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명절기간에 있었던 일들 가운데 성도님들과 공유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고 그 일들을 통해 느낀점들을 나누고자 이렇게 글을 씁니다.
1.
오랜만에 시골(전북 임실의 산골 마을)에 계신 할아버지댁에 방문하여 제가 어릴 적 다녔던 고향교회(약50년 가까이 된 오래된 교회임)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우연히 앞자리에 앉으신 이웃집 집사님에 친척분의 성경책을 보게 되었는데, 제 눈에 익숙한 듯한 모양 이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KJB라는 지퍼가 보이더군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예배 후에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혹시, 갖고 계신 성경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맞나요?”
“네..맞는데... 이 성경을 어떻게 아시죠?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아! 저도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봐요. 그리고 인천 사랑침례교회에 출석하고 있구요”
그리고는 한동안 그분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본인도 처음에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자기 형부가 흠정역 성경을 알고 나서는 성경에 확신이 생겨서 안양에 개척교회를 세웠고 지금은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며 가족들에게도 기도하며 전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고향 교회에서 흠정역 성경을 보는 성경 신자를 만나게 되다니..참으로 흐뭇했습니다.
‘우리말을 쓰는 성도들이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으로 영혼의 자유함을 누리고 주님을 영과 진리로 섬기는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는 우리 교회의 기도처럼, 그 기도의 결실들이 이 시골에서도 나타나는 듯 하여 하나님께 참 감사드렸습니다.
2.
저희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셔서(90세) 귀가 어두우셔서 보청기 없이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십니다. 대신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좋은 시력을 허락해 주셔서 책을 읽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생활하십니다. 몇 달 전에 우리교회에서 추천한 몇 가지 책들을(성경 바로보기, 구원바로알기, 천주교의 유래 등) 소포로 보내드렸는데, 이번에 만나서 저한테 그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광일아, 너가 보내준 책들 참으로 좋더라. 할아버지가 여태까지 신앙생활하면서 읽었던 책중에 가장 좋은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책들을 어떻게 알게 됐냐? 그리고 정동수라는 사람이 공학박사인데, 책을 참 잘 썼다...할아버지가 성경 바로보기 책이랑 구원 바로알기 책을 읽고 구원에 대해 다 시 한번 정확히 알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너무 좋더라..”
“네, 할아버지, 감사하네요. 정동수 목사님이 제가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님이세요. 이 책들도 목사님께서 번역해서 만들어 주신 책들이에요.”
“그러냐~ 공학박사인데 신학공부도 했구나.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너희 교회 목사님 참! 훌륭하다. 그 목사님..실력자다 실력자! 성경 전체를 다 꽤 뚫어 보는 것 같더라. 그 목사님 밑에서 잘 배우고 잘 도와드려라”
“네 알겠어요. 할아버지, 또 필요하신 책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다 구해다 드릴께요”
“그래, 고맙다. 근데 흠정역 성경이 뭐냐...? 책을 읽다보니까 나오던데...궁금하다.”
비록 연세가 있으시지만, 정신이 또렷하시고 아직도 읍내에 나가실 때 자전거를 타고 한시간정도 운전하신 정도로 주님께서 건강을 허락해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또한 누구나 나이에 관계없이 마음을 열고 맑은 정신으로 판단하면 무엇이 좋고 그렇지 못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교회 오자마자, 흠정역 성경과 함께 필요한 책들을 잔뜩 샀고, 할아버지께 보내드릴 생각을 하니 참 기쁨니다.
3.
이번 명절이 길어서, 오랜만에 부산에 외가까지 방문했는데,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교제하던 중에 교회 재정장로로 일하시던 이모부가 겪었던 일을 이모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던 교회다 보니 재정이 비교적 튼튼했는데, 회계장부를 정리해보면 항상 수치가 맞지 않아서 조사를 해보니 담임목사가 임의적으로 교회 재정을 지출하고 개인적인 용무에 너무 비일비재하게 쓰는 게 포착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일을 두고 약 2년 가까이 벙어리 냉가슴으로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변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모부가 신앙의 양심상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아서 담임목사에게 문제 제기를 했는데, 그 이후로 이모네 가정에 엄청난 압박과 이간질, 험담 등이 쏟아 졌고, 결국엔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에스겔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에스겔서 33장 31절에 보면...‘그들이 자기들의 입으로는 많은 사랑을 나타내어도 그들의 마음은 그들의 탐욕을 따라가느니라.’
또 에스겔서34장 전반부에 보면 무책임한 목자들에 대한 주의 말씀이 기록되 있습니다.
(2)... 목자들이 마땅히 양 떼를 먹여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3) 너희가 살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만들어 입으며 먹이를 먹은 양들을 죽이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 너희가 병든 것을 강하게 하지 아니하고 아픈 것을 고쳐주지 아니하며 상한 것을 싸매 주지 아니하고 쫓겨난 것을 다시 데려오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아니하고 오히려 폭력과 잔인함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4.
