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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해요^^'기도는 교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도록 해준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동, 성품이 변화 된다.'성화되는 과정중에서 필요한 부분이 기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네요.   매번 어떤 분들이 이런 풍성한 음식을 준비해 주시는지 궁금하네요^^ 더욱 풍성한 교제가 되시길 멀리서 응원합니다!!  
2023-06-26 12:02:25 | 김세라
글을 잘 써주셔서 내용이 머리속에 잘 정리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자매님~~ 고난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지켜주심에 평강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자녀임을 증명하는게 아닐까 싶어요..지나고 나서야 선하게 이끌어 주셨다는 경험은 땡깡을 졸업하고 가만히 견디는 수준까지는 이르게 되었네요~^^ 요즘 세태에서는 세상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씀! 말씀밖에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요..
2023-06-25 08:29:15 | 목영주
2023년 6월22일 목요자매모임   안녕하세요^^   성경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성들을 높이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사회와 가정 안에서 여성이 맡은 역할을 고귀하게 여기고 그들의 영향력을 중시하며, 특별히 경건한 여성들이 믿음 안에서 순종하는 삶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아내가 집안의 가구나 노예 같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남편이 소중히 여겨야 할 조력자이자 존중해야 할 동반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탁월함은 언제나 사회적 지위나 부, 외모가 아니라 도덕적, 영적 성품에서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인위적으로 치장하는 외모가 아니라 경건함과 선한 행위가 여성이 지니는 아름다움의 진정한 본질이라고 말했습니다.   딤전 2장9절 또한 이런 식으로 여자들도 단정한 옷으로 자기를 꾸미되 얌전하게 맑은 정신으로 하고 장식한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하지 말며 10절 오히려 (하나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여자들에게 합당한) 선한 행위로 하기를 원하노라.   성경에는 진리를 입증하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여성들의 충실한 삶이야말로 그들이 남긴 참되고 영원한 유산입니다.   그들의 삶과 충실한 성품을 배우면서 도전과 격려를 느끼게 됩니다. 자매모임을 통해 바르게 알고 바르게 삶에 적용 할 수 있게 우리를 성장시켜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5장 기도는 결코 주문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다. 하지만 대화는 인격적인 만남이나 관계로 이어지지 못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데 그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알기를 원한다. 곧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주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례가 드문드문 나타날 뿐이지만, 신약성경에서는 주님의 삼위일체적인 특징이 여실히 드러날 때마다 그분의 아버지로서의 성품도 뚜렷하고 도드라지게 보여 준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 죄에서 인류를 구하게 하셨으며 그 덕에 하나님의 아들딸로 입양될 길이 열렸다.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이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고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성령님은 구원 받은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거룩한 본성을 심으셔서 가족 유사성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란 말에 담긴 풍성한 의미는 은혜와 믿음으로 입양되어 하나님의 새 식구가 된 이들에게만 적용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법적으로만이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공급받는 관계에 들어간다.   기도는 이처럼 친밀한 관계와 아버지의 사랑을 마음껏 느끼고 누리는 방법인 동시에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토대로 평안하고 기운찬 삶을 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고대국가와 문화는 백이면 백 사원을 갖추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신성한 존재 사이에 크게 벌어진 틈, 또는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위대한 반면, 사람은 한없이 왜소하다. 하나님은 완전하지만 우리는 흠투성이다. 사원은 벌어진 틈을 잇기 위해 몸부림치는 공간이다. 까마득하게 멀리 있는 신을 가까이 끌어들일 줄 아는 전문적인 ‘중재자’(제사장)들이 거기서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며 의식을 집전한다.   하지만 너나없이 그런 몸짓들이 죄다 불완전하고 단편적임을 안다. 어느 종교도 그 틈이 메워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수많은 종교는 신을 숭배하거나 달래는 건 가능할지 모르지만 가까이 지내며 관계를 쌓는 건 불가능하다.   세상의 철학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이 되셨다. 우리와 똑같이 유한한 존재가 되셔서 고난과 죽음을 겪으셨다. 어떤 행위를 하고 어떤 공로를 세웠느냐와 상관없이 죄를 용서받고 의로워질 수 있는 길을 여시려고 스스로 인간이 되셨다. 우리가 감히 주님 곁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 거대한 틈 건너편에 계실뿐만 아니라 그 간격을 잇는 다리가 되셨다. 이렇게 하나님과 맺은 관계는 깨지거나 고장 나지 않는다. 인간의 성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결코 주문이 아니다. 