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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목사는 성도들의 영적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제 삶이 주님의 은혜 안에서 풍성해야 하지요. 2016년에는 여러 일이 많아서 저도 힘든 가운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매주 성경을 강해하고 설교하면서 매번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느끼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무엘기 강해를 통해 다윗의 일생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좀 더 확실히 알고 겸손히 살아야 함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몇 가지 광고를 드립니다.1. 이번 주일에는 교회 건물 헌금을 드립니다. 올해 주님께서 선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대로 최선을 다해 감사드리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조만간 교회 건물 설계 등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news&write_id=20982. 이번 주에는 오후 예배 후에 대청소가 있으니 청소 복장 및 도구 등을 가져오시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news&write_id=21023. 다음 주부터 기존 회원들의 회원 갱신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갱신의 목적은 이 교회를 바로 이해하고 바르게 섬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므로 회원들이 믿음과 권리, 의무 등에 대해 바로 알고 동질감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갱신이 끝나면 아직 회원 가입하지 못한 분들에게 기회를 드릴 것입니다. 4. 교회 안에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믿음을 흔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 이런 사례를 겪은 분은 교회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영혼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요!”5. 대한민국이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특히 국가 안보가 북한과 종북 세력의 선동과 위협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밤낮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합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무입니다.스펄전 목사님도 성도들의 기도가 없이는 본인과 교회가 유지될 수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니 저야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목사와 그의 가족, 성경 교정 책무를 생각하며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주님께서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큰 평안을 주실 것을 간절히 원합니다.샬롬패스터  
2016-10-28 14:47:12 | 관리자
'시편의 아름다움' 이라는 제목이 정감있게 와 닿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 중에서도 위로와 용기와 기쁨을 주는 시편 말씀들이 제 삶 가운데 제 마음 중심에서 움직이시는 말씀이 되어 말씀으로 누리는 풍요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시편을 자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2016-10-26 11:17:46 | 김상희
늘 자신을 돌아보고 취약함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단에서 선포하심에 대해 취약함을 드러내는 겸손의 용기로 솔선수범하시는 모습이 성도들에게 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10-26 11:05:34 | 김상희
시편의 아름다움안녕하세요?어제 시편 42편을 읽다가 다음 글을 찾게 되었습니다.시편에 대해 아주 잘 정리한 글이라 소개하고 싶습니다.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싶을 때, 기쁨을 표현하고 싶을 때 등 여러 경우에 다음 말씀들을 상고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저는 밑에 있는 저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다만 요약이 잘 되어 있어 나누려고 올립니다.또 저자가 개역성경을 사용하였으므로 원글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그대로 올립니다. 샬롬패스터----------------------내 인생에 시편이 없었다면-기독공보 [3060호] 2016.09.27.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굴곡이 있다. 여정은 탄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론 좁은 길, 골목 길, 갈림 길, 숲속 길, 낭떠러지 곁길, 아득한 길, 미끄러운 비탈 길, 오르막 길, 내리막 길, 즐거운 길, 눈물 골짜기, 아골 골짜기를 걸어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통과해야 만 했을 때 결단을 요구받았다.첫째 '하나님만을 신뢰할 것', 둘째 '불평하지 말 것', 셋째 '광야 넘어 가나안 땅이 있음을 믿을 것', 넷째 '함께 할 것'이다.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크고 무섭고 광대한 광야 앞에서 좌절하고 넘어지고 불평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도 결코 쉽지 않았다. 소아마비, 대학 실패, 동생 죽음, 가정의 실패, 유학의 어려움, 경제적 곤궁, 고독.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어려움들은 어느새 아련한 추억이 되었고 현재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비상하고 있다.'어떻게 이 어려움을 이겨냈을 수 있었을까' 생각할 때 시편 말씀이 떠올랐다.1. 삶이 형통하기를 원할 때 시편 1편 2~3절을 읽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2. 