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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레위기 하나님의 예언의 달력'을 읽고조회수 : 22
    • 작성자 : 손혜선
    • 작성일 : 2026년 6월 27일 22시 18분 2초

  • 레위기는 성경 전체 특히 복음과 십자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책이라고 서론에서 말씀하시며 시작되었다

    목사님께서 성도들의 배움을 위해 쓰신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내용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어도 희미해진 내용이 다시 정확하게 정리되는가 하면, 알지 못하고 있던 내용을 처음 알게 되면서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구약성경 레위기에 기록된 일곱 명절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셔서 읽어나가기가 수월했다. 읽는 사람마다 눈에 보이거나 마음에 느끼는 감동이 다르게 와 닿는 거라서 내가 배운 내용과 느꼈던 내용을 공유하고 싶었다. 부족하지만 감명받은 내용 요약과 독후감을 써 보았다.

     

    ** 명절!

    듣기만 해도 얼마나 기분 좋고 즐거운 날인지요!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곱 명절을 만드시고 행하시며 천지를 운행한다는 사실을 이렇게 성경에 명백하게 선포하시고 행하신다는 기록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길 수가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귀한 시간이 되었어요. 일곱 명절은 단순한 종교행사를 넘어 결정적인 구속사 적 지표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는 걸 자세하게 배울 수 있었답니다. **

     

    레위기 23장은 이 책의 또 다른 절정이다. 인류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제시하신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성령님의 강림 교회 시대, 그리고 장차 있을 재림과 천년 왕국까지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계신다.

     

    주의 만찬에 대해

    어린양의 피로 시작된 유월절의 구속, 누룩을 제거하는 무교절의 거룩함, 첫 열매의 생명을 선포한 초실절의 부활 소망이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모두 성취되었고 그 성취가 바로 이 식탁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주의 만찬은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복음 전체를 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이다. 빵을 떼고 잔을 나누는 그 순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식탁에서 만나고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의 몸으로 묶인다. 각자의 신앙이 흩어진 채 머물지 않고 한 주님 안에서 한 고백으로 연결된다.

     

    성경에서 누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악과 죄, 부패한 교리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누룩이 스며드는 곳에는 반드시 부패가 일어나며, 그 영향은 서서히 퍼져 결국 전체를 변화시킨다. 주의 만찬에서 사용하는 빵은 반드시 누룩 없는 빵이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잔도 발효된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이어야 한다.

    유월절

    유월절은 단순히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이스라엘 명절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왜 어린양의 피라는 길을 선택하셨는지, 그리고 그 모든 일 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실제로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첫 장면이다. 유월절 밤에 흐른 피는 단지 한 시대를 지나가게 한 표식이 아니라 이후 모든 시대의 죄인들이 첫째 출생에서 둘째 생명으로 옮겨가는복음의 원리를 배우게 하는 모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땅의 처음 난 모든 사람은 왕좌에 앉아 있는 파라오의 처음 난 자부터 맷돌 위에 있는 여종의 처음 난 자까지 죽고 짐승들의 처음 난 모든 것도 죽으리라 (11:5)는 말씀처럼 이집트 전역에 닥친 죽음은 파라오가 주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만이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심판은 공정하게 온 땅을 뒤덮었다. 하나님께서는 한쪽에서는 죽음이 지나가게 하시고 다른 한쪽에서는 생명이 보존되는 대속의 길을 마련하셨다. 심판과 구원은 같은 밤, 같은 시간에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들은 피를 취해 그 양을 먹을 집 문의 양옆 기둥들과 문 상인방에 뿌리고(12:7)- 믿음과 행동이 함께였을 때 피를 본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통과한다고 보고 듣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에 피를 뿌리라는 위치인 상인방이 어딘지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옆 페이지를 보니 사진 두 장이 있는데 그들이 뿌린 피의 위치가 보였다. 확실하게 그 위치가 이해되었다.

    **어떻게 목사님께서는 성도들이 궁금해할 것까지 아시고 이렇게 이해를 돕는 사진을 올려 주셨는지 그 세심한 배려에 감사와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창세기에도 하나님께서 대속물을 죽이시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그들에게 입히셨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구약과 신약에 대속물로 구원받은 기록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

     

    어린양이 죽고 피가 문설주에 뿌려져서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는 사건이 있고, 그다음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이것이 유월절의 의미이다.

     

    무교절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누룩 없는 빵의 명절이다. 시간상으로도 유월절과 사이에 공백이 없듯 성도의 삶에서도 구원과 성화 사이에는 비어있는 기간이 없다. 어린양의 피로 이집트를 떠난 백성은 곧바로 집안의 누룩을 찾아 치우기 시작했다. 이는 구원받은 사람이 즉시 삶 속의 죄와 부패를 제거해 가야 함을 상징한다. 유월절이 단번에 일어난 구원의 사건이라면, 무교절은 남은 생애 동안 계속되는 거룩함의 과정이다.

