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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약함을 도우시는 주님께 감사조회수 : 5107
    • 작성자 : 김경민
    • 작성일 : 2014년 5월 31일 18시 35분 14초
  • 아침 일찍 일 때문에 출근한 남편과 방과 후 수업이 있어 학교에 간 큰 아이 때문에 모처럼 막내 아이와 단둘이 여유로운 토요일 아침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뭐라도 아침을 먹여야 했기에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야채와 햄을 이용해 볶음밥을 해 보려고 야채다지기를 꺼냈습니다.

    평소 제가 아끼는 것 중에 하나가 이 야채 다지기입니다. 사이즈는 작고 수동이지만 독일의 유명한 주방용품 회사에서 만든 아이디어 상품인데, 재료를 넣고 손잡이가 달린 줄만 서너 번 잡아당기면 여기저기 튈 염려 없이 원하는 만큼 골고루 다져 나와 요리를 손쉽게 도와줍니다. 뒤처리도 간단해서 잘 이용하고 있는데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리한 칼날이 들어 있어 늘 주의를 기울여 아이 손에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상자 채 그대로 넣어서 보관을 잘 해야 합니다.

    오늘도 무심코 야채와 햄을 넣고 줄을 두어 번 당기려던 찰나 뚜껑을 너무 가볍게 누른 상태에서 줄을 세게 당기는 바람에 통을 놓쳐 저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순간 야채다지기와 그 안에 있던 미처 썰어지지 않은 온갖 재료들, 그리고 문제의 그 위험한 칼날이 순식간에 공중에서 쏟아지면서 주방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칼날은 다행히 제 발 앞에 떨어져 아찔한 위기도 모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미처 다 다지지 못한 재료들은 온통 주방위에 흩어져 순간 몇 초간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평소 다지기를 사용 하면서 주의하여 사용하던 터라 오늘의 사고는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마침 아이는 거실에서 놀고 있어 ‘이 상황을 모르고 있어서 다행이지’ 하는 생각이 순간 스치더군요.

    그런데 저의 그 다음 반응에 저도 사실 놀랐습니다.

    만약 평소 남편과 큰아이가 같은 상황에서 제 곁에 있었다면 분명 저는 그들이 들으라는 듯 더 호들갑을 떨며 온갖 짜증을 부리며 분을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면 남편과 아이는 웃으며 다가와 치우는 것을 도와주며 “그냥 나가서 먹자.” 그랬을 테지요. 그런데 지금 제 곁에는 누군가 저의 짜증을 받아 줄 사람도 없었지만 이 황당하고 짜증난 상황이 오히려 쉽게 체념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치워야할 상황이고, 아직 3살 밖에 안 된 둘째 아이에게 이 상황이 알려져야 좋을 리도 없고, 무엇보다 아이와 저는 지금 배가 고픈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조용히 한숨을 쉬면서 바닥에 떨어진 재료들을 주어 담았습니다. 그리고 걸레로 바닥을 닦고, 주어 담은 재료를 물로 씻어 다시 다지기에 넣고 곱게 다져 프라이팬에 쏟았습니다. 아이와 조용히 완성된 볶음밥을 먹으면서 30분도 채 안 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을 통해 그동안 자의이든 타의이든 벌어졌던 분노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 했었는지 과거의 제 모습이 떠올랐고 지금 현재 제가 했던 대처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에서 보면 불안과 갈등에 대처하는 인간 내면의 무의식적 방어 기제들이 있는데 이 중 용납할 수 없는 자기 자신 내부의 문제나 결점이 자기 외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투사’라고 합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남을 탓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저는 유독 완벽하고 꼼꼼하며 불같이 화를 잘 내고 엄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하면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습니다. 사실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이런 태도는 남들에게 인정을 받기에 좋은 태도였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조금 부족한 누군가를 속으로 멸시한다거나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았을 때 오는 좌절감 같은 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나는 최선을 다 한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런데 20대 초반 제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난 이후부터 이런 제 자신의 모순을 깨닫게 되었고 고쳐보려고 부단히 애써 본 결과 저의 노력이 10 이라면 나머지 90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 가는 과정 속에서 제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저도 모르게 제 속의 이 쓴 뿌리들을 서서히 제거 해 주셨습니다. 이 쓴 뿌리들은 어찌나 생명력이 강하고 질긴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저는 물론 가장 가깝게 제 가족들에게도 상처를 주고는 합니다. 아직 어려 연약한 저희 아이들과 저와는 반대로 온유한 성품의 남편이 가장 가까운 피해자인 셈입니다. 저를 교회에서 아시는 분들은 그러시겠지요. ‘아니 자매처럼 얌전하고 조신한 사람이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어요? 믿을 수 없어요.’ 하시겠지만 그 분들께 부끄럽게 고백하건데 ‘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들키지 않으려고 혹은 이런 모습을 벗어버리고 싶어 나름 노력한 결과이지요.’ 라고 솔직히 고백하려합니다.

     

    저는 오늘 평소와는 다르게 스스로 분노를 가라앉히고 체념하면서 상황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벌어진 상황에 대해 ‘그래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어.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 수습하는 것도 내 몫이 되어 버렸으니 화내서 뭘 해. 어서 치우고 밥이나 먹자.’ 하고 차분히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 스스로에게 놀라면서 이전의 제 모습이 얼마나 주님께는 물론이거니와 스스로는 물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었는지를 깨닫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바닥을 다 닦고 나서 잠시 무릎 꿇고 기도 하였습니다.

    ‘주님, 지금 벌어진 일을 통해 제 자신의 지난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그동안 분노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던 제 자신을 용서해 주시고 저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앞으로도 같은 상황에서 제가 화내기를 멈추고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마음을 닮기 원합니다.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마도 구원받지 못한 누군가나 아직 3살 밖에 안 된 저희 아이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저게 무슨 시츄(situation)인가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기쁘고 평안하더군요.

     

    혹시 지금 저와 같은 경험으로 이미 벌어진 어떤 상황에 대해 분노하고 계시거나 그로인해 자신을 학대하거나 혹은 주변에 있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해결점은 자신의 모습을 바로 인식하고, 부족하고 연약함이 있다면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주님께 의지하여 우리를 능히 사망에서 건져 내신 그 분의 권능을 믿고, 예수님의 온유하신 성품을 닮아가도록 각자가 기도하고 서로 권면하는데 있다고 여겨 개인적으로 깨달은 바를 성도님들께 부끄럽지만 나누고자 이 글을 올려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그 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 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그런즉 우리에게,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하늘들로 들어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계신 줄 알므로 우리가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붙들자.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갈 것이니라. (히 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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