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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을 중심으로 자매님들과 성화를 향한 길에 올바른 지침을 주는 책 같아요. 정말 이 세상에 마음을 둘 수가 없으니 더욱 주님 오시길 기다리게 되지요. 온전히 마음을 삶을 주께 드리는 일을 향해 발걸음을 하고 있는 자매님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2024-04-24 07:13:21 | 이수영
이 땅에서 소망이 없음을 깨닫는 경험은 예수님의 믿음으로만 살고 싶은 강한 동기가 되기도 하는것 같아요. 그 경험은 노력해도 내려놓아지지 않는 것이 저절로 내려놓아지게끔 하는 역경일수도 있고 또 믿음때문에 받는 핍박은 오히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끔 단련시키는 요소가 되어 결국 감사함으로 끝나요.. 자신의 계획을 따르는 데서 죽으라 라는 문구가 2024년도부터 완전 제것이 되었으면..주인이신 예수님께 기도 드립니다. -육체의 훈련은 유익이 거의 없으나 하나님의 성품은 모든 일에 유익하며 현재의 생명과 다가올 생명의 약속을 지니고 있느니라- 디모데전서 4장 8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4-04-22 20:12:01 | 목영주
 안녕하세요. 어느덧 4월도 중순이 지났습니다. 이번 달에는 우리 성도들의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건들이 있었지만 동시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우리의 전성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평안이 생기곤 합니다. 이 책이 말하듯 작은 왕국이 주는 두려움은 큰 왕국이 주는 소망에 초점을 맞출 때 사라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마지막 때, 자매들이 서로 모여 교제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번 자매 모임에서는 새로운 그룹을 만들어 독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함께 읽은 챕터에서는 우리의 왕국을 떠나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했습니다. 이를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9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그리스도는 우리를 죽음으로 부르시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죽음에서 구하시고 진정한 삶을 주신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육신적인 삶과 자기 나름대로 갖고 있는 삶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일한다. 위험이나 상해, 고통, 어려움, 손실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생명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이러한 본능은 모든 사람 안에 깊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데 생명의 창조주께서 사실상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요청하고 계신다. 말이 안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도의 요청이 갖는 심오한 논리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누가복음 9장 23-26절에 기록된 그분의 말씀을 살펴보자.  현실세계의 가장 큰 위험은 생명인 척하는 죽음이다. 죽음은 에덴동산에서 생명인 척했고 이후에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 잠언 14장 12절은 죽음의 속임수를 잘 요약한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우리 죄인들은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생명은 거부하는 일을 매우 잘한다. 예를 들어 TV를 보면 간음이 생명으로 그려진다. 성적 욕망을 느끼는 순간이나 불법적인 성행위를 하는 순간이 처음에는 활력을 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간음은 몸과 영혼을 잔인하게 투자하는 것이다.(잠5:4-5)  혹은 폭식을 한번 생각해보자.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는 좋은 것을 즐기는 것으로 무해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삶을 빼앗고 몸과 영혼을 다 망치는 길이다. 물질주의는 감각을 만족시키는 좋은 것들로 자신을 에워싸면 매우 강력한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물질주의는 우리는 약탈한다. 때문에 성경이 반복해서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생명은 물질적인 '빵' 그 이상의 것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생명인 척하는 죽음'이 반복해서 우리를 속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 누가복음에서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을 요청, 논리, 질문, 경고라는 네가지 항목으로 정리해보겠다. -죽어야 한다(요청)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다.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이 세가지 요청은 진정한 생명의 삶으로 난 유일한 문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아를 우선시하는 데서 죽으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삶을 추구하는 것에서 죽으라 나를 따르라: 자신의 계획을 따르는 데서 죽으라 -영적 자살을 피하게 된다(논리)  그리스도는 왜 이리 어려운 요청을 하실까? 왜 아 세가지 죽음보다 더 쉬운 것을 주시지 않을 걸까?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죄의 속성과 관성을 아신다.  죄는 본성상 자기중심적이다. 반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우리 자신의 죽음으로 기꺼이 참여하도록 부르실 뿐 아니라, 그 부르심에 합당한 논리적 근거도 주신다.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그리스도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눅9:24; 마16:25; 막8:35 참조)  다시 말하지만 작은 왕국은 생명을 약속하지만 죽음을 가져오고, 큰 왕국은 죽음을 요구하지만 생명을 준다. 우리의 생명은 주님과의 관계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때문에 생명이신 그분 밖에서 생명을 구하면, 결국 영적 자살을 저지르는 꼴이 된다. 우리 마음이 숨을 쉬기 위해 필요한 영적 산소는 주님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마태복음 6장 19-34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자신의 공급과 즐거움을 위해 사는 것이 걱정과 근심으로 이끈다고 가르치신다. 걱정은 삶에서 어떤 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다만 그것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걱정은 우리 영혼의 암이다. 걱정은 우리의 시간과 쉼과 힘과 용기와 소망과 인격과 관계와 목적과 예배와 즐거움과 만족을 갉아먹는다. 걱정이 우리의 삶을 지켜줄 거라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선한 것들이 죽는다.  당신에게 자신을 향한 사랑과 자기 삶을 위한 멋진 계획이 있음을 인정하라. 우리 주님은 이것을 알고 계신다.