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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지나면서 만50세가 되었습니다. 지난 20년을 숨가쁘게 살아왔습니다. 그 동안 남들 사진을 찍어 주는 일은 했는데 정작 내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거의 찍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대학교 학생들 졸업 앨범을 위해 사진을 찍었더니 거기서 한 장 서비스 해서 보내 주었습니다.   이 다음에 제가 늙었을 때에도 이 사진으로 기억해 주세요.   여러분의 목사 형제가 한때 이런 모습이었다고.   성격이 차분하고 말을 잘 들어주며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일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사람이 되어 봤으면......    저를 보시면, 보지 않더라도 늘 이것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2009-12-18 18:26:14 | 관리자
요즘 성도들이 새로 오고 늘면서 우리의 믿음과 약속이라는 글을 올릴 필요가 생겼습니다. 우리 교회는 자유로운 곳이지만 무질서한 곳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 따라 우리의 믿음을 기술하였고 또 몇 가지를 서로 지키기로 약속했습니다. 새로 오시는 분들과 기존의 회원들이 시간이 있을 때 이 글을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교회에 책자로 된 것도 비치하겠습니다.   의문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12-17 12:19:56 | 관리자
우리 교회에는 처복 클럽이란 명칭의 사교 모임이 있습니다. 이재식 집사님이 자천 타천 회장으로 있습니다. 무슨 공식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다 아내를 잘 두어서 기쁘다고 생각하는 남편들이 스스로를 처복 클럽 회원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저도 여기에 속합니다. 아내의 도움과 채찍질 - 이것을 보통 지도편달이라고 함 ^^ - 이 없으면 목회를 하기 어렵습니다. 목회 뿐만 아니라 가정 생활, 사회 생활 등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오는 가정을 보면 많은 경우 자매님들이 먼저 은혜와 진리를 깨닫고 교회를 정하자고 해서 거리를 불문하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면에서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약할 때가 많습니다. 체면 차려야 하고 거리 따져야 하고 피곤함을 이겨야하고 등등 남자들은 핑계거리가 많은데 여자들은 일편단심 주님만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가정의 남편은 다 처복 클럽의 멤버로 자동 가입됩니다.   우리 교회 청년 형제들도 이런 면에서 빨리 장가가서 멤버가 되면 좋겠습니다. 처녀들도 좋은 신랑 만나서 처복 클럽에 들어오게 해야지요.   가정과 교회에서 남편들이 좀 더 아내를 사랑하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특별히 노력하겠습니다.   샬롬.
2009-12-15 15:26:47 | 관리자
나는 요즘 우리 교회를 보면서 참 신기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분들이 모일까? 어떻게 이분들이 헌금을 해서 재정을 감당할까? 어떻게 청소하고 밥해서 먹을까? 나는 계획이 없는 사람입니다. 일에 몰두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책상도, 책장도 정리하지 않습니다. 집중해서 일만 합니다.   교회의 경우 겨우 설교 준비하는 것 외에는 하는 게 없습니다. 늦으면 저녁 집회에도 못 갈 때고 있고 늦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목사가 열심히 청소를 해서 감동이 되어 교인들이 많이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성도들이 봐 주어서 교회 청소도 거의 안 합니다. 주일 아침이 나의 유일한 휴식 시간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자고 보통 목사들보다 늦게 교회에 갑니다. 그래도 교육 목사님과 집사님들 그리고 멀리 사는 형제자매들이 미리 와서 자발적으로 다 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신기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 운전하면서 작고하신 어느 미국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다닙니다. 꿀송이입니다. "설교가 이렇게 좋구나, 나도 저렇게 물흐르듯 성령님에게 사로잡혀 설교해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아쉼을 갖고 듣고 다닙니다. 영어를 알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공학을 한 사람이라 감정이 없습니다. 사실과 논리만으로 전하니 성도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좋은 목사가 우리 안에서 나와야 할 텐데" 이것이 나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내가 말하는 좋은 목사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심정으로 열정을 가지고 진리를 감동적으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오 주여, 이런 설교자들이 우리 가운데서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잠언 4장을 드립니다.   샬롬.
