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투성인 내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만 삽니다.
2015-03-21 03:21:16 | 박흥식
자매님 글을 읽으니 변화의 날 아름다워던 자매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아기자기한 글이 마치 소녀처럼 느껴집니다.
작은 복장 하나를 통해서 20년 복장에도 변화를 주고 사랑과 권면의
경험들을 이렇게 글로 표현해주시니 느껴지는 바도 있고 사소하게
지나쳤던 제 모습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네요.
권면도 관심과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기억하며...
늘 부드러운 마음으로 권면에 귀기울이며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2015-03-20 23:33:10 | 주경선
자매님! 헤어스타일도 바뀌신 지금 모습이 최소 10년은 젊어보이시고 아주 잘 어울리신답니다.^^
내 스타일 내 개성만 고집하지않고 열린 사고를 갖는다는 것 참 좋은것 같습니다.
저도 권면을 받으면 나를 돌아보고 바꾸려고 노력하겠습니다.
2015-03-20 11:52:13 | 이정희
자매님 옷입는 스타일이 저랑 많이 비슷해 공감이 갑니다 ㅎㅎ
내 스타일의 편안함 고집하는 마음 내려놓기 쉽지 않죠.
교회안에서 화려하지 않으면서 편안한 단정함이 보기에도
좋음을 인정하며 흐트러지지 않게 유지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5-03-20 10:06:50 | 김혜순
내 안의 고정된 틀을 내려놓기 어려운 법인데,
나를 내려놓고 권면을 받아들이는 것은
지혜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랑의 권면으로 인해 변화된 모습이 훨씬 젊어 보여서인지
더욱 건강하게 느껴집니다 ^^
2015-03-20 08:00:30 | 윤영원
자매님은 정말 복장 하나를 변화시키면서 너무 젊어지셨어요.
우리 교회에 처음 나오시는 분들이 하는 말중에 이 교회는 성도들이 어쩜 다 그렇게 예쁘게 생기고 밝냐고 저에게 그러시더군요. 일단 복장이 단정하니 이미지가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성도간의 권면이 자연스럽고 친근함으로 받아드려질 때 우리의 속마음도 한껏 부드럽고 평안한 상태가 아닌가 싶어요. 상대방을 멀리해야겠다 생각하고 마음에서 접어 놓으면 겉도는 얘기만 하고 진심의 얘기는 나오지 않잖아요. 하여튼 저도 자매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니 서로 사랑의 표현을 부드럽게 하고 지내기로 해요.
2015-03-20 07:44:53 | 오혜미
좋은 글 올려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2015-03-20 02:39:52 | 태은상
자기 습관을 고치기는 참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와 남편은 최소한 간단하게 사는 것을 선호합니다.
물론 두 사람이 사는 집이니 규모도 작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그만큼의 분량을 내보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지인이 6인용 식탁을 주면 우리가 쓰던 동그란 식탁을
남을 준다든가, 안마용 의자를 얻으면 사각의자를 버린다든가.....
옷장도 될 수 있으면 헐렁하게 유지하고 싶지요.
아주 간단하게 계절에 입을 옷 두어 벌이면 족하다고 생각하고
헐벗고 사는 것도 아니고 딱히 어디 나갈 일도 없기에
새 옷을 사는 일도 없어요.
나그네의 삶이니 될 수 있으면 간단하게 살려고 생각하지요.
구원 받고나서 가치관이 변해서-목사님의 가르침대로-
여자들의 경우 긴 치마에 헐렁한 윗옷을 입는 것이 좋다고 하시고
남성의 특성을 말하시며 형제들의 시선이 가는 옷은 입지 말라고 하셨지요.
가슴이 너무 파여서 자매가 몸을 숙였을 때 본의 아니게 형제들을 당황하게 한다고
여름에도 과도하게 시원한? 옷이나, 투명해서 비치는 옷, 너무 짧은 치마는 금기였어요.
무릎까지 오는 폭이 좁은 스커트는 앉으면 올라가서 스카프로 가려야 해서
스카프가 자매들의 필수품이었어요.
워낙 꾸미는데 재주가 없는 저는 아주 편하게 잘 적응해서
커다란 옷도, 긴 치마도 좋아하면서 20여 년간 잘 지내왔어요^^
한 여름에도 반팔에 긴 치마를 입었지요.
치렁치렁한 치마에 헐렁한 윗옷이 맵시 있게는 안 보이잖아요?
