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어찌표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거짓은 언론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진실을 알려면 찾아서 보아야 하는 현실
정말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이 거대한 거짓의 비늘이 벗겨지기를 기도합니다...
2019-08-27 11:11:15 | 최지나
세상이 거짓말의 산이다.
이제는 국민이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또 넘어가면 답이 없다.
어젯밤도 붉은 자들 제거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국민들이 깨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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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개선 효과 역대 최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지난 2분기 상·하위층 간 소득 격차가 역대 2분기 중 최악을 기록했지만 청와대 경제수석은 "소득 개선에 대한 정부의 정책 효과가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이토록 사실과 정반대 주장을 할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는 최하위 20%층의 소득이 1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점을 근거로 들었지만, 소득 증가액은 1년 전 대비 600원, 증가율로 치면 0.04%에 불과하다. 그것도 일해서 번 근로소득은 15%나 감소했는데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준 게 19% 늘어나 겨우 현상 유지를 했을 뿐이다. 그 결과 상위 20%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5분위 배율은 5.3배로 증가, 2분기 기준으로 통계 작성 후 최대를 기록했다. "정책 효과가 역대 최고"라니, 그 정책은 '빈익빈 부익부' 정책인가.
앞서 청와대 산하 소득주도성장특위는 소득 40~80% 계층의 소득증가율이 전체 평균치(3.8%)를 상회한다는 점을 근거로 경제가 '중산층 성장형'으로 변화했다고 했다. 그러나 국제 기준으로 산출한 중산층 비중은 문 정부 출범 후 2년 사이 63%에서 58%로 5%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전형적인 중산층 일자리인 제조업 일자리가 2년 새 15만개 줄고, 주 36시간 이상 취업자가 1년 새 38만명이나 줄었는데 중산층이 늘어났다는 말이 나오나.
정부·여당은 불리한 진실은 외면하고 숫자들을 짜깁기해 엉뚱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1년간 '재정 긴축' 탓에 경제에 부담을 줬다"고 했다. 2년 연속 초대형 '수퍼 예산'을 짜고 추경도 세 차례나 편성해 세금을 원 없이 펑펑 쓰고도 '긴축'을 했다니 아연해질 따름이다. 세금을 퍼부어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리스·아르헨티나 같은 만성 부실 국가가 왜 생기나. 세수에는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금리가 역대 최저치에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 적자 국채까지 대량으로 찍어 재정 여력까지 바닥을 내면 나중에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대응할 수단이 없게 된다. 나라 살림의 근간을 흔들지 말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26/2019082603014.html
2019-08-27 10:56:50 | 관리자
조로남불과 함께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자신이 그동안 했던말에 반한 행동들을 지적하는 말이다
남을 판단할때는 얼마나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지
그 기준으로 자신을 보면 정말 어떠할까?
공의의 하나님앞에 서면 내가 다른사람을 보는 그 동일한
기준으로 나도 보실텐데.
어제의 말씀이 생각난다.두려움으로 거룩하게 살자.
내가 남을 판단하는 것 만큼만 살자.
2019-08-26 17:42:45 | 최지나
인간은 나쁜것은 그대로 빨리 배운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배운다
조선시대 영조 탕평책으로 인재를 고루 등용했고
자기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왕으로 알고 있는
영조 재위기간도 가장 길었던 왕이었다
그시대나 자금 현재나
내로남불은 여전하다
어떤 조로남불이 터질지 양파의 속을 알수가 없다
위선과 교만을 가장 미워하시고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더하시는 주님께
국가의 안위를 맡깁니다 보호하여 주시고
지켜주소서
위선자는 자기 입으로 자기 이웃을 망하게 하나
의인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출되리로다. (잠11:9)
2019-08-26 15:32:50 | 유계월
안녕하세요?
하나님과 사람이 모두 싫어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크게 저주를 선포한 그룹이 바로 위선자 그룹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위선을 버리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요즘 위선의 극치를 보여 주는 사람이 등장해서 조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하네요.
우리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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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의 땅의 歷史] 금주령 어긴 자는 처형하고 자신은 술을 마셨다
[178] 개혁군주 영조의 '내로남불'
등극한 지 만 2년째 되던 서기 1726년 10월 13일, 조선 21대 왕 영조가 종묘에 행차했다. 선왕 경종 삼년상을 마치고 신위를 종묘에 모신 영조는 이날 오후 창덕궁 인정전에서 3대 국정지표를 발표했다.(1726년 10월 13일 '영조실록') 좌의정 홍치중(洪致中)이 대독한 국정지표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계붕당(戒朋黨)이다. 편가르기 때려치우고 정치 똑바로 하라는 주문이다. 둘째는 계사치(戒奢侈)다. "금과 옥은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으니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아끼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계숭음(戒崇飮)이다. "술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광약(狂藥)이니 엄금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날부터 1776년 영조가 죽을 때까지 50년 동안 조선은 화합의 정치와 검소한 도덕적 삶과 주정뱅이 없는 세상이 됐다? 그럴 리가 없었다. 문제는 입으로 내뱉은 도덕률 뒤에 숨은 위선(僞善)이었다.
18세기 조선의 가난과 사치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가난하게 살았다. 아시아 요업산업을 선도했던 조선은 전쟁 때 일본군에 도공들을 집단으로 빼앗겼다. 농사지을 땅은 급감했고, 나라 재정도 엉망이었다. 한번 파괴된 기반시설은 회복이 느렸다.
세월이 흘러 숙종(재위 1674~1720)대가 되니 태평성대가 왔다. 민간 생산이 서서히 늘고 이에 따라 상류층이 부의 상징으로 사치를 부릴 그 무렵, 영조가 등극한 것이다.
