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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미쳤는가?   시카고 무디 교회의 목회자며 저명한 라디오 설교자였던 폴 레이더는 평소에 이 예화를 종종 듣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한 소년이 길가의 담장에 얼굴을 대고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그 아이는 때때로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그 사람은 ‘도데체 무슨 일인데 저 애가 저렇게 난리지?혹시 저 애의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니야?’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그 애는 담장 너머에서 벌어지는 야구 경기를 그 구멍을 통해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애는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안타를 칠 때마다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행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던 그 애는 행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에 대해 반응하면서 울고 웃고 하는 것은 미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 반응하는 것은 미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시는 분입니다!-[세상과 충돌하라]/ A.W 토저   다음의 주소로 가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vid=34984
2009-05-01 18:07:19 | 관리자
인생은 짧고 죄는 현실이기에 인생은 허비할 것이 못되노라. 사람의 연수는 나뭇잎의 떨어지는 것, 떨어지는 빗방울이기에 허비하며 소일하기에는 너무 짧은 인생이라. 이 세상에선 오직 진실해야 할 뿐이다. 많잖은 인생, 오직 한 번이 있을 뿐. 그렇다. 오직 한 번, 오직 한 번뿐이라. 그 한 인생, 그 좁은 막간, 아, 얼마나 성스러워야 할까! 축복된 수고로 채워져야 할 나날들, 시간 시간은 새로운 생산을 낳아야 할 뿐이라! (호레이셔스 보나르)
2009-05-01 18:06:29 | 관리자
크리스천의 인격과 세상살이 그리고 하나님   한번은 싱가포르 항공의 비행기 좌석을 구하지 못해 홍콩에서발이 묶인 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생길지도 모를 취소 표를 기다리며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내 옆에는 여행 중인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도 나와 같은 처지인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항공사 직원에게 다가갔습니다.두 사람 사이에 상당히 거친 말들이 오가는 듯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의 손에 탑승권이 들려 있었습니다.“비결을 말씀드리죠. 나는 저곳으로 가서 내가 아는 모든 욕설을 늘어놓으며 다시는 당신네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당장 비행기 좌석을 내놓으라고 우겼더니 탑승권을 주더군요.”그는 탑승권을 과시했습니다. “선생님도 가셔서 똑같이 하세요.”물론 나도 그 항공사 직원에게 갔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처럼 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정말 치사하고 야비하게 굴면 탑승권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무시하고 욕설을해대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좀 도와주시겠어요?”결론은 그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홍콩에서 하루 반을 더 보냈습니다. 이 사건에서 얻은 교훈은 인격이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성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성숙한 인격을 가지려는 이유는 득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올바른 방법이고 그렇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편리하게 풀리건 말건 우리는 성경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 「영적 성장의 길」/ 고든 맥도날드   이 땅에서는 인격의 변화가 예수 믿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을 갚이 묵상해 보기 바랍니다.   다음을 보기 바랍니다.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id=37687&mode=content_view&gotopage=&txtprogram=&bit=medium
2009-05-01 18:05:42 | 관리자
요즘 어떤 책들을 보고 있습니까? 성경 이 외의 책들 말입니다. 혹시 '나는 성경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성경대로 믿는다는 사람들의 한계가 이런 데서 드러나기 쉽습니다. 성경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격 성장과 세상의 이해, 사람의 죄성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경건 서적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글을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가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를 보면 그를 알 수 있다.3년 후, 10년 후 어떤 사람이 될지는 어떤 책을 읽느냐라는 중요한 요소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 - 마더 말러 앞으로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읽는 책에 의해 결정됩니다. 본 사이트에 접속하는 많은 분들이 '나는 보수 신앙인이다. 나는 근본주의자다'라고 자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책들을 읽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요, 완고한 사람 - 바리새인 - 이 됩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간직하려면 책을 많이 보기 바랍니다. 주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 배우지 아니하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사회학자 벤저민 바버는 “나는 세상을 강자와 약자,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로 나눈다.”고 말합니다. 독서와 끝없는 학습, 이것이 동서고금을 통해 강조되어온 성공의 첩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크리스천이 되는 첩경 역시 좋은 책을 읽는 데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사 홈페이지에 가서 토저, 김남준 등이 지은 책들을 보기 바랍니다. 또 부흥과 개혁사의 책들을 보기 바랍니다. 주로 장로교 저자들의 글이라 교리 면에서 조금 다른 부분이 조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 생활을 위해서 읽기 바랍니다. 이제는 조금 다른 부분도 이해하고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 과거에 인격이 바르게 수양되지 않아 여러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물론 지금도 어려움이 많지만 바르게 가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과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비례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종종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속의 글자를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글자에 갇히면 안 됩니다. '나는 킹제임스 성경을 본다'고 자랑하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안의 글자에 갇혀서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면 완고한 고립주의자가 됩니다. 킹제임스 성경 안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위해 애를 쓰기 바랍니다. 토저는 이것을 '불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날이 갈 수록 새로워지는 창조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9-05-01 17:45:55 | 관리자
올해 저는 우리나라 나이로 50이 되었습니다. 23세에 유학갈 때는 지금의 내 모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진실로 주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감사할 것을 많이 생각하고 아침마다 차를 타고 오면서 감사 찬송을 듣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 중에 그의 심경을 가장 잘 그린 것은 고린도후서입니다. 그가 사랑했던 성도들이 오히려 그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것을 보면서 사도는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고린도후서를 적어 나갔습니다. 요즘 저도 이래 저래 저를 잘 아는 분들로부터 악성 편지와 댓글 그리고 비방의 글을 받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속에서 불이나고 화가 치밀어올랐을 텐데 요즘은 오히려 담담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하면서 항상 사랑과 격려만 받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도 철이 들면서 사도 바울의 심정을 미약하나나 조금 이해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보다 지혜로운 제 아내는 이미 그것을 터득하였지만 저는 이런 것에서 좀 늦습니다. 그래도 일단 깨달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얼마나 더 살겠기에 남을 욕하고 또 욕을 먹었다고 흥분하고 열을 내며 지내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공과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가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자 맡은 위치에서 양심을 속이지 않으면서 마음 속의 부담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악한 글이 와도 오히려 그 글을 보낸 분을 위해 기도하고 저의 잘못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일에서 제게 인내의 은혜를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런 저런 반대가 있을 때 한 번 고린도후서 6장 말씀을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사도처럼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배반당하는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주님의 은혜가 넘쳐나길 기원합니다.    1 그런즉 우리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너희에게도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2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아 주는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구조하였노라, 하시나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3 이 사역이 비난을 받지 않게 하려고 우리가 어떤 일에서도 실족거리를 주지 아니하며4 오직 모든 일에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역자로 입증하되 많은 인내와 고난과 궁핍과 곤경과5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소동과 수고와 깨어 있음과 금식 가운데서 그리하고6 순수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친절함과 성령님과 거짓 없는 사랑과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과 오른손과 왼손에 든 의의 병기로 그리하며8 영예와 치욕으로 그리하고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으로 그리하였나니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고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하며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며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한 자로다.11 오 고린도 사람들아,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려 있고 우리의 마음이 넓게 열려 있나니12 너희는 우리 안에서 좁혀지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 속 중심에서 좁혀졌느니라.13 (내가 내 자녀에게 하듯 말하노니) 이제 너희도 같은 것을 보답하는 뜻으로 마음을 넓게 열라.  
