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2097개
안녕하세요?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저는 여름에 더워서 운동도 못하고 책도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날씨가 좋으니까 이런 것들을 해서 영과 혼과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모두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어제는 ‘취약함의 파워’에 대해 설교하였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을 바로 알고 일단 다시 태어나서 성장하는 모든 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지난주 학생 스피치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 교회의 힘입니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교회의 미래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교회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그 일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음 주에는 오후에 교회 친교 야유회가 송도 캠핑장에서 있습니다. 축구를 위해 잔디 구장도 빌렸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이용한 시절 중에서 가장 좋은 시설인 것 같습니다. 축구하실 분들은 꼭 축구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합니다. 가능하면 운동복/운동화를 모두 가져오시고 캠핑 장비 중에서 랜턴 등이 있는 분들도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6시 이후로는 음악회가 있습니다.   아이들을 둔 부모님들께서는 자기 아이들 간식을 준비해 달라고 하니 이 점 부탁드립니다.   이번 주는 이사야서 1-22장을 읽기 바랍니다.   어제 이야기했듯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킹제임스 성경을 구비하고 외우고 교리를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 알고 그분의 인격을 닮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 지식이 아무리 많더라도 혹은 정의를 부르짖더라도 지저분한 인격의 소유자와는 멀리 해야 합니다. 언행이 곧 그 사람입니다.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고전15:33).   이런 차원에서 성경 읽기보다, 교회 일보다 남편과 아내와 자식에게 더 관심을 쏟는 한 주간이 되기 바랍니다. 어떤 자매님의 말처럼 남편이 일주일에 아내를 1시간만 연구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관계가 될 것입니다.   가정이 행복한 모든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진실한 것과 무엇이든지 정직한 것과 무엇이든지 의로운 것과 무엇이든지 순수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좋은 평판이 있는 것과 덕이 되는 것과 칭찬이 되는 것이 있거든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라(빌4:8).
2016-08-29 10:28:21 | 관리자
좋은 동영상 두편 잘 봤습니다! 나의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돕는 가장 큰 '힘'이 된다는 '역설적 진리'야 말로 기독교의 핵심 사상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매우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의 취약함(죄)과 하나님의 취약함(사랑)이 결국 하나의 고리에 연결돼 있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샬롬~!
2016-08-26 16:24:33 | 한원규
안녕하세요?   오늘은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이 폭발시킨 ‘취약함의 파워’라는 주제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하려 합니다. 브라운은 휴스턴 대학교 연구 교수이며 임상 심리학자입니다.   브라운은 4-5년 전에 유명한 TED talk에서 ‘취약함의 파워’와 수치심에 귀 기울이기 등의 강연을 하면서 스타덤에 오른 인물입니다(아마 2500만 명 이상이 강의를 들었음).   두 개의 유명한 강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취약하다는 것의 힘 _ TED 강의 브레네 브라운원 제목: The Power of Vulnerability | Brene Brown | TED Talks https://youtu.be/H7Wd_6mFrjk 2.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_ TED 강의 브레네 브라운 원 제목: Brené Brown: Listening to shame https://youtu.be/m6P66ppnnqw   아마도 그녀는 제가 보기에 불신자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녀가 주장하는 ‘취약함과 수치심의 파워’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주제이므로 인본주의 적인 요소를 제거하면 핵심은 기독교와 거의 같습니다.   브라운은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자신의 취약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통점 1. 이런 사람들은 불완전할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브라운은 용기(courage)의 라틴어 어원이 심장을 뜻하는 'cor'이며 이것은 곧 '내가 누구인지 진심을 다해 말할 수 있다'는 뜻임을 보여 줍니다. 즉 자기의 취약함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공통점 2. 그 결과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을 버리고 솔직하고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연결을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공통점 3. 이들은 자신의 취약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포용합니다. 그들은 '나를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나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반대로 취약함을 숨기려고 하는 사람들은 현실의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래서 늘 불안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속마음의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가 없습니다.   <마음 가면>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765224 이 책에서 그녀는 다음의 예를 듭니다.   --------- 비평하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   1910년 4월 23일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교에서 루스벨트는 경기장의 투사로 불리는 연설을 합니다. 그것의 한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강한 선수가 실수했다고 지적하거나 어떤 선수가 이러저러하게 하면 더 낫겠다고 훈수나 두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고, 진짜 중요한 사람은 경기장에 서 있는 투사이며그는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잘될 경우 큰 성취감을 맛보고최악의 경우라 해도 그는 용기 있는 실패를 하는 것이다. 취약함을 받아들이고 참여하는 의지가 강할수록 우리의 용기는 커지고 목표는 선명해지게 되는 반면취약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하면 할수록 두려움은 커지고 관계는 끊어지게 된다. 우리가 완벽, 무결점 상태가 될 때까지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린다면 어떻게 될까? ---------   사도 바울은 자신의 취약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연약한 것들과 치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하노니 내가 약할 그때에 내가 강하니라.   원래 그리스도인은 취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필요로 하고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한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너희가 보거니와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29 이것은 어떤 육체도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31 이것은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할지니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교회에서는 본인의 취약함을 드러내야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수치를 다 드러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것을 꼭 걸어 잠그고는 다른 사람과 교제하려고 하면 교제가 안 되지요.   하나님 앞에서 내 취약함을 내놓을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 취약함의 절정은 바로 내가 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비참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의 취약함이 나타날 때마다 주님께 들고 가서 구할 때에 성화의 과정이 이루어집니다.   사실 하나님도 한 가지 측면에서 지극히 취약하십니다.그분의 취약함은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무한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실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는 일에 취약하십니다.   브라운이 인본주의자라 그녀의 모든 말을 들을 필요는 없지만 심리학자로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곧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분도 자신의 취약함을 보고 주님께 돌아서서 구원받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사랑침례교회
2016-08-25 15:23:36 | 관리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신 글을 보며 형제님의 분별력과 사랑교회에 대한 관찰력에 감탄이 되네요. 진리를 사모하는 열정과 동시에 바른 신약교회의 모델을 지향하고 있는 사랑교회와 정목사님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 감사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동안 목사님의 설교와 교회의 홈피를 통해 사랑교회의 문화와 철학을 꿰뚫고 계시니 든든한 지원자로 여겨져 힘이 나네요. 종종 소식을 전해주시면 저희 지체들에게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08-25 00:15:20 | 김상희
어쩜 이렇게 속속들이 잘 보셨는지 놀랍네요. 어쩌면 사랑교회에 있으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일 수도 있는데 한 번도 뵙지 못한 분이 정말 잘 파악하셨어요. 특별히 저희 교회는 직분에 의한 차별이 없어서 성도 간의 계급이 없다는 것. 그리고 기득권 세력이 없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저희가 신약교회의 명분을 유지한다고 믿지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성도들은 그야말로 남의 이목이나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열심이 아니고, 주님을 향한 순수한 순종과 열망으로 교회의 일을 담당해 주는 분들입니다. 이들로 인해 교회가 유지되고 있다고 봅니다. 설교 속에서 우리 교회의 철학과 가치를 잘 간파하시고 또 이렇게 격려의 글을 올려주셔서 대단히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2016-08-24 22:33:31 | 오혜미
뉴욕에서 목사님의 대학원 제자를 만나 들었던 내용과 사랑침례교회 홈피와 킵바이블 사이트를 둘러보신 소감 등을 관찰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대단하십니다. 멀리 미국에서 보내주신 사려 깊고 진심 어린 메일 한 통이 타는 목마름으로 갈증에 허덕이듯 고단하고 지친 성도들에게 차가운 생수 한 그릇마냥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더불어 항상 묵묵히 미디어 선교를 위해 뒷문을 든든히 지켜주시는 최상기 형제님의 헌신에도 감사드립니다.