성경의 기도는 값없이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아버지의 한결같은 사랑을 근거로 드리는 간구다. 기도는 교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도록 해준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동, 성품이 변화 된다.   여덟 살짜리 사내아이가 장난감 트럭을 가지고 놀다가 망가뜨렸다고 생각해 보자. 몹시 낙담한 아이는 아빠 엄마에게 달려가 고쳐 달라고 떼를 쓸 것이다. 하지만 울고불고하는 아이에게 아빠가 “얘야, 먼 친척 어르신이 돌아가시면서 네게 1.000억이라는 큰돈을 남겨 주셨어” 하면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 십중팔구 더 크게 울면서 트럭을 고쳐 내라고 아우성 칠게 뻔하다. 아직 어려서 그런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 역시 영적 용량이 부족해서 예수님 안에서 스스로 어떤 신분인지 실감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베푸신 구원의 높이와 깊이와 너비와 길이를 파악할 영적 능력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길 바울이 간구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경건한 지식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에베소서 1장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절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19절 또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에 따라, 믿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분의 권능의 지극히 크심이 무엇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23-06-24 16:57:15 | 이은정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  반응한다는 말이 저절로  끄덕여 져요. 기도는  누구나 다 하죠. 기도의 대상이 중요하고 그 대상이 알아주는 것은 우리만의 특권입니다.
2023-06-16 15:25:04 | 이수영
요약을 잘해주셔서 저절로 반성되어지네요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도 중요하지만 나약함고백하며 내어맡기는 일상으로 하나님하고의 관계를 더 중시하지 못한 점을 발견했네요..) 부모님의 깊은뜻을 자식이 알면알수록 안심편안하고 더 힘나게 살아지는 것처럼 우리가 말씀으로 하나님알아가기! 기본이며 귀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23-06-16 07:27:40 | 목영주
2023년 6월 16일 목요자매모임   안녕하세요^^   경건한 독서는 성경을 대체하거나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사용하도록 하며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영적으로 성장시켜 줍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 그런즉 너희는 주의하여 조심스럽게 걷되 어리석은 자들처럼 하지 말고 지혜로운 자들처럼 하며 16절 시간을 되찾으라, 날들이 악하니라. 17절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가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히려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제 3장 기도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세상에 존재하는 오만 가지 기도가 본질적으로는 다를 게 없이 다 똑같은가? 그게 아니라면 참다운 기도란 무엇이고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 절대자를 향한 인간의 본능, 기도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등 모든 종교들은 어김없이 기도를 신앙의 핵심으로 꼽는다. 유대교인들은 하루에 세 차례 기도하지만 무슬림들은 매일 다섯 차례씩 기도하는 계율에 따른다. 기독교는 교단마다 공동기도와 개인기도, 목회기도를 비롯해 다양한 전통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불교도들은 마니차(원통형의 회전 예배기)를 돌린다. 힌두교도들은 수많은 신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 도움을 청하거나 세계의 평화를 구할 것이다. 종교라면 코웃음부터 치는 이들도 기도를 드린다. 이처럼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 사이의 소통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어떤 형태로든 상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유념할 게 있다. 기도는 보편적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도가 똑같은 건 아니다.   - 기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반응이다. 성경의 시각으로 보면 기도가 범우주적인 현상인 것은 조금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는 말은 주님과 관계를 맺으며 그분을 반영 하도록 설계되었다는 뜻이다.   로마서 1장19절~20절은 인간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며 위대한 전능자가 있어 만물을 짓고 돌아가게 한다는 결론에 이를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얼마나 연약하고 위태로운 존재인지 실감케 하는 사건은 이 원초적인 인식을 흔들어 깨워 기도하며 간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와 문화를 좇는 이들도 열심히 기도하며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을 부끄럽게 할 만큼 지극정성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된 성경과 그 중심 메시지인 복음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공급받는다. 하나님의 생생한 말씀인 성경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로 반응 할 수 있다. 성경 말씀과 성령님 덕에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답변이 될 수 있다. 온전한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 기도는 하나님과 쌍방향 소통 활동 욥은 그의 이름을 달고 구약성경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책에서 시종일관 하나님께 부르짖듯 고뇌에 찬 기도를 드린다. 