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푸터와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믿음생활도 변화가 생겨 실제 내 주위의 사람들보다는 글로서 지식을 주고 받는 사람들도 많아진 거 같습니다.지적발달로 인해 기형적인 성장을 조장하지는 않는가 한번 쯤 생각하게 한 글이네요. 지역교회로서 지체로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활발한 신앙생활을 해야겠습니다
2015-05-01 00:04:03 | 오혜미
평이한 사람도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학식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성경기록을 읽고 이해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을 모세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성경기록은 점진적으로 계시해주고 있으므로 구약의 내용을 가지고 신약교리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창세기 1장은 각론보다는 개론차원의 큰 틀의 구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큰 비율로 창조를 하셨지만 제 수준의 적은 비율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손녀 딸을 낳았습니다.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는 정신이 없었는데 손녀의 경우 새로운 것을 많이 느낍니다. 좀 여유있어 졌다고 할까요? 내가 이미 겪었었던 일이기에 몇 마디의 전해들은 소식으로도 딸아이 가정을 망원경으로 보는 것처럼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딸아이가 작년에 결혼을 했을 때 부부 중심 모드로 생활을 했습니다. 결혼식, 신혼여행, 보금자리, 주방기구, 침구류, 의복 등, 주말이면 어디로 갈까? 결혼 후 몇 달이 지난 후 아이의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 했으나 배가 점점 불러 올수록 부부 모드에서 아이 모드로 점점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집안 구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침대, 아이가 입을 옷, 아이에게 필요한 용품들, 심지어 유모차까지 장만을 했습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형편껏 준비를 하는 모습이...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기쁨과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고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최상의 것들로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갈 때마다 새로운 것들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아이를 낳았는데 그렇게 신기할 줄 몰랐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를 그렇게 사랑했었나 봅니다. 요즘에는 돈 주고 자랑해야 한다고 하네요^^ 아내도 손녀 딸 사진을 핸드폰에 담아놓고 눈에 진물이 날 정도로 쳐다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조하시는데 6일이나 걸릴 필요가 없죠. 6일의 하루 하루를 기록하시면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할 사람이 하나님의 심중에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격을 사람을 통해서 드러내시기를 계획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모가 장차 태어날 아이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처럼 하나님의 모든 관심과 초점은 사람에게 향해 있음이 분명합니다. 마땅히 창조기사를 읽는 사람의 관심과 초점은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합당하고, 그 일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합당한 접근일 것입니다.
만약에 재창조의 문제가 하나님께 큰 이슈였다면 창세기 1장을 읽으면서 두 개의 이슈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창조된 아담에게 알려주었을 것이고, 성경기록을 읽을 독자들에게 명시적으로 기록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창세기 2장에 가서야 불법을 행한 루시퍼에 대한 말씀과 함께 주의해야 한다는 정도의 경고를 주신 것으로 압니다.(2:15절) 그러면 창세기 1-5절 까지 평이한 이해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문자적인 하루하루의 기사 뒤에 문단 구분이 나와 있습니다. 저의 상식으로 문단 구분 표기로 보아 성경이 기록된 이후 1-5절까지 한 문단으로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1절과 2절 사이에 중요한 사건이 있다면 문단 구분을 했어야 할 겁니다. 2절에서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without form, and void)의 표현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직전의 상태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형태를 갖추어야 할 것들이 형태가 아직 없었고, 채워져야 할 것들이 아직 비어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글로 이해가 됩니다. 완전한 형태를 빚으시고, 빈곳들을 정밀하게 채워 나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마치 부모가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 준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3절에 가서야 물리적인 빛을 창조하신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는 물리적인 빛이 없는 어둠 그 자체였고, 빛이 없는 물리적인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간극이론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체계에 혼란을 주고 하나님을 향한 초점을 흐리게 합니다. so what? 반면에 하나님의 6일 창조기록은 역동적이고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을 향한 강한 신뢰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케 합니다.
