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신앙생활의 가장 귀한 것들은 모두 기도로 얻어집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심에 따라 성경을 기록한 것은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시기 위해, 늘 깊이 기도하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며 성령님께 사로잡혀 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설교자가 선포하는 말씀은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고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설교자의 기도 없는 교회가 양적으로는 크게 성공할 수 있지만, 기도 없는 성공은 머지않아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는 있어도, 절대로 사람들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도 없습니다.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일을 성공하기 위한 비결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기도를 기다리시며, 기도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성도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기도하도록 만드는 종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닮은 종입니다. 그런 종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날의 교회가 기도 안 하는 성도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습니까? 사도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기도하게 만드는 종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역사하십니다. 실로 기도만이 하나님의 통로입니다. 늘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통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 엠 바운즈의 기도선집"중.
2015-04-08 22:54:00 | 박진태
늘 이렇게 성실하게 글을 읽고 공유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글 중에서,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들이 하나님께는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찔림을 얻습니다.
그러고보니 나는 알면서 애써 숨기며 고집대로 살아왔던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모른척 참아주셨네요! 사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토록 미워한 나만의 '산당'이었는데 말이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4-08 18:31:23 | 김상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내 속에 강퍅한 것이 없나 살펴봅니다. 감사합니다.
2015-04-07 07:16:32 | 박흥식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돌보아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계속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아직도 주님을 멀리 하고 주님의 명령을 버리고 어긋난 길로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앞으로 신실한 믿음을 지키는데 소홀함이 없게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5-04-07 07:05:09 | 박흥식
1. 진화론과 간극이론의 역사
1800년이전까지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병자로 취급받았을 것이다. 1795년 허톤의 ‘지구의 이론’이 출간되면서 그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구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과학적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자구의 75%가 퇴적층으로 형성되어 있고 그 평균 깊이가 1.6km에 달한다. 수많은 지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기준으로 30cm의 지층이 쌓이는데 50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과학적 주장이다.
1814년 프리메이슨 지부의 일원이었던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촬머스는 ‘간극이론’을 제창했다.
1841년에 영국의 신학자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그리스어 신약본문을 발표한다.
1844년에 독일의 성경학자 테센도르프는 시내산의 캐서린 성당에서 AD4세기에 기록한 시내사본을 발견한다.
1859년에 촬스 다윈은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진화에 대한 이론을 ‘종의 기원’을 통해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였다.
1876년 조지 펨버는 ‘초기 지구의 시대’에서 낮은 지층에는 하등의 화석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술하면서 촬머스의 간극이론을 발전시켰다.
1881년 영국 개역성경 발간
1901년 미국표준개역성경 발간
1909년 스코필드 주석성경 발간으로 교회안에 간극이론을 주요교리로 정착시켰다.
1912년에 영국의 필트다운이란 마을에서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고리로 인정되는 화석이 발견되면서 인류진화의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여 진다. 1963년에 사람의 두개골과 오랑우탕의 턱뼈를 조합시킨 사기극으로 발표되기 까지 50년간 진화가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 증거로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되었다.
1918년 라킨이 ‘세대적 진리’를 출간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와 진화의 긴 연대를 수용하는 간극이론으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2. 간교한 거짓말
1) 30cm의 지층이 쌓이는데 50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관찰되는 현상이 과거에도 동일했다고 볼 수 없다. 화산폭발이나 홍수를 통해 수십센티의 지층이 순식간에 형성될 수 있다.(세인트 헬렌산 화산폭발) 현재와 과거의 상황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성경은 노아의 홍수라는 전 지구적 홍수라는 대 격변을 기록하고 있다.
2)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진화가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돌연변이나 자연선택이 발견된다. 그러나 진화는 없다. 처해진 환경에 따라 개체수의 변화와 다양성이 있는 것이지 DNA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종과 종간의 연결고리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그 창조의 질서가 지금까지 유지됨을 믿는다.
3) 낮은 지층에는 하등의 화석이 존재한다?
교과서의 지질 주상도에 나오는 지층은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낮은 곳에서 발견되는 생물들의 화석이 고등생물이고 복잡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예 : 삼엽충) 현재 발견되는 화석들은 서식지의 구분에 따라 매몰된 흔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3. 무엇을 믿을 것인가?