힘 잃고 지쳐있을 때 시편 18편 1~2절을 읽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3.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할 때 시편 23편 1~4절을 읽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4. 이 밖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면 어떤 복이 임하나를 알고 싶을 때 시편 34편 7~9절을 읽었다."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5.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시편 37편 4절을 읽었고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6. 고독 가운에 있을 때 시편 42편 1~2절을 읽었고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7. 인생이 별 것 아님을 알고 싶을 때 시편 90편 9~12절을 읽었다."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8.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시편 103편 3~5절을 읽었고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9. 말씀의 능력을 믿고 싶을 때 시편 107편 20절을 읽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10. 고난을 당할 때 시편 119편 50절을 읽었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11. 범죄하는 영혼이 되고 싶지 않기에 시편 119편 11절을 읽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12. 앞길에 장애물을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시편 119편 165절을 읽었고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13. 경제적인 곤궁을 겪을 때 시편 121편 1~2절을,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14. 이방 땅에 있을 때 시편 137편 1~4절을 읽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우리에게 시편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큰 복이다. 우리보다 더 어려웠던 신앙의 사람들이 우리처럼 광야 인생을 걸어가면서 어려움 만날 때 마다 극복했던 신앙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보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 때문에 마음 든든하다. 나를 살리신 시편 말씀을 사랑한다. <평광교회-조성욱 목사님>http://m.pckworld.com/news/articleView.html?idxno=72082
2016-10-25 17:10:43 | 관리자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통하여 달라지는 점은 그 말씀이 다른 이가 아닌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혹 아쉬움을 가지고 강단에서 내려온다 할지라도 제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남아있답니다.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시길 응원해드리고 싶습니다.^^ 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2016-10-25 11:00:53 | 박혜영
그렇군요. 예배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수님께서 선포해 주신 것이군요.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인 말씀으로 다가 왔을 것 같습니다. ..익숙한 말씀이라 생각했지만, 늘 새로움과 기쁨을 주는게 주의 말씀인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2016-10-24 22:39:57 | 오광일
목사의 설교 비평목사가 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의 설교를 비평의 시각으로 보게 됩니다.제 아내는 늘 저 스스로 제 설교를 비평하고 더 잘하라고 충고합니다.어제는 설교를 한 뒤 후회를 많이 하였습니다.https://youtu.be/NyEzSHGjU2U충분히 전할 것을 적어갔음에도 시간을 초과하고 마지막에 에센스를 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날은 밤에 잠들기가 조금 힘듭니다.제 설교의 특징은 성경 전체를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어제도 성전 역사를 전하다 보니 금세 주어진 시간이 다 흘렀습니다.또 지난주 설교를 앞에 요약하였는데 그것이 또한 길었습니다.이러다 보니 더 잘했어야 한다는 유감이 많이 든 하루였습니다.구약과 신약을 이야기하면서 끝부분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습니다.그것은 신약시대에는 성도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점입니다.성전은 하나님이 거하는 곳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고전3:16-17).그래서 이제 우리는 다음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요4:19-24).사마리아 여자가 그분께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보니 선생님은 대언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경배하였는데 당신들은 이르기를, 사람들이 마땅히 경배해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나이다.”이때에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셨습니다.“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너희가 이 산에서도 [아버지]께 경배하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에서도 경배하지 아니할 때가 이르느니라.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에게 경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사마리아 여자는 구약의 성전 예배를 언급하였고 예수님은 신약의 예배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끝에 대조되어 설교되었어야 했습니다.이 부분이 미진해서 대단히 유감스럽습니다.다음부터는 50분에 설교를 마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긴 설교를 듣느라 고생하셨습니다.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샬롬패스터 