쉴 새 없이 불평을 쏟아 내면서도 욥은 절대로 주님께 등을 돌리거나 그분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기도하면서 고난과 고통을 겪어 갈 따름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욥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은 조목조목 생생하게 설명하셨다. 하나님이 제시한 심오한 환상 앞에 욥은 탄식하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마침내 욥은 회개와 찬양이 어우러진 장대한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또렷이 알아 갈수록, 불평과 하소연뿐이던 욥의 기도는 차츰 고백과 간구, 찬양으로 발전해 갔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실해질수록 기도는 더 풍성해지고 변화의 폭이 인생 전반으로 널리 확산된다.   기도의 능력은 인간의 노력이나 열심, 또는 기교가 아니라 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달렸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욥에게는 하나님이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게도 그렇게 해 주시면 좋겠다”고 대꾸하고픈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이들에게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성품을 훨씬 명쾌하게 드러내는 패를 쥐었으니 그런 소리 마시라”고 얘기하고 싶다.   히브리서 1장1절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2절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아들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셨으며 그분께서 또한 그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3절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 자체의 정확한 형상이시며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시는 이 아들께서는 친히 우리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뒤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그보다 더 알아듣기 쉽고, 인격적이며, 근사하게 소통하는 통로는 없다. 성경에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직시할 수 있다.   제 4장 소견대로 하는 기도는 비극이다.   말씀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기도의 출발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주님을 섬기는지 신경 쓸 필요 없이 그저 기도만 하면 된다는 식의 권유는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기도 원리가 될 수 없다. 상대의 실체와 됨됨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관계가 발전하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원하는 감정과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기도할지 결정해선 안 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선명하게 알수록 기도는 더 정확하게 틀이 잡히고 다듬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기도는 제한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 뿐만 아니라 본질에서 벗어나 엉뚱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스스로 그려 낸 하나님이나 제 눈에 근사해 보이는 삶에 반응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 마음 내키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을 지어내는 지경에 이르기 십상이다.   서구 문화 속에서 자란 이들은 사랑이 넘치고 용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좋아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은 반기지 않는다. 그래서 회개라든지 죄를 용서받은 기쁨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기도라 할지라도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면 결국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즉흥적으로 떠오른 자신의 생각이나 충동, 느낌을 하나님이 마음에 들려주시는 음성으로 착각하는, 자기 소견대로 드리는 기도는 비극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 하시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 반응한다. 하나님을 계속해서 알아가지 못하면 성화의 삶을 살아 갈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하는 것은 눈가리개를 하고서 아무런 방향 감각 없이 그리고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2023-06-15 21:59:28 | 이은정
좋은 글 고맙습니다. 반찬들을 마구마구 집어먹고 싶네요~^^ 삶에서 큰고난은 물론 작은고난도 파워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심을 믿고 견딜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으로 그분에 대해 잘아는것! 그래서 저절로 맡겨지는 것! 거기에 있지않나 싶어요..오늘도 교회섬김으로 동분서주한 교회형제자매님들께 죄송하고 고마운마음이었습니다~~
2023-06-11 16:22:01 | 목영주
기도의 힘은 특별합니다. 위급한 순간에 합심하여 하는 기도의 위력은 엄청납니다. 그러나 기도는 특별하고 거창하게 격식을 갖추어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제 경우는   일상속에서 주님과 대화하듯 기도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니까요. 간절히하는 기도는 일상적인 기도와는 다르더군요. 기도라는 말은 한 단어지만 때마다 다르게 되는 것은 저만 그런지~
2023-06-09 16:29:10 | 이수영