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유지하고, 보존하고, 통치하려는, 개인적인 강한 욕망의 힘을 알고 계신다. 그 힘이 너무나 강해서 죽음만이 해결책임을 알고 계신다. -모든 것을 가졌다면?(질문)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을 잃은 채 살고, 일하고, 성취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자기 왕국에 투자하는 것만큼 형편없는 투자가 또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부자이지만 이 땅에서 경험해야 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즉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그분의 영광에 헌신하는 것이 빠졌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재물을 쌓는 것이 인격의 성숙보다 기능적으로 더 삶에 활력을 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 삶을 온갖 잘못된 보화를 얻는 데 낭비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임을 기억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작은 왕국을 더 선호하는 위험(경고)  누가복음 9장26절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들을 부끄러워하면 사람의 아들이 자기 영광과 자기 아버지 영광과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 속에서 올 때에 그를 부끄러워하리라." 예수님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세상과 세상이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의미다.  그분은 우리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것, 혹은 너무나 좋아해서 동기를 부여하는 것, 그래서 그것에 따라 바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 결정되는 것들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하신다. "나는 너희 삶에서 합당한 장소에 있게 하기를 거부하면 나도 영광 중에 너희를 나와 함께 있게 하지 않겠다." 쉽게 요동치는 마음을 가진 우리가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될 경고다.   당신은 주일에만 그리스도를 높이고 주중에는 다른 보물들을 위해 열정과 시간을 다 투자하지 않는가? 물론 일하고, 먹고, 쉬고, 투자하고, 관계 맺어야 한다. 문제는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통치하고 있고, 무엇이 당신의 판단과 행동을 결정하느냐다. -달콤한 약속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정말 어려워 보인다. "너 자신을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지만 이 어려운 요청이 실제로는 은혜의 부르심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방편이다. 당신의 주님은 당신에게 자살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아시기에 당신을 그냥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당신이 생명을 보면서 죽음이라 생각하고, 죽음을 보면서 생명이라 생각할 것을 아신다. 그분은 당신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꽉 쥐면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을 받지 앉으려 할 것을 아신다. 죽으라는 그분의 부르심은 당신이 추구하는 너무나도 무모함 꿈들을 넘어서 삶을 살라는 제안이다. 비참하게 일그러진 이 세상은 결코 줄 수 없는 삶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을 자신만의 삶의 크기로 축소시키는 것은 생명이 아니다. 생명의 가면을 쓴 죽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놀라운 은혜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모든 부르심이 위로로 다가온다. 모든 명령은 환영이 되고 모든 호소는 긍휼의 빛을 띤다. 이사야 55장 1-2절의 초대를 들어보라.  오호 목마른 모든 자들아, 너희는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참으로 와서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치르지 말며 포도즙과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빵이 아닌 것을 위해 돈을 허비하느냐? 또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느냐? 내 말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이라. 또 너희는 좋은 것을 먹고 너희 혼으로 하여금 스스로 기름진 것을 기뻐하게 할지어다.  당신이 스스로 성취하거나 계획할 때 느끼는 기쁨을 초월하는 기쁨이 있다.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신의 삶에는 초월적인 의미와 목적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꽉 잡고 있는 한 절대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기억하라. 당신을 향한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구원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는 요청을 하시면서 그리스도는 당신에게 당신이 스스로 얻거나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주신다. 그리고, 물리적인 창조세계는 절대 줄 수 없는 것을 당신에게 제안하신다.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모든 것 위에 뛰어난 영광을 주시려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이 받을 최고의 상이다. 이것이 온 우주 최상의 식사다. 이것이 당신의 삶에 의미를 주고, 당신을 영원한 즐거움으로 채워줄 유일한 것이다. 10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라 하나님 나라의 삶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며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로 나 중심적인 삶에서 구원받았다. 죄로 인해 우리 안에는 땅에 매인 보화와 걱정에 매인 필요에 지배받으며 살고자 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과 뜻에 집중하여 새롭고 더 나은 방식으로 살라고 부른다.   예수님이 중심에 계시지 않고 더 이상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큰 왕국은 자신의 통치를 받는 수백만 개의 고립된 왕국이 되고 만다. 거듭 말하지만 큰 왕국의 삶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춘 삶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에 대해 앞 두 장에서 다루었지만, 이번 장에서 더욱 정확하게 정의 내려보려 한다. 내가 우려하는 것 중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도식화된 유사 성경 언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의 유익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한 이해를 못하게 가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 하나님 나라의 삶, 더 엄밀히 말해 그리스도 중심의 삶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려 한다. 