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 못한 먼 시골교회에서 예배시간에 킹제임스 성경을 만난 순간
얼마나 반가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네요.ㅎㅎ
곳곳에서 들려오는 성경사역의 열매들을 보며 날이 갈수록 풍성해질 열매를
기대하니 기쁨이 넘칩니다.
멋진 할아버지를 두신 형제님이 부럽네요.
2016-02-15 12:40:49 | 김상희
올려주신 글을 읽으니 문득 오래전 봤던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나네요.^^
영화 속 형제로 나오는 두 주인공의 아버지가 목사인데 형제의 고향에서
교회를 담임하며 완고한 모습으로 자녀들을 양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쨌든 주인공들에게는 그 교회가 언제나 추억하는 마음의 고향이었죠.
산골 마을의 교회에서도 흠정역 성경을 만날 수 있고 90세의 노존께서도
우리 교회가 발간한 소책자와 자료를 접하고 감탄을 하셨다니
참으로 감격스러운 소식입니다.
도전과 응전의 긴 여정이 바로 이 땅에서의 믿음 생활입니다.
이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신실한 제자가 될 수 없겠지요.
우리 앞에 놓인 도전과 응전을 담대하게 감당하며
다 함께 앞으로 나아가길 이 시간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6-02-15 11:54:18 | 김대용
할아버지의 부드러운 마음이 너무 좋고 부럽습니다.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6-02-15 11:45:32 | 목영주
기쁘고 즐거운 소식이네요...
앞으로도 이러한 훈훈한 이야기가 자주자주 들리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2016-02-15 11:26:28 | 김경민
바른 말씀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이 자유로운 행로로 말없이 전국적으로 스며드는 현상을 보네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더욱 더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16-02-15 11:19:55 | 허광무
우리가 다 알지 못하지만 이곳저곳에서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히고 있었네요.
교회의 사역에 함게 하여주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드리며,
할아버지의 건강이 오래도록 지속되시기를 바랍니다.
2016-02-15 10:11:29 | 김영익
박춘인 어르신을 비롯해서 온 가정이 주님의 위로 속에서 평강을 되찾기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2-15 08:56:57 | 관리자
나이와 무관하게 열린마음과 바르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책자나 유투브를 통해 확실히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실제적인 예네요.
어제 점심시간에 곳곳에서 약정서를 가져다가 쓰는모습이 보여서 흐믓했어요.
주님께 감사하며 부부가 웃으며 작성하는 모습도,
마음의 작정을 했는지 혼자서 쓰는 모습도,
교회에 온지 얼마 안된 부부도 약정서를 가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 감사가 되었지요.
어떤 자매님이 "이제야 주인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어서 감사하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교회를 알게 되어 누렸으니 이제는 우리가 교회를 위해 할 차례"
라는 말을 해주셔서 감사하고 우리교회의 영혼의 자유가 제대로 정착된 모습같아서
흐믓한 마음이 되더라구요.
2016-02-15 08:02:09 | 이수영
형제님 글을 읽고 저도 덩달아 기쁘고 좋은소식에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90세가 되신 어르신임에도 건강한 분별력으로 말씀하신 부분을 읽으니 감격스럽네요.
형제님 말씀처럼 진리어 생명수로 목마른 영혼들에게 마음껏 마시게 하는 교회로 서가길 기도합니다. 한주간도 샬롬!
2016-02-15 06:44:09 | 주경선
지난 설 명절기간에 있었던 일들 가운데 성도님들과 공유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고 그 일들을 통해 느낀점들을 나누고자 이렇게 글을 씁니다.
1.
오랜만에 시골(전북 임실의 산골 마을)에 계신 할아버지댁에 방문하여 제가 어릴 적 다녔던 고향교회(약50년 가까이 된 오래된 교회임)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우연히 앞자리에 앉으신 이웃집 집사님에 친척분의 성경책을 보게 되었는데, 제 눈에 익숙한 듯한 모양 이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KJB라는 지퍼가 보이더군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예배 후에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혹시, 갖고 계신 성경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맞나요?”
“네..맞는데... 이 성경을 어떻게 아시죠?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아! 저도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봐요. 그리고 인천 사랑침례교회에 출석하고 있구요”
그리고는 한동안 그분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본인도 처음에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자기 형부가 흠정역 성경을 알고 나서는 성경에 확신이 생겨서 안양에 개척교회를 세웠고 지금은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며 가족들에게도 기도하며 전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고향 교회에서 흠정역 성경을 보는 성경 신자를 만나게 되다니..참으로 흐뭇했습니다.
