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에 앞서 성경이 있다”
>(12월 12일 and 19일 채리티홀 모임)
> 간극 이론에 대한 성경적 입장에 대해 나누어 보았습니다.
18세기 후반 들어 인본주의/이성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과학이라는 이름의 진화론이 등장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특별 창조 등은 큰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만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계속된다는 균일론을 주장하며, 우주의 생성 연대를 약 6,000년에서 수십 억 년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에 기독교의 근본 진리들이 위협을 받게 되었고 그때부터 시간의 시작이 언제인가에 대한 논쟁은 학자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보통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도 뜨겁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우주 생성에 대하여 진화론자들의 몇 십억 년 주장과 성경의 몇 천 년 주장을 조화시켜 보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졌고,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론은 소위 ‘간극 이론’ 혹은 ‘창조-파멸-재창조 이론“ 으로 불리는 가설입니다.
이 이론은 19세기 말부터 거의 한 세기 동안 많은 보수 크리스천들이 창조론을 지지하기 위해 채택한 것이었는데, 1960년대 이후에 헨리 모리스 박사 등을 중심으로 한 창조 과학자들이 우주의 생성 연대가 수천 년뿐이 되지 않음을 보여 주는 과학적 증거들을 제시하게 되면서부터 지금은 소수의 구세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근본주의 성경신자들이 더 이상 ’간극 이론‘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나눔의 글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과 1장 28절의 말씀을 놓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함을 다시금 깨닫고, 그렇게 하는 데는 성경의 최종권위가 뒷받침해 주고 있음을 안다.
2절에 was를 became이라고 잘못 번역해 상태에서 시간의 변화를 의미하는 단어로 바꿔버림으로,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있었다‘가 아닌,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있게 되었다‘로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내가 믿는 성경은 became이 아니라 was로 되어있다.
28절에 ’replenish’를 살펴보면, 간극 이론의 불성립을 확고히 증명할 수 있다. ‘’re’는 ‘다시’ 라고 배웠기 때문에 별로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고 다시 채우다로 의미를 결론짓는다.
사전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뜻이 그 단어의 근본 어의 이다. 또한 바르게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단어의 용례를 알아야 한다. 영어 단어의 근원과 변천과정, 시대별 용례를 파악하지 않고 20세기 영어 사전으로 17세기 초에 기록된 킹제임스성경을 볼 경우 특별한 구절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 될 소지가 크다.
영어 사전 중 가장 방대하고 단어의 어근과 기원을 자세히 보여 주며 시대별로 영어 단어의 변천을 잘 보여 주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보면 분명하게 ‘replenish’ 의 근본 어의가 ‘채우다’ 임을 보여 주며 그 뜻을 가지 많은 용례를 보여주고 있다. 맨 마지막 뜻으로 ‘다시 채우다’가 있지만 이것은 킹제임스성경출간 1611년 이후 이며 극히 드물다.
옥스퍼드 사전 다음으로 참고할 가치가 있는 웹스터 사전 또한 1828년 웹스터 사전 초판의 용례를 살펴보면 위에서 설명한 근거가 동일하게 적 용 된다.
우리는 그동안 배운 바 데로 성경은 문맥을 봐야 하고, 문자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그에 앞서 만국공통어인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통하여 보여 주신 하나님의 성경보존에 있어 단어선택 즉 ‘번역’ 이 최종권위의 근간임을 확신하게 된다.
요나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에 있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요나서 2장 2절~6의 말씀을 보면 죽었다 살아났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천년왕국에 대한 제대로 된 배움과 이해가 부족 했는데, 그 또한 말씀에서 아버지의 왕국과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짐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말씀을 통해 명쾌히 해결되었다.
기존 교회에서는 구원론을 가장 중요시 한다. 구원 예정론을 가르치기에 확신없는 믿음생활에 대한 맥빠지는 삶이 너무나 힘들었다. 정확한 구원론과 내 믿음의 확신을 찾게 되어 감사하다. 하나님의 미리아심. 기억해야 겠다.
비성경적 관행을 통해 믿음의 고백없이도 유아세례를 주어 천주교인을 만들어 버리는 카톨릭의 행태는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가 진리를 알고 그것을 따르며 또 행함에 있어서는 선한마음 하나일 듯 하다. 우리가 열심히 행하는 가운데 옳은 마음, 선한 마음이 영향력을 일으키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진리이며, 거짓이 없고 일관성을 유지하며 정확하게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다시금 갖게 되었다.
