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진지한 모습으로 글을 남겨 주셔서 인상이 깊었는데
'Paradigm shift'로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직접 운영하시는
개인 블로그가 검색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삶의 조각들을 지나치지 않고 깊이 묵상하시는 습관을 통해
이렇게 바른 믿음 안으로 들어오시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보내시고
다시 뵐 때까지 진리 안에서 항상 평안하십시요!!
2015-08-01 17:20:26 | 김대용
"자질구레한
아픔과 번뇌에 연연하며
보잘것없는 편린들에
집착했음을 부끄러워합니다.
더 큰 아픔과 질고에 다가가
큰 기쁨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그런 지혜와 용기
그리고 깨달음이
내게 다가오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옛날 2008년 7월 16일 새벽 수원 성빈센트병원에서 폐암과 투병하고 있는 동생의 병상에서 간호하며 끄적여 본 단상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간구한대로 그런 깨달음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최근 저의 주변을 다시금 정리하면서 하늘나라로 간 동생을 생각하며 미망을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내가 바라던 큰 아픔과 질고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고통"에 비교될 수도 없고 이를 큰 기쁨으로 바꿀 수 없음을 잘 압니다. 또한 그런 지혜와 용기 그리고 깨달음이 오기를 기다리는 나 자신이 덧 없음을 잘 압니다.
7월 5일 용기를 내어 먼 곳에 있는 "사랑침례교회"를 찾아 예배에 참여하고 목사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급진적 사랑"을 묵상하며 위에적은 나의 급진적 단상을 다시 주님께 간구해 봅니다.
내게는 너무나 과분한 75세 생애에 영적인 Pradigm shift가 올 것인지 기대를 해 봅니다. 지난 7월 7일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에게 몸담고 있던 교회를 떠남을 편지로 올렸습니다. 직접 말씀드리기가 마음 아파서요.
그간 주일예배는 참석지 못했지만 목사님의 누가복음 강해 설교 말씀 "좋은 사람 되기", "나무는 열매로 안다.", "와서 듣고 행하는 사람 되기"를 듣고 묵상하는 가운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믿음 안에서 새로워 지기를 간구해 봅니다. 지난 주일 서울 한마음침례교회를 참석한 일도 있습니다. 작은 모임이지만 좋았습니다.
제가 매주 주일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교통비(2~3만원) 등 기타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저의 지금의 경제력과 건강으로도 부족함이 없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저보다 훨씬 먼 곳에서 오시는 분도 계시는데. 제가 영적으로 계으른 탓일 것입니다.
첫 방문 시 제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신 형제/자매님들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다음에 만나 뵐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너무 말이 많아 죄송합니다.
주님이 저를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2015-08-01 16:31:57 | 차영배
차분하게 말씀을 일상에 잘 적용해 주셔서
읽는 내내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5-07-28 09:18:21 | 김대용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예수님의 급진적인 사랑 실천하기 설교를 들으며
제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유형제님의 글을 읽으며
화성과 금성.. 각기 다른 별에서 온 남성과 여성
그리고 사랑의 다섯가지 언어라는 책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사랑은 주는 것이라 하지만 받는 사람이 사랑이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랑을 줄 때 낭비 없는 효과적이고 진정한
사랑의 교감이 이루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5-07-27 23:13:34 | 김상희
아내인 제게 글이 참 와닿네요.^^저의 적용으로 남편에게 파격적인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이 무엇일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네아이의 육아와 살림으로 늘 바쁜 저는 제 남편의 설겆이 한번이 참 큰사랑으로 와닿는 그런 사람이지요. 작고 약한 그릇인 아내들은 작은 그릇을 담는 큰 그릇인 남편의 조그마한 변화와 노력도 금방 알아 차린답니다. ㅎㅎ 급진적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저희 남편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참 어렵게 돌려서 했네요.
곳곳에서 파격적인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시는 성도님들의 모습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밤입니다. 샬롬!
2015-07-27 22:24:50 | 주경선
정말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너무나 다른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보니
남자는 아내를 위해서는 죽을 수는? 있어도 변기 커버는 신경을 안쓴다네요...
작은 것들이 아내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데 말이죠......