‘우리말을 쓰는 성도들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으로 영혼의 자유함을 누리고 주님을 영과 진리로 섬기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는 우리 교회의 기도처럼, 그 기도의 결실들이 이 시골에서도 나타나는 듯 하여 하나님께 참 감사드렸습니다.
2.
저희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셔서(90세) 귀가 어두우셔서 보청기 없이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십니다. 대신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좋은 시력을 허락해 주셔서 책을 읽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생활하십니다. 몇 달 전에 우리교회에서 추천한 몇 가지 책들을(성경 바로보기, 구원바로알기, 천주교의 유래 등) 소포로 보내드렸는데, 이번에 만나서 저한테 그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광일아, 너가 보내준 책들 참으로 좋더라. 할아버지가 여태까지 신앙생활하면서 읽었던 책중에 가장 좋은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책들을 어떻게 알게 됐냐? 그리고 정동수라는 사람이 공학박사인데, 책을 참 잘 썼다...할아버지가 성경 바로보기 책이랑 구원 바로알기 책을 읽고 구원에 대해 다 시 한번 정확히 알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너무 좋더라..”
“네, 할아버지, 감사하네요. 정동수 목사님이 제가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님이세요. 이 책들도 목사님께서 번역해서 만들어 주신 책들이에요.”
“그러냐~ 공학박사인데 신학공부도 했구나.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너희 교회 목사님 참! 훌륭하다. 그 목사님..실력자다 실력자! 성경 전체를 다 꽤 뚫어 보는 것 같더라. 그 목사님 밑에서 잘 배우고 잘 도와드려라”
“네 알겠어요. 할아버지, 또 필요하신 책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다 구해다 드릴께요”
“그래, 고맙다. 근데 흠정역 성경이 뭐냐...? 책을 읽다보니까 나오던데...궁금하다.”
비록 연세가 있으시지만, 정신이 또렷하시고 아직도 읍내에 나가실 때 자전거를 타고 한시간정도 운전하신 정도로 주님께서 건강을 허락해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또한 누구나 나이에 관계없이 마음을 열고 맑은 정신으로 판단하면 무엇이 좋고 그렇지 못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교회 오자마자, 흠정역 성경과 함께 필요한 책들을 잔뜩 샀고, 할아버지께 보내드릴 생각을 하니 참 기쁨니다.
3.
이번 명절이 길어서, 오랜만에 부산에 외가까지 방문했는데,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교제하던 중에 교회 재정장로로 일하시던 이모부가 겪었던 일을 이모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던 교회다 보니 재정이 비교적 튼튼했는데, 회계장부를 정리해보면 항상 수치가 맞지 않아서 조사를 해보니 담임목사가 임의적으로 교회 재정을 지출하고 개인적인 용무에 너무 비일비재하게 쓰는 게 포착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일을 두고 약 2년 가까이 벙어리 냉가슴으로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변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모부가 신앙의 양심상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아서 담임목사에게 문제 제기를 했는데, 그 이후로 이모네 가정에 엄청난 압박과 이간질, 험담 등이 쏟아 졌고, 결국엔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에스겔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에스겔서 33장 31절에 보면...‘그들이 자기들의 입으로는 많은 사랑을 나타내어도 그들의 마음은 그들의 탐욕을 따라가느니라.’
또 에스겔서34장 전반부에 보면 무책임한 목자들에 대한 주의 말씀이 기록되 있습니다.
(2)... 목자들이 마땅히 양 떼를 먹여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3) 너희가 살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만들어 입으며 먹이를 먹은 양들을 죽이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 너희가 병든 것을 강하게 하지 아니하고 아픈 것을 고쳐주지 아니하며 상한 것을 싸매 주지 아니하고 쫓겨난 것을 다시 데려오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아니하고 오히려 폭력과 잔인함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4.