2016-08-24 11:28:03 | 김대용
사랑침례교회와 정동수 목사에 대한 과분한 평가   안녕하세요?   어제 저는 미국에서 한 분이 보내 주신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미디어 선교의 발전을 응원하며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mission&write_id=269   그런데 그분께서 미디어 자료 배송에 감사하다고 하시며 최상기 형제님에게 저와 교회에 대한 일종의 관전평을 적어 주셨습니다. 사실 이 정도를 쓰려면 저와 저희 교회를 많이 연구해야 하는데 그동안 많은 시간을 들인 것 같습니다.   어느 면에서 저희 교회 철학과 문화를 연구하신 것이라 다른 분들과도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올립니다. 저에 대한 평가는 과장된 부분이 있으므로 그저 그런 부분이 있었구나 하고 넘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파란색은 저의 코멘트임).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에 대해 좋게 말할 때에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대언자들에게 그렇게 행하였느니라(눅626).   사이버 공간에서는 저나 교회에 대해 악평과 비방이 더러 있습니다.     위 말씀과 비교할 때 그런 일이 오히려 안위가 됩니다.   제 삶이 끝나는 날까지 바른 것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해 경책(警責)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 안녕하세요?   최상기 형제님, DHL에서 자료 송부했다고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내일 정도 도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사님께서 아래와 같이 게시판에 올려 주신 것도 보았습니다. 정말 정확하고, 사려 깊으신 부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도 듣고, 홈페이지도 보고, 제자 분과 대화도 하면서 간접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참고로 저는 그 제자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너무 느낀 점이 많아서 그냥 넘어가기 어려워서 외람되지만 나름 느낀 부분을 적습니다.   - 진리의 값진 자료를 투명하게 게시판에 무료로 공유하시는 모습   - 교회 구입에 대한 투명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공유해 주시고, 성도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풀링(Pooling)이라는 합리적인 모습으로 기존 방식과 다르게 진행하시는 모습   - 교회의 헌금이 모두 감사헌금으로, 따로 헌금 시간 없이 하는 모습(기존 교회는 정말 많은 명목이 있습니다.)   - 교회에 직분을 모두 형제, 자매로 하신 모습(기존 교회는 직분을 가지고 목사님이 힘을 갖거나, 성도들이 그것을 받기 위해서 믿음을 넘어 정치의 선까지 다다르는 모습, 직분 없으면 실망하는 모습, 본질을 넘어서는 모습)   - 꼭 신학교를 나와야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반드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고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 시대에는 소명 목사보다는 월급 목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 늘 저와 여러분이라는 말씀으로 항상 본인도 설교의 대상으로 삼아주시는 겸손한 모습.  (기존 교회는 대부분 나는 아니고 당신이라는 표현이 너무 많습니다. 나는 잘하는 데 너희가 문제라는 식의 표현들...)   - 정의, 공의가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의 문제에서 하나님은 거룩함과 정의와 공의가 먼저인 것을 알려주심(교회는 불완전한 사람들의 모임이라서 자칫 무조건 사랑으로만 덮어주게 되면 질서가 깨지고 공의가 없어지게 됨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가 먼저이시라는 것을 통해서 교회 내에 잘못된 것은 질서를 위해서 고쳐야 된다고 정확하게 짚어주시는 모습)   - 자라나는 아이들의 발표력, 리더십을 키워주기 위해서 스피치를 하도록 독려하시는 모습   - 동성애자 (퀴어) 축제에 참석하여, 비성경적인 가치관이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성도들과 함께 현장에서 느끼고 알아나가도록 하시는 실천적인 모습   - 교회를 넘어 세상 학문의 제자들에게도 제대로 본을 보이셔서 그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는, 잘 훈련을 받아서, 회사에서 더 이상 적응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이 부분은 제자들의 과분한 평임).   - 가르치실 때도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논리적으로 해서, 같은 과목 다른 교수님의 강의와는 차별화되셨다는 부분.   - 에피소드지만, 냉동기 관련 잘못된 부분을 소신에 입각해서 잘못을 매스컴에 지적해 주셔서 당시에는 해당 회사로 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옳은 것에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   - 항상 돈 문제에 있어서는 아주 투명하고 깔끔하게 운영하셨다는 모습(대학원 학생들이 노력한 것은 반드시 피드백을 주고, 나누시고, 필요한 경비는 투명하게 쓰도록 원칙을 세워 놓고 하셨다는 모습), 60여 명의 석박사를 배출하였고 대부분 이들은 많은 사람의 선망의 대상인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더 인자하게 대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정확하게는 지도하였으나 다정다감하지 못한 것이 반성이 됩니다. 아마 이 점은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의 성품의 문제이니 용서를 구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부분을 알게 되고 배우게 되고 느끼게 되면서, 이런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은 얼마나 제대로 신앙생활 하고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지금 남아 있는 분들보다 나가신 분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행복의 척도가 우선인지는 저도 자신하지 못합니다.   홈페이지에 있는 가족사진을 보면서 세 딸이 정말 제대로 키워졌겠구나 하는 마음과, 학생들의 사진을 보면서 제대로 배워 나가고 있겠구나 하는 마음, 성도들의 교제의 모습을 보면서, 평안하고 질서가 있어 보여서 많은 은혜가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쩌다가 회사 생활보다도 교회 생활이 더 어렵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목사님!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 공감과 배움을 이루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주번역하시고, 연세가 60에 가까우신 데도 열정이 많으신 것을 볼 때 많은 배움이 있습니다.   시대를 조금 앞서가셔서 때로는 이단이라는 둥, 여러 가지 도전을 받으시지만, 대한민국도 이제는 수준이 높아져서 미신처럼 믿는 수준이 아닌, 제대로 성경을 알고 이해하면서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특별한 전도가 없어도 미디어 선교로도 사람들이 기존교회의 식상함에 모이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 번 많은 자료 보내주심을 감사드리며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착불로 배송 비용을 지불하게 되면 받을 때 내도록 하면 될 것 같고, 혹시 그렇지 않고 보내실 때 비용을 지불하셨으면 계좌번호 알려주시면 송금토록 하겠습니다.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늘 평안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김OO 드림   ------------ 최상기 형제님의 답   김OO 선생님, 감사의 답신을 드립니다.   이처럼 저희 교회의 문화를 소상하게 잘 파악하시고 진지한 성원을 해 주신 데 대해 경이감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에게 지나온 발자취를 항상 돌아보며 거룩하신 주님을 더욱 두려워하는 신실한 모임으로 성장하라는 엄중한 채찍의 격려로 받아들이면서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금번에 목사님께서 선생님의 메일을 전달받으시고 자료 배송 건에 직접 관여하셨습니다.   지인을 통해 중계 전달하는 건 시간의 지연이나 중복 운반 취급과정의 훼손 등 문제들이 있으니 배달 비용은 선생님께 부탁드리는 선에서 직접 항공편으로 배송토록 독려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벌써 DHL에서 자료를 송부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으시고 내일쯤은 받아보실 것 같다는 기대의 답장을 주셔서 저희에겐 안도의 보람이 되었습니다.   이번 선생님의 귀한 답신의 메시지 역시 목사님께 보고 드리고 기쁨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김 선생님, 그럼 자료를 받으신 다음에 소식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의 은혜가 항상 충만하시길 원합니다.   샬롬   최상기 형제 드림