여자는 사소한 것들에 배려를 느끼고 사랑을 느끼는데
남자는 자기의 일이나 정치나 운동과 취미에 신경 쓰기도 바쁘다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2015-07-27 10:58:47 | 이수영
얼마나 가까우면 무촌 이라했을까......
동화아부지, 변기커버좀.
2015-07-27 10:42:58 | 이청원
가슴에 와 닿는 대단히 귀한 글 감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5-07-27 10:05:36 | 관리자
# 나는 아내를 진정 사랑하고 있을까?
모처럼 동창회에 나가 어렸을 때부터 티격태격하며 자라온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꽃을 피우고 있을 때
여론조사를 한다며 친구들 모두에게 “양변기깔판”에 대하여 물어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언젠가 설교시간에 들었던 양변기깔판에 관한 이야기가
나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세대들이고 나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친구들에게서
그네들 가정에서는 양변기깔판에 대하여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매우 궁금했던 것입니다.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친구가 고작 나까지 네 명에 불과 했습니다.
어떤 녀석이 “야, 그거~골치 아파 그냥 해 달라는 대로 해줘~~”라고 말하자,
또 다른 녀석이 “아니고 말도 마! 난 앉아서 소변도 보는데 뭘~~”
그 녀석은 쑥스러운 듯 이런 말을 내 뱉고는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갑니다.
아뿔사! 놀라움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를 못하고 있을 때
한 친구의 부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용수씨는 아내를 사랑할 줄 모르시는군요.”
나는 그때 그 말을 듣는 순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만 약간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 까닭은 당신은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여러 날이 지나도 그 말이 좀처럼 내 머리에서 지워지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워지지 않고 때가되면 어김없이 되살아나 그 말이 생각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친구부인이 나를 몰라서 그런 말을 하였다는 나의 반발심이
서서히 그 기운을 잃어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요즈음에 와서는 친구부인의 말이 정확하게 맞는 말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한동안 그런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내가 아내를 사랑할 줄을 모른다?”
긴 시간 동안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친구부인의 진단이 정확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그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이라도 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직접 십자가위에서 시청각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아내를 위해서 내 목숨을 버릴 수 있을까?
이렇게 나 자신에게 되묻고 보니 참으로 스스로가 기가 막힙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까지 사랑한다고 한 그 모든 행동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인 줄 알고 하였던 그 모든 행동들이
알고 보니 사랑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친구부인은 내가 하는 말을 듣고는 내가 아직도 아내에 대해서
잘못된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즉석에서 알아보았던 모양입니다.
이 남자는 아내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것 같지 않은 남자라는 사실을
즉석에서 느낌으로 알아 맞혔던 것입니다.
곧 내가 아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표시!
즉 그 증거가 무엇이었을까?
나는 다른 사람이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그 부끄러운 표시를
앞가슴에 달고 살면서도 스스로는 자신이 아내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알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실로 나야말로 "임금님은 벌거숭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나는 아직도 내가 아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
즉, 내 가슴에 붙어 있는 그 표시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일로 지난 수개월간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답답해 하다가
어제 설교말씀 중에 “파격적인 사랑”이란 단어를 듣고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래, 그것을 알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하긴? 당연히 무슨 조치를 취해야지!"
"무슨 조치?"
"------?"
"그러니까 넌 그 표시를 네 가슴에서 없애 버리겠다는 것 아니냐?
"------?"
“그리고 네가 아내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표시를 붙이고 다니겠다는 것 아니냐?"
“그것도 파격적으로~~“
"------?"
이렇게 나는 또 한방 제대로 얻어맞고 말았습니다.
허 허! 세상에 이럴 수가~~
그게 그렇게 되다니~~
자, 그러니 이를 어쩐다?
그러니까 내가 아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표시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아보는 일은 조금도 시급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급한 일은 지금이라도 즉시
아내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아, 아,
어떻게 하면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정답”이라는 말의 근본 뜻은 "그가 나대신 죽었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내(교회)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셨다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아내를 위해서 죽어?
어떻게?
파격적으로?
이것 참 큰일이로구나!
다른 남자들도 나처럼 이런 걱정을 하며 살까?
note
주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죽음이 나에 대한 그의 요구요, 나에 대한 그의 모든 것일 뿐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로 나에게 말씀 하시고, 십자가로 나를 나무라시고,
십자가로 나를 사랑하시고, 십자가로 나를 부르셨습니다.