2009-05-01 17:45:17 | 관리자
―사는 데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 "자신감이지요. 얼마 전에 키신저가 한국 왔을 때 한번 보자고 해서 만났어요. 그 나이에 그 먼 여행을 다 다니고 사람들도 얼마나 많이 만나는지 일정이 빡빡한 것 같더라고요. 자신감 있고 부지런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자꾸 나가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봐야 해요. 그래서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인터뷰에서   대우 그룹 김우중 전 회장의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 나온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어느 면에서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72세의 노구에서 나오는 말은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이 실패를 경한 사람 - 실패한 사람이 아니다 - 이기에 존경하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신뢰합니다.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고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갈보리 십자가가 먼저 있고 그 뒤에 왕관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내가 잘못하고 그것을 고난을 돌리면 어리석은 일이지요.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실패가 없을까요? 나도 한 때는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목회를 한다고 뛰어들었다가 큰 실패를 했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깊이 생각해 보니까 인생의 깊이가 더 깊어졌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또 다시 뒤를 돌아다보게 되었고 실패의 원인도 분석해 보았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제가 목사가 어떤 사람이지 모르고 교회를 시작한 데 있습니다. 또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교회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른 채 이론만으로 일을 하다 보니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도와 교회를 하겠다고 나선 형제/자매들에게는 정말로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알지 못하면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요2:23-25). 주님 안에서 큰 뜻을 품으려는 젊은이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비록 이 일로 고통이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와 제 아내에게는 이 일이 오히려 약이 되어 큰 반성과 더불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이제 터널을 빠져 나오려 하면서 뒤를 돌아다보면 우리 주님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입니다. 그분의 의도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방황하며 고뇌하는 동안 내 자신을 돌아보며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다보면 그것이 유익했지만 당하는 순간에는 전혀 유익하지 않았습니다.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이집트에서 옥살이를 하면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일을 당하는 그 순간에 너무 기뻐서 울었을까요? 그 역시 나와 여러분 같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엄청나게 원망도 하고 힘들어 했을 것입니다. 다만 그에게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한다'는 확신이 있었으므로 원통함과 어려움을 소망으로 극복하고 하나님의 더 큰 뜻을 보게 되었지요.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갑자기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또 거기로 들어가려는 나를 바로잡기 위해 그냥 적어 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진대,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일진대 내게 닥친 일들이 모두 우리의 복이 되리라고 믿으며 그분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안에서 자신감을 회복합시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2009-05-01 17:44:14 | 관리자
감사하고 싶을 때- 아침에      2008년 03월 08일 (토)  이번에 미국에 갔다 오면서 Jeem Reeves의 노래들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아는 노래들이 여럿 있었지만 요즘에는 더욱 더 노래들의 가사가 와서 닿습니다.  나는 음악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침에 차를 타고 직장에 가면서 매일 이 노래를 듣습니다. 감사하고 싶어서입니다. 특히 중간에 보면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가사가 나옵니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그렇더군요. 감사를 잊기 쉬운 세상에서 다시 하번 깊은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영어 발음도 정확하니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We thank Thee   We thank Thee each morning for a newborn day where we may work the fields of new mown hay We thank Thee for the sunshine and the air that we breathe Oh Lord we thank Thee We thank Thee for the rivers that run all day we thank Thee for the little birds that sing away we thank Thee for the trees and the deep blue sea Oh Lord we thank Thee Oh yes we thank Thee Lord for every flower that blooms birds that sing, fish that swim and the light of the moon. We thank Thee every day as we kneel and pray that we were born with eyes to see these things. We thank Thee for the fields where the clovers grow we thank Thee for the pastures where the cattle may roam We thank Thee for Thy love so pure and free Oh Lord we thank Thee. Oh yes we thank Thee Lord for every flower that blooms birds that sing, fish that swim and the light of the moon. We thank Thee every day as we kneel and pray that we were born with eyes to see these things. We thank Thee for the fields where the clovers grow we thank Thee for the pastures where the cattle may roam We thank Thee for Thy love so pure and so free Oh Lord we thank Thee.  
2009-05-01 17:43:29 | 관리자
요즘 저는 크리스천의 아픔과 고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50이 되니까 이제 믿는 것이 무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어려움과 고남이 올 때 우리 주님이 함께함을 인식하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면 주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제 56 편 ¶ 요낫엘렘르호김에 맞추어 악장에게 준 다윗의 믹담,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가드에서 붙잡은 때에 지은 시.1 오 하나님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 하고 날마다 싸우며 나를 학대하나이다.2 오 지극히 높으신 이여, 내 원수들이 날마다 나를 삼키려 하오니 나와 싸우는 자가 많나이다.3 내가 무서워할 때에 주를 신뢰하리이다.4 하나님 안에서 내가 그분의 말씀을 찬양하리라.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였은즉 육체가 내게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5 그들이 날마다 내 말들을 왜곡하나니 악을 행하려는 그들의 모든 생각이 나를 대적하나이다.6 그들이 내 혼을 기다리며 함께 모여 자기를 숨기고 내 발걸음을 지켜보나이다.7 그들이 불법을 써서 피하겠나이까? 오 하나님이여, 주의 분노로 그 백성을 내던지소서.8 내가 떠도는 것을 주께서 세시오니 내 눈물들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그것들이 주의 책에 있지 아니하나이까?9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하나님께서 내 편이시므로 이것을 내가 아나이다.10  하나님 안에서 내가 그분의 말씀을 찬양하리니 곧 주 안에서 내가 그분의 말씀을 찬양하리라.11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였은즉 사람이 내게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리로다.12  오 하나님이여, 주께 드리는 서원들이 내게 있사온즉 내가 주께 찬양을 돌리리니13  주께서 내 혼을 사망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산 자들의 빛 가운데로 다니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 발을 건지사 넘어지지 않게 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눈물을 병에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주님 안에서 성취하려는 소원들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다음의 노래를 들어 보십시오. 나를 꼭 잡고 인도해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소원과 함께 가사를 음미해 보십시오. 물론 위에 있는 시편 56편을 많이 읽고 묵상한 뒤 들어야 은혜가 될 것입니다. 참고로 파주에 계시는 이영호 목사님 사모님께서 예전에 이 노래를 부른 것이 기억납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나중에 다시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Take my hand, precious Lord   When my way groweth drear Precious Lord, linger near-ear When my li-ight is almost gone Hear my cry, hear my call Hold my ha-and lest I fa-all Take my hand, precious Lor-ord Lead me on Precious Lord, take my hand Lead me on, let me sta-and I am tired, Im weak, I am worn Through the storm, through the night Lead me on to the li-ight Take my ha-and, precious Lor-ord Lead me home When my work is all done And my race here is ru-un Let me see-ee by the light Thou hast shown That fair city so bright Where the lantern is the li-ight Take my ha-and, precious Lor-ord Lead me on Precious Lord, take my hand Lead me on, let me sta-and I am tired, Im weak, I am worn Through the storm, through the night Lead me on to the li-ight Take my ha-and, precious Lor-ord Lead me home
2009-05-01 17:42:29 | 관리자
간절히 원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하고는 다르단다.” 트리나 포울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현실의 안락함을 포기할 정도로 간절히 원한다면 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무엇을 원하십니까? 조용히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정말로 무엇을 혹은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가?"를. 저는 나이가 점점 들면서 좋은 인격을 갖춘 크리스천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전에는 지식 중심의 믿음 생활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야 한다는 것이 제 소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을 갈구해야 합니다. 나를 누르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 충만을 갈구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야 성경의 글자가 살아 있는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서 일하게 됩니다. 토저의 말대로 '불타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추구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이런 것이 참된 근본주의입니다. 이런 펀더멘탈이 강해야 내가 살고 교회가 삽니다. 기억하십시오, 뜨겁게 주님을 추구해야만 함을.  