2009-11-30 23:46:06 | 관리자
주님이 지옥에 내려가셧다는 사실을 왜 개신교에서는 명확하게 하지않고 얼머부리는지 알수가 없군요...이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왜 교회에서는 숨기려 했을가요?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훨씬 사후세계에 대해 믿음과확신을 더 할수가 있었을텐데.... 주님 십자가죽음 이전에 죽었던 아담과 선지자들도 주님의 보혈이 필요했고 지옥에 내려가셔서 지옥의 철장문을 부수고 의인들을 데리고 낙원으로 다 들어가셨을텐데... 그런 중요한 지식을 삭제한것은 큰실수라고 생각합니다
2009-11-06 15:15:39 | 정순영
어제는 아침과 오후에 예배를 드리면서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같이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보고 큰 책임을 느꼈습니다. 이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서 바른 믿음을 남겨 주는 경건한 씨들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에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포함한 1세들은 이제 다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기력이 있으나 이제 성경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그 이후에는 2세들이 해야 합니다.   영혼의 자유(soul liberty)! 얼마나 좋은 말인지 모릅니다. 아마 묘비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자유인'이라고 쓰고 싶습니다.   주님 안에서 영원한 자유인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에 모이는 아이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주님이 주시는 자유를 누리도록 돕고 싶습니다. 종교의 속박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의 진정한 자유 말입니다.   성도들께서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고 고치고 개선해야겠다는 점이 있으면 언제라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는 여러분의 믿음을 강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희의 믿음을 지배하는 자가 되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하나니 너희는 믿음으로 서느니라(고후1:24).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라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성도 여러분,   모두 사랑하고 은혜에 감사합니다.   정동수      
2009-11-02 18:51:07 | 관리자
엊그제 또 20만원 어치의 책을 구입했습니다. 성도들과 같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자꾸 책을 삽니다. 재정이 어렵다는 집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교회 도서관의 책들은 많이 넣어 주고 싶습니다. 돈이 없으면 그냥 내가 사서 넣으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너무 좋은 책들을 샀습니다. 스윈돌의 성경 인물 강해는 참 좋습니다.   읽어야 삽니다.   부디 성경과 더불어 경건서적을 많이 읽으십시다. 하나님은 책으로 일하십니다. 마귀도 마찬가지고요.   다음은 이태준의 '책'이라는 수필입니다.   내 마음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요.     책   책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게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을 위한 세계는 벌써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이미 그렇거든 하물며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요 주택인 책에 있어서랴!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물질 이상인 것이 책이다. 한 표정 고운 소녀와 같이, 한 그윽한 눈매를 보이는 젊은 미망인처럼 매력은 가지가지다. 신간란에서 새로 뽑을 수 있는 잉크 냄새 새로운 것은, 소녀라고 해서 어찌 다 그다지 신선하고 상냥스러우랴! 고서점에서 먼지를 털고 겨드랑 땀내 같은 것을 풍기는 것들은 자못 미망인다운 함축미인 것이다. 서점에서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아 첫 페이지를 읽어 보는 맛, 전찻길이 멀수록 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 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가끔 책을 빌리러 오는 친구가 있다. 나는 적이 질투를 느낀다. 흔히는 첫 한두 페이지밖에는 읽지 못하고 둔 책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에게 속삭여 주려던 아름다운 긴 이야기를 다른 사나이에게 먼저 해버리려 가기 때문이다. 가면 여러 날 뒤에, 나는 아주 까맣게 잊어버렸을 때 그는 한껏 피로해져서 초라해져서 돌아오는 것이다. 친구는 고맙다는 말만으로 물러가지 않고, 그를 평가까지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에 그 책에 대하여는 전혀 흥미를 잃어버리는 수가 많다. 빌려 나간 책은 영원히 노라가 되어 버리는 것도 있다.   이러는 나도 남의 책을 가끔 빌려 온다. 약속한 기간을 넘긴 것도 몇 권 있다. 그러기에 책은 빌리는 사람도 도적이요 빌려 주는 사람도 도적이란 서적 윤리가 따로 있는 것이다. 일생에 천 권을 빌려 보고 구백 구십구 권을 돌려보내고 죽는다면 그는 최우등의 성적이다. 그러나 남은 한 권 때문에 도적은 도적이다. 책을 남에게 빌려만 주고 저는 남의 것을 한 권도 빌리지 않기란 천 권에서 구백구십구 권을 돌려보내기보다 더 어려운 일다. 그러므로 빌리는 자나 빌려주는 자나 책에 있어서는 다 도적 됨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책은 역시 빌려야 한다. 진리와 예술을 감금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책은 물질 이상이다. 영양令孃이나 귀부인을 초대한 듯 결코 땀이나 때가 묻은 손을 대어서는 실례다. 책은 세수는 할 줄 모르는 미인이다.   책에만은 나는 봉건적인 여성관이다. 너무 건강해선 무거워 안 된다.가볍고 얄팍하고 뚜껑도 예전 능화지菱華紙처럼 부드러워 한손에 말아쥐고 누워서도 읽기 좋기를 탐낸다. 그러나 덮어 놓으면 떠들리거나 구김살이 잡히지 않고 이내 고요히 제 태態로 돌아가는 인종忍從이 있기를 바란다고 할까.
