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사이트검색
검색결과 약1460개
교회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고 자매님들과 함께하는 교제로  더욱 우애가 쌓여 가겠지요^^ 모두가 한 나무의 가지이니. 예수님이 공급해주시는 물을 듬뿍 마시며 내면이 아름다워지기를 바라지요^^ 신실하게 참여하는 자매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2023-09-09 16:43:43 | 이수영
자매모임 시작 축하드립니다! 저의 딸들 숙제(자매모임후기 읽기)하나 더 생겼네요~^^ 말씀을 잘 알아야 세상보는 내가 끼고 있는 안경이 인간중심인지 하나님중심인지 분별이 생길것 같아요. 순종 겸손 사랑 화합 섬김 성장욕구 충성 소망..실천하기 참 어려운 단어들이지만 하나님에 대해 특히 하나님의 뜻 마음에 대해 잘 알고 (내가 막지만 않으면)성령의 열매로 저절로 실천가능할 수 있지않나..생각을 해봅니다.
2023-09-09 08:05:54 | 목영주
안녕하세요^^ 한 달간의 여름방학을 끝내고 가을의 시작과 함께 목요자매모임이 개학 하였습니다. 무더위에 고생하였지만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오니 계절의 변화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번 학기에는 존 맥아더의 ‘하나님이 계획하신 교회’ 책을 가지고 풍성한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골로새서 1장18절 또 그분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오.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 가운데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1부 교회 해부학 1장. 교회의 골격   모든 교회는 성장과 쇠퇴라는 동일한 굴곡을 거친다. 첫 세대는 대개 진리를 발견하고 확립하는 일에 전념했다. 둘째 세대는 진리를 유지하고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세 번째 세대는 교회 사역에 그토록 무관심할 수가 없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바로 첫 세대와 둘째 세대와 함께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태로운 상황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힘써 노력해서 이룩한 것들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싸움에 동참하지 않은 관계로 대가를 치른 적도 없고, 그러니 값진 승리의 기쁨을 맛보지도 못했다.   인간은 단 한 번의 삶을 산다. 진리를 발견하고 확립하고 지키기 위한 싸움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룩하신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모든 것을 당연시하는 사람은 조그만 흠이라도 발견하면 비판을 일삼는다. 작가 토머스 하디는 아름다운 풀밭에 갈 때마다 거름 무더기를 보고 불평하는 친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사고방식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는 몸이다. 고린도전서 12장 12~31절(한 몸 안의 많은 지체), 해부학 측면에서 그 구조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육체는 뼈, 장기, 근육, 살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 역시 골격(근본 진리), 장기(영적 태도), 근육(여러 가지 기능), 살(프로그램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육체가 가능하려면 일정한 구조가 필요하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건전한 구조를 형성하려면 뼈대 역할을 하는 근본 진리가 필요하다. 근본 진리란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의 여지가 없는 불변의 교리를 가리킨다. 근본 진리를 포기하면 모든 골격이 주저앉아 교회는 종말을 고할 수박에 없다.   교회는 하나님을 알고 영화롭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가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보니 현대 교회는 사람들이 좋은 감정을 느끼도록 돕는 걸 목표로 삼기도 한다. 현대 교회는 영을 위한 가짜 약을 제공하면서 성도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심리 상담, 자긍심 고취, 오락 등 여러 가지 유희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영화롭게 해야만 인생의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야고보서 4장8절 하나님께 가까이 가라. 그러면 그분께서 너희에게 가까이 오시리라. 너희 죄인들아, 너희 손을 정결하게 하라. 두 생각을 품은 자들아, 너희 마음을 순결하게 하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지은 죄가 더욱 선명해진다. 우리를 겸손히 낮추면 하나님이 높여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그분을 높여야 한다. 인간 중심의 교회를 세우고자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 삶과 예배의 중심이 되셔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골격을 구성하는 진리 가운데 타협할 수 없는 두 번째 진리는 성경의 절대 권위다. 성경은 늘 공격을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심하게 훼손하는 공격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믿지만 그 가르침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성경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믿지만 그 가르침을 한 구절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해할 수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말일까?   마태복음 4장4절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우리의 양식이라면, 우리는 모든 말씀을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설교는 이 점을 등한시할 때가 많다.   교회의 골격을 구성하는 세 번째 요소는 건전한 교리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그분께 헌신할 생각이라면 성경이 가르치는 건전한 교리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 요즘에는 교리를 잘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부드러운 설교, 즉 재미도 있으면서 듣기에도 편한 설교를 전하기 좋아한다. 알맹이 없는 설교가 주를 이루다 보니 교리를 가르치거나 논하는 설교는 좀처럼 듣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굳게 붙잡을 수 있는 진리가 필요하다. 성도에게는 삶을 구축할 수 있는 굳건한 교리적 토대가 필요하다.   교회의 골격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순결한 신앙 인격이 있다. 우리는 좀 더 순결한 신앙 인격을 갖추고 고결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순결한 삶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그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는 바울의 권고처럼 도덕적 기준을 강화하고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엄히 다스려야 한다. 이것이 교회에서 권징을 실시하는 이유다.   순결한 신앙 인격에 마땅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건만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너무나도 많다. 얼마나 순결한 삶을 살고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양다리를 걸친 상태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그분의 사역을 이루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교회의 골격을 구성하는 마지막 요소는 영적 권위다. 