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매주 교제의 기쁨을 당연하게 누리는 가운데 내심 함께 하지 못하는 먼곳의 자매님들께 맘 한편 늘 죄송함이 있었어요.
그런데 참 반가운 소식을 올려주셨네요^^
이미 나누었던 '교회는 괸계다' 는 어느 책 보다 교회안의 실질적인 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었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지금 우리가 서있는 믿음의 선로가 바른 진리라는 확신을 다시금 갖게된 책이기도 합니다.
자매님들의 나눔을 글로 접하니 직접 듣고싶어지네요.
첫째주 화요일 가능하다면 꼭 한번 가고 싶습니다!!!!!^^
2018-11-14 22:39:38 | 장영희
이렇게 지역 자매모임을 통해 인사를 드리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소박하고 작지만, 교제모임의 필요성을 충분히 자각하고 시작해보니 너무 좋은 영향이 내 삶속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형편을 나누고 취약점들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교회의 사정들을 협력하며 돌보아 가기에 너무 좋은 자매모임이 되어가는것 같습니다.
교제의 중요성을 점점 더 깨달아가기에 주님께 감사드리고 지쳬 자매님들께도 큰 감사와 사랑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만드십시요~~세명만 된다면 시작하시는게 큰 유익이 있는줄 확신합니다^^
2018-11-14 19:43:27 | 우종미
가을 청량한 공기가 느껴지는 .. 신선한 모임이네요.
세대가 다르기에 오히려 서로에게 주님의 다양한 지혜를 얻을수 있는 귀한 모임이네요.
자매님들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이유가 이곳의 기쁨때문이었군요.....^^
2018-11-14 18:40:45 | 태은상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 많은 교회 특성상
교제하기가 쉽지 않은데..
부족한 부분을 자발적으로 보완해 나가는
모습이 참 멋지십니다^^
2018-11-14 12:08:51 | 김세라
수영자매님 글을 이리 빠르게 올려주시니 감사드려요^^
하남 우종미 자매님댁에서 2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자매들이 모이고 있어요~ 세대별로 다같이 모이니 얼마나 좋은지요^^ 근처 사시는 자매님들 ,혹은 근처가 아니더라도 오실 수 있는 분들 환영합니다!!!
매주 목요일 11시부터(첫주는 화요일 11시부터) 보통 3시전후까지 모입니다
2018-11-14 11:42:09 | 백윤정
이렇게 소중한 모임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군요.
정말 기쁘고 반가운 소식이네요.
2018-11-14 11:08:08 | 김혜순
오랜만에 수영자매님 글을 보네요,
모임을 하고계신지 이렇게 글로 알았어요.
곳곳에서 주님을 알아가는 모습에 참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기록된 대로 가는것은 오직 예수님뿐! 아멘.
영주자매님도 계셨군요, 반갑습니다.^^
2018-11-14 08:56:49 | 이청원
두서없이 말한 걸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아~그 날 깨닫고 실천할 일-새로운 성도처럼 보이는 분을 레이다로 포착해 인사 나누고 인사 나누겠습니다^^
2018-11-14 08:43:42 | 목영주
모인다는 소식이 궁금했는데 이렇듯 소식주시니 감사합니다. 8명이 모이니 폭넓은 교제가 이루어 지리라 여겨져요.
곳곳에서 이런 아름다운 소식들이 이어졌음 좋겠습니다.
우리교회 특성상 지역적 어려움을 잘 해소하시고 교제하시니 귀감이 됩니다.자주 소식 올려주셔서 공유하는 기쁨을 누렸음 합니다.
2018-11-14 07:13:34 | 김경애
귀한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은 정말 24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대적인 시간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라는 스스로의 반성을 종종 하곤 합니다.
자내님 글을 통해 좀 더 상대적 시간을 이용해 귀한 열매를 맺도록 기도하며 노력해야겠다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귀한 글 감사해요.^^
2018-11-14 00:57:15 | 김경민
곳곳에서 자원해서 작은 모임을 갖으면 좋겠습니다.
In put 은 많은데 Out put 할 기회가 없기에 성도들끼리의 모임이 중요합니다.
서로가 사정도 알고 함께 기도해 주고, 사랑이 사랑을 양산합니다.
직접 하고 있는 분들도 계시지요-
작은 모임들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부부모임도 한다고^^
모두가 한결같이 좋다고 해요-
2018-11-13 23:33:24 | 이수영
주일엔 예배가 우선이라 각자 모두가 맡은 바를 하느라 바쁘게 하루가 간다.
교제하고픈 마음은 가득인데 여유로운 시간은 없다.
거리도 너무 먼데다 주일이 아닌 도로는 시간이 너무 너무 많이 소요가 된다.