하나님 나라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과 인격과 부르심과 은혜와 영광을 내가 생각하고, 바라고, 말하고, 행동하며, 소망하는 것의 중심 동기로 삼는 것이다. 이렇게 살 때 의미있고 목적 있는 삶을 살게 되는데, 거기서 하나님이 당신을 어디에 심으셨든 세상과 구별된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춘 삶  구약에는 큰 왕국, 즉 예수님 중심의 삶을 다른 어떤 것보다 명확하게 규명하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교훈하시는 부분에 있다. 마치 대학에 입학하는 자녀와 부모의 대화를 읽는 것 같다. 자녀와 헤어지기 전, 부모는 지난 18년간 가르치려 한 모든 중요한 지침과 가치를 요약해서 자녀의 머릿속에 새기려고 노력한다. 이 말씀은 모든 신학, 윤리학, 변증론을 포함하여 평생에 가져야 할 성경적 세계관을 5분 내로 요약한 것이다. (신10:12-22을 찾아보자) -중요한 질문  이 구절은 큰 왕국의 삶을 살기로 헌신한 사람이 물을 수 있는 위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여기서 문제는 일련의 새롭고 다른 것들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 삶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행하고 계신 일에 반응하는 것이다. 이 중대한 질문들에 대해 신명기에서 두려움, 걷는것, 사랑이라는 3가지 심오한 단어로 답변한 것을 살펴 보겠다. ◆두려움  '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날처럼 하나님을 편안하게 내 필요를 채워주는 친구 같은 분으로 생각하는 기독교 신앙에서 이것은 매우 시기적절한 요청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 거룩함, 지혜, 은혜를 깊이 자각하고 두려워함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 외에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두려움을 소유하지 않으시면, 우리 삶도 소유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게 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게 될 것이다. ◆걷는것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은 마음의 태도일 뿐 아니라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있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의 삶에 적용할 수 그분의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 중심으로 이웃이 되고, 부모가 되고, 배우자가 되고, 친구, 동료, 그리고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소유물, 재산, 슬픔, 화, 기회, 책임감 등을 거룩하게 사용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 하나남은 말씀 속에서 매일의 우리 삶을 향한 그분의 뜻을 명백하게 드러내셨다. 우리의 주된 일은 신비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이미 드러내신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그날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나오는 명령, 지시, 원칙들이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지 다 알려준다. ◆사랑  큰 왕국과 작은 왕국의 근본적 차이는 우리 마음이 무엇을 사랑하느냐다. 나의 영적 상태가 다른 어떤 것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드러낼 때, 내가 신경 쓰고, 걱정하고, 희생하고, 절제하고, 소망하고, 꿈꾸는 크기는 언제나 나 자신만의 삶의 크기로 축소될 것이다. 반면 내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나 자신만의 바람과 필요라는 경계를 넘어 광활한 하나님 나라로 끌어올려지게 된다. 그곳은 날마다 만물의 구원과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기억해야 할 것  이러한 그리스도 중심적인 삶의 모델에서 중요한 질문(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다음에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이 뒤따른다. 즉, 큰 왕국의 삶은 주님을 기억할 때 언제나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 죄인들이 늘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그분이다. 우리의 생각은 그날 해야 할 일들, 직면한 어려움들, 주변 사람 등으로 꽉 차 있어서 우주를 향한 그분의 초월적인 목적으로 우리를 이끄신 영광의 주님을 의식하지 못한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삶은 왕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영적 활동이 아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다. 내 일정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신경 쓰는 것이다.  하루를 시작할 때 무엇이 마음의 눈을 채우고 있는지 자문해보라. 어떤 '보이지 않는 것'이 당신의 관심을 끌고 동기를 부여하는가? 하나님을 보고 있는가? 당신의 하루가 그분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하는가? 당신 삶 속에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주권이 깨달아지는가?  신명기 10장 14절은 "보라"로 시작한다(이 말에 해당되는 "Be hold"가 개역성경에서는 생략되었다). 관심을 집중시키려 할 때 흔히 사용하는 단어다. 저자가 하나님에 대해 관심 갖기를 바라는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1.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분께 속해 있다. 이 세상은 실제로 그분의 것이다. 세상이 마치 내 것인 양 살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2. 당신의 현재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신 10:15). 3.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통치자시다(신 10:17). 4.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과 긍휼의 주시다(신 10:18-19).  이와 같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예수님이 중심 되시는 큰 왕국의 삶을 사는 아주 중요한 핵심이다. -부르심  큰 왕국과 작은 왕국의 전쟁은 본질적으로 마음의 전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음을 지배하는 두려움과 사랑이 당신 삶을 이끌어갈 것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로 인해 우리가 받게 된 밝은 약속이 바로 새 마음이라는 사실에 힘이 나지 않은가? 예수님이 사셨다가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셨기에 당신에게 마음을 변화시키는 은혜가 역사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왕국의 의도들을 버리라고 요청하는 이 말씀 구절은 당연히 삶을 바꾸는 마음 자세에 대한 요구가 된다.          
2024-04-22 13:40:00 | 박수현