성경은 주님 안에서 우리를 다스리는 이들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한다. 그들이 우리의 영혼을 보살피는 일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교회 지도자들을 본받아라. 히브리서 13장17절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회계 보고 해야 할 자들인 것같이 너희 혼을 위해 깨어 있나니 그들이 기쁨으로 그 일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것은 너희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려면 올바른 골격을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교회의 목표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오직 기록된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주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건전한 교리를 굳게 붙잡아야 한다. 아울러 모든 그리스도인은 순결한 신앙 인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주님이 영적 권위를 부여하신 이들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2장 교회의 장기   교회의 골격은 절대 변하지 않는 근본 진리로 구성된다. 근본 진리는 교회 사역의 뼈대로써 육체의 뼈처럼 굽힘이 없이 단단해야 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육체와 마찬가지로 교회 또한 골격만으로 살 수 없다. 육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려면 각종 장기와 혈액이 필요하다. 장기란 영적 태도를 뜻하며, 교회의 생명은 내적 체계에서 비롯한다.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의 목표는 성도들이 올바른 영적 태도를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그저 지시만 해서는 안 된다. 영적 태도를 고취해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선한 행동은 선한 마음에서 비롯해야 한다. 올바른 반응을 이끌어 내려면 먼저 사람들의 영적 태도부터 고취해야 한다. 교회가 영적으로 올바르게 선다면 사람들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성령님이 명하시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면 더불어 교회 구조가 저절로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온 성도가 자연스레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성도 개개인이 지닌 영적 태도는 교회 사역을 추진하는 힘이다. 성도들에게 피상적, 율법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자칫 율법적인 행위에서 만족을 얻으려는 습성을 키워 주기 쉽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순종 순종은 올바른 태도를 취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순종은 다른 모든 영적 덕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체나 다름없다.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이행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한 번 명령하시면 더 이상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순종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머리와 마음에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순종이 율법적인 예배 행위보다 더 낫다.   순종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해 준다.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   겸손 겸손은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두 번째 태도다. 겸손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경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귀한 존재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아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 이유다.   겸손한 사람만이 참사랑을 베풀 수 있다. 참사랑은 대상에 의해 좌우되는 속되고 거짓된 사랑과는 다르다. 속된 사랑은 한갓 감정에 불과해 감정이 사라지면 관계도 끝난다. 그런 사랑은 단지 받으려고만 들고 주려고는 하지 않는다.   사랑 성경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희생과 섬김의 행위다. 성경의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실천이다. 사랑은 겸손한 마음에서 비롯하는 섬김의 행위다. 성경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준다.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줄 때는 즉각적이고 자발적이어야 한다. 사랑은 겸손한 마음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행동이다. 사랑은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기쁨과 위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화합 화합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사탄은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늘 기회를 엿본다. 교회의 화합은 하나님과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 그래서 사탄이 끊임없이 교회 분열을 책동하려 드는 것이다. 성도들의 겸손과 사랑은 분열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늘 사소한 문재로 서로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우리는 늘 함께 무릎을 꿇고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섬김 교회가 크면 섬김의 사역을 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할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사역을 행하는 동안 한쪽으로 물러서서 편안히 신앙생활을 즐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시면서 능력을 베푸시는 이유다. 섬기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서로 똑같은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각자가 영적선물을 받은 대로 섬겨야 할 이유다. 하나님은 우리가 관망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섬김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신 영적선물을 계발해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 열심히 섬김에 임해야 한다.   기쁨, 평화, 감사, 절제, 절제와 영적 전투, 책임감, 용서, 전적 의존, 유연한 태도, 성장 욕구 갓난아이가 젖을 갈망하듯이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성장은 지식을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사귐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수록 그분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진다. 거룩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충성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단거리 주자와 같다. 