무엇을 믿느냐는 개인의 선택이요, 지역교회의 선택이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고 강요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간극이론은 유대교와 1800년 이전의 기독교의 입장은 분명히 아니다. 간극이론은 진위를 떠나서 굳이 믿겠다면 할 수 없지만, 그 태생이 어수선하다. 진화론이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시기이고, 개역성경이 킹제임스 성경을 대체하려하고 강력한 힘이 움직이는 시점이다. 성경으로 과학을 이해해야지 과학으로 성경을 접근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의 해괴한 논법은 생각과 판단을 고정하고서, 그 후에 그 추론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들을 찾아 모으러 다니는 일이다. 뒷받침할만한 것들만 모았기에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는 이론들인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6일간 창조하신 그것을 믿으면 된다.
딤전6:20,21절
20 오 디모데야, 속되고 헛된 말장난과 또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의 반론들을 피하며 네게 맡긴 것들을 지키라. 21 그것을 내세우던 어떤 자들이 믿음에 관하여는 잘못하였느니라. 은혜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2015-04-06 14:31:57 | 조양교
"아사 왕의 어머니 마아가로 말하건대 그녀가 작은 숲에 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녀를 제거하여 왕비가 되지 못하게 하고 그녀의 우상을 베어 낸 뒤 짓밟아 기드론 시내에서 불태웠으나 산당들은 이스라엘에서 제거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의 마음이 평생토록 완전하였더라.(역대하15:16-17)"
아사 왕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온전히 순종했지만, 모든 일에 순종을 다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이런건 큰 문제가 아니야..."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이 하나님께는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일도 사소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단 한가지 교훈을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 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포기하거나 화내지 않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고 생각하는데도 '산당'은 아직 그대로 버젓이 남아 있을 수 있는 법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부끄러울게 없다고 주장하지만, 여러분의 실제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즉각 중단하십시오. 큰 죄를 버렸다고 해서, 작은 죄는 괜찮아 지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대충 지나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미처 정리하지 못한 어두운 구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중요한 일에서는 모두 옳았다 할지라도 확실히 아직 뭔가 부족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다해 온전히 순종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단 한순간도 박동을 멈춰서는 안되는 것처럼, 우리는 삶의 모든 문제에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기를 단 한순간도 쉬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 주파수를 고정하기 원하시며, 그분께만 온전히 집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우리들이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면에서도,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오스왈드 챔버스)
2015-04-05 23:57:26 | 박진태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04-01 07:04:53 | 박흥식
"회초리와 꾸짖음은 지혜를 주거니와 제멋대로 버려둔 자식은 자기 어머니에게 수치를 가져오느니라.(잠29:15)"
우리들은 편안한 생활에 안주하다 보면 죄악된 생활에 빠지기 쉬운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어 기꺼이 진리를 배우도록 하십니다.
마틴 루터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환난과 고난이 없었다면 나는 성경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고난 중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이 말에 공감할 것입니다. "오 주여, 주께서 징계하시며 주의 법으로 가르치시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하오니 이로써 내가 주의 법규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94:12, 119:71)" 라고 말했던 다윗이 그 진리를 깨달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 진리를 깨달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연단의 과정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는 이러한 깨달음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 것도 배우는 게 없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고통이 우리를 짓누르고 재난이 우리를 혼절케 해서, 우리는 신경이 곤두서고 마음이 뒤틀리며, 감각이 마비되기까지 합니다. 반면 그에 따른 소득은 아무것도 없는 듯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우리는 복된 결과들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판단력이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달콤함을 예민하게 느낄 줄 알게 되고, 말씀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분별력도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들이 징계의 은혜로운 열매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이 철저한 훈련 과정을 밟은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놀랄 만큼 진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고난당할때(호레이셔스 보나르)
2015-03-31 23:10:34 | 박진태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어떤 부족함이 환경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주님과 가까움이 없는 내 자신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그 어느 것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사도 바울의 고백에 많은 은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5-03-30 02:31:00 | 박흥식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거기에 만족하는 것을 내가 배웠노니.(빌4:11)"
환경이나 물질에 행복을 쌓는 것은 중대한 과오를 범하는 것입니다. 환경은 변하고 물질은 닳아져 가치를 잃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 세상의 지나가는 외적인 것 위에 행복을 쌓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진정한 자기 만족은 내면에서 나옵니다. 사도 바울의 위대한 간증도 그런 의미입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거기에 만족하는 것을 내가 배웠노니."
자기 만족은 안일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안일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부담을 느꼈고, 위험과 박해에도 아랑곳없이 도시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자기 만족은 사실상 내실입니다. 삶에 용감히 맞서 거뜬히 대처할 영적 자원을 내 안에 갖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 만족은 하나님의 충족입니다.
