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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세기 강해'를 읽고조회수 : 101
    • 작성자 : 손혜선
    • 작성일 : 2026년 10월 9일 17시 44분 54초
  •     ‘창세기 강해’를 읽고

     

    정동수 목사님께서 설교 시간에 창세기 강해한 내용을 책으로 만들고 계시며 빠른 시 일 안에 배부할 것이니 나오면 읽고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그 책이 기다려졌었다. 왜냐하면 창세기는 살아있는 역사책이기도 하고 인간의 기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창세기에는 전설같이 여겼던 일들이 사실로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인류의 기원과 살아있는 역사를 배우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릴 때 이웃이나 친척집에 대소사가 있거나 동짓날 때 놀러 갔을 때 팥죽을 쑤어서 문마다 뿌리는 것을 보면서 미신이라고 여겼다, 주변에는 굿당이 별도로 한 채가 있었고 어떤 집에서는 굿을 하는 모습도 보면서 자랐다.

    20대 초반에 전도 받고 구약성경을 읽으며 그 팥죽이 유월절 날 상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뿌리는 풍습에서 악귀를 내쫓기 위해 전설처럼 유래된 것임을 알고는 성경이 사실임을 더 확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기에 창세기 강해 책이 기다려졌었다.

    오래전 어느 책에서 성경에 있는 한문 단어가 중국 등에서 유래되어 한문 성경을 읽으면 성경에 쓰인 단어의 뜻을 이해하기가 쉽다는 글을 읽었다. 한문 성경을 사서 읽으며 한문도 배우고 그 단어의 깊은 뜻과 성경 기록과의 관계를 보면서 심오한 자연의 섭리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관해 배우는 계기가 되었고 성경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새롭게 아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많았기에 기대되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책을 받아들었다. 627페이지의 두꺼운 책이지만 이 책에서 새롭게 배우게 될 내용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날 저녁부터 틈을 내어 읽기 시작했다. 목사님께서 얼마나 자세하게 설명해 놓으셨는지 이해하기도 쉽고 한편 가슴이 벅찼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며 앞으로도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주실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읽으면서 정말 가슴에 담고 싶은 내용이나 제가 감동되었던 내용을 형제자매님들이나 다른 주변 분들과 창세기 책 내용을 짧은 내용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간략하게 적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특별 6일 창조

    하나님께서는 시간 안에 계신 분이 아니라 시간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따라서 시간밖에서 시간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창조는 아무런 조건 없이 말씀만으로 존재하게 하셨다. 무에서 유로 창조하셨는데 재료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물질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함께 창조되었다. 공간도 없었는데 공간 자체가 창조되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현대과학의 발견은 오히려 우주공간 자체가 창조의 산물임을 뒷받침한다. 하나님께서는 시간 밖에서 시간 전체를 한눈에 보시는 분이시다. 온 우주공간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창조되었다면 우리의 생명과 구원 역시 하나님께서 충분히 이루실 수 있는 일이다.

     

         지구 자기장 현상

    어떤 힘이나 세기가 절반으로 줄어 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라고 한다. 지구 자기장의 반감기는 약 1400년이다. 지구의 자기장은 지구 핵에 흐르는 전류로 인해 형성되며 이 전류는 열을 발생시킨다. 지구 자기장을 고려하면 지구의 나이는 10000년을 넘을 수 없다.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에서 우주와 지구를 창조하신 후 형태가 없고 비어있던 그 지구를 단번에 완성하신 것이 아니라, 첫째 날부터 하루하루 질서 있게 채워가셨다는 사실이다. 빛, 궁창, 뭍과 바다, 식물, 광명체, 물고기와 새, 땅의 짐승과 사람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창조물이 정해진 자리를 따라 세워졌다. 창세기 1장은 재창조의 기록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이루신 특별 창조의 기록이다.

     

         에덴동산

    에덴은 ‘기쁨’과 ‘행복’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기쁨의 장소에 동산을 세우시고 자신이 지으신 사람을 그곳에 두셨다.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었는가? 에덴동산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질학적으로 볼 때도 전세계에서 석유가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는 곳은 바로 중동지역이다. 석유나 석탄은 대량의 식물이나 유기물이 노아의 대홍수와 같은 대격변 속에서 갑작스럽게 매몰되고 이후 높은 압력과 열을 받으면서 형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지질학적 특성은 에덴동산에 존재했던 땅이 오늘날의 중동지역일 가능성에 일정한 설득력을 더 해 준다.