안녕하세요, 자매님^^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자매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 중 좋은 이야기들이 정말 많아서 저도 자매님 생각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다만 핵심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기엔 이 광범위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했고 아직은 제 필력이 부족해서 책 내용만 요약해서 올리는 것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업데이트 하면서 제 필력이 조금 좋아지면 실제 나눈 이야기들도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2024-04-22 13:23:17 | 박수현
벚꽃 만발한 아주 좋은 날  지역모임을 잘 다녀오셨네요. 여주에 성경 박물관이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어요. 형제들도 청년들도 아이까지 참여해서 너무 좋아 보여요. 좋은 추억의 한 페이지를 소중히 간직하게 되어  보는 내내 좋았어요^^
2024-04-19 06:27:03 | 이수영
여주에 이렇게 좋은 명소가 있었네요! 아름다운 곳에서 좋은 분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오신 걸 공유해 주셔서 감사해요^^ 성도님들 마음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가슴 한 켠에 새겨졌겠죠? 너무 생생히 전달해 주셔서 저도 나중에 꼭 가보고 싶은 생각 이 저절로 드네요~
2024-04-16 08:56:42 | 심경아
좋은 봄날, 지역 지체들과 귀한 시간을 보내셨네요. 사진속에서 많은 추억들과 끈끈한 동지애가 느껴집니다! 의미있고 좋은 장소를 소개해주셨으니.. 시간내어 가보면 좋겠네요! 좋은 정보에 감사드려요~~~^^
2024-04-16 08:00:41 | 태은상
자기왕국 벗어나는것을 넘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받는 핍박,곤경에서도 순종할 수 있으려면 내 안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신지 말씀안에서 잘 알고 있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자신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해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린도후서 5장 15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24-04-16 07:59:01 | 목영주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지역나들이 다녀 왔어요. 숨겨진 명소 여주 바이블랜드 & 수목원 & 나드카페 행복하고 즐거운 나들이 정보 함께 나누어요.   여주바이블랜드는 우리가 잘아는 청바지 브랜드 뱅뱅에서 만든 성경박물관 이구요. 50만평의 대지에 바이블랜드와 수목원그리고 여주에서 아주 유명한 나드카페가 함께 있는 곳이예요. 이제 함께 떠나 볼까요~   *주의사항 : 사진이 다소 많이 있어 눈이 아플수 있으니 쉬엄쉬엄 천천히 보시고 좋은 사진이 너무 많아 좋은지 아닌지 헷갈릴수 있음.    이번 나들이의 대표장소 바이블랜드 입구에서:)       여행의 출발 버스타고 설레이는 마음 안고 출발 길이 많이 막히는 꽃나들이 봄철이라 버스 대여로 우리는 막힘없이 신나게 씽씽 달려요~     아아!! 계란이 왔어요 같네요 ㅎㅎ 사실은 봄나들이 관련 공지사항!!              나들이에 빠질수 없지요. 간식 간식 여러분들이 후원해 주셔서 이외에도 풍성한 간식이 있었답니다.         여기가 바이블랜드입니다.       입구에 "성서의 세계" 라는 대형지도와 함께 박물관견학 시작 가이드 해주시는 이어르신은 70세가 넘으신 분이구요. 얼마나 열정적으로 가이드를 해주시는지 2시간을 넘게 쉬지않고 이야기 하시더라구요. 듣는 사람이 쬐끔 지치는데 당뇨지병까지 있으시다는 이분은 하나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열정적으로 가이드 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이곳 박물관은 중앙홀과 영상관 그리고 6개의 테마관과 유물관으로 구성되어 있구요. 아래사진은 6개 테마관중 첫번째  창세기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되돌아보는 "에덴의 동쪽"테마관입니다.   메소포타미아는 그리스어로 '강들 사이에'라는 뜻이다. 에덴동산에서 4개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창세기 2장의 기록처럼 에덴동산과 메소포타미아는 지역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앗시리아식 스핑크스다. 앗시리아 왕 사르곤 2세(BC721~BC705) 시대에 만들어진 모형이다. 사르곤 시대 후기에 사르곤은 '사르곤의 요새'라는 새로운 도시를 세웠다. 이 조각상은 궁전으로 들어가는 문 양쪽에 세워진 조각상이다. [출처] [여주시] 성서역사박물관-바이블랜드|작성자 홀로나그네       이쉬타르 문(Ishtar Gate). 이 문은 바빌론 도시로 들어가는 여덟 개의 문 중 북쪽에 위치하고 있던 문이다. 느부갓네살 2세(BC604~BC562)에 의해 BC 575년에 건설되었다. 아름다운 색을 물들인 벽돌로 만들어진 이 문은 바빌론의 여신 아쉬타르에게 헌정된 것이다. [출처] [여주시] 성서역사박물관-바이블랜드|작성자 홀로나그네         로비바닥에 있는 비잔틴시대의 요르단의 기독교 최대 도시인 마다다의 성 조지성단에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모자이크식 예루살렘지도예요. 예루살렘 도시를 아름다음 모자이크로 감상할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였어요.         가장 인상깊었던 테마관 기독교의 영원한 성지 '황금의 예루살렘" 모형이예요. 입구에서 보았던 마다바모자이크는 평면으로 예루살렘을 보았다면 이곳은 입체적으로 예룰살렘 전체를 한눈에 볼수 있는 곳이였구요.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예루살렘 전체에서 성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눈으로 확인하니 또다른 의미로 다가 오더라구요.             4번째 테마관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느낄수 있는 "영원한 갈릴리"테마관이예요. 신약복음서에 나오는 지명(벳세다,거라사등) 들을 입체적으로 확인할수 있어 좋았답니다.         성서시대의 진품 유물을 볼수 있는 "유물전시관" 모세의 토라 두루마리     성서시대의 토기들       드라빔 종류들 드라빔의 크기는 다양하여 라헬이 가져갔던 조그만 것 부터 사람만한 것 까지 다양했다고 해요.       신약 성경에 나오는 화폐의 단위들. 달란트, 므나, 세겔, 드라크마, 데나리온.           성경박물관견학 후 십자가 아래에서       여기선 부터 수목원 이예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봄날 꽃보다 아름다운 형제자매님들의 미소를 담은 사진들 함께해요~     수목원 내부에 쉼터가 있었구요. 이곳에서 간식과 교제도 했답니다.                                     이번에 지역 청년들과 함께해서 더울 활기차고 즐거운 여행이 되었답니다. 보기에도 아까운 우리 청년들 :)       누가 누구를 찍는것인지 ㅎㅎ                                 무화과 사진아래에서 먹는 간식은 더 꿀맛! 박물관 견학후 먹는 간식이라 더 꿀맛!                 여기서 부터 아주 유명한 "나드카페"예요. 바이블 랜드보다 여기가 너무 유명하여 한편으로는 좀 마음이 않좋았어요.                                       꽃들이 만발한 2024년 어느 봄날 사랑하는 형제 자내님들과의 봄나들이 이보다 더 좋을수 없을만큼 행복하고 좋았답니다. 가을에 또다른 지역모임을 기대하며 이만 마무리 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성경의 무대를 직접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래 봅니다. 여기까지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쪽 첨부자료는 6가지 테마방중 바울의 생애와 사역을 다시 생각하는 "지중해 너머로"방에서 바울사도의 선교여행을   움직이는 지도위에서 체험해보는 귀한 시간 잠깐 영상으로 남긴 것 입니다.