서기 1726년 음력 10월 13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영조가 3대 국정지표를 발표했다. 당쟁을 금하고 사치를 금하고 술을 금하여 나라를 바르게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법과 개혁과 규제는 적용되는 곳이 따로 있었다. 법을 어긴 측근에게 법은 적용되지 않았고 개혁군주 영조는 신하들과 수시로 술을 즐겼다. 입으로는 온 세상이 함께 사는 이상 사회를 선언했지만, 그때 세상은 그저 '그들의 천국'이었다. /박종인 기자 엄한 국정지표에 따라 부녀자들은 화려한 가체(加髢)가 금지되고 족두리를 써야 했다.(1756년 1월 16일 '영조실록') 금실로 수놓은 비단 또한 금지됐다. 민간에 화려한 그릇이 유행하자 영조는 값비싼 청화 안료를 쓰는 청화백자 제작을 금지하고 질 떨어지는 철화백자만 생산하도록 명했다.(1754년 7월 17일 '영조실록') 사치금지법은 재위 내내 사회 전반에 시행됐다.
술 먹고 사형 당한 관리
재위 7년째, 영조는 다시 한 번 금주령을 강화했다. "왜 사대부 양반에게는 법을 적용하지 않고 상민과 천민에게만 집행하는가. 세력 있는 자는 적발하지 못하니, 근본을 버려두는구나[可謂捨本治末者也]."(1731년 6월 10일 '영조실록')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 건드리니, 언젠가는 혼쭐을 내겠다는 경고였다.
마침내 간 큰 고위 관리가 시범 케이스로 적발됐다. 함경 남병사 윤구연이 술을 마시다 걸린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윤구연 집에서 술 냄새가 나는 빈 항아리가 나온 것이다. 심문은 영조가 직접 했다. 장소는 서울 남대문이었다.(1762년 9월 17일 '영조실록') 궁을 떠나 남대문에 도착한 영조는 약방 제조가 바친 탕제를 마시고 문초를 시작했다.
"왜 술을 마셨나." 윤구연은 "술이 아니라 매[鷹] 알을 담가뒀다"고 답했다. 영조는 "술 냄새 나는 매 알도 있나"라며 일단 곤장을 한 대 쳤다. 윤구연이 "이 몸의 첩과 첩의 어미와 종이 술을 담갔다"고 실토했다. 영조는 다시 곤장을 세 대 치고 이리 말했다. "너는 불효에 불충을 저지르고 군법까지 위반했다. 어찌 피하겠는가." 윤구연이 늘어놓는 장황한 변명을 끝까지 들은 영조는 "금주령을 어긴 죄인 목을 잘라 장대에 걸라"고 명했다.
사헌부 교리 강필리와 사간원 사간 여선응, 홍문관 지평 최청이 "목숨은 중하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왕은 "너희가 군왕을 살인자라 부르는가"라며 세 사람을 파면했다.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이 또 처벌을 만류했다. 영조는 "법은 만인에게 적용되는 것[法者 非予之法 卽古法]"이라며 이들 또한 그 자리에서 파면했다. 그 사이 나발과 북 소리가 울려 퍼졌고 윤구연은 목이 잘렸다. 영조는 윤구연 첩을 함경도 갑산 관비로 보내고 비변사에 있는 아들 윤범행과 칠곡부사인 형 윤경연 또한 파직시켰다.(1762년 9월 17일 '승정원일기') 아무도 반항하지 못했다.
민생사범 단속령-'여가탈입'의 금지
임진왜란 이후 한성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다. 당연히 주택난도 심화됐다. 지방에서 벼슬자리를 얻어 상경한 관리들은 집이 없었다. 상경 관리들 가운데에 버르장머리 없고 포악한 사람들은 아무 여염집[閭家·민가]에 들어가 집을 빼앗고 살았다. 주민을 채찍으로 때려 내쫓고 집을 빼앗기도 했다.(1615년 8월 2일 '광해군일기') 이를 '여가탈입(閭家奪入)'이라 한다. 여염집을 빼앗아 들어간다는 뜻이다. 17세기 호적상 한성 인구 75%가 상민과 천민이었으니(이근호, '17, 8세기 여가탈입을 통해 본 한성부의 주택문제'), 백성 주거권과 재산권은 언제든지 25%인 양반에 의해 폭력적으로 박탈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영조 즉위 후에도 이런 불법은 여전했다.
영조는 즉위와 함께 여가탈입 금지를 특별히 지시했다.(1724년 11월 1일 '영조실록') 하지만 민가를 빼앗은 관리는 2년 금고형, 일반 사대부는 과거 응시 자격 박탈 6년형이라는 형벌이 규정된 때는 재위 30년째인 1754년이었다.(1754년 7월 16일 '영조실록') 한두 명 처벌로 없애기에는 여가탈입이 너무 많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영조 7년 사간원 정언 이성효가 "여가탈입 금지령을 정승 한 명이 어겼는데, 아무도 보고를 하지 않았다"며 "재조사를 통해 처벌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이에 영조는 "승정원에서 조사해 의법 조치하라"고 명했다. 다음 날 금지령을 어긴 정승 정체가 밝혀졌다. 바로 5년 전 3대 국정지표를 대독한 당시 좌의정이자 현 영의정 홍치중이 아닌가.(1731년 7월 15일, 16일 '영조실록')
개혁의 민낯 '내로남불'
왕이 말했다. "법 적용에 어찌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금령을 신칙하는 뜻은 폐지할 수가 없다. 관련자들을 노역형에 처한 뒤 유배시키라." 과연 엄한 개혁 군주였다. 하지만 홍치중에 대해서는 그 처분이 달랐다. 영조가 말했다. "홍치중에게 선유(宣諭)하게 하여 대명(待命)하지 말도록 하라."
'백성에게 임금 뜻을 알리게 하고 그로써 처벌을 면하게 한다'는 뜻이다. 구두 경고도 아닌, 스스로 반성문 한번 쓰게 하고 사건을 덮겠다는 뜻이다. 우승지 조명신이 "임금과 신하의 의리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不念堂陛之義乎)?" 하고 물었다. 홍치중은 "오해가 있었다"고 변명했다. 영조는 '온화한 비답을 내려 위로하고[上溫批慰諭]' 관련자들에게 내렸던 노역형과 유배형도 취소시켰다.(1731년 7월 16일 '영조실록') 바로 한 달 전 "세력 있는 자는 적발하지 못하니, 근본을 버려두는구나"라고 내뱉었던 탄식은 간 곳 없었다. 개혁보다는 '군신 간 의리'가 먼저였다.
