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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자매모임- 신약교회사 14조회수 : 24
    • 작성자 : 최성미
    • 작성일 : 2026년 6월 27일 9시 28분 10초
  •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한 주간도 주님안에서 평안하셨나요..

    모세는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것 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것을 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추상적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선택을 통해 그리스도의 치욕에 참여한 삶이었습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재침례교, 침례교에 이르기까지 진리를 선택함으로 그리스도의 치욕에 참여한 것처럼, 현재 우리교회의 성도들도 그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번주는 챕터 14. 침례교 최대의 분열 - 남침례교 총회의 탄생(AD1814-1845)이며, 자유와 성장의 정점에서 침례교 안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어떻게 정교분리와 양심의 자유를 위해 피 흘리며 싸웠던 침례교가 어떤 이들에게는 자유를, 또 다른 이들에게는 노예제의 신학적 방패를 제공하는 교파가 될 수있었을까? 이 장에서는 교회가 시대의 죄와 부딪칠 때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 분열의 그림자

    - 침례교는 19세기 초, 미국에서 놀라운 성장을 경험했다. 침례교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지역적, 문화적, 경제적 차이가 드러났다. 특히 남부와 북부의 차이가 커졌다. 그 차이는 결국 침례교 역사상 가장 아픈 분열을 가져왔다.


    ● 19세기 미국 - 두개의 다른 세계

    - 북부는 산업 혁명의 한 가운데 있었다. 경제는 제조업, 상업, 무역 중심이었으며 이는 자유 노동 체제였다. 이민자들이 유입되며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은 일상이 되었다. 또한 북부의 개신교도들은 사회 개혁에 관심이 많았다.

    - 남부 경제는 농업 중심이었다. 생산 작물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노예제는 단순히 경제 제도가 아니라 남부 사회 전체의 기초였다.


    (자매:남부 사회의 노예제 찬성은 환경적인 부분도 기여를 했지만, 자신들의 생활 방식의 판단 기준을 성경속에서 찾는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들의 방식이 맞다는 것을 주장 하기위해 왜곡된 방식으로 성경을 적용 한 것도 있는것 같습니다.)

    (자매:남부 사회는 보수적이었습니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원하며,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수와 우파의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옳은 가치인 우파, 그리고 성경적 보수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 1820년대와 1830년대에 이 두 세계 사이의 긴장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경제적 이해 관계가 충돌했다. 노예제는 단순히 정치적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깊은 도덕적, 신학적 문제였다.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 없었던 교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을때, 그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침례교안의 긴장 - 오늘날의 관점에서

    - 오늘날 우리는 명확하게 남부 침례교인들의 노예제 옹호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그들은 성경을 문화적 편견과 경제적 이익으로 곡해하고 오염 시키도록 허용했다. 둘째, 성경은 타락한 세상에 노예제가 존재했음을 기록하고 그에 대한 행동지침을 준 것이다. 셋째, 노예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들을 재산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분명한 성경의 메세지는 자유, 평등, 정의, 사랑이다.


    (자매:일부 남부 침례교 목사들이 흑인 노예들에게 복음을 전할때 조차 때론 성경과 다른, 남부의 정치적, 사회분위기에 동화된 모습을 봅니다. 이런 모습들의 변화를 위해서는 남북전쟁이 필연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까 했습니다.)


    ● 1844 - 선교사 임명 논쟁

    - 긴장은 1840년대 초에 절정에 달했는데, 촉발점은 선교사 임명 문제였다. 일부 북부 침례교인들은 노예 소유자를 선교사로 임명하는것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 분노한 조지아의 침례교 교인들은 의도적으로 노예를 소유한 리브(James E. Reeve)를 선교사 후보로 지명했다. 몇달 동안 논쟁이 있었고 마침내 1884년말, 국내 선교회 이사회는 선교회의 통합을 위해 노예 소유자를 임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매:선교사 임명 논란은 결국 분열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는데,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그들이 겪은 시대적 어려움도 있었을것 같고, 기준이 성경이 되어야 함에도 다른 해석을 하는 기득권층의 반대가 결국은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1845년 5월 - 어거스타 회의

    - 1845년 5월8일, 293명의 대표들이 어거스타의 제일 침례교회에 모였다. 회의는 엄숙했다. 모두가 이 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하는 역사적 순간임을 알았다. 침례교가 분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5월10일, 대표들은 투표를 통해 압도적 다수가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남침례교 총회'가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주목할 점은 분열의 원인이 신학적 차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분열은 노예제라는 사회적, 도덕적, 경제적 문제 때문이었다.


