마귀가 끼어들어 사태를 악화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진리를 꼭 붙들어야 합니다. 상황이 여러분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친구들마저 여러분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대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도록 내주실 때와 똑같이 지금도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상황도 변했고 감정도 변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체험하면 믿음이 더 강해집니다. 그러고나면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드리는 감사야 말로 진정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심지어 '그분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요, 오직 나는 그분 앞에서 내 자신의 길들을 유지하리라.(욥13:15)'는 욥의 고백처럼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능히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우리 힘으로는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눈물 젖은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무엇이 하나님의 계획인지 막막해질 때도 우리는 그분의 사랑이 절대 우리를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망이 더 굳건해질수록 우리는 모든 일에, 모든 일을 인해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삶에 소망을 말하다(워렌 위어스비).
2015-02-21 01:23:58 | 박진태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요1:1)"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고전1:18)"
헬라어 사전에 말씀 즉 "로고스"는 '내적인 사상과 원리를 외적으로 표현해 놓은 말, 또는 사상과 원리 그 자체'를 뜻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1절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로고스', 즉 하나님의 내면적 본질과 사상이 바깥으로 표현되어 말씀으로 나타난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을 입으셔서 외적으로 표현된 모습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18절에서 "십자가를 선포함이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십자가의 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로고스(logos)'입니다. 그러니까 타락한 인류를 창조하사 그들을 구원하시고 새롭게 창조하셔서 자녀로 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이 외적으로 표현된 것이 곧 '십자가의 도'의 참된 의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기서 '십자가'는 인류를 사랑하사 죄에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한 것이고, '십자가의 도'는 그에 관한 전체적인 하나님의 속 생각을 드러내 표현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는 그 자체 안에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대한 설교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 그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한 이 세상에 이 '십자가의 도'를 널리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의 왕들이 사자(使者)들을 보내 큰 소리로 온 세상에 어명(御命)을 선포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사자로서 십자가의 복음을 온 세상에 외쳐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고 네 목소리를 나팔소리 같이 높여서 내 백성에게 그들의 범법을, 야곱의 집에게 그들의 죄들을 보여 주라.(이사야58:1)"
십자가의 도(제시 펜 루이스)
2015-02-18 21:57:12 | 박진태
말 그대로 유추이지만 흥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는 글을 올려주셨네요.
아마도 우리 시대에 간절히 소망하는 그 날, 교회의 최대 명절이 될 그 날은
휴거의 그 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황색 보자기에 싸인 명절 선물처럼 흥미로운 추론의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2-18 17:01:21 | 김대용
신빙성이 있고 재미있는 분석입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달력에 대한 글을 올려 봅니다.
누구나 원의 각도는 360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원의 각도는 360도로 되었을까?
원의 각도가 360도로 정해진 것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들 중에 하나는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아마도 노아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태양이 어느 지점에서 뜨는것을 측정한 뒤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는 기간을 재어봤는데 그 시간이 360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1년을 360일로 정하고 다시 30일씩 나눠 12달을 정했는데 그 당시에는 특별한 달력이 없어 1년을 원으로 나타냈다. 이것이 기원이 되어 원의 각도가 360도가 되었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입각해 보면 노아 홍수 이전에 관측한 것으로 노아 홍수라는 전 지구적 대격변으로 깊음의 셈이 터지면서 지구의 축이 흔들리고 지축의 회전 각속도가 변하여 지금의 365 일로 변한 것으로 생각되고 그때 달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사람들은 1년을 계산 하는라 많을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우리나라 전통은 음력을 달력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태양에 맞추어야 하므로 태양태음력을 사용 합니다. 순태음력(354일)과 태양력(365일) 의 11일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적기에 윤달을 넣어주는 것이지요.
우리가 쓰는 24 절기는 태양에 맞춘 것으로 태양력으로
춘분은 3월20~21일,
추분은 9월22~23일,
하지는 6월21~22일,
동지는 12월21~22일이 됩니다.
춘분과 추분, 하지와 동지는 태양이 서로 반대쪽에 있을때 생기는 절기 입니다.
2015-02-18 11:27:48 | 허광무
내일 모레가 설날인데요, 명절을 앞두고 성경의 명절에 관련된 간단한 단상을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1) 아담은 언제 에덴 동산에서 나왔을까?작년에 레위기 23장의 절기에 관한 성경공부를 하다 떠오른 생각으로 절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을 앎으로 해서 성경의 몇 가지 다른 사건을 같은 방식으로 다른 각도에서 추측할 수 있어서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성경에 아담이 언제 에덴동산에서 나왔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태어난 해가 언제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가지 힌트가 있는데, 이 힌트로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나온 날짜를 유추해보고자 합니다. 말 그대로 유추니 너무 단정지어서 그렇다 아니다라고 말하지 말고, 유추하는 과정을 통해 성경의 절기와 절기가 의미하는 바를 다시 한 번 묵상한다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유대력 (민간력)
유대력은 창조의 첫날을 1월 1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창 1:5)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더라.