"송절차가 지금은 참 맑구나"
영조의 열네 번째 딸 화유옹주 묘 부장품. 청나라에서 수입한 황채장미문병(黃彩薔薇紋甁)이다. 조선은 당시 수입은 물론 고급 자기 생산도 금지된 나라였다. /국립고궁박물관 1755년 9월 영조는 "식혜를 예주(醴酒)라 하니 이 또한 술이다. 제사상에 술 대신 올리라"며 제수용 술을 금지했다. 대신 영조는 술 대신 송절차(松節茶)를 즐겼다. "고금(古今)에 어찌 송절차의 잔치가 있겠는가?"라며 금주를 실천하는 모습을 스스로 대견해할 정도였다.(1766년 8월 16일 '영조실록')
그런데 이 송절차가 정체불명이었다. 차를 마시면 왕이 이상해지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홍건이라는 종9품 무관이 강론에 참석했다. 왕이 그에게 물었다. "'정흉모(丁胸矛)'라는 창을 아느냐." 홍건이 머뭇대자 영조는 병조판서에게 곤장을 치게 했다. 곤장을 거의 반쯤 쳤을 때에도 묵묵무답이었다. 영조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요상한 놈이다. 내가 직접 심문해 혼내 주겠다." 옆에 모시던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렸다. 홍건이 천천히 아뢰었다. "성상 말씀이 평소 알고 있던 것과 달라 즉시 대답하지 못했나이다." 의외로 홍건은 정흉모라는 무기에 대해 해박하게 답했다. 영조는 급히 그를 서천현감에 임용했다.'(성대중, '청성잡기'4 '성언·醒言', '초관 홍건의 기개와 영조')
말단 무관에게 화를 내고 평소와 달리 행동하더니 종9품 말직을 종6품 현감으로 즉석에서 인사 조치하는 기행. 그 비정상적인 행동에 대해 '청성잡기'에는 '영조가 마침 송절차를 마신 터라 약간 취한 채 말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술이었다.
신하들에게 송절차를 권하며 "취해서 쓰러지더라도 허물 삼지 않겠다"고 한 사람도 영조였고(1769년 2월 26일 '영조실록'), "전에는 탁했으나 지금은 맑고, 물을 많이 섞으니 담백하다[釀法勝前 昔濁今淸 則取多和水 故其味猶淡]"고 한 사람도 영조였다.(1769년 6월 12일 '승정원일기') "법은 만인에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서릿발처럼 선언한 사람도, 개혁 군주 영조였다. 만인 속에 본인은 없었다.
윤구연 처형되던 날 죽다 산 사내
훗날 다산 정약용은 윤구연을 처형하던 날 '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누락된 사실 하나를 자기 문집에 기록해놓았다. '임금께서 숭례문에 납시어 윤구연 머리를 베어 도성 사람들에게 보이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술 마신 자가 있거든 바로 고하라. 저와 같이 죽일 것이다." 그때 대장 이주국이 임금을 호위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나와 엎드려 말하기를 "소신은 얼마 전 술 한 잔을 마셨으니 감히 숨기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임금께서는 좌우를 둘러보며 다른 말을 하셨다[上顧左右而言他]. 그 자리에 있던 여러 신하들은 다리를 덜덜 떨었다[羣臣在班者 爲之股栗].'(정약용, 여유당전서 보유, '혼돈록·餛飩錄' 3 '이대장·李大將')
술을 먹었다고 자수한 사람이 하필이면 자기가 아끼던 무관이었다. 왕은 못 들은 척하고 딴청을 피웠다. 신하들은 그 위선 앞에서 아무 말 못하고 떨 뿐이었다. 집은 고관대작에게 빼앗기고 장식은 사치라 금지됐으며 술은 목숨 걸고 마셔야 하고 고급 그릇을 쓰면 비난받던 시대였다.
"우리는 즐긴다"
1776년 개혁 군주가 죽었다. 이듬해 열네 번째 딸 화유옹주가 죽었다. 1992년 경기도 부천 옹주와 남편 황인점 합장묘에서 옥비녀, 그릇 따위 화려한 부장품 30여 점이 쏟아졌다. 모두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들이었다. 그릇도 10여 점이 나왔다. 이 가운데 황채장미문병(黃彩薔薇紋甁)과 녹유리장경각병(綠琉璃長頸角甁)은 청나라 수입품이었다. 꽃병들이 이리 말한다. "저들은 처벌하고, 우리는 즐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21/2019082100063.html
2019-08-26 10:12:19 | 관리자
말이나 하지 말든지 입으로 그토록 외치던 공평과 정의는 어디다 두었는지
조국,김제동 등 이런 사람들의 위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황을 보며
그런 사람을 지명하고 나라가 이 상황인데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 문대통령이 너무나 무섭습니다.
미국에서 지소미아 관련
공식문서에 문정권은 거짓말정권이다 라고 말하는 상황이 무섭습니다.
광명의 천사처럼 보여지던 이들의 속성은 결국 거짓말 이였네요.
거짓의 아비는 마귀인데 이들의 편을 들어 동조하는것은 결국 하나님 편이 아닌것이겠지요....
저도 그당시는 몰라서 동조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고 보니 진실이 보입니다.
잘못된 것임을 알았으면 빨리 돌아서야지요 그리고 행동까지 이어가야지요.
2019-08-24 11:03:35 | 최지나
안녕하세요?
역사는 계속 반복되는데 다수의 국민들은 교훈을 받지 못합니다.
무지한 국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역사를 통해, 성경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최순실/정유라 사건이 일어났을 때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던 사람들이 조국 가족 사기단이라 불리는 자들의 파렴치한 행각에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좌익이요, 위선자입니다.
지혜로운 신자라면 이번 기회에 주변에 있는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목사, 성도들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풍성하신 은례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이 나라 위에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조선은 어떻게 망하였던가?
