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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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듣기, 말하기, 쓰기조회수 : 6271
    • 작성자 : 조양교
    • 작성일 : 2012년 6월 14일 15시 37분 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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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2:7)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소리들을 접한다. 수다한 소리들이 존재하고 어떤 것들을 귀를 솔깃하게 하기도 해서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핏대를 올리면서 받아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이 7번 거푸 반복되고 있다. 두 번 언급하면 강조의 의미로 볼 수 있지만 7번 반복의 의미는 절대라는 의미를 붙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특별히 듣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 세상의 소리보다, 세상의 이론보다, 세상의 뉴스보다, 첨단 과학의 소식보다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시대에 성령 하나님의 역할이 많이 왜곡되어 전파되고 있지만 성령 하나님은 임의로 말씀하지 않으신다. 성경 기록을 드러내시며, 예수님과 예수님 사역을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사람의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게 되고, 어떤 내용을 전하려는지 알게 되며, 난이도가 높은 일들을 수행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바벨탑 때 언어가 흩어졌을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에 바벨탑을 쌓는 일을 그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된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은 더 강력한 권능이 있다. 말씀을 통해서 존재함, 생명과 활력이 생기고 일(역사)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앞선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를 목마른 사슴과 같이 사모하고 사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음은 말하기이다. 들은 내용을 100% 전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유비통신을 통해서 경험해 보지만 처음에 전달한 내용이 마지막에 가서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변모되는 것을 목격한다. 어떤 내용을 알고 이해한 것과 그것을 말로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처음에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님 믿으세요 라는 하는 말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른다. 친구들에게 교회 다닌다는 말을 못해서 꿍꿍 앓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데 어떻게 내가 믿는 바를 정리해서 전한다고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말하기에는 왕도가 없다. 자꾸 반복해서 말을 하는 길 밖에 없다. 어른이 돼서 미국에 간 사람들을 보면 10년이 지나도 영어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이 퍼져 있어서 불편한 점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수할까봐 두려워서 말을 꺼내지 않아서 일 것이다. 기록된 말씀을 소리를 내서 읽기도 하고 흥얼거릴 필요가 있다. 저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예전에 말하기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 별명이 꿀먹은 벙어리라고 불릴 정도로 한마디를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손님이 오시면 그냥 고개만 끄덕하고 내 방으로 솟살같이 들어가곤 했다. 언어는 자주 사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는 없는 듯하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말이 어눌했던 것 같고 사도 바울도 언변가는 아닌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말은 비록 달변하지는 않더라도 나의 갖고 있는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보다 더더욱 힘든 것이 바로 쓰기이다. 저의 글을 읽는 사람은 느끼셨겠지만 허술한 부분을 많이 발견할 것이다. 그래서 표현상 문제가 간혹 발생되어서 알맹이를 보아 달라고 호소를 하곤 한다. 최형제님께서 글쓰기에 대한 글을 많이 올리셨는데 쉬운 것 같으면서 막상 가지고 있는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저 같은 경우 개인 블로그에서 글쓰기를 연습(?)하는데 예전에 쓴 글을 보면 왜이리 허접한 글을 썼나하고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할 경우가 많이 있다. 킵 바이블이나 본 교회 사이트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중에 완벽에 가까운 글을 올리시는 분들이 있다. 저는 웹의 공간이 완벽의 글을 쓰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래서 조금 잘못된 글을 쓰더라도 교리상 큰 위험 요소가 없는 이상 너그런 마음으로 포용하고 개인 교제를 통해서 더 나은 표현에 대한 대화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삐뚤어진 저의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부딛침을 두려워 하는 자는 결코 성장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저 자신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말하기, 쓰기의 영역에 있어서 골고루 균형잡아 나가서 계시록에 기록된 복을 누리는 신자가 되기를 구한다.

    이 대언의 말씀들을 읽는 자와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그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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