“너희 눈먼 안내자들아, 너희가 모기에는 긴장하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마23:24
“믿음 생활에 있어 정작 비본질적인 것에 목숨을 걸고 판단하며 실족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에 본질에 있어서는 무관심한 안타까운 상황을 종종 보게 됩니다.
비단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요즘 시국관련 보여지는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의 입장과 목소리에서도 볼 수 있지요.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 진리 앞에 가장 긴장하고 바른 분별을 함으로 마땅히 우리의 행로를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서창지역에서 두자매님께서 첫걸음을 해주셨어요. 김동순 자매님과 석영란 자매님이십니다^^
한 주는 푸짐하고 뜨끈한 떡국으로, 한 주는 엄마 밥상으로 우리 자매님들의 영과 혼과 육이 호강을 했습니다.
늘 섬김의 기쁨을 몸소 보여주시는 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자매모임은 오혜미 사모님께서 댁으로 초대해 주셔서 방학식겸 후반기 자매모임 마지막 시간을 사모님댁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한 학기와 일년을 마무리 하는 올해 마지막 시간도 기대합니다~!"
샬롬.
2019-12-21 23:44:36 | 장영희
책 내용이 쉽지 않았는데 교제하며 많이 배웠습니다.
현 시대에서 드러난 것 중에는 하나님과 개인만이 알 수 있는 것 외에는 그 어떤것도 하나님의 인도라고 할 수 없다는 것과 드러난 하나님의 인도는 오직 성경밖에 없다는 것을 결론짓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9-12-21 20:36:04 | 황선연
책 내용이 다소 어렵기도 하였지만 여러 자매님들과 교제하고 얘기 나누는 가운데 조금씩 깨달아졌습니다. 최종적인 결론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로 귀착함에 감사합니다 .
방학이라니 서운하고 벌써부터 번개모임 을 기다립니다~~~
몸이 아픈 자매님도 있고 가정에 아픈 사람도 있고 개별적 어려움도 있었지만 모이면 즐거운 교제로 하나님과 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되니 기쁨입니다~~~^^
2019-12-20 21:24:29 | 정소희
10명도 안되는 모임이지만 내용은 정말 알차네요^^
늘 맑은 정신으로 깨어서 생활해야 겠네요~
귀한 글 감사합니다!!
2019-12-20 13:20:58 | 김세라
구구절절 명언입니다.
2019-12-20 10:30:33 | 이청원
2019년 연말을 맞아 무엇보다도 사랑침례교회 성도님들 건강,안전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아픈 가족을 위해 드러내지 않고 혼자 기도하고 있을 성도와 함께..주인이신 예수님께 기도 드립니다.
2019-12-20 09:23:22 | 목영주
자매님들이 서로서로 기쁨으로 참여하고 완성해 가는 우리 모임이 참 귀하고 아름다워요^^
방학동안 번개로 만나 교제하는 시간을 통해 같은 말을 하고 이해하며 공감하는 시간을 지속하길 원하지요^^
2019-12-19 22:38:37 | 이수영
구리, 남양주 자매모임
교 재: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15)
장 소:구리시에 사시는 이 수 영 자매님
일 시: 2019년 12월 19일 목요일 오전 11시
PART 15: 요약과 부록
●본문 요약
☞하나님의 인도가 아닌 것
하나님의 인도는 성경 밖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더 이상의 계시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권고를 가지고 있다. ‘은밀한 혹은 계시되지 않은’ 하나님의 뜻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은 그 일이 일어난 후에야 알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인도는 , ‘인도하시는 느낌’, ‘화평의 느낌’, 혹은 다른 그 어떠한 느낌처럼 우리가 ‘느끼는’ 무엇이 아니다. 감정은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 나름의 역할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감정의 역할이 아니다. 올바른 하나님의 인도가 항상 느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잘못된 인도도 좋게 느껴질 수가 있다. 그러나 느낌은 느낌일 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느낌과 경험을 엄청난 신비로 포장한다. 그것을 하나님의 메시지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하나님의 인도인 것
하나님의 인도에 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계속해서 신뢰하면서 성경과 일관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으려면 성경을 잘 알아야 하고, 올바른 해석과 적용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성경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도 성경을 오용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학 장르와 같은 것들이, 역사적, 문법적, 문맥적 내용들과 함께 성경을 올바르게 ‘읽는 일’에 온전한 역할을 다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경의 그 어떠한 부분도 성경의 다른 부분이나 성경 전체의 내용과 모순되게 해석될 수 없다. 66권의 본질적 통일성은 언제나 지켜져야 한다. 성경 계시의 유기적 성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도 해석에 오류가 생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동시에 혹은 동일하게 명쾌하게 계시하시지 않았다. 