2023년 6월 8일 목요자매모임   안녕하세요 ^^ 오늘은 “ 팀 켈러의 기도 ” 책을 가지고 교제를 나누는 첫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중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또한 삶에 적용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15절 그러므로 어찌해야 하겠느냐? 내가 영과 함께 기도하고 또한 이해하면서 기도하며 내가 영과 함께 노래하고 또한 이해하면서 노래하리라.   제 1장 바른 기도를 꿈꾸다.   - 명상센터를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 한 세대 전에 일어난 영성과 명상, 관상 등에 대한 관심이 아직까지도 서구 사회 전반에 걸쳐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비틀즈가 동양의 명상에 눈길을 주면서 순식간에 대중화의 물꼬가 트인 뒤로 제도 종교의 쇠락과 맞물려 꾸준히 확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정기적인 예배의 통상적인 절차를 아는 이들은 갈수록 줄어들지만 영적인 갈망은 어떤 형태로든 여전히 존재한다.   교회 역시 기도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져 왔으며, 묵상이니 관상이니 하는 옛 전례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력한 움직임이 일었다. 온갖 ‘영성 훈련’을 인도하고 지도하는 기관과 조직, 네트워크, 전문가들이 곳곳에 차고 넘친다.   - 기도는 세상을 거스른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7-18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받은 영적인 복을 이해하고 경건한 지식과 통찰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바울이 쓴 글을 다 살펴봐도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환경과 처지를 바꿔 달라고 호소하는 대목이 들어 있지 않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살고 있었다.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바울의 기도들에서는 좀 괜찮은 황제를 만나게 해 달라거나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다니는 병사들에게서 지켜 달라는 건 물론이고 다음 끼니를 책임져 달라는 간구조차 찾아볼 수 없다. 바울은 요즘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기도 제목 리스트에 올려놓고 요청했음직한 온갖 유익한 조건들을 구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얻어야 할 결정적인 응답은 환경의 변화보다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지식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실재를 강렬하게 감지하지 못한다면 좋은 환경은 지나친 자신감과 영적인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심 ‘요긴한 게 다 수중에 있는데 굳이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밝아진 마음‘이 없으면 좌절과 낙담에 빠질 수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땅히 그래야 하듯 한없는 위안을 주는 게 아니라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삶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더 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외면생활에 우선순위를 두면 내면생활은 어둡고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혼자라는 생각에 무얼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자기 검열을 거듭할수록 심기가 불편해지고 급기야는 시야가 극도로 좁아져서 반성이니 성찰이니 하는 게 도무지 불가능한 형국에 이를 것이다. 거기서 상태가 더 심각해지면 진실성이 삶에서 완전히 실종될 수도 있다. 속에는 자기 회의와 걱정, 자기 연민, 해묵은 원한 등이 그득해도 겉으로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영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건강하고 온전한 듯 행세한다. 하지만 어떻게 마음속의 여러 방들에 들어가 무엇이 들어찼는지 확인하고 처리할 방도를 가늠하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서, 내면생활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한, 백이면 백 위선에 빠지고 만다.   참다운 자신을 찾으려면 지켜보는 눈길이 전혀 없을 때, 이러저러한 상념에 잠기도록 몰아가는 압박 요인이 전혀 없는 순간에 무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살피라. 생각이 하나님을 향해 흘러가는가? 잘난 체하지 않는 겸손한 인간으로 보이고 싶은가? 솔선해서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라.   내면생활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말이 개인주의적이거나 이기주의적인 생활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더 잘 알아 가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에 속해야 하고 개인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공동 예배에도 참석해야 하고, 고요히 묵상하는 동시에 성경을 공부하기도 해야 한다.   - 기도를 알려거든 성경을 펼쳐라. 성경은 시종일관 하나님을 말한다. 기도와 관련한 이야기가 갈피갈피 골고루 스며들어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기도가 위대한 것은 곧 인간의 삶 가운데 미치는 하나님의 손길과 영광이 크고 넓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성경은 일관되게 이 진리를 증언하는 길고 긴 간증이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바치며 장대한 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그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일임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대목이다. 구약성경 욥기는 주로 욥이라는 인물이 엄청난 고통 속에서 기도로 나가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기도로 백성들을 고쳤으며,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할 성전이 변질되고 타락했음을 통렬히 비판했다.   