성경 말씀에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 하셨습니다.
사람의 예대로 말하면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와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되는 교회가(즉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한 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요즘 쓰는 단어로 이야기하면 가출아내가 되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가출아내는 찾아오는 것만이 남편으로서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의 길입니다.
그런데 가출아내는 죄 값을 치러야 도로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서 그 몸으로 가출아내의 죄 값을 치르신 것이
곧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 세상의 남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나도 내 아내 곧 내 교회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렸으니 너희들도 너희들의 아내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예수의 십자가상에서 완성된 그분의 세상창조 목적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고 종말의 날 까지 계속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은
언제나 인간의 삶의 현장 그곳뿐임을 발견합니다.
2015년 7월 27일(월) 조용한 시간 이 아침에
유 용수
2015-07-27 10:01:44 | 유용수
멋진 글 감사합니다.
형제님의 최후의 차단막이 되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저로부터 글을 읽는 모든 지체들께 확산되어 강력한
면역력을 갖춘 사랑교회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2015-07-16 15:42:49 | 김상희
누룩, 바이러스, 말(言語) 등은 모두 강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듯합니다.
사람을 실족하게 하고 관계를 파괴하는 판단을 버려야 한다는 교훈도 마치 꼬리잡기처럼
거의 모두가 예외 없이 해당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지라 저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어린 시절에 빨갛게 달아오른 숯불을 화로 안에 잘 담아 방 한가운데 두고 그것으로 언 몸도 녹이고
때로 긴 겨울밤 맛난 간식을 조리하는 도구로 썼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도 잘 관리하면 사람을 세우고 격려하며 교회가 하나 되게 하는
동력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로라는 안전망 혹은 차단막 밖으로 쏟아진 숯불처럼 우리의 말이 충분한 지혜와 인내와 겸손과
무엇보다 지극한 사랑으로 통제되지 않으면 필시 갈등과 문제를 만들고 퍼뜨리는 불(火)로 전락할 겁니다.
부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과도하지 않게 행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허락되길 소원해 봅니다.
항상 차분하고 깊이 있는 성찰로 귀한 교훈을 마음 깊이 넣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2015-07-14 22:49:58 | 김대용
불로 인한 화상을 치유 하는 과정을 보았는데 시간도 정말 오래 걸리고
치료과정도 고통이 극심했어요. 원상 복구는 생각을 못하는데 끝없는
수술을 겪는 모습을 보고 너무 마음 아팠어요.
말은 외적인 상처는 없지만 말로 인해 친형제간이 평생 원수가 되는 것을
보았지요. 정신적인 공황상태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낸다고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한것으로 가득 채워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2015-07-14 21:07:29 | 이수영
말은 불과 전염병의 파급력을 능가한다. 내가 최후의 차단막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글 ~ 감사합니다.
2015-07-14 19:40:47 | 박순호
최후의 차단막..말이 멋있습니다. 워낙 그릇이 작은 저는 '저는 죽었습니다..'하지 않고는 차단막 역할 꿈도 못 꾸네요.
오늘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하루 살아가겠습니다.
