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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이 말하는 헌금의 원리: 십일조는 신약 성도의 의무인가?조회수 : 12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6년 5월 29일 6시 53분 1초
  • 안녕하세요?

     

    2008년 5월 교회를 시작한 지 어느덧 18년이 지났습니다. 돌아보면 참으로 감사한 세월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설교 가운데 교회를 시작하며 했던 '헌금의 원리'가 150만 뷰 이상을 기록하며 가장 많이 시청한 설교가 되었습니다. 처음 이 설교를 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헌금 문제, 특히 십일조 문제가 많은 성도들에게 오랫동안 무거운 짐이 되어 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는 이 원칙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강제로 십일조를 부과하거나 헌금으로 성도들을 압박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원칙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과연 성도들도 이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함께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억지로 내지 않는 것이 자유라면, 그 자유가 인색함이나 무관심으로 흐르지는 않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헌금은 강요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인색함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원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한 번쯤 이 헌금의 원리를 다시 읽어 보시고, 내가 지금 바른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샬롬

     

    패스터


    성경이 말하는 헌금의 원리:
    십일조는 신약 성도의 의무인가?

    들어가며

    헌금 문제는 교회 안에서 늘 민감한 사안이다. 특히 십일조를 둘러싼 논쟁은 어느 교회에서나 뜨거운 감자다. 어떤 교회는 일 년에 한 번씩 성도들을 불러 모아 집사님을 앞에 세워 놓고 서약을 받기도 한다. 앞에서 적게 적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라 사실상 갈취에 가깝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신약 성경이 헌금에 대해 가르치는 원리는 이 한 구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1. 구약의 십일조: 신정국가의 세금이었다
    o 십일조의 배경

    십일조가 처음 제도로서 부과된 것은 모세 율법 이후다. 이스라엘은 민주국가나 왕정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국가였다. 그 신정국가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부과하신 세금이 바로 십일조다. 그러므로 십일조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이 신정국가라는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o 첫 번째 십일조: 레위인과 제사장을 위한 십일조 (10%)

    레위기 27장 30~32절에 기록된 대로, 땅의 씨와 나무 열매와 짐승의 십분의 일은 주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열두 지파 중 레위 지파 전체를 따로 떼어 하나님의 일만 전담하게 하셨다. 성막을 짓고 유지하며, 찬양하고 제사를 집행하는 일이었다. 나머지 열한 지파는 자신들의 수입에서 십분의 일을 떼어 이 레위 지파를 부양했다. 레위인은 다시 자신들이 받은 것의 십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드렸다. 이것이 첫 번째 십일조로, 하나님의 일을 위한 재정이었다.

    o 두 번째 십일조: 본인과 가족이 먹고 기뻐하기 위한 십일조 (10%)

    신명기 12장 17~18절과 14장 22~26절에는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 두 번째 십일조는 제사장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사람 본인과 그 가족이 하나님 앞에서 먹고 기뻐하는 데 쓰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로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가지고 가서 온 가족이 함께 먹으며 하나님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라고 하셨다. 심지어 그 장소가 너무 멀어 짐승을 끌고 갈 수 없다면 돈으로 바꿔서 가져가 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서 먹으라고 하셨다.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라도 상관없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수확의 기쁨을 온 가족이 함께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이것이 두 번째 십일조의 목적이었다. 이것은 자기 마음대로 먹고 쓰라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의미였다.

    o 세 번째 십일조: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십일조 (약 3.3%)

    신명기 14장 28~29절에 따르면, 3년이 끝날 때마다 그해 소출의 십일조를 따로 모아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가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고 하셨다. 3년마다 한 번씩 드리는 것이므로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3.3%에 해당한다.

    o 이스라엘의 실제 부담: 최소 23.3%

    이 세 가지를 합산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매해 최소한으로 드린 금액은 23.3%였다. 흔히 십일조라고 하면 10%만 드리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성경이 기록하는 구약 이스라엘의 실제 십일조 부담은 그보다 훨씬 컸다. 더욱이 이것은 강제로 부과된 것이었다. 신정국가의 일원으로서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율법이 부과하는 형벌을 받았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헌물을 드려야 했으므로 신정 정치 체제하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실제 부담은 23.3%를 훨씬 웃돌았다.

    2. 구약 역사 속의 십일조
    o 히스기야와 느헤미야 시대의 갱신

    바벨론 포로 이전 히스기야 시대에 십일조 제도가 갱신되었고(대하 31:5~6), 포로 생활 이후 귀환한 느헤미야 시대에도 성벽 재건과 함께 십일조가 복원되었다(느 10:37~39, 12:44, 13:5). 느헤미야가 본국에 잠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백성들이 십일조를 가져오지 않으니 레위인들이 먹고 살 수 없어 모두 자기 밭으로 도망가 버린 상황을 발견했다(느 13:10~13). 하나님의 일을 위한 재정이 끊기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유지될 수 없다는 원리가 여기서 분명히 드러난다.

    o 말라기 시대의 책망

    말라기 시대에는 백성들이 자기 집은 치장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은 내버려 두었다. 이에 하나님께서 말라기 대언자를 통해 책망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강도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의 것을 강도질하였나이까? 하나니 너희가 십일조와 헌물 면에서 강도질하였느니라.”(말 3:8) 하나님께서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와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면 하늘의 창들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겠다고 약속하셨다(말 3:10).