명절에 있었던 이런 저런 일들을 생각해보니, 그저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행하는 사역들이 선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 결실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하나 들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우리는 우리교회에서 행하는 선한 주님의 사역의 역량이 확대되기 위해서 지금이 더 큰 그릇을 준비해 할 시점인가를 두고 주님께 기도하며 지혜와 방법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주님께서 작정하신 일이고 그 때가 맞다면 이뤄질 것이고, 사람의 욕심에서 난 일이라면 성취되지 못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교회에 제가 더해진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객관적으로 우리 교회의 사역의 모습을 지켜보았을 때, 변하지 않았던 법칙은 주님께서 작정하신 일이고 알맞은 때라면 이뤄지고 사람의 욕심에서 비롯된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선한 욕심을 내보자면, 우리의 그릇이 주님 보시기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지금보다 더 선하고 깨끗한 큰 그릇이 되어서 성령님께서 진리의 생명수를 떠서 목마른 영혼들에게 마음껏 마시게 할 수 있도록 우리교회를 찾아오는 상한 심령들을 충분히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고 지금보다도 더 힘있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이 우리교회 안에 이뤄지기를 기도해봅니다.
2016-02-15 01:18:14 | 오광일
갑작스런 어머님의 소천으로 당황한 가운데 형제, 자매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의 조문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고,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아니한 자의 경우를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가족 구원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함께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6-02-13 20:24:24 | 김승태
최근 교육과 관련된 귀한 글을 연이어 올려주셔서
저도 많이 느끼고 배우고 있습니다.
조카들의 믿음 생활을 살뜰하게 챙기는 형제님의 모습이
참 훈훈하고 멋져 보입니다.^^
2016-01-25 23:43:44 | 김대용
인간적 소재를 문학적 담금질을 통해
믿음의 숭고한 지점까지 끌어올리시니
여지없이 큰 감동이 밀려옵니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마치 그 누군가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듯
절묘한 글을 올려주셔서
정말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6-01-25 23:32:43 | 김대용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렇게도 표현하실 수 있다니-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2016-01-25 23:25:01 | 이수영
제목부터 마음에 안착되며 감깁니다.
사랑에 열병도 앓고 상처도 받고, 또 눈 멀고 (이런 눈 멈은 더 하고 싶음 ^^).
설교 몇편 들은 느낌이에요. 감사합니다, 형제님.
2016-01-25 22:06:36 | 이청원
# 다시 연애하는 세상을 꿈꾸며,,,,,,,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배워온 여러 말 가운데서
가장 황홀한 말 한 마디가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으신다면
나는 단연코 “연애”라고 크게 외칠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 이렇게 속으로 빈정거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이, 머리도 허~옅게 다 늙은 할~배가 주책바가질세~”이렇게 말입니다.
그래도 배 째라는 뒷심으로 이렇게 주절거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다시 연애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가 학창시절 소월의 시를 처음 읽던 그때부터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연애하는 감정”이라든지 “사랑하는 마음”이라든지
이러한 한마디 말은 지금도 변함없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저는 사회의 첫 발을 제물포에 있는 전문학교에서 교직생활로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는 5년제 전문학교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3학년생은 지금의 고등학교 3학년과정이고 4학년생은 지금의 대학 1학년 과정이었습니다.
고등학교와 2년제 전문대학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었죠.
어느 날 우리 과 과장님과 함께 숙직을 서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50대 어디쯤 되었던 과장님께서 하셨던 말 한마디가 생각납니다.
인생의 선배로서 교훈이 될 만한 말씀을 해 주신 것이었죠.
“젊은 시절에 연애에 바친 3년이 인생을 30년이나 뒤지게 하더라.
그러니 젊었을 때 연애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뜻은 나름대로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 3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내 자신이 그때 그 과장의 나이쯤 되었습니다.
아니 한참을 지나 많이 지난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그 과장님께서 하셨던 말씀과는 정 반대의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참된 연애감정 한번 가져 보지 못한 사람은 남은 인생이 사막과 같은 삶이 될 것이다.”
그 누군가를 애타는 가슴으로 사랑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가을의 국화꽃 향기가 아무리 천지를 진동한다 한들
어찌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이렇게 읊은 서정주 시인의 시정을 가져 볼 수 있겠습니까?
그 누군가를 뜨겁고도 순수하게 사랑해 본 일이 없는 가슴을 가지고
물리학 박사나 공학박사가 된다한들 그 삭막함으로 무엇을 해 내겠습니까?
핵폭탄 밖에 더 만들어 내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세상을 하루아침에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굉장한 발명품을 만들어 내는데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발명품이라면 지금 있는 것만 가지고도 충분합니다.
아니 너무 넘쳐나 공해가 심해 살아갈 수가 없을 지경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세상이 오늘날까지 이만큼이라도 아름다움이 남아 있었던 것은
아직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저마다 그 무언가를 아프도록 사랑 할 수 있는
순수한 연애감정과 참된 사랑의 감정이 아직은 조금 남아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오늘날 인류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이름도 모르는 한 처녀를 젊음의 밤을 새워가며 사랑 할 줄 아는 가슴으로
회복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집 총각을 남모르게 가슴 태우며 사모할 줄 모르게 된 삭막한 인류의 가슴이야말로
지금 지구촌이 당면하고 있는 비극이요 위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공할만한 핵폭탄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류를 다시 저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대로 되돌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농촌은 심훈의 상록수 같은 소설이 다시 쓰여 질수 있는
그런 시대로 되돌렸으면 좋겠고,
우리들의 도시는 이광수의 연애소설들이 다시 읽혀질 수 있는
그 시대의 시대감정으로 되돌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작가들이 다시 밤을 새워가며 눈물 젖은 연애소설을 써내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팔도강산은
다시 춘향이의 애간장 태우는 사랑타령으로 밤을 밝히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다시 그 시대의 수줍음과, 그 시대의 여린 감정과, 그 시대의 착한 마음과,
그 시대의 순수하고 뜨거운 연애감정들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만 다시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그 누군가를 사모하게끔 창조 된 것이라 매일 읽는 성경 속에서 보고 있습니다.