    (자매:어거스타 회의에서 남침례교 총회가 탄생하며, 결국 분열된 모습을 보임에도 당시 노예제는 현실이었고 북부와는 다른 견해를 보일 수 밖에 없었을것 같아요. 기득권을 포기 한다는것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럼에도 남침례교 총회의 목적 중 가장 큰 부분이 선교를 위해서라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놀라운 부흥과 성장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 남침례교 총회가 하는 일

    - 남침례교 총회는 개별 교회들이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들을 협력하여 수행한다. 첫째, 선교사역. 이것이 총회가 설립된 주된 이유였다. 남침례 총회 국제 선교 이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선교조직 중 하나이다. 둘째, 신학 교육 셋째, 출판 및 자료 제공 넷째, 윤리 및 종교의 자유 옹호 다섯째, 재난 구호.


    ● 독립 침례교회들

    - 미국에는 남침례 총회와 다른 어떤 침례교 조직에도 가입하지 않은 독립 침례교회들이 매우 많다. 텍사스 주 댈러스의 제일 침례교회는 역사적으로 남침례 총회 소속이었지만 매우 강한 독립성을 유지한다. 일부 대형교회들은 아예 소속 교단이 없다.


    (자매:기존의 신앙생활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조금은 왜곡된 모습으로 삶에 적용하여, 무조건적 복종인 교회생활을 하였습니다. 이곳 침례교회에서 점차 변화되어 이제는 옳은것을 판단하고 선택하는데 까지 성장한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 노예제 정당화 - 어두운 그림자

    - 남침례교는 남북 전쟁(1861-1865)동안 남부 연합을 지지했는데 남부 연합은 노예제를 보존하기 위해 싸웠다. 전쟁이 끝나고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도 남침례교는 인종 차별을 계속했다. 일부 남침례 교인들은 양심을 따라 인종 정의를 옹호했으나 그들은 소수였고 종종 자기교회와 공동체로부터 비난받았다.


    ● 1995년 - 역사적 회개

    - 1995년 6월, 조지아 주의 애틀란타에서 열린 남침례교 총회 연례 회의에서 '인종 화해에 관한 결의안'이라는 역사적인 결의안이 제출되었다. 이 결의안을 미국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적 회개 중 하나로 평가한다.


    (자매: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아시기에 너무 강하게 개입하지 않으시고 때론 변화 될 때까지 기다려 주시기도 하는것을 남침례교 총회의 회개를 보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 남침례교의 성장 - 역설적 번영

    - 어두운 시작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가장 큰 기독교 교단으로 성장했다. 남침례 총회는 오늘날(2020년대 기준) 약1,300만명의 침례 받은 회원, 약47,000개 이상의 교회, 약3,600명의 해외 선교사, 연간예산 수억달러등, 분명 놀라운 성장이나 우리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성장이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매:북부는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여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결국은 사회주의가 생성되어 오늘날 미국사회를 타락으로 오염시키는 결과를 만들었지만, 남침례교가 역설적으로 번영하게 된것은 성경이 원칙이 되어, 보수적 신학을 유지했으며 선교를 최우선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 아니까해요)


    ● 분열의 교훈

    - 1845년 분열은 침례교 역사에서 가장 아픈 사건 중 하나이다. 이 사건은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첫째, 교회도 시대의 죄에 물들 수 있다. 둘째, 정직한 회개는 가능하며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성경적 원칙은 어떤 이유로도 타협될 수 없다. 넷째, 분열은 언제나 비극이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조차 사용하실 수 있다.

    - 우리가 조직적 통합을 이루지 못할 수는 있지만 성령님안에서의 하나 됨은 반드시 추구해야 한다. 우리의 사명은 과거의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현재의 연합을 추구하며, 미래의 더 큰 화해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화평이시라. 그분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사 우리 사이의 중간 분리 벽을 허무시고'                          (에베소서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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