     

    이 구절의 앞뒤 문맥은 분명히 하나님의 일을 흥하게 하라는 것이다. 원리 자체는 변함이 없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떼어 놓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원리는 신약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만 이것을 강제로 부과하여 이행하지 않으면 큰 죄인인 것처럼 만드는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3. 구약에 등장하는 두 가지 개인적 십일조
    o 아브라함의 십일조 (창세기 14장)

    아브라함이 사로잡힌 롯을 구출하고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이 나타났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드렸다. 이것은 일회적인 사건이다. 그 이후 아브라함이 계속 십일조를 드렸다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전쟁에서 이기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일회적 표현이었다.

     

    히브리서에서 이 사건을 인용하는 이유는 십일조를 내라는 명령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멜기세덱 앞에 무릎을 꿇었으니 멜기세덱의 제사장 체계가 레위 제사장 체계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o 야곱의 서원 (창세기 28장)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주시면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했다(창세기 28:22). 이 역시 율법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닌 개인적 서원이었다.

    4. 신약 성경과 십일조
    o 마태복음 23장 23절: 이것은 구약 시대의 말씀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들인 판단의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등한시하였도다. 너희가 이것들도 행하였어야 하며 다른 것들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도 십일조를 명령하셨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십자가 사건 이전의 말씀이다. 구약 시대였다. 교회는 아직 형성되지도 않았고 예수님은 아직 십자가에 가지도 않으셨다. 이스라엘 신정국가가 여전히 서 있는 상황에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바리새인들은 당연히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드려야 했다. 이 구절을 교회 시대 성도들에게 십일조 의무를 부과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o 히브리서 7장: 십일조 명령이 아닌 멜기세덱 논증이다

    신약 성경에서 십일조가 언급되는 곳은 히브리서 7장 4~10절이 유일하다. 히브리 크리스천들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 체계만이 하나님의 선택된 체계라고 주장하며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레위 제사장 체계보다 멜기세덱의 제사장 체계가 훨씬 더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멜기세덱 앞에 무릎 꿇고 십일조를 바쳤으며, 아브라함의 허리 속에 있던 레위도 그 사건 안에 포함되어 있다. 레위 사람들은 죽는 사람들이지만 멜기세덱은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 멜기세덱의 제사장 체계를 따라 오신 분이다. 이 구절의 문맥은 십일조를 내라는 명령이 전혀 아니다.

    o 결론: 신약 성경에 십일조 의무 규정은 없다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교회 시대를 다루는 신약 성경 전체에 성도에게 십일조를 의무로 부과하는 구절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지면서 율법으로 섬기던 시대는 끝났다. 더 이상 레위 제사장도 없고 신정국가도 없다. 그 체계 안에서 신정국가의 세금으로 부과되던 십일조 헌금도 그 형태로는 끝난 것이다.

    5. 신약 시대의 헌금 원리
    o 일꾼이 먹을 것 받는 것은 마땅하다

    그렇다고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위한 재정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신약 시대에도 사역자들이 있다. 구약의 성전과 회당이 신약의 교회에 해당하듯, 구약의 제사장과 레위인이 신약의 목사와 선교사와 전도사에 해당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며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다(마 10:10). 사도 바울도 자신은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손수 일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가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먹을 것을 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했다.

    o 번창하게 하신 대로, 자기 마음에 정한 대로

    고린도전서 16장 2절은 말한다. “주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번창하게 해 주신 대로 자기 곁에 모아 두어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

     

    신약 시대 헌금은 자기 수입에 비례하여, 주일마다, 자기 마음에 정한 대로 드리는 것이다. 가난하여 먹고 살 수 없는 상황이라면 헌금을 못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넘치는 형통함을 받고 있으면서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악한 일이다.

    o 즐겁게 드리는 것이 원칙이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이 신약 헌금의 핵심 원리다.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 앞의 6절에는 이런 원리도 있다. “다만 내가 말하는 바는 이것이니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것이라.”

     

    많이 거두고 싶다면 많이 뿌려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이다.

    6. 십일조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이 모두 같은 마음인 것은 아니다.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십분의 일은 최소한 하나님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기쁘게 드리는 성도다. 이런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한국에 많이 있다. 신약 시대에 그게 왜 필요하냐고 이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십일조를 드리면 자식이 잘된다거나 사업이 성공한다는 식의 맹신으로 드리는 경우다. 이것은 마치 부적을 사는 심리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런 태도는 바른 헌금이 아니다.

     

    반대로 십일조를 안 드리는 사람도 두 부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신중하게 판단하여 구약의 강제 십일조가 아니라 신약의 감사 헌금으로 드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헌금 자체를 아예 안 하면서 십일조 드리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흔드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교회에 해로운 일이다.

    7. 우리 교회의 헌금 원칙

    강제 규정으로 십일조를 세금 걷듯 거두는 것은 헌금의 원리와 배치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는 십일조 봉투도 없고 앞으로도 만들지 않는다. 감사헌금으로 드린다. 다만 아직 양심이 연약하여 십일조라고 쓰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찝찝한 분들이 있다면, 그렇게 드리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다. 십일조는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일이다. 십일조로 내든 감사헌금으로 내든 그것을 가지고 서로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 건물 유지비는 목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목사와 성도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헌금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다. 내가 속한 교회가 바른 진리를 전파하며 세워져 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다. 이 바른 인식이 헌금을 바른 자세로 드리게 한다.

    마치며

    성경의 결론은 간결하다. “너희 보물이 있는 곳, 거기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마 6:21) 말로만 하는 헌신이 아니라, 아픔이 있을 정도의 헌금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아픔이 없는 헌금은 아직 헌금이 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마음에 정한 대로, 즐겁게, 수입에 비례하여 드리는 것. 이것이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헌금의 원리다.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인색하게 거두고, 후하게 뿌리는 자는 후하게 거둔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면 교회의 재정 문제는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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