세상의 타락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모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세상의 타락이라 매일 읽는 성경에서 역시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모의 정을 잃어가는 황폐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연애의 감정이나 사랑하는 마음들이 메말라 버린 시대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살 수 있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래야 가장 뜨겁고 순수하게
그 영원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연애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어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가슴마다 다시 사랑 병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으로 눈 먼 사람들의 세상이 된다면 더 바랄게 뭐가 있겠습니까?
사람들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한 아담 할아버지의 연애감정을
다시 회복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2016년 꼭두새벽부터 다시 한 번 힘차게 주절거립니다.
“사랑에 병 든 가슴이 성한 가슴이요 사랑에 눈 먼 세상이 밝은 세상이다.“
2016년 1월 25일(월)
유 용수
2016-01-25 20:25:51 | 유용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얘들아" 라고 부르셨지요.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면 누구나 미소가 지어지는데
주님앞에서 우리는 모두 순수한 어린아이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6-01-25 09:27:51 | 이수영
오형제님 조카의 흐뭇한 교회 적응 소식을 통해 교훈을 주는 글이네요.
우리 모두가 예외없이 어린시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나의 어린시절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니
지금의 아이들을 보며 순수함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2016-01-25 07:46:27 | 김상희
주님 오실 때까지 영적인 하나님의 군사로서 세상과
싸워 이길 힘의 원동력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말씀에 순종하는것이라
생각하며 부모가 바로 서 있어야 자녀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겠죠.
다시금 그리스도인의 존재감에 대해 공감하며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2016-01-25 03:58:07 | 김상희
1월 초부터 저의 여자아이 조카 둘(초등5학년, 7살)을 데리고 예배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비록 어린 아이들 이지만, 한 주 한 주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가면서 조금씩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눈이 떠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우리 교회의 모습의 인상과 말씀을 통해서 느낀 점 몇 가지 소개하고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1. 교회에 출석하게 된 배경
개인적으로 총각시절에 누나집에 살면서 몇 년간 신세를 지었고 그러는 동안에 조카와 상당히 많이 친해졌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독립할 때에는 외삼촌 왜 같이 살지 않냐고 떼쓰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러던 어린아이가 이제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 이제 제법 대화가 통합니다. 작년부터는 집근처 교회로 주일학교를 다닌다고 하길래, 어떻게 신앙 생활하는지 물어보았더니,
“교회가면 10분정도 설교 듣고 나머지 시간은 핸드폰 해, 약 3시간 정도 하는 거 같어... 그래서 엄마한테 그 교회 가기 싫다고 했는데, 엄마가 그냥 안가는 것 보다는 낫다고 하면서 가라고 해서 가긴 가는데... 왜 가는지 모르겠어. 어차피 핸드폰 할꺼면 집에서 편하게 하는게 낫지... 가도 엄마랑 같이 안가니까 나한테 별로 신경 안쓰고...애들도 좀 그래...”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조카는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예수님은 누구신지? 사람이 어떻게 해서 구원 받는지? 교회는 왜 가는 건지?’ 등등 아주 기초적인 부분도 불분명한 체 부모님 따라서 교회에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누나에게 했고, 허락하에 1월 첫 주에 교회 첫걸음을 하였습니다.
2. 한 달 동안 아이의 눈으로 본 우리 교회의 모습
첫주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조카가 그러는 겁니다.
“삼촌, 삼촌네 교회 좋은 거 같어. 이제까지 내가 다녀본 교회 중에 최고인거 같아.. 예배시간에 아이들이 핸드폰을 안하는게 신기했어... 그리고 내 또래 아이들도 많아서 좋아. 친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이들도 대부분 착한 거 같아... 그리고 목사님 설교말씀 이해하기 어려운데, 옆에서 삼촌이 성경 설명해 줘서 이해도 되고 좋았어. 엄마한테 말해서 삼촌네 교회 계속 다닌다고 말할거야”
그 말은 듣는데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내색하지 않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적응해 보라고 이런저런 권면에 말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 설교 말씀을 듣는데, 목사님 설교가 조금은 더 많이 들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그러시는데, 우리만 교회다 우리교회가 아니고 다른데 가면 안된다고 말하는 곳들은 대부분 이단이거나 어쩌면 마귀의 영에 속은 곳 일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내가 전에 다녔던 교회가 그랬어. 자기네 교회 나가면 저주 받고 재앙 받는다고 그래서 교회 나올 때 엄마 아빠가 힘들어 하셨고 나도 무서웠어... 저주 받을까봐... 그런데 오늘 설교 말씀 들어보니까, 그 교회가 잘못된 것 같어. ”
비록 어린 아이지만, 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성적으로 성경말씀에 근거해서 생각해 보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기특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맑은 정신으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직은 전에 들었던 것들과 혼동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어려움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도 밝아져 가고, 교회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합니다.
3. 어린아이와 같이 신앙 생활한다는 것이 쉬울까?
마가복음 10장 13절에서 16절에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시는 모습이 기록되 있습니다. (14)...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을 막지 말라. 하나님의 왕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니라. (15)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왕국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며 (16) 팔로 그들을 안고 그들에게 안수하시며 그들을 축복하시니라.