2016-10-24 15:59:06 | 관리자
팀 켈러의 <설교>(Preaching): 도서출판 두란노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book&write_id=235   목차: Part 1. 말씀을 섬기는 설교 ─ 설교자는 성경 본문의 진리를 향한 책임이 있다 Chapter 1. ‘성경 말씀’을 설교하라 전체 성경의 맥락 안에서 강해 설교를 하라 Chapter 2. 매번 복음을 설교하라 복음을 설교하는 건,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다 Chapter 3.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본문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설교하는 6가지 실천법   Part 2.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설교 ─ 설교자는 청중의 삶을 향한 책임이 있다 Chapter 4. 몸담고 있는 문화를 향해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주위 문화와 공명하면서 저항하라 Chapter 5. 시대정신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후기-현대의 저변을 흐르는 문화 내러티브 검증하기 Chapter 6. 마음에 닿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설교의 상황화가 이뤄지면 청중이 변한다 Part 3. 성령을 덧입은 설교 ─ 설교자의 삶과 인격에 성령이 오셔야 한다 Chapter 7. 설교가 ‘들리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설교’보다 ‘설교자로서의 삶’을 더욱 힘써 준비하라   -------- 다음은 켈러 목사의 책 <설교>의 서문과 같은 글입니다.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고민하는 이들에게>라는 제목과 내용이 매우 좋아 소개합니다.   팀 켈러는 현 시대 뉴욕에서 큰 부흥을 일으키는 목사입니다. 배울 것이 책에 상당히 많습니다. 좋은 설교자가 되기 원하는 분들이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말씀 사역의 세 가지 레벨   호주 신학자 피터 애덤(Peter Adam)은 우리가 “설교”라고 부르는 것 즉 주일날 한자리에 모인 회중을 향한 공식적인 대중 연설이, 성경에서 유일하게 “말씀 사역”(행 6:2, 4 참조)이라는 표현을 쓴 형태라고 논한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의 현장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그분의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으실 것이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대언]할 것이다’라는 선지자 요엘의 말을 인용했다(행 2:17 참조),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신약 신학사전)에서 게르하르트 프리드리히(Gerhard Friedrich)는 영어 신약성경에 “preaching”(전도, 복음 전파, 설교) 혹은 “proclaiming”(복음 전파, 선포)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가 최소 33가지라고 밝힌다.   애덤이 조사한 바로는, 이 단어들 전부가 대중 연설 행위를 지칭하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8장 4절은 사도들 말고도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여기저기 다니며 메시아를 선포했다고 기록한다. 이 말은 모든 신자가 청중 앞에 일어서서 설교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를 집으로 데려와 그리스도의 말씀을 설명해 주었다(행 18:26 참조).   성경에서 우리는 최소한 세 가지 레벨의 ‘말씀 사역’을 구분할 수 있다. 바울은 모든 신자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고, 또한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며 권면할 것을 당부한다(골 3:16 참조).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르침’(디다스칼리아, didaskalia; 무언가를 지도하는 활동을 지칭하는 헬라어)과 ‘권면’(누쎄테어, noutheteo;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강한 조언을 일컫는 헬라어)을 통해 성경의 교훈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주로 일대일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며, 비공식적이지만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말씀 사역의 가장 기초 형태이다. 이 형태를 ‘레벨 1’이라고 부르자.   다양한 말씀 사역을 스펙트럼 모양으로 펼친다면, 보다 형식을 갖춘 공식적인 형태의 끝자락에 ‘설교’가 있다. 말하자면 회중을 항해 선포하는 대중 설교나 성경 강해인데, 이를 ‘레벨 3’이라고 부르겠다. 사도행전에 이런 형태의 설교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대체로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가 이에 해당하고, 여기에 이스라엘 역사를 요약하는 스데반의 연설 정도가 추가된다. 사도행전이 워낙 많은 대중 연설을 소개하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의 관점에서 초대교회의 발전은 사실상 설교의 발전과 궤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비공식적인 기독교적 대화’와 ‘공식적인 대중 설교’사이에, 말씀 사역의 ‘레벨 2’가 존재한다.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의 영적 은사에 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벧전4:10-11)   베드로는 영적 은사에 관해 말할 때 두 가지 매우 일반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첫째는 말하기를 가리키는 헬라어 ‘랄레인’(lalein)이다. 신약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 단어는 누구나 하는 단순하고도 일상적인 말을 지칭한다(마12:36; 엡4:25; 약1:19 참조). 설교 사역을 경우도 있는데, 예수님(마12:46; 13:10 참조)이나 바울(고후12:19 참조)의 설교를 서술할 때 사용된다. 그렇다면 위 말씀에서 베드로가 의미한 바는 무엇일까?   