진화론이 창조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믿음체계인 것처럼, 간극이론을 주장하는 것도 창조주 하나님을 약화시키는 믿음체계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관점, 다른 믿음체계가 분명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거나 설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반론으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정적인 말들은 SNS를 통해 빠르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지적인 영역만 과도하게 발달된 기형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을 바르게 사랑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순종하는 전인격적인 균형잡힌 삶입니다. 힘써야 할 영역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케 하는 어떤 자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가 한 말로 인해 하나님앞에서 회계보고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내 생각, 내 의견, 내 주장을 드러내기 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길인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성경 단어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모르지만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 방향으로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요한삼서에 기록된 것처럼 진리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데메드리오는 모든 사람에게서와 진리 그 자체에게서 좋은 평판을 받았고 참으로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희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 아느니라.” (요삼 12)
2015-04-30 21:43:57 | 조양교
박진태 형제님, 참 좋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 소망 : (내용 중)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절망이 아닌 소망으로 앞을 내다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미래를 아시고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2. 기쁨 : (내용 중) " 행복은 대개 상황에 좌우되지만 기쁨은 성령님만이 주실 수 있는 내면의 확신과 안정 기쁨이며 외부 상황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3. 평강 : (내용 중)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4. 그리고 핵심 단어는 믿음 : (내용 중) "여러분의 과거에 대한 염려, 현재의 처지,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으로 충만케 해달라고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2015-04-27 15:02:19 | 한원규
"이제 소망의 하나님께서 너희가 믿는 가운데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너희를 충만하게 하사 성령님의 권능을 통해 너희에게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우리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절망이 아닌 소망으로 앞을 내다보기 원하십니다. 여러분과 나는 절대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래를 아시고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망이 넘치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의 힘으로 소망을 만들어내려 하지 마십시오. 성령님께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의 통치권을 그분께 드리십시오. 그리고 시간을 내어 성경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면 성령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놀라운 소망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기쁨도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행복을 포함할 수 있지만 행복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행복은 대개 상황에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쁨은 성령님만이 주실 수 있는 내면의 확신과 안정입니다. 기쁨은 외부 상황이 만들어내는것이 아니라 내적 조건의 결과입니다.
기쁨에 찬 그리스도인은 두려움이나 불평없이 삶을 맞이합니다. 사실 기쁨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는 삶의 부산물입니다. 기쁨을 찾으려 하면 절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뜻을 구하고 행하면 마음에 기쁨이 찾아옵니다.
기쁨과 더불어 평안의 선물이 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께서 너희가 믿는 가운데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너희를 충만하게 하사.."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고 말씀하실 때 뜻하신 평안입니다.
이렇든 이 세가지 선물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책임집니다. 뒤를 돌아보든 곁을 돌아보든 앞을 내다보든,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님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과거에 대한 염려, 현재의 처지,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으로 충만케 해달라고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세 가지 보화인 소망, 기쁨, 평안을 여러분의 내면 깊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고난의 삶에 소망을 말하다.(워렌 위어스비)
2015-04-26 21:25:23 | 박진태
우리가 기도는 하는데 그 기도에 따라 실천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계속 간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찿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자마다 받고 찾는 자는 찾으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니라(눅11:9-10). 이 말씀에 따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을 겸허하게 소망하며 믿음으로 기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4-17 09:08:30 | 박흥식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을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요15:7)" 우선 말씀 안에 거하고, 기도로 구하고,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이뤄지길 믿고 기다리라 는 말씀에 아멘입니다. 박진태 형제님, 좋은 내용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5-04-16 13:42:42 | 한원규
"그분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다가 마치시매 그분의 제자들 중의 하나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 같이 우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소서.(눅11:1)"
이제 우리는 기도의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는 입술에서 나오는 말 이상입니다. 기도는 마음의 갈망이 말로 표현된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요15:7)"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거한다는 단어를 적어도 15번 이상 사용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거한다는 것은 그분과 늘 교제한다는 뜻입니다.