2009-05-01 17:40:47 | 관리자
골프를 잘 치자(?)   저는 전혀 골프를 못합니다. 그런데 요 몇년 사이 주변에는 큰 골프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골프 이야기를 하고 골프 여행 계획을 세우고 합니다. 그러다 보닌 자연히 옆에서 동료들이 골프 장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새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대개 장비가 좋아야 하는 줄 알고 비싼 가격으로 장비를 구입합니다. 그러고도 못치면 장비 탓을 합니다. 그런데 골프 고수들이 그때마다 주는 교훈은 골프 채가 아무리 좋아도 골프를 못치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근본주의, 침례교회, 바른 교리 등은 모두 좋은 골프 채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채를 가지고 있어도 골프를 못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일반 교회 성도들의 경우 골프 채는 조금 나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골프를 못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골프 채 자랑을 접고 이제는 골프를 잘 쳐야 합니다. 좋은 채로 골프를 잘 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지요. 그래서 채는 좋은데 골프는 못치는 경우와 채는 좀 나빠도 골프를 잘치는 경우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물으면 참으로 고민이 됩니다. 물론 좋은 채로 골프를 잘 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그런데 제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게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글자와 교리에 갇혀서 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사람과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다만 머리의 부흥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가분수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고 사람을 나누고 가르고 분열하게 만듭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아야 하는데 실제는 대개 그렇습니다. 이것은 마치 율법과 같습니다. 율법도 원래는 선한 것인데 죄가 기회를 타서 나쁜 것으로 변질되곤 합니다. 교회 안에서 상식이 통하고 세상의 기본적인 법칙이 통해야 하며 특히 주축 멤버들이 기본적으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목사와 성도 모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또 그리스도는 흥하고 나는 쇠해야 합니다. 그런데 글자와 교리에 갇히면 이것이 안 되더군요. 저 자신의 경험입니다. 이제는 목사부터 성도에 이르기까지 바른 것을 가지고 바르게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가정과 교회에 부훙과 활력이 없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메마른 채로 완전히 말라 비틀어진 채 겨우 겨우 살다가 가게 됩니다. 이 땅의 삶에서도 기쁨이 있고 부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킹제임스 성경을 보는데 나는 이렇게 냉냉할까? 왜 우리 교회는 근본주의를 지향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냉냉할까?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머리뿐만 아니라 감성(affection)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즉 가슴이 뜨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찬송가 507장을 깊이 음미해 보기 바랍니다. 너무 좋지 않습니까? 이대로 해 봅시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주 모습 내 눈에 안 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 들려도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십자가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의 마음 본받음이라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 성도 변화하여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 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2009-05-01 17:40:02 | 관리자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은 뒤 처음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구원의 감격에 빠져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천사일 것이라고 상상하며 노란 넥타이를 매고 예배당에 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가만히 살펴보니 실제는 자기의 이상과 너무 많이 다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천사들은 많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전혀 닮고 싶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이게 실제 이 땅에 존재하는 대부분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의 리더들도 이 사람의 이상적인 착각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성도들이 모두 자기를 칭찬해 주기를 바라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나 다른 리더들이 이것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리더들이 이런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직언을 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즉 리더를 모니터링하고 사랑으로 직언을 해 주지 않으면 그 리더는 패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교회니까 안 그럴꺼야 하고 생각하면 큰코 다치기 쉽습니다. 교회라는 것을 알게 모르게 악용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떳떳하다고 하는데 누가 무슨 말을 합니까? 그러므로 목사든 집사든 교사든 교회의 리더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잘 파악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도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건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충정어린 마음에서, 사랑으로 잘못을 혹은 잘못될지 모르는 요소들을 지적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서로의 신앙의 발전을 위해 또 교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사상누각이 될지 모릅니다. 다음은 어제 소개한 위대한 리더처럼 말하라에서 발취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글이라 올리니 참조하기 바랍니다. 직언하는 아랫사람이 있는가? 자신을 좋아하거나 자신에 대해 배타적 감정이 없는 사람을 포용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자신과 스타일이 다르고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 자신의 방식에 대해 자주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 잘못된 일에 대해서 거침없이 쓴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기꺼이 포용하고 관용을 베풀 수 있는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그것이 진정한 포용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은 물론 기업의 최고경영자도 가끔은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회의에 빠질 때가 있을 것이다. 잘 모르겠다 싶을 때는 “지금 회사에서 나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부하가 있는가?” 라고 반문하면 답이 나온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고 해도 나 혼자만 잘 해서 성공하는 일은 드물다. 대체로 한 사람의 훌륭한 인재 곁에는 차세대 인재인 충성스런 참모가 든든히 받쳐주고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 아부하는 참모가 아니라 자기 밥줄을 틀어쥐고 있는 내게도 쓴 소리를 할 줄 알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보좌해 주는 인재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맥을 아주 중요시하는 나라다. 동료나 선배, 상사, 거래처 등 그 모든 인간관계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에서 부하직원이나 후배의 존재는 특히 중요하다. 부하직원이나 후배는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부하직원의 눈은 날카롭다. 업무적으로든 인간적인 면에서든 부하직원은 분명 한 가지 이상 존경할 부분을 가진 리더를 따르게 되어 있다. 리더 역시 빠르게 성장, 발전하며 따르는 부하직원이 있다면 그 부하직원을 의식하면서 자기 위치를 지키기 위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하직원은 나를 키워주는 또 하나의 스승이라 할 수 있다.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따르는 부하직원이 눈에 띄면 그를 거울로 삼아라. 혹 당돌하다 싶을 정도로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귀를 열고 들어라. 리더에게 달콤한 소리보다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그 만큼 당신의 인격과 당신의 그릇을 신뢰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에 부응하여 수용과 조화를 중시하는 리더의 탁월한 면모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2009-05-01 17:38:23 | 관리자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면서 특별히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베푼 무리들  - 주로 가나한 자들, 세리, 창녀 등의 소외 계층 - 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였습니다. 