     

    무교절은 구원 이후 성도의 삶 속에 남아 있는 더러움과 부패를 제거해 가는 과정, 곧 성화를 상징한다. 성화는 신앙의 여정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구원은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어떤 인간적인 가능성도 더는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결단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에 피를 바른 후 그 어린양을 먹으라고 명령하셨다. 피는 생명을 구하는 표지였고, 어린양의 고기를 먹는 일은 그 구속받은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무교절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중 하나는 누룩을 제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양을 먹는 것이다. 누룩을 제거하는 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반드시 어린양을 먹어야 한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초실절

    첫째 부활의 시작은 첫 열매이다.

    첫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다음 단계는 수확이다. 이는 교회 시대에 속한 성도들의 부활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데살로니가 전서 4장이 말하는 바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든 자들이 먼저 일어나며 살아있는 성도들은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하게 된다.

    성경은 단계로 이삭줍기를 언급한다. 이는 7년 대환난기가 끝나는 시점에 이루어지는 부활로서, 구약시대에 죽은 성도들과 환난기 동안 순교한 성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삭줍기가 마쳐질 때까지 가서 하나님의 밭에 속한 곡식이 모두 거두어진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두 번의 출생이 있다. 첫째는 육체로 태어나는 자연적 출생이며, 둘째는 위로부터 곧 성령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영적 출생이다. 그러나 사망은 한 번이다. 그것은 육체의 죽음이며 이 죽음은 영원한 멸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반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출생이 한 번이다. 그는 육체적으로만 태어났을 뿐 영적 출생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망은 두 번 경험하게 된다. 첫째 사망은 육체의 죽음이며, 둘째 사망은 그 이후에 임하는 영원한 사망이다. 이 둘째 사망은 영원한 사망이다. 이 둘째 사망은 존재가 소멸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사망은 무로의 소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로부터의 영원한 분리를 말한다.

     

    초실절은 그 여정의 끝이 무덤인가? 부활인가?”를 묻는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무덤을 열고 일어나셨고 성령님의 첫 열매가 우리 안에 보증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은 광야의 길이 아무리 길고 험해도 그 결말이 정해져 있음을 말해 준다.

     

    이 초실절의 메시지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끝까지 성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가장 깊은 위로와 담대함을 제공한다.

     

    **다른 명절은 들어서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초실절이란 절기는 뜻이 약간 생소했어요. 마음을 가다듬고 자세히 읽어 가다 보니 이해가 되고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얼마나 자세히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놓으셨는지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순절

    오순절 예식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일은 두 덩이의 빵을 주님께 드리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한 덩어리가 아니라 두 덩이의 빵을 요구하셨는가?

    오순절은 교회에 대한 예언적 초상화이자 동시에 그 실체의 출현을 보여주는 명절이다. 두 개의 빵을 주님께 드리는 예식은 성령님의 크신 역사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사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삼천 명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더해졌다는 사건을 통해 분명히 확증된다.

    오순절에 두 덩이의 빵을 드렸다는 사실은 교회라는 유기체가 처음부터 두 부류를 함께 포함하도록 계획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순절은 일곱 명절 가운데 정확히 가운데 놓인 네 번째 명절로서 구속의 큰 흐름 속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룬다. 유월절이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무교절이 성화의 여정을, 초실절이 부활의 소망을 보여주었다면, 오순절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뒤 성령님을 보내셔서 교회를 시작하신 날이다. 구약의 오순절이 시내 산에서 돌판에 새겨진 율법을 받은 날이었다면,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님께서 사람의 마음 판에 새 언약을 새기시는 시대가 열린 날이다.

     

    **신약의 오순절은 알고 있었는데 구약의 오순절에 대해서는 이 내용을 읽으면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

    나팔절

    나팔절은 하나님의 달력 안에서 기다림의 끝에 울리는 결정적인 신호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주 후 30년경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그 이후 교회가 형성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 약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한번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그들이 끝내 돌이키지 않았을 때 주 후 70년경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던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성전의 파괴는 단순한 건축물의 상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적 차원에서 직접적인 언약 관계를 맺지 않으신다는 표지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온 세상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이로써 약 이천년에 이르는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진행되었다.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흩어졌으나 19485월 다시 그 땅으로 돌아왔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부르셨고, 그로부터 한 민족 곧 유대인을 형성하셨다. 유대인은 땅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교회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나팔의 의미와 구분

    나팔을 부는 행위는 사람이 임의로 만들어 낸 종교적 관습이 아니다. 나팔은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거룩한 수단이다. 성경에서 나팔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십계명을 주실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나팔 소리 가운데 강림하셨고 그 소리는 산을 진동하게 하였다.

    나팔 소리가 울리면 백성은 즉시 의미를 분별하였다. 나팔 소리는 적군의 칩입을 알리는 경고이기도 했고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모이라는 부르심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팔을 부는 자가 분명한 소리를 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했다.