2024-04-16 07:11:52 | 최지나
안녕하세요. 따뜻한 봄날씨에 목요일 자매 모임이 열렸습니다. 교회 옆 장아산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번 독서 모임에서 다룬 챕터들은 우리의 작은 왕국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왕국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더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도움이 되는 내용입니다.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7 현재가 아닌 영원에 투자하라 죄로 인해 우리 모두는 삶의 크기를 자신만의 크기로 축소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과학자 앙이 드쁘아가 군인들을 위해 고기를 보관하려고 고안해 낸 발명품 '압축 포장재'. 이것의 놀라운 점은 실패하는 법 없이 언제나 제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싸든 딱 그 크기만큼 수축된다. 군인들의 음식이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한 일이 이토록 모든 현대 소비자의 삶을 바꿔놓을지 몰랐을 것이다.  죄의 효력이 드쁘아의 고안품과 매우 흡사하다. 죽 그 영향력은 훨씬 광범위하다.  죄의 유전자는 이기심이고, 그 유전자는 우리의 우주를 우리만의 크기로 축소시킨다.또한 죄는 궁극적인 압축력을 만들어낸다. 이것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삶의 크기를 우리만의 삶의 크기로 축소하게 된다. 축소된 자신만의 왕국 안에는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 -망가진 자동차 모형과 이기적인 욕망들  어린 시절(폴트립 저자),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몇 가지 이유로 테드 형에게 화가 났다. 내가 세운 규칙들을 형이 어겼기 때문에, 그가 제일 싫어하는 일을 해서 분품이를 할 참이었다. 곧장 형 방으로 가서 신발을 벗어 들고 형이 모아 놓은 자동차 모형들을 내리쳤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았기에 기분이 좋았다.  한 어린이의 삶에 일어난 이 슬픈 사건이 모든 죄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받아들여지고, 섬김을 받고, 인정 받고 싶어 한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우리의 반응은 가볍게 내는 화에서 폭력적인 분노까지 다양하다.  죄의 핵심은 이기심이다. 자기 안으로만 몰입하는 혼자만의 우주다. 죄는 사실상 궁극적인 압축 포장재다. 우리의 관심과 마음 씀씀이를 자기만의 삶으로 수축시킨다. 죄는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을 저지른다. 잠시 멈추어 주위를 둘러보면 당신과 당신 주변에서 그러한 경향을 보게 될 것이다. -거대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은 우리만의 작은 왕국으로 자신을 축소시키지 않으신다. 그분의 영광을 버리시거나 그분의 주권적인 계획을 거부하실 수 없다. 그분은 하나님이 되실 뿐 다른 어떤 것이 되지 않으실 것이다.  시편 145편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측량할 수 없다고 말한다.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깊어서 그 바닥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그분의 영광은 그 정도로 깊다!  우리 삶의 크기는 그분의 위대하심에 연결되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하심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우리의 삶을 그분의 영광이라는 거대한 텐트 안으로 확장할 때, 우리의 삶 안에 즉시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생겨난다.  죄는 기능적으로 무신론적이고 반사회적이다. 우리의 초점을 우리 자신에게로 축소시키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를 갖고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든, 우리가 정말로 경배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주일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다가도 화요일에는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그분의 선하심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원래 이렇게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개인적으로 살아남고, 일시적으로 행복하고, 개인적 성공에 안주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임재와 성품과 계획 안에서 우리의 의미와 정체성과 목적을 발견하도록 창조되었다.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영원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넓은 삶으로 부르심받았다.  '하나님 닮은 삶'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의 실질적인 삶의 목표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실제 삶에서 보물로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의 경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목표로 삼는 '더 나은' 것은 바로 우리와 만물을 위한 그분의 계획이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이야기가 은혜로 하나님의 이야기에 연결되는 것을 보며 흥분하기 시작한다. 은혜란 죄로 압축된 포장재를 찢는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은혜가 들어와 우리를 끄집어내어,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장소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이 장소는 그분의 사랑으로 산소가 공급되고, 그분의 능력으로 동력을 얻고, 그분의 영광으로 장식된 곳이다. 이 거대하고 멋진 장소가(우리는 이곳에서 살고, 이곳에서 정체성과 목적을 발견하도록 되어 있었다) 바로 하나님 나라다. -압축된 왕국의 윤곽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다른 왕국에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슬프게도 죄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은사와 에너지를 쓰고도 기꺼이 만족하게 만든다. 죄는 인간 공동체를 각각 독립 왕국이 서로 충돌하는 왕들의 사회로 퇴보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삶에서도 이러한 갈등을 겪을 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도 너무나 많은 전쟁을 겪고 있다! 우리가 서로 같이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자기 왕국이 얼마나 좁은지 그 윤곽을 그려보고자 한다. ◆지금 여기서  압축 포장된 자기 왕국은 그 눈을 현재에 확고히 고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지금 여기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집중한다. 원하는 것을 지금 당장 원하는 참을성 없느 왕국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멸의 영혼을 가졌기에 영원을 보며 살도록 지음받았다. 하나님 나라의 문화는 영원을 바라보는 눈으로 만들어진다. 하나님 나라의 문화는 지금을 그때를 위한 투자로 본다.  좋은 차를 사고, 좋은 집을 사고, 휴가를 즐기고,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를 맛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무엇이 그 시스템을 이끄느냐다. 자기 왕국은 지금 여기서의 즐거움과 쾌락과 추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나와 내것  축소된 왕국은 근시안적이다. 멀리 보지 못한다. 필요하고, 중요하고, 가치 있고, 생명과 관련이 있고, 긴급하고, 보람 있고, 필수적이라고 보는 것들이 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돌봄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들을 잘 관리해야 하고 가까이 있는 친구와 가족을 잘 돌보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내 삶 경계 밖에 있는 광대한 우주에 대해 신경을 쓰고 돌보는 일을 위해서는 시간이나 힘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과 힘을 나 자신만을 위해 쓴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  어떤 것을 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삶의 정책을 결정하느냐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느라 하나님 왕국의 더 큰 관심에 쓸 시간이 없는가? ◆육체적 경험과 물리적 생성물  압축 포장된 왕국은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만져지고, 맛볼 수 있고, 어떤 식으로든 육체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 것에 기우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균형이 필요해진다. 