거함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날마다 시간을 내서 하나님 말씀을 대한다면 여러분과 나는 자신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며 그분의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펼치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말을 듣는 것보다 내가 그분 말씀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기도 응답의 첫째 요소은 내가 말씀 안에 거하고 말씀이 내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과 같습니다.
기도의 둘째 요소는 구함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을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요15:7)" 기도에는 요청하는 것 훨씬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에서 중요한 부분은 구함입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도 갖지 못하고 죽여도 갖고자 해도 얻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워도 갖지 못함은 너희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4:2)"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요. 그리고 필요한 것을 구하십시요. 기도는 예배요, 찬양과 감사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셋째 요소는 응답입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들의 청을 즐거이 들어주듯이 하나님께서도 기도에 즐거이 응답하십니다. 기도는 인색한 하나님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쾌히 주시는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분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구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고 필요를 채우십니다. 기도에 성경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 그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기 원시는지 성경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기도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아마도 응답이 지체되는 일일것입니다. 하나님께 필요를 아뢰고 그분의 일하심을 믿는데도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 응답의 방법과 시기를 아십니다.
기도를 작정했거든 우선 거하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성경 말씀이 마음에 들어와 여러분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됐으면 이제 구하십시오. 여러분 마음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아뢴 다음에는 문제를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때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고난의 삶에 소망을 말하다(워렌 위어스비)
2015-04-15 23:46:56 | 박진태
죄가 우리에게 너무 힘든 상대인건 분명하지만 우리는 더 옳은 것 뿐 아니라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편에 서서 죄와 대항하여 투쟁하고 마음과 생활에 거룩함을 유지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4-14 17:55:05 | 박흥식
박진태 형제님,
내용 중 "죄에 빠지지 않으려면, 거기로부터 재빨리 도망쳐 나와야, 그리고 그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말아야" 내용이 우리에게 지혜로운 '결단성'과 '실행의지' 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좋은 내용 공유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
2015-04-13 12:49:15 | 한원규
"그녀가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함께 눕자, 하니 그가 자기 옷을 그녀의 옷을 그녀의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가매(창39:12)"
죄와 싸울 때는, 그 죄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상책입니다. 따라서 죄에 빠지지 않으려면, 아무튼 거기로부터 재빨리 도망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아예 그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유혹을 받고 있다면 당장 거기서 뛰쳐나오십시오. 우리가 세상적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음으로 인해 뭔가를 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정에 발목을 잡혀서 머뭇거리다가 결국은 죄에 빠지기보다는, 차라리 요셉처럼 옷을 버리고 도망쳐 나오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여러분의 의지가 정말 단호하다면, 어떤 유혹이나 그럴듯한 구실도 여러분을 붙잡을 수 없는 법입니다. 구차하게 변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유혹에 마음이 끌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유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반드시 순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록된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느니라.(벧전1:16)"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유능한 사람보다는 깨끗한 사람을 더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사역을 잘 하기보다는 "점도 없고 흠도 없이(벧후3:14)" 순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유혹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유혹에 대해 단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세상과 육신과 마귀가 결코 우리를 이기지 못하도록 우리를 지켜 주소서! 우리로 하여금 요셉처럼 단호하게 죄를 거부하고 피하게 하소서!
스펄전의 365일 묵상 중.
2015-04-12 23:02:05 | 박진태
박진태 형제님, 크게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기도라는 연결 매체를 통해 하나님과의 늘 접속하고 있어야 휴대폰 배터리가 충전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성령충만한 상태라고 얘기 할 수 있겠지요. 우리가 성령충만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인 기도가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늘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4-09 10:29:12 | 한원규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0-21)"
신앙생활의 가장 귀한 것들은 모두 기도로 얻어집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심에 따라 성경을 기록한 것은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시기 위해, 늘 깊이 기도하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며 성령님께 사로잡혀 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설교자가 선포하는 말씀은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고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설교자의 기도 없는 교회가 양적으로는 크게 성공할 수 있지만, 기도 없는 성공은 머지않아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는 있어도, 절대로 사람들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도 없습니다.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일을 성공하기 위한 비결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기도를 기다리시며, 기도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성도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기도하도록 만드는 종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닮은 종입니다. 그런 종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날의 교회가 기도 안 하는 성도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습니까? 사도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기도하게 만드는 종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역사하십니다. 실로 기도만이 하나님의 통로입니다. 늘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통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 엠 바운즈의 기도선집"중.