명절에 있었던 이런 저런 일들을 생각해보니, 그저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행하는 사역들이 선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 결실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하나 들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우리는 우리교회에서 행하는 선한 주님의 사역의 역량이 확대되기 위해서 지금이 더 큰 그릇을 준비해 할 시점인가를 두고 주님께 기도하며 지혜와 방법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주님께서 작정하신 일이고 그 때가 맞다면 이뤄질 것이고, 사람의 욕심에서 난 일이라면 성취되지 못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교회에 제가 더해진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객관적으로 우리 교회의 사역의 모습을 지켜보았을 때, 변하지 않았던 법칙은 주님께서 작정하신 일이고 알맞은 때라면 이뤄지고 사람의 욕심에서 비롯된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선한 욕심을 내보자면, 우리의 그릇이 주님 보시기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지금보다 더 선하고 깨끗한 큰 그릇이 되어서 성령님께서 진리의 생명수를 떠서 목마른 영혼들에게 마음껏 마시게 할 수 있도록 우리교회를 찾아오는 상한 심령들을 충분히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고 지금보다도 더 힘있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이 우리교회 안에 이뤄지기를 기도해봅니다.
2016-02-15 01:18:14 | 오광일
갑작스런 어머님의 소천으로 당황한 가운데 형제, 자매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의 조문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고,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아니한 자의 경우를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가족 구원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함께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6-02-13 20:24:24 | 김승태
최근 교육과 관련된 귀한 글을 연이어 올려주셔서
저도 많이 느끼고 배우고 있습니다.
조카들의 믿음 생활을 살뜰하게 챙기는 형제님의 모습이
참 훈훈하고 멋져 보입니다.^^
2016-01-25 23:43:44 | 김대용
인간적 소재를 문학적 담금질을 통해
믿음의 숭고한 지점까지 끌어올리시니
여지없이 큰 감동이 밀려옵니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마치 그 누군가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듯
절묘한 글을 올려주셔서
정말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6-01-25 23:32:43 | 김대용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렇게도 표현하실 수 있다니-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2016-01-25 23:25:01 | 이수영
제목부터 마음에 안착되며 감깁니다.
사랑에 열병도 앓고 상처도 받고, 또 눈 멀고 (이런 눈 멈은 더 하고 싶음 ^^).
설교 몇편 들은 느낌이에요. 감사합니다, 형제님.
2016-01-25 22:06:36 | 이청원
# 다시 연애하는 세상을 꿈꾸며,,,,,,,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배워온 여러 말 가운데서
가장 황홀한 말 한 마디가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으신다면
나는 단연코 “연애”라고 크게 외칠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 이렇게 속으로 빈정거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이, 머리도 허~옅게 다 늙은 할~배가 주책바가질세~”이렇게 말입니다.
그래도 배 째라는 뒷심으로 이렇게 주절거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다시 연애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가 학창시절 소월의 시를 처음 읽던 그때부터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연애하는 감정”이라든지 “사랑하는 마음”이라든지
이러한 한마디 말은 지금도 변함없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저는 사회의 첫 발을 제물포에 있는 전문학교에서 교직생활로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는 5년제 전문학교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3학년생은 지금의 고등학교 3학년과정이고 4학년생은 지금의 대학 1학년 과정이었습니다.
고등학교와 2년제 전문대학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었죠.
어느 날 우리 과 과장님과 함께 숙직을 서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50대 어디쯤 되었던 과장님께서 하셨던 말 한마디가 생각납니다.
인생의 선배로서 교훈이 될 만한 말씀을 해 주신 것이었죠.
“젊은 시절에 연애에 바친 3년이 인생을 30년이나 뒤지게 하더라.
그러니 젊었을 때 연애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뜻은 나름대로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 3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내 자신이 그때 그 과장의 나이쯤 되었습니다.
아니 한참을 지나 많이 지난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그 과장님께서 하셨던 말씀과는 정 반대의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참된 연애감정 한번 가져 보지 못한 사람은 남은 인생이 사막과 같은 삶이 될 것이다.”
그 누군가를 애타는 가슴으로 사랑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가을의 국화꽃 향기가 아무리 천지를 진동한다 한들
어찌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이렇게 읊은 서정주 시인의 시정을 가져 볼 수 있겠습니까?
그 누군가를 뜨겁고도 순수하게 사랑해 본 일이 없는 가슴을 가지고
물리학 박사나 공학박사가 된다한들 그 삭막함으로 무엇을 해 내겠습니까?
핵폭탄 밖에 더 만들어 내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세상을 하루아침에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굉장한 발명품을 만들어 내는데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발명품이라면 지금 있는 것만 가지고도 충분합니다.