그들은 섬김에 동참해 잠시 열심을 내다가 곧 은퇴자처럼 뒷전으로 물러난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라톤 주자와 같은 그리스도인, 곧 오래오래 충실하게 일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을 원하신다. 나이 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슬프다. 나이가 들어서도 충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충실한 그리스도인은 항상 예배와 섬김과 기도를 삶의 최우선순위로 삼는다.   소망 소망은 참으로 위대한 단어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말은 안전한 미래를 뜻한다. 소망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곧 세상일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음으로 영원한 것을 희망하라.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을 위해 살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한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앞에 영광스런 미래가 기다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자.            
2023-09-08 22:40:46 | 이은정
주님은 항상 신실하셔서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하다가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잊어버리기도  하는데 어느 날 그 기도가 응답된 것을 보고는 감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신실하신 주님 우리의 기도를 받아주시고  주님의 때에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트를사용하거나, 수시로 생각나서 기도하거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기뻐하실 것을  믿습니다.
2023-07-21 10:41:54 | 이수영
'그리스도인은 담대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간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와 아울러 하나님의 뜻과 지혜로운 사랑을 인정하고 끈질기게 순종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 덕분이며, 그러기에 무엇이든 그분의 이름으로 구해야 한다.'   매주 요약해 주신 말씀 통해 기도에 대해 배워 갑니다^^ 개인적으로 마틴루터와 같이 숨을 쉬듯 기도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2023-07-21 10:38:16 | 김세라
안녕하세요 ^^   제 14장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다 어려움에 처할 때 지체하지 말고 기도하라.   빌립보서 4장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7절 그러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화평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마귀의 사람이 하는 기도 - 왕상 18장26절~28절 그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수소를 취해 다듬고 아침부터 정오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오 바알이여, 우리 말을 들으소서, 하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만들어 놓은 제단 위에서 껑충껑충 뛰더라.   정오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며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이므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거나 쫓아가고 있거나 여행 중이거나 혹은 자고 있어서 그를 깨워야만 할 수도 있다. 하매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자기들 관례에 따라 자기들 몸 위로 피가 솟아오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찢었더라.   - 하나님의 사람이 하는 기도 - 왕상 18장36절~37절 저녁 희생물을 드릴 때에 대언자 엘리야가 가까이 가서 이르되, 주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스라엘 안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한 것을 이날 저들이 알게 하소서.   오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내 말을 들으사 주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과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신 것을 이 백성이 알게 하소서, 하매   종교 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는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숨 쉬지 않고 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은 기도를 어둠의 세력에 맞서 영적인 싸움을 벌이는 데 필수적인 무기로 꼽는다. 기도 제목은 쇼핑 목록이 아니다. 그저 원하는 바를 줄줄이 늘어놓는 대신, 스스로의 소원을 하나님이 무얼 기뻐하고 슬퍼하시는지, 주님의 구원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며 세상을 향해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비추어 성찰해야 한다. 간구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만큼 신학적인 사고와 자기성찰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간구가 지나치게 시끄럽고 광적인 분위기로 흐르거나, 수동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와 세상을 향한 기도’를 중보라고 부른다. 식구들이라든지 친구는 물론이고 경쟁자나 심지어 적을 위한 간구도 이 범주에 속한다. 하루하루 일상생활 중에 고통을 겪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을 만나면 잘 기억해 두었다가 개인적으로 기도해 주는 게 좋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들으시고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답해 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담대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간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와 아울러 하나님의 뜻과 지혜로운 사랑을 인정하고 끈질기게 순종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 덕분이며, 그러기에 무엇이든 그분의 이름으로 구해야 한다.   말씀에 확신을 가지고 그 확신 안에 거하는 것이 끈질기게 순종하는 것이다.   매일의 기도는 성경적이어야 한다. 체게적인 성경 읽기와 연구, 절제된 본문 묵상 등에 더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성경 읽기가 기도에 앞서거나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기도는 배가 항해하는데 노를 젓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때로는 어둠 속에서도 노를 저어야 한다. 앞으로 나가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순간에도 말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면 다시 바람이 일고 돛을 펼치고 순항할 것이다. 바람은 반드시 다시 불어온다.   “ 성경은 다이아몬드 보석이고, 진주 목걸이이며, 성령의 검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영원을 향해 항해할 때 보는 항해도이고, 매일의 삶을 살 때 필요한 지도이며, 그의 인생을 비추어보는 해시계이며, 그의 행동을 평가하는 저울이다.”      
