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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 3급인 아들은 아픈 부모님과 동생을 위해 열심히 폐지를 줍습니다. 얼마나 극진히 동생과 부모님을 생각하는지 자기 몸을 아낄 줄 모릅니다. 리어카에 가득 채워 갖고 고물상에 가면 1,000원 짜리 두 세장에 동전 몇 개뿐이지만 언제나 즐거운 얼굴로 하루 온 종일 밤늦게까지 발뒤꿈치에 피가 나도 열심히 일합니다. 퉁퉁 부은 다리로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웃음으로 응대하니 사람들이 모두 좋아합니다. 가족을 보면 언제나 얼굴 가득 미소가 넘칩니다. 버려지는 빈 상자 한 개에도 웃음으로 감사하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 졌어요.     재산가인 80세가 넘은 아버지의 돈을 빼앗으려 아버지가 치매라고 속이고 거짓으로 재산을 위탁받아 처분한 사람이 법원으로부터 무효처분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헉! 세상에! 너무나 기가 막힙니다.....     참으로 이 두 가지의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장애를 갖고도 가족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해 하루 종일 몇 푼을 위해 일하면서도 행복해 하고 돈이 너무 많은 사람들은 돈을 위해 가족을 버립니다.     지금은 대부분이 핵가족이고 게다가 요즘은 일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타려고 하는데 모르는 낯선 남자가 있으면 타지 말라고 가르치는 경계심이 필수인 요즘엔 재력이나 권력 등 많이 가진 사람만이 사람대접을 받고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 스스로도 소외되고 외면당합니다. 서로서로 오고가고 함께 나누던 그런 정이 참 드물어졌지요.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 가운데에 장애가 있지만 부지런히 소량의 폐지를 주우면서도 고마워하고 항상 웃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부턴지 웃음을 잃어버리고 심각한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기 때는 하루에 수 백 번을 웃는 것 같아요. “까꿍” 한 번 만 해줘도 “까르르” 웃어대던 아기들이 어린아이를 거쳐서 어른이 되면서는 점점 웃음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지요? 요즘의 청년들은 어려운 현실에 고민이 많아서 ‘삼포세대’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어요. 오히려 낙후된 아프리카의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국민들이 삶의 만족도가 더 높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어요. 잘 사는 편에 있는 우리나라는 삶의 만족도가 전 연령이 다 낮았고요.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항상 웃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사와 만족하는 것을 잊고 살았구나...... ’ ‘기뻐하는 것을 잊고 살고 있었구나.....’ 반성이 되었어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 이니라.   살 전 5:16-18절 말씀을 외우고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참으로 실천에 너무도 더딘 저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어요. 사람이 너무나 미련해서 초심을 잃어버리기 쉽고 어려웠을 때를 잊어버리고 살고 더 많이 갖기를 추구하고 원하고 사느라 아주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사하며 살려고 했는데, 나름 감사하며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를 위해 대신 돌아가신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잡다한 것에 신경이 가있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시고 첫 사랑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015-11-09 12:55:39 | 이수영
"너는 네 백성 가운데서 소문을 퍼뜨리는 자처럼 여기저기 다니지 말고 또 서서 네 이웃의 피를 대적하지 말라. 나는 주니라. 너는 네 형제를 마음속으로 미워하지 말며 어떤 식으로든 네 이웃을 책망하여 죄가 그에게 임하지 못하게 하라.(레위기 19:16-17)"   돌아다니며 남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은 삼중의 독을 뿜어 내는 행위입니다. 즉 말하는 사람 자신과 그 말을 듣는 사람, 그리고 그 소문의 당사자 이렇게 세 사람을 해치는 행위입니다. 그 소문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이 교훈은 우리에게 소문을 퍼뜨리지 말라고 엄히 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좋은 평판 듣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마귀를 도와 교회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할 것이 아니라 굴레를 씌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다른 형제들을 비방하면 자기가 높아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신이 나서 남을 비방합니다. 