아니 너무 넘쳐나 공해가 심해 살아갈 수가 없을 지경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세상이 오늘날까지 이만큼이라도 아름다움이 남아 있었던 것은
아직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저마다 그 무언가를 아프도록 사랑 할 수 있는
순수한 연애감정과 참된 사랑의 감정이 아직은 조금 남아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오늘날 인류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이름도 모르는 한 처녀를 젊음의 밤을 새워가며 사랑 할 줄 아는 가슴으로
회복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집 총각을 남모르게 가슴 태우며 사모할 줄 모르게 된 삭막한 인류의 가슴이야말로
지금 지구촌이 당면하고 있는 비극이요 위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공할만한 핵폭탄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류를 다시 저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대로 되돌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농촌은 심훈의 상록수 같은 소설이 다시 쓰여 질수 있는
그런 시대로 되돌렸으면 좋겠고,
우리들의 도시는 이광수의 연애소설들이 다시 읽혀질 수 있는
그 시대의 시대감정으로 되돌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작가들이 다시 밤을 새워가며 눈물 젖은 연애소설을 써내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팔도강산은
다시 춘향이의 애간장 태우는 사랑타령으로 밤을 밝히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다시 그 시대의 수줍음과, 그 시대의 여린 감정과, 그 시대의 착한 마음과,
그 시대의 순수하고 뜨거운 연애감정들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만 다시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그 누군가를 사모하게끔 창조 된 것이라 매일 읽는 성경 속에서 보고 있습니다.
세상의 타락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모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세상의 타락이라 매일 읽는 성경에서 역시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모의 정을 잃어가는 황폐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연애의 감정이나 사랑하는 마음들이 메말라 버린 시대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살 수 있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래야 가장 뜨겁고 순수하게
그 영원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연애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어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가슴마다 다시 사랑 병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으로 눈 먼 사람들의 세상이 된다면 더 바랄게 뭐가 있겠습니까?
사람들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한 아담 할아버지의 연애감정을
다시 회복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2016년 꼭두새벽부터 다시 한 번 힘차게 주절거립니다.
“사랑에 병 든 가슴이 성한 가슴이요 사랑에 눈 먼 세상이 밝은 세상이다.“
2016년 1월 25일(월)
유 용수
2016-01-25 20:25:51 | 유용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얘들아" 라고 부르셨지요.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면 누구나 미소가 지어지는데
주님앞에서 우리는 모두 순수한 어린아이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6-01-25 09:27:51 | 이수영
오형제님 조카의 흐뭇한 교회 적응 소식을 통해 교훈을 주는 글이네요.
우리 모두가 예외없이 어린시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나의 어린시절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니
지금의 아이들을 보며 순수함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2016-01-25 07:46:27 | 김상희
주님 오실 때까지 영적인 하나님의 군사로서 세상과
싸워 이길 힘의 원동력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말씀에 순종하는것이라
생각하며 부모가 바로 서 있어야 자녀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겠죠.
다시금 그리스도인의 존재감에 대해 공감하며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2016-01-25 03:58:07 | 김상희
1월 초부터 저의 여자아이 조카 둘(초등5학년, 7살)을 데리고 예배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비록 어린 아이들 이지만, 한 주 한 주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가면서 조금씩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눈이 떠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우리 교회의 모습의 인상과 말씀을 통해서 느낀 점 몇 가지 소개하고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1. 교회에 출석하게 된 배경
개인적으로 총각시절에 누나집에 살면서 몇 년간 신세를 지었고 그러는 동안에 조카와 상당히 많이 친해졌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독립할 때에는 외삼촌 왜 같이 살지 않냐고 떼쓰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러던 어린아이가 이제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 이제 제법 대화가 통합니다. 작년부터는 집근처 교회로 주일학교를 다닌다고 하길래, 어떻게 신앙 생활하는지 물어보았더니,
“교회가면 10분정도 설교 듣고 나머지 시간은 핸드폰 해, 약 3시간 정도 하는 거 같어... 그래서 엄마한테 그 교회 가기 싫다고 했는데, 엄마가 그냥 안가는 것 보다는 낫다고 하면서 가라고 해서 가긴 가는데... 왜 가는지 모르겠어. 어차피 핸드폰 할꺼면 집에서 편하게 하는게 낫지... 가도 엄마랑 같이 안가니까 나한테 별로 신경 안쓰고...애들도 좀 그래...”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조카는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예수님은 누구신지? 사람이 어떻게 해서 구원 받는지? 교회는 왜 가는 건지?’ 등등 아주 기초적인 부분도 불분명한 체 부모님 따라서 교회에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누나에게 했고, 허락하에 1월 첫 주에 교회 첫걸음을 하였습니다.