국가 미래보다 선거 승리에 올인하는 이 정권의 정파성은
임진왜란 앞에서도 당파 싸움으로 치닫던 조선 조정에 뒤지지 않는다
을사오적처럼 임진왜란에도 '5적(賊)'을 매긴다면 1번은 선조, 2번은 신료(臣僚)들 순일 것이다. 무능한 왕과 입만 살아 있는 신하들이 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외침을 알리는 숱한 정보가 있었는데도 선조의 조정은 한사코 무시했다. 일본에 정찰 다녀온 통신사 수뇌부 4명 중 정사 황윤길 포함, 3명이 "쳐들어온다"고 보고했다. 반대 의견은 부사 김성일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조정은 3명의 판단을 묵살하고 소수 의견을 따랐다.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이 두려운 나머지 눈을 감아 버리는 현실 도피 심리였을 것이다.
조선은 한심한 나라였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지 나흘이 지나서야 조정에 첫 보고가 도착했다. 황망해진 조정이 군사를 긁어모았지만 모인 병력은 수백명에 불과했다. 왜군이 한양을 점령하는 데는 20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선조가 도성을 탈출하자 백성은 욕하며 궁궐에 불을 질렀다. 의주까지 도주한 선조가 애절하게 명(明)에 망명을 구걸한 대목은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선조는 국권(國權)보다 왕권의 안위에만 매달린 왕이었다. 왕은 무능하고 신하들은 말[言]로만 싸우는데 나라 지킬 군대는 없었다.
임진왜란의 기록은 읽을수록 참담해진다. 선조와 신하들은 아군 등에 칼을 꽂는 자해마저 서슴지 않았다. 이순신을 모함해 삭탈관직하고 도원수 권율을 파직했다. 전라도 의병장 김덕령을 살해하고 경상도 의병 영웅 곽재우를 귀양 보냈다. 수많은 의병장이 목숨 걸고 칼을 들었지만 공신(功臣)으로 책봉 받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대신 선조의 도주 행렬을 수행한 신하 120명이 줄줄이 논공행상을 꿰어찼다. 선조에겐 나라 지킨 군인보다 자기 패거리가 더 중요했다.
조선은 현실 무시 관념론자들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성리학 이념에 빠져 실용을 배격하고 실력을 경시했으며 물적 생산력을 천대했다. 부국강병 대신 당파(黨派)를 지어 말과 명분의 싸움에 날밤을 새웠다. 리(理), 즉 성리학 도덕 체계를 세우면 나라가 저절로 지켜지는 듯 여겼다. 입으론 도덕과 윤리를 말하면서 뒤로는 백성을 개돼지로 여기며 사리사욕을 챙기는 성리학 위선자들로 넘쳤다. 왕도, 지배층도 가치가 전도된 '가상현실'에 살고 있었다.
그래도 조선이 망하지 않은 것은 소수(少數)나마 현실을 직시한 실용주의자 그룹이 존재했던 덕분이다. 이순신과 류성룡·율곡 등이 그들이다. 이순신은 '정신력'이 아니라 '준비된 실력'으로 싸운 현실주의자였다. 류성룡은 신분제를 넘는 실용적 개혁책과 군량미 조달로 전쟁을 뒷받침했다.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장들 역시 활과 칼로 내 땅을 지키겠다는 자강 의식의 소유자였다. 임진왜란 리더십을 연구한 사회학자 송복은 이들을 '자강파(自强派)'로 규정했다.
그 소수의 자강파마저 임진왜란이 끝남과 동시에 몰락했다. 이순신이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하고, 같은 날 류성룡이 파면당했다. 냉대받은 의병장들은 초야에 묻혔다. 조정은 '관념파'로 불릴 만한 성리학 원리주의자들에게 장악됐고, 30여년 뒤 병자호란의 참화를 되풀이했다. 성리학 관념파들은 노론·숭명파·위정척사파로 이름만 바꿔 득세하며 '나라 같지도 않은 조선'을 300년이나 더 연명시켰다. 그리고 구한말엔 사대당이 되어 기어이 망국(亡國)으로 이끌었다. 조선은 빼앗기기 전에 지배층의 모순 때문에 스스로 망했다.
문재인 정권은 조선의 성리학 관념파가 대한민국 주류 세력으로 이어진다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저서에서 '노론 세력이 일제하 친일 세력이 되고 해방 후 반공 독재 세력이 되면서 기득권 주도 세력이 됐다'고 썼다. 현대사의 성취를 평가절하하려는 것이다. 이 정권이 말하는 '주류 교체론'이나 틈만 나면 벌이는 친일 프레임 씌우기도 이런 역사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행태와 세계관의 궤적을 보면 문 정권이야말로 노론 관념파의 후예란 말이 딱 어울린다. 이 정권의 핵심은 '사대부 DNA'를 물려받은 운동권 관념주의자들이다. 낡은 가치관에 머문 운동권 정권이 실용보다 이념, 부국강병 대신 문약(文弱), 경제 확장 아닌 축소의 길을 치닫고 있다. 바깥세상에 눈감은 채 이념의 성채에 들어앉아 국제 고립과 국력의 쇠락을 자초하고 있다.
조선의 관념파들은 국익보다 당파 이익을 우선했다. 일본의 보복 앞에서도 선거 승리만 따지는 문 정권의 기막힌 정치공학은 임진왜란 때의 당쟁을 연상케 한다. 적은 밖에 있는데 안에 적을 만들어 권력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국가 미래보다 정권 재창출에 올인하는 이 정권의 당파성은 조선조 성리학 원리주의자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자기편이란 이유로 부적격 법무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그 한 예일 뿐이다. 퇴행적 정파성에 갇힌 정권을 보며 가상현실에 빠졌던 조선 조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9082203452
2019-08-23 13:48:36 | 관리자
아멘 명료하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자유게시판에 글쓰기 탭이 없어진 것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2019-08-20 17:41:14 | 유해용
14번은 (벧전2:23-25)이 아니라 (벧전1:23-25)입니다.
샬롬
2019-08-20 15:49:23 | 관리자
아멘!!!
진리의 정의를 14가지로 정리한 글을 보니 진리는 참 단순한 것인데
사람의 복잡한 이론이 섞여서 복잡한것 처럼 인식이 되어 졌네요...
단순한 하나님의 진리를 늘 기억하며 이번한주도 살아가겠습니다.
2019-08-19 14:43:41 | 최지나
진리란 무엇인가?
사전의 정의: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
기독교의 진리, 우리 교회의 믿음
1. 하나님이 계신다(히11:6, 롬1).