2015-04-08 22:54:00 | 박진태
늘 이렇게 성실하게 글을 읽고 공유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글 중에서,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들이 하나님께는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찔림을 얻습니다.
그러고보니 나는 알면서 애써 숨기며 고집대로 살아왔던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모른척 참아주셨네요! 사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토록 미워한 나만의 '산당'이었는데 말이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4-08 18:31:23 | 김상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내 속에 강퍅한 것이 없나 살펴봅니다. 감사합니다.
2015-04-07 07:16:32 | 박흥식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돌보아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계속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아직도 주님을 멀리 하고 주님의 명령을 버리고 어긋난 길로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앞으로 신실한 믿음을 지키는데 소홀함이 없게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5-04-07 07:05:09 | 박흥식
1. 진화론과 간극이론의 역사
1800년이전까지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병자로 취급받았을 것이다. 1795년 허톤의 ‘지구의 이론’이 출간되면서 그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구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과학적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자구의 75%가 퇴적층으로 형성되어 있고 그 평균 깊이가 1.6km에 달한다. 수많은 지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기준으로 30cm의 지층이 쌓이는데 50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과학적 주장이다.
1814년 프리메이슨 지부의 일원이었던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촬머스는 ‘간극이론’을 제창했다.
1841년에 영국의 신학자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그리스어 신약본문을 발표한다.
1844년에 독일의 성경학자 테센도르프는 시내산의 캐서린 성당에서 AD4세기에 기록한 시내사본을 발견한다.
1859년에 촬스 다윈은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진화에 대한 이론을 ‘종의 기원’을 통해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였다.
1876년 조지 펨버는 ‘초기 지구의 시대’에서 낮은 지층에는 하등의 화석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술하면서 촬머스의 간극이론을 발전시켰다.
1881년 영국 개역성경 발간
1901년 미국표준개역성경 발간
1909년 스코필드 주석성경 발간으로 교회안에 간극이론을 주요교리로 정착시켰다.
1912년에 영국의 필트다운이란 마을에서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고리로 인정되는 화석이 발견되면서 인류진화의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여 진다. 1963년에 사람의 두개골과 오랑우탕의 턱뼈를 조합시킨 사기극으로 발표되기 까지 50년간 진화가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 증거로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되었다.
1918년 라킨이 ‘세대적 진리’를 출간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와 진화의 긴 연대를 수용하는 간극이론으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2. 간교한 거짓말
1) 30cm의 지층이 쌓이는데 50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관찰되는 현상이 과거에도 동일했다고 볼 수 없다. 화산폭발이나 홍수를 통해 수십센티의 지층이 순식간에 형성될 수 있다.(세인트 헬렌산 화산폭발) 현재와 과거의 상황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성경은 노아의 홍수라는 전 지구적 홍수라는 대 격변을 기록하고 있다.
2)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진화가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돌연변이나 자연선택이 발견된다. 그러나 진화는 없다. 처해진 환경에 따라 개체수의 변화와 다양성이 있는 것이지 DNA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종과 종간의 연결고리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그 창조의 질서가 지금까지 유지됨을 믿는다.
3) 낮은 지층에는 하등의 화석이 존재한다?
교과서의 지질 주상도에 나오는 지층은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낮은 곳에서 발견되는 생물들의 화석이 고등생물이고 복잡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예 : 삼엽충) 현재 발견되는 화석들은 서식지의 구분에 따라 매몰된 흔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3. 무엇을 믿을 것인가?