여러분 삶에서 버팀목과 지지대를 다 떼어내도 여러분은 설 수 있습니까? 내면에 하나님의 충족과 만족이 있습니까? 하나님 방식에 따를 믿음만 있다면, 여러분도 그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고차원의 신앙 상태에 어떻게 도달했을까요? 그는 '내가 배웠노니'라고 말합니다. 즉 자기 만족은 그의 구원에 자동으로 따라온 본래 은사가 아니었습니다. '경험으로 배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여기서 넘어집니다. 우리는 내적 자기 만족과 영적 충족을 당장 얻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속사람의 내실은 그렇게 다져지는 게 아닙니다. 경험으로 배워야 합니다. 환난과 시련과 역경과 희생을 경험하고 삶의 변화에 부딛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변화가 없으면 도전도 없고 도전이 없으면 성장이 없습니다. 고립되고 단절된 삶을 산다면 도전에 부딛칠 일도 없겠지만, 그것은 성숙해질 기회도 없다는 뜻입니다. 성숙한 사람들에게 삶이란 싸움터입니다. 그들은 기꺼이 싸움에 부딛쳐 믿음으로 승리합니다.
사도 바울이 인생이라는 삶에 어떤 시험을 치렀는지 보려면 고린도후서 11-12장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내가 수고를 더욱 넘치도록 하고 매도 지나치게 맞고 감옥에도 더 자주 갇히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내가 유대인들로부터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을 파선을 당하여 한 밤과 한 낮을 깊음 속에 있었으며.(고후11:23-25)" 여기에다 여러 번 여행중에 겪은 위험, 적들의 방해,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짐까지 더하면 사도 바울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주저앉아 포기하지 않고 위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12:9)"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실을 다지는 법, 즉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모든 자원을 속에 품는 법을 고된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사도행전 27장을 읽으면 풍랑 속에서도 만족한 사도 바울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포기한 상황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일행의 목숨을 건져주실 거라고 공헌했습니다. 그는 "그러므로 선생들아, 기운을 내라. 내가 하나님을 믿노니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행27:25)" 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삶에 어떤 상황이 닥쳐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족하는 법을 경험을 통해 배웠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배울 마음만 있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감동적인 간증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거기에 만족하는 것을 내가 배웠노니..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난의 삶에 소망을 말하다(워렌 위어스비)
2015-03-29 20:37:57 | 박진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은 빛이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에게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게 하라. 어둠 가운데 다니는 자는 자기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요12:35)"
하나님의 빛 속에서 본 것들은 그대로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변하여 어두움이 됩니다.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이 어둠으로 가득하리라. 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되면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느냐!(마6:23)"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빛을 비춰주셨음에도 그 빛을 외면한다면, 여러분의 영적 생명은 위축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속으로 끊임없이 진리가 들어오게 하여, 그 진리에 순종하면서 그 진리와 더불어 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빛은 여러분에게 도리어 큰 짐이 될 것입니다.
가장 다루기 힘든 사람은, 늘 과거의 영적 무용담을 들먹이며 자부심에 가득 차 있기는 한데, 실생활에서는 전혀 그렇게 살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경험이 진짜라면 지금 그 사람의 삶에서도 여전히 드러나 보이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믿음은 아무리 그럴싸해 보여도 가짜입니다. 영적인 자아도취를 조심하십시오.
성화의 교리를 잘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삶의 모든 문제에서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삶의 문제는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그리스도 십자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해야 합니다. 문제는 항상 십자가에 처리되지 않은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에 대한 가장 적절한 해결책은 '십자가' 입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오스왈드 챔버스)
2015-03-27 00:40:52 | 박진태
오늘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많이 많이 도와주세요~ 성령님.
2015-03-24 09:13:34 | 목영주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온전을 향해 가는 나에게 아직도 내려 놓지 못한 것들이 무엇일까! 그 동안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 오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고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12:1,2).고 하신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주님을 위해 내려 놓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내려 놓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2015-03-24 07:15:06 | 박흥식
"베드로가 그분께 말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막10:28)"
베드로는 자신의 권리포기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해타산에 너무도 밝아서, 주님 그분 보다는 그분께 무엇인가를 얻어내는데 관심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성도의 권리포기란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권리포기를 깨닫는데서 오는 지극히 순수한 결단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代贖)을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는데, 이 믿음에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는 고백이 포함됩니다. 즉 진정한 믿음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연합되어 주님과 함께 죽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믿음이란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권리포기란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데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헌신으로서, 주님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주님과 완전히 하나 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타산적 권리포기'란 말은 엄밀히 말하자면 '둥근 사각형'처럼 일종의 형용모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권리포기에는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대가를 염두에 둔 권리포기는 헌신이 아니라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권리를 포기하면 그때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소유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면 주님의 자유로움과 부요함이, 인정받을 권리를 포기하면 주님의 겸손함이, 옳고 그름을 따질 권리를 포기하면 주님의 관대함과 온유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권리를 포기해야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권리를 포기함으로 자아가 죽어야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드러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권리포기는 상실이 아니라 성취입니다. 권리를 포기하는 만큼 주님을 더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모든 권리를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실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오스왈드 챔버스)
2015-03-24 00:30:41 | 박진태
자매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얘기를 들었는데 어쩜 이리도 세세히 기록하세요? 메모하시지도 않았는데...