즉, 이 날이 1월 1일입니다.
(창7:11) ¶ 노아의 생애에서 육백째 해 둘째 달 곧 그 달 십칠일 바로 그 날에 큰 깊음의 모든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리며
(창8:3) 물들이 계속해서 땅을 떠나 되돌아가고 백오십 일이 지난 뒤에는 물들이 줄어들어
(창8:4)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의 산들 위에 안착하니라.
이 달력은 노아 시대에도 사용되었는데, 2월17일에 홍수가 시작되고, 7월17일에 방주가 150일만에 아라랏 산에 안착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5개월이 150일이라는 것입니다. 유대력은 기본적으로 음력인데, 지금은 달의 주기가 29.5일 정도여서 한 달이 29일이나 30일인데, 이 때는 정확히 30일 이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년은 360일이 되는 것이고, 노아의 홍수 이 후에 해와 달의 공전주기가 바뀌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아담의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는데, 유대력을 따르면, 아담의 생일은 0년 1월 6일입니다. 당연히 이브의 생일도 1월 6일입니다. 왜냐하면, 여섯 번째 날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간 무리를 하면 첫 번째 안식일은 1월7일이 됩니다.
(3) 종교력.
유대력은 어느 순간부터 체계가 바뀌었는데, 이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출12:2) 이 달이 너희에게 달들의 시작이 될지니 곧 그것이 너희에게 한 해의 첫 달이 될지니라.
이집트를 나오면서 유대력 7월을 하나님께서 한 해의 첫 해 1월로 정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현재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민간력과 구분하기 위하여 종교력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4) 레위기 23장. 7절기
레위기 23장에는 7절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달력은 모두 종교력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유월절 : 1월 14일
무교절 : 1월 15일 ~21일
초실절 : 1월 17일
오순절 : (레23:16) 일곱째 안식일의 다음 날까지 오십 일
나팔절 : 7월 1일
속죄일 : 7월 10일
장막절 : 7월 15일~7월22일
``
성경의 절기는 단순한 명절이 아니고, 하나님이 역사와 계획이 들어가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빠져나올 때 발생한 사건을 기억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열 번째 재앙으로 이집트 땅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을 치려 하실 때, 어린양을 잡아 문기둥에 피를 바르면, 죽음이 넘어간다고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믿고 이를 따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날을 기념하여 명절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500년 뒤에 예수님께서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심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믿음으로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고전5:7)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느니라.
즉, 유월절은 이집트에서 나올 때 발생할 사건이지만, 나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을 예표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이 유월절에 해야 할 일이 바로 어린양을 죽여 그 고기를 먹고 “주의 유월절 희생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5) 가죽옷
(창3:21) {주} [하나님]께서 또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시니라.
아담이 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해 주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가죽 옷입니다. 이 가죽옷이 힌트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는 이 세상에 사망이 없었습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 가죽 옷을 만들기 위해 동물을 죽여 그 가죽을 벗겨야만 했습니다. 이 동물은 이 세상이 만들어진 이 후에 최초로 죽은 동물입니다. 그 것도 병이나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고, 아직 사망이라는 단어도 없을 때 하나님이 직접 죽이신 것입니다. 사람의 죄 때문에 죄 없는 동물이 죽어야 했는데, 우리는 모두 이 동물이 어린 숫양으로 짐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이라는 명절을 만들고,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흘리게 한 것이 사람의 죄로 인해서 예수님의 피흘림을 예표한 것이기에 에덴동산에서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진 것으로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화과 잎으로 만든 앞치마로 자신의 벌거벗음을 가리려 하였으나 가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죽옷으로 사람의 벌거벗음을 가려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주홍빛 같은 죄를 우리의 의로 덮어보려 하지만, 사람은 그 죄를 덮을 수가 없어서, 예수님의 붉은 피로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가죽옷을 언제 만드셨을까요? 제 생각에는 유월절에 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아무 날에 하셨을 리가 없지요. 하나님이 7절기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예표로 주셨고, 지금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는데 이 때만 아무 날짜에 어린양을 잡으셨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즉, 아빕월 14일, 종교력 1월 14일, 유대력으로 7월14일에 가죽옷을 만드셨을 것 같습니다.
아담이 에덴을 떠난 날은 다음 귀절로 유추합니다.
(출13:3) ¶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이 날을 기억하라. 너희가 이 날에 이집트 곧 속박의 집에서 나왔나니 {주}께서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이곳에서 데리고 나오셨느니라. 누룩 있는 빵을 먹지 말라.