즉 그들과 공감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인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우리가 교회나 사회에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남의 말을 경청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 점에서 늘 실패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의 말을 경청하지 않아 문제에 빠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리더들은 특히 듣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면서 제 자신에게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공해야 남을 리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람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정을 들어 주십니다. 귀담아 들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위대한 리더처럼 말하라'(전미옥)에서 한 부분을 따서 올립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남의 말을 듣는 일에서 확연히 다른 모습의 진보된 크리스천이 됩시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다섯 가지 스타일   - 무시하기 스타일: 내 생각이 늘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바탕에 있기 때문에 남이 이야기하는 것을 전혀 듣지 않는다. - 듣는 척하기 스타일: 상대방을 인정하고 마치 듣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상대가 말하는 내용 중 10% 정도만 듣는다. - 선택적 듣기 스타일: 상사가 부하의 말을 들을 때 자주 보이는 태도로, 어떤 것은 듣고 어떤 것은 안 듣는 것이다. 민주적 리더십보다는 전체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상대가 말하는 내용 중 30% 정도를 듣는 셈이다. - 적극적 듣기 스타일: 상대가 말을 하면 손짓 발짓해가며 맞장구를 쳐주고 적극적으로 들어 준다. 그러나 남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지만 귀로만 듣기 때문에 상대가 말한 내용 중 70% 정도만 듣는 데 그친다. 마음으로는 듣지 않기 때문이다. - 공감적 듣기 스타일: 귀와 눈 그리고 온 가슴으로 듣는, 가장 바람직한 듣기 자세다. 상대의 말을 거의 90% 이상 듣는다. 연애를 할 때처럼 그야말로 ‘내 이야기’처럼 맘을 활짝 열고 듣는다.
2009-05-01 17:37:45 | 관리자
지난 번에 말씀 드린 대로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리더십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근본주의 진영에 들어와서 가만히 살펴보니 자기가 처한 분야에서 으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패기가 없이 겨우 직장을 얻어서 - 그것도 구걸하다시피 - 비실비실대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교회에는 대개 자매들이 형제들보다 교육, 믿음 면에서 더 뛰어난 경우가 많고 그래서 자매들은 결혼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데서는 환난 통과를 주장하면서 젊은이들이 세상 일에 열정을 쏟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산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일터에 있든지 산에 있든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면 다 데려가십니다. 산에 들어 가려고 애쓰지 말고 이 세상 일터에서, 가정에서 열심히 삽시다. 할렐루야!      사람은 한 번 살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쫀쫀하게 살다 가지 맙시다. 나는 가끔씩 비행기를 타고 가다 KBS TV 프로그램 - 이름은 모르고 주일 저녁에 하는 것으로 알고 있음 - 에서 가수들이 노래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가수들보다 그 뒤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더 열심이더군요. 아니 그렇게 별것 아닌 것 즉 TV에 얼굴 한 번 비치는 것을 위해 온 정열을 쏟고 일 주일 내내 그 일에 매진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크리스천들 - 특히 형제들 - 좀 각성해야 하지 않읗까요? 그런지 안그런지 한 번 TV 보기 바랍니다. 우리 제발 데데하게 살고 데데하게 믿지 맙시다. 목사는 최선을 다해서 심혈을 기울여 설교를 준비하고 열정적으로 설교해서 성도들을 기쁘게 해 주어야겠다고 어금니를 물고 거듭 거듭 다짐해야 합니다. 성도들도 어떻게 하든지 주님을 흥하게 하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아야겠다고 거듭거듭 다짐해야 합니다. 이게 도대체 뭡니까? 열심을 가지고 살고 열심으로 믿어야 주님의 복이 임합니다. 우리 모두 각성합시다.   저는 지난 금요일에 강남에서 회의가 있어 전철을 탔습니다. 김우중씨의 책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집어들고는 오고가면서 책 읽는 기쁨에 빠져 다 읽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최근 들어 읽은 리더십 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세상의 돈을 벌기 위해서도 이렇게 애를 쓰고 혼심의 노력을 기울이는데 우리가 정말로 중요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있고 그분의 일을 한다면 어떻게 이렇게 미지근하게 살 수 있습니까? 이거 무언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이제 으뜸이 됩시다. 주님을 섬기는 모든 일에서, 세상 일에서, 가정 일에서 으뜸이 됩시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요?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에게서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3:23-24).  김우중씨의 글에서 한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부디 주님과 그분의 일을 위해 으뜸이 됩시다.   으뜸이 되라   6.25 때 우리 가족은 대구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아버지는 이미 납치되어 안 계셨고 형님들은 군에 입대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우리 집의 가장이 되어 가족의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나는 신문팔이로 나섰다. 그때 내 나이 열네 살이었다. 전쟁의 아수라장 속에서 열네 살짜리 사내애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신문팔이조차도 당시 신문사에 근무하던 아버지의 옛 제자가 만들어 준 일거리였다. 그때는 신문팔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신문을 받아서 주로 팔던 곳은 방천 시장이었다. 나는 신문을 받아들면 중간에서는 한 장도 팔지 않고 방천 시장까지 달려갔다. 방천 시장에는 사람이 많은데 중간에 몇 장 파느라고 다른 사람에게 그 좋은 장소를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중간에서 한두 장 파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다른 사람이 앞질러서 나보다 먼저 방천 시장에 달려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신문을 파는 사람들 중에 항상 맨 먼저 방천 시장에 도착했다. 항상 1등이었다. 그러나 1등으로 도착한다고 해도 그 시장을 독차치할 수는 없었다. 신문을 한 장 팔면 거스름돈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가 아무리 맨 먼저 도착하여 열심히 신문을 팔더라고 3분의 1쯤 파는 사이에 뒤에 따라온 아이가 나를 앞질러서 팔아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100장을 팔아야 네 식구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집에는 어머니와 두 명의 어린 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더 효과적인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것은 거스름돈을 미리 삼각형으로 접어서 주머니에 잔뜩 넣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언제나 1등으로 도착해 신문과 거스름돈을 던져 주고 돈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니 시간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그 시장 전체에 내 신문만 팔수는 없었다. 한 3분의 2쯤 가다 보면 또 뒤에서 다른 아이가 쫓아와서 앞서 나가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한 방법은 아예 신문 값은 받지 않고 신문만을 던져주고 나서 나중에 그 길을 돌아오면서 느긋하게 신문 값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니까 이제 아무도 나를 뒤쫓아 올 수가 없게 되었다. 물론 그러다가 신문 값을 떼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두 사람에게 떼이더라고 신문을 다 파는 편이 더 이익이라고 나는 계산했다. 또 그 당장에 못 받은 신문 값도 며칠 후에 만나서 대부분 다 받아낼 수 있었다. 몇 달 동안 내가 이런 식으로 신문을 팔자 다른 신문팔이는 그 곳에는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방천 시장을 나 혼자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분야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한번 도전했으면 반드시 으뜸이 되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은 방천 시장의 신문팔이 시절에 이미 생겼는지 모르겠다.나는 이제껏 사업을 하면서 늘 으뜸이 되고자 애썼다. 물론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런 대로 자랑할 만한 성과도 많이 거두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혹 1등은 못한다 하더라도 2등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는 안 돼.”, “나는 무능해”, “나는 1등을 할 실력이 못 돼.” 하고 포기해 버리면 그 사람은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하고 만다. 어떤 일을 하느냐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느냐이다.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또는 예술가가 되든 학자가 되든 정말로 자기가 택한 그 분야에서 으뜸이 되고자 노력하여야 한다. 1등을 하려고 애써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뒤쳐져도 상관없고 앞서는 것에 별로 흥미 없는, 그런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지 말라. 