기도는 너무 엄청난 것이어서 성경 어디를 펴든 금방 찾아볼 수 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계신 자리마다 어김없이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어디나 계시고 한없이 크신 분이므로 기도 역시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 수밖에 없다.   - 기도라는 위대한 길에 들어서 보라 기도는 ‘인간을 처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숨결’이다. 기도는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기도는 인간이 갈구하는 영혼의 깊은 안식이다. 기도는 힘과 생명력의 유일한 근원인 ‘영혼의 피’다. 예수님의 이름에 기대어 기도하고 그분이 베푸시는 구원을 믿고 기도하면, 영적으로 임금님 앞에 서기에 합당한 예복을 ‘잘 차려입은 인물이 된다’   평생 동안 가야 할 기도의 험한 여정을 막 시작하는 이들은 너나없이 자신이 실체를 가늠하지 못한다.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만 저마다의 실상과 마주한다. 하나님 앞에 서지 않고는 스스로의 참모습을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기도는 주님 앞에 서서 자신의 참다운 됨됨이를 공부하고 그분께 스스로의 진수를 드리는 행위이다. 하나님만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 가는 일이란 얘기다.   성경에는 탄식과 간구, 애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기도는 세상의 악한 현실을 거스르는 일종의 반역이므로 성경에는 숱한 탄식과 간구, 애원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헛된 몸짓이 아니다.   오만한 심령은 성을 공략하는 병기로서 기도가 갖는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예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마음 이야말로 죄를 면할 유일한 피난처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용서와 의로움에 기대지 않는 한,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 그분 앞에 서지 못한다.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과 연합하게 한다.   기도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요, 친밀감이며, 고단한 씨름이지만 본질에 맞닿는 길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요하거나, 힘겹거나, 풍요하거나, 삶을 바꿔 놓을 만한 일은 어디에도 없다. 기도만큼 위대한 일은 결단코 없다.          
2023-06-09 08:19:14 | 이은정
사진속에 있는 꼬마김밥 몇개 집어 먹는 상상을 합니다~^^ 우리 사람은 시스템안에서 뭔가 애쓰고 노력해야만 뿌듯해하는 습성이 있나봐요.. 그래서 나에게 집중되고 내 노력을 통해 참기쁨도 얻으려는 요즘 세상입니다. 하나님계심 아는것, 은혜로 공짜로 거저 구원받은것,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죄들도 용서하셨다는 그 기쁨 자유함을 다시한번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입니다.
2023-05-26 17:55:07 | 목영주
안녕하세요?이번주 목요자매 모임에서는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마지막  9장, 미래의 기독교인? 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이머징 교회-이머징교회란 -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 하나의 기독교 운동으로서 감각적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이르는 혼의 영역을 자극하여 영적 세계를 탐구하려는 의식이며 그 예배의 특징은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참여자가 예배의 중심이다. 이머징교회 운동은 이제 제법 종종 논의 되는 문제가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활동 하더니, 이제는 어느덧 전면으로 대담하게 나오고있다. 이머징교회는 용어 자체가 시사하듯이 젊은층에게 기독교인의 살아 숨쉬는 삶에 대해 전적으로 다른 접근을 제안한다.  이머징 운동가들에게는 심지어 구도자 중심의 방법도 거룩함에 꼭 필요한 것을 심각하게 결여한 방법으로 보일 뿐이다.  자기들 나름대로는 새로운 형태의 영성이라는 주제를 설명하고  보급하는 다수 책들이 출간됐다.  바로 앞장에서도  지적했지만  인기있는 책들 하나가 댄 킴벌의 이머징교회다.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다른 세계들과는 어떻게 달리 사고 하고 느끼는지 설명하고 있다.  -미로걷기-교회가 관상적인 영성에 둘러싸아면 싸일수록, 더 많은 고대의 수련 방법이 교회안에서 행해진다.  이것 중 하나가 미로 걷기이다. 이 미로 구조물 안에서 명상하며 걷는 수행법은 수천년 전으로 기원이 올라간다. 미로걷기 수행이 오늘날 기독교에 소개되었고 [거룩한 길 걸으며: 영적 도구인 미로걷기의 재발견] 의 저자인 로렌스 아트레스 박사의 노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미로는 여러 갈래길이 있는 실제 미로가 아니다. 미로는 중앙에 있는 한 길이고 밖으로 돌아나오는 같은 길이다. 불교에서 미로는 만다라 혹은 신성한 고안 이라고 불린다. 미로를 걷는사람들은 길을 걷는 동안 다른 다어 하나 혹은 한 문구를 반복함으로써 넓게 중심 잡기 혹은 관상기도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미로의 중앙에 도달하면 자신안에 있는 신성에 도달 하거나 신성을 중심으로 삼는 일이 일어나리라는 염원을 가지고 걸어가는 것이다.  이런 미로걷기가 여러복음주의 교회를 포함해 이곳저곳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고대의 수련법-기독교 청소년 사역 지도자들을 위한 전문 잡지인 [그룹 매거진] 의 1999년 7~8호는 눈을 감고 관상기도를 하는 한 십대 소녀를 모델로 내세웠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관상기도의 훈련을 통해 사랑의 음성을 거듭해서 듣는 법을 배우고 사랑의 음성 속에서 자신에게 어떤문제가 제시되든지 간에 선언하는 지혜와 용기를 발견해야 한다. .....기독교 지도자가 미래에도 지정으로 열매를 맺으려면, 도덕에서 신비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불교는 당신 자신밖에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한다. 