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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뵙고 형제님의 마음이 담긴 글을 보니 죽음이 꼭 두렵거나 슬픈 일 만은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으로의 시작... 그리고 이 질곡의 세상과의 작별... 가장 가까웠던 이들과의 이별은 잠시뿐... 곧 영원한 주님의 집에서 밝게 해우 할 그 날이 더욱 간절함으로 다가오는 계기가 되기에 참 은혜롭습니다.
2015-02-27 23:51:18 | 김경민
사랑침례교회 성도 여러분 안녕하세요 유영조 형제입니다. 지난주 토요일부터 금주 월요일까지 어머님의 장례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야 지면을 통하여 인사를 드립니다.   장례예식에 참여해 주신 정 목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형제자매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정 목사님께서 인도해주셨던 장례예식은 저에게 매우 감동적이고 가슴이 메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으로 인한 부활과 휴거의 소망이 있음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요!   앞으로  형제자매님들의 애경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님 안에서의 슬픔과 기쁨에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제가 2.25 잠이 안 와서 새벽에 어머님을 생각하여 일기형식으로 적어본 내용입니다. 시간이 있으신 분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2015.2.25. 새벽, 어머님을 기리며 아들 유영조  2015년 1월 4일 주일예배를 마치고 어머님이 계신 요양원에 갔습니다. 오늘은 동짓달 열이레 어머님이 만84세 되시는 생신을 기념해서 형제들이 요양원으로 모였습니다. 어머님은 침대에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음식물을 흘리는 것을 막기 위해 앞치마를 하고 계셨습니다. 조금 있으니 요양보호사가 식판에 어머니의 저녁 식사를 가지고 왔습니다.   저녁 메뉴는 밥과 국 그리고 동그랑땡, 김치와 나물 등으로 기억이 납니다. 어머님은 치아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잡수시기에 불편할 것으로 생각이 들었던지 집사람은 침대에 올라앉아 반찬을 잘게 잘라서 어머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그것도 마음에 안들었던지 부엌에 가서 직접 가위를 가져다가 반찬을 아주 잘게 잘라서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젓가락을 잡고 일일이 어머님의 숟가락에 반찬을 놓아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왼손으로 어눌한 동작으로 조금 빠르게 식사를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셨고 오른 손이 저리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왼손으로 식사를 하시면서 조금 빠른 속도로 식사를 하십니다. 혹여 체하지나 않으실까싶어 천천히 식사를 하시라고 권해드려도 습관이 되었다는 듯이 잘 드셨습니다. 식사 도중 간호사님이 약을 가져오기에 약들 속에 소화제가 있는지 재차 확인을 하고 안심을 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칠 즈음이 돼서 두 여동생 부부가 생일케이크를 가지고 밝은 모습으로 들어왔습니다. 식판을 물리고 둘째 매제가 어머님 옆에 앉아 생일케이크를 조그마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촛불을 켜고 어머님께 친근히 다가갔습니다. 매제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어머님께 아주 다정했습니다. 어느 때 보면 아들인 나보다도 더 어머님을 자주 찾아뵙곤 합니다. 아주 마음에 드는 녀석입니다. 더욱이 매제의 딸인 미나는 너무나 예쁜 아이입니다. 둘째 동생의 가정에 믿음의 씨앗을 심은  귀한 아이입니다. 작년에는 캄보디아에 1년간 선교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님은 미나가 캄보디아에서 몇 월 며칟날에 온다고 기억하시면서 벽에 미나 사진을 붙여놓고 기도하시며 기다리시기도 하였습니다. 매제는 오래전부터 바랐던 장모님의 소원인 교회 가는 것을 딸로 인하여 풀어드렸습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님 생신축하 합니다."   자녀들의 축하노래에 어머님은 매우 흡족해 하셨고 모두 케이크를 잘라 먹고 어머님도 아주 맛있게 한 조각 드셨습니다. 어머님께 더 많이 드시라고 권했지만 사양하셨습니다. 어머님은 배부르다 싶으시면 딱 잘라 거절하십니다. 첫째 매제가 사온 귤도 먹고 어머님께도 드렸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며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머님께 오늘 예배를 드렸냐고 여쭈니, 드렸다고 하시면서 지난 주 크리스마스에 5천원을 헌금했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주머니에 있는 잔돈을 꺼내자 큰매제도 보태서 어머님께 헌금하시라고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조그만 옷장에 있는 어머님의 바지 주머니에 이미 가지고 계셨던 돈과 함께 접어서 넣으셨습니다. 큰매제가 “다음 달 설날에 뵙겠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나는 어머님을 눕혀드렸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나도 사랑한다” 손을 흔들고 유쾌한 마음으로 방을 나셨습니다. 설날에 뵙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이날이 살아계신 어머님을 뵙는 마지막 날이 될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2월 11일 요양원 원무과장이 오늘은 어머님이 매우 기분이 좋아 보이신다면서 물리치료를 받으시고 난 후 메일과 함께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참으로 평온해 보이셨습니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시고 아주 밝게 보이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답장을 보내고 나서 핸드폰의 갤러리에 저장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멀리 캐나다에 이민 가서 최근 소식이 없는 막내를 구글에서 찾았습니다. 밴쿠버 한인감리교회에서 가족찬양을 하는 사진이 올라와  있어서 스크랩하여 명절날 어머님께 막내의 사진을 보여드리려고 출력하여 보관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사진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2월 17일 설명절로 인하여 휴가 중이었는데 저녁 5시 30분경에 원무과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매우 침울한 어투였습니다. 