우리는 육체적인 인간이고, 아름답게 창조된 물리적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눈을 즐겁게 하고 우리 배를 채워주는 많은 것을 주셨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삶이 보이지 않는 것들보다 보이는 것들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이다. 자기 왕국은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것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느 것에 더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격과 권리  자기 왕국은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을 때 더 기뻐하는 왕국이다. 여기서는 내가 공격을 받을 때 가장 슬퍼한다. 여기서는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주목하고 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서는 자기의 재산, 위치, 권리를 명확히 한다.   그렇다고 짓밝히고도 가만히 있거나 기꺼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려고 하는 것이 거룩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그 시스템을 이끄는 것이 무엇이냐다.  죄는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이 갖는 물리적인 영광들을 보여주며 오직 그 영광을 위해 살아가라고 말한다. 반면 은혜는 '자기 초점', '자기 방어', '자기 보호'라는 울타리를 허물어서 당신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도록 해준다. 그렇게 할 때 당신은 진정한 영광을 경험할 뿐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8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하라  하나님 나라의 삶은 생각하고, 바라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 중심에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것이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세계의 중심에서 살고 싶어 하도록 만든다. 죄는 나 자신에게 집중 조명이 비추기를 원하게 만든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땅에 매인 보화와 근심에 매인 필요에 모든 힘을 쏟게 만든다. 그렇다. 죄는 확실히 우리 삶의 크기를 자신만의 삶의 크기로 축소시킨다. 이것이 바로 작은 왕국이다. 작은 왕국에서는 자신이 늘 중심에 있다. 큰 왕국인 하나님 나라에서는 중심에 자아가 절대 있을 수 없다. 두 왕국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누가 중심에 있는지를 보면 드러난다. 초월적인 하나님 나라의 삶은 언제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중심을 비워둔다. 이번 장은 바로 그 누군가에 대한 내용이다. -왕의 이야기  앞서 말했듯이 성경은 두 왕국, 즉 자기 왕국과 하나님 나라 사이의 전쟁 이야기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경은 왕의 이야기다.  구약은 실패한 인간 왕국들의 연대기로서, 구약이 가장 소망하는 것은 한 왕이 나와 그의 나라를 세우고 공평과 정의로 영원히 다스리는 것이다(사9:6-7, 32; 겔37:24이하; 슥9:9-10 참조). 구약은 하나님의 백성이 왕을 기다리고, 찾고, 소망하면서 끝이 난다.  반면 복음서는 기다리던 그 왕이 왔고 그의 나라가 이루어졌음을 선포한다. 기다리던 왕이 드디어 이 땅에 오셨다. 모든 성경은 진실로 왕이신 그리스도 이야기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서기에 합당하고 유일하신 분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왕국이다.  이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라는 의미다.  초월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중심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은 우리 삶의 크기를 자신만의 삶의 크기로 축소하려는,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속박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예"라고 대답할 때 그 싸움에서 승리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기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자 할 때만 우리가 창조된 목적인 초월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초월적인 삶을 살 때만 우리의 진정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 또한 진정한 인간성을 회복할 때만 우리의 삶이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갖게 된다. 우리의 인간성은 스스로 발견하거나 스스로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고(세상은 그렇게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삶을 투자하고,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삶을 투자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분의 영광을 위해 이곳에 심겨졌다. 이것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아니다. 우리 인간성의 본질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스스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 안에 살 때, 우리는 실제로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가 되기 시작한다.  큰 왕국을 위해 사는 것은 삶의 모든 국면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사는 것이다. 골로새서 1장3-23절 바울의 기도에서 모든 내용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통해 이 그리스도를 탁월하게 드러내도록 지음받았다.  두 번째로 고린도전서 1장18절-2장5절 말씀을 보자.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이 자신의 사역에서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는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것이다! 바울에게 하나님 나라의 삶이란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기도교인의 삶 모든 영역 중심에 두는 것이다.  앞에 소개한 두 개의 성경 본문을 간단하게 해설하면서 몇 가지 원리로 요약해보겠다. ◆창조세계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도록 만들어졌다  당신의 결혼은 주로부터 나왔고, 당신의 결혼생활을 그리스도 위에서 행해지고, 당신의 결혼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존속된다. 당신의 자녀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오고, 당신의 자녀는 그리스도께 속하여 있고, 당신의 자녀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통해서만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가 될 이다. 당신의 소유는 그분의 손에서 나오고, 당신의 소유는 그분의 목적을 위해 그분께서 속한 것이고, 당신의 소유는 그분의 보호로 보존될 것이다. 당신의 삶에서 그분께 속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집중하여 살도록 지음 받았다  진정한 인간성은 자기 혼자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창조주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날부터 그리스도는 그분이 창조한 모든 사람의 삶에서 중심이 되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이 에덴동산의 패러다임이다. ◆그리스도에게 집중할 때는 언제나 십자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십자가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온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십자가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심이 회복되고 그리스도가 마땅히 계셔야 할 우리 삶의 모든 중심에 서시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다. -어떤 모습일까?  샘은 기독교인이었지만 그의 신앙에느 열정과 방향성이 부족했다. 