2015-07-14 10:53:11 | 목영주
중동호흡기 증후군 메르스 바이러스가 잦아드는 듯하다. 예전에는 호한 마마가 큰 병인줄 알았는데 듣도 보도 못한 병명들로 인해 때 아닌 몸살을 앓고 화들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의 의료 대응 시스템이 외부에서 침입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자평의 소리가 나온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 싶은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지나치게 호들갑 떠는 것도 문제지만 안일한 자세 또한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어쨌든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많은 것을 잃었고 또한 많은 것을 얻었다. 아주 작은 것 하나가 순식간에 번져 나가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 주변에 번져 나가는 특성을 가진 것들은 특별히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번져 나가는 것들,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불이다. 불은 쉽게 번져 나기기 때문에 조금만 방심하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린다. 초동진압이 가장 중요하고 다중 이용시설에는 방화문, 차단벽, 소화기 등 긴급을 요하는 시설들이 즐비하다. 불 이외에도 누룩과 같은 것은 좋은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누룩이 퍼져 나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순식간에 덩어리 전체를 장악해 버리고 만다. 이미 메르스를 통해 경험했다. 메르스에 전염된 한 사람과 접촉한 모든 사람들은 일정시간 격리해서 치료과정을 가졌다. 불과 누룩 이상으로 강력한 파급력을 가진 것은 바로 말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처럼 사람들이 하는 말은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방송매체, SNS는 그야말로 국경이 없고, 밤낮이 없다. 불과 누룩과 같은 것들은 공간적 제약이 있지만 말로 파급되는 것은 공간적 제약이 전혀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이집트인들의 금, 은, 보석, 의복, 소와 양등 많은 가축 떼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 섞인 무리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출12:38절) 아이들 외 걷는 남자만 육십만 명이 되었고, 전체 인구는 족히 300만은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섞인 무리들의 불평, 원망의 말이 전 백성들을 강타했다. 하나님의 호의로 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부정적인 말들이 잦아드는 듯 했지만 또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목전에 두고도 들어가지 않겠다는 생떼를 쓰기에 이르렀다. 작은 말 하나가 이스라엘 전체를 광야에 묶어 두었고,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결과를 낳았다. 약3:8절에서는 “혀는 불이요 불법의 세계니라. 혀는 우리의 지체들 가운데서 그와 같아서 온 몸을 더럽히고 본성의 행로에 불을 붙이며 지옥 불 위에 놓여 있느니라.“ 라고 할 정도로 혀는 불법 그 자체이고, 온 몸을 더럽히며, 본성의 행로에 불을 붙인다고 강력한 경고의 글이 적혀있다.
지난 주 목사님께서 판단에 대한 설교를 해 주셨다. 옳고 그름의 판단, 교리의 판단, 죄의 판단은 해야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판단,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는 부정적인 판단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죄를 미워하셨지만 사람은 사랑하시고, 긍휼의 마음을 가지셨다. 그 죄 또한 자신이 친히 담당을 하셨다. 자식의 잘못에 대해 부모가 자신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치는 모습을 그려본다.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에게 나도 너에게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여인의 죄를 갈보리 십자가에서 친히 담당하셨음을 믿는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모든 죄를 용서해 줄 수는 없다. 또한 그 죄를 담당할 자격 또한 없는 사람인데 어떻하면 좋은가? 형제와 자매된 사람들과 대화중에 부정적인 말, 관계를 파괴시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화의 당사자는 면역세포가 될 필요가 있다. 내가 마지막 보루가 되는 것이다. 때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70~80%는 해결된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이 고조될 경우가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일 수도 있고, 감정이 심각하게 상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해결책을 찾기 위해 상위의 권위자나 믿음과 연륜이 있는 사람에게 가져가야 한다. 주변에 말하는 것은 불을 확산시키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불과 메르스를 퇴치하는 것처럼 말은 일정시간 스스로 격리되거나 소방관을 필요로 한다. 힘든 일이긴 하지만 진정시키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 후회할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말은 불과 전염병의 파급력을 능가한다. 불씨를 조심히 다룰 필요가 있고, 내가 최후의 차단막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불의 순기능은 음식을 조리할 수 있고, 우리 몸을 따스하게 만들어준다. 불의 순기능이 활활 타오르고, 부정적인 불은 나 자신이 마지막 차단 막이 돼서 스스로 소멸하게금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갑자기 사명감이 생긴다.
2015-07-14 09:46:26 | 조양교
외국에서 한국어 배우는 아이들이 정말 할수없이 억지로 가서 제대로
하지 않아 부모들과 소통이 안되 고민하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한글공부도 잘 하고 졸업생중에 최우수상까지 받는 모습에
얼마나 기쁘셨을까요.
주님의 은혜로 잘 성장해서 더 큰 기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5-07-13 11:06:00 | 김혜순
오월 21일 출국하여 유월 19일 돌아와야 하는데 딸이 18일 둘째 손자 졸업식이 있다고 보고 가시면 좋겠다고
했다. 딸 둘을 두었는데 딸로서는 큰 딸인데1993년 10월달에 결혼하여 큰 아들이 20살이고 작은 아들이 15살이
된다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있는데 초등학교가 8학년에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 로 올라가 배운다고 합니다.
졸업식은 오후에 6섯시쯤 모여서 시작이 되었다.
