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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욥기에 관한 생각들 조회수 : 101
    • 작성자 : 최영오
    • 작성일 : 2026년 9월 1일 0시 24분 51초

  • 하나님 말씀, 즉 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한 단어, 한 절() 또는 한 장()에서 읽기를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관한 것으로서, 한 단어 또는 한 절에서 읽기를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정도가 아니라, 욥기라는 한 책() 속으로 빠져들어 아예 여러 날 동안 책 속 세상을 나름 열심히 살펴본 결과로서의 몇 가지 생각들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1. 욥기 요약 정리

     

    잘 알고 계시리라 짐작됩니다만, 글의 원활한 전개를 위하여, 아래와 같이 욥기 내용을 우선 요약 정리해 봅니다.

     

    완전하고 올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1:8)라며 욥을 칭찬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접하여 사탄은 그가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았기에 그토록 하나님 섬기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욥의 소유와 자녀를 사탄의 손에 맡기시어 욥을 시험해 보도록 허락하십니다. 사탄은 욥의 재산과 자녀를 빼앗고 마침내 그의 온몸을 심한 종기로 침으로써 욥 시험 작전(^^)에 돌입합니다.

     

    재산과 자녀를 잃는 큰 슬픔에다 심한 종기로 인한 육체적 고통까지 더해진 극도의 고난에 처한 욥을 멀리서 세 친구가 찾아옵니다. 병문안 온 거죠, 말하자면.

     

    4-31에는 병문안 온 세 친구와 욥 사이의 대화 내용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문안 온 욥의 세 친구는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을 까닭 없이 심판하시겠느냐, 네 고난은 드러나지 않은 죄에 대한 심판이니 잘 생각해 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간구하라는 취지의 말들을 하는 반면.

     

    평생을 온전함 잃지 않고 의롭게 살아왔노라 자부하는 욥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의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어 애태울 뿐입니다. 하나님과 변론하기를 원하기까지 합니다.

     

    본론을 벗어난 얘기 같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은 죄 생각이 안 나는 욥에게 너한테 죄가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친구들을 향한 욥의 반응 하나가 재미있더군요. ‘니들만 사람이냐, 니들이 죽으면 지혜도 죽겠네. 니들만큼은 나도 똑똑하다라는. ^^ (12:2-3 참조)

     

    관련하여,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아는 것 너무 많은 친구가 병문안 오는 게 어쩌면...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욥과 그 친구들 사이의 긴 논쟁이 답도 없이 끝나는 순간, 듣고만 있었던 비교적 젊은 엘리후가 그들을 나무라는 말과 함께 하나님의 위대하심 등에 관한 말들을 더 길~게 쏟아냅니다. (32-37 참조)

     

    ~게 쏟아진 그의 말들 역시 정작 욥이 겪고 있는 고난의 원인 규명과는 무관한 내용인 것 같은데...글쎄요...“보라, 그대가 옳지 못한 점이 이것이니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시니라. 그분께서 자신의 일들 중 어떤 것을 해명하지 아니하신다고 해서 어찌 그대가 그분과 다투는가?”(33:13-14) ... 이 말이 바로 그 답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엘리후의 말이 막 끝났을 때, 욥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하늘에 울려 퍼집니다. 저 유명한 말씀,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를 비롯한 가히 초월적 차원 세상의 정녕 어마무시한(^^) 일들에 관한 말씀들이 좌~악 이어집니다. (38-41 참조)

     

    회오리바람 흙먼지 날리는 땅바닥에 머리 박은 채로 바들바들 떨며 듣고 있던(틀림없이 그랬을 것. ^^) 욥은 전능자와 다투는 자가 그를 가르치겠느냐? 하나님을 책망하는 자는 그것에 대답할지니라”(40:2)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보소서, 저는 비천하오니 제가 주께 무어라 대답하리이까? 제가 제 손으로 입을 막겠나이다어쩌고 하며 입을 닫아 버립니다.

     

    그리고는, 욥을 향해 길게 이어진 하나님 말씀 끝났을 때, “제가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주에 대하여 들었사오나 이제는 제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제가 저 자신을 혐오하며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42:5) ...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욥이 했던 마지막 말입니다.

     

    제가 깨닫지 못한(understood not) , 제게는 너무 놀라운(wonderful) 일들, 곧 제가 알지 못한 일들을 말하였나이다어쩌고 하며 처절하게(틀림없이 그랬다고 봐야겠죠? ^^) 회개하는 욥을 책망하시는 대신, 하나님께서는 엘리바스를 포함한 세 친구를 진노로 책망하십니다. “너희가 내 종 욥과 같이 나에 대하여 옳은 것을 말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42:7)라면서 말입니다.