2009-09-12 17:14:06 | 관리자
사람은 짐승과 달리 글로 자기의 모든 것을 표현합니다. 어려서부터 글을 잘쓰는 연습을 하면 평생토록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기계쟁이로 교육을 받아 글을 잘 못 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글의 묘미와 힘을 많이 느낍니다. 우리 근본주의 성도들 가운데서도 글을 잘 써서 하나님의 진리를 통괘하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의 아이들이 좋은 글을 잘 쓰면 너무 좋겠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보는 전문 잡지에 다음의 글이 실렸습니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서 한 번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포스와 내공 강신호: 한전KPS(주) GT정비기술센터 고온부품팀장   요즘 흔하게 쓰는 말 중에 ‘포스가 느껴진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포스’는 선과 악의 균형을 다스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의 대명사로서 영화 스타워즈 중 대사에 등장한다. 말 그대로 외부로 발산되는 독특한 기운(氣運)이나 힘을 의미한다. 또 개성이나 의지, 심지어는 추구하고자 하는 것에의 열망 등을 함축해서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기존에 널리 쓰이던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대신하여 사용되기도 하지만, 카리스마가 지배구조의 수직성이나 권위로부터 나오는 힘이라면 포스는 수평적인 관계에서의 힘마저도 표현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다양하고 보편적이다. 비슷하게 쓰일 수 있는 말로 무협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공력(功力) 이나 내공(內功)이라는 단어도 생각할 수 있다. 공력이 안과 바깥 모두로부터 발휘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면 내공은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즉 실체를 알 수 없는 힘을 통칭하면서 ‘수양과 단련의 깊은 정도’를 표현하는 말일 게다.    갑자기 뜬금없이 영화나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으니 글머리의 분위기가 다소 경직되는 듯도 하지만, 사실 진짜 의도는 언어를 통해 주고 받을 수 있는 의미들의 발랄함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어서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 중에는 굳이 ‘포스’나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 ‘제법인데’라거나 좀 더 구체적으로는 ‘힘이 있네’ 라고만 해도 충분히 느낌을 표현할 수도 있고 알아들을 수도 있는데, 우린 굳이 색다른 단어를 찾아내어 쓰고야 만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포스는 외국영화를 통해서 알려진 단어이다. 공력이니 내공이니 하는 말도 무협소설을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작품을 즐겼던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되새김되던 단어들이 언제부터인가 유행을 타면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대중들에게 단어가 주는 의미 이상의 상상력을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은 보편성과 일상적인 것으로부터의 탈피가 주는 즐거움과 통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너무나 잘 알려진 어휘밖에 쓸 수 없다면 얼마나 따분하고 식상할 것인가.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서로 할 말만을 주고받는 행위일 뿐이라면 그런 관계는 너무 건조할 것이다. 마치 기계나 로봇 시스템을 제어할 때처럼 명령어 몇 줄 입력해주면 되는 식의 관계라면 그건 제대로 된 인간관계가 아니다. 다행히 인간의 지적 감성적 능력은 상대방의 혀끝으로 발음되는 몇 가지 단어들로도 많은 정보를 상상하고 받아들일 수가 있다. 단지 상대방의 발음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구사한 단어들의 의미와 느낌으로부터 밝고 어두운 측면, 기쁘고 슬픈 측면, 선하고 악한 측면 등을 가려낸 뒤, 대응하기 위한 단어들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극도로 짧은 반응시간 내에 자신이 판단한 내용을 근거로 적절한 단어들을 조합해내고 얼굴 표정과 몸짓, 목소리의 톤을 바꾸어가면서 자신의 의도와 감정으로 표현한다. 이때 대화를 윤택하고 부드럽게 해주는 요소들을 얼마나 많이 담고 있느냐에 따라 대화의 질과 깊이가 달라진다. 다양하고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은 적당한 용언들을 분위기나 상태에 따라 제때에 사용할 수 있다면 그는 진정한 언어의 마술사이다. 그저 의미만을 전달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쉬우면서도 짧은 말로써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다면 더 바랄나위가 없다. 