     

         가인과 아벨, 두 길의 시작

    아담의 첫째 아들 가인은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가인은 피 흘림 없이 땅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다. 둘째 아벨의 헌물은 양 떼의 첫 새끼들과 그것들의 기름을 드렸다. 가인의 인간 중심적 헌물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피 흘림이 없는’ 예배였고, 아벨의 헌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대신 속죄의 원리대로 ‘피 흘림이 있는 예배’였다. 가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획득하다’라는 뜻으로 이브가 “내가 주로부터 남자를 얻었다”라고 한 말과 직접 연결된다. 아벨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숨’ 혹은 ‘공허함’을 뜻한다. 아벨의 이름은 짧고 덧없는 생애를 미리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인의 헌물은 피 흘림이 없는 땅의 열매를 드렸고, 아벨의 헌물은 양 떼의 첫 새끼들과 그것들의 기름을 드렸다. 가인의 인간 중심적 헌물은 ‘피 흘림이 없는 예배’였 고 아벨의 헌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대신 속죄의 원리대로 피 흘림이 있는 ‘예배’였다. 가인은 끝내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인 슬픈 사연을 남긴다.

     

    아담은 다시 자기 아내를 알았고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 하나님께서 내게 다른 씨를 주셨다”라는 고백과 함께 셋을 얻었다. 그들에게서 후손들이 태어났으며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연결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이 깊어지는 가운데서도 구속의 계획을 한 번도 멈추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이어 가신다.

     

         방주 준비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시며 방주의 재료와 규격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주신다. 오늘날 대형 화물선과 맞먹는 규모이며 높이는 일반 주택 한층의 천장높이인 약 2.5 미터로 환산하면 건물로 따져 약 5층에 해당한다. 축구장과 비교하면 축구장의 길이가 약 105 미터이고 너비가 약 68 미터인데 방주의 길이는 축구장보다 더 길고 너비는 축구장 너비의 3분의 1 정도 된다. 결국 방주는 길쭉한 성냥갑 모양의 구조물로 항해를 위한 배가 아니라 단순히 물 위에 떠 있어 사람과 짐승들을 보존하는 기능을 가진 거대한 상자였다. 방주는 항해술과 무관한 구조물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설계된 구원의 상자였다.

     

    창세기 6장 7절의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죽으리라.”에서 ‘모든 것’은 생명의 숨이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이는 노아의 홍수가 국지적인 홍수가 아니라, 온 땅을 덮는 전 지구적 홍수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사실은 여러 고대 문명, 곧 이집트, 갈대아, 페니키아, 그리스, 중국 등지에 큰 홍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실제로 노아의 대홍수가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간접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비가 내린 적도 없었고 땅에서 안개가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시는 구조였기 때문에 하늘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온 세상이 홍수로 덮힌다는 하나님의 경고는 사람들에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노아는 넓고 황량한 들판에서 세 아들과 함께 수십 년 동안 나무를 다듬고 거대한 구조물을 세우며 작업했을 것이고, 사람들은 지나가며 “비가 온다고?” “저 큰 배를 왜 저기서 짓느냐?” 하며 비웃고 조롱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노아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상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였다. 그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믿고 두려움으로 움직여 방주를 준비하였다.

     

         전 지구적 홍수 심판

    그 당시는 일부다처가 시대의 풍조가 되어 있었지만,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은 모두 한 명의 아내만을 두었다. 그래서 방주에 들어 간 사람은 정확하게 노아 부부와 세 아들 부부 곧 여덟 명이었다. 창세기 8~9절에 따르면 정결한 짐승과 정결하지 않은 짐승들, 날짐승과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것 중에서 수컷과 암컷이 두 마리씩 스스로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다. 노아가 그 많은 짐승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잡아 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것들을 인도하셨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신 후 친히 아담에게로 데려오신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었다.

    창세기 7장 11절에 보면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둘째 달 17일에 큰 깊음의 샘들, 곧 지하수의 모든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 하늘의 창들이라는 말은 히브리식 표현으로 마치 하늘에 창고가 있고 그 문이 열리듯이 비와 우박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나타낸다. 하늘의 창들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그 중 한 견해는 궁창 위의 물, 곧 홍수 이전에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수증기층이 이때 쏟아져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홍수 이전의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온난한 환경이었고, 인류와 동물들의 수명과 크기도 더 컸으며 대기 중 산소 농도 역시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베리아의 얼음층에서 발견된 매머드의 위장에서 풀이 나온 사실은 당시 기후가 지금과 달랐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으며, 대홍수로 인해 급격한 기후 변화가 일어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노아 시대의 홍수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 둘째 달 17일부터 그다음 해 둘째 달 27일까지 약 371일 동안 지속된 사건이었다. 하루 이틀의 단기적 재난이 아니라 한해를 넘긴 거대한 격변이었다. 성경의 일관된 증언과 자연 속에 남아있는 여러 흔적은 모두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노아의 대홍수는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전 지구적 사건이었다.