지금 떠올려보니 월남치마 입은 할머니의 모습으로 보였을 거 같아요^^
그렇게 지내는 동안 한 성도 두 성도를 통해서 권면을 받게 되었어요.
이왕이면 제 나이에 맞게 스타일의 변화를 시도하면 좋겠다고.
맵시에 대해선 생각도 안하고 산지가 20년이 넘다보니
처음엔 ‘내 옷 차림이 성경에 어긋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러지?‘
하고 지나쳤지요.
결정적으로 초여름 결혼식에서 다 함께 한가지로 통일해서 입기로 한 날 해프닝이
있었지요.
공지에 <치마는 너무 긴 옷은 말고>라는 글이 떴어요.
‘헉!!! 난 항상 긴 치마인데 나보고 어쩌라고?’
‘그럼 난 이번 특송에서 빠지면 되지 뭐.......’
처음엔 기분이 좀 언짢았지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두어 번의 권면도 있었고,
내게 관심이 없으면 그런 말도 안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나 편한 것, 익숙한 것을 포기하고 권면을 받아들이기로 작정 했지요.
결혼식에 나로서는 엄청 짧은^^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더니
자매님들의 반응이 모두 “좋다” 고 하지 뭐에요?
사실 스타킹 신는 것도 싫고, 몸에 딱 맞는 것도 싫었지만
마음을 바꾸고 시도를 했더니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그래, 그럼 내가 조금 불편한 것으로 모두가 좋아하면 내 자유를 포기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자매님들의 관심과 권유에 귀를 기울였더니 훨씬 젊어 보인다고 해요.
한 자매님은 “자매님이 우리 교회에 온 이후로 요즘이 가장 젊어 보여요” 라고^^
자매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는 권면 덕분에 새로운 즐거움을 누리고 있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치마 길이를 적당하게 줄여서 입어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네요.
혹시 주변의 성도들이 어떤 동일한 내용의 말을 하거든 저처럼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한번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해 보고 자신을 돌아보면
결국 우리 교회 전체의 모습이 보기 좋아지겠지요.
권면도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어렵지요.
누가 지적을 해서 기분 나쁘게 만들고 싶겠어요?
칭찬의 좋은 말 하는 것보다 듣기에 싫은 말 할 때가
가장 고민하고 어렵게 하는 권면이니까요.
평소에 사용하는 말이나 행동을 돌아보라고 하는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요?
2015-03-19 23:30:12 | 이수영
"너희의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들의 관례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함과 불법에게 종으로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6:19)"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롭게 할 수 없고, 스스로 거룩해질 수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를 완전히 대속(代贖)하셨고, 그래서 우리는 완전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대속에 의한 하나님의 완전한 용서와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해를 매순간 실감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하려는 열심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는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루신 그 완전한 의(義) 앞에 나의 의, 곧 나의 모든 노력과 공로를 다 내려놓고 늘 그 의에 복종하며 그 의를 의지해서 사는 면에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대속을 의지하지 않는 인간적 경건을 조심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대속에 의한 거룩함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경건에 의한 자기 의를 추구하는 신앙은, 겉모습은 그럴듯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과 허세에 의한 헛수고일 뿐입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은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에 비추어 일일이 분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신 대속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열정적 헌신이나 뼈를 깎는 고행으로도 하나님을 조금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대속에 의한 거룩함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자신을 의(義)에게 종으로 내주려면 우리는 주님께 항상 순종해야 합니다. 참된 순종이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도 주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정말로 순종하고 싶다면, 순종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냥 죽으면 됩니다. 죽지는 않으면서 순종하려고 노력하니까 순종하기가 그렇게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갈2:20)"고 분명히 고백하는 사람에게 순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고백했습니다.
믿음은 죽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오스왈드 챔버스)
2015-03-19 23:26:24 | 박진태
좋은글을 올려주셔서 잘 읽고 묵상합니다.