한 불교 고승은 이렇게 썼다. "인간완성에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이미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발견되는 존재의 완전인데, 바로 이것이 불교의 접근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원자로 바라보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불교적인 방식을 존중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자기자신을 내어준 분을 부인하는 처사다.  기독교와 불교가 동시에 참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서로가 구원으로 향하는 반대 근거를  권유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요10:9 내가 곧 문이니 누구든지 나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 모두를 사랑하고 따를 수 없다. 실제로 선택은 자아의 신성을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주요 구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신뢰할것인가 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오도된 목자-엄청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모든 관상적인 전통의 저 밑바닦에는 한 뿌리에서 갈라져나온 무엇이 있다. 지난 3천 년 동안 다양한 종교가 존재해 왔지만 전세계의 토착민들이 공유한 공통 종교가 하나있다. 내 자신이 여성의 영적 체험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때, 그 해 가을 나는 더 깊은 방법으로 내 몸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의 여신의 현신임을 알게 된것이다. 기독교를 포함해 모든 종교의 전통에서 신비한 깨달음의 절정은 통일 혹은 비이원론의 경험형태로 당도한다. 선에서는 이것을 사마디라고 한다. 사실 초월성과 내재성은 분리되지 않는다. 신성은 하나다. 춤추는 자와 모든 형태의 춤들은 하나다. 내가 대오각성한 날은 온세상을 신 안에서 그리고 신이 온세상안에 있음을 알고 본 그날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미국인들이 요가, 명상과 같은 힌두교 수행을 따라 하면서 변용을 발전시키고 힌두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그리고 다양한 비밀 종교적인 수련법들을 추구하고있다.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 히10:20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 히10:21 또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계시므로 히10:22 우리 마음이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고 우리 몸은 순수한 물로 씻겼으니 우리가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잠잠하고 알지어다- 기독교 안에서 관상적인 영성이 점점 인기를 끌고 있는 증거는 흔히볼수 있다. 관상기도에서 놀라운 것은, 이 기도를 어디서나, 언제나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동식 성소를 지니고 다닌다. 우리는 삶을 산다.  어디서도 괜찮다.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곳이면 된다. 누구나 관상기도를 실천하고 움직이는 성소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사람안에만 거하신다고 말하는 성경은 틀렸다. 기억하라.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3: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잠잠함이란 말을 어떤  뜻에서 한 것인지, 그냥 고요한 묵상혹은 명상의 시간이라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관상기도 운동이 이런 고요한 명상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관상기도는 전혀 그 반대를 선전한다. 고요함이라는것은 의식의 변용상태, 단어들 혹은 문구들을 반복함으로써 도달하는 상태를 말한다. -결별의 시간-관상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연구하고 묵상하는것과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 사이를 구별해준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만을 연구하거나 그냥 평범한 기도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 하려면 관상기도를 해야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의식의 흐름이 멈춰지는 신비수행을 해서가 아니다.  성경에서는 단 한번도 의식의 흐름이 멈췄다고 기록하고있지 않다. 오히려 헛된 동어반복을 경계하고있다. 신비주의는 공통분모를 제공한다. 그리고 공통분모는  추측컨대 온 세상안에 있는 신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막12:32  한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 외에 다른 이가 없으므로... 라는 말씀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 시간과 공간을 드린다는 말이 정말 무슨 뜻인지 알 때  영성의 공허함과 미혹하는 성격 또한 알아차릴 수 있다. 여기 미래의 기독교인을위한 소망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확고한 소망이 있다. 지옥의 문이 우리를 집어삼키지 못할것이라는  마태복음 16장 18절의 말씀이 있다. 성경의 예언대로 결별의 시간이 올것이고 배교한 교회가 장해진 때에 "불법의 사람" 을 이끄는 일에 앞장서겠지만 주님의 다시오심에 자신을 준비하는 신부도 존재할것이다. 나는 이일을 위해 경건한 분별력과 안전한 여행을 당부한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요1:1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요일5:11 또 그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이니라.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2023-05-25 21:34:34 | 조현진
정리도 참 잘해주셨네요 고맙습니다~ 구원받기전 저는 목적이 이끄는 삶 책을 관심있게 읽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그 책에서 절대적 하나님을 느끼기보단 내가,사람이 뭔가 애써노력해야 한다는 모호함을 남겼던것 같네요.. 하나님을 바르게 알면 삶의 질이 다른데..리더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살면 살수록 많이 들어요.