2016-08-24 10:31:3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역사는 반복되며 흘러가는데 사람들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이룬 이후 71년이 지나갔습니다. 71년은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어느 면에서는 짧은 시간입니다.   우리가 역사의 진실을 가르치지 않아 현재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고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 대통령인 줄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나라가 태어난 생일도 국민이 모르면 엄청나게 불행한 일입니다.   저는 반공 포로의 아들로서 이 위대한 한국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내 아이들과 이 땅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로 만드는 일을 하고 갈 것입니다.   성경과 마찬가지로 역사도 있는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의 <국회 속기록 제1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임시의장 이승만 박사: “대한민국 독립 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사람의 힘만으로 된 것이라고 우리는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기도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의하십니까?”(동의와 제청)   이승만 박사: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윤영 의원(감신, 목사 1917년)이 나올 때 일동 기립했다.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복을 내리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셔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셨으며 세계인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써 역사적인 환희의 날이 우리에게 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드러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직까지 남북이 둘로 갈린 이 민족의 고통과 수치를 씻어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민생의 도탄이 오래 갈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만 확대될 것이오니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속히 이 땅에 임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 이제는 남북의 통일을 주시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1   1948년 8월 15일 초대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취임식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하나님과 동포 앞에서 대통령 직무를 다하기로 일층 결심한다”고 맹세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건국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승만의 취임사 연설은 세기의 명연설로 손꼽힐 만큼 뛰어난 화술과 문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연설문은 줄곧 민주주의의 완벽한 실현과 정부구성의 조화, 그리고 평화적 남북통일을 주장하였으며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로의 길을 위해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국민의 화합과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는 문장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내 집을 내가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으면 필경은 남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과거 40년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의로운 자를 옹호하고 불의(不義)한 자를 물리쳐서 의(義)가 서고 사(邪: 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것)가 물러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백성이 주장이므로 민중이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을 명백히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건국 역사입니다.   저는 결코 대한민국이 기독교 국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의 모든 행적을 다 잘했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대한민국을 세운 위인들이 기독교 정신으로 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다수의 국민들은 모른다 해도,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기독교 정신 위에서 올바른 국가관을 가지고 아이들을 바르게 양육하고 불신자들을 주님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느 분이 참으로 귀중한 말을 하였습니다.   “역사란 좀 더 살갑게 정의하자면 앞선 세대의 삶의 발자취이며, 현대사는 부모나 조부모의 삶의 궤적이라 할 수 있다. …즉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자식(후속 세대)이 부모(앞선 세대)를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역사를 아이들에게 심어 주지 않으면 영적으로 패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기 24장(마지막 장)의 마지막 부분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모든 날 동안과 여호수아보다 더 오래 산 장로들 곧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바 그분의 모든 일을 안 자들이 사는 모든 날 동안 {주}를 섬겼더라(수24:31).   그 결과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기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모든 날 동안과 여호수아보다 더 오래 산 장로들 곧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그분의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모든 날 동안 {주}를 섬겼더라. 10 그 온 세대도 자기 조상들에게로 거두어지고 그들 뒤에 다른 세대가 일어났으나 이들은 {주}를 알지 못하였으며 또한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도 알지 못하였더라.  11 ¶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 이집트 땅에서 자기 조상들을 데리고 나오신 {주}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 곧 자기들 사방에 있던 백성의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에게 절하여 {주}의 분노를 일으켰더라(삿2:7-12).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내 아이들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하나님 두려워하는 것을 알려주시기 간절히 원합니다. 평화통일을 이루어 주시기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사랑침례교회
2016-08-18 11:31:19 | 관리자
안녕하세요?   본 교회 사이트에는 조직 신학 동영상과 강해 노트가 들어 있습니다.   조직신학(組織神學)은 기독교에서 성경에 나타나는 중요한 주제들을 논리적 · 체계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서술하는 학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리를 무시하지만 실제로 기독교는 교리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서 교리(doctrine)라는 말은 단수로 51회(구6, 신45), 복수로 5회(신약에만), 총 56회 나옵니다.   1. 교리의 정의: 어떤 진리에 대한 사실들을 체계적으로 모으고 제시하는 것2. 교리는 반드시 빛과 어둠을, 참과 거짓을, 생명과 사망을 나눈다. 교리가 없이는 죄인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다.3. 교리와 영혼 구원은 양립한다. 사도 바울을 보라. 바른 교리를 가져야 바르게 구원한다.4. 교리를 알면 사람이 열정에 차게 된다(눅24:32; 계1:3; 22:7).5. 십계명의 첫째 명령만 알면 무슨 소용이 있나? 더 알아야 한다.6. 성령님의 열매는 뿌리가 있어야 나온다. 그 뿌리는 진리를 아는 것 즉 교리이다.   성도들을 위한 조직 신학 교리에는 구체적으로 다음이 포함됩니다.   1. 성경2. 삼위일체 하나님3. 아버지 하나님4. 그리스도5. 성령님6. 사탄과 천사들7. 사람8. 죄9. 구원10. 교회11. 예언(종말론)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교리에 달려 있습니다(특히 구원에 관한 교리).성경적으로 교리가 바른 사람이 가장 행복하며 안정된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성경적으로 교리가 바른 목사가 가장 좋은 목회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른 성경, 바른 교리, 바른 구원, 바른 가정, 바른 교회, 바른 사회!   저는 구체적으로 약 80회에 걸쳐 조직 신학 강해를 하였습니다. 교재로는 세계 최고 석학인 리버티 대학의 윌밍턴 박사(Dr. Harold Willminton)의 책을 사용하였습니다.  1. Willmington's Complete Guide to Bible Knowledge: Introduction to Theology, Dr. Harold L. Willmington, Tyndale House이며 아마존에서 구매할 수 있음.   https://www.amazon.com/Willmingtons-Complete-Guide-Bible-Knowledge/dp/084238166X/ref=sr_1_18?ie=UTF8&qid=1471483890&sr=8-18&keywords=Willmington%27s+bible   윌밍턴 박사님은 댈러스 신학교, 무디 성경연구소, 애쉬랜드 신학교,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분이 개발하고 강의한 Liberty Home Bible Institute 과정은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등록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이분은 미국의 유명한 리버티 대학의 학장을 지내셨고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신학자입니다. 리버티 대학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제리 폴엘(Jerry Falwell)이라는 유명한 근본주의 목사님이 총장으로 있으면서 미국의 근본주의를 이끌던 학교 중 하나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전적으로 킹제임스 성경만 사용하였습니다(지금은 아들이 총장을 하면서 근본주의 측면이 많이 희석되었음).   그렇게 학교가 왕성하게 발전하던 시기에 그 학교의 대표적인 신학자가 바로 윌밍턴 박사님이었습니다.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리버티 대학은 신학교 이름을 아예 ‘윌밍턴 성경 학교’(Willmington School of the Bible)로 바꾸었습니다.   