(출13:4) 아빕 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느니라
이스라엘은 유월절에 어린양을 죽여 그 피를 문기둥에 바르고, 무교절에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담도 유월절에 가죽옷을 입고, 무교절에 에덴동산에서 나왔을 것 같습니다.
즉, 아담은 1월 6일에 태어나서 7월14일 이 전에 죄를 짓고, 7월15일에 에덴동산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면, 0년 7월15일일까요? 아니면 1년? 2년?...
(창1:28)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아담과 이브를 만드시고 하나님께서는 다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나올 때는 세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었습니다.
즉, 아직 아기를 가지기 전이므로 제 생각에는 “0년 7월15일”에 에덴동산을 떠났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태어나서 6개월 만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죄를 짓게 된 것이지요.
(6) 아브라함은 언제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릴려고 하였을까?
비슷한 사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창세기 22장에는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한 사건이 나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 헌물로 드릴려고 올라간 산이 모리아 땅의 한 산입니다.
(창22:2)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일러 줄 산들 중의 하나에서…
이 모리아 땅의 한 산은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곳입니다. 즉, 예루살렘 땅이었고,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피 흘려 돌아가신 갈보리 언덕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하3:1) 그때에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주}의 집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은 전에 {주}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족속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예비한 곳이더라.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 헌물로 드릴려고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대신하여 어린양을 예비하셨고, 그 장소는 놀랍게도 2000년 뒤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그 장소였습니다.
(창22:8)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창22:13)…숫양 한 마리가 자기 뒤에 있으므로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 헌물로 드렸더라.
이와 같이 이삭의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한 사건으로 2000년 전에 장소까지 지정하여 주셨는데,
아무 때에 이 사건이 일어났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 사건도 유월절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6) 결론
어셔 연대기와 유대력(민간력)을 기준으로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0년 1월 6일 : 아담 출생
0년 7월 14일 : 가죽옷을 만들기 위하여 어린양을 준비하심.
0년 7월 15일 : 아담. 에덴동산을 떠남.
2141년 7월 14일 : 아브라함이 모리아에서 이삭을 바침
2513년 7월 14일 : 유월절.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문기둥에 어린양의 피를 바름.
4033년 7월 14일 : 유월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
성경에 아담과 아브라함에 관한 정확한 날짜는 나오지 않지만, 유월절의 의미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십자가 사건 이 전에 이미 여러 사건을 통하여 십자가 사건을 준비하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묵상하여 보았습니다.
2015-02-17 16:06:41 | 홍승대
박혜영 자매님,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보너스는 바로 '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씀을 읽는 중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선물을 글로 올려서 성도들과 함께 나누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올려주신 기도에 대한 내용의 좋은 글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2015-02-17 13:36:15 | 한원규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지만
참으로 그리 사는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참으로 들으려고 하지 않고 너무도 바쁘게들 살아가고 있지요.
주님께서 주신 기회 잘 활용할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
2015-02-17 13:30:43 | 이수영
사람에게 때로 쓰리고 시린 외로움과 고독이 영적으로 큰 유익을 주기도 합니다.
고대광실에서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호화롭게 연락하다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
진한 고독 속에 자신의 한계를 맞닥뜨리고 그것을 계기로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천하를 손에 쥔 영웅보다 오히려 복되다 하겠지요.
말년에 예기치 않은 고독과 동거하는 할머님께도
어려움 가운데 그런 복된 일이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삶 속에서 실천하는 소소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갈망을
잔잔한 문체로 적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5-02-17 11:45:52 | 김대용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거룩하신 창조주이시기에
그분의 사랑도 대체할 수 없는 완전한 사랑이겠지요.
귀한 묵상을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2-17 11:40:23 | 김대용
자매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었어요.
성경에 나오는 각 지파의 계보나 이름을 열거한 부분을 읽을때마다
했던 생각이고요.
그러다가 입양되어 간 한국인이 자기의 뿌리를 찾아서
이름하나 가지고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이름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죠.
주님은 각 개인 하나하나를 아시고.계심을 표현한것 이구나 ~
깨닫게 되었지요.
내가 유대인이 아니어서 읽기에 지루한것이지만
유대인 개개인에겐 정말 중요했던 것이라는것을~
보잘것없는 나 개인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표현이었구나!
하구요. 이하동문에 묻혀질 수없는 대체 불가능한 사랑의 표현이란것을~
자매님. 깊게 사유하시는 글 감사합니다.
2015-02-17 09:05:14 | 이수영
아멘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02-17 00:14:40 | 윤찬수
한 할머니를 알게 되었습니다.
14평 원룸에서 혼자 사시는 분이십니다.
처음 그 집을 방문하고 나서 집 안을 꽉 채운 짐에 놀랐습니다.
큰 집에서 살다 오신 흔적이 역력하였습니다.
더블 침대, 장롱, 식탁, 많은 살림들이 베란다 까지 꽉 차서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해도 찾기가 힘드실 거 같았습니다.