15절에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왕국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셨는데, 이 동일한 부분을 누가복음18장 17절에서는 “결코 in no wise"라는 표현까지 들어가서 ‘결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 있습니다. 참고로, 결코라는 표현은 마태복음 5장 18절...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 되리라’ (one jot or one tittle shall in no wise pass from the law, till all be fulfilled.) 이처럼 예수님께서 말씀의 성취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 쓰셨던 표현이기도 합니다.
본문시작이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라고 시작되는데, 어린아이는 어떤 사람인가요?
어린아이는 자기의 힘만으로는 어떤 일들을 해결 할 수 없음을 알기에 늘 부모를 의지합니다.
어린아이는 죄에 대해 민감하여 조그마한 잘못을 저질러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누가 그 잘못을 지적했을 때, 울음을 터뜨리며 잘못했다고 용서를 빕니다.
어린아이는 허황된 욕심이 없어서, 하루하루 평안하고 즐겁게 생활 하는 것에 만족합니다.
어린아이는 늘 부모의 사랑을 갈구 합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을 늘 신뢰하고 부모님이 한 약속에 대해서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 주시리라 믿으며 그 약속이 실행되었을 때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이야기에 늘 귀기울이며
어린아이는 부모님이 하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으며
어린아이는 부모님과 늘 영원히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자! 이제 어린아이에 나의 이름을 넣고 부모님에 하나님을 넣고 나는 몇 개나 ‘그렇다(yes)’ 라고 생각하여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끄럽게도 정말 확신 있게 동그라미를 칠 수 있는 게 몇 개 안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에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팔로 안고 축복까지 해주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직접 축복해준 대상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니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린아이들이 대단히 부러울 정도입니다. 어린아이같이 신앙생활 하는거 결코 쉽지 않지만, 성령님의 도움심을 늘 바라며 한걸음 한걸음 성화의 길을 가다보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두 팔로 안아주시는 그런 어린 아이같은 신앙인으로 언젠가는 변화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2016-01-25 01:35:22 | 오광일
귀감이 되는 삶의 모습이 담기 글이네요
깊은 감동으로 잘 읽었습니다.~^^
2016-01-23 20:10:22 | 박순호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전하고자 애쓰시는 열정이 느껴집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보게 되네요.
2016-01-23 10:44:46 | 김혜순
어디에 계시고 어떤 일을 하시던지 공유하시려는 마음과 그렇게 병간호로 힘들고 어려우셨을텐데도 예배를 드리고자 여기 저기 교회를 순회하는 그 마음을 읽으니 감동이 됩니다.
연세가 있으셔도 영과 혼이 맑고 적극적인 사모님의 태도를 저도 그 나이에 가졌음 좋겠습니다.
2016-01-23 07:37:39 | 오혜미
윤정용 사모님의 글을 읽다보니 문득 디모데후서 4장 2절(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 - - - - .)말씀이 생각 납니다. 박목사님 간병 하는중에도 전도하시는 모습에 감동과 도전을 받습니다. 두분모두 올한해도 주님안에서 건강하세요 !
2016-01-23 07:33:05 | 오승록
수술을 11월 27일 금요일에 하고 주일이 돌아 왔습니다 .
옆에있는 아주머니에게 혹시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 물었드니 아 교회 나가세요 , 하면서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거기 큰 교회가 있다고 아르켜 주었습니다 . 비는 부슬 부슬 오는데 우산을 쓰고 한참 올라가다 보니
선교 교회라고 간판이 붙어있는 2층 교회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조용학고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
가까이 가서보니 오후 2시에 예배시간을 적어 놓았습니다 . 한참을가다가 길가는 사람에게 또 물어보니 조금만 더 가면
교회가 있다고 했습니다 . 한참을 더 올라가니 7 .8 층 유리로 지은 현대식 건물로 지은교회가 있었습니다 .사람 들이 많이 들어 가는 쪽으로 따라 갔더니 지하 1층이 예배 실이었습니다 .
들어갈려고 하니 못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1부 예배가 끝날때가 되었으니 있다가 들어가라고 하는데 밖에있는 모니터
로 보니 여자 목사님인지 전도 사님인지 강대상에서 찬송 인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
그런대 안내하는 남자 집사님들이 하얀 바지에다 보라색 웃 옷 유니품을 똑같이 입고 서있는대 옆 긴 탁자위에는 붉은
헌금 주머니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 지금도 헌금 주머니를 돌리다니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 분위기가
꼭 콘서트 장에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 이런 교회는 예수님이 안계실것 같았습니다 . 다시 나와서 살펴보니 길 거너
편에 큰 공원이 있는데 공원을 지나서 붉은 벽돌로 지은 전형적인 장로교회 스타일로 지어진 교회가 보였습니다 .
부지런히 그곳으로 달려 갔더니 한 두사람이 급히 들어 가고 있어서 따라 들어갔습니다 .준비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
다 . 긴 교회 의자인데 옆으로 들어가 앞쪽으로 앉았습니다 . 예배 분위기가 좀 어수선 했습니다 .
남자 형제님이 에취 ! 하면서 얼마나 제체기를 크게 하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이 한번이 아니라 잊을만 하면
에취 ! 하여서 모두 그쪽을 보는 겁니다 . 그런데 급하게 들어오다 보니 주일 헌금을 헌금 함에다 못 넣코 들어와서
끝나고 나갈때 해야지 하고 있는데 설교가 끝나고 헌금 시간입니다 . 하면서 헌금 주머니를 돌리는 것입니다 .