     

    내가 그의 기도를 받으리니 이것은 너희가 내 종 욥과 같이 나에 대하여 옳은 것을 말하지 아니한 대로, 즉 너희의 어리석은 행위대로 내가 너희를 대하지 아니하려 함이라”(42:8)라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세 친구는 수소 일곱 마리, 숫양 일곱 마리를 번제 헌물로 욥에게 가져와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 후 욥은 전에 소유했던 것의 두 배를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140년을 더 살았죠.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2:9) 했던 아내는 돌려받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욥기는, 이상 정리한 바와 같이, 고난은 의인에게도 닥칠 수 있는 한편 고난 중의 성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사람이 알 수는 없다는 점을 깨우쳐 주기 위한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욥기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의인 역시 고난받을 수 있음과 그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를 사람이 알 수는 없음을 우선 깨닫게 됩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trust)와 온전함(integrity) 잃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또한 하게 됨은 물론입니다.

     

    2. 욥기 속으로 빠져든 이유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깨달음 또는 다짐과는 별도로, 욥기 42장 전체를 찬찬히 음미하듯 읽어 내려가노라면, 말씀 구절구절들 대부분이 너무나 놀랍고도 오묘한 내용들이라 실로 탄복하게 되더군요.

     

    바꾸어 말씀드리면, 무려 4,000여 년 전에 기록된 수많은 그런 내용들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끌리듯 빠져 들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세 친구와 욥의 주장의 차이점

     

    너희들은 내 종 욥이 말한 만큼 나에 대하여 옳게 말하지 아니하였다’(42:7)라는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많은 생각들을 했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욥은 뭐라 말했고 세 친구는 또 뭐라 말했단 말인가...?...그들 주장의 차이점이 뭐란 말인가...?...라고 말입니다.

     

    세 친구가 쏟아낸 엄청시리 많은 하나님 아는 지식의 말들을 ai 도움까지 받아 정밀(^^) 분석한 바...다음과 같은 차이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세 친구(종합) :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결코 의로운 자를 고난받게 하지 않으시며, 고난받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죄가 있다. (4:7-8, 8:3-6, 11:11-15, 22:4-5 참조)

     

    :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라도 그분의 목적에 따라 고난받게 하실 수 있다.

     

    바로 위 욥의 주장은 내가 가는 길을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23:10)...그러니까, 욥이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의 단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근거로 한 해석 결과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세 친구를 가리켜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옳게 말하지 아니하였다 지적하신 바가 바로 위와 같은 내용 아닐까 싶습니다만.

     

    4. 어리석은 생각과 죄

     

    하나님에 대하여 옳게 말하지 아니한 행위, 즉 하나님 표현에 따른 어리석은 행위’(42-8)가 과연 수소, 숫양 각각 일곱 마리의 번제 헌물과 의로운 자의 중보 기도를 통해 용서받아야 할 정도의 죄란 말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검색에 검색을 통하여 그 답이 될 만한 말씀 구절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은 죄요, 비웃는 자는 사람들에게 가증한 자니라”(24:9) ... 어리석은 생각은 죄다, 바로 이 말씀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본 바, 사람 또는 사물에 대하여도 아니고, 감히 하나님에 대하여 옳게 말하지 아니한 죄...무척 큰 죄임이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5. 그들이 알고 있었던 것

     

    4-37에 기록된 욥을 비롯한 다섯 사람 사이 토론 성격의 대화 내용을 들여다보면...욥기 기록 시기인 주전 2200-2100년경, 그러니까, 홍수 심판(주전 2348) 이후 대략 200년 정도 된 그 옛~~~날 사람들의 대단한 지식수준 또는 교리 체계에 감탄사 절로 나오더군요.

     

    너무나 광~활한 영역을 커버하는 대화 내용 중 특별히 하나님의 시간표상 주요 사건들에 관하여 그들이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항 몇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1) “네가 사악한 자들이 밟던 옛길을 주목해 보았느냐? 그들은 때가 되기도 전에 끊어졌고 그들의 기초는 홍수로 뒤덮였느니라“(22:15-16) ... 정녕 두려운 심판으로서의 대홍수(7) 사건을 그들은 알고 있었고 또한 결코 다시 겪어서는 안 될 일로 얘기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 “하늘들이 더 이상 있지 아니할 때까지 그들이 잠에서 깨지 못하며 일어나지도 못 하리이다”(14:12) ... 새 하늘들과 새 땅(66:22)을 그들은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3)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리이까? 제게 정해진 시간의 모든 날을 제가 기다리되 제게 변화(change)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나이다”(14:14) ... 죽은 자들의 변화 그리고 부활의 때가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4) “내 살갗이 없어진 뒤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19:26) ... 육체 에서 보리라, 육체, 의 부활을 그들은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참고로,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NIV, 개역개정 성경을 포함한 현대역본 성경들의 경우 육체 에서로 되어 있죠.