한편 로마서 12장, 에베소서 4장, 고린도전서 12, 14장에 소개된 바울의 은사 목록을 감안하면서 이 단락을 살펴보면, ‘말씀 사역의 은사’라는 총체적인 범주 안에는, 주일날 회중을 향해 선포하는 대중 설교 방식 외에, 다양하게 기능하는 은사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권면이나 상담, 전도, 개인 혹은 그룹 단위의 교육이 포함된다.   성경학자 피터 데이비즈(Peter Davids)는, 베드로가 ‘말하기’의 영적 은사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리스도인 사이의 일상적인 대화를 말하는 게 아니고 ……[목회자]나 다른 교회 직분자들의 활동만을 일컫고 있지도 않으며”, 오히려 상담과 지도, 가르침과 복음저도와 같은 여러 “언어적 은사”를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결론짓는다. 이 사역의 범주 안에는 설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 대화가 포함되고, 토의를 인도하는 것도 포함된다.   베드로는 대중 앞에서 말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여타 형식으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그들의 과업을 신중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을 가르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 같이”(벧전4:11) 말해야 한다. 데이비즈는 “‘같이’(as)라는 단어가 그들 자신의 말과 하나님 말씀 사이에 미세한 간격을 띄운다”라고 지적한다. 누구도 자신의 가르침을 성경 계시와 동일한 권위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베드로는 한 가지 놀라운 주장을 내놓는다. 성경의 가르침을 전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단지 그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서는 안 되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 설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그리스도인이라도 진리를 전할 때면 그들이 이해한바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렇게 성경의 의미를 충실하게 설명한다면, 듣는 이들은 그 강해 속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듣는 이가 단지 인간적인 재주의 산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만남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을 풀이하고 적용해 줄 수 있을 만큼, 성경의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레벨 1). 멀리 설교(레벨 3)까지는 아니더라도 레벨 2 수준의 말씀 사역을 수행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거기에는 더 심도 있는 준비와 전달 기술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레벨 2에는 글쓰기, 블로그 활동, 성경공부반이나 소그룹 인도, 멘토링, 신앙적 이슈에 관한 공개 토론회 진행 등을 들 수 있다.   이 책의 목표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전달하려는 모든 그리스도인, 특히 레벨 2와 레벨 3 수준에서 전하려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이다.   대체할 수 없는 설교만의 사명이 있다.   오직 설교만이 말씀 사역이라는 비성경적인 믿음에 사로잡히는 것은 위험하다. 피터 애덤이 말하듯,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짐, 즉 성경이 다른 모든 형태의 말씀 사역에 기대하는 과업을 오로지 설교에 부담 지우는”격이 될 것이다. 어떤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모든 삶의 변혁(요 17:17; 골 3:16-17; 엡 5:18-20 참조)이 오직 설교를 통해서만 나온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최고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닮아 갈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우리 곁에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딤후 2:15) 우리를 격려하고, 지도하고, 위로해 줄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 또 글로 우리 신앙의 성숙을 도와줄 기독교 작가들의 책도 있어야 한다. 교회 바깥에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 다가갈 방도가 오직 설교라고 기대하는 것도 옳지 않다. 내가 신앙을 갖게 된 것도 누군가의 설교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책을 통해서였다. (혹 이 말에 놀란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교회 말씀 사역의 모든 짐을 주일 설교가 홀로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교회 사역에 있어 설교에 너무 과도한 짐을 지우고 있다는 애덤의 지적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그런데 어쩌면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가장 큰 위험은 이게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는 권위에 대해 극도로 저항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공적 선포에 드리운 자그마한 권위의 향취에도 많은 이가 저항감을 드러낸다. ‘진리’라는 말 자체에 과민 반응을 보이기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상당한 전달 기술이 요구된다. 혹여 이런 현실 자체가 복음 사역을 위해 교회가 굳게 지켜내야 할 설교의 중대한 본질을 이미 놓치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은지 심히 우려스럽다.   에드먼드 클라우니(Ednund Clowney)는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 대해 쓴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정인이 아니라-옮긴이 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말씀에 대해 경의를 품고 분별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며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하나님의 말씀을 …… 설교하기 위해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받는 이들이 있다.  …… 하나님의 양무리를 돌보고 먹이는 특별한 직무를 위해서 말이다(벧전 5:2 참조). 교권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자칫 교회가 양무리의 부목자(under-shepherds)로 부름 받은 이들이 담당하는 말씀 사역의 중요성을 망각할 위험이 있다.   여기서 크라우니는 회중을 향해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단지 소그룹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것 사이의 ‘아무런’ 질적인 차이를 보지 못하는 처사를 경고한다. 이 둘의 차이는 단지 형식이나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참석한 사람의 숫자나 모임 장소의 규모, 혹은 연사의 발성이나 말의 빠르기가 차이 나는 게 아니다.   청중을 향해 설교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설교와 성경공부, 나아가 설교와 강의 사이에는 무언가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감지한다. 사도행전에 소개된 베드로와 스데반, 바울의 연설을 살펴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 같이”(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옮긴이 주) 메시지를 선포했을 때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나타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영이 공식적인 예배 모임에 부여하신 고유한 권위를 통해 나타나는 능력이다.   다양한 형태의 말씀 사역이 늘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라는 특별한 공식적 사역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피터 애덤은 교회의 복음 사역은 “강대상 중심이되, 강대상에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정리하며 절묘하게 균형을 맞춘다.   이렇듯 말씀 사역에는 세 종류의 레벨이 있다. 셋 모두 중요하고 서로를 지지한다. 그리스도인 모임에서 그리스도를 공식적으로 설교하는 것(레벨 3)은, 하나님이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백성을 세우시는 고유한 방식으로서 레벨 1과 레벨 2에서 더욱더 유기적인 말씀 사역이 가능하게 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마찬가지로, 레벨 1과 레벨 2에서의 충실하고 숙련된 소통은 주님의 백성이 설교를 보다 더 잘 받아들이게 준비시킨다.   이 책은 갈수록 회의적인 시대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의 진리를 전할 방도를 고민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책이다. 특히 현장 설교자들과 교사들을 위한 개론과 입문서가 될 것이다.
2016-10-19 12:02:46 | 관리자
안녕하세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영어 성경을 읽을 때 인명이나 지명이 익숙하지 않고 또 발음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처음 접하는 경우 인명 지명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영어 설교를 들을 때 인명 지명만 귀에 들어와도 큰 도움이 됩니다. 설교의 많은 부분이 인명 지명을 사용하여 전개되므로 이명 지명을 익숙하게 들을 수 있으면 영어 설교를 듣는 데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좋은 앱이 있어 소개합니다.   안드로이드폰에서는 구글 플레이, 아이폰에서는 앱스토어에 가서 “Biblical Pronunciations”라고 치면 성경의 거의 모든 인명 지명을 발음해 주는 앱이 나옵니다.   간단히 설치하고 사용해 보세요.   안드로이드폰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followmemobile.biblicalpronunciations&hl=ko   아이폰https://itunes.apple.com/kr/app/biblical-pronunciations/id970048667?mt=8     특히 중고등학교 아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2016-10-15 20:38:01 | 관리자
사람은 한 번 이 땅에 태어나 한 번 죽고 그 뒤에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가 영원의 관점을 갖는다면 7-80년의 인생을 좀 더 가치 있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많은 것을 참고 절제해야 합니다. 그러면 삶이 대단히 단순해지고 어떤 때는 너무 단조로워서 왜 사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대적하는 자들이 나타나 심히 괴롭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더불어 일이 예상대로 안 되어 몹시 초조하고 마음을 졸이게 될 때도 있습니다.   골리앗을 죽이고 하나님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은 뒤에, 자기의 장인인 사울의 핍박이 도를 넘어 매일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에 다윗은 자기의 이런 신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주}께서 살아 계심과 네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 사이에는 단 한 걸음만 있느니라(삼상20:3).   그러나 그는 근성을 가지고 무려 10년 이상의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에 결국 이스라엘의 선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가는 곳마다 핍박받을 때의 심정을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너는 악을 행하는 자들로 인하여 초조해하지 말며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부러워하지 말라. 그들은 곧 풀같이 베일 것이요, 푸른 채소같이 시들리로다(시37:1-2).   하나님은 공의(righteousness)의 하나님입니다.    오늘 잠언을 읽다 보니 귀한 말씀이 있어 나눕니다.    사악한 자는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아니하나 의로운 자는 영존하는 기초가 되느니라(잠10:25).  성경을 사랑하는 성도들 모두가 21세기를 살면서 이 세대를 섬기며 영존하는 기초를 놓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사악한 자들은 아침 안개처럼 곧 사라질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사랑침례교회