아니 이 교회도 헌금 주머니를 돌리다니 ! 이 동내는 다 이런가 ? 의아하게 생각 했습니다 . 옛날에는 거의가 헌금
주머니를 돌렸지만 지금은 거의 헌금 함에다 하는줄로 알고 있다가 놀랐습니다 .
한주간이 지나고 내일이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미리 교회를 알아 볼려고 주차장 쪽으로 나가서 살펴 보았더니 병원
건너편에 교회가 보였습니다 . 주일이 되어 11시 20분 전에 병원을 나와서 찾아 갔습니다 .
가까이 가보니 상가 2층에 지구촌 장로교회 라고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 문은 닫아 놓았는데 한 사람도 들어가는
사람이 없어서 주저하고 있는데 3층 계단을 내려오는 분이 얼른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 그분이 목사님이 셨습니다 .
피아노와 악기에 맞추어서 찬송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한 20평 되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
찬송을 인도 하는 자매님을 따라 준비 찬송을 부르고 예배가 시작 되었는데 몆사람 안되는 겁니다 .나 까지 합해서
11명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 알고보니 목사님 자녀가 남매 이므로 가족 4명에다 교인이 7명이 되는 샘이지요 .
그런데 이 작은 교회에서는 헌금 함을 입구에 놓아 두었습니다 .큰 교회에서는 앞앞이 헌금 바구니를 돌리는데
이 작은 교회에서는 헌금 함에다 하다니 또 한번 놀랐습니다 .
목사님 설교를 들어보니 복음적인 설교를 하셨습니다 . 설교는 잘 하시는데 참 안타 까웠습니다 .
예배가 끝난후 인사를 나누고 목사님 ! 교회 개척 하신지가 얼마 안되시나 봐요 ! 했드니 예 8년 되었습니다 .
또 한번 놀랐습니다 . 나중에 사모님 한태 물어 보았습니다 . 그럼 어떻게 생활은 하세요 ? 했드니 예 제가 피아노
레슨을 하고 있어요 . 하는 겁니다 . 아 그래도 다행이구나 ! 하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 나도 목회자의 아내로
서의 삶을 살어 봤지만 삶은 현실이니까요 , 점심 식사를 하고 가세요 ,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서 지하에 교육관
겸 식당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 국수를 삶았는데 국수가 끈기가 없고 맛이 별루 였습니다 .그래도 따끈한 국물에다
잘 읽은 김치로 그런대로 잘 먹었습니다 .
어른은 남자 집사님 한분과 여자 집사님 한분이시고 청년 들이었습니다 .
어린이 4명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 . 사모님 이야기로는 몆분 집사님들이 더 있는데 주일날
일하는 직장이라 못 나오신다고 했습니다 . 교인들이 몆십명 있었는데 이사만 가면 큰 교회로 가고 안나온다는
것입니다 . 다음에 점심할때 보태서 써 주세요 하고 오만원을 슬며시 손에 지어 드리고 왔습니다 .
그 다음 주일에도 그 교회로 갔습니다 . 남편이 내 헌금까지 하고와요 ! 해서 성이껏 헌금을 드렸습니다 .
점심식사를 할려고 내려 갔드니 밥을 한 것입니다 . 부대 찌개를 끌이고 김치와 간장에 고추 삭힌것과 김을 내 놓았
는데 따끈한 밥에다 부대 찌개를 먹는데 그렇게 맛 있는 찌개는 처음 먹는것 같았습니다 .
오후 예배까지 드리고 병원으로 돌아 왔습니다 .
어쩌다 외출해서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면 현지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곤 하는데
이 교회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성도가 얼마나 있을가 ?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몰라도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성도는 하나님이 기쁘게 보실것이라 생각 합니다 .
개역 성경을 보고 믿고 있지만 잘 모르는 것은 덮어두고 내가 알고 있는 만큼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 하실것이라 생각 합니다 . 저도 개역 성경을 보면서 왜 이렇게 썼을가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그것은 궁굼한대로 덮어 두고 신앙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
처음에 우리 사랑 침례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는데 귀가 확 열리고 성경을 보는 눈이 뜨여 졌습니다 .
그동안 내가 궁금했던 것이 다 풀였습니다 .
그리고 또 한가지 놀란것은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자를 소계 하시면서 성도들의 믿음의 분량을 채워 주기 위해
애 쓰시는 목사님에게 정말 감동 했습니다 . 신앙에 도움이 되는 서적을 책방에다 진열해 놓고 매주 마다 빌려다
보라고 해서 이런 좋은 교회도 있구나 ! 하면서 매주 책을 빌려와서 읽는데 책을 좋아하는 저는 너무 행복 했습니다 .
그래서인지 한분 한분 성도님 들이 인격적으로 다듬어 져서 성숙한 그리스도 인으로 보였습니다 .
마지막 때에 올바른 신약 교회를 만나서 나는 복 받았구나 !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퇴원 할때까지 지구촌 장로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했습니다 .퇴원할때 집으로 모셔다 드리겠다고
사모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 아님니다. 강서구에 살고 있는 동생이 오기로 했어요 . 하면서 그 사모님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 우리 교회 오혜미 사모님 께서도 우리가 차가 없는 것을 아시고 퇴원 날자를 아르켜 주면 오시
겠다고 하셨습니다 . 역시 사모님들은 자상하게 사랑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살피시는 구나 !