구약성경에서 배아의 형태로 주어진 진리들은 신약성경에서 온전한 열매로 성장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즐거워 할 수 있는지 지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규칙은 무엇인가?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지 지도해 주는 유일한 규칙이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어떤 결정을 내리면서 거기에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저울질해 볼 때, 우리는 지혜와 겸손 그리고 분별력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성과 신앙이 또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보았고, 이웃을 사랑해야하기 때문에 자기 부인을 하며 어떤 자유들은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음을 보았다. 탐심, 탐욕, 야망 그리고 교만과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의 압력에 의해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개인의 정직성도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의사 결정을 할 때에 작용하는 요소이며, 우리 모두는 그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책임이 있다.
☞꿈에 관한 스캔들
꿈은 그저 인간이 공통적으로 하는 경험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꿈은 그 어떠한 현실과도 유사성이 거의 없다. 꿈은 종종 별스럽고 기상천외하다. 꿈은 심리적으로 신비로운 형상이기 때문에 냉철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심지어 꿈꾸는 사람 자신도 분별할 수 없는 수많은 원인에 의해서 꿈은 촉발될 수 있다. 거기에는 아무런 규칙도 한계도 없다. 이 사람의 꿈이나 저 사람의 꿈이나 다 똑같이 의미가 있거나 혹은 없다.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인간의 다른 심리적 경험들, 예를 들어 육감이나 자신의 역사를 다시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기시감 같은 특이한 기분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주권적이시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그 어떤 것도 사용하실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자체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다. 그것이 마치 영감인 양 신성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해 주신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왜 꿈을 꾸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라고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라는 것이다. 꿈을 꾼 사람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분명하다고 아무리 확신한다 해도 그것은 상관없다. 모하메드를 포함한 역사 속의 모든 주요 이교들의 지도자의 경우도 다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믿지만 그들은 전부 다 틀렸다. 그것이 바로 2천년의 역사 동안 계속해서 정통 기독교가 내려온 판결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시적 꿈을 수용하는 것이 현대 교회의 수치이자 스캔들인 것이다.
●자매님들의 나눔들
☞ 이 책을 마무리 하면서 그동안의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모순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주님을 믿으면서도 주님의 자녀라 했음에도 내 현재의 모습이 자녀답지 못했던 부조리가 내게 참 많았다. 과연 성경을 믿고 따르는 삶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름 똑똑하다 생각하여 교만 가운데 있었던 모습이 참 어리석게만 느껴진다. 이젠 좀 더 성숙해져야 할 책임 의식을 더 느끼고 갖고 앞으로 꾸려갈 것이다. 선택받은 소수, 즉 선지자라 스스로 일컫고 사도라고 불리길 원하는 지도자들이 스스로 우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가 다시 일어나고 그것으로 성도들을 혼란으로 괴롭히고 속박으로 밀어 넣고, 퇴보하도록 성도들을 이끌고 있는 이 현실에 참담함을 느낀다. 깨어 있어야겠다. 주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요약하면 올바른 지식을 기반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신뢰하며 일관된 사고와 행동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믿고 나의 삶 가운데 함께 해 주시는 것을 인정하며 우리에게 주신 폭넓은 올바른 자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올바른 분별력을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영화롭게 할 것인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지침서는 곧 신구약 성경이다. 예언에 대해서는 바르게 분별하도록 설교하는 우리교회를 만난 것이 감사하고 일반적인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우리교회가 올바른 교회에 속해 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 솔직하게 자신을 오픈하고 나누는 것을 통해 공감을 나누며 변화해 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방학이 아쉽기만 하다.