http://www.liberty.edu/academics/religion/willmingtonschoolofthebible/   한국에서는 남포 교회의 박영선 목사님, <새 교회사>의 저자이신 정수영 목사님 등이 리버티 대학에서 수학하셨습니다. 이런 분들이 이 학교에서 조직 신학 교재로 쓴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제가 강의하는 조직 신학은 전적으로 이 책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현재 댈러스, 밥존스, 펜사콜라 크리스천, 무디, 바이올라, 위튼, 남침례 신학대학원 등이 가르치는 것과 유사합니다.   아쉽게도 이 책은 현재 절판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모든 내용은 <Willmington's Guide to the Bible>이라는 책에 다 담겨 있습니다. 1248쪽의 이 책은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성경 설명 핸드북입니다.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 그저 놀라기만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성경을 해석해 놓을 수 있을까!”   2. Willmington's Guide to the Bible https://www.amazon.com/Willmingtons-Guide-Bible-Harold-Willmington/dp/1414329717/ref=pd_sim_14_2?ie=UTF8&dpID=51nvongSCEL&dpSrc=sims&preST=_AC_UL160_SR124%2C160_&psc=1&refRID=9GQYXATQNRJV22HQ9PGR   우리나라에는 <윌밍턴 본문중심 성경연구>라는 책이 나와 있습니다.   http://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03427#inf_detail   이런 좋은 책들을 통해 성경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고 선포하는 귀한 목사님들이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샬롬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2016-08-18 10:33:4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좋은 목사가 되는 것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목사가 되려면 먼저 한국식(혹은 미국식) 교회를 할 것인가, 성경적 교회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은 다 죽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다 하나님 앞에서 회계 보고를 해야 합니다.그 날 우리는 성경이라는 교과서대로 사역했는가에 대한 판단을 받을 것입니다.   장로교, 감리교 등의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안에 있는 목회자나 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장로교, 감리교 등이 가장 먼저 들어와서 그것과 다른 형태로 교회를 하지 않으면 목회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장로교, 감리교 이외의 형태는 제대로 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람을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성경대로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다음 통계는 미국의 기독교인(천주교 포함) 분포를 보여 줍니다.   http://undergod.procon.org/view.background-resource.php?resourceID=87   1위 천주교: 5,100만 명2위 침례교: 3,400만 명 3위 무교단: 1,400만 명4위 감리교: 1,400만 명5위 루터교: 950만 명6위 장로교: 560만 명 이런 통계에서 보듯이 미국은 침례교가 가장 큽니다. 그런데 이런 통계는 미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침례교가 가장 큽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요점은 침례교가 가장 크니 침례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새벽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 등의 모임과, 통성 기도, 주여 삼창, 십일조 낸 사람 명단 공개 등 한국의 개신교식 전통과는 다른 교회를 하고 있습니다. 대개 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만 있고 세례가 아닌 침례를 주는데도 이런 곳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모인다는 사실을 보면서 눈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미국 침례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교회가 그렇습니다.   즉 한국식 교회 틀에서 벗어나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자유를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사랑침례교회도 새벽기도회와 각종 모임, 주여 삼창 등을 전혀 하지 않고, 록 음악을 동원한 찬양예배, 열린 예배 등을 전혀 하지 않으며 주일 예배와 금요 성경 공부만 합니다. 물론 세례가 아니라 침례를 주는데도 교회가 성장합니다. 성도들이 매우 기뻐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의 모든 일을 성경에 비추어 상식적으로, 또 합리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침례교회는 대개 세대주의 신학을 따라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합니다. 유명하다는 신학교들을 생각해 봅시다. 밥존스, 댈러스, 무디, 리버티, 바이올라, 남침례 신학교 등이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학교의 성경 해석은 장로교의 언약신학과는 (특히 종말론과 구약 및 복음서 해석에서) 매우 많이 다릅니다.   이제 우리는 무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믿을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인 한국 교단 신학대로 따라갈 것인가?   성경 이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근 100년 동안 획일적으로 개역성경(개역개정)만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1970년대까지 약 360년 동안 거의 100% 킹제임스 성경만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다가 NIV 등이 나오면서 지금은 60%가 NIV, NASB 등을 사용합니다.그럼에도 여전히 보수적인 교회들은 오직 킹제임스 성경만 사용합니다.   사실 킹제임스 성경만을 사용하면 이단이라는 주장은 유일무이하게 한국에서나 통용되는 논리이며 우물 안 개구리 식 발상이거나, 알면서도 다른 교단 등을 자극하려는 교묘한 심리전입니다. 물론 과거에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주장하면서 다른 데는 구원이 없다거나 다른 데는 신약 교회가 아니라는 뉘앙스의 주장을 편 단체가 있어 문제가 되고 이단 정죄를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소행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극단적인 사례를 기준으로 성경 이슈를 판단하면 안 됩니다.   성경적인 교회를 해서 훗날 주님 앞에서 회계 보고할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떤 기준으로 교회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이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양심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태어난 정상적인 성도는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식, 미국식 교회가 아니라 성경 방식의 교회를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한국식 기독교가 아니라 ‘성경식 기독교’를 선포해야 합니다.   이 일은 물론 각 사람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 기준을 정해 양심껏 하면 됩니다. 크기와 숫자로 다른 방식의 모임은 부당한 것으로 취급하는 관행과 횡포는 하루속히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기준은 성경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작아도 옳은 것이고, 성경을 벗어난 일을 하면 커도 옳지 않은 것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주 예수님께서 장차 목회자가 되고자 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경에 대한 확신을 주실 줄 믿습니다.   샬롬   패스터     
2016-08-10 13:13:50 | 관리자
안녕하세요?   무척 더운데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1. 말씀드린 대로 오늘 금요 모임은 쉽니다. 교회에서 좋은 크리스천 영화를 본다고 하니 오실 분은 식사하시고 저녁 8시까지 오시기 바랍니다.   2. 이번 주일 오후에는 공지한 대로 오후 예배 후 곧바로 <인천상륙작전> 영화를 보려고 합니다.   177명이 들어갈 수 있는데 현재 200명이 넘게 관람 신청을 해서 이번 주일은 어르신들에게 우선권을 드리려고 합니다. 신청자가 많으면 다음 주에 한 번 더 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일 오후에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지 않으니 삼삼오오 모여서 외부에서 식사/교제하시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바랍니다.   점심은 드립니다.   3. 제가 이번 주에 블로그를 개설하였습니다. 글 등을 보기 원하시면 다음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pastor-jung   4. 설교자로 제가 본받고 싶은 분 중의 한 분이 존 파이퍼 목사입니다. 목소리가 칼칼한 게 좋고 아주 논리적이면서도 열정적입니다.   보통 화를 내거나 미움을 표출하지 않지만 번영 신학을 외치는 가짜 목사들에 대해서는 극도의 분노를 표현합니다. 한번 파이퍼 목사의 이 설교를 들어보세요. 얼마나 힘이 나는지...   https://youtu.be/2KX7E9bMOC8   이것이 바른 목사의 표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올바른 목사들이 곳곳에서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5. 스마트폰을 너무 의지하면 하나님을 찾기 어렵습니다.적당히 써야지 여기의 노예가 되면 안 됩니다.그것은 탐욕이요 우상 숭배입니다.   https://youtu.be/_ba1X68EJuY   6. 지난주 오후에 제가 성도의 교제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자신의 취약함을 나눌 줄 아는 인간적인 사람이 되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브레네 브라운의 ‘취약함의 파워’ 동영상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기독교인이 아니므로 요점만 이해하기 바라며 스피치를 얼마나 잘하는지도 눈여겨보세요).   https://youtu.be/H7Wd_6mFrjk   마음을 열고 자신을 드러내야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또한 말씀을 많이 알면 부엌, 주방, 주차, 쓰레기 치우기 등 육신으로 섬기는 일도 잘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섬김의 정신입니다.   부탁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6-08-05 16:35:23 | 관리자