탁월한 리포터네요..
어제의 간증은 들어도 들어도 싫증나지 않은데 결론은 다 같더라고요ㅡ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 늘 전해져 오네요..
2015-03-23 19:06:22 | 오혜미
어제는 새롭게 더해지신 분들의 소회를 들으며
주님께서 이 한 분 한 분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실까를
잠잠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나는 과연 얼마나 간절하고 정성어린 마음
그리고 가식 없는 솔직함으로 새롭게 한가족이 된 성도님들을 대했는가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의 정성과 섬김과 무엇보다 정직함이
하나 됨의 귀한 열매로 맺혀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임에 대한 진솔하고 정감 어린 스케치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5-03-23 14:16:57 | 김대용
여러 모양으로 모인 지체들의 짧은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혼들을 궁휼히 여기셨는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나온 여정들을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각자의 때에 맞추어 적절하게 인도하셨고, 그리고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요. 그 높으신 은혜에 대한 감사로서 "나는 점점 쇠하고, 주님은 점점 흥하는 그런 교회"... 그렇게 주님의 교회를 이루어 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015-03-23 08:55:12 | 태은상
김호진 형제님?이신듯-
우리 교회 성도가 아님에도 댓글을 달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교회에 나오시지 못해도 유투브를 통해 만나를 섭취하며
주님을 고대하는 우주적인 교회 성도들이 많이 계세요.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시면 한번 방문해 주시면 반가울 것 같아요.
이미 우리 교회 성도가 되신 듯^^
주님께서 속히 바른 길을 찾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5-03-23 08:46:50 | 이수영
글을 내려 보다가 문득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초면에 죄송합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전하는 목사는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분들의 지식을 인정하고 저도 모르게 높이며 지금까지 달려오다 길을 잃었습니다. 제 잠정적 결론이 하나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목사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목사님은 하나님을 경외하시는 분 같아서 그분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더 마음에 잘 들어옵니다. 저는 사랑침례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참 부럽습니다. 사람들이 정목사님의 지식을 신뢰해서 모인 것 같지 않습니다. 다들 알만큼 아는 사람들이죠. 실상은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교회들의 모습이 형성된 교회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것 아닐까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기쁜것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에 나온 수많은 교회의 요건들을 세상과 타협해서 이것 빼고 저것 빼고 편한 것만 취해서 교회로서 일하자고 하는 것이 주님 보시기에 어떠할까 생각하니 그저 얼굴이 뜨거워집니다. 기쁜 글에 우울한 댓글 죄송합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살아있고 오늘을 허락 받았으니 제게도 진정한 예배와 쓰임받는 그리스도인의 길이 허락 될 것 아니겠는가 하고 조심스럽게 기대해봅니다.
2015-03-23 08:23:10 | 김호진
성도들이 각자 뽑기를 통해 자매 3 팀과 형제 3팀으로 모여 그룹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방은 한국을 잠시 방문 중으로 교회 오신지 두 주째가 되신 분도 계셨고,
다양한 연령층의 자매님들이 간증으로 감동을 나누었습니다.
각기 우리교회에 오기까지 그리고 지금의 상태에 대하여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모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박수도 자주 터져 나왔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가운데 아이의 학교친구 엄마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의 교육을 받다가
‘하나님 어머니’에 대해 듣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 그만 나가게 되었답니다.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를 하면서, 음식을 만들면서도
수시로 주님께
“참된 진리를 알게 해 주세요”
기도를 간절하게 하면서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는 가운데 흠정역 성경을 먼저 알게 되었고 정 목사님의 설교를 유투브를 통해 몇 개월 듣다가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간절히 오고 싶어서 머나먼 거리인데다 고속도로 주행은 한 번도 안 해봤기에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죽을 각오를 하고 아이 둘을 태우고 교회를 방문했고
직접 예배에 참여하며 너무 기뻐했다지요.