2.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창1:1).
3.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창1:27).
4. 사람의 대적자 마귀가 있고 마귀가 사람을 타락시켜 죄가 들어왔다(창3장, 롬5장).
5. 그래서 아담 이후의 사람은 수태되면서부터 죄인이며 죄인으로 태어나 죄인으로 살다가 죽는다(시51:5, 롬3:23).
6.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므로 반드시 심판하신다. 의를 요구하신다.
7. 사람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의 즉 올바름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갈2:16).
8. 사람은 하나님의 후손, 창조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구원할 수 있는 파워, 하시려는 의지(롬8:3)
9. 오직 한 가지 방법: 하나님의 방법, 처녀 탄생, 성육신하신 예수님, 십자가 죽음, 매장, 부활(고전15:1-4)
10. 복음의 말씀을 듣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신뢰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을 살리신다. 유일하게 구원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 믿음으로 은혜로 성령님의 파워로(요3, 엡2:8)
11. 그러면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변한다. 거짓에서 진리 편으로 돌아서게 된다(롬12:1-2).
12.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된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일2:15-17).
13. 부활의 소망, 재림의 소망을 갖는다(살전4; 고전15).
14.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신뢰한다(벧전1:23-25).
2019-08-19 14:13:08 | 관리자
8.15를 앞두고 8.15의 진정한 의미를 성찰한다_이동복(李東馥)
앞으로 닷새 후 대한민국은 또 한 차례 8.15라고 하는 국정기념일을 맞이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이 8.15가 무엇을 기념하는 날이냐 하는 문제에 관하여 국민적 합의가 없다. 정부는 금년에도 공식적으로는 이날을 ‘광복절(光復節)’로 기념할 모양이다. 1945년8월15일을 기점(起點)으로 하여 ‘제74회 광복절’로 기념할 작정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왜냐 하면, 8월15일을 ‘제74회 광복절’로 기념하려면 대한민국이 지금부터 74년 전인 1945년8월15일 “광복을 이룩”했어야 하는 데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광복’이라는 국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챙겨 보면 자명해 진다. 모든 국어사전은 ‘광복’의 의미를 “잃었던 국토(國土)와 국권(國權)을 회복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독립’을 이룩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1945년8월15일 우리나라는 ‘독립’을 이룩했는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 날 ‘국토’와 ‘국권’ 가운데 어느 것도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1945년 이 날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戰犯國)인 제국(帝國) 일본(日本)이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한 날일 뿐이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따라 한반도는 일본에 의한 35년간의 강점(强占) 상태로부터 ‘해방(解放)’되었다. 그러나, ‘해방’이 곧 ‘독립’은 아니었다.
미국∙영국∙중국∙소련 등 제2차 세계대전의 4대 연합국들은 1943년11월의 카이로 정상회담에서 ‘세계대전 전후처리 방안’의 일환으로 한국 문제에 관하여 “적절한 시점에 독립시킨다”는 원칙에 합의한 뒤 테헤란, 얄타, 포츠담 등지에서의 후속 ‘정상회담’에서 그 같은 ‘원칙’을 거듭 재확인했지만 “어떻게 독립시키느냐”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룩하지 못한 채 일본의 항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따라서, 1945년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의 시점에서 한반도의 법적 지위는 일본의 강점 상태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곧바로 ‘독립’을 이룩하지 못 한 채 북위 38도선을 경계선으로 하여 남북으로 분할 진주한 미∙소 양국군에 의한 ‘군사적 점령’ 상태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1945년8월15일의 시점에서 대한민국은 ‘해방’은 되었지만 ‘광복’은 이룩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의 ‘독립’ 문제는 1945년12월의 모스크바 3상 회의(미국∙영국∙소련)에서 이루어진 합의를 이행하는 문제를 놓고 1946년과 1947년 두 차례에 걸쳐서 서울에서 열린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 차원에서의 해결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한국의 독립 문제는 1947년9월 유엔총회 안건으로 상정되었고 1947년11월14일 유엔총회에서 ‘한국의 독립 문제’(The Problem of the Independence of Korea)라는 제목의 총회 결의 제112호가 가결됨으로써 해결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유엔은 “유엔 감시 하에 인구 비례에 입각한 자유 총선거를 통한 정부 수립”이라는 ‘독립’ 방안을 ‘처방(處方)’한 것이다.
그러나, 난관(難關)은 이로써 해결되지 않았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던 소련과 소련의 앞잡이들인 공산주의자들이 유엔 총회 결의의 수용을 거부하고 유엔이 파견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북한 지역 입경(入境)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유엔은 1948년2월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열린 ‘소총회’에서 “우선 유엔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하라”는 결의를 채택했고 이에 의거하여 한반도의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1948년5월10일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총선거를 통하여 구성된 ‘제헌국회(制憲國會)’가 7월17일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 공포했고 이 헌법에 의거하여 이승만(李承晩) 박사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내외에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한반도의 38선 이남 지역에서는 ‘독립국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로써, 한반도 남쪽 절반의 땅에서는 ‘절반의 광복’이 이루어졌다. 이 지역에서는 ‘국토’와 ‘국권’의 회복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에도 불구하고 전체 한반도 차원에서의 ‘광복’은 여전히 미결의 과제로 남겨지지 않을 수 없었다. 1948년9월9일 북한 지역의 평양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의 별개의 ‘정부’ 수립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는 남쪽의 대한민국 정부와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사이에 어느 쪽에 ‘정통성’이 있느냐를 가려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유엔총회가 흑백(黑白)을 가리는 역할을 맡고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유엔총회는 1948년12월12일 역시 “한국의 독립 문제”라는 이름의 총회 결의 제195-III호를 채택하고 이를 통하여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선포했다.
유엔총회는 이 결의문 제2항에서 “한반도에서 대다수(전체 한국인의 2/3)의 인구가 거주하고 유엔임시위원회가 감시하고 자문할 수 있었던 지역에 대하여 유효한 관할권을 행사하는 (대한민국이라는) 합법적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선언하면서 “이 정부는 유엔 임시위원단의 감시 하에 이루어진 해당 지역 유권자들의 자유의사의 정당한 표현인 선거를 통하여 수립된 정부”이기 때문에 이 정부는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그 같은 유일한 정부’)”라고 선포했다.