무엇을 믿느냐는 개인의 선택이요, 지역교회의 선택이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고 강요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간극이론은 유대교와 1800년 이전의 기독교의 입장은 분명히 아니다. 간극이론은 진위를 떠나서 굳이 믿겠다면 할 수 없지만, 그 태생이 어수선하다. 진화론이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시기이고, 개역성경이 킹제임스 성경을 대체하려하고 강력한 힘이 움직이는 시점이다. 성경으로 과학을 이해해야지 과학으로 성경을 접근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의 해괴한 논법은 생각과 판단을 고정하고서, 그 후에 그 추론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들을 찾아 모으러 다니는 일이다. 뒷받침할만한 것들만 모았기에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는 이론들인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6일간 창조하신 그것을 믿으면 된다.
딤전6:20,21절
20 오 디모데야, 속되고 헛된 말장난과 또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의 반론들을 피하며 네게 맡긴 것들을 지키라. 21 그것을 내세우던 어떤 자들이 믿음에 관하여는 잘못하였느니라. 은혜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2015-04-06 14:31:57 | 조양교
"아사 왕의 어머니 마아가로 말하건대 그녀가 작은 숲에 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녀를 제거하여 왕비가 되지 못하게 하고 그녀의 우상을 베어 낸 뒤 짓밟아 기드론 시내에서 불태웠으나 산당들은 이스라엘에서 제거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의 마음이 평생토록 완전하였더라.(역대하15:16-17)"
아사 왕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온전히 순종했지만, 모든 일에 순종을 다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이런건 큰 문제가 아니야..."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이 하나님께는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일도 사소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단 한가지 교훈을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 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포기하거나 화내지 않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고 생각하는데도 '산당'은 아직 그대로 버젓이 남아 있을 수 있는 법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부끄러울게 없다고 주장하지만, 여러분의 실제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즉각 중단하십시오. 큰 죄를 버렸다고 해서, 작은 죄는 괜찮아 지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대충 지나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미처 정리하지 못한 어두운 구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중요한 일에서는 모두 옳았다 할지라도 확실히 아직 뭔가 부족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다해 온전히 순종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단 한순간도 박동을 멈춰서는 안되는 것처럼, 우리는 삶의 모든 문제에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기를 단 한순간도 쉬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 주파수를 고정하기 원하시며, 그분께만 온전히 집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우리들이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면에서도,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오스왈드 챔버스)
2015-04-05 23:57:26 | 박진태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04-01 07:04:53 | 박흥식
"회초리와 꾸짖음은 지혜를 주거니와 제멋대로 버려둔 자식은 자기 어머니에게 수치를 가져오느니라.(잠29:15)"
우리들은 편안한 생활에 안주하다 보면 죄악된 생활에 빠지기 쉬운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어 기꺼이 진리를 배우도록 하십니다.
마틴 루터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환난과 고난이 없었다면 나는 성경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고난 중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이 말에 공감할 것입니다. "오 주여, 주께서 징계하시며 주의 법으로 가르치시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하오니 이로써 내가 주의 법규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94:12, 119:71)" 라고 말했던 다윗이 그 진리를 깨달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 진리를 깨달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연단의 과정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는 이러한 깨달음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 것도 배우는 게 없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고통이 우리를 짓누르고 재난이 우리를 혼절케 해서, 우리는 신경이 곤두서고 마음이 뒤틀리며, 감각이 마비되기까지 합니다. 반면 그에 따른 소득은 아무것도 없는 듯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우리는 복된 결과들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판단력이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달콤함을 예민하게 느낄 줄 알게 되고, 말씀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분별력도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들이 징계의 은혜로운 열매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이 철저한 훈련 과정을 밟은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놀랄 만큼 진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고난당할때(호레이셔스 보나르)
2015-03-31 23:10:34 | 박진태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어떤 부족함이 환경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주님과 가까움이 없는 내 자신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그 어느 것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사도 바울의 고백에 많은 은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5-03-30 02:31:00 | 박흥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