     

    5) “내 구속자(redeemer)께서 살아 계시며 마지막 날에 그분께서 땅위에 서실 것을 내가 아노라”(19:25) ... 사람은 구속(redemption) 곧 죄들의 용서’(1:7)를 받아야만 하며, 마지막 날 그분, 즉 구속자께서 땅위에 서실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모두 드러나 기록된 성경 말씀이 있고, 수많은 정보매체에다 인공지능, ai까지 갖춰진 결과 모르는 게 없는 상황임에도 오히려 믿음 체계 쉽게 흔들리는 오늘날을 생각하매...4,000년 전 그들의 하나님 관련 지식수준이 그저 놀랍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6. 다시 생각해 보는 노아

     

    그들에게 놀라운 하나님 관련 지식을 전해준 사람, 즉 전수자(傳授者)가 누구였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욥이라도 그렇지, 그런 고차원적인 사항들을 스스로 깨쳤을 리는 없잖습니까. ^^

     

    노아...그가 바로 그 전수자였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밖에는 달리 그런 일 할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노아는 자기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의인(just man)이며 완전(perfect)하였고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6:9) ... 하나님으로부터 의인, 완전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던 노아, 그 존재가 새삼 새롭게 그리고 거룩하게 느껴지더군요.

     

    6:9에 기록된 just man 그리고 perfect의 참뜻이 갖는 엄청난 중량감과 함께 말입니다.

     

    7. 그때 그곳에 대한 동경(憧憬)

     

    4-37에 기록된 그들의 대화 내용을 살펴보다 보니까...욥이 살던 그때 그곳에 대한 묘한 동경심이 일더군요. ^^

     

    가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던 점이라면...4-37에 드러난 대단한 수준의 관념 체계, 예를 들면, 하나님, 사람, , 심판, , 온전함(integrity), 마지막 날, 부활, 자연의 섭리 등등을 포함하는 광활한 영역에 대한 그들의 관념 체계가 어떻게 전승(傳承)되고 있었던가 하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주전 2,100년경 그때 당시만 해도 펄펄하게(600년 생애 중 350세 정도였으므로. ^^) 살아 있었을 셈을 교관으로 하여 무슨 정기적 교육이 실시되고 있지는 않았을까...?...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토록 놀라운 대화가 있을 수 있었을까...?...등등의 궁금증으로 인해 그때 그곳에 진짜로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만. ^^

     

    8. 온전함의 의미

     

    욥기를 읽는 동안 특별히 그 의미 거듭 되새겨보는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도 욥의 그것을 인정하셨고(2:3) 욥 또한 죽을 때까지 자신의 그것을 잃지 않으려 했던 바로 그것, 즉 온전함(integrity) 말입니다. (욥기에는 faith 대신 integrity4회 나옴)

     

    27, 29, 31 내용으로 짐작컨대, 눈과 생각 머무는 곳까지를 점검 또 점검하며 사는 거룩한 삶, 그것이 온전함, integrity의 의미 또는 실체 아닐까 싶습니다.

     

    관련하여, 상당히 멋진(?) 표현 하나를 옮겨적어 봅니다. “내가 내 눈과 언약을 맺었는데 어찌하여 처녀를 생각하랴?”(31:1) ... 처녀 보기를 돌같이 하라...? ^^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5:28), 예수님의 그 말씀 미리 들은 것도 아닐 텐데...온전함, integrity의 의미를 보다 리얼하게 알 것도 같습니다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2:17의 행위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항상 행위가 따르는 믿음, 즉 살아있는 믿음이 바로 integrity 아닐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또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전적으로 반듯함, 그러니까, 영과 혼과 몸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흠 없는 상태, 그것이 바로 integrity 아닐까 싶은 생각 말입니다. 짧은 식견으로 판단컨대, 이게 가장 그럴듯하게 보입니다만.

     

    9. 에필로그

     

    웬 에필로그냐구요? ^^ 쓸데없이 긴 글 마무리하면서 제법 의미 있는 몇 마디 말씀 덧붙이고는 싶은데 마땅한 소제목 떠오르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에필로그 어쩌고 거창하게 시작해 봅니다. ^^

     

    욥기를 탐독함으로써 저는 대홍수(7)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이 바벨탑에서의 반역(11) 이후 온 지면으로 널리 흩어진(11:9) 다음 아브라함 등장(12)에 이르기까지의 잠시 단절된 듯 흐려진 듯했던 그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았던가, 어떤 관념 체계 그리고 지식수준으로 살았던가를 확실히 그리고 총체적으로 알 것 같았습니다.

     

    하늘과 땅 창조하시던 그 처음에(in the beginning) 또는 그 이전에 세우셨던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어떤 단절 또는 흐려짐 없이 시간표 그대로 정확히 구현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들을 마치 한 편의 대작 파노라마 영화처럼 아주 리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욥기, 정말 대~~~단한 책이로군요.

     

    하나님 아는 지식 일천한 주제에 감히...조심스럽게...이런 의문 제기해 봅니다. 역사서를 지나 시가서(詩歌書) 맨앞에다 욥기 42, 실로 놀랍고도 오묘한 내용의 대단한 책 배치해 주신 하나님의 뜻...과연 무엇일까...?...?...라는

     

    고난은 의인에게도 닥칠 수 있는 한편 고난 중의 성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사람이 알 수는 없다는 점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그 뜻 이외의 또 다른 뜻 말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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