☞하나님의 뜻, 인도하심 등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을 성경을 기반으로 한 교재와 토론을 통한 유익한 교제 속에서 모든 게 감사로 이어지는 시간들이었다. 앞으로도 자매모임을 통해 좋은 교제를 이루고 좀 더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성숙한 성도가 되기를 스스로 바란다.
☞하나님의 인도라고 믿고 신학교 나와서 목사가 되고 교인들 앞에서 3년간 설교한 여 목사가 남편과의 불화로 한 집 두 살림을 하면서 교회에 와서 남편을 앞에 두고 설교를 하니 얼마나 위선적이던지..., 분명 처음에는 뜨겁게 성령 충만하여 신학공부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만해지고 말씀의 변화가 없이 울리는 꽹과리 소리만 내는 목사였기에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소식을 어제 미국 소도시에 사는 언니에게로부터 들었다. 매 주일 설교 준비를 하나님이 직접 알려주셔서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때 당시에도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의심스러웠는데,,,,,,미국의 많은 목회자들의 영적으로 타락한 문제, 돈을 전적으로 밝히고 좋아하는 문제, 성적으로 타락한 문제들 등 다닐 교회가 없음을 한탄하는 언니를 보면서 정 동수 목사님을 만난 나는 너무 감사하고 기쁜데.....먼 미국에서 광화문 집회와 정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언니가 주변의 몇 사람이라도 모여서 정 목사님의 설교를 함께 듣고 나누고 교제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하나님의 인도’를 오늘로 마감하면서 우리 마음을 올바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조금이라도 성경의 기준을 놓치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 질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고 우리 삶에서의 신앙생활을 되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 목사님의 가르침과 더불어 우리의 영적인 삶이 그나마 많이 성장되었다고 생각된다. 자매모임을 매 주 하면서 한 분, 한 분 정이 들고 이제는 이대로 세월이 지나갔으면 하고 바래본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고난도 같이 겪겠지만 우리 자매님들과 하나란 생각이 든다.
2019-12-19 22:21:39 | 우종미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나 성경 역사를 통해서도 진실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실을 알았을때 돌아설 수 있는 의지도 개개인의 성도에게 필요할 거 같습니다^^
기록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2019-12-10 07:57:03 | 김세라
어려운 주제를 공부하고 발표하고 메모하고 익히는 자매님들의 고상한 시간들이 너무 뿌듯하네요.
게다가 장영희 자매님의 레포트 수준은 정말 탁월해요.
시간을 이렇게 의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여러방면으로 애쓰시는 형지숙 자매님께도 새삼 감사하게 되네요.
우리 자매님들의 신실함과 정성어린 마음씨로 매주 매주 귀한 한 모임을 갖게 되네요.
공부하고 싶고 교제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한 목요일 11시는 항상 열려있습니다
2019-12-09 14:21:14 | 오혜미
흔치 않은 주제로 교제를 나누셨네요.
진지하게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번주 참여 인원이 가장 많아 보이는데 시각적 착각일까요? ㅎ
2019-12-08 16:05:43 | 김혜순
자매모임에 참여하는것이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될뿐아니라 자매들과의 연합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요.
물론 시간이 허락되는 분들에게 주어진 특권이지만요^^
새롭게 더해진 자매님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2019-12-08 08:25:24 | 이수영
자매모임- ‘에라스무스’의 재발견
> 근본주의적 크리스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에라스무스에게는 분명 완전치 못한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일대기를 보았을 때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의 섭리과 계획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 에라스무스를 인본주의자라 불렀던 그 시대의 인본주의자의 정의내리는 관점은 오늘날 사람을 하나님 위에 놓으며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과 그 개념의 차이가 있다.
> 카톨릭 교회의 사제가 된 에라스무스는 카톨릭교회가 그의 몸을 구속하고 있었으나 그의 영과 혼은 그런 틀에서부터 벗어나 언제나 자유로웠다. 본인이 속한 로마 카톨릭교회의 부조리와 무분별한 행동에 대해 반기를 들고 신랄하게 비판하며, 로마 카톨릭교회의 공공연한 사악함에 대항하여 저술한 ‘야만인들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소책자는 실제로 이런 것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그의 많은 작품들 중 하나이다.
“로마 교황의 이 같은 독재는 기독교를 좀먹는 해충”이라고 말했다.
