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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신학도의 불행한 귀향조회수 : 5616
    • 작성자 : 유준호
    • 작성일 : 2012년 3월 8일 0시 17분 3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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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교회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복음을 하는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모두 구원을 경험하고, 매일 자신들을 도우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지체들과 함께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중의 한 형제가 부르심을 받고 신학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은 그 형제가 목회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였고, 기도로 그의 가는 길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는 도시에 있는 신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목사가 되기 위한 수업을 열심히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방학을 이용하여 이전에 그렇게 사랑하던 아름다운 시골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전처럼 많은 지체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성경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처럼 성경 본문을 읽고 각기 그 말씀을 통해서 자기가 깨닫게 된 것과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경험들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각 사람들이 성경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들과 그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아온 신앙의 간증들을 이야기하는 '평신도적' 성경 공부를 진행할 때, 입을 굳게 다문 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 학기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온 그 청년이었습니다.
     
     성경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청년은 그 모임을 인도하던 형제에게 최근의 신학 연구에 관해 주워들은 이야기를 장광설로 늘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최근의 신학 연구는 신화, 전설, 역사, 비평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에 대한 지식 없이는 성경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고향의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한 신학도에 대하여 순간적으로 두려운 느낌을 갖기도 전에, 그는 신학교 강의실에서 얼핏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음으로써 그들을 기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신학교 문턱도 못 들어가 본 지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의 발언은 경건주의적이고, 아까 그 형제의 견해는 정통적이고, 저 친구의 의견은 메서디스틱하구먼...."
      "오호라,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렇다면 자네는 그 점에 있어서 오시안더파에 속해 있군. 그런데 그 오시안더 학파는 말이야, 아직 성경이 말하는 칭의의 법적 성경에 대하여 적절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지...."
     
     성경을 읽으면서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이야기하려고 하면 그때마다 이 청년은 이런 식으로 지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낯설어하는 신학 용어들을 마치 특혜를 베푸는 양 설명해 주곤 하였습니다.
    그의 어쭙잖은 신학 지식은 성경 공부를 하러 모인 다른 지체들을 무력하고 비참하게 만들었고, 이것은 생명력 있는 한 젊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내적 생명력이 추상적인 신학의 관념이라는 무거운 갑옷에 눌려서 압사당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 모인 모든 지체들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이 작은 신학자를 바라보았지만, 그것은 매우 불행한 신학도의 귀향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신학의 대가처럼 생각했지만, 그 신학생 때문에 성경 공부 모임의 생명은 사라졌고 논쟁과 관념만 가득한 모임이 되었습니다.
     모임을 모두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잡다한 관념이 가져다준 혼란만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매월 첫째 주마다 청년들이 모여 독서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성령의 열매'라는 굉장히 유익한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모임을 할 때마다 형제들끼리 작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모임에 참석하셨던 분들은 모두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
     
    처음 모임에서는 흠정역 성경의 완전성에 관한 토론.  1)
     
    두 번째 모임에서 치유의 은사의 지속성에 관한 토론. 2)
     
    세 번째 모임에서 욥기의 기록연대 추정에 관한 토론. 3)
     
    공교롭게도(?) 모두 제가 개입되었고, 그때마다 저는 항상 맞는 말을 나름 온유하게 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우연하게 이 책 4)의 첫 장을 읽게 된 순간 저는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저에 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 신학도처럼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한 학기분량 만큼의 지식마저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의 행동은 그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는걸 깨닫고 저 자신이 너무나도 창피하고
    함께 논쟁하던 형제들에게 너무나도 진심으로 죄송스러웠습니다.
     
     

    몇 년 전 처음에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된 때에도 그랬었던 것 같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읽고, 럭크만의 주석서들을 찾아보면서 잔뜩 머리가 커져서
    개역 성경을 읽는 분들을 속으로 무시하며 다니엘의 70이레가 어쩌고, 전천년주의 세대주의가 저쩌고...
    제 기억으론 틀린 얘기는 별로 해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만, 성령의 열매 역시 전혀 맺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 제 얘기를 듣고 흠정역을 보아야겠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구요...^^;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달라졌다 생각했는데 그 때와 별로 변한 게 없습니다.
    게다가 그나마 있었던 한 줌의 지식도 이제 다 까먹고 잊어버려 아는 건 더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형편없고 교만한 사람이 얼마 전부터 유년부에서 말씀을 전하는 교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사람들 앞에 나서 말을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정신없고 시끄러운 초딩들인데,
    게다가 가장 아끼는 시간을 빼앗아 가시다니요!
    뭔가 정말로 말이 안 되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분명히 계속 거절하고 피하고 도망 다녔는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하나님께서 어떤 분을 보내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데 그 사이 잠깐 땜질할 사람이 필요하셔서
    모자라도 별수 없으니 너라도 잠깐 써야겠다..하시고 그만큼의 분량을 허락하신 걸로 믿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비로소 두려움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드디어 다시 뭔가를 맡겨주신 것 같아서, 저같이 무익한,
    아니 해로운 사람도 이렇게 써주시는구나..그런 마음이 들어 감격과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의2 타의8로 시작하게 된지 석 달이 되어가는데도 아직 제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요일 아침 발걸음이 무겁고, 매주 맡겨진 시간 15분이 마치 15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겨우겨우 한주씩 버티고 있습니다. 빨리 그 분께서 오시길 바랍니다..^^;
     
    저를 포함한 주일학교 교사로 수고하시는 모든 분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과 아이들 앞에, 지체들 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항상 말에 조심하고
    또 행동을 조심하도록 기도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형제님,
     
    사랑합니다. 성도님들.
     
     

     불행한 신학도로서의 마지막 글을 조금 덧붙입니다.
    다시는 지체들과 논쟁을 하거나, 가르치려는 태도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ㅜㅜ

    1)  https://www.keepbible.com/BoardRedirect/02_02/218
        흠정역을 보시며 주변에 전하시려는 분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2)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표적과 치유의 은사를 허락하신 때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와 엘리야와 엘리사의 때,
        그리고 예수님과 사도들의 경우 정도이며 또한 분명한 필요와 목적과 함께 제한적으로 허락하셨으며
        확실한 성경 말씀을 모두 주신 이후로 그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  우스 사람 욥의 세 친구인 데만사람 엘리바스, 수아사람 빌닷, 나아마사람 소발의 이름이나 관련 지명은 역대기상
        1장 32절에서부터 42절에 걸쳐서 모두 언급되며 만약 이들이 모두 우연하게도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욥기의 추정
        기록연대는 최소한 이삭이나 에돔 이후의 시대로 늦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김남준.
        이 책은 몇 년 전 김재근 목사님이 사랑침례교회에서 하셨던 킹제임스 성경 세미나 음성파일을 듣다가 문득 호기심이
       생겨 구입해 놓았다가 며칠 전 처음 펴본 책입니다. 저는 신학도가 될 마음도 능력도 자격도 전혀 없습니다만,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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