    교회 시대가 끝나면 하나님 예언의 달력은 나팔절로 나아간다.

     

    세 가지 나팔 소리의 구분

    성경은 서로 다른 세 가지 나팔 소리를 구분하여 말한다.

    첫째, 교회의 휴거와 관련된 나팔이다. 교회가 휴거 될 때 나팔 소리가 울리는데 이 나팔 소리는 교회를 위한 것이다.

    둘째, 7년 환난기에 일곱 나팔 심판으로 인한 나팔 소리이다. 이 나팔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세상 위에 임하는 무서운 심판을 가져온다.

    셋째, 나팔절의 나팔이다. 7년 환난기가 끝날 때 나팔 소리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모으시며 이 나팔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

     

    휴거는 교회를 위한 사건이며 나팔절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 시기와 목적은 서로 다르다. 휴거는 주님께서 자신의 신부를 데려가기 위해 공중에 강림하시는 사건이며, 나팔절은 주님께서 자신의 성도들과 함께 이 땅, 곧 올리브 산에 직접 내려오시는 사건이다. 휴거는 나팔절보다 최소한 7년 앞서 일어난다. 나팔절은 그 시각을 열어주는 다섯 번째 명절이다.

     

    (하나님의 달력이 나팔절을 향해가고 있는 지금 모든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영접해야 한다.)

    성도에게 나팔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잊지 말라.”라는 교리적 교훈이자, “하나님의 달력은 멈추지 않고 정해진 날을 향해 정확히 나아가고 있다.”라는 영적 경각심을 준다. 나팔절은 다섯 번째 명절이다.

     

    속죄일

    속죄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민족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것과 초림 때 메시아를 배척한 모든 죄를 깨닫고 자신들과 조상들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 내어놓고 회개하는 날이다. 속죄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 놓여 있던 죄의 장벽이 제거되어 깨어졌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죄 없는 삶을 사셨고 죄가 없는 상태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러나 그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죄를 알지 못하신 그분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다.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온전히 담당하셨고 이로써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이것이 구약의 모든 희생이 가리키던 완전한 실체이다.

     

    메시아를 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백성의 영적 회복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회복은 민족적인 속죄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성경은 온 세상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다시 모이는 날이 올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 그 모임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 속에서 이루어지는 영광스러운 집합이다.

     

    나팔의 울림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모이고 그 후에 참된 회개와 속죄가 뒤따르게 된다. 이 마지막 속죄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 이후에 있으며 그분께서 지상에서 통치를 시작하시기 직전에 이루어질 것이다. 속죄일은 하나님 예언의 달력에서 이스라엘의 죄가 공식적으로 다루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날을 가리키는 핵심 명절이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사람이 되셔서 친족 구속자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단 한 번 피를 흘리심으로써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이 완성된 속죄 위에 서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그분의 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으며 그 피가 지금도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 없다고 가장하는 삶이 아니라 빛 가운데서 자신의 죄를 드러내고 이미 주어진 속죄의 능력에 의지하여 날마다 죄를 벗어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과거의 죄는 단 한 번에 용서받았고 현재의 연약함과 넘어짐 또한 동일한 피 안에서 처리되며 장차 올 영화의 날에는 죄 자체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것이다.

     

    장막절

    장막절은 곡식과 포도즙을 거두어들인 뒤 이레 동안 지키는 수확절로서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기뻐하라고 명령받은 명절이다. 장막절이 초막절로도 불리듯 이스라엘이 집을 떠나 초막에 거하며 광야의 길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게 하는 교육적 명절이기도 하다. 장막절은 이스라엘의 일곱 명절 가운데서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명절로서 주님께서 정하신 모든 예정된 기간들을 완성하는 명절이다.

     

    초막은 견고한 집이 아니라 잎이 무성한 나무의 가지, 종려나무 가지, 버드나무 가지, 좋은 나무들의 가지를 엮어 만든 임시거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일주일 동안 자기 집을 떠나 이런 연약한 처소 안에 거해야 했다.

    이 명령은 단순한 전통이나 의식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억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의도가 담긴 교육적 명령이었다. 광야 사십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극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스라엘을 보호하셨고 그들을 흩어지지 않게 하여 하나의 민족으로 보존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감사하며 찬양할 때 기뻐하신다. 우리 각자는 때때로 멈추어 서서 과거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장막절이 바로 그러한 시간을 제공했던 시간이었다.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은 현재의 어려움 앞에서도 다음과 같이 고백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를 건져주시고 도와주신 하나님께서 이번 문제도 이기게 해 주실 것이다.” 이러한 확신으로 하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상이며, 감사 속에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이다.

     

    **책을 다 읽고 독후감으로 정리하면서 일곱 명절이라는 절기가 얼마나 마음에 크게 실감 나게 와 닿는지 가슴이 뿌듯해져 옵니다. 이 절기를 정해놓고 때가 되면 이루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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