> 에라스무스를 논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그가 어려서부터 성경의 기초를 쌓았다는 점이다.
라이온의 저서 기독교의 역사라는 책에는 젊었을 때부터 에라스무스는 성경을 매우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났으며 평생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했다라고 나와 있다.
> 성경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종교개혁 이전이나 이후에 로마 카톨릭교도들에게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특징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에라스무스의 믿음과 영은 천주교보다 성경에 더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라스무스의 성경관은 그의 진술문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연약한 여인이라도 복음서와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스스로 읽고 깨닫기를 바라며,,,,쟁기질하는 소년이 쟁기질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하고,,,,, 죽음이 다가올 때 성경 말씀을 읽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이 귀한 말씀은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죽으셨다 다시 일어나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여주며, 그분이 바로 우리 옆에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이와 같은 진술문은 결코 16세기에 살았던 ‘천주교 인본주의자’의 확신이 아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성경말씀을 전해 주려는 매우 고귀한 생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 에라스무스의 출간된 그리스어 신약성경 첫 번째 판은 그리스어 본문과 라틴어 역본이 동시에 들어간 두 가지 언어로 구성된 성경 즉 ‘디아글롯’ 이었다.
두 번째 판은 첫 번째 판을 조금 개정한 것으로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의 근간이 되었다. 세 번째 판은 소위 ‘사도 요한의 쉼표’라 불리는 요한일서 5장 7절 말씀을 삽입시킨 것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이 구절은 오직 킹제임스 성경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삼위일체에 대한 가장 명백한 구절이다.
> 에라스무스가 로마 카톨릭 교회에 가장 못마땅하게 여긴 것은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바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와 더불어 그 교회의 신조들이었다. 그는 분명히 구원은 각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 문제이며 오직 믿음에 의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교회의 어떤 의식도 개인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하지 않다고 담대히 외쳤다.
이처럼 에라스무스가 충실한 카톨릭교도였다는 비평가들의 말을 수긍하기에 로마카톨릭교회에서 보는 그는 너무나 형편없는 본보기였다.
> 에라스무스는 결코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인본주의자’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현시대의 ‘인본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성경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자매님들 나눔 이야기 *
> 마치 드러난 역사를 다시 드러내는 시간 같다.
> 우리나라는 사실 신학역사가 없다. 미국의 신학역사를 우리는 보고 접하고 있고,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 바른 말씀을 보면서 기존 말씀을 내려놓는 것 하나도 내 힘으로 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 바른 성경을 보면서 육체의 자유함이 아닌 말씀 안에서 자유함이 이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 예레미야 33장 3절에 기존에 봤던 성경에는 ‘부르짖으라’ 고 되어있지만 킹제임스에는 ‘부르라‘로 되어있다. 말씀대로 주여삼창을 하고 주여 주여 부르짖어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줄 알았던 때가 있다. 이만큼 말씀이 곧 교리가 됨을 실감한다.
> 성경이 다르면 교회의 문화가 달라질 수 있다. 성전, 성직자의 개념이 없이 우리는 예배당(강당), 동일한 사역자 이다. 이것이 성도들의 자유함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 에라스무스를 보며 성경보존에 있어 다양하고 완전하지 못한 사람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용하심을 들여다 보게 된다.
그가 그리스어 신약성경 본문을 편집하는 동안 그 본문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 같은 그의 확신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만, 때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이나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에 답을 다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전적인 믿음이 있다. 완전한 성경을 보존해주신 믿음, 그 성경이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내 안의 믿음이다.
부천 소사에서 오시는 박경미 자매님께서 자매모임에 첫 걸음을 해주셨어요. 세 자녀를 두고 계십니다.
최근 새로 오신 우리 자매님들께서 얼마나 교제시간에 열심이신지, 모두에게 귀감이 됩니다.
두 자매님께서 또 얼큰한 동태찌게로 제법 추운 날씨에 움츠려드는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셨네요.
반찬도 뚝딱뚝딱 멋지십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따르는 믿음은 정말이지 보이는것으로 걷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걷는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 입니다. 우리안에 드러나는 갈등과 논쟁의 대다수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말입니다."
샬롬.
2019-12-08 00:23:04 | 장영희
교재, 교제의 진수(?)를 보여주고 계시는 지역자매모임 자매님들, 참 보기좋습니다.