그 학교에는 여러 나라 어린이들이 모인것 같았다. 특히 유대인이 많이 사는 동네여서 유대인 학생이 많았다.
세반으로 나누어 졌는데 총 43명이 되었다. 단임 선생님들이 소계되고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졸업반 전 교에서 최우수 상 학생 이름을 부르는데 우리 손자 이름을 부르는 것이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일이 평소에 공부는 잘한다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최우수상을 탈줄이야.
캐네다인 중국인 유대인 그외에 아시아 학생들이 섞여서 공부를 했는데 다 제처놓고 1등상을 타다니, 주님 감사
합니다 ! 감사를 드렸다 . 3남매를 공부시켰지만 반에서도 1등상을 타 본적이 없는데.
먼 이국땅에와서 최우수상을 타다니.그뿐 아니라 한글학교를 9년동안 다니고 졸업을 하고 글을 썼는데 이사장
상을 탔다, 눈이 오나 비가오나 매주 화요일 저녁에 2시간씩 엄마가 데려오고 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을 했다고한다.
다음에는 손자가 쓴 글입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왜 중요하나요 ? 김두호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김두호 입니다 .저는 2001 년 온타리오 리치몬드힐에서 태어난2세 한국인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조언을 따라 sk 때부터 kccm 한글학교를 시작 하였고 지금 8학년까지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ㄱ. ㄴ.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여 점점 시간이 지나며 문장을 쓰고 읽는 것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지난 9년동안 한글과 그 외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한글학교 선생님들과 저의 부모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2학년때 담임 선생님 이셨던 김광자 선생님께 더욱 감사를
드림니다. 한글을 배우기 전에는 제가 한글을 어떻게 쓰는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김광자 선생님의
도움으로 인해 영어로 이해하기 쉽도록 한글을 배우고 시간이 지나며 글자를 잘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마다 2시간을 한글 학교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저는 숙제를 미리 끝내면 마음도 뿌듯했고.
놀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숙제를 미리 해두는 습관 외에도 . 저는 언어가 삶의 많은 법칙중의 하나라는 것을 배웠고 언어는 다른
사람들과의 원할한 의사 소통을 돕고 제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정확히 표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도구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미래에 캐나다 회사의 대표로 한국과 거래를 했는데 부족한
한국어로 인하여 실수를 한다면 저의 회사에 피해를 입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저는 영어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글을 배우는 것이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저는 저와 같은 한국인 2세 친구들
에게 어렸을 때부터 한글을 꼭 배우도록 격려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글로벌한 사회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손자가 쓴 글입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구나 ! 하는 생각에 다시한번
감사했습니다. 어릴때 벽에다 크게 ㄱ,ㄴ,을 외할아버지가 써놓고 한글을 너희들은 배워야 한다. 고
필립핀에 작은딸네 집에도 써 붙여놓고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필리핀에는 남매인데 2살 차이로 유치원때 부터 한국에 나와서 한글을 배워서 글과 말을 잘 합니다.
손자 손녀들이 믿음 안에서 잘 자라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는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요번 한달 동안 여행에서 최고의 보람이었던 일은 손자의 최우수상과 불어를
잘 했다고 상패를 두개를 타고 메달을 목에 걸은 손자의 모습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났을가?
하고 감탄을 했습니다. 한국에는 친손자 손녀도 열심히 공부하며 큰 손녀는 전액 장학금을 타 와서
집안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그저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2015-07-11 23:32:54 | 윤정용
묵묵히 라는 행동 속에 신중함이 느껴지네요.
유익한 묵상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둘째도 너무 이뻐요.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길 기도합니다.
2015-06-29 05:50:00 | 김상희
이글을 읽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고
창조하실 때부터 지극히 상식적인 본을 보여주시며
사람을 창조 마지막 날에 만드신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읽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데 어렵게 무언가를 찾으며
특별한 이론을 만들어 교리화 시키니 무리가 생기는것 같습니다.
이해가 쉽도록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해주시니 이해하기가 쉽네요.
좋은 글 올려주시니 감동과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2015-06-29 05:33:26 | 김상희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진정 무엇에 바뻐야하는지
생각하고 점검해보게 되네요.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시는지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6-29 05:11:56 | 김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