어머님이 식사도중 쓰러지셨다며 병원에 왔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어 다시 전화가 와서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입니다 멀쩡히 식사하시다 불과 10분여 만에 운명하셨다는 것입니다.   8시경 안산 병원 영안실에 도착하여 어머님의 얼굴과 몸을 만져보니 아직 온기가 있으셨습니다. 당장 일어나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머님의 얼굴은 놀랍게도 매우 평온하셨습니다. 식사중에 돌아가셨다면 고통스러워 하셨을듯한데 의외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습니다.   어머님은 뇌수술을 두 번 받으시고 담석증 수술을 두 번 받으시면서도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텨오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만도 젊어서부터 장사, 가락시장, 골프장일, 대파밭 등 많은 일을 하시며 가정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러시면서도 힘들다는 불평 한번 안하셨었습니다. 어머님에게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던가 봅니다. 쓰러지시면 일어나시고 또 쓰러지면 일어나시는 오뚜기이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일어나시지 못하셨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이제는 이 고통스러운 육신의 장막을 벗으시고 안식을 누리실 때가 되신 것입니다. 새하얀 옷을 입은 천사가 어머님의 영혼을 반가이 맞이하는 듯 그렇게 평온하셨습니다.   국과수 부검결과는 뇌출혈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뇌출혈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장례일정을 2/21일부터 23일까지 3일장으로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장례식장에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와주셨습니다.   첫날 맨 처음 조문오신 분은 우리교회 차형제님 부부였습니다. 전혀 뜻밖의 방문이었습니다만 믿음 안에서 생각을 나누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볼 때는 조금 차가워 보이기도 했었으나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며 주관성과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형제에게 깊은 인상과 친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서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2월22일 주일로서 발인 전날입니다. 친구인 정용훈 목사가 장례식장에 들어오면서 “죽어야 만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불광동교회에서 함께 교제했던 10명의 친구들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고 다들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얼굴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강성기목사, 김찬일형제, 윤봉섭목사, 윤석경집사, 정용훈목사, 김광섭목사, 민경렬형제, (강충성형제), (신세기형제) 나중에 함께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과 정동수 목사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전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님과 성도들이 함께 하는 장례예식이 있었습니다. 식장을 빈틈없이 가득 메웠습니다. 성도들이 부르는 찬송과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장례예식 중 가장 최고의 감동적이고 감격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음이 얼마나 기쁨인지를 다시금 상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몸은 현재 잠들어 계시나 어머님의 영혼은 지금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앞서가신 어머님의 믿음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하실 때 그동안 사셨던 어머님의 생활과 신앙생활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3절은 모두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찬송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가 쉴 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예수라”   고통스러우셨던 육신을 벗으시고 천국에서 기쁨으로 안식하실 어머님을 상기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머님을 받아 주심에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과 경배를 드렸습니다.   2월 23일 새벽, 처남 목사님의 인도로 간단한 발인예식을 하고 서울 추모공원으로 이동했습니다. 화장을 마친 후 임실 호국원에 어머님을 아버님과 합장하여 안장을 하고 가족과 친척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저의 기도로 안장식을 마쳤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어머님의 육신을 이곳 임실 호국원에 안장하였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시던 어머님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셔서 어머님께서 영원히 안식하게 해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비록 몸이 이곳에 묻혀있지만 예수님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공중에서 주님을 뵙게 될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홀연히 변화하여 들림 받아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고 어머님을 만나 뵐 수 있는 소망이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자리에 있는 어머님의 아들, 딸, 손주, 일가친척이 주님 안에서 남은 생애를 기쁘고 행복하게, 서로 용납하며 화평하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5-02-27 14:41:00 | 유영조
아무리 오래 기도를 한다고 해도 겸손히 기도하지 않고 교만한 마음으로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헛 고생이고 시간 낭비 이겠지요.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언제나 겸손을 있지 않아야 되겠지요.