안녕하세요?   저는 만 32세까지 감리 교회에서 자라고 믿음 생활하였습니다. 저의 믿음을 키워 주신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감리 교회 여러 성도님들에게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러나 미국에 가서 교회의 역사와 실상을 본 뒤 지금은 확고한 침례성도(Baptist)로서 침례교회(Baptist church)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내 교회' http://blog.naver.com/pastor-jung/220779262887   침례교회와 침례성도(Baptists)http://blog.naver.com/pastor-jung/220779335373   죽음으로 지킨 진리: 침례http://blog.naver.com/pastor-jung/220779313653   성경적인 교회, 지금도 가능한가http://blog.naver.com/pastor-jung/220779268177   목회 철학http://blog.naver.com/pastor-jung/220777512532     또한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오류가 없는 성경이라고 믿으면 그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바른 교회, 바른 구원, 바른 성장을 위해 충분한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저의 믿음입니다.   이것은 과거에(또 지금 이 시간에도) 대부분의 한국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이 개역성경에 일점일획도 틀린 데가 없다고 믿는 믿음과 비슷한 믿음입니다. 내가 읽고 설교하고 강해하는 성경이 한 군데도 틀리지 않다고 믿는 것은 목사의 기본적인 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믿는다고 해서 저는 다른 사람에게 이런 믿음을 강요한 적도 없고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에는 장로교, 감리교 등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다수이고 이 교회들에서는 대개 유아세례, 세례를 주고 개역성경(개역개정)을 사용합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에게 제가 쓰는 글이 부담이 되거나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이 염려가 되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 말대로 따르지 않아도 됩니다.다만 믿음의 확신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제 말 중에 불편한 부분은 버리시고 맞는 부분은 취하셔서 목회나 성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만 미국 및 한국의 독립침례교회 대부분 목사님들이 저와 유사한 믿음(침례, 킹제임스 성경 등)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근본적인 독립침례교회들이 전체 침례교회의 15-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오니 여러분의 교회나 교단의 믿음이 저나 독립침례교회의 믿음과 어떤 부분에서 다르다고 해서 저희를 뿔 달린 이단 등으로 오해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제가 가르치는 조직신학 교리는 미국의 근본적/복음적인 신학교(댈러스, 남침례, 밥존스, 펜사콜라 크리스천, 탈봇, 무디 등)에서 가르치는 것과 거의 동일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이슈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취사선택하면 됩니다.   저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으며 그 무오한 성경이 이 땅에 있다고 믿을 뿐입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2016-08-04 11:42:33 | 관리자
침례인가, 세례인가?   (*) 밑에 글이 있으니 참조하세요.   샬롬   패스터   01 죽음으로 지킨 진리 침례       02 침례와 세례의 차이               03               04       05       06     침례인가, 세례인가?   ●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세례를 주고 대부분의 미국 교회는 침례를 줍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침례와 세례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그저 대다수의 의견을 따라 행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침례냐 세례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천주교의 영향으로 기존의 한글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침례의 참된 의미가 가려졌으며 심지어 성경 구절 자체가 삭제되어 진리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디 수많은 성도들이 목숨을 바쳐 가며 주 예수님의 진리인 침례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려 순교한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 무엇을 주저하십니까? 사람과 전통을 따르시렵니까? 엘리야같이 하나님을 따르시렵니까? 주 예수님의 명령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 곧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제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성경대로 바르게 행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가 나의 친구니라(요15:14). 한글 개역(개정)성경에서 ‘세례’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밥티조’(baptizo, 스트롱 번호 907), ‘밥티스마’(baptisma, 908번), 그리고 ‘밥티스테스’(Baptistes, 910번) 등이다. 이 단어들은 모두 그리스어 ‘밥토’(bapto, 911번)에서 나왔으며 신약성경에 총 115회 사용되었는데 용례별로 살펴보면 명사 ‘밥티스마’가 23회, 인물을 가리키는 명사 ‘밥티스테스’가 15회 그리고 동사 ‘밥티조’가 77회 쓰였다. 한편 개역(개정)성경과는 달리 「바인의 신약성경단어사전」,  「국제표준성경백과사전」, 「엉거의 성경사전」, 「스트롱의 용어색인」 등 기독교계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참고문헌들과 신학적 편견 없이 영어 단어 자체의 뜻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옥스퍼드 영어사전」 등의 세속 문헌들은 한결같이 이 단어들의 바른 의미가 ‘물을 뿌리는 세례’(sprinkling)가 아니라 ‘물속에 담그는 침례’(immersion)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처럼 어원 자체의 의미가 너무나 분명한 이 단어가 어떻게 우리나라에서는 세례로 번역되어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성경대로 침례를 행하지 않고 세례를 행하면서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뜻을 위배하게 된 것일까?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유독 중국, 일본, 한국 성경에만 이 단어들이 세례로 번역되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참된 의미를 전혀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말 성경에서 침례가 세례로 바뀐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천주교가 기독교보다 먼저 진출한 것을 들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세례를 주는 교회가 전체 교회의 70% 정도를 차지하므로 다수결의 논리를 따라 세례가 옳고 침례는 그르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은 결코 한국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다른 민족들의 하나님도 되신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침례를 주는 교회가 전체 교회의 70%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선 침례가 맞고 세례는 틀릴까? 과연 하나님께서 다수결의 논리에 따라 다른 판결을 내리실까? 침례는 중요한 성경의 교리일 뿐 아니라 성경 본문의 전달 과정에 마귀가 개입한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므로 성경에 근거해 바르게 침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대로 행하기 원하는 성도들은 이 문제 역시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에서 성도들의 최종 권위가 되는 성경으로 돌아가 그 기준에 기꺼이 순종해야 할 것이다. 성경의 침례   침례를 주려면 몸을 완전히 잠글 만큼의 많은 물이 필요하지만 세례를 주는 데는 많은 물이 필요 없다. ●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이는 거기에 많은 물이 있었기 때문이더라(요3:23, 모든 성경 구절은 킹제임스 흠정역에서 발췌함). 침례를 받으려면 많은 물 있는 곳으로 직접 가야 하지만 세례를 받으려면 물을 가져와도 된다. ● 그들이 계속해서 길을 가다가 어떤 물에 이르매(행8:36) 침례를 받으려면 직접 ‘물속으로’(into the water) 내려가야 하지만 세례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속으로 내려가니 그가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행8:38). 