[유엔총회 결의 제195-III호의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declares that there has been established a lawful government (the Republic of Korea) having effective control and jurisdiction over that part of Korea where the Temporary Commission was able to observe and consult and in which the great majority of the people of all Korea reside; that this Government is based on elections which were a valid expression of the free will of the electorate of that part of Korea and which were observed by the Temporary Commission; and that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
이 같은 유엔총회 결의 제195-III호 ②항의 의미는 “대한민국이 한반도 상의 유일한 합법 정부”이며, 비록 명시적으로 그렇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한 땅에 임의로 수립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불법국가’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유엔총회 결의 제195-III호는 이에 그치지 않고 그 ④의 ⒜ 및 ⒞항에서 “한반도의 통일”과 “군대의 통합”은 “1947년11월14일자 총회 결의 제112-II호에 명시된 원칙에 따라서 유엔임시한국위원회의 감시와 자문 하에 모든 한국인들의 자유롭게 표시된 의사에 기초한 대의제(代議制) 정부를 실현시키는 방법으로 이룩하라”고 요구함으로써 향후 분단된 한반도의 통일은 “유엔 감시 하에 실시되는 자유선거를 통하여 완성할 것”을 명시적으로 주문했었다.
대한민국이 1948년5월10일의 제헌국회 선거 때 “북한 지역에서 앞으로 선출될 의원용으로 100석의 의석을 공석(空席)으로 남겨 두었던 것”이나 1963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6.23 선언’을 발포할 때까지 “유엔 감시 하에 실시되는 북한 지역에서의 자유선거”를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으로 고수했던 것은 그 근거가 바로 유엔총회 결의 제195-III호 ④항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유엔총회 결의 제195-III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⑨항에서 “유엔 회원국과 그 밖의 다른 국가들이 앞으로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때는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로 선포한) 이 결의 ②항의 내용을 반드시 고려하도록 권고한다”고 명시하기까지 했었다.
이상의 경과는 대한민국의 ‘독립’이 유엔총회 결의 제112-II호(1947)에 의거하여 1948년5월10일의 제헌국회의원 총선거와 이에 입각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8월15일)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이 같은 사실이 유엔총회 결의 제195-III호에 의거하여 국제적으로 공인(公認)된 것임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따라서 1948년8월15일은 대한민국이 ‘독립’을 이룩한 날이라는 사실에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에 따른다면, 대한민국은 금년 8월15일을 ‘제74회 해방 기념일’인 동시에 ‘제71회 독립기념일’로 기념해야 마땅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남북의 7천5백만 한민족 전체의 차원에서 ‘광복’을 기념하는 것은 휴전선 북쪽의 2천5백만 동포들이 3대째 계속되고 있는 김가일문(金家一門)의 전근대적인 전제왕조(專制王朝)로 탈바꿈하고 있는 사이비 공산독재(共産獨裁)의 학정(虐政)하에서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이 한반도의 역사적 현실이다. 한반도 전역에서 ‘광복절’을 기념하는 것은 그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리(事理)가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허무는 것은 물론 5천년 민족사상(民族史上) 전례 없는 발전과 번영(繁榮)의 금자탑(金字塔)을 쌓아 올린 그 동안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성취를 무너뜨리면서 오히려 잔인무도한 전쟁범죄자이고 민족반역자이자 평화파괴범인 북한에게 대한민국 국민들의 운명을 예속(隸屬)시키기 위해 광분(狂奔)하고 있는 문재인(文在寅) 씨의 ‘종북∙주사파’ 정권이 ‘해방’과 ‘독립’ 및 ‘광복’ 등 민족역사의 이정표(里程標)들을 훼손, 변질시키는 역사 왜곡의 현장이 전개되고 있어서 뜻 있는 국민들로 하여금 망연자실(茫然自失)하게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의 애국 시민들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1910년의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35년간 이 나라가 제국(帝國) 일본에게 강점되어 있는 동안 샹하이(上海)에서 충칭(重慶)까지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과 풍찬노숙(風餐露宿)의 유랑생활(流浪生活)을 감내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간판을 지켰을 뿐 아니라 국내외의 도처에서 영웅적인 항일(抗日) 독립운동의 맥(脈)을 이었던 독립운동가들의 공훈(功勳)을 기리는 데 인색할 수 없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전개된 대한민국 ‘독립’의 과정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던,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적 노력과는 상관없이 ‘자력(自力)이 아니라 타력(他力)에 의해 전개된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6년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명맥을 유지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심지어는 쟝제스(蔣介石)의 중화민국 정부를 비롯하여 세계 어느 나라나 국제기구로부터도 법적 승인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1945년 일본의 항복 후 귀국할 때도 ‘임정(臨政)’은 ‘단체’나 ‘기구’의 입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임정’ 요인들이 뿔뿔이 개별적으로 귀국해야 하는 처지를 감수해야만 했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독립’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 사이에 ‘전후처리’ 방안의 차원에서 해결되는 길마저 막힌 채 결국 유엔이라는 신생(新生) 국제연합 기구의 주선을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일본과 연합국 간의 전쟁 종결을 공식화한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조인에 참가한 51개국의 ‘전승국’ 반열(班列)에도 끼지 못해서 ‘전승국’의 차원에서 한일관계를 재정립하는 역사적 기회를 상실했었다.
이제 며칠 뒤로 임박한 또 한 번의 8.15를 맞이하여 애국적인 대한민국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성찰해야 할 것 같다. 이들이 명심해야 할 첫 번째의 과제는 8.15의 의미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에 바탕하여 8.15를 이용하여 병적인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이를 내년 4월에 있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전에 이용하여 야당 진영과 유권자 사이를 이간하려는 문재인 정권의 불순한 획책을 저지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오는 8월15일 서울에서는 문재인 씨가 이끄는 ‘종북∙주사파’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자유 애국 시민들의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예정되어 있다. 모쪼록 이들의 함성이 우레처럼 청와대 안으로 울려 퍼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2019-08-13 10:16:55 | 관리자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언제 세워졌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좌익들의 세뇌 공작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주장을 펴려면 데이터를 제시해야 합니다.