내 삶의 모든것이 주님께 합당한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2015-03-17 10:22:58 | 김영익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라는 이 말씀이 나를 부끄럽게 하네요. 주위에 도와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고서도 무관심하며 살았네요. 하나님께 거저 받은 은혜를 잊고 살지 않아야 겠다고 다짐하고 살지만 행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인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3-16 10:13:05 | 박흥식
"내가 비천하게 되는 것도 알고 풍부하게 되는 것도 알아 어디에서나 모든 일에서 배부른 것과 배고픈 것, 풍부한 것과 궁핍당하는 것을 다 배웠노라.(빌4:12)"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가난하게 사는 법은 알면서 부자로 사는 법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난할 때는 기도하며 늘 깨어있다가도, 잘살게 되면 금세 영이 무뎌지고 흐려져 버립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풍부에 처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물질이 많아져도 영적으로 둔해지거나 약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베풀고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그들이 마음을 높이지 말고 확실치 않은 재물을 신뢰하지도 말며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곧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을 신뢰하게 하고 또 선을 행하게 하며 선한 일들에 부요하고 베풀기를 좋하하며 기꺼이 나누어 주게 하라.(딤전6:17-18)"고 하면서 그것은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니라....내가 풍족한데 이것은 달콤한 냄새의 향기요 받으실 만한 희생물이며 하나님을 매우 기쁘게 한 것이니라.(빌4:18)"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평소에 가난한 자들을 열심히 돌봤습니다."다만 그들은 우리가 가난한 자들을 기억해 줄 것을 원하였는데 바로 그 일은 나 역시 열심히 행하던 바라.(갈2:10)"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도다.(행20:35)"는 말씀에 따라 물질의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으면서도 오히려 물질로 성도들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은 가난할 때보다 부요할 때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배가 부르면 주님을 향한 갈망이 사그라지기도 하지만, 재물이라는 것이 인간의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특성이 있는 까닭에 재물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주님보다는 물질을 더 사랑하게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물이 많아지면 "풍부에 처하는 법"을 따라 잘 나누어주며 살아야 영적으로 타락하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물은 그것을 혼자서 다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을 대신해서 잘 나누어주라고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의 재물의 진정한 소유권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께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물질의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물질로 다른 사람을 섬길 때는. 나를 위해 쓸 때는 느낄 수 없는 은밀한 기쁨이 따릅니다. 아마도 주님의 마음과 일치하는 데서 오는 기쁨일 것입니다.
잘 나누어주고 베푸는 충직한 관리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스펄전의 365일 묵상"
2015-03-16 00:38:45 | 박진태
참 편한 맘으로 읽었습니다.
차분하게 하나님의 창조세상과 새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을 경외함으로 적어주셔네요.
존귀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2015-03-13 16:45:15 | 김영익
이제 곧 있을 이쁜 아가가,
우주속에 아름다운 별보다 더 가치있고 귀하다는 생각을 하니...
주님의 높고 크신 사랑이 무한한 감동으로 밀려옵니다.
2015-03-13 13:47:45 | 태은상
이제 좀 있으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몸소 체험 하시겠네요.
내가 아이를 낳는 것 보다 내가 낳은 아이가 또 다음 세대를 잉태하여 출산하는 것이 더욱 특별하다고 누군가는 말씀하시던데 정말 그런지 좀 있으면 할아버지가 되시는 전도사님께 여쭤봐야 겠네요.
다시한번 축하를 드리며 주님의 은혜를 입어 순산 하기를 기도합니다.
2015-03-13 11:57:34 | 이정희
올려주신 귀한 글을 읽으며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포시 흔드시는 거대한 요람 속에서
배냇짓 웃음을 지으며 재롱을 부리는 아기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기의 모습과 마음으로 아버지께만 눈을 고정하고 그분만을 의지하고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가장 고상하고 순결한 삶이겠지요.
할아버지의 대열에 동참하시게 됨을 축하드리며 우리 교회의 모든 아기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성장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015-03-13 10:53:15 | 김대용
우리는 하루하루 기적을 경험하고 살아간다. 태양에서 지구가 위치한 공간을 라이프 존(life-zone)이라 부른다. 더 멀면 추워서 생명체가 살 수 없고, 더 가까우면 뜨거워서 살 수 없다.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정확한 위치에 지구가 존재하고 있다. 광활한 우주공간은 갖가지 유성파편들이 날아든다. 무엇보다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태양풍은 수소폭탄의 위력을 버금간다. 지구라는 땅덩어리는 서 있는 그 위치가 신비롭고, 각종 위험에 맞설 수 있도록 몇 꺼플의 보호막으로 덮이고 또 덮여 있다. 낮에는 태양으로부터 여과된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받고, 밤에는 달을 통한 다양한 조명과 밀가루를 뿌려놓은듯한 반짝이는 별들의 빛이 온 하늘을 수놓는다.