     

         아브라함의 이름과 출생

    아브라함의 본래 이름은 아브람이었다. 아브람은 ‘높여진 아버지’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후에 그가 99세였을 때에 그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는데, 아브라함은 ‘많은 자들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이름이 바뀐 것은 창세기 17장의 일이며 그때 그의 아내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함께 바뀌었다. 따라서 창세기 17장 이전의 본문에서는 아브람과 사래로, 17장 이후부터는 아브라함과 사라로 부르는 것이 맞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다. 갈대아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바그다드 남동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지역으로 당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이곳은 수메르 문명이 꽃을 피운 곳으로, 고도로 발달한 도시 문명과 함께 온갖 우상을 섬기는 다신교 문화가 지배하던 땅이었다. 여호수아기 24장 2절에 “옛날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이자 나홀의 아버지인 데라가 강 저쪽에 거하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라고 기록한 것처럼, 아브라함의 가정은 우상을 섬기는 집안이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고 우상숭배가 당연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불러내셨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본질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명하시면서 3가지 약속을 주셨다.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 네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들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이 그것이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나이는 75세였다. 아버지 집을 떠날 때 아브람은 지도도 없이, 목적지도 모른 채 오직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을 붙들고 길을 떠났다. 조카 롯 만을 데리고 떠났다. 당시 아브람과 사래에게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상속자로 삼기 위해서였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하란을 떠난 아브람은 가나안의 세겜 땅 모레의 평야에 이르렀는데 그 땅에는 이미 가나안 족속이 살고 있었다. 아브람의 눈에 낯선 민족이 가득한 이방 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셨고 아브람은 거기에서 주께 제단을 쌓았다.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아브람과 롯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두 사람은 갈라섰다. 두 사람의 재산이 불어나면서 그들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롯은 요르단강 쪽의 소돔 지역을 향해 떠났다. 아브람은 헤보론의 마므레 평야로 향했다.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본 요르단은 온 지역이 물이 넉넉하였다고 기록한다.

    의롭다고 인정받은 아브람과 사래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이후에도 아브람은 아내의 말을 따라 하갈을 통해 육신의 아들을 낳기도 하고 또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곤란한 실수를 반복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이었다. 아브라함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숫양을 준비해 주셨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었을 때 하나님은 “네 손을 그 아이에게 대지 말라. 너는 네 아들 곧 이 유일한 아들을 내게 바치기를 마다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내가 이제 아노라”라고 말씀하셨다. 내 것을 포기하고 손을 펼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아담은 여자의 씨로 오실 분에 대한 최초의 약속을 받았고 그것을 믿었다. 노아는 다가올 심판과 방주를 통한 구원의 말씀을 받았고 그것을 믿어 자기 집을 구원할 방주를 예비하였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고 그 씨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받았고 그것을 믿었다.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주어진 율법과 희생 제도를 통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다. 다윗은 자기 후손에게서 영원한 왕이 나오시리라는 언약을 받았고 그 약속을 바라보며 믿고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 들 모두가 결국 향하고 있던 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신약시대의 우리는 그 동일한 그리스도를 이미 오신 분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으로 더욱 분명하게 알고 믿게 되었다.

     

         유대인은 누구인가?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이기도 하다. 이 민족은 오랜 세월 세계 각지로 흩어져 약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살아왔지만 1948년에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웠다. 한번 흩어진 민족이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난 뒤 동일한 정체성을 유지한 채 같은 땅으로 돌아와 국가를 재건한 사례는 인류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실제로 역사 가운데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유대인의 가장 큰 특권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기 위해 이 민족을 사용하셨고 구약성경은 그들을 통해 전수 되었다. 신약 성경 역시 대부분 유대인 저자들을 통해 기록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유대인으로 오셨다

     

         야곱을 보내는 이삭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한다는 말을 들은 리브가는 이삭에게 야곱을 자신의 오라버니 라반에게 보내어 에서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거기 머물게 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리브가는 이삭에게 한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에서가 헷 족속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한 것처럼, 야곱도 가나안 족속 여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이한다면 자신은 삶에 아무런 유익이 없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에서의 결혼 문제가 야곱을 공식적으로 보내는 명분이 되었다. 겉으로 보면 야곱은 형을 피해 도망가지만 실제로 그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이어진 원칙, 곧 언약의 계보는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 친족 가운데서 이어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위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정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수와 갈등마저도 자신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열두지파의 탄생