행동은 곧았지만, 공허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직장에서 그의 모습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즉 매우 긍정적이고, 추진력이 있고, 의사소통도 잘하고, 열정이 넘쳤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교회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열정이 없어 보였지만 직장에서는 활기가 넘쳤다. 왜 이렇게 다른 걸까? 뭐가 빠져 있는 걸까?  그리스도가 기독교인의 삶의 중심에 있지 앉을 때, 그 사람의 신앙은 늘 신학이나 규율로 축소될 것이다. 신앙이 삶의 중심에서 원리를 체계화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른 더 강력한 동기에 자리를 내주고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기독교 신앙을 신학이나 규율로 갖게 되면 자아가 중심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빠진 기독교는 아름답지도 않고 능력도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만이 모든 죄인을 파멸로 이끄는, 자신을 향한 강한 사랑을 무력화시킬 능력이 있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그 사랑을 이끌어낼 능력이 있다.  기독교 행동주의, 율법주의, 형식주의, 감정주의, 신조주의, 외식주의 이와 같이 기독교 안에서도 그리스도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작은 왕국이 큰 왕국 행세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이 다 큰 왕국 안에 있고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이것들이 갖는 위험성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위장하여 우리 마음에서 예수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큰 왕국,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 ◆원천  여기서 깨닫게 되는 것은 정말로 소유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은 다 그분의 손에서 받은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분의 지속적인 은혜 없이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가 될 수 없고, 마땅히 해야 할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스스로 가질 수 없는 지혜와 힘과 사랑과 이내와 참을성과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늘 그분의 은혜에 의지하기 때문에 어디서든 은혜를 구한다. 말씀을 읽고, 교제하고, 공동체 예배에 참석하고, 사역에 동참하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고, 영적 리더들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구한다. 이 모든 것을 의무로 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원천이고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구해야 하기에 그렇게 한다. ◆동기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은 그분이 정말로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의 이유가 되신다는 의미다. 우리는 그분을 알기 원한다. 그분이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신 목적을 우리 스스로 우리의 목적이라 규정한다. 그분의 나라에 동참하도록 선택박은 것에 감격하고, 그 나라의 목적, 가치, 목표에 맞는 방법으로 살고자 한다. ◆목표  우리 삶의 목적은 그분의 영광과 존귀다. 이제 더 이상 자신만의 영광을 위해 살거나,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행하거나, 관계를 맺지 않는다. 훨씬 더 멋지고 더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다. 그분이 우리 삶에 방향을 주고 기쁨을 주신다. ◆소망  당신은 무엇을 소망하는가? 어떤 바구니에 당신의 달걀을 전부 넣었는가? 그리스도가 당신의 소망인가? 그분이 당신의 삶이 서 있는 견고한 바위인가?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이 될 때, 그분은 우리가 확신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신다. 우리는 그분의 지혜로 행동하고 그분의 은혜에 의지한다. 더 이상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짓된 삶을 살거나, 누군가를 통제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그분이 우리의 소망이다.                      
2024-04-15 20:32:18 | 박수현
예수님의 믿음으로만 살아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의 왕국을 쌓지않기 위해서뿐 아니라 시련을 견디기 위해서도 예수님과의 교제로 가득한 하루되게 해주세요.. -내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좋으니 이로써 내가 주의 법규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편 71절 위로가 되는 하나님말씀입니다~
2024-04-06 22:14:41 | 목영주
    안녕하세요, 이번 주 자매 모임은 교회 주차장 공사로 인해 조별로 다른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속한 B조는 이은정 자매님께서 집을 제공해 주셔서 편안하게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조 자매님들과 만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교회 이외의 장소에서의 만남도 새로운 즐거움이었습니다. 이번 독서 모임도 두 챕터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5 왕의 문명 건설에 참여하라 우리는 늘 어떤 문화로 문명화되거나 다른 사람들을 문명화한다 -문명화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폴트립 저자) 우리 모두가 왕국 건설자라고 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문명 건설자들(civilizers)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특정한 왕국 문화로 '문명화되고' 있고, 다른 사람을 문명화시키고 있다. (예를들어) 아이들이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길이 막혔는데 아버지가 앞에 있는 차를 저주한다면, 아이들은 아버지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반응하도록 문명화된다. 이처럼 우리는 언제나 어떤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 일하고, 언제나 그 문명의 규칙과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우리 모두는 폐쇄공포를 일으킬 만큼 작은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그 왕국의 규칙을 지키기 원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주변 사람들을 자기 문화에 따르도록 만드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분간하기 힘들다  문제는 이처럼 심오하고 삶을 형성하는 왕국 건설의 모든 행위가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져서 사소하고 잘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난 지금 왕국을 건설하고 있어. 나랑 관계를 맺고 싶으면 내 왕국의 규칙들을 지켜야 해." 아무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죄로 인해 눈이 가려진 채 소소한 순간들을 살아간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의 왕국 건설은 많은 부분 의식적인 의도 없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은 큰 왕국의 규칙들(하나님의 왕국)과 작은 왕국의 규칙들(자기 왕국)이 혼잡하게 뒤섞여 형성된다.   우리가 어떤 왕국을 짓고 있는지 분간하기 힘들고 혼동되어 있다. 초월을 받아들인다고 하면서 실생활에서는 개인적인 관심의 영역으로 우리의 삶이 축소된다.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날마다 살고 일하는 왕국은 한 사람만의 왕국이다. -자기 문명의 특징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다고 믿으려는 경향이 있으나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두 왕국의 정책이 위험하게 뒤섞인 채 살고 있다. 왕국 간의 갈등은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작은 왕국의 특징을 제대로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부터 한 가지씩 소개하며 논해보겠다. ①자기 초점: 작은 왕국의 유일하면서도 가장 유력한 초점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나에게 무엇이 '좋으냐'가 이 작은 왕국의 법이다. 