2023-05-20 18:01:44 | 목영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지,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인지, 나 자신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인지에 대한 분별이 정말 중요한데, 자매모임에서 그런 부분을 연구(study)하는 것을 보며 역시 '사랑침례교회'구나 생각이 듭니다. 특히 자매님들이 우리 형제들보다 민감하기에 영적 분별에 있어 더 깊은 지식과 관점을 가지고 교회를 두루 살피는 역할에 더 장점이 있는 것 같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구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2023-05-19 10:48:33 | 정진철
안녕하세요.이번주 목요자매모임에서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8장( 미국을 대표하는 목사)  챕터 막바지에 들어섰습니다.교회 곳곳에 그리고 나의 신앙생활 구석구석 에 숨은, 내가 알지 못 하는 영역까지 침투해 있는 신비적인 수행들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고 분별할 수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이 책의 맨 뒷장에 서술 되어있는 문구를 인용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오늘날 영적훈련 운동이라는 이름아래 수많은 교회안에 고대 신비적인 수행들이  소개 되고 있다. 관상적인 영성이라고 알려진 이 신념는 신비주의와 신비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책은 교회안으로 들어오고있는 새로운 영성의 실체를 폭로하며 오늘날 많은 기독교 교사와 지도자들이 가르치고있는 침묵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는지 아니면 이 침묵이 성경진리를 왜곡하고 기만하는 관문인지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미로찾기, 호흡기도, 중심기도, 침묵, 요가, 사막 교부들, 영적훈련, 관상기도 그리고 고대의 지혜수행에 대해 한번이라도 의문을 품어보았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며 이 새로운 영성은 어떤 전술로 교회안에 침투하는지 그 답을 듣고 놀랄것이다. 답은 바로 목적이 이끄는 삶, 이머징 교회, 영적 훈련, 영적 디렉터, 포스트모더니즘, 젊은이 사역, 신학교와 기독교 대학들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목사-디모데전서 4장1절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라 하시는데 2008년 가을 이 책이 나왔을 때,  다른 한권의 책도 출간 됐다.  이 두번째 책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유명세를 탔다. [목적이 이끄는 삶] 은 집집마다  한 권씩  두는 책이 되었다. 릭 워렌은, 앞서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수백만 미국인들 (주로 복음주의적인 기독교권의) 의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았다. 워렌의 책들은 기독교인의 삶을 보여주는 청사진으로 수백만, 아니 전 세계 수천만 명의사람들에게 읽혔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거의 1300만부가 팔렸고, 이 수치는 계속늘어가고 있다. 이 말은 미국의 기독교인 가정 거의 모두가 실제로 최소한 집에 한 권 정도는 비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관상 기도-난감한 주제관상적인 영성은 혼합 영성으로 향하는 길목이고 따라서 십자가의 메세지를 부인하는 처사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사람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음을 안다. 워렌이 언급한 운동 중 하나는 영적 훈련운동이다.  그러나 영적 훈련 운동은 "영적인 제자도" 를 통해 관상기도를 권장하도 있다.  목적이 이끄는 패러다임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새로운 종교개혁과 영적 배교라는 몰락을 너무 쉽게 이끌 수 있다는 결론이다. -목적이 이끄는: 신비가, 수사 그리고 호흡기도-워렌의 여기서 독자들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길 원하신다며 말문을 열고, "우리는 하나님의 계속되는 임재안에 살도록 지어졌다." 