2. 한 달 동안 아이의 눈으로 본 우리 교회의 모습
첫주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조카가 그러는 겁니다.
“삼촌, 삼촌네 교회 좋은 거 같어. 이제까지 내가 다녀본 교회 중에 최고인거 같아.. 예배시간에 아이들이 핸드폰을 안하는게 신기했어... 그리고 내 또래 아이들도 많아서 좋아. 친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이들도 대부분 착한 거 같아... 그리고 목사님 설교말씀 이해하기 어려운데, 옆에서 삼촌이 성경 설명해 줘서 이해도 되고 좋았어. 엄마한테 말해서 삼촌네 교회 계속 다닌다고 말할거야”
그 말은 듣는데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내색하지 않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적응해 보라고 이런저런 권면에 말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 설교 말씀을 듣는데, 목사님 설교가 조금은 더 많이 들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그러시는데, 우리만 교회다 우리교회가 아니고 다른데 가면 안된다고 말하는 곳들은 대부분 이단이거나 어쩌면 마귀의 영에 속은 곳 일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내가 전에 다녔던 교회가 그랬어. 자기네 교회 나가면 저주 받고 재앙 받는다고 그래서 교회 나올 때 엄마 아빠가 힘들어 하셨고 나도 무서웠어... 저주 받을까봐... 그런데 오늘 설교 말씀 들어보니까, 그 교회가 잘못된 것 같어. ”
비록 어린 아이지만, 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성적으로 성경말씀에 근거해서 생각해 보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기특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맑은 정신으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직은 전에 들었던 것들과 혼동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어려움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도 밝아져 가고, 교회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합니다.
3. 어린아이와 같이 신앙 생활한다는 것이 쉬울까?
마가복음 10장 13절에서 16절에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시는 모습이 기록되 있습니다. (14)...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을 막지 말라. 하나님의 왕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니라. (15)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왕국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며 (16) 팔로 그들을 안고 그들에게 안수하시며 그들을 축복하시니라.
15절에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왕국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셨는데, 이 동일한 부분을 누가복음18장 17절에서는 “결코 in no wise"라는 표현까지 들어가서 ‘결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 있습니다. 참고로, 결코라는 표현은 마태복음 5장 18절...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 되리라’ (one jot or one tittle shall in no wise pass from the law, till all be fulfilled.) 이처럼 예수님께서 말씀의 성취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 쓰셨던 표현이기도 합니다.
본문시작이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라고 시작되는데, 어린아이는 어떤 사람인가요?
어린아이는 자기의 힘만으로는 어떤 일들을 해결 할 수 없음을 알기에 늘 부모를 의지합니다.
어린아이는 죄에 대해 민감하여 조그마한 잘못을 저질러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누가 그 잘못을 지적했을 때, 울음을 터뜨리며 잘못했다고 용서를 빕니다.
어린아이는 허황된 욕심이 없어서, 하루하루 평안하고 즐겁게 생활 하는 것에 만족합니다.
어린아이는 늘 부모의 사랑을 갈구 합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을 늘 신뢰하고 부모님이 한 약속에 대해서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 주시리라 믿으며 그 약속이 실행되었을 때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이야기에 늘 귀기울이며
어린아이는 부모님이 하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으며
어린아이는 부모님과 늘 영원히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자! 이제 어린아이에 나의 이름을 넣고 부모님에 하나님을 넣고 나는 몇 개나 ‘그렇다(yes)’ 라고 생각하여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끄럽게도 정말 확신 있게 동그라미를 칠 수 있는 게 몇 개 안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에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팔로 안고 축복까지 해주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직접 축복해준 대상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니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린아이들이 대단히 부러울 정도입니다. 어린아이같이 신앙생활 하는거 결코 쉽지 않지만, 성령님의 도움심을 늘 바라며 한걸음 한걸음 성화의 길을 가다보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두 팔로 안아주시는 그런 어린 아이같은 신앙인으로 언젠가는 변화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2016-01-25 01:35:22 | 오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