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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의 성장과정을 통해서조회수 : 6380
    • 작성자 : 조양교
    • 작성일 : 2012년 3월 24일 13시 47분 1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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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를 키운 아버지로서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헤아려 본다,

    한 성도님의 가정에 쌍둥이 아이들이 출산했다. 교회의 경사스런 일이다. 나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다보니 아이를 어떻게 낳았는지 어떻게 키웠는지 잘 모르겠다. 아내는 “무심하니까 그렇지~” 하면서 핀잔을 준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로서 준비가 부족했던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대부분의 준비된 부모들은 태중에 있을 때부터, 더더욱 아이들의 출산이 임박해지면 질수록 여러 가지 준비로 분주하다. 이 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각종 유아용품부터 먹을 것에 이르기까지, 아이가 있어야 할 공간까지 세심한 부모일수록, 능력이 있는 부모일수록 더 많은 것들을 아까운 줄 모르고 준비한다.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육지에 온갖 풀과 꽃과 나무들을 채우시고, 그것도 형형색색의 독특하고 다양한 모양과 향기를 지닌 채 종류대로 창조하신다. 바다속은 어떠한가? 어두운 칠흙같은 공간일지라도 그안에 얼마나 다양한 모양과 색조를 지닌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군락하는가? 공중에는 이름조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때로는 큰 집단을 이루며, 때로는 짝을 이룬 채 화려한 색깔을 뽐내면서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가 온 지면을 휘덮는다. 육상을 채우고 있는 동물들도 그 모습의 씩씩함과 기개가 각각의 종류에 따라 흘러 넘친다. 이 모든 것들이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하시는 부모된 심정의 하나님이시지 않을까? 사람이 거주하기에 너무나 편안한 공간을 섬세하게 아름답게 향기롭게 단장하시는 친절하신 하나님을 뵈옵는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부모에 대해 절대적 신뢰를 갖는다. 하늘에 높이 던져 올려도 부모의 손안에 있는 이상 거기에 두려움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제 아이가 성장해 감에 따라 부모는 조금씩 아이에 대해 엄격해 진다. 항상 손안에 감싸고만 있지 않고 독립적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방치를 한다. 그렇지만 항상 부모의 시선은 아이에게 고정이 되어 있다. 아이가 그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간에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위험한 순간에 처하지 않을까 조바심을 하면서 바라보게 된다. 여기에서 또한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우리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하나님의 시선은 우리에게 고정되어 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 삶에서 인지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여진다. 이 시점에서 아이는 어렸을 때 가졌던 편안한 마음보다는 불안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자기 가까이에 부모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아이를 나뭇가지에 결쳐놓고 뛰어 내리라고 하면 선뜻 뛰어 내리지 못하게 된다. 유아기의 절대적 믿음에서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청소년기를 통과한다. 부모가 멀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모의 보호와 공급을 통해 살아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장성한 시기가 되면 더 이상 부모의 품속에만 살 수는 없다. 이제 독립적으로 선택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야 하며, 부모를 자발적으로 섬기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도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거친 우리에게 지각(senses)을 통한 믿음을 소유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때로는 어려운 상황에 놓기도 하고, 한동안 침묵하시기도 하시고, 많은 풍요로움 속에 두시기도 하고, 다양한 상황속에서 어떻게 행하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지각을 통한 믿음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여러 상황을 통과한 뒤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알듯하다. 바로 장성한 자의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각(senses)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신다. 이 지각은 말씀을 통해 연단을 받고, 사람들을 통해 연단을 받고, 환경을 통해 연단을 받고,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연단을 받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라시는 삶을 자발적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하기를 원하시며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를 원하신다. 나의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히 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나의 성공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시겠지만 나의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신다. 나의 처해진 상황에 상관이 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야 말로 우리 믿는 자들이 추구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요즘 홈페이지가 신앙의 유용한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목회자의 신념과 목회철학이 담겨 있으며, 우리 믿음을 일깨워 주는 유용한 글과 설교가 풍성하게 들어 있다. 사랑과 격려의 글도 있고, 전문적인 식견의 글도 있으며, 불꽃 튀기는 논쟁의 글도 있다. 모난 부분이 다듬어지기도 하고 철을 더 예리하게 만드는 그런 도구로도 사용이 되고 있다. 나는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가능하면 내 역할을 뒤에서 묵묵히 하는 것을 소신으로 삼고 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홈페이지를 묵묵히 관람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본다. 하지만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 할지라도 기록한다면, 새삼스럽게 나까지 나서야 할 필요가 있나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교회란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신분과 다양한 재능과 다양한 믿음이 아우러져 있는 공간이다. 나보다 더 연약한 사람들이 있기에 이미 아는 내용이라 할지라도 다시한번 새로운 각도로 바라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일정 수준이상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새로이 믿음을 시작하시는 분들께는 소외되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외람된 글을 기록하였지만 우리 모두가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아기의 믿음에서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해 나가는 장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나아 가는데 동참했으면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 수록 흰머리 숫자가 늘어만 가는데 시간이 흘러감에 따른 단순한 흰머리가 아니라 의로운 길에서 얻은 흰머리가 되었으면 한다.

    “흰머리를 의의 길에서 얻으면 그것이 영광의 관이 되느니라.” (잠16: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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