저는 고마은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
76세되신 충청도 논산에서 오신 아주머니는 성격이 조용하고 온순한 분으로 보였습니다 .
따님이 김포 쪽에 살고 있기에 가까운 곳에 병원을 택한것 같았습니다 .병원앞에 있는 5호선 발산 역인데 한 정거장만
더 가면 김포 역이니까요 .박명옥 씨보다 한 3일 늦게 들어 오신 분입니다 . 믿는 분인지 안믿으시는 분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701호실 환자들에게 똑 같이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 양쪽 무릅 수술을 했는데 간장빚 같이 새까맡게
되었습니다 . 그분은 705호실에 박명옥 씨와 함께 있게 되어서 매일 그곳으로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그 논산 아주머니
도 집이 멀어서인지 따님 혼자 만이 오후에 한번씩 오고 간병인이 돌봐 주었습니다 . 우리 남편이 몆일 먼저 수술
했으므로 기구를 의지해서 조금씩 걷는 것을보고 목사님 보고 많이 위로를 받고 나도 몆일 있으면 저렇게 걸을수가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힘을 내었다고 하는 소리를 했습니다 .
퇴원하기 3일전 찾아가서 진지 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
그랬드니 눈물을 글썽 이면서 믿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퇴원후 박명옥 씨에게 전화를 했드니 김포쪽 재활 병원에
있는데 몆일을 지났는데 논산 에서 오신 그 분도 그 병원으로 오시게 대어 반가워서 손을 잡고 울었다고 했습니다 .
그 충청도 아주머니가 목사님을 보니까 자기도 교회 나가야 되겠다고 하는 소리를 했다고 나 한태 이야기를 해
주어서 너무나 감사 했습니다 .성령님이 그 마음문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병원 생활을 헛되게 보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
2016-01-23 00:12:50 | 윤정용
바른 가치관을 지니고 살기가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지요.
더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는 세상과는 너무나 상충하다보니
어려움속에 빠지곤 합니다.
실제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 치르고 있는 영적전쟁인 것 같아요.
구원받기 전엔 성선설이 맞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성악설이 절대로 옳은것을 뼈속 깊이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옳은것임을 살아갈수록 인정하게 됩니다.
창조주이신 분을 제쳐두고서는 아무것도 올바른 설정이 될수 없으니까요.
2016-01-21 10:10:25 | 이수영
입원 기간에도 큰일 많이 하셨네요....
2016-01-20 08:37:21 | 허광무
몇 해 전 EBS에서 ‘자녀교육법의 새 장을 열었다’고 극찬을 했던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여기서 새롭게 조명을 받은 것이 ‘자아 존중감’ 혹은 줄여서 ‘자존감’이라는 말이었다. 이때부터 앞 다투어 매스컴과 서점가는 연일 새로운 패러다임 ‘자존감’을 주제로 한 책과 프로그램을 쏟아냈고 한동안 지금까지도 유행어가 되었다.
나 역시 그 때 아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찾으며 <아이의 자존감>이라는 책을 사서 보게 되었다.
이 책의 핵심은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가장 큰 덕목이 바로 자존감인데 자녀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부모의 양육태도에 대해 설명하며, 반기문 UN 사무총장, 안철수, 빌 게이츠, 성주그룹 김성주 회장, 스티브 잡스, 작가 한비야 등을 성공적인 롤 모델로 이야기한다.
참고로 교육부가 2015년 개정교육과정에서 발표한 초. 중. 고 교육의 목표는 ‘창의·융합형인재’로 ‘사회 변화에 따른 교육패러다임 전환’을 교육개정의 이유로 들고 있다.
‣ 창의·융합형 인재 : 인문학적 상상력,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바른 인성을 겸비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
∘미래사회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6가지(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융합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로 제시하고 학생 참여 중심의 수업을 통해 이를 함양할 수 있도록 함. <2015개정교육과정 총론 시안 자료집 15쪽>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국 교육부의 교육개정 방향은 대학입시를 반영하는 기준이고 이러한 현실을 우선 먼저 생각하게 되면서 위에서 요구하는 인재로 키우기란 상당히 어려움이 따를 것 같다는 우려가 앞서게 된다. 솔직히 위의 6가지 역량을 고루 갖춘 인재는 아마도 사람이기 보다는 신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위에서 말한 창의·융합형 인재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예로 드는 인물이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성공한 인물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자존감을 설명할 때 꼭 예로 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자존감의 정의를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심리학자들이 자존감을 ‘인간을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마음의 힘’이라고 정의한바 있다. 자존감은 말 그대로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의 힘으로,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이고, 인생의 버팀목이고, 나를 나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이며, 자기비판을 넘어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마음의 힘이라고 이야기한다.
또 인생의 성공과 자녀를 행복한 어른으로 키우는 성공열쇠가 바로 자존감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찌 보면 구구절절 좋은 이야기이고 육아에 있어서 도움이 될 만한 실질적인 조언들도 나름 유익한 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최근까지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다. 때때로 이것을 정의하고 인본주의적 관점에서의 자존감과의 차이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면서 어느새 나의 신앙의 모습, 혹은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언뜻 보면 자존감의 정의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행복한 인간, 쓸모 있는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홍익인간의 요건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원동력이 된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가 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도 결국은 소통과 화합, 창의적 사고, 과학과 예술영역을 아울러 인간 세상을 좀 더 안정되고 풍요롭게 만드는 리더를 키우자는 취지가 주된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21세기의 목표는 기독교의 목표와 일치하는가?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전혀 길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흑백 논리로 이야기해서 마치 기독교는 독단적, 배타적, 극단적 성향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현 세상에 초점을 두는 것인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늘 왕국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우선 인식해야 한다.