그러나 노아의 지혜로운 두 아들은 그 아버지의 하체를 옷으로 덮어 준 반면 그의 수치를 드러낸 미련한 아들은 무서운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 어두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우리 자신도 다른 형제들의 관용과 침묵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악한 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규칙이요 우리 자신의 족쇄가 되게 해야합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에 우리가 형제의 잘못을 엄히 책망하는 것에 대해 허락하시고, 어떻게 하라는 방법까지 정해 놓으셨습니다. 잘못을 범한 형제 뒤에서 그를 악담하는 대신 그 형제의 면전에서 그를 책망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답고 형제다우며 그리스도를 닮은 태도로서 유용하게 사용될 방법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육신은 그렇게 하기 싫어합니다. 그래도 형제의 잘못을 묵묵히 참고 견딤으로써 우리 자신도 그 죄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 생각을 새롭게 해서 그 일을 감내해야 합니다. 사실 신실한 사역자나 형제들로부터 적당한 때에 지혜롭고 애정어린 충고를 받음으로써 엄청난 잘못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형제의 잘못을 은혜롭게 다룰 수 있는 본보기를 우리 주 예수님 안에서 발견해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경고하시되, 그 경고를 하시기 전에 먼저 기도하셨을 뿐 아니라 그 경고를 받고도 자기는 절대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만만해 한 베드로를 온유하게 참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잘못한 형제들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스펄전의 365일 묵상"
2015-11-07 21:29:34 | 박진태
연서의 미소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따라서 미소가 지어지네요 베쓰자매의 소식을 통해 엄마가 되기 위한 한국 방문이 여러가지로 의미있고 유익한 경험이었음을 알게되니 마음이 흐뭇하네요. 소식 올려주어 반가웠구요. 연서가 건강하고 예쁘게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
2015-10-31 13:34:19 | 김상희
연서가 그새 많이 자랐어요^^ 월반해서 유아실로 입성^ 하면 유아들이 연서를 중심으로 모이겠죠? ㅎ ㅎ 온식구가 한국에 돌아와 정착하면 좋을텐데~ 연서가 건강하게 잘 자라길 모두 응원합니다^^
2015-10-29 11:00:00 | 이수영
안녕하세요?사랑침례교회 성도님들,   피츠버그로 돌아온 지 벌써 2주가 되가네요. 한여름에 한국으로 갔다가 가을에 돌아와서인지 여름이 그립고 한국이 그립습니다. 엄마가 도와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신생아 돌보는 게 익숙지 않아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나날을 보냅니다.꼼지락 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꾸준히 교회에 나오시는 가정들...특히 자모실에 계시는 자매님들이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저희 미국 교회는 아직 작아서 유아실이 따로 있지만, 신생아들은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다가 울면 복도로 나가고는 합니다. 몇 주 못 나갔지만, 사랑침례교회의 자모실이 그리워요!   한국에서 지내면서 여러 가지를 보고 배우고 깨닫고 돌아왔습니다. 그중 하나는 교회에서 형제자매님들이 정말 기뻐하고 시간만 나면 만나기를 원하고 무엇보다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면이 놀라웠습니다. 미국 교회에서도 가족 같은 교회라는 말로 모토를 삼고 강조하지만 그게 실제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더라고요.   또한 오랜만에 부모님이랑 지내면서 가정과의 우애도 쌓고, 이제 엄마가 되었으니 부모님의 사랑의 대해서 조금 알게 된 것 같고요.무엇보다 교회의 삶이 무엇인지 배우고, 신기한 것을 보고 온 것 같아 제 삶에서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합니다.   제가 한국에 지내는 동안 친구처럼 가족처럼 대해주신 성도님들 너무 감사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제가 보고 배운  사랑침례교회 같은 커뮤니티에서 정착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희망합니다.   멀리서 사랑침례교회를 바라보며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2015-10-29 09:12:37 | 관리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밑에 거하리로다.(시 91:1)"   자녀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이 시편은 전쟁, 역병, 올무, 밤의 공포, 낮의 화살 등 위험이 11가지나 열거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친히 보호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고난과 역경을 당하지 않는 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 안에서 무슨 일이 닥치든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시편 91편의 위대한 약속 중 하나는 길의 돌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들에게 너에 대한 책무를 주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그들이 자기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시 91:11-12)" 하나님께서는 길의 돌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것이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들 대부분의 문제는 우리가 포장도로와 평평한 인도에 익숙해져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길이 평평하고 순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울퉁불퉁한 돌투성이 길일 때도 있습니다. 