2023-07-20 23:10:55 | 이은정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찬양하다 보면 따로 애쓰지 않아도  그분이 우리 삶 가운데서 보여 주신 사례 하나 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해 가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속성을 알아가면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가 나올 수 있는 믿음이 될 수있다!! 또 하나 배우게 됩니다^^
2023-07-18 12:44:26 | 김세라
찬양과 감사는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지요. 훗날 주님앞에 나갈 때도 찬양과 감사는 넘쳐날거에요.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함께 나누는 모습이 좋아요. 지속적으로  참여하면 한발자욱씩 나아가게 될 것을 믿어요.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중요해지네요. 건강해야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으니까요. 공부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2023-07-18 06:15:30 | 이수영
우주적 배은망덕-표현이 재밌네요~^^ 어떤 하나님인지 접할때마다 내 잘못으로 인한 고통,핍박이 아닌 과거로 인한 상처도 무색해집니다. 일상생활이 진심으로- 계속- 감사가 되려면 제경우엔 하나님의 은혜를 자주 깨닫는 수 밖에 없더라구요. 근데..사진 호박잎쌈 맞지요?우와 친정엄마생각나면서 그 맛이 느껴져요. 울자매님들 마음건강뿐아니라 특히 몸건강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2023-07-17 09:09:58 | 목영주
안녕하세요^^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성경 말씀 약속들을 믿고 발걸음을 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삶이란? 날마다 누룩을 제거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믿음으로 발걸음을 떼고 나아가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욥기 28장28절 주를 두려워하는 것, 그것이 지혜요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니라.   악에서 떠나려면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분별은 고립이 아닙니다. 분별의 핵심은 판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말씀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분별없는 그리스도인이 무심코 행한 분별이 국가를 비성경적인 사회주의로 만들어 버립니다.   분리된 삶의 핵심은 고립이 아니라 분별입니다.   제 12장 감사와 찬양이 먼저다 기도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충분히 생각하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주님께 초점을 맞춘 찬양과 감사, 자기 성찰과 고백으로 죄를 더 깊이 인식하며 자신과 세상에 사는 다른 이들의 필요에 집중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완벽하게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에 관심을 쏟으면 쏟을수록 더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흠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다. 또 주님의 크고 위대하심은 간구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위엄을 더 깊이 실감하고 주님을 떠나 살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낄수록 더 서슴없이 그분께 나가 온갖 필요를 다 아뢰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비현실적이고 빈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겸손하며 균형이 잘 잡히고 도량이 큰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찬양하는 반면, 매사에 짜증을 내고 순응할 줄 모르며 불평불만을 일삼는 이들은 좀처럼 찬양할 줄 모른다.   감사는 찬양의 한 갈래다. ‘엄밀한 의미의 찬양’이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하는 일이라면, ‘감사’는 주님이 행하신 일을 찬송하는 걸 가리킨다.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찬양하다 보면 따로 애쓰지 않아도 그분이 우리 삶 가운데서 보여 주신 사례 하나 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해 가게 마련이다.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다. 붙들어 주는 힘에 기대지 않고는 단 한 순간도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18~21절에서 인간은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길 싫어하며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부정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걸 베풀어 주시는 분이 시키시는 대로 허수아비처럼 움직이게 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마음에 도사린 죄가 이처럼 스스로 삶의 주도권을 쥐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데 집착하게 만드는 탓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의 깊이와 폭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강탈하는 것이다. 제힘으로 뭐든지 해나갈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사는 생활태도야말로 우주적인 배은망덕이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망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 찬양 - 하나님은 비할 데 없고 끝없이 지혜로우시며 은혜로우시고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주님은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반면에 세상 만물은 그분을 의지해 존재합니다. 무한하고 영원한 영이시며, 유일무이하게 흠이 없으신 분이며, 더없이 영광스럽고 소중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독보적이어서 비할 데가 없습니다. 