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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개의 과학조회수 : 7359
    • 작성자 : 김정훈
    • 작성일 : 2012년 3월 22일 13시 46분 4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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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를 가리켜 과학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 과학의 영향을 입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 어려울이 만큼, 우리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의 혜택을 과거의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많이 누리고 살고 있다. 집집마다 전기를 이용하여 생활의 편리를 추구하며, 비행기를 타면 지구상의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단 하루면 다다를 수가 있다. 인공위성은 안방에 앉아서 전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며, 컴퓨터는 인간의 생각까지 대신하여 준다. 그런가 하면, 사시사철 언제라도 원하는 과일을 먹을 수 있고, 병원에 가면 심장도 새 것으로 바꾸어 준다. 그야말로 작은 것에서 큰 것에 이르기 까지 과학은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과학이 우리 앞에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이 갖고 있는 학문적 방법의 특수성에 그 원인이 있다. 즉, 과학은 어떤 자연 현상에 대하여, 반복되는 관찰과 실험을 통하여 그 현상 배후에서 작용하는 원리를 찾아내고 이 원리를 다시 사물에 적용함으로써, 결국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과학적이라는 말은 좁은 의미에서 실험적이라는 말로 환원될 수 있으리만큼, 과학에서 실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물론, 실험을 하지 않고 단지 이론만으로도 과학적 활동을 전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론이 소위 ‘과학적’ 이라는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험적으로 입증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본질상 그 성격이 다른 과학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창조론이나 진화론 같이 기원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기원에 관한 연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과학과는 달리 현재가 아닌 ‘과거’를 다루며, 따라서 과학적 방법의 고유한 성격인 관찰과 실험을 적용할 수가 없다는 근본적 차이가 있어, 엄밀한 의미에서는 소위 ‘과학적’ 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어렵지만, 현재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인 이론을 추론해 내고 그 이론의 타당성을 또한 새로운 이론에 맞추어 점검해 볼 수 있으므로, 과학이라는 이름을 쓰고는 있다. 이와 같은 성격의 차이점을 고려하여, 미국 Dallas 신학교의 Norman Geisler 교수는 기원의 문제를 연구하는 과학을 ‘기원과학 (origin science)’으로, 그리고 우리에게 생활의 편리함을 느끼도록 문명의 혜택을 제공해 주는 일반과학을 ‘기능과학 (operation science)’이라는 이름으로 구별하여 부를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여기서는 편의상 ‘기원과학’과 ‘실험과학’이라고 구분하여 부르기로 한다.

     

    결국, 기원과학은 실험과학과는 달리 실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으며, 따라서, 기원의 문제는 과학적 연구의 전유물이 될 수 없고, 과학은 단지 그 이해를 돕는 한 방편이 될 뿐이다. 따라서 진화론자가 무슨 ‘과학적’ 주장을 하더라도 그 배후에 들어 있는 본질적인 문제 접근의 해결 방식의 한계성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실험과학과 같은 권위를 갖기는 어렵다. 물론 이것은 창조론자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적으로 기원에 관한 문제를 절대 ‘증명’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증거’를 논할 수 있을 뿐임을 십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시었다고 선포한다. 과학의 눈으로 보아도 우주의 기원을 창조주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결론이다. 정직한 과학은 성경과 모순이 없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을 도저히 우리들이 변명할 수 없도록 분명히 보이게 하며 깨달아 알게 하고 있으니 (롬 1:20),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가 과학을 공부하고 피조세계를 알아간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기원과학적인 접근을 통해서도 우주와 인간의 기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아 발견할 수 있음이 하나의 커다란 감격이 될 뿐만 아니라, 실험과학의 영역에서 발견되는 세세한 과학적 사실들을 통하여도 남다른 즐거움을 얻게 된다. 과학을 모르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모양으로, 어떤 성질로, 그리고 어떤 기전으로 그것들을 움직이게 만드셨는지를 알 수 있는 특권은 과학적 통찰을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모르고가 구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일단 하나님을 가까이 알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솜씨를 같이 느끼며 가까이서 대화하는 것 같아서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모른다. 우리 하나님이야말로 최고의 ‘과학자’가 아니신가~!

     

    그러나 교회에서 진화론 등으로 얼룩진 잘못된 과학으로 말미암아 과학의 그 본질적 성격에 관한 오해가 있게 되면, 주일학교 교육의 현장에서 참 과학이 전하는 내용을 잘못 가르치거나, 불필요하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거나, 결과적으로 성경과 대립되는 듯 하는 인상의 불편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게 되어 주의가 요망된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지구는 스스로 자전도 하고 있지만, 동시에 태양의 둘레를 도는 공전도 하고 있다. 자전은 낮과 밤을 만들어 주고, 공전은 지구에 사계절이 가능하게 해주는 유익함이 있다. 이와 같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것을 지동설이라고 하고, 반대로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돈다고 생각하는 이론을 천동설이라고 부른다. 과거 한때는 과학자들이 천동설을 주장했던 적이 있었지만, 근대와 현대를 지나오면서 적어도 현재까지는 지동설이 실험과학적으로 보다 더 설명이 잘 맞아 들어감으로 이것은 이제 과학계에서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정착한지 오래이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가끔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는 것처럼 묘사한 구절을 접할 때가 있다. 가령 여호수아기 10장 12-13절 말씀을 보면, “해야, 너는 기브온 위에 멈추어 서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해가 멈추어 서고 달이 멈추어서...” 라고 나와 있지 않은가?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을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이지만, 우리가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여호수아가 ‘지구야 멈추어라’고 말하지 않고 ‘해야 멈추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혹시 천동설이 옳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우리가 유념하여 볼 것은, 현재의 우리들도 과학적인 교육을 통하여 지동설이 보다 더 설명이 잘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일상생활 가운데 말을 할 때는 여전히 해가 뜨고 진다고 표현하지, 지구가 태양에서 얼마만큼 움직였다고 표현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금 더 설명하면, 기차를 타고 갈 때 누구나 기차가 움직이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밖을 보면 나무들이 지나간다고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국 지구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해가 움직인다고 표현하는 것이 훨씬 의사소통하기가 수월하고 편리한 면이 있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바로 여호수아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고, 성경은 아무런 가감 없이 여호수아의 외침을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지동설과 같이 명백히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두고, 행여라도 성경 공부 시간에 천동설을 암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교육을 한다면, 그것은 자칫하면 교회가 과학과 불일치된 내용을 전하여 과학적으로 ‘무지’한 인상을 줄 수 있으며, 아이들이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마음속에 갈등이 생기거나, 더 나아가 교회의 권위를 은근히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니, 교회는 이러한 점을 특히 유념하여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과학은 기원과학도 있지만, 실험과학도 있다. 진화론으로 호도된 잘못된 기원과학은 교회 안에서 철저히 그 오류를 지적하며 바로 잡아 교육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만일 ‘실험과학’의 영역에서 명백히 밝혀진 사실을 오해하여 다르게 전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세계의 질서의 법칙을 왜곡하여 전하는 우를 범하게 되고 말 것이니, 그것은 우리가 피해야 할 사안이다.

     

    과학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물론 그것은 말씀에 기초한 바른 신앙 안에서 발견되고 사용되어져 갈 때에 한하여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세계의 법칙을 드러내주는 과학적 발견들을 통하여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채우고 정복해 갈 뿐만 아니라 (창 1:28),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다면, 어찌 이 또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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