다음은 1948년 8월 15일 미국 뉴욕 타임즈 지 앞면입니다.
첫 기사는 대한민국의 건국입니다.
제목: Korea Set up as Republic.
내용: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3년만에 미군정에 종지부를 찍고 남한 단독으로 주권 국가를 선포하였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에 의해서 주권 국가가 선포되었다.
국가 이름은 The Republic of Korea로 한국말로는 대한민국(Tai Han Min Kook)이다.
대한민국은 자유(Freedom)와 민주주의(Democracy)를 표방한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건국일인 것입니다.
1919년 운운하며 다른 날을 건국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좌익 이념에 경도되어 세상의 진실을 바로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거나 세상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이지요.
초대 대통령과 건국일을 성대하게 기념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2019-08-13 09:57:30 | 관리자
안녕하세요?
지금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이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다음은 이에 대한 좋은 글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이렇게 무너지는가?(조선일보 사설)
"냉전 기간 전(全) 세계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죽음 가운데 75%는 쿠데타에 의한 것이다. 아르헨티나·브라질·도미니카공화국·그리스·가나·과테말라·나이지리아·파키스탄·페루·태국·터키·우루과이의 민주주의가 바로 그렇게 죽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군인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당선된 대통령이나 총리가 권력을 잡은 뒤 그 절차(민주주의)를 해체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하버드대학 정치학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두 사람이 같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년)의 핵심 논점이다. 저자들은 지도자에 의해 붕괴된 민주주의 나라로 베네수엘라·조지아·헝가리·니카라과·페루·필리핀·러시아·스리랑카·터키·우크라이나 등을 들었다.
두 사람은 트럼프가 당선된 뒤 미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 이 책을 썼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나는 전율을 느꼈다. 이것이 결코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라 오늘날 독단적이고 이념 불구 상태인 지도자가 나라를 자기 개인 소유인 양 다그치고 있는 나라들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다음 대목이 어느 나라 얘기인지 우리는 쉽게 연상할 수 있다. "독재정권의 민주주의 전복 시도는 의회나 법원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에서 '합법적'이다. 심지어 사법부를 효율적으로 개편하고 부패를 척결하고 혹은 선거 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개선'하려고까지 한다. 신문은 발행되지만 정권의 회유나 협박은 자체 검열을 강요한다. 시민들은 정부를 비판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세무조사를 받거나 소송을 당하게 된다.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과장이거나 거짓말이라고 '오해'를 받는다. 사람들 대부분 자신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믿으며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투표장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우리에게 그 첫 번째 투표장이 내년 4월 15일의 총선거다. 이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이기면 2년 뒤 대통령 선거는 집권 연장의 승인 절차에 불과하다. 그럴 경우 좌파는 2027년까지 최소한 10여년간 이 나라를 통치한다. '20년 집권' 주장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한 술 더 떠 개헌선을 확보하면 이 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대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간다. 자유·평등·민주의 나라는 '자유'가 사라진 '평등'의 사회로 남고 '민주'는 없고 '민족'만 남는다.
오늘날 우리 상황을 너무나 잘 묘사한 부분도 있다. 책은 "잠재적 독재자는 자신의 반민주적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 위기나 자연재해, 특히 전쟁과 폭동, 테러와 같은 안보 위협을 구실로 삼는다. (중략) 시민들 역시 국가 안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권력자의) 전체주의 조치에 더욱 관대해진다." 지금 이 나라의 경제 위기는 문(文) 정권의 취약점이라기보다 권력 주변 또는 적극 지지층의 총단결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 이 정권은 유난히도 국가적 재난이나 재해에 민감하다. 정권도 재해(세월호 침몰)를 기회로 잡았다. 일본과의 경제 충돌도 반일(反日)이라는 민족적 감정과 자존심에 편승한 '국민 단합'의 총선 전략으로 보면 된다. 북한의 미사일 공세도 안보 위협의 구실일 수 있다.
그것은 국민을 분열해 대립시키는 통치의 한 기술이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리더는 비록 자신의 신념 일부를 양보하거나 타협해서라도 분열을 막고 통합적 방향으로 나라를 이끈다. 그러나 좌파 정권은 국론을 양분시키고 대립시켜 그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여론조사 등으로 공작적 요소를 작동시키거나 반대 의견을 조작하는 '드루킹식(式)' 수법을 동원한다.
문 정권 존립의 갈림길은 그래서 4·15 총선이다. 여기서 지면 '문재인식(式) 혁명'은 단명으로 끝난다. 이기면 그것은 좌파의 장기 집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 책의 제목처럼 '무너지는' 단계로 접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4· 15 총선이 단순히 국회의원 뽑는 선거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의 결론이다. '어떤 정당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끝낼 수 없다. 어떤 지도자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살릴 수 없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그 운명은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한국 민주주의 운명도 국민 손에 달렸다. 그런데 국민은 지금 분열하는 야당을 보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12/2019081202894.html
2019-08-13 09:30:01 | 관리자
아멘!!
2019-08-11 21:00:56 | 유계월
백척간두에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반복적으로 경고하시는 사탄과 몰렉과 아세라(아쉬타르,아스다롯..)
등의 이방신들을 아직까지도 어둠속에서 섬기며 인간을 그 제물로 바치면서 악령에 사로잡혀 숭배하고
거짓과 위선과 탐욕과 인간의 피를 먹으며 조종당하는 그 악령의 하수인들이 마지막 발악중입니다.
현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악한영과 선한 이들의 싸움입니다.
한반도 핵참화의 획책을 악한 세력으로부터 온몸으로 막아낸 가녀린 대통령의 헌신이 이 나라를 살릴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두 부녀 대통령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북한의 핵이 누구의 것인지..트럼프 대통령의 치밀한 작전이 거의 성공 단계에 와 있습니다.
중공과 일본의 앞 날이 그리 밝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서는 날이 조만간 올겁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거대하고 위대한 각성..깨어남이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 악한 세력들을 증오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주안에서 평강으로 기도하며 마음의 평안에 힘써야 될 줄 믿습니다.