한결같고 변함없는 성품, 어디에나 계시는 거룩한 임재, 모르는 게 없으신 온전한 지식,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완벽한 지혜, 절대적이며 거역할 수 없는 권능, 모든 일을 지배하시는 주권, 한 점 티가 없으신 도덕적으로 세상 만물과 만사를 바로잡으시는 공의가 주님의 완전하심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을 지으시고, 지키시며, 계속 살아가게 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시며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는 진리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약속의 주님이시므로 우리가 그분께 매인 그 매임으로 우리에게 매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인격체이신 삼위일체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유일한 왕이시며 친구요 신랑이십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을 유일한 기쁨으로 삼도록 지어졌습니다.   - 감사 -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명을 주시고 육신의 삶을 이어 가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거룩한 형상대로 우리를 빚으셔서 주님과 다른 관계들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고, 누리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껏 수많은 부상과 질병들을 이겨 내고 오늘까지 살아 숨 쉬도록 삶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뒤에서 떠받쳐 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즐겁고, 유쾌하며, 견딜 만한 인생을 꾸려 가게 하셔서 고맙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성취하고 목표에 도달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지혜와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온갖 선물들을 값없이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적인 삶을 시작하고 꾸려 가게 하신 손길에 감사합니다. 성부와 성자, 성령님이 시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세워 두신 미리아심을 통한 구원 계획, 그 자체에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죗값을 치르셨으며, 조건을 빠짐없이 충족시키시고, 은혜로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 관계를 맺게 하신 구원의 역사에 감사합니다. 성령님께 감사합니다. 삶 속에 임하시고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사랑과 영광을 알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가게 하시고, 허락하신 영적선물로 다른 이들을 섬기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거기에 담긴 지혜와 진리, 능력에 감사합니다. 교회와 회중, 그리고 지도자들을 주셔서 우리를 빚고 만들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성장하도록 뒷받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다한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주셔서 장차 부활한 몸으로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리라는 소망 가운데 안식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물 붓듯 쏟아 주신 특별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래 참아 주시고, 나쁜 습관과 사고방식과 마음가짐과 관습을 버리고 바꾸게 도우시며, 무지와 어리석음이 빚어내는 심각한 결과들로부터 우리를 보호 하시고, 스스로 우리에게 모습을 보이시며, 연합하게 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며, 고통스럽고 고단한 길을 함께 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13장 고백과 회개는 필수다. 용서받은 마음에서 바른 기도가 세워진다.   죄의 대가는 예수님이 치르셨다. 값으로 환산 할 수 없이 소중한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통감하지 못하면 마음의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고백에 그친다. 삶 또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값없이 용서를 베푸셨다는 측면을 놓치면 죄책감과 수치심, 자기혐오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지극히 소중한 용서를 값없이 베풀어 주셨음을 정확하게 인식해야만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발전시키고 예수님의 성품을 향해 더 깊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는 열쇠다.   율법적인 회개는 파괴적이다. 예수님의 이름에 기대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쏟아 내는 고백이다. 윤리적인 종교가 내세우는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착하게 사는 데 있다. 이런 세계관을 고집하면 어떤 경우에도 회개가 고통스럽고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로지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에 급급해서 그 뒤에 감춰진 태도와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남들을 향해 온갖 정상참작 사유를 제시하면서 책임을 최대한 모면하려 들기 일쑤다.   그리스도인이 죄가 값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점을 잊어버리면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도는 얄팍하고 천박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높이지도, 삶을 변화시키지도 못할 게 뻔하다.   자기 연민은 또 다른 차원의 그릇된 회개 방식이다. 죄들을 시인하긴 하지만 진심으로 유감스러워하지 않는 형태다. 자신에게 닥친 고통스러운 결과만 힘들어할 따름이다.   기도 생활은 삶을 점검하고 너무 둔감하거나 분주해서 깨닫지 못하는 죄들이 없는지 검증하는 마당이 되어야 한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면모를 규정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야 한다.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그 열매가 부족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깊이 묵상해야 한다.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역사를 바라보며 스스로의 죄들을 인정하고 또 돌아서야 한다.        