목표는 언제나 1등이다. 1등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최선을 다한 만큼 그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1등을 차지한 사람은 으뜸이 되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저 놀면서 대충해서 1등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헝가리 출신의 유명한 축구 선수가 오래 전에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뒤 기자 회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공을 찹니다. 공을 차고 있지 않을 때는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을 때는 축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축구 선수가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아무나 1등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다가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 살아 온 사람만이 그 분야의 1등이 될 수 있다. 기적이란 없다. 대우의 급속한 성장을 두고 흔히들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으뜸이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땀을 바쳐 왔는지를 몰라서 하는 소리이다. 나는 그리고 대우는 언제나 으뜸이 되려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대우 가족들에게 어느 분야에서나 일단 도전을 했으면 반드시 1등이 되라고 격려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항상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고지를 향해 전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후회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목표는 언제나 1등이어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나 으뜸이 되어야 한다. 미리부터 1등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려고 하지 말라.그것은 관용이 아니라 비굴이다. 그것은 희생 정신이 아니라 열등 의식이다. 행여라도 “너는 2등이면 족해.” 라든가, “내 분수에 1등은 무슨” 이라고 말하지 말라.1등의 자리는 바로 나의 것이라고, 1등은 바로 나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것이라고 마음먹어 보라.그리고 최선을 다하라. 반드시 보람이 있을 것이다.  
2009-05-01 17:36:10 | 관리자
어려서부터 부모님들이 '공부해라, 공부해라!'해서 공부에 노이로제가 걸린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크리스천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합니다. '공부하다'는 영어로 'study'인데 킹제임스 성경에는 이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구절은 딤후2:15입니다.   Study to shew thyself approved unto God, a workman that needeth not to be ashamed, 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2 Tim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연구하다'로 번역했는데 원래 이 말은 '부지런히, 열심히 하라'는 뜻입니다. 크리스천들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고 성경의 권고입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여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노라. 우리가 들으니 너희 가운데 질서 없이 걸으며 전혀 일하지 아니하고 참견하기만 좋아하는 자들이 더러 있다 하는도다. 이제 그러한 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가 명령하며 권면하노니 그들은 조용히 일하고 자기 빵을 먹을지니라(살후3:10-12).   우리의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열심히 일합시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 할 일을 얻는 대로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 네가 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느니라(전9:10).   사람은 한 번 살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가게 됩니다. 그러니 혼신의 힘을 다해 바른 것을 추구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다가 부르시면 가야겠다고 굳게 작정하십시오. 또 자녀들에게도 철저한 정신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생각과 속사람도 닮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공부하고 생각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김우중씨의 책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공부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서 한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부디 주님과 그분의 일을 위해 열심히 삽시다.   취미가 무엇입니까?   나는 한 해에 200일이 넘는 날을 해외에서 보낸다.또 국내에서의 잦은 지방 출장까지 계산하면 집에서 지내는 늘은 더욱 줄어든다.그러다보니 내 생일은 물론 아내나 아이들의 생일까지도 깜박 잊고 넘어가기 일쑤다. 나는 누구보다도 바쁘게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처럼 나를 바쁘게 살도록 만드는 일감들을 앞에 놓고 오히려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더러 이런 나를 가리켜 일에 미쳤다고 말한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아직까지 휴일을 하루도 가져 본 적이 없다. 가족과 함께 해수욕장을 가 본 기억도 없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후회한 적은 없다. 한 가지 일에 흠뻑 빠지지 않고 성공한 사람을 나는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 한 가지 일에 미칠 정도로 몰두하고서 실패한 사람을 나는 또한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김우중처럼 그렇게 일만 붙잡고 있으면 세상사는 재미가 있겠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놀아 가면서 살아야지 그렇게 일의 노예가 돼 버리고 나면 무슨 낙이 있겠느냐고 딱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참으로 일하는 즐거움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일에 몰두한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사람은, 특히 젊은이는 일에 몰두해 있을 때의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이다. 어떤 일을 이루었을 때 가슴을 뿌듯하게 채워 오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한 기쁨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그런데 왜 일하는 것이 짜증스럽고 지겹고 귀찮을까? 최근에 한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요즘 우리나라의 고교생들은 일을 매우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을 ‘아니꼽다’, ‘스트레스’, ‘지겹다’, ‘억압감을 느낀다.' 와 같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23.5퍼센트로,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11.4퍼센트에 비해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걸까? 그것은 일을 그저 생계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터에 나가는 사람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위장 속에 집어넣을 먹이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노릇인가? 더구나 큰 꿈과 야망에 가슴이 불같이 뜨거워야 할 젊은이가 그렇듯 안일한 정신 상태로 살고 있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다. 물론 ‘일’에 그와 같은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가지의 노동, 자기의 수고가 오로지 돈으로 환산될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모독하는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가 ‘일’ 에 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때 일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일이 즐거워질 때 자부심과 보람은 더욱 뿌듯하게 가슴을 채운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공부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몰두해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책을 읽는 학생의 모습은 보기가 좋다. 공부에 전념하고 있을 때 그 학생의 모습에선 빛이 난다. 무엇엔가 몰두해 있는 사람은 그처럼 아름다운 법이다. 그런데 억지로 마지못해 공부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입에 풀칠을 하려고 내키지 않는 일터에 나온 사람만큼이나 추하고 안타깝고 비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하면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껴야 하듯이 학생도 공부하는 즐거움을 스스로 발견해 내야 한다.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라. 남의 일을 떠맡은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수업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달라질 것이다. 공부가 재미있게 여겨질 것이다. 돈 때문에 일하거나 석차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더 나아가 내가 속한 공동체의 복지를 위해 일하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어 보라. 어떻게 일이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공부가 하기 싫을 수 있겠는가?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난감해진다. 사실 취미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내게는 없다. 더구나 취미라고 하는 것이 그저 남은 시간을 때우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여길 때는 더욱 그렇다. 