그렇다고 무슨 시구처럼 미사여구를 섞어야 한다거나 은유법과 같은 기교를 부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진부하거나 사무적인 분위기로 흐르기 쉬운 대화 도중에 신선하면서 톡 튀는 단어로 상대방의 감성을 자극한다면 대화의 과정이나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자주 보는 TV 드라마들은 배우들을 통해 의도한 내용을 전달하는데, 화려한 대사로 시청자들을 웃게도 울게도 만든다. 유창하고도 논리 정연한 대화들이 오가면서 감정이 빠르게 전달되다보면 보는 이들은 어느새 극중 상황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배우들의 연기능력에 따라 감동의 깊이는 더해진다. 웃기는 장면에서는 기발한 대사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드라마나 개그프로그램 등을 통해 세상에 소개되는 유행어들은 시대적 상황을 담거나 대중 정서와도 일치할 때 더욱 반향이 크고 수명이 길어진다. 다양한 신조어나 줄임말의 등장과 활용 또한 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를테면 핸드폰과 컴퓨터가 폭 넓게 보급되어 다양한 통신매체로서의 구실을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통신매체들은 온전한 문장을 주고받을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 속성을 지녔다. 시간과 비트(bit) 수를 제한하고 쓴 것만큼의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 기존의 질서가 갖는 헤게모니는 무의미하다. 만일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격식과 맞춤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못 박는다면 당장 컴퓨터와 핸드폰의 활용이 위축될 것이다. 때문에 현명한 유저들은 신조어나 줄임말과 같은 대안을 만들어 내었다.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단어와 감정을 전달하게 위한 온갖 궁리의 결과인 것이다. 이는 톡톡 튀는 창의력이나 감성의 순발력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며, 당시의 문화와 정서에 동화되어 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혹자는 인터넷 속어나 신조어가 난무하는 문화적 현상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법을 무시하면서 만들어진 만큼 우리말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위기의식 때문이기도 하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조어와 유행어가 담고 있는 재치와 새로운 정서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왜냐면 언어란 감정을 담는 그릇과도 같기 때문이다. 어떤 그릇을 만들어서 어떻게 쓸 것인가는 사회적 수요층의 공감대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물론 수요층이 다양한 만큼 모두의 공감을 얻지 못한 상태로 생겨난 그릇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그릇들은 밑이 좁거나 깊이가 얕아 많이 담지 못하는 그릇이다. 즉 그릇의 생김과 크기에 따라 담기는 감정의 양과 전달되는 형식이 달라질 것이고 대화와 교류의 성격도 달라질 것이다. 그럴 바에야 이왕이면 재미있고 식상하지 않은 그릇들이 많은 편이 사회를 밝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게 아닐까. 여유와 재치가 넘치는 사람과의 대화가 좀 더 즐겁듯, 밝은 표정으로 늘 진지한 사람과의 만남이 더욱 기다려지듯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만 그럴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의 재치와 유머 수준 자체가 동떨어져 있어서는 통할 수 없는 노릇이다. 상대방에 집중하는 총기 있는 눈빛과 매너를 통해서 만남을 유쾌하게 만들려는 진지한 의지가 마구 발산되어야 한다. 최소한 이 정도의 ‘포스’와 ‘내공’도 없이 남들이 그래주기만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09-08-15 12:04:20 | 관리자
목사님께도 제가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목사님 글 읽으니까요. 그 전에는 아무 생각없었는데... 그러면서, 혹시 제가 목사님 애 먹이는 사람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반성이 되네요. 그런데요..그냥 생긴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합니다. 전 그러고 살거든요. 그래서 속이 편해요.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는 엄~청 생각하면서 삽니다. 사람들의 시각은 너무나 천차만별이어서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뭘 해도 미워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뭘 해도 좋아하더라고요.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동일한 시각으로 저를 바라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 묻습니다. 제가 잘 하고 있는지...사람의 시선은 참 헛되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얼마나 변덕이 심한지..목사님. 그냥 지금 하시는대로 하시면 될 것 같아요.지금도 최선을 다 해 하시잖아요.더 하시면 병 납니데이.....이상 저의 생각.