불평할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할 때입니다.   그러러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더 높이 오르는 비결은 나와 내 역경에서 시선을 거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고 믿음으로 걸으십시오. "그가 나를 부르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고난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존귀하게 하리라.(시 91:15)"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나 자신이나 환경이나 문제나 길의 걸림돌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님입니다.   걸림돌은 딛고 올라서라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삶에 소망를 말하다" 워렌 위어스비
2015-10-21 22:31:09 | 박진태
축구를 좋아하고 예의 바르며 장남답게 듬직한 원이와 너무나 귀여운 얼굴과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에게 평안함을 주는 귀염이 호야까지 장용철 형제님과 김경민 자매님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믿음으로 자녀들을 키우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짙어가는 가을 단풍처럼 진한 묵상의 글을 올려 주셔서 덩달아 좋은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귀한 글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5-10-20 13:39:17 | 김대용
저는 볼 때마다 그냥 생각없이 쓰윽 지나가는 구절에서 이런 묵상을 하셨네요!!! 고집! 열공! 하는 가족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집니다~^^ 좋은 묵상의 글 감사합니다~ 사모님~ 잘 도착하셔서 잘 계시죠? ^^ 시차 적응 잘 하시고 육아에 무리는 마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한 달 뒤에 뵈요~~~ 샬롬~!!!
2015-10-19 17:57:04 | 성호현
참 좋은 주제와 내용이네요. 우리 교회안에서도 인생의 멘토가 되고 또 되어주는 아름다운 관계를 맺는 지체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저도 부족하지만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줄 용의가 있고 또 저의 멘토들도 주위에 많이 두고 싶어요. 교회안에서가 아니면 어디가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겠어요.......
2015-10-19 12:29:50 | 오혜미
 며칠 전 우연히 디모데후서 1장 말씀을 보다가 인상 깊은 구절이 보였습니다. 2절에 보면, ‘나의 극진히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인데 우리가 보통 정확한 국어사전의 의미를 찾아보지 않고서라도 누군가에 ‘극진히’라는 표현을, 그것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표현 하였을 때는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얼마나 지극한지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3절에 보면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내가 밤낮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너를 기억하므로 내 선조들 때부터 내가 순수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혹은 믿음 안에서의 선후배이자 동역자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어느 스승이 제자에게 저런, 어찌 보면 낯간지러운 표현들을 서슴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또 어느 제자와 스승의 관계가 어머니, 할머니에 이르기 까지 깊은 이해관계를 형성 할 수 있을까요? 문득 그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정도 사제지간의 깊은 신뢰와 이해가 형성이 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흔히 말하는, 함께 숙식을 하며 오랜 기간 숙련의 과정을 거쳐 기술을 연마하는 도제식 수업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 같습니다. 그럼 바울에게 디모데는 어떤 제자였을까요? 4절에 보면 ‘네 눈물을 마음 깊이 생각하며 너 보기를 몹시 원함은’과 5절에서 ‘내가 네 속에 있는 꾸밈없는 믿음을 회상하노니’의 표현을 미루어 짐작컨대 디모데 역시 스승을 깊이 신뢰하고 따랐으며, 그의 성품은 주 안에서 매우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이와 같은 지극한 관계를 생각하니 한편으로 제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바울과 같이 믿고 따를만한 가치 있는 스승이 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디모데와 같은 사람인가?’ ‘나에게는 디모데와 같이 나를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 모두에 제 자신은 불합격은 아닌지……. 