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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자매모임- 양심실종 6조회수 : 73
    • 작성자 : 박수현
    • 작성일 : 2025년 11월 4일 16시 59분 22초
  • 안녕하세요, 성도님들.

    벌써 11월이 되었습니다. 한 해의 마무리는 잘 되어가고 계신가요?

    마지막 달로 향하는 이 시점,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우리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평안함을 누릴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됩니다.

    돌아보면 올해도 여러 어려움과 유혹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감사의 마음이 우리를 다시 붙잡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 계절이 지나기 전에, 서로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보며, 감사의 고백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함께 나눌 6장에서는 우리의 죄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정복된 것임을 다시 확신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죄는 여전히 우리를 매일 절망하게 하지만, 그 절망의 끝에서도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그 은혜를 다시 제 안에 새기면서 마음에 와닿은 부분들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6장 정복된 내면의 적

     179p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다음과 같은 무심한 말로 자신이 잘못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털어 버리는가? "글쎄, 결국 아무도 완벽하지 않잖아?" 그것은 머뭇거리고 두려워하며 하는 고백이어야 한다. 그 주장은 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경박하고 무례한 수단이 결코 아니다.

     :도덕적 무감각 속에 변질된 표현이네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스스로 돌아보며, “완벽하지 않다”라는 말을 죄를 회피하는 핑계로 사용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겠습니다.

     181, 185p 완전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해 죄의 잔재가 육체 안에 남아 있다는 증거와 가장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조차 죄로 인해 괴로워한다는 명백한 증거를 수없이 직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완전주의라는 교리를 고수하기 위해 그들은 죄를 재정의하거나 거룩함의 기준을 축소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자주 자신의 양심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모든 완전주의는 본질적으로 성화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에 대한 엄청난 오해다. 성화는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믿는 자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그들을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 가시는 과정이다(고후 3:18).

     :구원을 받은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미워하며, 죄를 짓게 됩니다. 완전주의는 오히려 자신을 정직하게 보지 못하게 만들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은 성경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 말씀처럼,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도달하며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리니” 성도는 이렇게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여정을 걸으며 점점 성숙해집니다. 말씀을 알면 자유롭고, 모르고 지나치면 계속 얽매일 뿐입니다.

     189p 선함에서 성숙해질수록 우리에게 죄는 더 고통스럽고 더 분명해진다. 죄를 더 많이 벗어 버릴수록 우리는 여전히 벗어 버려야 할 죄로 물든 성향에 더 주목하게 된다. 그것이 성화의 역설이다.

     :성화의 삶을 살다 보면, 우리의 양심은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합니다. 그럴수록 죄가 더욱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죠.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기쁜 일입니다. 참 오묘한 일입니다.

     194p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것은 매우 극적인 변화들을 낳는다. 먼저 우리는 의롭다 칭하심을 받는다. 칭의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일어난다. 칭의는 '무죄'라는 하나님의 평결이다. 칭의라는 용어는 죄인들의 성품 안에서 일어나는 실질적인 변화를 묘사하지 않는다. 칭의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설 때 그의 위치가 변화되었음을 뜻한다.

     :‘칭의’와 ‘성화’의 구분은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라 해도, 여전히 죄의 유혹 속에 살아가며 싸우고 있습니다. 칭의는 지옥에 가야 할 죄인이 하나님께로부터 의인으로 ‘간주’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이 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더 이상 성화할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교리가 생겨납니다.

     196p 육신(롬 6:19, 7:18)은 옛 사람의 시체와 같다. 그 시체는 죽었지만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그 시체가 닿는 모든 것을 부패함과 더러움, 썩음, 죽음의 악취, 곪게 하는 병으로 감염시킨다. '육신'에 대해 말할 때 바울은 우리 죄성의 잔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우리의 치명적인 연약함, 우리의 이기심, 죄를 짓고 실패하는 우리의 경향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마침내 영화롭게 될 때까지는 뿌리 뽑히지 않을 것이다.

     :옛사람의 잔재, 곧 시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 내 안에서 나는 악취를 느낄 때가 있는데, 그때 참 힘이 듭니다. 빨리 이 시체가 치워지고,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며 육신과 싸우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197p 죄는 더 이상 우리를 다스리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죄는 왕좌에서는 쫓겨났지만 아직 완전히 파멸되지는 않았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죄를 왕좌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미 승리했지만, 현실 속에서 이 말씀의 믿음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언제든 넘어질 수 있습니다.

     199, 201p 믿는 자들은 오직 죄를 짓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본성의 전적인 부패에서 해방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유롭게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죄의 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못했다. 

     따라서 우리 안에 있는 죄는 비록 '정복당한 적'이지만 여전히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적극적으로 대적해야 할 대상이다. 신음하며 영광스러운 날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패배한 내면의 원수와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6장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좁은 길을 걸어야 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여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과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바라보며 매일의 영적 전쟁을 담대히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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