같은 지역에 있는 자매님들과 모이고 싶었는데 나와 한 자매를 빼곤 모두 직장을 다니다보니 여의치가 않았던 터-.
그러다가 지역에 더해진 자매님들과 목요자매모임을 참관?할 겸 우리의 문화를 알게 해 주고 싶어서 권했더니
흔쾌히 동의해 함께 가게 되었다.
사모님도 권하셨지만, 자원해서 “우리도 모임을 갖자”고 먼저 말해줘서 감사하게도 시작이 되었다.
처음엔 3명이라도 시작할 요량으로-
그런데 버스를 타고 2시간이 걸려서도 기쁨으로 달려오는 자매님을 보고 모두가 교제에 목말라 있고 모이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미 모이고 있기에 새로 더해진 지체에게도 권할 수 있었고 지금은 8명이 모이고 있다.
모일 때마다 예전교회서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자연스레 자신의 이야기들이 나누어 지면서 울고 웃고^^
우리는 ‘교회는 관계다’를 끝내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을 교재로 교제를 하고 있다.
오늘은 가롯 유다에 대한 이야기 1
- 운명론에 대해 이전에 갖고 있었던 (장로교) 사고로 열심히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정해놓으신 그 길을 찾아야 하는 사명감으로 항상 마음속에 갖고 있던 의문이었다.
- 나는 교회를 오래 다니지 않아서 그러한 틀은 없었으나 내가 하나님의 뜻에 살고 있는지를 항상 생각하게 되어 또 다른 의문이었다.
-자살은 자신의 문제를 크게 생각해 다른 것이 안보이게 하는 무책임 한 일이다. 결국 그것은 책임회피이다.
-천사들에게도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도 자유의지를 주셨다.
-예정론이 맞다면 인간은 꼭두각시일 뿐. 전도도 선행도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숙명론은 인간의 의지를 꺽어,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타고난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여 돌이키고
구원 받지 못하게 하려는 마귀의 속임수이다.
**예수님은 구약에 300회 이상 예언된 메시아로 예정되고 계획된 분, 구원의 플랜에 명시된 분 이다.
출생부터 지역, 무슨 일을 하실지 너무도 세세하게 나와 있다.
슥11:12-23에 나타난 예언은 은 서른 개가 몸값으로 나온다. 가롯 유다가 사탄을 선택하였기에 이것이
유다에 대한 예언이라고 여긴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셨으나 (누구라고 처음엔 지적하지 않으셨다)
유다는 마귀가 자신을 지배하게 방치했고,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결심이 굳어진 것을 아시는 주님은
이제 그를 정확히 지적하며 자신을 배반할 자라고 하신다.(마 26:23)
마 16:24절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사람의 아들을 배반하여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기록된 대로 가는 것은 예수님 자신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록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나쁜 선택을 하는 유다는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만큼 불행한 자라는 뜻이다.
- 유다는 돈 궤를 맡았기에 그는 돈에 눈이 어두워지기 쉬운 자리에 있었다. 청렴결백한 사람이 못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유다는 그들을 로마로부터 건져내야하는 메시아가 못 미더웠을지도 모르겠다. 즉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못한 것이었을지도- 예수님의 제자로 따르면서도 정말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몰랐던-
-내가 주님 안에 들어오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죄에서 보호가 되는 일이다.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면 이것이 훈련이구나 싶어 잘 견뎌내고 이제는 담대하게 대처하게 된다.
유다는 회개가 아닌 후회와 자책과 두려움으로 죽음을 선택했고, 그것이 결국 스가랴 11장의 예언을 이루게 되었다.
누구든지 잘못된 믿음으로 잘못된 일을 할 수도 있다.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여기는 법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큰 잘못을 했더라도 돌이키고 바로잡아야지 자책과 회한으로 아주 망쳐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고 가롯 유다의 길에 서있지 않은지 살피고 돌이켜야겠다.
자매들이 기도했던 일이 이루어진 일도 있고 오늘은 파티를 해야하는데^^
2018-11-13 23:23:32 | 이수영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 황당한 것을
우습게 생각하고 넘길 수 있는건 어렸을 때 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배워 받아들인 결과라는 생각 하면서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까지 생각하며 각오를 다지게 되네요.
비오는 창밖의 운치있는 모습도
뜨끈한 동태탕도 참 좋아 보입니다.
2018-11-12 10:55:44 | 김혜순
세상의 유물론적 가치관과
하나님의 말씀/창조 등을 구별하여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이
엄습하네요!!
구원을 넘어서 바른 가르침으로
배우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저, 가정, 교회의 의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8-11-12 10:19:34 | 김세라
완전한 진리안에 거한다는것
나를 지으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뜻데로 순복하며
살아가는것이 가장 큰 행복이요 기쁨임을...