바둑을 조금 두지만 즐기는 편은 아니니, 바둑이 취미라고 하면 정말로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것 같아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그 흔한 골프 한 번 쳐보질 않았다. 다른 운동도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한가하게 연극이나 음악회 같은 데를 찾을 여유는 더욱 없다. 만일에 취미라고 하는 것을, 한 사람이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그러니까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서 기꺼이 행하는 어떤 행위라고 정의한다면, 어쩔 수 없이 나의 취미는 ‘일하는 것’ 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한 번도 일을 억지로 해 본 적이 없으며 누가 시켜서 한 적도 없고 일 속에서 기쁨과 만족을 누리고 있으니 취미가 아니고 무엇인가? 일이나 공부를 과업으로 여기는 데서 괴로움이 싹트는 것 같다. 그것을 취미로 삼으면 취미이기 때문에 재미가 있을 것이다. 재미가 있으니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게 되면 저절로 능률이 오른다. 능률이 오르면 결과가 좋아지는 것인 정해진 이치이다. 그렇게 되면 무엇인가를 이룬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으로 더 없이 행복해질 것이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기쁨 가운데 성취감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나는 달리 알지 못한다. 취미처럼 자발적으로, 기쁨을 가지고 일한다면 사업을 하는 사람은 작은 회사를 점점 키울 수 있을 것이고 시설을 하나 둘씩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성적이 부쩍부쩍 올라서 그 대가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거든 한 번 시도해 보기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한 가지 일에 미칠 정도로 몰두하지 않고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다. 한 가지 일에 미칠 정도로 몰두하고서 실패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법이다.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 7년 동안 나는 한성 실업이라는 먼 친척 아저씨네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물론 친척이라지만 나는 월급쟁이였다. 그러나 나는 마치 주인처럼 내 할 일을 내가 알아서 처리했으며, 누군가 내게 명하거나 시키기 전에 일거리를 찾아다니며 했다. 휴일은커녕 늦잠도 자지 못했다. 성취하고 난 후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한 행복감 때문에 나는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한다. 이런 내가 불행한가? 골프를 좀 못 쳐서? 신나는 영화 한두 편을 못 봐서? 그 재미 못지않게 해외에서 만만치 않은 인물들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큰 주문을 따 냈을 때 느끼게 되는 재미도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일을 가지고 접근할 때는 마음이 설레고, 마치 중요한 시합에 임하는 선수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한다. 그 시합이 어렵고 대규모일수록 내 주의력은 집중되며 흥미로움도 배가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숨겨진 카드를 읽어 내고, 내 뜻대로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었을 때의 승리감, 일을 원만히 해결하여 서로가 만족스런 얼굴로 악수할 때의 그 신선한 기쁨은 내게 솟구치는 활력과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올해도 나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생일을 보내겠다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약속할 수가 없다. 나는 그 점이 늘 미안하고 이런 남편과 아버지를 이해해 주는 식구들이 고맙다.  
2009-05-01 16:30:33 | 관리자
형제님은 고독을 아십니까?   다음은 토저의 글입니다. 규장에서 나온 임재 체험(토저 지음)을 보기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그들이 이 세상에 매우 잘 적응하여 편안하게 산다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회'에 편히 적응하려고 노력하다가 그들은 그들만의 순례자적 특징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은 세상의 잘못된 도덕적 구조에 대항하여 싸우도록 그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 구조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려 세상은 그들을 인정해 주고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이다.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잠자기 전에 간단히 글을 드립니다. 샬롬.   
2009-05-01 16:29:13 | 관리자
지난 학기에는 매주 아내와 함께 공자와 맹자 등을 가르치는 교양 수업을 2시간씩 저희 학교에서 들었습니다. 오랫만에 접하는 고전 공부는 김영 교수님의 매끈하고 성실한 강의로 인해 매우 신선했습니다. 물론 인생 공부도 많이 했고 사람을 보는 눈을 길렀으며 또 중국의 현인들의 사상도 많이 알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다음은 누구나 잘 아는 공자의 말입니다.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유붕자원래, 불역락호?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이것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배우고 그것을 계속해서 실천해나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뜻을 함께하는 좋은 친구들이 멀리서부터 찾아와 준다면 그 얼마나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옳은 길을 변함없이 갈 수 있다면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군자가 아니겠는가?   디모데 스쿨을 시작한 뒤 과연 사람들이 성경을 배우러 올까 하는 의구심도 생겼고 특히 어제는 밤에 비가 오고 추워서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을 가진 채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제가 맡은 바를 성실하게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녁 6시쯤에 전화가 왔습니다. 전주에 사는 K1 목사였습니다. 스쿨을 방문하려고 K2 목사님과 함께 전주에서 올라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비가 오고 사람이 많이 올 것 같지 않으니 주님께서 멀리 전주에서 응원군을 보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가 넘쳤습니다. 또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12명이 와서 같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에 공자의 말의 첫 부분이 생각났습니다. 배우고 그것을 계속해서 실천해나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날이 궂어도 성경을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모인 성도들이 있어서 정말로 기뻤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마음을 나누면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스쿨이 끝나고 두 분과 함께 집에 가서 1시까지 이야기를 하면서 제 아내와 함께 너무나 즐거운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분이 한 목소리로 "아내를 기쁘게 하지 않는 목회를 하는 목사는 목회를 그만 두어야 한다"는 준엄한 메시지를 주어서 제 아내가 크게 기뻐했고 저도 죽을 때까지 귀에 담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참고로 아내는 크게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이 말을 꼭 상기시켜 줄 것을 그분들에게 부탁하더군요.) 오늘 아침에 이들을 보내면서 공자의 말의 두 번째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뜻을 함께하는 좋은 친구들이 멀리서부터 찾아와 준다면 그 얼마나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성경은 웃는 자들과 함께 웃어 주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 주라고 했습니다. 나도 이런 자세로 성도들과 교제하고 나누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이게 성도들의 모임이고 교회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두 분께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어제 성경 공부로 은혜 받은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사람 걱정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 즉 말씀을 먹고 온 몸으로 소화해서 성도들에게 전하는 일에만 신경을 쓰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이에 공자의 말의 세 번째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옳은 길을 변함없이 갈 수 있다면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군자가 아니겠는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도 이와 같이 고백했을진대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는 사람이 사람의 의견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것을 느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의 현인들 이상의 꿈과 소망과 인품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또 오늘 저녁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을 다 읽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책이 꿀같이 다네요. 저는 이 사람의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학문을 - 배움을 - 추구하기 위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인생을 몰고가는 저력은 본받을 만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의 학자 이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잠자리에 들기 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글을 씁니다. God bless you! 