물론 성경은 현 세상에서의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 어떤 처세술보다 더 현실적이고 엄격하며 근본적인 기준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영에 속한 새로운 방식이다. 우리의 사고가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신본주의적 관점으로 전환될 때에만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본주의는 현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기독교는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왕국과 그 안에 들어갈 천국시민의 자격요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어지는 자존감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여야 성경적으로 올바른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을까?
우선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를 살펴보자.
다음 성경구절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2:20)
그리스도인이란 한마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말한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나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부터 바뀌게 되는데 세상을 사는 동안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처하는 문제해결 능력이 나 자신에게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힘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이고, 나 자신에 대한 신념은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낮고 겸손한 마음을 갖는 데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성경의 인물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감이 가장 높았던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물론 대부분이 다 그렇겠지만 특별히 다니엘을 꼽고 싶다. 그가 유다 자손이라고만 알려져 있지 누구로부터 올바른 신앙교육을 받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린 나이에 바빌론의 포로로 붙잡혀 간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삶의 매 순간을 뜨겁게 하나님을 추구하며 믿음으로 살았던 인물이다.
그럼 자녀교육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을 새롭게 정의 내린다면,
대부분의 크리스천 부모들이 겪는 갈등은 성경적인 양육과 훈육이 세상적인 교육과 매우 상치되는데서 생기는데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결국 부모의 일관된 신념, 일관 된 양육태도에서 시작되며 이를 성공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부모세대로부터 받았던 기존의 유교적 교육관이나 현대 교육철학인 실존주의 사상을 기초로 한 인간존중의 교육의 한계를 바로 알고 이것에서 벗어나 우리의 본성과 지성을 최대한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재정립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우리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삶의 매순간을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루하루 반복 실천하는 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성경적인 자녀양육에 대한 남편과 아내간의 합의, 교회와 부모간의 합의, 내지는 교사와 부모간의 합의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란, 우리가 누구인가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또한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 분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녀의 신분을 허락하셨으므로, 그 은혜에 감사하여 온전한 순종과 맑은 정신으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성화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며 올바른 존재감을 갖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16-01-19 17:42:50 | 김경민
허리는 꾸부정해 가지고 아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들어 오시는 할머니 한분이 계셨습니다 .
연세는 82세라고 하는데 더 들어 보이시는데 경상도 상주에서 오셨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아드님은 입원시키 신후
서울이 집이라 저녁에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 내일 수술을 하셔야 하므로 금식이고 간병인은 내일 수술 하신후 부터
돌보기로 했기 때문에 혼자 계시게 되었습니다 . 환자복으로 갈아 입어야 하는데 다리는 불편하고 힘들어 하셔서 입혀
들였습니다 .
귀가 잘 안들리시는지 큰 소리로 말을 해야 알아 들으셨어요 .
아이고 나는 수술 안할려고 했는데 우리 아들이 나를 강제로 대리고 왔어 ! 하시면서 돈이 많이 들겠지요 ?
하고 나한태 물어 보셨습니다 . 예! 두 무릅 수술을 다 하시니까 많이 들겠지요 ,했드니 아들이 돈을 많이 쓰게
대었다고 걱정을 하시는 검니다 . 며느리 되시는 분은 두번인가 오고는 늘 아들 혼자 오후에 찾아 오곤 했습니다 .
집이 멀어서인지 문병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 수술후에 늘 혼자 계시는데 식사는 맛 있다고 하시면서 잘 드셨어요 .
간식도 갔다 드리고 얼마나 아프셔요 하면서 자주 들여다 보았습니다 .
나를 무척 고마워 하시면서 이것 저것 물어보곤 하셨습니다 .
우리 맞은편 침대에 76세 되신 할아버지가 수족을 잘 못쓰시는데 팔을 다처서 들어 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
따님이 간병을 하러 왔는데 비위가 약해서 병원 밥은 전혀 먹지를 못하고 콜라만 마시고 있는데 뼈하고 가죽만
붙어있어 보이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분이었어요 . 자기는 강남이 집이고 남편이 대기업 중역을 맡고 있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 오후 3시쯤 되었는데 아버지 친구 되시는 분이 문병을 오셨는데 침대 난간을 붙잡고 서서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데 얼마나 다리가 아프실가 마음이 쓰였습니다 .잠간 있다가 가실려고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래동안 서계시
는 겁니다 . 할수없이 내가 쫒아가서 말씀중에 실례하겠습니다 . 자매님 그 의자를 손님앉으시게 하고 옆 침대가 비었
으니 거기 걸터 앉으면 되잕아요 , 자기도 미안한지 앉았던 동그란 의자를 손님한태 내 주면서 앉으세요 .
하는겁니다 . 그러면서 이분은 나이는 젊으셔요, 라고 변명을 하는검니다 .
그래도 그건 아니지요 ! 손님인데요 ! 따님은 옆 빈침대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30분 이상을 계시다가 가셨습니다.
앉아서 편안하게 대화를 하는것을 보니 내 마음도 편했습니다 .