2016-09-26 17:20:33 | 관리자
정동수 목사의 성경/설교/강해/목회 이야기 블로그 안녕하세요?   두 달 쯤 전에 저는 “정동수 목사의 성경설교강해목회 이야기”(King James Bible 1611)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http://blog.naver.com/pastor-jung   이 안에는 제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모든 책들과 설교/강해 자료가 거의 망라되어 있습니다(현재 1426개 기사). 앞으로 제가 공유할 2-300개 정도의 기사를 더 올린 뒤에는 목회를 하면서, 성경을 번역하면서, 살면서 느낀 것을 쓰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있으면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 블로그 안내 ----------   안녕하세요?   저는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주 번역자이며 도서출판 <그리스도예수안에>의 대표 편집자이고 또한 인천 논현동에 위치한 사랑침례교회 목사입니다. 또한 1992년부터 지금까지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1982년 9월에 캐나다로 그리고 1985년 1월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성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1992년에 귀국한 이래로 지난 25년 동안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번역/출판하고 성경대로 믿는 신자들(Bible believers)을 위한 책들을 출판해 왔습니다.   2001년에는 인천에서 승리침례교회를 개척하였으나 1년 반쯤 지났을 때 도저히 교회를 치리할 수 없어 문을 닫고 그 뒤 오랜 시간 방황하다가 2008년 5월부터 부천에서 어른 7명과 아이들 2명으로 사랑침례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뒤 교회는 발전하고 성장하여 2012년에는 인천 소래포구 옆의 소래 예배당으로 이전하였고 현재 매주 570여 명이 모여 예배드리고 교제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제2경인고속도로 신천 IC 옆에 1,000평의 부지를 구매하였고 주님께서 선하게 길을 인도해 주시면 예배당도 건축하려고 합니다.    지난 8년 동안 설교와 강해 영상을 1000편 이상 녹화하여 3년여 전부터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하였고 현재 하루에 6,000여 명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의 무오성(Infallibility of the Bible)을 믿는 근본주의 성도(fundamental believer)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에 따라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보존하신 성경이 이 땅에 있어야만 함을 믿고 그것이 1611년에 번역되어 온 세상을 변화시킨 킹제임스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저의 이런 믿음은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온 이래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개역성경을 손에 들고 일점일획도 틀린 데가 없는 성경이라고 믿은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와 제 부모님은 개역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엡2:8-10). 저의 성경 지식의 많은 부분은 중학교 때부터 여러 차례 읽기 시작한 개역성경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 본문이 다르므로 킹제임스 성경과 개역성경은 필연적으로 여러 곳에서 차이를 보이며 저는 기회가 닿는 대로 이런 차이를 설명해 드릴 것입니다. 참고로 1649년에 출간된 장로교인들의 표준 지침인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서 인용되는 성경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이며, 그 당시 청교도들은 자기들의 손에 들린 1611년 킹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이라고 믿었습니다.     본 블로그에서 저는 성경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된 미천한 교회 사역이 발전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가 겪었던 일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목회를 준비하는 분들, 또 이미 하고 계신 분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저의 작은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저처럼 파트타임으로 목회 사역을 하시려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이야기하듯이, 목사는 가능하면 전적으로(Full time) 자신을 사역에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저처럼 파트타임으로 주말에만 시간을 내어 목회하는 특수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특수 상황이지 이것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저의 글과 자료들, 그리고 설교와 강해 동영상을 위주로 관심 있는 분들에게 바른 지식에 의한 바른 믿음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믿음을 누구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이 블로그를 통해 그저 제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나누고 자료를 제공하려 할 뿐이니 이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과 같은 고정된 틀로 제 글이나 영상을 판단하지 마시고 성경에 맞는가, 그른가로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성장과 불신자들의 구원 등을 목표로 블로그를 만들어 제가 제공할 수 있는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 자료들에 대한 논쟁이나 질문을 다 받기 시작하면 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좋아요 표시나 댓글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의견 피력이나 질문을 하고 싶으신 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또한 이웃으로 추가하시는 것은 좋지만 ‘서로이웃’은 맺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과 모든 방문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 올바른 자료들을 제공하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제 마음을 대신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2016-09-26 10:15:05 |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느덧 가을이 되었습니다.