문득 불안하면서도 우울한 마음이 몰려왔습니다. 또 평소 남편에게 자주 듣는 핀잔을 떠올리니 저는 이와는 정 반대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잠시 여담이지만 결혼해서 큰 아이를 낳고 유치원에 보내기 전까지 살림이 그다지 넉넉지 않아서 학습지만 겨우 시켰지 그 흔한 문화센터 한 번을 제대로 데려간 적이 한 번 도 없었습니다. 요즘은 걸음걸이만 겨우 하는 정도의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문화센터마다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물론 꼭 돈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한 번도 가 본적은 없었고 그러면서도 또래 아이들보다 뒤처지거나 소외되지 않게 하려고 나름 많은 궁리 속에서 아이를 키웠던 것 같습니다. 어느새 큰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는 아이에게 영어학원, 보습학원, 피아노 학원 등 때로 아이가 다니고 싶어 하는 학원조차 제대로 보내지 못했지만 나름 우리 형편에서 아이에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나름 자기주도 학습의 방법을 터득하게 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들을 했는데 그 중 재미있는 한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아이가 1~2학년 정도 무렵이었는데 아침에 학교에 가기 전 엄마아빠에게 외치는 구호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나 저도 이 방법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먼저 저나 남편이 아이에게 거수경례로 “고집!”하고 외치면 아이는 부모에게 거수경례로 “열공!”하고 답을 합니다. “고집!”의 의미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수업시간에 집중하라’는 의미이고, “열공!”의 의미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한다는’ 약속의 의미입니다. ㅎㅎ 이렇게 비장한 다짐으로 즐겁게 등교를 준비하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립습니다. 그 결과 아이도 선생님께 수업시간 집중도와 참여도가 매우 높다는 칭찬을 적지 않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아이 자랑을 하려던 게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있어 먼저는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과 이를 잘 듣고 따르는 제자의 관계는 마치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와도 같을 것이란 생각에 떠오른 일화였습니다.    우리 인생의 참 된 목적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궁극적으로 하려던 바로 그 말이 정답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게 된 [하나님]의 선물을 네가 불붙이게 하려고 너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노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주지 아니하시고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주셨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우리 [주]의 증언과 그분의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따라 복음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 (딤후1:6~8) 우리가 다 이와 같은 바울과 디모데 같은 관계이면 좋겠습니다. 그런 바램 속에 문득 얼마 전 찬양했던 곡의 가사를 떠올리며 부족한 글을 마치려 합니다. 주가 주신 모든 것에 우리 모두 감사해 그 일로 우리 주의 일을 시작하려네 주가 함께 동행 하면 그 믿음 가지고 우리 함께 주의 말씀 나누면서 널리 전하리.  
2015-10-19 01:38:23 | 김경민
자매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또한 비슷한 경험을 떠 올리며 깊이 공감을 하게 되었네요. 생각하기 싫어하고 생각없이 살아가는 현대인 속의 나는 어떠한가 점검해보게 됩니다. 사소한 일상 하나도 놓지지 않고 하니님께 촛점을 맞추어 생각하는 모습이 귀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2015-10-17 02:18:55 | 김상희
반려견과의 산책이 둘만의 즐거운 시간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안전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려면 주인의 지혜와 배려가 꼭 필요하지요.^^ 지혜로운 주인은 둘만의 즐거움 혹은 둘 사이의 교감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상관없는 제삼자의 입장을 항상 민감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일 겁니다. 그런 사람은 윗글에서 알려주신 대로 강아지와 또 길거리의 다른 행인들 모두를 의식하며 모두의 즐거움과 안전을 위해 민첩하고 세심하게 목줄의 중재에 힘을 쏟는 사람이겠죠. 이처럼 우리 인생의 가장 합당하고 객관적인 시선, 곧 진리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란 사실을 귀한 글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대양 너머 멀리 캐나다에서 진솔하고 귀한 묵상의 글을 발송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5-10-16 10:40:24 | 김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