2009-05-01 16:28:27 | 관리자
예수님은 우리보고 세상의 -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무슨 큰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작은 일부터 예의를 갖추어 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기자의 글을 보고 저도 전적으로 동감하기에 올립니다. 혹시 예수 믿는 당신도 이렇게 예의 없는 사람은 아닙니까? 우리부터 고칩시다. 산뜻한 맛을 주는 그리스도인, 그것이 주님이 원하는 것 아닐까요?   다음은 한 기자가 적은 글입니다.   어제 밤 9시30분에 부산역을 출발한 KTX 특실에 올랐다. 출발하자 말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실내에선 전화를 걸지 맙시다' 따위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동대구역에서 20세 전후의 여자 두 사람이 올라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한 여자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대전역까지 오는 동안 쉬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옆 자리에 앉은 친구한테 "좀 조용히 하라"고 말했더니 말소리는 다소 약해졌지만 전화는 끊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서 건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듯했다. 20세 전후의 나이에 특실을 탈 정도이면 수입이 많은 직장에 다니든지 부모가 부자일 것이다.  다행히 대전역에서 두 여자는 내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뚱뚱한 아줌마 두 사람이 탔다. 두 사람은 목소리가 문제였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실내가 쩡쩡 울렸다. 그 큰 목소리로 휴대전화를 걸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완전히 교정 불능의 수준이었다. 성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목소리를 작게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크다고 한번도 경고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듯했다. 기고만장 그 자체였다. 야간열차여서 승객들은 거의가 잠을 자고 있었다. 두 아줌마의 목소리는 끝에서 끝까지 들렸다. 충고도 희망이 있을 때 하는 것이지, 저 수준이면 포기하는 것이 낫다. 다행히 두 아줌마는 천안역에서 내렸다. 20분 달리는 데 특실을 탈 정도라면 생활 수준이 상층에 속할 것이다.  오늘 내가 만난 문제적 인물 네 사람은 남한테 폐를 끼치고도 폐를 끼친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한국 교육의 실패를 보는 듯했다. 그런 아줌마 아래서 그런 20대 딸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교양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수준의 예절이고 언동이다. 민주주의를 잘못 해석하면 깽판 치는 자유를 뜻하는 것으로 여긴다. 한국 보수층의 자정 항목 중에서 예절도 들어가야 할 것이다. 예의 없는 보수층은 보수의 자격이 없다. 보수는 역사와 전통, 미풍양속과 예절감각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서울역에서 내려 집까지 모범택시를 탔다. 요금이 5100원이었다. 1만원짜리를 내면서 "4000원만 주세요"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없이 1000원짜리 네 장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으로 건네주었다(조갑제 기자).
2009-05-01 16:27:42 | 관리자
부끄럽지만 저는 독립침례교회의 목사입니다. 또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성경도 여러 차례 읽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공자의 글을 인용하고 불교의 인생관을 지지하는 듯한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책 - 학문의 즐거움 - 을 읽고 또 믿지도 않는 김우중이라는 사람의 글을 좋다고 하고 더더욱 장로교 선조들이 기록한 책들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추천하자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근본주의 침례교 목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타락할 수 있는가 하고 말하면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사이트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저의 생각과 글에 공감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이 사람이 어느 정도 타락했는지 살펴보고 자기 담임 목사나 근본주의자들에게 비난거리로 알리려는 부류입니다. 즉 후자는 당신 일이 잘되는지 두고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지요.   오늘은 후자의 부류에게 권고의 글을 드립니다.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지 마십시오.    자기들이 정해 놓은 틀 안에 사람들을 가두고 그것의 밖은 보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이단들이 이런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멤버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자기들과 다르면 비난하기에 바쁩니다. 저 역시 한 때 이런 시스템을 운영한 적이 있었기에 이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획일화 된 그런 틀에 묶여서 넓은 세상과 성경을 보지 못합니까? 예수님은 독립침례교인들만의 예수님입니까? 놀랍게도 이렇게 믿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장로교인들과 감리교인들의 예수님도 됩니다. 바른 교회관을 갖지 못한 채 우리만 바른 교회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처럼 두둑한 배짱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진리를 허락하셨습니다. 지난 학기에 들은 중국 고전을 살펴보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는 보편적 지혜는 거기에도 넘쳐납니다. 그리스, 로마 문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주 공간의 해와 달과 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반 계시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수 믿으니까 이런 것은 전혀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그러면 왜 학교에 갑니까? 대학 교육은 왜 받습니까? 이런 극단적인 생각에 매이게 되면 자기만 옳고 남은 다 틀린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무식하다, 교만하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치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자기 착각은 아닐까요? 훌륭한 목사치고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지 않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 만으로 족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믿지 마십시오. 게으른 것을 커버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책을 많이 보아야 합니다. 내 안에 참된 진리가 있는데 공자, 맹자, 김우중,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어떻게 그런 진리를 빼앗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얻은 보편적 진리는 예수님을 믿는 내게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유익하게 작용합니다. 왜 그런 저자들을 무서워합니까? 내 안에 유일한 진리가 있는데 무엇이 그리 무섭습니까?   최근에 어떤 신실한 형제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형제는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일은 반드시 지역 교회가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신학교, 성경 학교, 크리스천 스쿨, 성경 번역/배포, 창조과학사역 등 이 모든 것은 반드시 지역 교회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형제의 순수한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과연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러면 지금 장로교에서 운영되는 신학교는 몽땅 다 틀린 것일까요? 그 가운데서 배출된 목사들은 다 틀린 것입니까? 그것들은 다 교단 신학교가 아닙니까? 저는 결코 그들이 모두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어떤 지역 교회가 번역했습니까? 아니면 국가의 왕이 명령하여 번역하게 했습니까? 종교개혁을 지역교회가 했습니까? 웨슬리, 무디의 부흥 사역이 지역 교회에서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역 교회도 쓰고 개인도 쓰고 교단도 쓰고 심지어 고레스같이 믿지 않는 이교도 왕도 쓰십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을 제한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칼빈주의자도 쓰시고 세대주의자도 쓰십니다. 그러므로 획일화 된 틀로 사람을 가두는 것은 대개 이단들이 하는 일이므로 성숙한 크리스천들은 여기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바른 크리스천으로 살려면 넓게 사고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다 수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고를 넓게 해야 바른 사람, 큰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보고 크게 소망을 품기 바랍니다. 이 세상 지혜자들의 글을 읽고 인생을 배우기 바랍니다. 저는 요즘 사마천의 사기를 읽습니다. 이것은 생생한 인간 역사이기에 이것을 통해 동양의 인간들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목사는 폭넓은 독서를 통해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목사가 속이 좁으면 성도가 그렇게 되고 목사가 획일화 된 사고의 틀 속에 살면 성도도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은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넓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성경을 그대로 믿는 비블리시스트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세상의 학문과 지혜와 문학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을 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을 통해 사람과 인생을 배우면서 더 넓은 교제을 하게 되고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좋은 문학 작품과 - 한국의 대표적 수필집들 - 기독교 고전을 읽기 바랍니다.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이 풍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획일화 된 로보트 구조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과 저의 삶이 풍성해지기를 원합니다. 같이 노력합시다.