선선한 계절에 독서에 힘을 쏟읍시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이번 주에는 이사야서 23-44장을 읽기 바랍니다.   국가가 내외로 어려움이 많습니다.그리스도인은 국가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기도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국가의 안위를 지켜주실 것을 위해 기도합시다. 사람이 하고자 해도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민주적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합시다.   어제 아침에 광고 드린 대로 세 분의 건강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청주 최정순 자매님   http://www.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photo2&write_id=3555   최 자매님은 8월 23일경부터 디스크와 췌장 염증 등으로 입원해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성경과 복음을 사랑해서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오셨는데 입원 중이라 못 오고 계십니다.   2. 인천 정관영 형제님   교회 옆의 논현동에 사시는 정 형제님은 메니에르 병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것은 귀에 이상이 있는 병으로 어지럽고 음식을 가려야 하는 등 일상 생활에 어려움이 매우 많습니다.   3. 서울 김호진 형제님     김 형제님은 섬유근육통이라는 병을 앓아 심신에 고통이 매우 심합니다. 현재로썬 특별한 약이 없어 더 힘드니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분들 외에도 다른 어려움을 가진 분들 모두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의 긍휼을 구합시다.   어제 방문자들 가운데 주님을 알기 원한다고 고백한 부부가 있습니다. 주님의 영께서 그들을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실 것을 믿으며 기도합시다.   보라, 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니라.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느냐?(렘32:27)   샬롬   패스터   야고보서 5장   13 너희 가운데 고난을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시를 노래할지어다. 14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부를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해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그것들을 용서받으리라. 16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자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같이 동일한 성정의 지배를 받은 사람이로되 비가 오지 않기를 그가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였고 18 그가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자기 열매를 내었느니라. 19 형제들아,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진리를 떠나 잘못하는데 누가 그를 돌아서게 하면 20 그 죄인을 그의 길의 잘못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한 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을 그가 알게 할지니라.
2016-09-05 09:25:23 | 관리자
평소에 목회자 아내로서의 사모님의 마음만 이해하게 되다가 이렇게 엄마로서 사모님의 그간의 심경을 듣고 보니 피부로 와닿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도 엄마니까요. 꼭 친해지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자매모임과 금요예배 그리고 주일저녁 유아실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 베쓰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다른 성도들보다는 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우연찮게 같이 특송을 준비하며 더욱 그랬고요. 브레네 브라운의 테드 강연 두 편도 처음 베스를 통해 듣게 되었고요. 처음에는 한 말 잘하는 여성 심리학자의 유머러스한 자신의 경험담과 임상연구 내용 정도로만 이해가 되었지만 최근 제 삶에, 심경에 어려움이 닥쳐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는데, 혼자 듣다가 메모를 해보니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구요.... 그래서 혼자 메모하다가 펑펑 울다가 기도하다가를 반복했습니다.(그 모습을 상상하니 우습네요.) 심리학자의 강연내용이 곧 내 자신의 이야기 였고 경험과 너무도 같았거든요. 다행인 것은 제 안에 믿음이 있기에 주님을 의지하며 나가는 과정이 심리학에서의 치료 과정과 방향이 달랐을 뿐이었습니다. 취약성은 결코 인간의 약점이 아니라 순수한 용기이며 불확실한 감정적 실수를 줄이는 인생의 원료라고 이야기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혁신, 창의성, 변화의 원천은 취약성을 깨닫는데서부터 시작된다고 강연자는 말하더군요. 연구자는 수치심이 취약성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건드려져야 할 부분인데 여성과 남성의 경우 수치심의 기준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여성의 수치심 - '힘든 내색없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야해, 여자는 이래야 해.' 