어떤 종류의 복음 사역이든 그것과 관련해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알려주는 유일한 규칙은 성경이다, 아멘!
2019-12-06 23:50:44 | 이청원
일주일동안 기다려지는 자매모임~ 연애하는 심정으로 달려갑니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말씀으로 살고자 애쓰는 마음들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이삭의 배우자로 리브가의 선택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인을 바랬던 적이 있는데, 우리에게 더 자세하게 명시된 성경과 맑은정신으로 선택할수 있는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깨닫습니다.
조금씩 선명해지는 믿음의 길을 깨닫게 되어 감사합니다.
2019-12-06 17:57:36 | 정소희
자매님들의 교제를 보면서 교회 안에 바람직한 또 하나의 작은 교회를 봅니다.
2019-12-06 16:28:09 | 김혜순
일주일에 한번씩 자매님들과 교제를 나누다보면
한 주가 참 의미있어 집니다.
내가 한 이야기들 뒤돌아서 점검해보고
자매모임때 나눠야 할 이야기들을 책을 통해
생각해서 정리해보고,
거기에다 내가 모자랐던 사고의 부분들을
자매모임하면서 사고의 확장이 되니,
참 유익한 모임임을 깨닫게 된다.
앞으로도 교제를 통해서 좋은 성품으로
성화되길 기도해봅니다.^^
2019-12-06 14:50:50 | 우종미
날이 추워지고 연말이 다가와서인지..추운날 가족을 위해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 우리 형제자매님들께 그냥 고맙고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더욱더 말씀안에서의 자유로움으로 힘얻어..세상속에서 열심히 나아가겠습니다~
2019-12-06 12:44:26 | 목영주
처음으로 믿음 생활을 우리교회서 시작한 자매님들은 일반교회서 힘들어 했던 일들을 들으면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에 눈이 동그래지곤 해요.
우리교회 더해진 많은 성도들이 자기도 모르게 몸에 익숙한 패턴을 따른 언행을 볼 때가 많이 있지요.
비운 컵에 담지 않고 반쯤 담긴 컵에 새물을 담았다고
표현하게 되는데 다행히 우리 자매님들은 예전것을
버리고 잘 안착하고 있어서 예쁘지요.
2019-12-06 12:38:39 | 이수영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
Part 14. (p211-226) 단순한 정당성의 차원을 넘어서
◉ 본문 내용 요약
어떠한 행동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좋은 의사결정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요소들이 고려되어야 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마저도 우리의 최종적 호소가 될 수 없다. 사도바울이 지적한 점이 바로 그것인 것 같다.
“모든 것이 내게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며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내가 어떤 것의 권능 아래에도 놓이지 아니하리라.”(고전6:12)
* 다음의 예시를 통한 의사결정의 복잡성
1.의사결정과 양심의 가책
로마서 14장에서 바울은 너무 민감한 그리스도인들(연약한 형제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들에 대해 불필요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일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규칙을 만들어 낸다.(이것을 먹으면 안 된다. 저것을 마시면 안 된다. 그곳에 가면 안 된다 등.)
우리가 의사결정을 내릴 때 이러한 점을 고려할 수 밖에 없으나 누군가가 고기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고기를 주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자유롭다.
인간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는 하나하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 자유를 사소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바울이 지키고자 하는 바로 그 자유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유와 무관심의 문제- 연약한 형제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사랑이 결여 되었거나 판단과 무시의 대우를 받지 않도록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와 교제를 유지시켜 주는 은혜로운 방식으로 약한 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양심의 기준을 다른사람에게 강요하려고 한다면 즉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양심을 자기 자신의 미성숙한 사고에 묶어두려 한다면 교회는 즉각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2.의사결정과 결혼
합법적으로 결혼이 가능한 수많은 후보들 가운데 결혼상대를 선택하는 것은 복잡한 의사결정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하나님의 계시의 객관적인 사실들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성경이 잘못 적용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결혼과 관련된 하나님의 인도에서 많이 오용되는 본문인 창세기 24:12-20의 경우(이삭의 결혼문제)
①일상적이지 않은 섭리를 묘사하고 있다.
②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 때문에 특수하게 주어진 상황이다.