목요자매모임에 오시는 분들은 진정한 가치를 깨달은자로
진정한 행복자입니다.
2018-11-11 22:39:08 | 김경애
인간의 삶이 발전할수록 논리가 점점 세를 얻는다고나 할까요?
생활 모든 부분에서 (사회, 교육, 과학, 인문학등 )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이 희귀해 지는 세상이네요....
연휴가 되면 온나라의 차와 비행기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당연해지는데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으면 좋으련만.
바른 가치관을 서로 교제하는 자매모임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부모가 바로 서있어야 자녀들도 바로 서기가 쉽지요.
참여하시는 자매님들께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자매님들이 참여하기를-
2018-11-11 16:02:07 | 이수영
이번 모임엔 인천 주안동에 거주하시는 박영숙 자매님께서 자매모임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저 말씀 안에서 오롯이 감동 하나로 걸음 하셨다고 고백하시는 자매님께서는 목요일에도 일찌감치 나오셔서 체리티홀에서 열심히 말씀듣기에 집중하시다가 자매모임에 동참하셨는데요, 완전한 진리 안에서 더욱 풍성한 교제를 나누는 지체로서의 돈독함이 더해지길 바래요^^*
최병옥, 김경애 자매님께서 비 오는 가을오후 제법 싸늘한 몸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최고의 밥상을 준비해 주셨어요.
정성껏 준비해 오신 자매님들의 반찬들까지 더해져 거한 뷔페가 차려졌답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도 1층 체리티 홀에서 가을의 막바지 정취를 함께 만끽하며 완전한 진리에 대해 함께 나누길 원해요^^ 샬롬♥
2018-11-11 02:01:02 | 장영희
완전한 진리제2부 최초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5_ 다윈과 베렌스타인 곰의 만남 〔다윈주의〕는 과학적 증거보다는 무신론적 철학의 가정(假定)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_ 휴스턴 스미스(Huston Smith) "신앙에 대해 처음으로 의심을 품게 한 것은 바로 다윈주의였다“ 「하나님, 그 증거」의 저자 패트릭 글린이 회상하면서 한 말이다.결국 다윈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굳이 하나님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기원에 관한 이론은 세계관 형성에 토대 역할을 한다는 점과 각 세계관은 창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그것이 타락과 구속의 개념을 좌우한다는 것을 여러 철학자들의 주장에서 엿볼 수 있다.따라서, 기본적으로 기원을 둘러싼 논쟁을 파악하고 그것이 현대의 사조에 미치는 폭넓은 영향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과학이라는 상표로 포장돼 팔리는 것 가운데 많은 것이 실제로는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 유물론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개인적 “가치”의 표출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판을 뒤집기 위해 사실/가치의 이분법을 이용할 수 있는데, 진화 자체가 사적이고 주관적인 “가치”의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다윈의 핀치새들에서 부리크기의 변화는 새들이 불리한 환경아래서도 핀치새로서 생존하게 하는 하나의 순환적 변이였다. 이처럼 다윈주의 패러다임에 따라 엄청난 양의 연구조사가 진행되었으나 성공사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초파리의 돌연변이와 같이 “고정된 한계” 내에서 이루어진 변화에 국한되었을 뿐이다.다윈주의가 적자의 생존은 설명할지 몰라도 적자의 도래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화의 그림자체는 다시 그려져야 한다. 순조롭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생명 형태의 연결고리 대신에 변덕스럽게 건너뛰는 과정으로 변형되어야 할 것이다. 이 새로운 견해는 단속평형설이라 불리는데, 난데없이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는 간헐적인 분출로 인해 전반적인 안정기조가 깨어지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다윈주의는 영향력 있는 어떤 책의 제목처럼「위기에 처한 이론」과 같은 상태다. 여기서 우리가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처럼 역전 가능한 조그마한 변화에 설득당하는 이유는, 이미 다른 근거- 철학적 근거-에 의존해 자연만이 생명의 모든 형태를 창조할 역량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신념에 설득 당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은 이미 철학적 자연주의에 설득당한 셈이다. 다윈의 경우, 진화는 특정한 이론의 문제라기보다 하나의 철학적 입장이었음이 확실하다. 철학이 사실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떤 이론이든 자연주의적이지 않으면, 그 가치 여부를 고려하기에 앞서 아예 배제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즉 자연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면 어떤 메커니즘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경험론적 발견이기보다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 추론된 것이다.