“할머니, 웬 짐이 이리 많으세요? 어차피 안 쓸거 같으면 남을 주거나 버리는게 낫지 않을까요?” 라는 질문에 “응, 다 쓸거야.” 하시는 할머니...
“저기 찬장 안에는 워낙 그릇이 많아서 문 열면 바로 쓰러지겠어요.” 라는 물음에,
“안 열면 되지!” 하는 할머니의 말씀 속에서 진한 고독을 느꼈습니다.
천장까지 쌓아 올린 신발들에서 일할 때 신겠다고 한 켤레만 달라고 하였습니다.
고르고 골라서 “이거 아주 좋은 건데 내가 아끼는 거야” 하시면서 한 켤레를 주셨습니다.
할머니 기분 좋으시라고 당장 그 자리에서 갈아신고 나오는데 30m도 못 가서 밑창이 빠졌습니다. 워낙 오래 두어서 삭았던 것입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다시 올라가서, ‘신어 보니 너무 좋다고...’ 하면서 또 한 켤레를 달라고 했습니다.
흔쾌히 웃으시면서 건넨 또 다른 신발은 신고 나오자마자 밑창이 빠졌습니다...
어느 날 갔더니 과일 주스 담으셨다고 한 병 주시길래, “자녀분들 오시면 주세요.” 했더니 “와야지 주지!” 하는 말씀 속엔 진한 외로움이 배어있었습니다.
얼마 전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셨다 하면서도 여전히 자아가 죽지 않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저에게 완전히 내려놓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저의 교만을 돌아보게 하시고 철저히 인간세계에서 혼자임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무척 외로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버티고 버티다가... 순종하였습니다.
외로움에 못 견디어 하나님께 달라붙었습니다.
그리곤 펑펑 울었습니다.
그런 다음... 몇 시간 후에 놀라운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그냥 시키는 대로 ‘내 자신 죽었습니다.’ 한 거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꽉 찬 평강이 오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으면서 세상이 다시 제대로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진정 내 안의 주인으로 모시는 그 순간 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는데 온 몸이 개운해 짐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평강과 함께 육신의 건강함도 되찾아 주셨습니다.
물건들을 버리면 마음이 허전하고 외로울까봐 버리지 못하는 할머니가 다시 생각납니다.
사람들의 온기를 그리워하시는 할머니...
그 분도 그 외로움을 사람에게서, 물건에게서 해소하려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또 다시 만나면 주님을 전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제가 경험한, 주님께서 주신 평강을 그 할머니께서도 경험하시면 좋겠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와 사람들을 향한 선하신 뜻이로다, 하니라 (눅 2:14)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하나님의 왕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니라. (롬 14:17)
2015-02-16 19:41:34 | 박순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느끼면서 또한 제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점검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2015-02-16 19:03:37 | 박순호
민수기 7장을 읽다보면 참 이상한 진술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통치자들이 그 지파를 대표하여 주님께 헌물을 드린 세목이 열거되어 있는데우리 같으면 12절부터 17절까지 세목을 적고 그 나머지는 이하동문 하고 끝나면 89절까지 그렇게길게 갈 필요가 없을 법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헌물의 내용을 그토록 하나하나 끝가지 말씀에 기록한 연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의 대체할 수 없는 그 사랑을 말씀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12지파의 대표자들은 똑같은 헌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받으시는 주님께는 다 똑같은 헌물이 아니요 각각의 대표자가 드리는 독특하고도 개별적인사랑을 받으시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느껴집니다. 그것이 우리를 다루시는 주님의 사랑방식이 아닌가합니다.
자식을 길러본 사람들은 다 경험했을 이야기입니다.
자식이 하나가 아니고 둘일 때, 첫째를 향한 나의 사랑은 오직 그 아이와 관계 된 독특한 사랑이요 둘째 역시 그렇습니다.
내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 중 첫아이가 군대에 가게 된 때였습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가 다 그러하듯 나도 그 여린 아들을 보내놓고 일주일 내내 눈물을 흘리며, 그 아이에대해 그간 잘해주지 못한 일들을 마음 아파했습니다. 옆에서 보다 못한 둘째가 그런 나를 위로하려고"엄마, 내가 있잖아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내 옆에 둘째가 있다는 사실로는 내마음속에 있는 큰아이의 빈자리를 결코 메울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내게향하신 그 사랑도 결코 60억 분의 일 70억 분의 일의 사랑이 아닌 매우 소중한 사랑임을 깨닫게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그런 사랑을 "대체할 수 없는 사랑" 이라고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아무리 보잘것없는 나라 할지라도 주님의 나를 향한 그 사랑은 그 어떤 다른 훌륭한 그리스도인을향한 그것과는 비교불가한 독특하고도 개별적이며 대체불가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신지요!
2015-02-16 13:57:44 | 박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