③이삭은 아브라함 언약의 직접적 후계자로 언약의 성취를 위한 특수한 상황이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입장에 있지않다. 오늘날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보증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적 차원에서도 이 본문은 우리가 따라해야 할 모델이 아니다.
3.의사결정과 복음 사역
내가 해외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가? 설교자가 되어야 하는가? 선교나 목회를 고려하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복잡성을 가진 의사결정이다.
이 문제를 가지고 있는 공통된 감정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복음 사역을 하기를 원하신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그들 모두 목회자나 선교사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하는 내적 열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와 같이 주관적인 감정이 종종 다른 모든 고려 사항들을 지배해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감정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해석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라고 확신하며 때론 그러한 확신이 너무 강해 다른 견해를 제시할 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우리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원칙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를 지도해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어떠한 규칙을 주셨는가?” 라는 질문이 던져질 때마다 우리는 웨스트민스터의 고백으로 대답한다. “구약과 신약성경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즐거워할 수 있는지를 지도해 주는 유일한 규칙이다”(소요리 문답2번)
어떤 종류의 복음 사역이든 그것과 관련해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알려주는 유일한 규칙은 성경이다.
바울은 몸 전체의 유익을 위해 다른 은사를 받은 사람들(섬기는자, 위로하는 자, 돕는 자, 구제하는 자, 지도자, 긍휼을 베푸는 자들)을 준비해 주신다고 한다.(롬12장)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은사들과 일치하는 그 어떠한 정당한 ‘소명’으로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책임이 있다. 기독교 사역에 대해서 가지는 단순한 느낌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신성시’해서는 안 된다.
직분에 반드시 필요한 자질,기술,은사,너그러움,성숙함,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흠이 없고 성경을 잘 알아야 하고 가르칠수 있으며 최근에 회심한 사람(초신자)은 안 된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판단할 수 있는 자질을 충분히 갖춘 사람들의 면밀한 조사를 통과해야 하며 어떠한 경우라도 현실주의와 겸손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땅히 생각할 것보다 더 높이 자기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을 나누어 주신 대로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라”(롬12:3)
이제 하나님은 교회가 그들 자신의 설교자를 선택할 책임을 지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분명한 지침을 따라서 적절한 은사를 가진 설교자들을 선택하기를 기대하신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는 사람을 강단 사역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부름’에는 두가지 중요한 강조점이 있다.
첫째는 복음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름과
둘째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섬기라는 똑같은 부름을 받았고 누가 더 낫거나 더 못한 경우가 없다.
교회는 알맞은 자질의 사람을 이곳 저곳으로 부를수 있는데 그 어떠한 경우든 이것은 교회의 부름이라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이것이 성경적 자유의 영역안에 있는 일이므로 거룩한 부름인 것은 사실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그리스도인 어머니의 일도 거룩하며, 화형당하는 그리스도인 순교자도 거룩하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며 복잡한 경우가 많은 의사결정의 임무를 직면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적인 기도,이성,신앙,지혜,형제의 사랑,겸손, 그리고 자기 부인을 실천하게 해주시기를 바란다.
◉ 나눔의 글
1. 의사결정에 있어서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고정된 좁은 틀이 아니라 지성과 감성을 사용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율법주의가 아닌 오직 주 예수님께서 열어주신 영혼의 자유를 누리며 바른 말씀의 범위 안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2. 20대 때 잘못된 성경지식으로 현상만 보고 주님을 증명하려고 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구약시대에 사용되었던 사람들을 오늘날 내게 적용하며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람인 양 나를 위해 애쓰고 살았던 무지와 어리석음속의 과거 삶들을 되돌아 볼 때 내 자신의 죄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시대적으로 잘 분별해서 이해하고 나의 사고가 그 진리들을 추구하고 탐구하는 삶으로 바뀔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이 모임과 좋은 책들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아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3.‘하나님의 인도’ 이 책은 믿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꼭 한번은 읽혀져야 할 만큼 좋은 내용인 것 같다.
책은 갈무리가 되었지만 다시한번 정독하여 읽고 싶다.
우종미 자매님표 셀프 김밥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먹을 때면 그 마음을 먹는 것 같아 먹기도 전에 배가 부릅니다.
너무 너무 맛있었어요. 감사합니다.^^
2019-12-06 12:14:20 | 황선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