계속해서 교회를 나오면서 믿지 않는 남편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석 달을 나오던 중
12월에 가족음악회에 아이덕분에 처음으로 교회에 좋은 아빠인 남편과 함께 참석했지요.
정말 간절한 눈물의 기도를 보신 주님의 은혜로 지금은 온 가족이 행복하게 동일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간증에 모두 박수를 절로 치게
되었지요.
5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목사만 열두분에 권사만 80명인 집안에서 교회를 옮길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본적도 없이 열심히 교회를 섬겨왔는데
남편 분께서 인터넷을 통해 유-명한 교회 목사들의 설교를 섭렵 하던 중에
정 목사님의 설교를 접하게 되고 올바른 교회라는 분별을 하시고 많은 시간을 들여
유투브를 통해 정 목사님의 강해 설교를 모두 다 듣고 부부가 한마음으로
교회의 모든 일에서 손을 놓기 위해 약 1년 동안 준비하고 정리가 되자
바로 우리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답니다.
적지 않은 세월 믿음 가운데에서 살아왔지만 이제야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고
“BC가 AD로 된 것 같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 교회에서 믿음생활하기를 바란다고-
올바른 설교를 하는 목사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갈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올바른 교회를 찾던 중 우리교회를 알게 되어 두 주 째 오신 자매님은
너무 기쁜 가운데 호주에 계신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차근히 잘 살펴보라 ” 하셨다고 하네요.
올바른 교회를 찾았으니 이제 호주에 가면 두 세 가정이라도 모여서
바른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지요.
평소에 성경을 열심히 탐독하던 남편이 유투브를 통해 정 목사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서
“올바른 설교를 하는 목사가 한국에도 있다”
고 하면서 우리교회에 오게 되었고 이제 모든 것들이 변화되는 경험을 하는 중에 있다는
값진 간증으로 우리 모두 기쁜 박수로 화답을 하였지요.
“남편의 인도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우리 교회에 나왔기에 지금은 너무 자유롭고
바른 말씀으로 누리는 기쁨이 있다“
는 남편의 덕을 보고 있다는 자매님의 간증도 기뻤지요.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그 땅에 기근을 보내리라.
그것은 빵으로 인한 기근도 아니요 물로 인한 갈증도 아니며 오직 주의 말씀들을
듣는 것에 대한 기갈 이니라 > 아모스8장 11절 말씀으로 표현해 준 간증도 있었고
성경에 대한 지식은 지식일 뿐 성화 되지 않는 성도와 목사와 자신의 모습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찾고 찾으면서 돌고 돌아 드디어 우리교회를 찾아와 참 안식을 누리는 가운데 가정이 변하고 있다는 간증도 있었고
매 주 전해지는 강단의 말씀이 목사의 인격이 뒷받침이 되지 않아 너무 어려움 속에
섬길 교회를 찾아 순례?를 하다가 우리교회에 와서 안착하게 되었다는 간증도 있었고
작은 교회의 목사가 하라는 대로 온갖 일을 힘에 겹도록 하다가 지쳐서
식구들을 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풀었던 자매님이
유투브를 통해 설교를 듣게 되면서 우리교회로 오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나
온갖 일을 맡아서 일을 했기에 ‘어떻게 그만 두지’ 고민하던 중에
자꾸만 목사와, 성도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중 목사가 “나오지 말라” 고
해줘서 너무 기쁜 마음으로 정리하고 우리교회 나오게 되었다고.
우리교회 나오면서 성경에 대해서 이제 제대로 알아가는 기쁨과
본인 자신이 변하니 가정이 화목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간증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영어 흠정역을 알게 되어 국내에서 보던 성경의 번역이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흠정역을 보는 교회를 찾다가
우리교회에 와서 바른 교리를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간증과 더불어
요즘에는 지식보다는 개인의 변화인 성화의 과정에 더 마음을 써야겠다는
귀한 생각을 나눠 주신 분도 있었고요.
성도들의 여러 가지 간증들이 저마다 색깔은 다르지만 올바른 교회에 왔고,
영혼의 안식을 누리고 있다는 동일한 간증들이었지요.
또한 목사님의 설교대로 변화되도록 성화에 힘을 쓴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일반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서 전철을 타면 옆에 앉은 분에게
내리는 순간까지 우리 교회와 목사님의 설교를 꼭 들어보라고 권유하고
내린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지요.
섬기는 동안 서로를 알아가며, 버릴 것은 버리고, 바꿀 것은 바꾸면서
바른 교리 안에 올바르고 견고하게 서로를 세워 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누며
각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행복한 나눔의
시간이었습니다.
2015-03-22 23:42:31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