침례는 ‘강 속에서’(in Jordan) 받으나 세례는 그렇지 않다. ● [그들이] 자기 죄들을 자백하며 요르단 속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마3:6). 침례를 받은 뒤에는 ‘물속에서’(out of the water) 나와야 하지만 세례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 [침례 이후에] 그들이 물속에서 나와 올라올 때에(행8:39) 성경은 한결같이 침례가 ‘물속에 잠기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불 침례와 성령 침례 역시 ‘잠기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 참으로 나[침례자 요한]는 회개에 이르도록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그분[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 곧 손에 키를 들고 자신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케 하사 자신의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되 껍질은 끌 수 없는 불로 태우시리라(마3:11-12). 이 구절을 그릇되게 해석하여 성령 침례가 곧 불 침례이므로 뜨거운 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침례자 요한은 이 구절을 결코 그런 의미로 말하지 않았다. 문맥과 함께 이 구절을 읽어 보면 성령 침례를 받는 자는 예수님의 곳간에 즉 천국에 들어가지만 불 침례를 받는 자는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들어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구절에서 침례 즉 ‘몸 전체가 잠기는 것’과 세례 즉 ‘이마에 뿌리는 것’이 어떤 차이를 가져올까? 성령 세례를 받아 이마에만 성령님이 계시면 어떻게 될까? 꺼지지 않는 지옥 불 속에서 과연 이마에만 불이 붙을까? 성경은 분명하게 침례라는 단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온몸이 물속에, 성령님 안에, 불 속에 잠기는 것’임을 보여 준다. 침례의 의미   그리스도인의 침례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의 죽음, 매장,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면서 특별히 성도들도 예수님과 똑같이 죽었다가 부활한 자들임을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규례이다.   세례에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묻혔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 즉 사망과 매장과 부활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 너희가 침례 안에서 그분과 함께 묻혔고…침례 안에서 또한 그분과 함께 일어났느니라(골2:12). 세례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매장과 부활이 상징적으로, 시청각적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가 다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것 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롬6:3-4). 세례에서는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우리가 그리스도로 새로이 옷 입어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는다는 진리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 너희 중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 침례의 대상   어떤 이들은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침례 중생’ 교리를 믿고 가르친다. 특히 유아세례를 주는 천주교에서는 눈에 보이는 이 의식을 통해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침례 중생’을 지지하지 않으며 다만 구원받은 사람들이 침례를 통해 자기의 다시 태어남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천사들, 마귀와 마귀의 천사들 및 사람들 앞에서 증거로 보인다고 말한다. 즉 믿고 다시 태어난 뒤에 침례를 받는 것이지 침례를 받아 그로 인해 다시 태어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행8:12).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과정을 보여 주며 이 과정에서 크리스천 교회가 어떤 일을 실행했는지 보여 준다. 사도행전 8장 이전에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사도 베드로도 10장에 가서야 비로소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도행전 8장에는 스데반 사건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아 예루살렘을 떠나게 되고 이때 처음으로 빌립이 이방인인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주는 장면이 자세히 나온다(26-40절).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장면에서 개역(개정)성경은 이상하게 37절을 ‘없음’으로 삭제하였다. 원래 이 구절이 없었다면 그다음 구절들이 한 절씩 앞으로 올라가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누군가가 자기의 교리나 신학을 세우기 위해 고의로 이 구절을 삭제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이 구절은 도대체 무엇인가? 36절에서 내시는 “보라, 여기에 물이 있으니 무엇이 내가 침례 받는 것을 방해하리요?”라고 물었으며 이에 대한 답이 37절에 나오고 내시는 그 답에 따라 어떤 일을 행한다. ●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니라(행8:37). 이 부분에서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만이 침례를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해 친히 37절을 기록하셨다. 즉 복음을 듣고 올바르게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만이 침례를 받을 수 있다. 이런 명확한 근거로 인해 초대 교회에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침례를 받아 지역 교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교도들의 믿음과 연합한 천주교가 생겨났다. 중세 암흑시대를 주도한 천주교에서는 모든 사람을 자기들의 체제 하에 가두기 위해 유아세례라는 비성경적 관행을 도입하여 믿음 고백을 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도 세례를 주고는 어려서부터 천주교인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행8:37의 말씀이 이런 비성경적 관행에 큰 거침돌이 되었기에 그들은 과감히 성경 본문에서 이 구절을 삭제했다. 그 결과 개역(개정)성경,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NIV, NASB, Message 등 천주교의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에 근거한 역본들에서는 이 중요한 구절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바른 본문에서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은 이 구절을 잘 보존하여 천주교의 유아세례 교리가 허구임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다. 이 구절이 없으면 앞 뒤 문맥이 통하겠는가? 침례의 시기   천주교에서는 어른들에게 세례를 주기 전에 교리문답서 공부를 위한 학습 기간을 두는 전통을 세웠으며 이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세례를 준다. 또한 천주교인들은 세례가 ‘은혜를 가져다주는 7대 성사’ 중 하나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침례가 은혜를 가져다주는 성사가 아닐뿐더러 구원 또는 은혜도 가져다주지 못함을 분명히 보여 준다(엡2:8-9). 성경은 이 같은 천주교의 관행과는 달리 누구든지 믿으면 곧바로 침례를 주라고 명령한다. 그래서 에티오피아 내시는 믿음 고백과 함께 즉시 침례를 받았고 사도행전 16장의 자주색 옷감장수 루디아도 믿는 즉시 침례를 받았으며(13-14절) 같은 장에 나오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 역시 믿은 즉시 침례를 받았다. ● 그 밤 바로 그 시각에 그가 그들을 데려다가 채찍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자기의 온 가족이 즉시 침례를 받은 뒤에(행16:33) 침례의 방법   위에서 보았듯이 어떤 사람은 요르단 강에서, 어떤 사람은 광야의 오아시스에서, 어떤 사람은 집에서 침례를 받았다. 이것은 곧 몸을 담글 수 있는 곳이면 강이든 호수든 바다든 침례탕이든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침례가 교회의 회원권과 관련이 있으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역 교회에서 침례를 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신자라면 누구나 침례를 줄 수 있으나 지역 교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목사나 혹은 교회에서 정한 성도가 침례를 주는 것이 합당하다. 침례를 행할 때 침례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은 편한 옷을 입은 채 물속에 들어가고 침례를 주는 사람은 먼저 침례를 받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간단하게라도 믿음의 고백을 할 것을 요청한다. 침례를 받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면 침례를 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침례를 준다. “○○○ 형제/자매님의 믿음 고백과 우리 주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제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줍니다.” 이렇게 선포한 뒤에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같이 죽었다가”(In the likeness of His death)라고 말하면서 침례 받는 사람을 뒤로 눕혀 물속에 잠근 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같이 살아났습니다.”