2015-02-27 05:51:08 | 윤정용
제가 어렸을때 그리고 청년때 장년때가 되기 까지 참 순수하게 믿음 생활을 했던것 같았는데 갑작이 그 순수한 믿음은 어디로 가고 세상과 짬뽕이 되어 구분이 안되는 신안 생활로 다른 종교와 다를 것이 없는 아니 더 타락해 가는 안타까운 교회의 현실을 바라 보노라면 주님이 오실날이 가까운것 같아요.
2015-02-27 05:45:19 | 윤정용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이름, 아름답고 그리운 이름                    그 이름 어머니 :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시고 모든 허물을 감싸주시고                    사랑으로 훈계하시며 정성을 다해 우리 7남매를 길러주신                    영원히 내 가슴에 사랑의 그루터기로 남아있는                    그리운 나의 어머니 :                      힘들 땐 어머니를 생각하면 힘이 생기고                    외로울 땐 훈훈한 봄바람 같은 사랑으로 가슴을 메워주는                    어머니의 사랑                      저도 어머니 같은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내 자녀들에게 가르치렵니다.                                      이땅에 수많은 어머니들의 숭고한 그 사랑으로                   자녀를 잘 양육한다면 평화의 물결이 멀리 멀리 저 멀리                   지구의 끝까지라도 흘러넘치겠지요 .                     세상에서 제일 나를 사랑해 주셨던 그분을 생각하면                   조금도 삐뜰어진 길로 갈 수가 없었답니다 .                     사람이 살아가는데 부끄럽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남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기에 우리 7 남매는                   모두가 떳떳한 사회인으로서 먼 이국땅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변함없으신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며 모두가                   행복하게 살고 있지요.                     지금은 내 곁에 안 계시지만 늘 내 마음속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향기 되어 남아 있기에                   저는 어머니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찡 합니다.                    지금은 천국에서 즐겁게 살고 계실 나의 어머니                                                                                          1997. 5 월 어느날
2015-02-27 05:36:57 | 윤정용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감'으로부터 세상과 구별된 크리스찬의 삶이 시작돼야 하는데 세상사람들보다 더 세상적인 크리스찬들이 양산되는 작금의 기독교 문화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조양교 전도사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2-26 12:59:16 | 한원규
글을 읽으며 수천 년 동안 마귀가 즐겨 쓴 전략전술 중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의 정수(精髓)를 혼탁하게 만드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잔꾀에 모르고 당하는 사람이 많을 뿐 아니라 알고도 당하는 사람이 상당하다는 사실 앞에 올려 주신 귀한 글이 제게 살아있는 교훈이 되도록 마음에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2015-02-26 10:25:23 | 김대용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8:9-14절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도 교만한 사람보다는 겸손한 사람의 기도를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은 기도에 날개를 달아 줍니다. 겸손한 마음에서는 성령님께서 더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우리로 간절히 기도하게 하지만, 성취로 인한 자기 만족은 우리의 기도를 방해합니다. 뭔가 됐다고 하는 안도감은 기도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완전한 모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성육신(成肉身)하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야말로 겸손의 최고봉입니다.   겸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형편없는 죄인이며,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끼는 데서 비롯됩니다. 다시 말해서 겸손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발견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겸손은 낮은 자리와 무관심을 좋아하며, 칭찬을 부담스러워 하며, 상대방을 높이며, 너그러이 용서하며, 멸시와 천대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겸손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멋진 옷을 입으면 사람이 달라 보이는 것처럼, 누구든지 겸손으로 옷 입으면 훨씬 더 주님을 닮아 보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모름지기 항상 겸손의 옷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이 엠 바운즈의 기도선집" 중.