2023-07-16 22:01:46 | 이은정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해 졌음에도 풍요를 누리지 못한 가나한 삶'이란 말에 경종을 울리네요^^ 이 땅에서의 염려와 복잡한 심정으로 영적인 기쁨을 누리지 못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영과 육으로 풍성해지시는 자매 모임이 되길 소망합니다.  
2023-07-10 08:46:54 | 김세라
글만 읽어도 부쩍 성화된 기분이에요. 잘 정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도전,성장이란 단어를 품기 위해 요즘 두 딸과 노력중이라 그런지 성령충만을 위한 기도가 절로 나오네요.. 부어주시는 평강의 힘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세상능력도 키워 예수님을 드러낸다면 더이상 바랄게 없을 것 같아요~^^ -소년들이라도 기진하고 피곤하며 청년들도 완전히 쓰러질 것이나 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자기 힘을 회복하리니 그들은 독수리같이 날개 치며 올라갈 것이요, 달려가도 피곤하지 아니하고 걸어가도 기진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서 40장 30,31절 말씀입니다.
2023-07-08 12:15:09 | 목영주
빌3:20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하늘에 있으며 거기로부터 또한 우리가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라는 말씀대로 우리가 생활하는 방식이 예수님으로 인해 바뀌어야 성화를 이루어 갈 수 있어요. 그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날마다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고요. 맑은 정신을 가지고 혼란한 이 시기를 바르게 걸어가야지요. 우리 모두 힘을 내자고요.
2023-07-08 11:04:16 | 이수영
2023년 7월 6일 목요자매모임   안녕하세요^^ 한 믿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나누는 교제는 주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인 것 같아요^^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우리의 칭의의 유일한 토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떠한 공로나 선함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공로나 선함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고, 보라 새 것이 왔도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회심한 그 순간부터,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주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를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마침내 그리스도를 대면 할 때까지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죄 없는 완전함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가 범죄 할 때, 아버지께 우리를 변호해주실 의로우신 이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는 비록 형편없는 기도를 드릴지라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고 기도해주시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성령님께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   아버지, 우리는 날이 갈수록 우리의 죄책을 더 알게 되고 점점 더 우리의 죄를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더욱 더 신실함과 기쁨으로 주를 섬기게 해주십시오. 무엇보다도 우리가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지금은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자녀이므로 우리는 겸손히 주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주님 주께서 우리를 향해 하신 대속 사역은 우리가 우리의 섬김을 통해 주를 높이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섬김을 결코 공로로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대속을 보완하는 것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님을 잘 섬긴다고 할지라도, 그 섬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토록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리스도만을 높입니다.   우리가 신실하고 겸손히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제 10장 말씀을 묵상하라.   묵상은 적극적으로 성경을 되새기는 것이다. 시편에서 ‘묵상’대신 쓰인 표현으로는 ‘생각하다’와 ‘깊이 되새기다’를 들 수 있다. 묵상한다는 말은 스스로 진리에 관해 묻는 걸 가리킨다. “지금 진리의 빛 가운데 살고 있는 걸까? 진리는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거지?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나? 진심으로 믿고 단단히 붙잡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성경 어느 본문을 묵상한다는 말에는 미리 치열한 연구와 해석을 거쳐 그 뜻을 파악한 상태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무슨 얘긴지도 모르는 말씀을 되새기거나 누릴 수는 없는 법이다. 말씀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그 진리를 삶에 적용하도록 이끌어 간다.   하나님이 본문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성경 전체를 볼 때 본문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토대로 두고 성경을 읽지 않으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거기에 마음이 사로잡힐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렇게 되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스스로의 심정이나 감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게 된다.   