당신의 대화와 결심과 행동은 누구의 '유익'을 구하는가? ②자기 의: 자기 의는 나의 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나의 죄보다 다른 사람의 죄를 더 크게 보게 만든다. 작은 왕국은 하나님의 계시보다 나의 내면의 대화에 지배되므로 나 자신을 겸손하고 정확히 보도록 장려하지 않는다. ③자기만족: 작은 왕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가?'가 아니다. 오직 한 가지만 묻는다. '나 자신과 내 삶이 만족스러운가?' 이 질문에 만족한다면 자신만의 왕국은 잘 돌아갈 것이다. ④자기 의존: 자기 의는 언제나 자기 의존으로 이어진다. 내가 의롭다고 확신하는 만큼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다. ⑤자기 통치: 작은 왕국에서 최고의 법은 나의 법이다. 이 왕국에서는 나를 사랑하고, 내 인생을 위한 최고의 계획을 세운다. ⑥자기 영광: 우리는 죄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영광의 정의를 내리려 하는 경향이 있다. 겉으로는 신념을 따르고 교회라는 공적인 삶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구하는 것은 자기 영광이다. 당신은 누구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가?  -싸우는 이가 있다!  이 싸움에는 은혜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왕국들 간의 싸움을 감당하도록 충분히 대비해두셨다. 그분의 은혜로 나로 채워진 당신의 왕국에 구멍을 내고, 구속하시는 사랑으로 계속해서 당신을 끌어낸다. 왕국 간의 싸움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살펴보자. ①작은 왕국의 권세를 깨트리셨다(롬6:1-14참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더 이상 작은 왕국의 지배 아래 살지 않는다. 십자가는 창조물의 그늘진 영광이 당신의 마음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고, 당신의 마음이 오직 예수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초월적인 영광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②이기적인 욕망, 생각, 말, 행동에 대한 모든 빚을 갚으셨다(골2:13-14)  당신 대신 당신이 받아야 할 저주를 받은 분이 있다. 이제 더 이상 숨어 살지 않아도 된다. 용서하시는 은혜로 우리는 어둠에서 나오게 되었고, 거부와 죄의식과 두려움, 부끄러움의 짐을 벗게 되었다. 그 용서를 당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고백하도록 초청받았다. ③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는 당신을 복종하게 할 능력을 얻으셨다(골2:15, 엡3:20)  당신의 마음을 붙들고 있던 작은 왕국의 권세가 무너지긴 했지만, 작은 왕국의 생각과 욕망들은 여저히 당신 안에 남아있다. 그래서 십자가는 매일 당신의 삶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이제 당신은 작은 왕국의 자기중심적인 정책에 대해 "아니!"라고 맞설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결과 중 하나는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신은 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 당신이 직면하는 엄청난 유혹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④왕국 간의 갈들이 끝날 것이다.  평화의 때가 오고 있다. 최고의 전쟁은 결국 끝날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이 이길 것이다! 그때까지는 왕국 간의 전쟁이 계속된다. 이 전쟁은 무엇보다 초점을 차지하려는 전쟁이다. 데이빗 핸더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에서 자아가 설 수 없는 유일한 자리가 바로 중앙이기 때문이다. 중앙은 오직 하나님만이 계실 수 있다."   6 욕심을 섬김으로 위장하지 말라  자기 왕국의 가장 큰 위험은 하나님 왕국인 체하는 것이다  작은 왕국(자기 문명)의 문제는 큰 왕국(하나님의 왕국)처럼 옷을 입고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의롭고 선한 것들로 가면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기 영광에 마음이 빼앗겨 있다. 가장 위험한 자기 초점을 하나님 나라의 선한 일들로 변장하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 나라의 초월적인 영광을 위해 살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할 수 있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두려워해야 한다! 변장 왕국의 왕 사탄에 의해 기만적으로 선전되고 있다. 이기심은 섬김으로 가장할 때 가장 위험하다. -변장 왕국의 열매  다이어트를 한다고 겉으로는 규칙을 잘 지키며 몰래 많은 양의 초코칩 쿠기를 먹고 있다면 그에 따른 결과는 몸무게가 빠지기는거녕 늘어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삶과 동료 기독교인들의 삶을 볼 때, 하나님 나라의 초월적인 영광을 위해 기쁘게 헌신할 때 얻는 열매가 아닌 다른 열매들이 보일 것이다. 겉으로는 왕을 위해 살아가는 척해도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섬길 때 얻는 열매들이다. 기억할 것은 이 모든 일이 예배와 순종과 사역의 형태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모습으로 변장한 자기 왕국의 세 가지 열매를 함께 살펴보자. ①복음에 대한 열정과 감격이 부족해진다: 진짜 목적(그리스도와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 다른 목적(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위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②하나님과 기독교에 실망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성경의 가르침이 그들의 삶에서 어떤 구체적인 일로 드러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편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방법이 우리 생각보다 더 중요함을 믿으라고 요청하고, 죄악으로 엉망이 된 이 세상 속에서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내라고 요청한다. 우리가 주님의 언약적 사랑에 소망을 두고 그분의 영광을 우리 삶의 목표로 정할 때 가장 큰 기쁨을 맛보게 된다고 말한다. ③작은 왕국이 소중히 여기는 보물을 닮아간다(시115:1-8): 시편 115편의 제일 중요한 원리는 '네가 바라는 보물처럼 될 것이다.'이다. 그리스도를 소중히 여기며 추구할 때는 그리스도의 성품이 자라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것들의 자질이 자라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교회 안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닮아가지 않는 것이다. -가면 벗기  자기 왕국이 무서운 것은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여전히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변장 왕국과 진정한 왕(눅4:18-19)  삶 속에서 작은 왕국의 실체를 드러내 물리치려는 싸움은 당신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니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우리 메시아께서 이 싸움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작은 왕국이 우리를 얽매이기에 그분이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다.   다른 왕국에서는 우리의 소망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우리가 세운 왕국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할 왕이시다. 그 왕은 우리를 위해 오셨고, 그분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다! 그분을 구하라! 그러면 도움을 발견할 것이다!  현재 매일의 삶에서 사실은 당신 자신을 위해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하는 영역은 어디인가?          
2024-04-05 14:03:21 | 박수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요! 편안하고 따스한 분위기가 저절로 느껴지는 교회가  되면  좋겠지요. 오래 함께 하면 닮아가는 것 같아요. 자매 모임에 참여해 마음을 나누는 모든 자매들의 모습이 아름다워요.
2024-04-04 13:37:35 | 이수영
-넌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계속해-글귀가 2024년 마지막달에도 제것이 되었으면 싶네요. 하나님계심이 기쁘고 전능자예수님이 저의 주인되심으로 (걱정근심이 묻히고) 신나는 하루하루가 되길 기도 드립니다..
2024-04-02 21:29:50 | 목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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