(In the likeness of His resurrection)라고 말하면서 그를 물속에서 들어 올린다. 이렇게 해서 이 형제/자매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매장되었고 새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음이 상징적으로 드러나게 되며 이로써 복음의 진수가 시청각적으로 모두에게 증언된다. 침례는 명령이다!   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늘 생각하며 산다. 그러면 과연 누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 내 명령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14:21) 예수님의 명령들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침례이다.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마28:19) 주 예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불순종의 죄이다. ●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곧 그에게는 그것이 죄가 되느니라(약4:17). 많은 분들이 침례를 받으면 침례교인이 되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침례를 받으면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실천한 좋은 크리스천이 된다. 중세 암흑시대의 절정기에 종교재판을 통해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믿음을 지키다가 죽음을 맞게 되었다. 당시 천주교 사제는 종교재판소에 끌려온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물로 뿌리는 유아세례가 맞는가, 아니면 물속에 잠기는 침례가 맞는가?” 사제의 이 질문에 “물속에 잠기는 침례가 맞는다.”라고 대답한 이들은 화형을 당하거나 손을 뒤로 묶인 채 물속에 던져져서 수장되었다. 이렇듯 진리를 지키려고 고난을 받은 믿음의 선조들로 인해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까지 바른 성경, 바른 진리가 전해지게 되었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의 수를 따라 전통대로 세례를 고집하겠는가? 아니면 성경대로 침례에 순종하겠는가? 하나님 앞에서 세례는 무효임을 깨닫기 바란다. 필자 역시 전통대로 세례를 받았으나 후에 성경을 통해 이런 진리를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 침례를 받았다. 잘못 세례를 받았으면 다시 받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행19:1-5). 이처럼 귀중한 침례의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좋은 크리스천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길이다.  ●사랑침례교회는 성경에 따라 구원받고 바르게 살기 원하는 모든 분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주소 :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논고개로 77 에코타워빌딩 11층전화 : (032) 664-1611웹사이트 : www.cbck.org           www.KeepBible.com
2016-08-04 09:31:13 | 관리자
참 이들이 큰일을 이룬 데는 이들의 철학에 공감하고 자기들의 삶을 그들과 공유한 동역자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리더와 함께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하지요. 이런 아름다운 섬김의 공동 사역이 우리 교회에도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7-29 09:55:58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난 5월에 한 학생이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제게 <Builders of the dream>이라는 책을 읽으라고 주었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면 <꿈을 이룬 사람들> 혹은 <꿈을 이루어 주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는 미국 펜사콜라 크리스천 학교, 대학, 신학대학원을 세우고 발전시킨 호튼 박사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Builders of the dream>을 읽었습니다.   https://www.pcci.edu/newsevents/2016/hortonbook.aspx   1953년부터 2012년까지 60년 동안 알린(1928년생)과 베카(1929년 생) 호튼(Arlin and Beka Horton) 부부는 무(無)에서 지금의 크리스천 학교/대학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대학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침례교 종합 대학이며 이 학교가 펴내는 베카북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홈스쿨링 교재가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어떤 원동력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제 목적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부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것이 이 모든 성취의 근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사랑하고 확신을 가진 성경은 킹제임스 성경입니다.   이들의 출생을 살펴보니 이들은 미미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특히 베카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 당시 가장 확고하게 근본주의를 지지하던 밥존스 대학에 들어가 성경에 대한 확신, 소명을 갖고 대학 졸업 후 여러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 시에서 크리스천 학교를 설립해서 현시대 최고의 크리스천 스쿨과 교재를 만들어 놓고는 60년 교육 사업을 마치고 슈메이커 박사(현재 49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 뒤 은퇴하고 오레곤 주로 이사가서 살고 있습니다.   두 분 모두 내 아버지가 태어난 우울한 시대에 크리스천 교육으로 어메리칸 드림을 이루어냈습니다. 내가 가진 성경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두려움 역시 부분적으로 이 학교에서 수학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랜드 박사는 맨 마지막 장 마지막에 아주 귀한 글을 기록하였고 그것이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내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번역해서 올립니다. 우리 아이들과 가족 전체가 공유한 글입니다.   ------- 알린과 베카의 청지기직은 이제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것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습니다(Now it was another man’s). 그들은 하나의 팀으로 그들의 당대에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전통적인 크리스천 교육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의 하고자 하는 마음(willingness)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런 비전을 확장해 주시기를 바라는 염원(desire for God to enlarge the vision) 이 모든 성취의 근원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음과 긍정적인 자세 그리고 “섬김의 흥분”(thrill of service)이라는 기쁨을 가지고 [그들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 - 수고와 도전들 그리고 실망들 - 을 [피하지 않고 직접] 대면하여 뚫고 나갔습니다. -------   이들의 삶에서 일어난 일은 한 형제 작가의 다음의 글이 잘 설명해 줄 것입니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14770   내 꿈은 우리말로 우리말답게 정확하게 번역된 성경을 책으로 그리고 좋은 목소리의 성우를 써서 음성으로 남기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궁극적으로 이 꿈을 이룬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얼마나 내 삶을 연장해 주실지 모르지만 나도 누군가의 ‘꿈을 이루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뒤에는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그날이 오면 나도 은퇴해서 보스턴 테리어 같이 얼굴이 뭉뚝한 개를 키우며 손자/손녀들 주님께로 인도하다가 주님께 갈 것입니다.   1.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2. 성경에 대한 확신   이 두 가지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교회와 킹제임스 성경 진영에 많이 생기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7-29 09:37:05 | 관리자