철학적 자연주의자들이 과학의 정의 자체를 좌지우지 하는 것을 왜 우리가 묵인해야 하는가! 과학철학자 마이클 루즈가 시인한 것처럼 진화는 정말 “ 단순한 과학이상의 것” 이라는 것과 “진화는 일종의 세속적 이데올로기요 기독교에 대한 노골적 대안으로 생겨난 것이다” 라는 고백이 집중할 부분이다.그렇담 그리스도인들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싸움의 핵심은 우주가 지적 행위의 결과인지 맹목적이고 비인지적인 힘의 결과인지 여부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주에 지적 설계를 지지하는 증거가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기독교를 객관적 진리로 고려할 여지를 철저하게 막은 장본인은 바로 다윈주의였다. 종교를 가치 중심의 영역에 밀어내고 비이성적 신념으로 규정했다. “과학은 유전자와 세포 같은 물질세계를 다루고, 종교는 가치와 의미 같은 영적 세계를 다룬다”고 진술한 어느 학생들이 사실/가치의 이분법을 흡수한 방법은 결국 ‘과학은 사실에 관한 것이고, 종교는 가치에 관한 것’이라는 입장에서 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종교를 진리나 증거의 문제와는 관계없는 비인지적 범주로 축소시키려 할 때, 우리는 이미 싸움에서 진 것이나 다름없다.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활동의 증거를 제공함으로서 기독교를 참된 지식의 지위로 회복시키고 공적 담론의 장에서 의석을 되찾게 해준다. ♥자매님들 나눔 이야기♥ * 성경의 창조교리에 대한 전반적인 바른 이해가 아니라 유물론적인 세계관이 신앙의 영역에 침투하여 고스란히 스며들었기에 여전히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우리 믿음의 의미와 목적(하나님의 보편적 가치)을 실천하는 것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안정과 평안을 추구하는 모습이 발견 된다. * 학교에서 배웠던 과학적 근거에 대한 지식을 성경으로 다시 씻고 정립하는 시간이 필요 했듯이, 성경적인 근거로 진화론을 반박하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시간과 노력을 써 키워야 한다. * 철학자들의 유물론적 입장이 좌성향의 이념까지 도래하는 결과를 낳은 듯하다. 철학자들의 근간을 허물기 위한 물고를 그리스도인이 터야 한다. * 반종교적 동기가 과학적 작업을 하도록 했다는 부분에서 마지막 남은 기독교가 그들의 목표라는 사실을 짐작하면 교회의 역할이 막중함을 느낀다. *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믿음이 스스로가 실재적 진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지하고 그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 우리 아이들이야 말로 전쟁터의 ‘영적 군사’ 임에 다를 바 없다. 학교에서 거짓을 배우고 시험을 치르는 현실과 정정하여 사실을 배우고 재 정립 할 혼란을 고스란히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 아이들을 위한 뜨거운 기도가 필요하다. * 아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접근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 부모들이 공부하며 논리적인 지식을 준비해야 한다. *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인식된 의미를 잘 파악하고 사용해야 하는 단어 선택의 중요성도 깨닫는다. * 과학자들의 양심적 선언이 공공연히 있었음에도 여전히 공교육에서 파워가 있는 진화론은 ‘기독교의 대안’ 이라고 본문에서 표현하는 바처럼, 이 시대 기독교의 긴 영적 전쟁의 대상임을 실감한다. * 성경을 배울 때 성경공부 위주의 학습이 아닌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학습이 매우 중요함을 느낀다. * 우리의 믿음은 과학적 주장과 세계관적 함의를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대안을 간구해야 한다. * 베렌스타인 곰을 책으로 보면서 미리 인지 하지 못했던 위험한 요소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교묘한 영적 침투를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느낀다. * 우리는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고난이 될 수 있는 세대다. 우리가 믿는 성경과 우리가 배우고 깨달아서 고백하는 믿음을 우리 삶의 각 영역에서 지키며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 창조질서 곧 진리를 지켜내는 것이다. “ 어려운 과학 이야기가 자매님들의 호기심과 열정을 통해 제법 자연스러운 토론이 되고, 무엇보다 어처구니 없이 허술한 진화론의 유물론적 철학 앞에 농락당한 기독교 진리를 생각하며, 억누르던 화도 표출하고 공감과 위로와 다짐의 시간을 갖게 된 듯 합니다.책장을 넘길수록 우리 그리스도인의 필독서라는 확신이 더해지는 ‘완전한 진리’입니다.“
2018-11-11 01:51:24 | 장영희
안녕하세요?
이번 주 내용이 대단히 중요해요.
감사해요.
샬롬
패스터
2018-11-05 16:44:24 | 관리자
이렇게 자유롭게 모이고 의견을 나누고 같은 생각을 나누며 생활과 밀접한 지식들을 견고히하는 자매모임이 참 귀합니다.
조금 딱딱한 내용인데 참 잘 풀어 나가네요.
늘 기록과 사진을 통해 공감하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자매님 모두가 성장해 나가는 중이네요-
2018-11-05 08:59:53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