2009-05-01 16:26:12 | 관리자
사람들은 이것을 운(luck)이라고 불렀다.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도 부지런히 일했다.노는 것과 많은 즐거움을 포기했다.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재미없는 책을 읽었다.승리를 얻기 위해 조금씩 선두로 나섰다.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했다.그러나 그가 승리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존 맥스웰의 성공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임).   “가치가 있는 성공에는 모두 가격표가 붙어 있다. 문제는 항상 그에 대한 대가, 즉 힘든 노동, 희생, 믿음, 그리고 인내 등을 기꺼이 지불하는가 하는 것이다.”라는 맥스웰의 지적처럼 성공을 위한 대가를 미리 지불하겠다는 각오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각오하고 말을 잘해서 능력 있게 복음을 전달해야겠다고 작정하면 주님께서 도와줄 것입니다.
2009-05-01 16:25:09 | 관리자
요즘 저는 우리말과 글을 바르게 읽고 바르게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이 복음 선포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바울도 모두 말을 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이 감화 감동을 받으려면 말에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므로 당연히 한국 말을 잘해야 합니다. 요즘 영어를 배우러 미국 사람이 있는 교회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영어 중요하지요. 그런데 영어에 앞서 우리말을 잘 알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말로 시원스럽게 전달되는 설교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들 영어를 위해 교회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보면 심성이 어찌 그리 얄팍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혹시 교회를 마케팅 수단으로 혹은 자기 성장 장소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교회는 영적 성장을 위한 장소입니다.   설교자는 특히 말에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2000년 교회 역사를 통해 가장 훌흉한 설교자로 꼽히는 스펄전은 자기 말에 능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고 말을 잘하는 것이 목사의 가장 큰 덕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설교 시간에 성도들이 졸면 그 책임은 성도들에게 있지 않고 목사에게 있습니다. 얼마나 냉담하게 설교를 하면 그 중요한 시간에 딴 생각하고 졸겠습니까? 우리 모두 말 연습에 힘을 씁시다.   다음은 저와 절친한 한 목사님이 보내 준 글입니다(일단 익명으로 올림). 이분도 한때 교리 교리 외치고 다녔지만 이제 목회의 본질을 깨달으면서 좋은 설교자가 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목사의 설교와 글이 변해야 교회가 삽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노력하는 형제들에게 하늘의 능력을 부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진리를 전파하기 위한 언어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기 위한 언어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하는 자의 언어가 아니라, 듣는 자의 언어로 전파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보라, 말하는 이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우리 언어로 듣게 됨이 어찌된 일이냐?” [사도행전 2:7-8] “…그들이 우리 언어들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말함을 우리가 듣는도다.” [사도행전 2:11].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날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이 말씀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꾼들이 반드시 실행해야 할 좋은 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1장을 읽으면,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잡아 죽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로마 군대 대장의 개입으로 목숨을 건진 후에, 바울 사도가 성난 군중 앞에서 히브리말로 설교하자, 그들은 한 동안 바울의 설교에 경청했습니다. “그가 히브리말로 자기들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 그들이 더욱 잠잠 하거늘…” [행 22:2]. 이것이 바로 듣는 자의 언어로 진리를 전파할 때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한국에 온지 8개월째를 접어드는 앳된 몰몬교 선교사와 짧은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혼들을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위한 그의 ‘열정’과 ‘헌신’ 앞에 내 자신이 오히려 분노와 함께 비장함을 느꼈습니다. 그의 열정은 서투른 한국말로 이야기하기를 힘들어하지 않는 모습에 흠뻑 묻어났습니다. 지옥의 자식들도 자신의 확신을 전파하기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사실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지옥의 자식들만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순수한 교회의 역사를 추적하다 보면, 주께서 맡기신 말씀을 주께서 보여주신 방법대로 전파하고자 전 생애를 걸었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생애를 읽어보면 주님을 위한 삶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임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일꾼들이 갖추어야 할 열정과 헌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그는 버마에서 사역한 선교사로서 영어-버마어 사전 편찬에 힘썼고, 버마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버마에서 죽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그는 중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중국말을 하며, 중국옷을 입고서 중국식으로 살았습니다. 심지어 머리를 밀고 ‘변발’까지 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죽었습니다. 호레이스 언더우드 :그는 북장로교 선교사로 1885년 조선에 왔습니다. 그는 영한사전, 한영사전과 영어 문법책을 출판했으며, 성경을 번역하고 보급했습니다. 우리를 이 땅에 왔던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을 향해서 병원 짓고, 학교만 세웠다고 비방하지만 그들을 능가하는 열정과 헌신은 보지 못했습니다. 윌리암 케리 :그는 인도에서 사역한 인도선교의 아버지로서 수많은 인도 방언과 중국어, 버마어, 말레이어 등 44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고, 지역 언어 문법책과 사전 편찬 작업에 수고 했습니다. 윌리암 카메룬 타운젠 :“가장 훌륭한 선교사는 선교지 현지인의 언어로 쓰인 성경이다. 성경은 선교사들처럼 안식년도 필요 없고 외국인이라고 배척 받는 일도 없다.” 이와 같은 명언을 남긴 그는 위클리프 성경 번역 선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중미 과테말라 지역의 한 인디언의 한 마디가 그의 생애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당신네 신이 그렇게 똑똑하다면서 우리말도 모릅니까?” 많은 신자들이 존경하는 충성스러운 선교사들은 한결같이 선교 현장의 말과 글에 관심을 가졌고, 선교 현장의 말과 글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외국인이 현지 언어로 성경을 번역한 것과 함께 현지 언어 사전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말과 글에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혼이 담겨 있습니다. 충성스러운 주님의 일꾼들은 선교 현장에 있는 영혼들을 향한 자신들의 사랑을 그들이 사용하는 말과 글에 대한 관심으로 표현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언어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자기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헌신한 사람들을 잘 새겨두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며” [고린도전서 9:20]
2009-05-01 16:24:04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