지구라는 땅덩어리는 컹컹거리는 세찬 파도물결의 대양이 있고, 갖가지 녹색 잎과 흙과 바위들로 뒤엉킨 거친 대륙을 형성하고 있다. 사람의 손길과 상관없이 그저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공간일 뿐이지만 그 속에 생명의 힘이 꿈틀거리며 역동한다. 지구라는 땅덩어리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무지막지한 창조물들이 소리 높여 울어대지만 조용한 가운데 그 모든 것들을 응시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사람이다. 모든 창조물들의 존재도 신비롭지만 사람만큼 신비로울 수 있을까?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칫솔모가 있는 칫솔에 소금을 뭍혀 양치를 하고, 비누를 뭍혀서 머리를 감고, 온몸을 쏟아지는 물로 구석구석 헹구어 낸다. 식사를 하고, 습관적인 일들을 하면서 창의적인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해 나간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도움과 협력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며 살아간다. 클래식 음악을 듣기도 하고,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기도 하며, 조간신문을 펼쳐들고 사건 사고의 소식이나 새로운 정보에 눈과 귀를 쫑긋 세운다. 사람과 절친인 개나 고양이가 사람의 이런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의 이런 외부 행동과 상관이 없이 심장은 쉴새없이 펌프질을 하고, 각종 대사활동이 몸속에서 활발히 진행된다. 부모의 모양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고, 태어난 그 사람들 중에서 그 겉모양이 같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겉모양이 다양하리만치 속 모양 또한 다양함을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사람의 그 섬세함과 다양함은 온 우주의 시스템을 함축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안 있으면 시집간 딸아이가 손녀를 출산할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자신의 세대를 넘어 그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것은 묘하지 않은가? 아이는 어미의 뱃속에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루하루 할 것이다. 아이의 부모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한다. 무엇이 필요할까? 인터넷이나 지인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아기 용품 파는 곳을 여기저기 발품파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잠시 후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자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볼 것이다. 귀를 통해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입을 통해 젖을 먹고, 옹아리를 할 것이다. 손으로 무언가 쥐려 할 것이고, 발로 허공을 휘저을 것이다. 무언가 정보를 얻으려 애를 쓸 것이고, 나름 살기위한 발버둥을, 생존의 몸부림을 칠 것이다. 본인은 온 힘과 악을 써보지만 어른들은 그런 행동들을 바라보며 귀여움에 미소를 지을 것이다. 이제 갖 태어난 생명체는 하루하루 기적을 체험해 나간다. 전에 해볼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는 존재로 .....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을 통해 생명이 이어지게 하고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시스템을 장치해 놓으셨다. 그 장치로 인해 기적이 일어나고 그 기적을 통해 하루하루의 생활이 이어져 간다. 정작 성인들은 기적을 밋밋하게 받아들이지만 새로운 생명체로 인해 생동감 있는 그 기적을 다시한번 체험하고 즐거워한다. 그 기적을 통해 다름 아닌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고, 창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나의 당한 일이 모두의 일이 아니고, 모두에게 당한 일이 나의 일이 아니다. 나에게 경험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발견하게 된다. 일상의 반복을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특별한 일들을 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일은 일상의 일이기도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새로운 일이며 특별한 일이다.
우리 교회에 아이의 탄생소식이 많이 들린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많이 들린다.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격한다.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아이는 태어나고,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가 덮여있는 곳에서 꽃은 피어난다. 다음세대를 위한 준비는 상황과 상관없이 일어난다. 일상의 일들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적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2015-03-12 21:07:08 | 조양교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무엇때문에 바쁘게 살아가는지..사실 정확한 목적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정부와 대통령 비난하는 ...참 ...안타까운 사람들을 보면서 저 자신도 돌아보게 됩니다.
큰소리치고, 으름장 놓아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한국식 고정관념도 한 몫 하는 것 같구요.
바른 성경으로 변화되어 각자 있는 곳에서 조용히 ..인내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3-11 12:04:23 | 오광일
오랜만이시네요
우리네의 모습이 우물통안에 있는 개구리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작 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무감각하고, 서로의 이해다툼을 위해서는
한치의 양보심도 배려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주님은 얼마나 더 속터지실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민족이 물질때문에 더 귀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15-03-10 21:37:58 | 조양교
형제님! 평안하셨는지요?
오랜만에 잔잔한 묵상의 글을 올려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진솔하고 구성진 언어를 잘 담금질해서
마음 깊이 담을 수 있는 시어로 올려 주셔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목이 가장 제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대한민국아 제발 조용히 좀 살자!"
왠지 '대한민국' 자리에 제 이름을 넣고 싶어지네요.~ㅎ
잡다한 것을 내려놓고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며 살고 싶은 소망을 되새기며
앞으로도 귀한 글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2015-03-10 13:01:48 | 김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