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친구가 되려면 "비결" 이 있다고 덧붙인다. 워렌이 이 비결중의 하나는 호흡기도 일종의 관상적인 영성이다. 워렌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냥 교회에 나가거나,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는 정도로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릭 워렌은 자신의 독자들에게 이 수사를 열렬하게 소개 하면서 수사의 사상이 " 도움이 된다" 고 할 뿐 아니라 수사들의 언급사이에 에베소서 5장 6절을 괴상하게 번역한 뉴 센츄리 역본을 얼버무려 넣는다. "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어디에나 계시며 모든것 안에 계시도다 ". 하지만 워렌은 이 오역을 바로잡고 독자들에게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바가 한 믿음으로 한 분 하나님아래서 유일 무이하게 그리스도와 연합한 교회 전체임을 경각시키지 않는다. 에베소서 4장 6절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 -무시할 수 있는 증거-릭 워렌은  웹사이트에서 전 세계 15만 명이 넘는 목회자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목회지들에게 이메일과주간에 보내는 뉴스레터도 유심히 살펴보라. 워렌이 리차드 포스터, 브래넌 매닝, 헨리 나우웬 그리고 토마스 머튼을 권장한다는 사실을 아는데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워렌은 위에서 언급한 그리고 다른 관상가들을 열렬히 추천하고 반복해서 권장한다. 말씀을 읽고 연구하거나 암송하는것은 영적 성장을 향한 탐험에서 한참 빗나간 것이다.요한복음 5장 39절¶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릭 워렌과 이머징 교회- 본질적으로 릭 워렌은 관상적인 메세지를 전 세계 확산하는데 중심 인물이 되었다. 릭 워렌은 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 운동이 출범할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도운 인물이다.  댄 킴벌의 인기를 모은 책 이머징 교회에서 릭 워렌은 이런 추천 글을 썼다. 이 책은 놀랍다. 목적이 끄는 교회가 포스트모던 세계에서 어떤 모습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다. 킴벌의 책은 이 일 [이머징 세계에 다가가는 일] 을 포스트 모던의 용어로 생각하고 느끼는 문화적 창조자들과  더불어 어떻게 할지 설명 하고 있다. 독자는 그 킴벌을 주목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기 때문이다. - 하나님과 사람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릭 워렌은 관상기도가 " 난감한 주제" 라고 말한다. 워렌이 이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관상기도와의 다방면에 걸친 깊은 연관성을 볼 때,  워렌은  문제를 인식하는 정도가 아니라 관상기도를 옹호하는 것 같다.  워렌이 끼치고 있는  영향력으로 볼 때, 워렌은 리처드 포스터 혹은 토머스 머튼이 원했던 수준이상으로 관상기도를 퍼뜨릴 수가 있을 것이다. -미끄러운 경사면 -릭 워렌이 주류 기독교에 관상기도를 인식하는 노력을 어느정도 하고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관상적인 영성은 미끄러운 경사면과 같다. 이 경사면은 신성이 모든 인간 존재 안에 있다는 혼합영성과 미혹으로 떨어진다. 즉, 십자가의 메세지와 복음의 진리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뜻이다. 곧 세상의 희망이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그 심장에서 도난당하는 비극이다. 이같이 마귀의 움직임은 시종일관 하나님의 계획과 일을 방해하고 심지어 하나님과 비슷한 방법조차도 쓰고있기 때문에 항상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야하는 경각심을 다시한번 일깨워줍니다        
2023-05-18 20:52:59 | 조현진
성경이 가장 기본이고 그것을 떠나 다른 것으로 눈을 돌리면 문제가 생기죠. 진짜와 가짜를구별하기 위해서는  진짜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한데 기본도 잘 안된채 파랑새를 찾아요. 정리를 잘 해주셔서  감사해요.
2023-05-12 17:48:48 | 이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