안녕하세요?   날이 매우 덥습니다. 주님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공지한 대로 이번 여름에 7주 정도에 걸쳐 재림에 대한 교육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목사로서 이런 시리즈를 하면서 이런 데만 빠지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대단히 염려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되고 센세이션을 일으켜 무언가 혹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지식은 성령님의 충만이 없으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타락으로 이끕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선포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으니 이 점을 꼭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qt&write_id=1017   하나님은 과거에 페르시아(이란)의 고레스 왕을 써서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에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세상의 왕들을 폐하고 세우는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트럼프 이야기를 한 것도 그런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언행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과는 거리가 멉니다. 다만 그가 지지하는 이슈들이 크리스천 가치에 좀 더 부합됨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여하튼 세상 정치인에게 기대할 것은 전혀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어제 오후에 공지한 대로 이번 금요일에는 <한여름의 음악회가>가 있습니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news&write_id=2051   식사를 준비해야 하므로 오실 수 있는 분들은 선우진실 자매님에게 문자로 참여 여부를 알려주세요. 허광무 형제님의 모친 이근제 어르신께서 (아마도 신경 눌림으로) 다리가 저려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입원하였으나 완쾌되지 않고 있으니 이번 주에는 어르신을 위해 집중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cbck.org/NewFamilyPhoto1/View/1Sw   이번 주에는 시편 1-50편을 읽기 바랍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성도로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며 특히 국가의 안보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일 아침에 10시 40분까지는 오도록 하시고, 차로 오시는 분들은 주차 봉사팀의 안내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서 지하 1층은 다른 상인들을 위해 꼭 비워 주시기 바랍니다. 밖에 있는 분들에게 좋은 평판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큰 평안을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7-25 12:21:1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까지 58회에 걸쳐 누가복음을 17장 19절까지 강해하였습니다. 17장 20-37절에는 주님 재림 바로 전의 상황이 나옵니다.   요즘 브렉시트, 트럼프, 연일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이슬람 테러 등을 보면서 성도들이 때를 바로 판단하고 흔들림 없이 굳게 믿음 생활해야 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 굳건한 믿음은 성경을 정확히 알고 믿는 데 있습니다.   세상일들로 인해 요동하지 않으면서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며 이번 여름에는 7주에 걸쳐 신구약 성경의 재림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 브렉시트와 국경 지키기2. 다니엘서에 드러난 인류 역사, 적그리스도  3. 에스겔서의 곡과 마곡의 이스라엘 침략4. 스가랴서의 재림5. 이사야서의 초림과 재림6. 계시록의 적그리스도와 짐승의 표7. 데살로니가 전후서의 성도들의 휴거와 부활   이러한 강해를 통해 적그리스도의 세상(7년 환난기)이 오기 전의 세상일들을 조망해 보면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성경을 붙들고 흔들림 없이 굳게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런 일들이 있는 가운데 7년 환난기 바로 전에 성도들의 공중 휴거가 있을 줄 믿습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가집시다.   이런 저런 세상 소식들이 궁극적으로 평안의 소식이 되기를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07-23 15:28:01 | 관리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며 내 삶을 제대로 살기위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결정의 순간을 갖고 살아간다면 생각없이 하루를 바쁘게 사는 삶과의 차이는 극명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자신~ 보다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결정의 순간을 자주 갖도록 염두에 두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2016-07-16 02:21:09 | 김상희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의미 있게 읽은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고 죽는 것의 의미를 확실히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샬롬   패스터   휴가지에서 써보는 오비추어리 오늘 하루 나의 삶을 잘 사는 방법은 가끔씩 지도를 꺼내 살펴보는 것이다. 신경과학자로서 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조시 데이비스 박사는 최근 ‘멋진 두 시간(Two Awesome Hours)’이란 책에서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일정 사이에 가끔씩 결정의 순간(decision point)을 가져보라고 조언한다. 결정의 순간이 무엇인가.   우리는 하루를 보내고 나서 오늘도 ‘정신없이’ 보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정신없이’란 무슨 뜻일까. 우리는 하루 일정의 상당 부분을 ‘생각 없이’ 보낼 때가 많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회의나 보고서 등은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일상이 되고, 따라서 그냥 일정이 생기는 대로 ‘자동모드’로 일정을 밟아 나간다는 것이다. 갑자기 회의가 생기면 “또 무슨 일이 있나 보군…” 하고 들어가고, 서로 ‘뻔한 말’을 나누고 또 회의를 마친다. 이처럼 자동모드로 하루 일정의 대부분을 소화하고 나면 바쁘게 보냈지만 정작 오늘 무엇을 했는지 모르게 되고 허탈한 기분도 갖게 된다.   데이비스 박사가 말한 결정의 순간이란 일정과 일정 사이에 5분 정도 짬을 내서 혼자서 “오늘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지?”라고 생각해 보고, 자신의 일정을 조금씩 조정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바쁜 일정 사이에 잠시 빠져나와 결정의 순간을 몇 차례 갖는 것은 생각 없이 지내는 일상 속에서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갖는 것이고, 이에 따라 나의 일상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줄 수 있다.   하루를 바쁘게 보냈는데 정작 의미 있게 한 일은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만약 퇴직 후에 갖게 된다면 어떨까. “30년 가까이 직장에서 바쁘게는 살았는데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았지?”란 생각이 들게 된다면 말이다. 우울한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 속에서도 이런 결정의 순간을 매달, 적어도 분기에 한 번 정도는 깊이 가져볼 필요가 있다. 회사의 영업 실적은 분기별로도 모자라 주별로도 확인하면서, 정작 내 삶에 대해서 이런 돌아보는 순간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휴가의 계절이 다가온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즐거운 휴가를 가겠지만 단 하루라도 자신만의 결정의 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내 삶의 우선순위를 챙기고 있는가. 이때, 도움이 될 책을 한 권 소개한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책이다. ‘기분 좋은 휴가철에 아직 젊은 내게 재수 없게 죽음에 대한 책을 읽으라고?’ 이렇게 생각할 분도 있겠다. 많은 사람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도 불편하게 여긴다. 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똑같은 질문이다. 죽음이 우리 삶에 주는 힘이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 우리는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훨씬 넓은 맥락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삶 전체를 제대로 살기 위해 필요한 우선순위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의 부고기사(오비추어리)를 써보는 것도 좋다. 만약 내가 세상을 떠난 후 어느 매체에 장문의 기사가 뜬다고 가정해 보자. 혹은 내가 죽음을 앞두고 삶을 돌아보게 된다면 나는 내 삶의 어느 부분을 가장 그리워하거나 또 아쉬워할까.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10가지 장면이 있다면 어느 부분일까. 샘플이 필요하다면 신경과 전문의이면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올리버 색스가 죽음을 앞에 두고 쓴 글 등을 참조해 보자.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book&write_id=231   나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 보고 이로부터 되돌아보면 우리는 삶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의 균형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고, 내가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또 새롭게 조명해 보게 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은 깊은 생각과 고민을 해야 하는 불편한 질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불편한 질문들을 계속 미루며 산다.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가끔씩 지도를 꺼내 봐야 한다. 지도를 꺼내 본다는 것은 내 삶에 대한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들을 꺼내 가끔씩 대답해 보는 것이다.  http://news.donga.com/3/all/20160713/79164243/1 
2016-07-14 21:19:04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