하는 식의 편견이 수치심을 만들어내는데, 여성들이 생각하는 여성상을 조사해보니 착하고, 날씬하고, 겸손해야하고, 외모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게 주 된 고정관념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남성의 수치심 - 절대로 남에게 자신의 약함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렇고, 남성들이 생각하는 남성상을 조사해보니 경쟁에서 지지 않거나, 가족이나 집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증, 감정제어, 일중심적 지위를 추구, 폭력적인 성향 등이 나왔다고 합니다. (위에 내용이 참 공감이 가더군요.)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려면 취약성을 드러내야 하고 이 때 반드시 수치심을 건드려야 하며 수치심을 제어하고 해독하기 위한 처방은 가족, 혹은 이웃과 서로 공감하고 교류하는 것이 방법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감은 다른 말로 취약성을 드러낸 상대에게 "나도 그래." 하고 이야기 해 주는 것이죠. 베스와 이런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니 올 여름 저에게 가장 큰 기쁨은 또 한명의 신실한 그리고 나와 같이 주님의 인도와 보살핌이 필요한 연약한 한 지체, 혹은 동지를 만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또 하나 교회를 함께 섬겨나갈 마음 맞는 든든한 동료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올여름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낸 결과 참 많은 기쁨과 감사, 그리고 제 자신을 좀 더 빨리 추스리는 데 많은 도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지체를 통해 교제를 통해서 한단계 더 나아가 내 자신의 취약성을 인식하고 드러냄으로 위선과 가식 버리기를 또 한번 '수치심'이라는 백신을 맞으므로 잠시 몸살을 앓아가며 한층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 진 느낌입니다. 약함=취약함이 아니라, 취약함= 강함 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음을 통해 반증하는 우리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취약성을 통해 마음을 나눈 지체를 알게 된 이상 마음속에 무시로 기도할 제목들이 하나 더 추가가 된 것 같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2016-09-02 13:45:56 | 김경민
성도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속히 평상으로 돌아오길 바랬는데 또 빠르게 회복되어 한국에 있는 동안도 알차게 배우러 다니고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가니 모두가 기뻐합니다. 미국서 지내는 동안 자녀들과의 시간도 즐거운 시간들이 되시고 충만해 돌아오시길 바래요^^
2016-09-02 07:46:13 | 이수영
안녕하세요?   다음은 제 아내가 올려달라고 한 글입니다. 제 딸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샬롬   패스터   ------------- 이번에 제 딸이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다시 읽으며 드는 생각이 있었어요.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6250 거기에 말씀과 기도 부분이 빠져 있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무시했다고는 생각하는 분들은 없겠지만 혹시 왜 말씀이나 기도 부분이 없나 하고 의아 해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충분히 말씀과 기도 부분을 강조해서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부분을 굳이 드러낸다면 누구를 가르치거나 기도의 힘을 부각시키려는 부작용도 있지 않았을까요?   병이 낫지 않는 사람은 기도가 부족하다든가...목사 집안이라 특히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든가...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일을 믿지 않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간증에는 균형과 맑은 정신과 진실함이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사실은 딸이 미국에 있을 때 극심한 무기력증과 불안증으로 너무 힘들었을 때 전화를 하며 “엄마 기도해 줘”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통화 중 몇 번 기도하곤 했어요. 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어서 조금은 어색하지만 절실한 안정이 필요해서 즉시 기도하곤 했죠.그리고 말씀은 아빠가 많이 보내줬고 딸의 남편은 책을 읽어주기도 했어요.   그래도 움직일 수가 없고 당장 아기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어야 해서 아기 아빠가 급히 휴가를 내어 갑자기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여기 와서도 정말 한 달 동안은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해 누워서 지냈습니다. 아마 보신 분들도 있지만 모임에 나오긴 했어도 부스스한 모습으로 교회에 오곤 했어요.   어느 금요일은 너무 힘들어 아예 교회에 올 수가 없어 혼자 집에 두고 왔는데 제가 너무 불안해서 성경 공부가 집중이 되지 않아 그냥 가버린 적도 있지요.   나름 극심한 상황이었지만 저마저 같이 힘들어하면 식구들에게도 교회에도 걱정을 끼치니까 마음을 다잡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그냥 그 날에 내 앞에 닥친 일만 단순하게 생각하며 지내려 노력했어요.   아마 저도 생각을 다잡지 않았다면 딸보다 더 심한 불안에 시달렸을 것 같아요. 그런 어려운 상황에 힘과 위로가 되어준 교회가 있고 교제 모임이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가식적으로 지체들을 대하며 지낸 것은 아니나 지체들을 보면 당장 근심이 사라지진 않더라도 관심이 좀 달라지고 생각이 정화되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 한 달은 어려움 속에 있었지만 근근이 시간을 잘 보낸 거 같아요.   이제 미국으로 떠나면서야 정식으로 자매님들의 애정과 기도와 격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샬롬  
2016-09-01 18:35:38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