2009-08-12 19:25:53 | 백화자
이번에 가평의 유명산 계곡으로 휴양회를 다녀왔습니다.  아이들 포함 약 50명이 좋은 날씨에 안전하게 잘 다녀왔습니다. 이 일을 위해 현장을 답사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사람을 지치게 하는 수련회가 아니라 쉬다 오는 휴양회로 계획했기에 목사에게도 쉴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는 날 밤과 오는 날 아침에 10여 명의 형제/자매들이 믿음의 증언을 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된 경위, 사랑침례교회를 찾게 된 경위, 그 이후의 삶의 변화 등을 이야기하는데 든는 제게는 참으로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부족한 도구를 써서 하나님의 진리를 보여 주셔서 여러 형제 자매가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데 혹시 우리 교회에 와서 나로 인해 실족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염려가 들었습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부지불식 간에 지도자를 따르게 되는데 과연 내가 이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가정에서도 아버지가 힘을 잃으면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과연 내가 교회의 목사로 소임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늘 이야기하듯이 교회를 바르게 이끌고 갈 수 있는 전임 목회자가 나오면 자리를 내놓으려고 합니다. 목회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의 모든 위치에서,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이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려 합니다. 파트타임 목사가 주어진 기간까지 소임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009-08-12 13:15:30 | 관리자
요즘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 교회에 대한 확신과 신약시대에 성행하는 율법주의로 인한 페단 등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우리의 과거와 율법주의를 부수자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고 글도 쓰고 책들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저 사람이 혹시 완전히 무정부주의자 혹은 세상이 말하는 자유주의자가 된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스러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의 자유는 결코 무정부 상태나 무법주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른 것을 가르쳐 주면 꼭 반작용으로 무정부 상태나 무법주의가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구약의 신정 정치 하에서의 십일조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가르치면 꼭 헌금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따서 말을 전하거나 퍼뜨립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었으므로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개의치 않고 노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증거 구절로 내민 것은 이사야서 54장 9-10절이었습니다. 9 이것이 내게는 노아의 물들과 같으니라. 내가 다시는 노아의 물들이 땅을 덮지 못하게 할 것을 맹세한 것 같이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꾸짖지도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나니 10 산들이 떠나가고 작은 산들이 움직일지라도 내 친절이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내 화평의 언약도 움직이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주}가 말하노라. 구원받으면 우리가 죄를 져도 하나님이 근심하지도 않고 노하지도 않는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이것은 극도의 방종으로 사람을 몰아넣는 마귀의 교묘한 가르침입니다.   자, 지금 하나님이 누구에게 이 말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너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앞뒤 문맥을 보면 신약시대가 지나 주의 날이 이르러(즉 재림이 이르러) 이스라엘이 완전히 회복된 시점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이스라엘이 천년왕국 속으로 들어가는 내용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비록 과거의 오래 기간에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했지만 이제 온 민족이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인 뒤에는 더 이상 그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구절을 인용해서 구원받은 사람은(교회는) 죄를 지어도 더 이상 하나님이 근심하거나 노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신약과 구약을 바로 나누어야 한다고 열렬히 외치는 자들이 이렇게 성경을 오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엡4:30).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이런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어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영이 슬퍼하고 근심합니다. 이것은 부모의 심정과도 같은 것입니다.   왜 성도들이 이런 것을 가르치는 협잡꾼들에게 넘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율법주의를 배격합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것들은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1. 구체적인 하나님의 명령들에 순종하는 것(요일2:3-4). 십계명의 대부분(안식일 제외)2. 주님을 섬기기 위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살전4:3, 7), 술, 담배 안하고 청결하게 사는 것 등3.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분리하고 세상의 풍조에 따르지 않는 것(롬12:2), 록 음악, 옷, 세상 문화4. 지역 교회에서 성령님의 인도 하에 지도자들이 정한 규례를 따르는 것(행15:29), 방언 안하고 교회에 깨끗하게 옷입고 가는 것 등 5. 형제를 위해 내 권리를 포기하는 것(롬14:21)6. 인륜을 지키는 것   구원받았으니 규칙도 없고, 헌금도 없고, 인륜도 없고, 교회 모임도 없고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속히 그들에게서 멀리 떠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방종에 이르도록 우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물을 흐려놓으니 예수님 안에서의 참 자유를 이야기해도 다 이상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곧 교회니 "교회에 가자"는 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교회에 가자"고 할 때의 교회는 교회 모임을 말하지 "예수님의 몸"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같은 말의 유희를 가지고 사람을 속이려 드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의 자유는 결코 무법주의가 아닙니다. 자유하기 때문에 오히려 금하고 가릴 것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바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성장합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릅시다. 이런 협잡꾼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합시다. 
2009-08-08 14:16:31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