성경이 말하는 묵상은 이성적인 사고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 아니다. 성경적인 묵상은 성경을 깊이 있게 해석하고 공부한 결과를 토대로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대단히 이성적이고 논쟁적이다.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분석과 성찰을 부추기고 그 초점을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에 맞춘다.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영적으로 성경을 ‘소화’하는 작업이다. 삶에 적용하고, 한 구절 한 구절이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 상태와 앞길을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어떻게 이끄는지 숙고하게 한다. 성경을 통해 힘을 얻고, 소망을 품게 하며, 스스로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기억하게 한다. 성경의 진리들을 가슴에 단단히 품고 새겨야 한다.   초월 명상의 한 갈래로 요즘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만트라명상’은 하나님을 아는 게 아니라 스스로 신이 되는 경험이기 때문에 이것은 성경적인 묵상이 아니다. 성경의 진리를 추상화하면 안 된다. 삶과 동떨어진 개념으로 여기면 안 된다. 성경 진리의 가르침이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행동과다와 주의력결핍장애에 빠진 현대사회는 속도가 떨어지는 성찰과 묵상을 실종된 기술쯤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기도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가 되려면 규칙적으로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은 일의 앞뒤를 골똘히 생각하여 깊은 확신에 이르는 성품을 갖는다. 어려운 개념을 쉽고 간단한 말로 설명할 줄 알며, 무슨 일을 하든 이면에는 그 이유가 있다.   만사를 건성으로 살피며,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고르고 선택하며 살뿐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분에 따라 행동하다 보니 피상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묵상하는 이들은 압력을 받아 내고 견딜 줄 알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쭉정이처럼 남들이 몰려가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 뿐이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가식적이고, 공허하며, 진전성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데 실패하여 원래 모습과 생활방식을 조금도 바꾸지 못하는 까닭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높고 희귀한 일을 두고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믿음의 진리가 마음과 성품을 사로잡고 또 빚어 갈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유산을 남겼는데 이것저것 떼고 나면 몇 푼 안 될 것 같아 오래도록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기대와 달리 그 액수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가 막혀 어쩔 줄 모를 게 뻔하다. 실제로는 갑부였는데 쪼들리며 살았다니!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만은 피하라고 당부한다.   어쩌면 이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쁜 습관에 시달리고, 걱정, 따분함, 낙담, 분노 등에 휩쓸리기 일쑤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맞서고 처리해야 할 크고 작은 문제와 이슈들이 산더미 같다. 하지만 그 바닥에 깔린 근본적인 문제는 그리스도안에서 부요해졌으면서도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 단 하나뿐이다.   사도바울의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님의 ‘화학처리’, 다시 말해서 ‘영적인 감동’을 확보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머리로 진리에 동의하고 입으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생활방식에는 이렇다 할 실질적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성령님이 마음을 민감하게 하신 상태에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는 진리의 빛에 노출되면, 정서적인 반응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생활하고 행동하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지게 마련이다. 성령님은 현실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쁨에 겨워 두려움을 잊고 과감하게 행동하게 하신다. 그러면 인생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복음 속에서 자신의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영적인 완고함, 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실감해야 한다. 얼룩덜룩 오점이 많은 선행 기록부를 가지고 하나님의 눈앞에서 그 허다한 죄와 허물을 다 덮는 게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선택은 저마다의 몫이다. 두려움과 야심, 탐욕과 욕정, 중독과 내면의 공허감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그리스도를 알고 배워야 한다.      
2023-07-08 10:44:26 | 이은정
하나님과 독대하는 기도는 꾸밀 수가 없어요. 모든 것 다  아시는 아버지께 다 쏟아놓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하나님께 영광과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싶은데.