2015-02-25 21:07:41 | 박진태
예수님은 아들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가장 먼저 알아본 존재는 마귀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박에 알아보았지만 예수님을 거부했고, 공격적 성향을 보였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빛이시고, 그들은 어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귀들은 예수님만 아니면 된다고 한다. 무엇이든 상관이 없고 그 어떤 창조물과도 친화력을 갖는다. 사람들에게 예수님만 빼고 그 어떤 것도 상관이 없다고 부추긴다. 믿지않는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예수님을 거부한다. 이름만갖고도 부담스럽고 거북스러워 한다. 왜 그럴까? 자신이 어둠속에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어둠의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없다는 중압감을 느끼는 것이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지 모르지만 속박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불신자가 처음에 예수님앞에 나오면 어찌할 바를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행동거지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어본다. 뭔가 예수님앞에 나왔을 때 긴장감이 팽팽히 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오래 믿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대단히 힘들다. 처음의 긴장감이 사라져서 일까? 옷도 마음대로 입고, 말도 함부로 하고, 행동거지도 조심성이 전혀없다. 예수님이 친구같고 또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일까? 혹자들은 기독교가 형식이 없고 편하고 부담이 없는 종교라고 한다. 정작 불신자는 기독교에 대해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불신자들은 기독교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세라고 말한다. 어느 말년 병장의 이야기이다. 제대를 얼마 앞두고 흘러가는 시간이 지루하기 짝이 없다. 집합소리에 눈도 깜짝 않는다. 왠만하면 모든 행사에 열외 병사가 된다. 츄리닝 바람에 내무반을 이리 저리 방황하며 달력에 지난 날 수에 엑스 표시를 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평소 믿음이 좋다는 신참병사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신병, 일루 와 봐’ 신병은 하던 일을 중지하고 잽싸게 병장앞으로 튀어갔다. ‘예 이병 O O O, 부르셨습니까?’ ‘찬송가 CD 있지? 가지고 와’ 찬송가를 듣고 픈 마음이 생긴 것이다. 신병은 고참에게 잘 보일 양으로 최신 CCM을 가지고 왔다. 고참 병장은 한껏 분위기를 띄우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런데 벌떡 일어나더니 그 CD를 내동뎅이 쳤다. ‘야! 일루와’ ‘이게 찬송가냐? 가요지!’ 고참병장은 언젠가 들어보았던 찬송가를 기대한 것인데 ... 핀트가 어긋난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기독교가 더 이상 배타적이지 않고 세상문화를 수용하고 타협하는 종교로 뒤바뀌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그저 종신보험 하나 추가하는 정도로 전락해 버렸다. 마귀들은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아들 하나님이심을 안다. 하늘들과 땅을 여신 바로 그분이심을 알고 있다. 자신이 어둠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올 수 없을 뿐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비록 어둠에 속해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성경기록의 지식에 근거한다. 요한복음 17 : 3절,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리고 그 지식은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으로 이어준다. 일차적으로 보이는 특징이 회개이다. 예수님과 처음 만나면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이 내가 어둠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경험은 소중한 경험이다. 이후로 예수님의 믿음이 나의 믿음을 지배해 나가는 것을 느낀다. 예수님의 믿음을 막고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소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그저 세상종교중의 하나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다. ONLY LORD JESUS CHRIST!
2015-02-25 20:17:48 | 조양교
"일어나라, 우리가 함께 가자.(마26:46)"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할 시점에 그만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자책하며 크게 낙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 다음의 일을 위해 일어나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절망할 때야말로,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연약할 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지극히 거룩하신 주님께서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시며, 또한 통회하고 겸손한 영을 지닌 자와 함께 거하십니다.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겸손한 영을 지닌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것은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들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이사야57:15)'   그렇기 때문에 자신감 넘치던 우리가 자신의 실수로 마음이 낮아져 있을 때, 바로 그 때가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기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마 겟세마네에서의 경험은 제자들에게 아주 좋은 약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후에 주님께서 자신들을 통해 놀라운 이적을 행하셨을 때에도, 자신들의 연약했던 순간을 기억하면서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낙담하고 있을 때, 우리를 책망하는 대신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일어나라, 우리가 함께 가자.'고 하시면서 과거는 잊어버리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고 하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잘못으로 낙심한 나머지 자포자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며 절망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걸음을 내딛게 하십니다.   혹시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했더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의지해서 다시 일어서십시오.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절대로 지난날의 실패에 사로잡히지 말고, 다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오스왈드 챔버스). 
2015-02-24 00:01:14 | 박진태
소소한 일이지만, 일을 찾으시고 임하시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기쁘고 감사함이 넘치시는 모습이 참 아름다우세요. 젊은 자매들의 본이 되어 주시는 윤정용사모님! 오래동안 건강하세요!
2015-02-22 22:04:22 | 태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