    창세기 29장 31절에 보면 레아와 라헬, 그리고 두 여인의 여종인 빌하와 실바에게서 야곱의 아들들이 태어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두 자매 사이의 치열한 경쟁과 갈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가 없었고 레아는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지만 자녀를 낳았다. 레아는 아들을 낳을 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고백을 하였다. 셋째를 낳을 때까지는 남편의 사랑을 향하고 있었는데

    네 번째 아들 유다를 낳을 때 레아는 “내가 이제는 주를 찬양하리라”라고 말하였다. 남편의 사랑과 위로를 바라보던 레아의 시선이 마침내 하나님에게 향한 것이다. 반면 라헬은 자녀를 얻지 못하자 야곱에게 “내게 아이들을 달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으리다.”라고 하였다. 라헬과 레아는 여종들까지 동원하며 경쟁하였지만, 자녀는 결국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었다. 라헬도 결국 요셉을 낳으면서 “하나님께서 내 치욕을 치워주셨다.”라고 고백하였다.

     

    이 이야기 전체에서 반복되는 핵심이 있다. 하나님께서 태를 여시고 닫으신다는 것이다. 생명과 번성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사람들은 경쟁하고 빼앗고 계산하였지만, 실제 결과는 하나님께서 정하셨다. 인간은 애쓰지만 열매는 하나님께 있다. 이것은 창세기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요셉의 생애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완전함을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불완전함 속으로 들어오셔서 일하시는 분이시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요셉을 외삼촌 라반에게로 보내었다. 형 에서의 분노가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면서 친족 가운데서 아내를 취하라고 하였다. 언약의 계보가 이어지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 외삼촌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세워졌고, 그 민족을 통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이 창세기가 우리에게 반복해서 보여주는 진리이다.

    형들의 시기로 인해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 갔고 호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으므로 그가 매사에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기록한다. 그곳에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하였고 그로 인해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감옥은 실패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음 단계로 가는 준비장소였다. 감옥에서 요셉은 파라오의 잔 맡은 우두머리와 빵 맡은 우두머리를 만났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꿈을 꾸었는데 서로 근심하는 것을 보고 왜 오늘 안색이 좋지 않으냐고 먼저 물었다. 요셉이 해석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면서 꿈을 해석해주었다. 요셉이 해석한 대로 복직과 처형이 이루어졌다. 잔 맡은 우두머리는 복직되었고 요셉을 잊어 버렸다.

    잔 맡은 우두머리가 요셉을 잊어버린 지 만 2년 후에 파라오가 꿈을 꾸었다. 이집트의 어떤 지혜자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하였다. 그때에야 잔 맡은 우두머리는 요셉을 기억하고 파라오에게 아뢰었다. 파라오는 요셉을 급히 불러 꿈을 말해주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해주며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세워 흉년을 준비하라는 국가 운영전략까지 제시하였다. 영적 선물과 실제적 지혜가 함께 나타난 것이다. 파라오는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세웠다. 이방 왕 파라오가 하나님의 영을 인정한 것이다. 요셉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아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어주었다. 반지는 권위를, 아마포 옷은 지위를, 금 사슬은 영광을 상징하였다. 파라오는 샤브낫 바네아라는 이집트식 이름도 주었다. 새로운 정체성과 역할이 부여된 것이었다.

    요셉이 17세에 팔리고 13년의 고난의 기간을 지나 30세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

    꿈 해석대로 흉년이 시작되었을 때 이집트만이 아니라, 온 땅에 미쳤다. 각국 사람들이 곡식을 사러 이집트로 왔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높이신 것은 이집트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흉년은 가나안 땅에도 미쳤고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아들들에게 이집트에 가서 곡식을 사 오라고 하였다. 요셉은 곡식을 사러 온 형들을 알아보고 아버지가 사랑했던 베냐민을 지금도 미워하며 차별하는지 시험하였는데 형들은 변화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베냐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만일 베냐민이 없이 돌아가면 아버지가 슬픔으로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베냐민 대신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하였다.

    요셉을 팔자고 제안했던 유다가 베냐민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았다. 이것은 단순한 책임감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자신이 그 자리에 서는 것. 이것이 대속의 구조이다. 유다 지파에서 메시아가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다의 이 행동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구조를 미리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출애굽기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이다. 창세기는 아브라함 한 사람의 부르심으로 시작하여 칠십 명의 가족이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한 사람에서 한 가족으로, 한 가족에서 한 민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칠십 명이 이집트에서 큰 민족으로 자라나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약속의 땅으로 이어지는 것이 출애굽기의 이야기이다.

     

    성도들이 이해하기 쉽게 아주 자세히 창세기 강해 책을 쓰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읽고 배우겠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살아계셔서 천지를 주관하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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