2023-06-30 19:17:32 | 이수영
좋은말 실천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하네요! 하나님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말씀 가까이 하며 주인이신 예수님께 맡기는 하루되게 해 주세요..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2023-06-30 11:50:55 | 목영주
2023년 6월29일 목요자매모임   안녕하세요^^   경건한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깊은 내면의 기쁨과 만족을 누린다.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연구하고 삶에 적용하여 윤리적이고, 순종하는 삶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풍성한 자원을 이용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며 그 자원을 이용해야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다.   제 7장 하나님에 대한 행복한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라.   기도란 우주를 다스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독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보통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벌을 받을까 걱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로마서 8장 1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관해 무얼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인가?   징벌에 대한 두려움은 자기중심적인 두려움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에게 몰두하는 이들에게 찾아온다.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역설적이게도 사랑스럽고 행복한 두려움이 갈수록 깊어지게 마련이다. 하나님 안에서 말로 할 수 없는 사랑과 행복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한 임재 가운데 머무는 특권에 가슴이 떨리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갈망이 나날이 짙어진다. 주님 마음을 슬프게 하지 않을까 몹시 걱정스러워한다.   겸손은 기도하게 만드는 요인이자 열매이다. 영적 겸손은 스스로의 허물과 연약함에 무자비하리만치 정직해야 한다. 얼굴에 가면을 뒤집어쓰는 ‘허구’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 가식을 남김없이 털어버리고 허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고백과 회개는 진실한 기도에 꼭 필요한 결정적인 성분이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데려간다. 인간의 결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현장이다.   올바른 기도에는 회개가 따라야 한다. 스스로 저지른 잘못에 책임을 지는 대신 우쭐거리며 자신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린다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게 아니다. 기도는 자기 합리화나 남 탓, 자기 연민, 영적인 교만 따위를 버리기를 요구하고 또 그럴 힘을 준다. 허구를 벗으면 벗을수록 기도는 그만큼 풍성하고 깊어질 것이다.   도깨비방망이, 요술 램프, 행운을 비는 주문 등의 얘기가 사방에 차고 넘치는 걸 보면, 이미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욕구를 조화롭게 처리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현명하지도 않아서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주님은 거룩한 뜻에 어긋나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그 뜻에는 멀리 내다봤을 때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들이 포함된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전등 스위치를 올리면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그렇다면 스위치가 전구에 에너지를 공급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빛은 전기에서 나왔다. 스위치는 에너지 자체가 아니라 전구를 동력원과 연결시켜 주는 장치일 뿐이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준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건 요술 주문 같은 게 아니다. 주술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기도하는 가운데 자기 능력이나 경력에 의존하지 않고 구원을 베푸시고 용납해 주신 그리스도를 의식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말한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배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놓는 작업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주님의 거룩한 인격과 구원사역을 압축해 놓은 일종의 속기록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선한행실에 기댈 게 아니라 주님의 청구권에 의지해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좋은 아버지라면 다 그러하듯, 하나님 아버지 역시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신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다. 성령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확신과 깨달음을 얻는다. 성경을 읽고 본문이 하나님에 대해 무얼 알려 주는지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위대함에 눈을 뜨면 자신의 죄스러움을 새로이 실감하게 되는 법이다. 죄를 더 깊이 인식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고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솟는다. “ 더 많이 용서받은 이가 더 많이 사랑하게 되어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연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 한다” 고 표현한다. 기본적으로 포도나무에 접붙인 가지와 같다는 뜻이다. 줄기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갈수록 분명하게 드러나길 기대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 말미에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은 유혹의 싸움이 일상적으로 지속되고 있으므로 승리를 위해 주님의 능력, 성령님의 권능, 성경적 진리가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추상적인 지침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영적인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갑으로 가슴을 가리며, 복음에서 비롯된 평안으로 신발을 신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로 공격을 막아 내야 한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깨어 기도하며, 늘 기도하라고 바울은 부탁한다.   기도는 정직한 자기 인식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올바르게 기도하면 영적인 시야가 투명해진다. 바리새인 같은 위선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기도에는 인간들 사이에선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투명한 정직성이 포함된다. 가면은 벗겨지고 ‘척’도 통하지 않는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영원토록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 이다.            
2023-06-30 07:23:22 | 이은정
First Prev Back 1 2 3 4 5 6 7 8 9 10 Forward L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