가장 어두울때가 가장 희망적인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어두움이 빠른 시일내에 걷히길 기도합니다.
2019-08-10 11:19:35 | 권 효중
안녕하세요?
요즘 온 국민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다음 글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잘 요약한 기사입니다.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청원을 올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만을 간구하면서
샬롬
패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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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말아먹는다는 게 이런 건가요"(조선일보 양상훈 컬럼)
학생이 공부 안 하고 다른 데 정신이 팔렸다가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한 과목도 아니고 이 과목 저 과목 다 낙제다. 그런데 그 학생이 '시험이 잘못됐다'고 '당당하게' 역공을 한다. '결연하게 싸우겠다'고도 한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박수를 친다. 지금 나라 모습이 이렇다. 나라가 걱정이라는 말은 항상 있었지만 3류 정치의 해악을 받아낼 만큼 민간 부문이 성장해 여기까지 왔다. 지금 그 믿음마저 흔들리고 있다. 2분기 경제성장에서 민간 부문 기여도는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금융계 계신 분의 얘기다. "금융계 젊은 친구들의 문재인 지지는 높았는데 문 대통령이 남북 경협으로 일본을 단숨에 이긴다고 한 날, 젊은 직원이 '나라를 말아먹는다는 게 이런 건가요'라고 물어 놀랐다." 최근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우리 경제는 문 정권 출범 이전에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역대 정권이 노동, 공공 등 구조 개혁을 사실상 하지 않았다. 그렇게 허약해진 경제를 문 정권이 이상한 실험 한다면서 아예 발로 밀어 버렸다. 세계 주요국의 주가가 올랐는데 우리만 내렸다. 우리보다 경제가 12배 큰 미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낮다. 사회에 '경제 할 의욕' 자체가 꺾였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과 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모는 정책들이 2년 반 만에 만들어낸 결과다. 평등 정책이라는데 저소득층 사정은 오히려 충격적으로 나빠졌다.
민노총은 경제를 말아먹고야 말 태세인데 정권은 그 민노총의 비호 세력과 같다. 오히려 노조를 비판한 기업인이 감옥에 갈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중소기업인들은 베트남 이전, 인도네시아 이전이 일상적 화제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이 모두 위기다. 신산업은 규제와 기득권 저항에 막혔다. 정부는 방관자다. 이제 우리 경제는 곧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진다고 한다. 1% 성장하면 숨이 차서 헉헉거리며 더 못 뛴다는 것이다. 투자회사의 해외 관계자가 한국 지인에게 "이제 한국 자산은 손대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몇 년 더 가면 정말 '말아먹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주 52시간 근무 위반 처벌이 "나라를 망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자원이 전무하고, 원천 기술 부족한 나라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죄악시한다면 결과가 무엇이겠느냐고 했다. 온 세계가 AI(인공지능) 연구에 매달려 있는데 한국만 딴 세상이다. 대학은 정체에서 퇴락으로 떨어졌다. 공교육을 끌어올릴 생각은 않고 좋은 학교 끌어내린다.
정부 정책은 실질 내용보다 대통령이 발표하는 TV 쇼 위주다. 불려다니는 기업인들은 엑스트라다. 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무엇 하나 새로 이루고 따낸 것이 없다. 미래 담론이 실종되고 50년 전, 100년 전 일로 허송한다. 정부 정책은 세금 살포와 노인 알바로 일자리 숫자 속이는 것뿐이다. 포퓰리즘 마(魔)의 씨앗이 너무 많이 뿌려졌다. 되돌리기 힘들 것이다. 출산율은 '0'(제로)를 향해 추락하고 젊은이 한 명이 노인 몇 명을 부양해야 하는데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면 나라를 말아먹는다. 모두가 알지만 속수무책이다.
탈원전이란 국가 자해는 오늘도 진행 중이다. 자원 없는 나라가 두뇌를 에너지로 만든 세계 최고 기술을 버리고, 싸고 질 좋은 전기라는 기업 경쟁력을 허물고, 인재를 축출하고, 한전과 두산중공업이라는 멀쩡한 기간산업체를 부실 덩어리로 만들었다. 주가가 절반이나 5분의 1로 추락했다. 완전히 말아먹은 것이다. 한전을 망쳐놓은 것도 모자라 대통령 공약이라고 한전공대를 지으라고 한다. 학생이 없어 전국 대학 4분의 1이 파산하는데 무슨 대학 신설인가. 한전이 문재인 개인 회사인가.
2년 반 만에 사방을 둘러봐도 '우방'이 없다. 김정은은 비핵화는커녕 한국의 아침 인사를 '굿모닝 미사일'로 만들었다. 일본과는 단교 상태에 왔고 미국 대통령은 '북 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중국에 3불(不)로 군사 주권까지 내줬는데 영공을 넘본다. 러시아는 한국 공군이 계속 방해하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다. 청와대는 북한이 핵실험을 몇 번 했는지도 모르고 외교장관은 '인형'이다. 국방일보는 '군사력이 아니라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고 한다. 어느새 한반도 대표는 김정은이다. 지금 어느 나라가 우리를 도와주나.
허구로 만든 영화들이 나라를 흔들고 언론은 정부 비판이 아니라 정부의 응원단이다. MBC 3노조가 성명을 내 '정권 옹위 방송을 하다 하루 광고 매출이 어린이 한 명 유튜브 광고액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자탄했다. 검사들은 죄를 찾는 게 아니라 죄를 만들고 있다. 이를 막아야 할 판사들은 대중에게 영합한다. 국가 위기의 현실과 동떨어진 여론이 오히려 위세를 부려도 야당은 대안으로서 존재감도 없다. 그러니 정권이 잘못해도 벌도 받지 않는다. 길을 잘못 든 나라가 그것을 교정하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계속 간다. 사람들은 '국운이 다한 것 같다'고 한다. 이 말이 이렇게 실감 나게 들린 적이 없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7/2019080703310.html
2019-08-08 10:08:29 | 관리자
아멘!
2019-08-05 15:27:05 | 김야곱
아멘!
2019-07-30 19:43:33 | 최문선
아멘!
2019-07-30 18:49:39 | 박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