자기 아버지는 중풍으로 2번이나 쓰러 지셨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치매로 몆년 아프시다가 돌아 가시고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불편하시다고 친구들이 살고 있는 동내로 가서 살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
자매님 ! 자녀는 혼자이세요 ? 했드니 3남매인데 다 외국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집에가고 자기 아들이 대학
생인데 학교 긑마치고 병원으로 올거라고 하면서 저녁 식사후 돌아갔습니다 . 그런데 이 손자가 안오는 겁니다 ,
할아버지는 손자만 올때를 애타게 기다시면서 초초해 하셨습니다 .
어르신 걱정 마세요 ! 손자가 올때까지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심부름을 해 드렸습니다.
그런대 소변을 보시겠다고 했습니다 . 아무리 환자라고 해도 나이드신 남자분이지만 혼자서는 곤란 했습니다 .
바로 옆에있는 중년 되시는 자매님을 불러서 둘이서 겨우 부추겨서 세워 드리고 소변통을 손에 들려 드리고 커탠을
가려 들었드니 겨우 소변을 보고는 미안해 하면서 그저 팍 ! 죽었으면 좋겠다고 어눌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
소변통을 화장실에다 비우고 오면서 그래도 나는 건강하니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힘이 되어 줄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사 약이 다 되었다고 간호사에게 알려주고 침대를 일으켰다 눕혔다 하면서
불편을 덜어 드릴려고 마음을 썼습니다 .
그 할아버지는 자기 어머니는 교회 권사님이셨고 자기도 교회를 다니다가 지금은 성당으로 친구들 따라 나간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손자는 늦은 밤에 왔습니다 .그후 따님이 요양병원으로 퇴원을 시키셨는데 그날 나는 집에
잠간 다니러 왔다가 갔드니 퇴원하시고 안계셔서 그 빈자리를 보노라니 쓸쓸 했습니다 .
경상도 할머니는 양쪽 무릅수술을 다 하시고 10일 만에 703호 병실로 옮겨 가셨습니다 .
703호실로 가신후에 하루 두번씩은 찾아 갔습니다 .
남편이 3일후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 이제는 기회가 몆일 안 남았으니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찾아
갔습니다 .누워 계시는 할머니 한태 할머니 ! 제가 오늘은 중요한 말씀을 드릴려고 하는데 잘 들으셔요 .
하고는 80십이 넘으셨으니 10년이나 20년을 살면 90십살이 넘고 100세가 넘는데 그때는 반드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천국 가는길과 지옥으로 가는 길이 나타나는데 할머니도 천국으로 가셔야지요 ! 제가 천국 가는 길을 가르처
드릴게요 .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죄인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
나는 죄인입니다 , 용서해 주세요.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 하고 예수님만 이 마음속에 받아들이시고 믿으시면
할머니 세상 떠나실때 천사가 할머니를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대려 가십니다 .
안 그러면 지옥 사자가 와서 끌고 가십니다 .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이 쉬지않고 타오르는 지옥으로 집어 넣습니다 .
그 지옥으로 가시면 안되지요 . 꼭 !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 드리세요 . 가까운 동내 교회로 나가세요 ,
교회는 매주 못 가셔도 예수님만 믿으시면 천국에 가심니다 . 했드니 잘 들으시는 것입니다 .
지옥 이야기를 할때는 입을 크게 벌리고 암 하면서 너무 무서워 하셨습니다 .
손을 잡아 드리고는 예수님만 믿으시면 천국에서 같이 만날수가 있어요 .
우리는 내일 모래 퇴원하게 되었어요 . 하고는 그 다음날 한번더 병실로 가고 퇴원 하는날 작별 인사를 드리고
병원을 떠나 왔습니다 .
퇴원후 3주 후에 1월 12일 검사 받으로 갔더니 그 할머니도 오신것입니다 .
참 반가웠습니다 . 그 할머니 아들 되시는 분이 반갑다고 커피를 뽑아다 주었습니다 .
가만히 보니 아드님이 효자시네요 . 어머니를 극진히 간호하시고 직장에도 빠지시고 또 오셨내요 .
했드니 예 제가 집에서 재활 치료를 잘 해 드렸습니다 . 그래서 지금 잘 걸으십니다 .하면서 흐믓해 하는 것입니다 .
어머니 모시고 교회 나가세요 .했더니 우리 어머니는 불교입니다 .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으셔야 천국에 가시지
안 그러면 큰일 남니다 . 어머니를 천국에 가시게 해야지 효자시지 꼭 예수님을 믿게 하세요 . 하면서 앉아 계시는
할머니 가슴에다 손을 대면서 이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셔야 천국에 가시지요 . 했더니 나를 처다 보는 것입니다 .
그 아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어야 하는데 하고 속으로 생각 하면서 아무쪼록 고향에 돌아 가셔서 예수님을 잘 믿으시
기를 바라며 생각 날때마다 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
교회 나가시다가 천주교로 가신 그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가서 잘 계실가 ?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바른 진리에 말씀을 모르시고 교회만 출석 하시다가 엉뚱한 곳으로 찾아가는 안타까운 그 분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답답 했습니다 .
목사님이 병실에 계셔서 좋다고 하시면서 이야기도 많이 하셨습니다 .구원 받는것은 쉽지만 그 길을 잘 알지 못하면
종교 따라 이리 저리 기웃 거리고 해매고 다니게 된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다시 한번 느껴 보았습니다 .
다음은 충청도 논산에서 67세 되시는 아주머니 되시는 분에게 복음을 전한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
2016-01-19 11:11:06 | 윤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